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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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가 일한 수목원이 옛날 어여쁘게 피어난 꽃들과 사진을 찍어댄 그 곳과 같은 풍경인지 궁금하다. 아주 추운 날 아침에 도착한 수목원은 꽃과 나무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음에도 따뜻하지 않았다. 그 날, 코 끝을 스치는 향기들이 나를 어지럽게 만들었음에도 하나, 하나의 향기들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나에게 수목원은 그저 "아, 꽃이 많구나. 나무가 저 하늘 끝까지 있는 것 같네. 이 꽃은 처음보는구나" 정도의 감탄사를 터뜨릴 뿐이었다. 기억나는 향기라도 있었으면 연주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잠시 옛 기억에 파묻혀 볼 수도 있었을텐데, 나의 기억속에 있는 기억 중 어느 하나도 현재, 지금의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 없다.   

 

연주가 수목원에 보내는 세월이 겨울에만 국한되어 있지는 않았는데 왜 나는 책장을 넘기는 내내 손이 시려워 자꾸 몸이 움츠러 들었는지 모르겠다. 아버지가 교도소에 있다는 글 때문일까. 눈이 많이 내리는 날에 연주가 처음 이 수목원에 방문했기 때문일까. 최전방인 이 곳은 사람들이 정착하여 사는 곳이 아닌 잠시 머무는 장소라 외로움과 쓸쓸함이 버무려져 늘 겨울이 연상된다. 연주가 수목원에서 그리는 꽃들은 그 모습을 표현해내는 것이 쉽지 않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색깔에 어느 것 하나 정확하게 들어 맞는 색깔이 없다. 모습도 제 각각이라 색깔을 여러 번 덧칠하다 보면 전혀 다른 느낌의 꽃이 되기도 한다.

 

연주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중에 등장하는 새로운 인물 김민수 중위, 갑자기 등장하는 그의 글은 계절이 바뀌는 듯 생경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다 연주가 수목원에 와서 처음 만나는 사람이 초병을 제외하고 김민수 중위라는 글이 생각났을 때 "아. 이사람?" 하면서 책장을 다시 앞으로 넘겨보았다. 정말 인연이란 예측할 수가 없느니. 지금 생각해 보니 연주가 초병은 자신의 인연에 닿는 사람으로 생각지 않았었다. "김민수 중위입니다"라고 인사는 그를 수목원에 와서 처음 만나는 사람으로 얘기했으니 말이다. 두 사람의 인연이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소설 밖에서 좀 더 세월이 흘렀을 때 어떻게 인연이 될지는 독자들의 상상속에서만 이루어지도록 해 놓아 조금 아쉽다. 남녀가 등장하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느끼는 현실의 무게가 아직은 많이 무겁기 때문일까.

 

연주가 일하는 수목원에는 다른 곳보다 생명의 기운이 많이 느껴지는 곳이다. 꽃이나 나무들, 생물들이 생을 다하고 사라지기도 하지만 생명의 기운이 더 큰 곳이 이곳일 것이다. 그렇지만 연주가 김민수 중위에 의해 유해발굴단의 일을 도와 뼈 그림을 그리면서 이곳 주변에는 죽음의 기운도 함께 한다. 하얀 백지 위에 선을 그리고, 형태가 나타나고 사물의 윤곽을 잡아 생명을 가진 하나의 개체를 탄생시키는 연주에게 뼈 그림을 그리는 일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의외로 그녀의 손 끝에서 생겨나고 소멸하는 모든 것들이 익숙하게 다가온다.  

