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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무선) ㅣ 보름달문고 44
김려령 지음, 장경혜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평점 :
아니요. 그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어떡하죠? 만약 건널목 씨가 만든 건널목에서 만난다해도 태석, 태희, 도희를 아느냐고 물어볼 용기도 안날텐데 어떡하죠? 그렇지만 꼭 용기를 내서 많이 기다리더라도 건널목 씨가 가까이 오면 꼭 물어봐 줄게요. "태희...태석, 도희를 아시죠? 너무 보고 싶어하는데 한 번 만나러 가시면 안될까요?" 하고요. 아니면 어디 계시는지라도 꼭 물어볼게요. 그런데 그냥 웃기만 할 것 같아요. 알았다는 대답만 해도 안심하겠는데 아마 그 곳엔 다시 안가실 것 같은데 너무 마음 아파 하지 말아요. 직접 글로 그분의 이야기를 쓸 수 없어도 이렇게 세상에는 건널목 씨의 이야기를 아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언젠간 그 마음 전해질거에요. 아니, 벌써 알고 계실 거에요. 건널목 씨도 잊지 못하고 있을 테니까요.
동화라고 무조건 행복한 결말을 맺지 않는다는 것을 알만한 나이가 되니 오히려 동화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고 집착까지 하게 된다. 아주 아주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해 부모님께서 내가 어린 시절 동화책을 읽으며 자랐다고 해도 동화에 대한 이 목마름의 이유를 이것이다, 라고 설명할 수가 없다. 우선은 어른들도 동화를 읽을 권리가 있다구, 라는 말로 박박 우겨볼 뿐인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다. 그렇지만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를 읽으면 건널목 씨를 통해 옛시절을 회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줄 알았다가 전혀 그와 다른 내용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왠지 억울해진다. 70년대, 80년대를 회상하며 향수에 젖어보는 그런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었다니, 이렇게 슬픈 내용인 줄 알았으면 안읽었을텐데, 역시 한달간 무료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에 혹했다. 당신은 아이가 아니잖아요 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미 모든 것을 알아버렸으니까.
그런데 한달간 무료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기에 들어왔는데 이렇게 가슴 아픈 이야기라면 미리 귀띔이라도 해주지, 건널목 씨가 만든 건널목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면 어떨까, 아라비안 나이트의 세헤라자데가 들려주는 이야기 같다고 생각한 나를 어쩌란 것인지. 부끄러워서 책장을 덮고 도망가 버릴까 하다가 쉬 잊혀지는 내용이 아니라서 이렇게 글을 남긴다. 작가 김려령님의 '완득이'는 숨어서 보지 않고 대낮에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당당하게 읽었었는데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몰래 읽어야 하는 책이었다. 작가 오명랑 씨가 드러내 놓고 읽으라고요 하고 소리쳐도 할 수 없다. 이 책은 혼자서 읽어야 한다. 그래야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을테니까. 건널목 씨는 태희, 태석, 도희가 그리워하는 사람이지만 다른 의미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그리움'의 대상일 수 있다. 건널목 씨를 보며 어린 시절 잠깐 만난 친구를 떠올릴 수도 있고 나를 이끌어 주신 선생님을 떠올릴 수도 있으며 나를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가족을 떠올릴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누구를 떠올렸을까? 그것은 이 이야기를 한 후 다음에 얘기하련다.
그런데 태희가 종원, 나경, 소원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그녀 엄마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아픈 곳을 콕콕 건드리는 느낌. 이 느낌 왠지 싫다. 하루 하루 태희가 들려주는 이야기 마지막에 이르러 내 앞에 드러낼 실체를 알고 싶지 않다. 새언니가 도희인 건 알겠는데 또 뭐가 남은거지? 종원이와 나경이까지 눈치챘는데 나도 이쯤에서 슬그머니 일어나야 할까 갈등된다. 태희가 아이들에게 마음을 열고 들려주는 이야기엔 슬픔이 있고 아픔이 있다. 아팠을 때 아프다라고 말했으면 되었을걸, 참으니 상처가 여전히 아프다. 이것을 모두 뱉어내고 나면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을텐데, 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아픔을 타인에게 말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게다. 오히려 내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진짜 필명은 왜 오명랑인 것인지. 갑자기 떠오른 생각인데 태희는 어린 시절 엄마에게 못한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엄마가 있어 좋다는 말을 그 때 하지 못해서 지금 하는가 보다. 건널목 씨를 떠올리면 엄마도 함께 떠오르는게 가슴 아프다.
건널목 씨가 만든 건널목 카펫은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길과 같다. 지금은 어디서 사람들의 마음에 길을 만들고 있을까. 태희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것이 다가 아닐텐데, 단 한편으로 끝을 맺는 것은 너무 아쉽다. 앗, 돈을 내라굽쇼? 정말 돈을 내고라도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마음을 열어두고 싶다. 그래야 나도 나의 이야기를 들려줄 용기가 생길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아직은 숨겨둬야 할 모양이다. 태희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는 핑계를 대본다. 용기가 없다는 말을 둘러대지 마라구? 하하. 있잖아 그렇지만 건널목 씨 이야기, 태희, 태석, 도희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내 이야기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걸. 나 잠깐 마음 내려놔도 되는 거지? 건널목 씨가 깔아주는 길을 따라가면 어떤 세상이 나올까 궁금하다. 참 따뜻하겠지? 끝까지 가보고 싶네 그곳이 어디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