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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행진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7년 8월
평점 :
미타 소이치로의 꿈이 키리바시 공화국에 가서 사는 것이라고 했을 때 그냥 웃고 말았었는데 어떻게든 노력하면 꿈은 이루어지는구나. 미타가 요코야마 겐지에게 사기를 당할 뻔 했을 때만해도 인생이 참 우울하겠다 싶더니만 왠걸 요코야마와의 만남이 없었다면 미타는 결코 꿈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니 인생이란 참 아이러니하다.
아버지를 향한 복수심으로 10억엔을 훔치겠다는 목표를 세운 치에. 우연히 후루야의 도박장(미타의 이름으로 빌린 아파트)에서 치에를 만나게 된 미타는 그녀의 계획을 들은 후 10억엔을 훔치는 일에 동참하게 된다. 그런데 미타는 왜 그녀와 함께 했을까. 총구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를 보면서 미타를 움직인 원동력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오롯이 미타 자신으로 봐주는 동료들? 아니, 그것보다 그는 키리바시 공화국에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곳에서는 미타? 어디의 미타? 누구의 미타?가 아닌 오롯이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봐 주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미타라는 이름을 들어도 아무것도 떠올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곳, 그는 그런 곳에서 평범하게 살고 싶었을 것이다. 느리게 움직여도, 다른 사람보다 능력이 없어도 상관 없는 곳에서. 요코야마? 그의 이야기는 아직 하지 말자. 치에를 어떻게 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이 계획에 동참하는 모양인데, 그의 마음이 조금 순수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아직은 믿을 수가 없으니까.
치에는 아버지를 미워한다고 했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 아버지가 조폭들에게 죽임을 당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아버지 곁에서 일을 돕는 남동생 다케시에 대한 애정이 깊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가족이라는 울타리다. 날 좀 봐 달라고 소리치고 있지만 아버지 시라토리는 치에에게 관심 따위 없다.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버지를 무너뜨리는 일 뿐이다.
10억엔을 훔치기 위한 치에의 계획은 꽤 거창하고 치밀하다. 그러나 이들의 계획을 뒤집어 엎을 정도로 뛰어난 두뇌를 가진 이도 있다. 바로 치에의 아버지 시라토리다. 그는 치에의 계획을 알아차린 후 돈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한다. 차이나 트레이딩의 왕 씨와 장 씨 그리고 조폭 후루야까지 이 돈을 노리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태연하다. 턱 밑에까지 위협을 느꼈을 땐 그도 조금쯤은 후회를 했을 테지만, 차이나 트레이딩의 중국인들이 돈을 빼앗으려는 순간, 어떻게 해야 이 돈이 모두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는지 떠올릴만큼 대담하고 대단한 사기꾼이다.
돈이 여기쯤있겠지 하고 보면 상자에 돈은 들어있지 않고 쓰레기만 가득 들어차 있다. 이 상자들을 후루야가 두 번이나 가져갔으니 미쳐 날뛰는 것도 당연한 일, 서로 속고 속이며 목숨까지 위협받는 상황에서 10억엔의 현금을 누가 차지하게 될 것인지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가 없다. 누구 하나 죽어나가지 않을까 긴박감이 흐른다. 독자들이 어떤 결말을 원할지는 뻔하다. 10억엔을 치에와 미타, 요코겐이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대감을 뒤로 하고 작가 오쿠다 히데오는 누구나 만족할 최상의 결말을 이끌어낸다. 물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으며, 후루야에게 일어난 불행한 사건을 비밀로 하는 대가라고 생각하면 그리 억울하지도 않을 것이다. 지금쯤이면 후루야가 자신이 쫓은 돈의 행방이 어떻게 된 것인지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요코겐만 불쌍해지겠네. 어쩌면 후루야에 의해 행방불명 될지도 모르는 일, 어서 미타가 있는 키리바시 공화국으로 떠나는 것이 어떤가 요코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