 

연주가 수목원에 와서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미술학원에서 자살한 사람, 명함 한 장 내밀고 떠나는 김민수 중위, 그리고 아버지, 연주에게 가까이 있는 이들 모두가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도는 듯 쓸쓸하다. 낙엽이 한 장, 한 장 내 주위로 떨어지는 듯 책장이 넘어가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쓸쓸함에 목이 막혀온다. 연주의 엄마가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새벽에 걸려오는 연주 엄마의 말소리는 아주 먼 곳에 있으나 나의 귓가에도 또렷하게 들려와 그 두려움에 온 몸이 먹혀 버릴 것 같다. 계절의 끝은, 아니 세월은 이렇게 모든 것을 두렵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책 제목인 '내 젊은 날의 숲', 아이러니하게도 젊은 날에는 가슴이 불타오르는 열정으로 가득차 있어도 피부는 온통 헐벗은 나무들이 있는 삭막한 겨울 같으니, 굳이 '젊은 날'이라는 말은 다 쓸데없다. 갓 태어나 부모의 돌봄으로 무럭무럭 자라났을 그 때가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던 때가 아니였을까. '내 젊은 날의 숲'은 책 제목만으로도 온 삶을 빼앗긴 듯 쓸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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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 미사일
야마시타 타카미츠 지음, 김수현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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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이 테러 조직에게 납치 당한 상황이긴 하지만 '옥상부' 학생들의 손에 들어온 권총이라니, 이건 너무 현실적이지 않잖아? 츠지오 아카네가 미술과제를 위해 올라간 옥상에서 그 날 '옥상부'가 만들어지고 세계 평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옥상부'에게 지켜야 할 것들이 생긴다. 작가 야마시타 타카미츠의 손에 탄생된 "옥상 미사일", 사실 작가가 벌려 놓은 수많은 일들이 언제 해결될까, 해결되지 않고 그냥 끝나는 건 아닐까, 솔직히 두고보자는 심정으로 책장을 넘기기도 했다. 아니, 이렇게 모든 사건들이 얽혀 있으면 어찌 해결한다는 건지 궁금해지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아쉽게도 아주, 아주 깔끔하게 모든 것이 정리가 되더라. 힌트를 주자면 모든 것이 우연히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연이 닿지 않으면 이렇게 운명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관련될 수가 없지. 암 그렇고말고.

 

모든 일에 무대포로 밀어 붙이는 쿠니시게, 툭툭 던지는 말들에 사람들이 기분 나쁠만도 하건만 왜 모두 호감을 느끼게 되는지 모르겠다. 나? 난 이런 캐릭터...물론, 좋다. 군더더기가 없으니까. 감정의 골도 깊어지지 않겠고. 아무튼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하기 전에 말 한마디 하지 않겠다며 글로 대화를 하는 사와키, 동생의 죽음에 괴로워하는 히라하라, 모두들 평범한 성격의 인물은 없다. 아카네 정도가 평범할까. 이도 그녀의 남동생이 사건들에 얽히면서 그리 평범한 일상을 살지 못하게 되지만.

 

깊이 생각해 보자면 '옥상부'가 사건에 연관되기 시작한 게 어떤 일 때문이더라? 쿠니시게가 죽은 사람의 사진을 줍게 된 일? 사와키가 권총을 줍게 된 일? 이것들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는데, 히라하라의 의견으로 '벌신님'을 만난 것? 사실 이렇게 머릿속이 복잡해지도록 고민할 것도 아닌게 모든 것이 하나의 선에 의해 모두 연결되어 있다. '옥상부'를 조직한 것부터가 이 사건의 처음이라면 처음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책장을 넘기다 어느 순간(언제쯤인지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사건에 더이상 머리를 쓰지 않게 된다. 그냥 어떻게 된 일인지 알려나 달라는 상태가 된다고나 할까.

 

미국 대통령이 테러 조직에게 납치 당해서 벌어지는 사회적인 문제가 심각하긴 하다. 도시가 텅 비어 버리고, 각종 범죄들은 일어나고 경찰들은 바빠지니 자신들의 일은 자신들이 해결하자고 나서는 '옥상부'의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 '옥상부'의 두뇌는 쿠니시게인데 그를 도와 사와키, 히라하라의 활동도 멋져서 독자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만든다. 아직 학생인 이들이 총 앞에 서게 되는 것은 일본 소설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들이고 전혀 현실감이 없긴 하다. 거기다 쿠니시게를 쫓는 킬러의는 어수룩한 모습이라니 이 책, 이렇게 가볍게 읽어도 되는 건가 잠시 헷갈린다. 테러조직이 대통령을 왜 납치 했는지 그 이유를 들어보면 어이가 없어 말도 나오지 않지만.

