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1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휴머니스트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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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광두가 사랑한대요. 준비됐어요?"

방직공장에 다니는 임홍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이광두가 다섯명의 아이들에게 소리치게 한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이 "이광두가 임홍이랑 성교한대요. 준비됐어요?"로 외치게 될 줄이야. 역시 아이들에겐 이 말이 어려웠나 보다. 방직공장에 가다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잊었으니 말이다. 아마도 이 때가 이광두에겐 송강과 최고로 행복했던때가 아니었을까. 이광두가 복지공장의 공장장이 되고 그 임명장을 손으로 써서 간직할 정도로 송강이 무엇보다 기뻐해줬으니까. 물론 송강의 마음이 임홍을 향하고 있어 그 마음은 무척이나 괴로웠겠지만 어찌되었든 이광두와 자주 나타난 송강을 임홍이 사랑하게 되어 두 사람이 이루어졌으니 나중에야 세상을 다 얻은듯 기뻤을 것이다. 그러나 동생 이광두가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했다는 자괴감은 사라지지 않고 평생 괴롭히게 되니 송강의 처지가 참으로 애처롭다고 해야하나.

 

송강의 아버지 임범평이 이광두의 어머니 이란과 재혼을 하고 이 둘은 형제가 되었다. 송범평이 문화대혁명때 희생되고 나중에 이란마저 세상을 떠났을때 이광두를 부탁한다는 어머니의 말에 "밥 한그릇만 있으면 광두를 먹일게요. 옷 한벌만 있으면 광두에게 입힐게요"라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임홍이라는 여자로 인해 이 둘 관계가 허물어져 버렸으니 형제란 말이 무색할 정도다. "사랑하는 임홍을 뺏아가는 사람은 도륙을 낸다"고 호기롭게 외치던 이광두에게 송강은 "형제여도?"라도 묻는다. "그렇다"고 대답하는 이광두의 말에 마음의 짐을 내던지고 임홍과 결혼하는 송강을 형제이기에 도륙을 내지 않고 내버려둔다. 형제로 송강을 생각하는 이광두의 마음이 느껴져 마음이 짠해진다. 물론 먹고 살기 힘들때 이광두가 송강의 돈을 빼앗아 가는 모습에선 화가 좀 나긴 하지만 말이다. 형제이기에 힘들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크게 화가 날 상황은 아니긴 하다. 밥 못먹고 사는 동생이 있다면 형제라면 누구든 배고프지 않게 도움을 주지 않겠는가.

 

그런 송강의 모습을 보기 싫어하는 임홍으로 인해 "형제가 아니다"라고 선언하게 되는 송강, 이것으로 이광두와의 관계는 정녕 정리가 되었는가. 이광두가 고물을 모아 파는 사업이 커나갈때 일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송강에게 달려가지만 형제의 관계를 자신이 끊어버렸기에 물리쳐버리는 송강을 바라보는 임홍은 그저 "고물상을 하는 사람일 뿐이다"라고 무시해 버린다. 아, 어찌 이런일이. 함께 기뻐해주는 가족을 원했건만 그것마저 임홍은 끊어버리게 하다니 정말 안타깝다. 어린시절 할아버지를 따라 시골로 간 송강이 이광두가 보고싶을때면 달려와 "토끼표 캐러멜"을 놓고 가곤 했던 그 시절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일까.

 

세월이 흘러 이광두와 송강의 처지는 너무도 크게 달라진다. 이광두는 류진에서 초특급 갑부가 되고 송강은 직장에서 쫓겨나 폐에도 병이 들어 변변한 직장하나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곤궁하여 "이광두를 찾아가 보라"는 임홍의 말을 죄책감에 여전히 물리쳐 버리는 송강. 찾아가 보라고 부추기는 임홍이 난 왜이리 싫어질까. 형제가 함께 할 수 있게 해 주었다면 두 사람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텐데. 분명 이광두는 임홍과 결혼한 송강을 용서해줬을테니까. 그것이 형제니까. 거칠게 욕설을 뱉긴 하지만 자신과는 일을 함께 하지 않고 주유와 장사를 하러 떠났다는 말에 화를 내지 않았던가. 이것이 송강에 대한 이광두의 마음인 것이다. 훗날 송강이 죽었을때 "난 고아다"라고 우는 그의 외로운 심정이 이해가 간다.

