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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5
아리카와 히로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일본 소설을 즐겨 읽는 나는 아리카와 히로의 "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 책을 읽기 전 여느 일본 소설들처럼 심각한 주제이긴 하지만 아주 가볍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거라 생각하고 책을 펼쳤었다. 간간이 웃음도 터져 나오는 그런 소설 말이다. 세이지가 구직활동에 전념하지 못하고 알바를 하며 집에서 뒹굴 거릴 때 예전 내가 구직 활동하던 생각도 나서 조금씩 감상에 젖기도 했는데, 그 때의 나와 현재의 나는 다르지 않지만 지금의 세이지는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부셔 감히 마주볼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동기의 유무를 따지기엔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져 여기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을까 한다.
꿈도 없고, 저금도 없고, 희망도 없던 세이지에게 목표가 생긴다. "도요카와 네가 우리 집 아들이었다면 우리 어머니에게도 지금 같은 일은 절대 없었을 거야"라며 자신의 삶이 조금은 실패였으며 늦었다고 생각하지만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세이지의 삶을 바꿔 버렸다. 그런데 "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 속 세상이 아닌 내가 살고 있는 진짜 현실에서였다면 세이지의 삶은 지금의 모습과 많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엄마를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이 세상을 보는 눈을 달라지게 했겠지만 여전히 백수 알바를 전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허구의 세상인 '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에서는 세이지의 인생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물론 세이지에게도 할 말은 있다. 젊은 사람도 힘들어 버텨내지 못하고 나가 버린다는 현장 일을 하면서 집 장만한다는 야무진 꿈을 꿔 돈을 저축하며 성실하게 일궈내며 당당하게 스스로 만들어낸 삶이니까.
집 장만을 하기까지 세이지와 가족들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이루어낸 일을 감히 내가 말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세이지와 그의 가족들에게 애정이 있는 나에게도 한마디쯤 발언권을 준다면 세이지의 등등 툭, 툭 쳐대며 "대단한 녀석"이라는 말을 해 주고 싶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솔직히 고백하자면 "일하다" 소제목 뒤에 어떤 글이 있을까 살짝 먼저 넘겨 봤었다. 이 때는 세이지에 대한 믿음이 조금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집을 산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니까. 어디까지나 세이지 아버지의 도움 없이는 힘든 일이라, 가족들의 곁에 조금씩 다가가는 아버지지지만 가끔씩 감정 표현이 서툴러 버럭 호통 칠 때는 나도 책장을 덮고 싶을 정도로 그 자리를 모면하고 싶게 만들어 엄마가 감옥처럼 지내는 이 집을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내심 초조해지기도 했었다.
이웃들에 의해 철저하게 정신을 파괴당한 세이지 엄마의 삶은 20년간 이곳에서 살면서 한 번이라도 행복했던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황폐해졌다. 가족들에게 관심이 없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사는 아버지에게 병에 걸린 아내는 자신이 가야 하는 곳에 잠시 걸림돌이 되는 존재일 뿐이었다. 세이지에겐 구직활동 할 동안 아버지와의 식사시간을 피할 수 있게 2층에 있는 자신이 방까지 음식을 가져다 주는 존재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의 삶에 엄마가 없으면 안된다는 자각이 자신의 모든 삶의 방향까지 바꿔 버렸다. 그런데 정말 이런 이웃들이 있을까. 세이지에게 강한 동기부여가 되어 준 이 사건들이 정말 한 동네에서 벌어진 일인지, 사실 나는 지금도 믿을 수가 없다.
마지막에 이르러 세이지의 시선이 아닌 도요카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가벼운 일탈을 꿈꾸는 듯 유쾌하다. 세이지에게 일어난 모든 것이 아직은 늦지 않았으니까. 지금 시작되려는 사랑도 결코 늦지 않았으니까. 이렇게 책장을 넘기는 나의 손길도 이제 조금쯤 가벼워도 되지 않을까. 가족을 지키고 내 집을 장만하겠다는 세이지가 이제는 어떤 꿈을 꿀까. 결혼을 하고 가족이 생기면 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또 땀 흘리며 뛰겠지. 누군가에게 눈부시게 빛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나도 누군가에게, 아니 나의 가족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