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1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휴머니스트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광두가 사랑한대요. 준비됐어요?"

방직공장에 다니는 임홍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이광두가 다섯명의 아이들에게 소리치게 한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이 "이광두가 임홍이랑 성교한대요. 준비됐어요?"로 외치게 될 줄이야. 역시 아이들에겐 이 말이 어려웠나 보다. 방직공장에 가다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잊었으니 말이다. 아마도 이 때가 이광두에겐 송강과 최고로 행복했던때가 아니었을까. 이광두가 복지공장의 공장장이 되고 그 임명장을 손으로 써서 간직할 정도로 송강이 무엇보다 기뻐해줬으니까. 물론 송강의 마음이 임홍을 향하고 있어 그 마음은 무척이나 괴로웠겠지만 어찌되었든 이광두와 자주 나타난 송강을 임홍이 사랑하게 되어 두 사람이 이루어졌으니 나중에야 세상을 다 얻은듯 기뻤을 것이다. 그러나 동생 이광두가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했다는 자괴감은 사라지지 않고 평생 괴롭히게 되니 송강의 처지가 참으로 애처롭다고 해야하나.

 

송강의 아버지 임범평이 이광두의 어머니 이란과 재혼을 하고 이 둘은 형제가 되었다. 송범평이 문화대혁명때 희생되고 나중에 이란마저 세상을 떠났을때 이광두를 부탁한다는 어머니의 말에 "밥 한그릇만 있으면 광두를 먹일게요. 옷 한벌만 있으면 광두에게 입힐게요"라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임홍이라는 여자로 인해 이 둘 관계가 허물어져 버렸으니 형제란 말이 무색할 정도다. "사랑하는 임홍을 뺏아가는 사람은 도륙을 낸다"고 호기롭게 외치던 이광두에게 송강은 "형제여도?"라도 묻는다. "그렇다"고 대답하는 이광두의 말에 마음의 짐을 내던지고 임홍과 결혼하는 송강을 형제이기에 도륙을 내지 않고 내버려둔다. 형제로 송강을 생각하는 이광두의 마음이 느껴져 마음이 짠해진다. 물론 먹고 살기 힘들때 이광두가 송강의 돈을 빼앗아 가는 모습에선 화가 좀 나긴 하지만 말이다. 형제이기에 힘들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크게 화가 날 상황은 아니긴 하다. 밥 못먹고 사는 동생이 있다면 형제라면 누구든 배고프지 않게 도움을 주지 않겠는가.

 

그런 송강의 모습을 보기 싫어하는 임홍으로 인해 "형제가 아니다"라고 선언하게 되는 송강, 이것으로 이광두와의 관계는 정녕 정리가 되었는가. 이광두가 고물을 모아 파는 사업이 커나갈때 일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송강에게 달려가지만 형제의 관계를 자신이 끊어버렸기에 물리쳐버리는 송강을 바라보는 임홍은 그저 "고물상을 하는 사람일 뿐이다"라고 무시해 버린다. 아, 어찌 이런일이. 함께 기뻐해주는 가족을 원했건만 그것마저 임홍은 끊어버리게 하다니 정말 안타깝다. 어린시절 할아버지를 따라 시골로 간 송강이 이광두가 보고싶을때면 달려와 "토끼표 캐러멜"을 놓고 가곤 했던 그 시절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일까.

 

세월이 흘러 이광두와 송강의 처지는 너무도 크게 달라진다. 이광두는 류진에서 초특급 갑부가 되고 송강은 직장에서 쫓겨나 폐에도 병이 들어 변변한 직장하나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곤궁하여 "이광두를 찾아가 보라"는 임홍의 말을 죄책감에 여전히 물리쳐 버리는 송강. 찾아가 보라고 부추기는 임홍이 난 왜이리 싫어질까. 형제가 함께 할 수 있게 해 주었다면 두 사람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텐데. 분명 이광두는 임홍과 결혼한 송강을 용서해줬을테니까. 그것이 형제니까. 거칠게 욕설을 뱉긴 하지만 자신과는 일을 함께 하지 않고 주유와 장사를 하러 떠났다는 말에 화를 내지 않았던가. 이것이 송강에 대한 이광두의 마음인 것이다. 훗날 송강이 죽었을때 "난 고아다"라고 우는 그의 외로운 심정이 이해가 간다.

 

그 옛날 변소에서 임홍의 엉덩이를 훔쳐보고 "새끼엉덩이, 엉덩이 대왕"이라는 별명을 얻고 임홍의 엉덩이 이야기를 팔아 삼선탕면을 수없이 얻어먹는 광두는 이때부터 이미 사업에 대한 소질을 보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첫시작은 끔찍했지만 진정으로 임홍과 이광두가 잘 되었으면 하고 바랬었다. 잘생긴 송강과 결혼하여 아이는 없지만 행복했을 임홍도 이광두의 재력에선 무너져 내리지 않던가. 사람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인공유방을 가슴에 붙여 유방크림을 팔아 임홍에게 큰돈을 쥐게 해 주고 싶었던 송강의 마음은 철저히 버려지게 된다. 인공유방이라니..어쩌다 이 지경까지 갔는지 마음이 아프다.

 

이광두가 류진에서 초특급 갑부가 되면서 그의 사업에 투자했던 여뽑치, 왕케키는 주주가 되어 세계여행을 하며 여생을 편하게 보내게 된다. 썩은이나 뽑던 여뽑치, 아이스케키를 팔던 왕케키가 이렇게 큰 부자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어린시절 송강과 자신을 그렇게나 괴롭히던 조시인과 류작가도 그의 그늘 아래서 먹고 살게 되니 이것으로 그때의 복수는 다 한 것이 아니겠는가. 다만 모든 것을 함께 하고 싶었던 형제가 없어 마음이 쓸쓸하고 슬플뿐이니 우주여행을 갈때 송강의 유품이나마 함께 하고자 하는 이광두의 마음이 와 닿아 송범평, 이란도 오래오래 살아 네식구와 가족사진을 찍었던 그때의 행복을 다시 느끼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나의 쓸쓸한 마음을 밀어내 본다. 이발비가 없어 번쩍번쩍 대머리로 다닌다고 '이광'이라는 이름이 아닌 '이광두'라는 별명으로 불리어진 그가 이렇게 크게 성공했으니 죽은 부모님도 아마 크게 기뻐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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