 

그 옛날 변소에서 임홍의 엉덩이를 훔쳐보고 "새끼엉덩이, 엉덩이 대왕"이라는 별명을 얻고 임홍의 엉덩이 이야기를 팔아 삼선탕면을 수없이 얻어먹는 광두는 이때부터 이미 사업에 대한 소질을 보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첫시작은 끔찍했지만 진정으로 임홍과 이광두가 잘 되었으면 하고 바랬었다. 잘생긴 송강과 결혼하여 아이는 없지만 행복했을 임홍도 이광두의 재력에선 무너져 내리지 않던가. 사람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인공유방을 가슴에 붙여 유방크림을 팔아 임홍에게 큰돈을 쥐게 해 주고 싶었던 송강의 마음은 철저히 버려지게 된다. 인공유방이라니..어쩌다 이 지경까지 갔는지 마음이 아프다.

 

이광두가 류진에서 초특급 갑부가 되면서 그의 사업에 투자했던 여뽑치, 왕케키는 주주가 되어 세계여행을 하며 여생을 편하게 보내게 된다. 썩은이나 뽑던 여뽑치, 아이스케키를 팔던 왕케키가 이렇게 큰 부자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어린시절 송강과 자신을 그렇게나 괴롭히던 조시인과 류작가도 그의 그늘 아래서 먹고 살게 되니 이것으로 그때의 복수는 다 한 것이 아니겠는가. 다만 모든 것을 함께 하고 싶었던 형제가 없어 마음이 쓸쓸하고 슬플뿐이니 우주여행을 갈때 송강의 유품이나마 함께 하고자 하는 이광두의 마음이 와 닿아 송범평, 이란도 오래오래 살아 네식구와 가족사진을 찍었던 그때의 행복을 다시 느끼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나의 쓸쓸한 마음을 밀어내 본다. 이발비가 없어 번쩍번쩍 대머리로 다닌다고 '이광'이라는 이름이 아닌 '이광두'라는 별명으로 불리어진 그가 이렇게 크게 성공했으니 죽은 부모님도 아마 크게 기뻐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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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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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이 많아 무서운 내용을 꺼려하면서도 손을 내밀게 되는 이 호기심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새벽까지 이 책을 읽으면서 등 뒤로 몇 번을 돌아보았는지 모른다.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첫번째 단편 "SEVEN ROOMS"는 전형적인 공포소설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어느날 정신을 차려보니 전혀 생소한 곳에 갇혀있는 것을 알았을때 그 공포심이 얼마나 컸을까. 거기다 내가 살해당해 토막날 것이란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정말 끔찍하다. 나라면 그저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그저 덜덜 떨면서 나를 가둬둔 사람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혈육의 정은 대단하다. 남동생만이라도 살리려고 온몸을 던져 막아서는 누나의 계획으로 열려진 문을 통해 도망가는 남동생은 다른 방에 갇힌 사람들도 구해주게 된다. 이 대목에서 정말 다행이라고 범인이 갇혀 버린 것에 대해 제대로 된 벌을 받는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함께 있는 누나의 웃음소리가 전기톱소리에 잦아들때는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밖으로 빗장이 질러졌으니 납치 당한 사람들이 열지 못한 문 안에서 살인자도 이젠 그 방안에서 굶어 죽어갔을 것이다. 

 

사람만큼 무서운 존재가 없다고들 한다. 이 책을 보면 더 실감하게 되는 것 같다. 끔찍하게 무서운 존재들이 나오는 것이 아닌 그저 평범하게 내 주위에 있을 법한 사람들이 아주 잔인한 짓을 하게 되니 공포감을 더 조성한다. 쌍둥이를 낳았건만 카자리는 아주 귀하게 키우는 반면 요코에겐 먹을 것도 주지 않고 구타를 일삼고 믹서기에 손을 넣어 갈아버린다는 협박을 하고 죽여버리겠다는 말을 서슴치 않고 하는 이가 이 아이들의 엄마란 사람이다. 무슨 이유일까. 이유는 나오지 않았지만 오히려 아무 이유없이 학대하는데는 정말 무섭다. 이런 공포심 때문에 카자리가 요코에게 동정심을 느끼고 잘해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엄마처럼 요코를 괴롭히는 것을 즐기고 있었으니 자신이 지은 죄를 요코에게 뒤집어 씌우려다 요코의 기지로 오히려 자신이 죽임을 당하는 장면에서는 아무런 슬픔도 느낄 수가 없다. 악에 대한 벌이 명확하다는 생각이 들뿐이다. 내 마음속에도 잔인한 면이 있다고? 아마 그럴지도.

