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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그네 (양장)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갑작스러운 배고픔에 책 속의 글자들을 꼭꼭 씹어 삼켜 보지만 열일곱 살 소년 레오폴트 아우베르크가 말하는 배고픈 천사를 만날 수 없었다. 소련 강제수용소로 떠나기 전 십칠 년을 함께 지낸 집 안 곳곳의 물건들은 레오폴트에게 처음부터 속하지 않은 것처럼 그를 내동댕이쳤지만 수용소에서 늘 함께 했던 배고픈 천사는 레오가 살아가는 내내 그 자취를 감추지 않는다. 벽에서는 레오의 숨그네가, 가슴에서는 심장삽이 똑딱 소리를 낼 때 배고픈 천사도 늘 레오와 함께 했다.
배고픔은 인간의 이성까지 마비시킨다. 감정의 무덤덤함은 나, 와 다른 이들간의 다름을 만들었고 살아 있는 내내 대리형제 로베르트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너는 돌아올거야"란 할머니의 말을 가슴속에 늘 간직하고 살았지만 아주 작은 행운이라도 놓칠까, 갑자기 죽음에 성큼 다가서게 될까, 누구나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니까 이 말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들을 기다리는 한 여인이 준 손수건이 자신을 집으로 데려다 줄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은 레오에겐 가장 큰 소망이 되어 간다.
은초록색 명아주가 타오르는 듯한 붉은색을 띠면 사람들의 눈빛에는 참을 수 없는 그리움을 담고, 배고픈 천사는 사람들의 고단한 삶의 어깨에 내려 앉는다. 죽음의 냄새가 풍기는 수용소의 일상이 왜 이렇게 처연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일까. 레오의 혀 끝에서 밀려 나오는 그만이 알 수 있는, 그만이 느꼈을 삶의 진짜 모습이 레오의 꿈이 맴돌았을 수용소를 더 끔찍하게,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 수용소의 단조로운 일상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하루가 쌓여 가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자신에게 찾아온 쥐들을 통해 레오가 삶의 끝을 놓지 않기를 바랐던 독자들이라면(나는 그랬다.) 레오의 행동에 숨이 막혔을 것이다. 하지만 곧 그가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이렇게 표현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결코 이성이 마비되어 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가 있는 수용소와 내가 있는 이 안락한 집과의 거리는 아주 까마득한 거리로 바뀌어 버리게 된다. 막일을 하러 지하로 가는 길, 스쳐가는 모든 것들에게 고향의 냄새를 만들어주면서 일상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한 레오는 구번 다음 오번이 오는 뒤죽박죽인 것이 행복이라는 이발사 오스발트 에니예터의 말에 "너는 돌아올거야"라고 말한 할머니의 말을 생각하며 '나는 행복해져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시킨다.
레오 안의 모든 혈관들은 수용소에 있을 때나 1950년 1월 초 집에 돌아온 때나 늘 어김없이 살아 있다. 항상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 틈에 자리한 레오는 덮쳐 오는 '자유'에 흠뻑 젖는다. '축음기 상자 트렁크'에 짐을 싸던 그 때 동성애자 레오는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 때 레오는 '나를 모르는 곳'이면 수용소든 어디든 상관 없었다. 지금 레오는 수용소가 아닌 자신이 십칠 년 동안 살았던 곳으로 돌아왔지만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없는 곳'이 되었 버렸다. 레오에게 과거 수용소에 있었던 시간은 허상이었을까, 현재 자신의 모습이 허상인 것일까.
'숨그네'는 심장의 팔딱거림과 아무도 없는 곳에서 그네가 홀로 '끼익끼익' 움직이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숨이 차오르는 느낌을 고스란히 그리고 있는 '숨그네'는 배고픔에 이성까지 마비되어 본 사람만이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지금 나의 숨구멍은 누가 막아 버렸을까. 숨이 막혀 '꺽꺽' 발버둥치지만 아무도 구해주지 않는다. 레오가 수용소에서 느꼈을 죽음의 공포를 책을 덮고 나서야 느끼는 것인가. 내 안의 숨그네만이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하지만 삶은 지독하게도 나를 철저하게 내 안에 가둬버린다. 레오가 지난 과거를 결코 놓아 버릴 수 없듯이, 손수건을 손 안에서 놓아 버릴 수 없듯 나는 내 안에서 결코 밖으로 빠져나갈 수가 없다. 심장의 팔딱거림만이 내가 아직도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