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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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속에서의 단어들이 어떻게 이렇게 살아있는 듯 그려질 수 있을가. 김애란님의 책을 보면서 맛깔스럽게 표현한 단어들을 음미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내가 지루해하는 이 일상이 타인들도 똑같이 보내는 일상이며 그 곳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에 뭐하세요?"라고 누가 물으면 대답할 말이 없어 얼버무리게 되곤 했는데 다들 고만고만하게 고단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니 안심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기억의 한자락이 문득 떠오르게 되는데는 비슷한 사건을 통해 수면위에 떠오르게 된다. 엄마가 도서관에서 버리고 떠난 날 껌 한통을 주면서 기다리라고 했을때 그 껌들을 다 씹게 될까 두려워하며 단물나는 껌을 씹었을 한 여자아이의 상황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 참혹했던 경험은 살아가면서 떠나고, 떠나가며 가슴이 뻐근하게 메었던, 참혹한 시간들을 떠올려볼 때 그때 씹었던 껌이 입안에 있는 듯 그때처럼 입안에 침이 고이는 것이다. 기억이란 그런 것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버림 받은 기억은 없지만 생각하면 가슴 뻐근해지는 기억의 한자락이라면 시댁에 갈때 단팥빵을 좋아하시는 시아버님을 위해 빵을 고를라치면 당뇨병이 있으셔서 음식을 가려 드셔야 하는 '어머니에게 갈때 뭘 사드리면 좋을까' 고민하는 내가 떠오른다. 무엇이든 안드시고 싶으실까. "이것도 못드시고 저것도..." 하며 어느새 나는 늘 단맛 하나 나지 않는 저번에도 사갔던 똑같던 과자를 들고 있는 것이다. 늘 죄송스럽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이런 것이다.

 

이 책의 대부분의 무대는 서울인것 같다. 노량진의 학원의 모습이나 고시원의 상황들이 가끔 등장한다. 20대 때는 그래 대학입학에 매달리고 졸업후 취업 문제에 정신이 빠져있던 그런 때였다. 독립해서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며 곤궁한 삶을 끌어가야 했던 그 시절의 청춘은 그렇게 사그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자식 자랑을 생의 목적으로 살고 계시는 부모님에겐 정착하지 못하고 불안하게 사는 자식들의 모습이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 나도 어린시절 학교를 졸업하고부터는 부모님에게 어깨가 우쭐거리게 만드는 자식이었던 적이 한번도 없는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든다. 스무 살때는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나를 상상할 수가 없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그 은혜에 고마워하면서도 어쩜 당연하다는 듯이 여전히 부모님의 희생을 받아들이고 있다.

 

스무 살이었기 때문에 부끄럽지 않게 할 수 있는 일도 있고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사랑'에 올인하던 시기였기에 그 시절이 그립다. 세탁소 옷걸이를 머리에 쓰고 옷걸이 고리를 물음표 삼아 외계에서 내려주는 메시지를 내려 받기 위해 옥탑 마당에 모여있는 대학생들이 떠오르면 슬며시 웃음이 난다. 상상 해 보면 옷걸이를 쓰고 양팔을 벌리고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떠오르지 않는가. 지금 나보고 하라면 못할 듯 한데 그때는 그럴 수가 있었나 보다. 책장을 하나씩 넘길수록 많은 기억들이 떠오른다. 나의 어린시절도 있고 현재의 나도 있고 학교 다닐 때의 내 모습도 떠오른다. 그 때 어떤 문제로 힘들어 했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자신감이 없었던 시절이기도 했다. 지금이라고 무엇이든 명확한 것이 있겠냐만은 삐삐가 유행하던 내 스무살 시절 그때가 그립다. 공중전화를 쓰기 위해 기다리던 긴 줄에서 지루해하며 기다리던 기억도 나고 학교 앞 식당에서 먹던 김치국밥이 생각나지만 어디에서든 그때 그 맛을 느낄 수 없으리라. 나도 나이를 먹어가는지 생활이 더욱 편리해 질수록 그 시절이 가끔 생각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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