 

다시 말하지만 이건 어떤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공포심을 느끼게 하는 책이 아니다. 모두 인간이 저지르는 일 때문에 생기는 일들을 보여준다. 블랙코미디 같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칼에 맞아 죽어가는 아버지를 살릴 생각은 안하고 눈앞에서 죽어주길 바라는 태도를 보이는 아내와 아들들의 모습은 사람의 마음에 대해 적나라하게 보여주지 않는가. 혈액을 찾아야만 수혈을 받고 살수 있는데 혈액이 든 그 가방을 아무도 찾아내지 못하니 그대로 죽어버릴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정말 헛살았지. 죽어가는데 기뻐하는 가족들이라니. 난 평소에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게 되면 주사 맞는게 무서워서 아픔을 느끼지 못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게 한두번이 아닌데 칼에 맞아 죽어가는 이 사람이 뇌를 다쳐 아픔을 느끼지 못해 칼이 꽂혀도 모르는 장면에선 이것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피가 보여야만 자신이 다친줄을 알게 되니 늘 의사를 데리고 다녀야 하고 이렇듯 죽어가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인간의 내면을 이렇듯 잘 표현해 낼 수 있다니 놀랍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고 누가 반대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소름이 끼친다. 혹 내 안에 나도 모르는 무언가가 튀어나와 또 다른 나를 대면하게 되는 일이 생길까 두렵다. 극한의 상황에 가면 사람들이 어떻게 돌변하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 않나. 아마 나도 괴물로 변할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무엇이 무섭냐고 물으면 병원도 아니고 주사도 아닌 사람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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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갱의 일상과 습격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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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엑스트라가 없다. 보기에 따라서는 단역이라 몇번 나오지 않지만 하나의 큰 무대를 만드는데는 한명이라도 빠지면 안되기에 모두 주인공으로 대우해줘야 할 것 같다. 쓰쓰이드러그의 사장 딸 요시코 유괴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나루세, 교노, 유키코, 구온이 뭉쳤다. 뭐 원래 은행강도를 아르바이트로 하던 사람들이라 뭉쳤다는 표현은 맞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은행을 털러 간 곳에서 요시코가 낯선남자에게 흉기로 위협당하는 것을 보았으니 모른척할 수도 없고 들어보니 요시코는 도망가려고 했는데 은행강도들이 움직이지말기를 요청했다지 않은가.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게 만든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나루세의 부하직원 오쿠보의 애인이 요시코라는데 큰 이유가 있다고 생각되지만 은행강도들이 이렇게 정의감에 넘쳐 일을 해결하려는 것을 다른이가 듣는다면 우습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르바이트로 은행을 턴다고 해도 아무도 안믿으니 역시 활동하기가 수월한게지. 간이 큰게야.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이후 이들의 생활이 궁금했는데 차분하게 일상을 잘 보내고 있는 것 같아 안심이 된다. 잡혀갈 것이라 생각한건 아니었다. 나루세가 있는데 뭔 걱정을. 이 책이 속편이긴 하지만 1편의 사건과 비슷한 일에 휘말리면서 잊으려 했던 과거가 다시 떠 올라 유키코가 마음이 불편해지지만 어딜가나 도박을 하고 돈이 궁해서 범죄에 가담하게 되는 인간들은 있기 마련이라 평소 생활하던대로 살아가지만 각자가 연결된 사건에 휘말리면서 결국엔 유괴사건까지 해결하게 되는지라 우연성 짙은 사건에 머리가 복잡해진다. 역시 나루세가 모든 설명을 다 해줘야 이해가 갈 것 같다.

 

시청을 계몽코자 온 몬마씨가 칼을 든 남자에게 위협을 받는 상황에 나루세와 오쿠보가 그 곳을 지나게 된다. 몬마씨를 지켜보는 나루세와 오쿠보. 무서운 상황인데 인간의 호기심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맞은편 아파트에 강도가 들었다고 자신의 안전은 생각하지 않고 몬마씨가 종이에 써서 던져준 글을 보고 나루세가 또 한명의 강도를 잡게 되니 이것이 우연이라면 기가막히다고 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맞은편 아파트에서 강도짓을 하던 놈을 태워가려고 밑에서 원래 대기하고 있어야할 사람이 와다쿠라였는데 이 와다쿠라의 차에 구온이 타고 있었다면 놀랄지도 모른다. '어떻게 이런일이?' 하고 말이다. 어쨌든 이들이 충실하게 일상생활을 보내던 중에 맞게 된 일들이니 우연이라고 하기엔 이들을 몰아가는 일이 심상치 않다.