 

쿠니시게와 츠지오 아카네의 로맨스는 진행이 되는 건가에 관심을 가질 여유 없이 독자들의 머릿속을 혼란에 빠뜨리는 "옥상 미사일", 책 제목을 보고 내가 생각한 옥상에서 미사일이 발사되는 그런 내용은 아니나, 충분히 그 비슷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중간, 중간 유심히 본다면 쿠니시게처럼 명석한 두뇌로 사건을 해결할 수도 있으니 전반적으로 꼼꼼하게 책을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중간에 흐름을 놓치면 나처럼 될대로 되라는 식이 되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읽어야 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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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5
아리카와 히로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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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을 즐겨 읽는 나는 아리카와 히로의 "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 책을 읽기 전 여느 일본 소설들처럼 심각한 주제이긴 하지만 아주 가볍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거라 생각하고 책을 펼쳤었다. 간간이 웃음도 터져 나오는 그런 소설 말이다. 세이지가 구직활동에 전념하지 못하고 알바를 하며 집에서 뒹굴 거릴 때 예전 내가 구직 활동하던 생각도 나서 조금씩 감상에 젖기도 했는데, 그 때의 나와 현재의 나는 다르지 않지만 지금의 세이지는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부셔 감히 마주볼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동기의 유무를 따지기엔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져 여기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을까 한다.
 
꿈도 없고, 저금도 없고, 희망도 없던 세이지에게 목표가 생긴다. "도요카와 네가 우리 집 아들이었다면 우리 어머니에게도 지금 같은 일은 절대 없었을 거야"라며 자신의 삶이 조금은 실패였으며 늦었다고 생각하지만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세이지의 삶을 바꿔 버렸다. 그런데 "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 속 세상이 아닌 내가 살고 있는 진짜 현실에서였다면 세이지의 삶은 지금의 모습과 많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엄마를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이 세상을 보는 눈을 달라지게 했겠지만 여전히 백수 알바를 전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허구의 세상인 '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에서는 세이지의 인생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물론 세이지에게도 할 말은 있다. 젊은 사람도 힘들어 버텨내지 못하고 나가 버린다는 현장 일을 하면서 집 장만한다는 야무진 꿈을 꿔 돈을 저축하며 성실하게 일궈내며 당당하게 스스로 만들어낸 삶이니까.
 
집 장만을 하기까지 세이지와 가족들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이루어낸 일을 감히 내가 말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세이지와 그의 가족들에게 애정이 있는 나에게도 한마디쯤 발언권을 준다면 세이지의 등등 툭, 툭 쳐대며 "대단한 녀석"이라는 말을 해 주고 싶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솔직히 고백하자면 "일하다" 소제목 뒤에 어떤 글이 있을까 살짝 먼저 넘겨 봤었다. 이 때는 세이지에 대한 믿음이 조금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집을 산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니까. 어디까지나 세이지 아버지의 도움 없이는 힘든 일이라, 가족들의 곁에 조금씩 다가가는 아버지지지만 가끔씩 감정 표현이 서툴러 버럭 호통 칠 때는 나도 책장을 덮고 싶을 정도로 그 자리를 모면하고 싶게 만들어 엄마가 감옥처럼 지내는 이 집을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내심 초조해지기도 했었다.
 
이웃들에 의해 철저하게 정신을 파괴당한 세이지 엄마의 삶은 20년간 이곳에서 살면서 한 번이라도 행복했던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황폐해졌다. 가족들에게 관심이 없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사는 아버지에게 병에 걸린 아내는 자신이 가야 하는 곳에 잠시 걸림돌이 되는 존재일 뿐이었다. 세이지에겐 구직활동 할 동안 아버지와의 식사시간을 피할 수 있게 2층에 있는 자신이 방까지 음식을 가져다 주는 존재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의 삶에 엄마가 없으면 안된다는 자각이 자신의 모든 삶의 방향까지 바꿔 버렸다. 그런데 정말 이런 이웃들이 있을까. 세이지에게 강한 동기부여가 되어 준 이 사건들이 정말 한 동네에서 벌어진 일인지, 사실 나는 지금도 믿을 수가 없다.  
 
