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림무정 1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산'이 '흰머리'를 쫓아다닌지 7년이다. 흰머리에게 아버지 '웅'이 죽고 동생 '수'가 한 쪽 팔을 잃은 후 '산'은 흰머리와의 운명적인 승부를 위해 살아 왔다. 호랑이의 혼을 지닌 산과 흰머리와의 만남은 운명이다. 누구 하나가 죽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운명. "제 집을 침범한 짐승과는 목숨을 걸고 맞서라"는 아버지의 말이 아니더라도 산은 흰머리를 끝까지 쫓았을 것이다. "가족 중 누군가가 사냥 도중 목숨을 빼앗기더라도 복수하지 마라"던 아버지의 말이 있었지만 산은 아비를 죽이고 수의 오른팔을 뜯은 백호의 청회색 눈동자를 결코 잊을 수 없었다. 
 
흰머리에게 팔을 잃은 수에게도 흰머리와의 승부는 운명이었다. 비록 노름에 빠져들어 해수격멸대 대장 히데오의 충복 노릇을 하게 되었지만 나머지 한 쪽 팔마저 잃은 지금 자신의 삶을 지탱해주는 것은 오로지 흰머리의 심장뿐이다. 꽃을 아끼는 수는 흰머리에게 오른팔을 잃고 목숨을 건진 후 이제 꽃은 잊었다. 산이 개마고원에서의 상처를 잊고 새로운 삶을 살기 힘들 듯, 형제는 이렇게 흰머리에 의해 삶이 송두리째 뽑혀져 나가고 말았다.
 
해수격멸대 대장 히데오는 자신의 손으로 흰머리를 잡고 싶어한다. 놈의 마지막 숨통을 끊는 일은 산이 해야한다고 말하는 쌍해의 말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어쩌면 흰머리와의 승부보다 히데오와 산과의 승부가 먼저일 수도 있겠다. 다친 호랑이의 피 냄새로 흰머리를 유인하는 산, 주홍은 이런 산이 못마땅하다. 야만적이란 것인가. 나는 오히려 흰머리를 생포해서 살려내고 싶은 주홍의 모습이 너무 감상적으로 보이는데, 거친 사내들조차 살아남기 힘든 개마고원으로 온 주홍을 보면서 산과의 로맨스에 설레이기보다는 그녀의 무모함때문에 마음이 불편해진다.
 
'밀림무정'은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곳에서, 흰머리가 산과의 승부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도약하는 그 순간, 모든 것이 끝이 났어야했다. 흰머리가 죽든, 산이 죽든. 하얀 설원 위에서 총소리가 들린 후 붉은 피가 점점이 떨어져 내리고 흰머리가 털썩 쓰러진다면 한 편의 멋진 장면이 탄생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총 한 자루로 호랑에게 맞서 승부를 내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감상일 뿐이다. 
 
산은 주홍을 만난 후 처음으로 흰머리를 죽인 후의 행복한 미래를 꿈꿨다. 가족을 이룰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흰머리와의 승부에 목숨을 걸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산에게 이것은 꿈이다. 절벽에서 흰머리와 함께 떨어져 내릴 때 산은 어쩌면 이 꿈을 다시 꿀 수도 있다 생각하지 않았을까. 살고 싶다는 생각이, 그를 살아내게 했을 것이다. 아버지 '웅'의 총에 새겨진 "밀림무정"이라는 네 글자는 이제 세월에 묻혀 버렸다. 산이 흰머리를 쫓지 않았다면 소중한 사람들을 잃지 않았을터, 그랬다면 그는 지금보다 더 행복했을까. 아니, 흰머리를 쫓는 것만이 살아있는 이유라고 느꼈을 산에게 다른 모든 것들은 모두 부질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에게 행복 따윈 꿈 꿀 수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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