 

마약을 아주 소량만 갖고 있어도 즉결심판을 받고 여차하면 사형을 당하는 남미의 어느나라로 사실 말많은 쇼노를 보내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술을 많이 먹으면 기억이 끊기는 후지이를 따라 환상의 여인을 찾아나서는 교노. 교노노 나름 열심히 할 일을 하고 있다. 별볼일 없는 일에 기를 쓰고 해결하려고 하는 듯 보이지만 덕분에 남미의 어느 나라로 기누가와를 보냈지 않은가 나루세가 넣은 마약과 함께 말이다. 이렇듯 일상에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될 일을 나루세는 잘 활용하여 사건을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다. 그러니 그 머리를 누가 따라가나. 그래서 여기에 등장하는 이는 하나 버릴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유키코마저 직장 동료 아유코와 관계된 일을 도와주고 유도부로 분장한 배우들에게 도움을 받지 않았는가. 은행강도라고 하지만 정의롭게 살다보니 주위에서 도움을 주는가 보다. 정의? "은행강도에게 정의가 있냐?"고 누가 물을지도 모르겠는데 이 책을 읽어보면 아마 동조를 하게 될 것이다.

 

은행강도 일 외에 다른 일을 처리하느라 어쩌면 '이들의 캐릭터가 전편과 달라진게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이런 모습이 더 인간답게 느껴지니 "참 즐겁게 살아가는구나" 싶다. 나도 끼워주면 안되나. 특별한 능력이 없어 안받아주겠지. 간도 작고 아마 제일 먼저 줄행랑을 칠지 몰라 감히 따라다니지도 못하겠다. 비록 은행강도로 만지는 돈이지만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도 주는 그들이니 홍길동처럼 믿음직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 이번엔 또 어느 은행을 털려나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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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회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수상작
권오단 지음 / 포럼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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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일어나기전에 분명 전조가 있었을 것이다. 탁상공론만 일삼는 조정대신들은 서로 할퀴어대고 죄를 주어 파직시키거나 귀양보낼 궁리만 하니 임금의 시야가 흐려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변방의 야인들이 백성들을 유린하고 있는 상황에도 누가 방어하지 않고 도망을 갔느니, 북병사의 자리에 율곡이 임제를 추천하고자 할 때에도 평양감사로 부임한 임제가 황진이의 무덤 앞에서 단가를 지었다고 여색을 탐하는 소인배라고 하여 조정 신료들은 물론 임금조차 허락하지 않는 상황만 보아도 이미 조선의 힘이 약해져 변방에서 '이탕개의 난'이 일어날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황진이의 무덤앞에서 단가를 지은 것이 무슨 큰 죄라고 말한마디 하기 무서워서 어찌 공직에 머물수 있을까. 모를 일이다.  

 

주변 정세로 미루어 율곡은 변란이 있을것이라 예감하고 홀로 준비를 한다. 씨름대회를 통해 힘깨나 쓰는 장정들을 뽑는 일에도 신경을 쓰는 것은 변란을 대비함이라 생각되지만 씨름대회를 너무 부각시키는 느낌이 든다. 씨름대회가 눈으로 보이지 않으나 무슨 무슨 기술을 써서 이겼다고 해도 별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 백정이어도 출신을 따지지 않고 중히 쓰려는 율곡의 배려로 백손과 바우가 '이탕개의 난'이 일어났을 때 큰 활약을 하지만 역시 신분의 벽은 넘을 수 없는지 어이없게도 백정이라는 이유로 백손이 옥이 갇히고 바우도 함께  갇히게 된다. 조선은 이 신분제로 나라가 약해지고 있다는 율곡의 걱정이 변란이라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역시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북병사의 자리에 자신의 목숨만 챙기는 김우서가 가게 된 것이 안타깝다. 저 살자고 부하들을 미리 전쟁터에 보낸 사람이지 않은가. 백손이 백정이라고 옥에 가두기도 한 사람이니 부하들이 '쥐새끼'라고 불러도 찍소리 못하는데는 속이 다 후련해진다. 야차장군 백손, 추풍검 바우라고 불리어지며 군사들의 사기를 높여주고 있는 백손과 바우가 백의종군 하라는 명을 받고 감옥에서 풀려나 사라졌을때 이틈을 노려 공격하는 야인들에게 여지없이 무너지는 군사들. 신분이 높지 않은 백손과 바우가 활약하여 조선을 구하는것은 당쟁이나 일삼는 조정 신료들에게 보내는 신랄한 비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율곡이 이들을 살펴 조선을 위해 쓴 인재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긴한데 정작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요지를 알수가 없다. 율곡은 어디 가고 그 주변의 이야기만 하는 듯 하니 말이다.