마지막에 이르러 세이지의 시선이 아닌 도요카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가벼운 일탈을 꿈꾸는 듯 유쾌하다. 세이지에게 일어난 모든 것이 아직은 늦지 않았으니까. 지금 시작되려는 사랑도 결코 늦지 않았으니까. 이렇게 책장을 넘기는 나의 손길도 이제 조금쯤 가벼워도 되지 않을까. 가족을 지키고 내 집을 장만하겠다는 세이지가 이제는 어떤 꿈을 꿀까. 결혼을 하고 가족이 생기면 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또 땀 흘리며 뛰겠지. 누군가에게 눈부시게 빛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나도 누군가에게, 아니 나의 가족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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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무정 1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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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흰머리'를 쫓아다닌지 7년이다. 흰머리에게 아버지 '웅'이 죽고 동생 '수'가 한 쪽 팔을 잃은 후 '산'은 흰머리와의 운명적인 승부를 위해 살아 왔다. 호랑이의 혼을 지닌 산과 흰머리와의 만남은 운명이다. 누구 하나가 죽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운명. "제 집을 침범한 짐승과는 목숨을 걸고 맞서라"는 아버지의 말이 아니더라도 산은 흰머리를 끝까지 쫓았을 것이다. "가족 중 누군가가 사냥 도중 목숨을 빼앗기더라도 복수하지 마라"던 아버지의 말이 있었지만 산은 아비를 죽이고 수의 오른팔을 뜯은 백호의 청회색 눈동자를 결코 잊을 수 없었다. 
 
흰머리에게 팔을 잃은 수에게도 흰머리와의 승부는 운명이었다. 비록 노름에 빠져들어 해수격멸대 대장 히데오의 충복 노릇을 하게 되었지만 나머지 한 쪽 팔마저 잃은 지금 자신의 삶을 지탱해주는 것은 오로지 흰머리의 심장뿐이다. 꽃을 아끼는 수는 흰머리에게 오른팔을 잃고 목숨을 건진 후 이제 꽃은 잊었다. 산이 개마고원에서의 상처를 잊고 새로운 삶을 살기 힘들 듯, 형제는 이렇게 흰머리에 의해 삶이 송두리째 뽑혀져 나가고 말았다.
 
해수격멸대 대장 히데오는 자신의 손으로 흰머리를 잡고 싶어한다. 놈의 마지막 숨통을 끊는 일은 산이 해야한다고 말하는 쌍해의 말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어쩌면 흰머리와의 승부보다 히데오와 산과의 승부가 먼저일 수도 있겠다. 다친 호랑이의 피 냄새로 흰머리를 유인하는 산, 주홍은 이런 산이 못마땅하다. 야만적이란 것인가. 나는 오히려 흰머리를 생포해서 살려내고 싶은 주홍의 모습이 너무 감상적으로 보이는데, 거친 사내들조차 살아남기 힘든 개마고원으로 온 주홍을 보면서 산과의 로맨스에 설레이기보다는 그녀의 무모함때문에 마음이 불편해진다.
 
'밀림무정'은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곳에서, 흰머리가 산과의 승부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도약하는 그 순간, 모든 것이 끝이 났어야했다. 흰머리가 죽든, 산이 죽든. 하얀 설원 위에서 총소리가 들린 후 붉은 피가 점점이 떨어져 내리고 흰머리가 털썩 쓰러진다면 한 편의 멋진 장면이 탄생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총 한 자루로 호랑에게 맞서 승부를 내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감상일 뿐이다. 
 