 

임진왜란 전의 '이탕개의 난'을 알리고자 하는 뜻은 알겠는데 이 '이탕개의 난'마저 제대로 알수 있게 전달을 해 놓지 못한 것 같다. 머리, 꼬리 다 자르고 다짜고짜 그저 몸통을 쑥 들이밀었다는 느낌이 드는 책이다. 율곡이 고뇌하던 바를 더 자세히 표현했다면 좋았을텐데 무엇을 이야기 하고자 했는지 알 수가 없어 아쉽다. 사실 난 '이탱개의 난'을 이 책을 통해 처음 들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많은이들이 등장하나 서로의 목소리를 내느라 뭔가 중요한 것이 빠져나간 듯 생각되어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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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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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속에서의 단어들이 어떻게 이렇게 살아있는 듯 그려질 수 있을가. 김애란님의 책을 보면서 맛깔스럽게 표현한 단어들을 음미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내가 지루해하는 이 일상이 타인들도 똑같이 보내는 일상이며 그 곳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에 뭐하세요?"라고 누가 물으면 대답할 말이 없어 얼버무리게 되곤 했는데 다들 고만고만하게 고단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니 안심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기억의 한자락이 문득 떠오르게 되는데는 비슷한 사건을 통해 수면위에 떠오르게 된다. 엄마가 도서관에서 버리고 떠난 날 껌 한통을 주면서 기다리라고 했을때 그 껌들을 다 씹게 될까 두려워하며 단물나는 껌을 씹었을 한 여자아이의 상황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 참혹했던 경험은 살아가면서 떠나고, 떠나가며 가슴이 뻐근하게 메었던, 참혹한 시간들을 떠올려볼 때 그때 씹었던 껌이 입안에 있는 듯 그때처럼 입안에 침이 고이는 것이다. 기억이란 그런 것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버림 받은 기억은 없지만 생각하면 가슴 뻐근해지는 기억의 한자락이라면 시댁에 갈때 단팥빵을 좋아하시는 시아버님을 위해 빵을 고를라치면 당뇨병이 있으셔서 음식을 가려 드셔야 하는 '어머니에게 갈때 뭘 사드리면 좋을까' 고민하는 내가 떠오른다. 무엇이든 안드시고 싶으실까. "이것도 못드시고 저것도..." 하며 어느새 나는 늘 단맛 하나 나지 않는 저번에도 사갔던 똑같던 과자를 들고 있는 것이다. 늘 죄송스럽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이런 것이다.

 

이 책의 대부분의 무대는 서울인것 같다. 노량진의 학원의 모습이나 고시원의 상황들이 가끔 등장한다. 20대 때는 그래 대학입학에 매달리고 졸업후 취업 문제에 정신이 빠져있던 그런 때였다. 독립해서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며 곤궁한 삶을 끌어가야 했던 그 시절의 청춘은 그렇게 사그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자식 자랑을 생의 목적으로 살고 계시는 부모님에겐 정착하지 못하고 불안하게 사는 자식들의 모습이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 나도 어린시절 학교를 졸업하고부터는 부모님에게 어깨가 우쭐거리게 만드는 자식이었던 적이 한번도 없는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든다. 스무 살때는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나를 상상할 수가 없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그 은혜에 고마워하면서도 어쩜 당연하다는 듯이 여전히 부모님의 희생을 받아들이고 있다.

 

스무 살이었기 때문에 부끄럽지 않게 할 수 있는 일도 있고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사랑'에 올인하던 시기였기에 그 시절이 그립다. 세탁소 옷걸이를 머리에 쓰고 옷걸이 고리를 물음표 삼아 외계에서 내려주는 메시지를 내려 받기 위해 옥탑 마당에 모여있는 대학생들이 떠오르면 슬며시 웃음이 난다. 상상 해 보면 옷걸이를 쓰고 양팔을 벌리고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떠오르지 않는가. 지금 나보고 하라면 못할 듯 한데 그때는 그럴 수가 있었나 보다. 책장을 하나씩 넘길수록 많은 기억들이 떠오른다. 나의 어린시절도 있고 현재의 나도 있고 학교 다닐 때의 내 모습도 떠오른다. 그 때 어떤 문제로 힘들어 했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자신감이 없었던 시절이기도 했다. 지금이라고 무엇이든 명확한 것이 있겠냐만은 삐삐가 유행하던 내 스무살 시절 그때가 그립다. 공중전화를 쓰기 위해 기다리던 긴 줄에서 지루해하며 기다리던 기억도 나고 학교 앞 식당에서 먹던 김치국밥이 생각나지만 어디에서든 그때 그 맛을 느낄 수 없으리라. 나도 나이를 먹어가는지 생활이 더욱 편리해 질수록 그 시절이 가끔 생각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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