산은 주홍을 만난 후 처음으로 흰머리를 죽인 후의 행복한 미래를 꿈꿨다. 가족을 이룰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흰머리와의 승부에 목숨을 걸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산에게 이것은 꿈이다. 절벽에서 흰머리와 함께 떨어져 내릴 때 산은 어쩌면 이 꿈을 다시 꿀 수도 있다 생각하지 않았을까. 살고 싶다는 생각이, 그를 살아내게 했을 것이다. 아버지 '웅'의 총에 새겨진 "밀림무정"이라는 네 글자는 이제 세월에 묻혀 버렸다. 산이 흰머리를 쫓지 않았다면 소중한 사람들을 잃지 않았을터, 그랬다면 그는 지금보다 더 행복했을까. 아니, 흰머리를 쫓는 것만이 살아있는 이유라고 느꼈을 산에게 다른 모든 것들은 모두 부질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에게 행복 따윈 꿈 꿀 수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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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의 축제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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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염소의 축제'는 예전에 읽은 그의 책 '새엄마 찬양'과 그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새엄마와 의붓아들간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는 '새엄마 찬양'은 금지된 사랑을 다루고 있다는 불편감은 있지만 의붓아들 알폰소의 계략이 무엇인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채 가볍게 읽었었다. 그러나 도미니카 공화국을 31년간 지배한 독재자 트루히요에 대해 쓴 글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염소의 축제'는 첫 장을 넘기는 손길부터 다를 수 밖에 없었다.

 

트루히요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주노 디아스의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을 읽었기에 전혀 모르진 않는데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염소의 축제'가 주노 디아스의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과 비슷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이 두 작가의 손에 의해 트루히요의 모습이 실제와 가깝게 서술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염소의 축제'는 우라니아, 트루히요, 그리고 트루히요를 암살하려는 사람들이 등장하여 릴레이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첫 장에는 트루히요의 망령이 끊임없이 우라니아를 위협하고 있음에도 그를 떨쳐내지 못한 채 죽어가는 아버지를 만나러 오면서 시작된다. '염소의 축제'에 등장하는 트루히요의 모습은 여전히 정책에 관여하는 막강한 힘을 지녔으나 바지가 젖지 않았는지 계속 신경쓰는 약해 빠진 모습을 보여줘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이 트루히요를 다루고 있음에도 왜 그의 전성기 때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 않은지 의아했었다. 하지만 우라니아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녀의 기억속에 담겨져 있는 트루히요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의 기억속에 여전히 살아있는 트루히요의 모습이 있는데 굳이 그의 삶을 따라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트루히요가 살해 되었을 때 우라니아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1961년 5월 30일에 그녀는 여전히 도미니카에 무관심했다. 트루히요의 죽음으로 도미니카에 무관심했던 그녀를 산토도밍고에 있는 아버지에게 가겠다는 결심을 하게 했을까. 아버지에게 찾아가는 길 내내 그녀는 고향을 찾아온 편안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떠올라 몸서리치는 듯 했고, 자신의 기억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하는 모습에선 이곳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그날의 고통이 떠오르는 듯 했다. 그녀가 겪었던 끔찍한 기억속에는 트루히요, 그리고 아버지가 있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 그녀가 겪었던 혹독한 시련이 아직도 그녀의 삶을 지배하고, 죽어가는 아버지에게 트루히요를 향한 당신의 행동에 대해 신랄하게 비난을 퍼붓지만 죽어가는 아버지에게서 들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우라니아는 아버지에게서 아무 대답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만나러 온 것일까. 자신을 계속 괴롭혀 온 고통과 한 번은 마주해야 했을 것이다. 그녀의 어린 시절, 트루히요가 지배하던 그 때 도미니카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무것도 몰랐던 그 시절 이후 그녀는 도미니카를 떠난 후 트루히요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아버지에게 "왜 그랬냐?", 고 수없이 많은 질문을 던지지만 이미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는 그녀가 자신의 치부까지 드러내며 들려주는 이야기는 독자인 우리들에게 들려주기 위해서다.  

 

사람들의 자유를 빼앗고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상어의 밥으로 던져 버리는 짓도 서슴치 않고 행했던 독재자 트루히요, 그의 망령이 아직 도미니카를 떠나지 않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 기억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을 것이다. 시간은 모든 것은 희미하게 만들고 다시 살아갈 희망을 준다. 염소의 축제? 축제?? 트루히요의 암살에 대해 다루고 있는 이 책 제목이 뜻하는 바는 이 책을 다 읽었을 때야 알 수 있을 터, 밤이 깊어가도 1961년 5월 30일 총성이 울렸던 그 때를 기다리며 책 읽는 것을 멈추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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