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겁이 많아 무서운 내용을 꺼려하면서도 손을 내밀게 되는 이 호기심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새벽까지 이 책을 읽으면서 등 뒤로 몇 번을 돌아보았는지 모른다.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첫번째 단편 "SEVEN ROOMS"는 전형적인 공포소설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어느날 정신을 차려보니 전혀 생소한 곳에 갇혀있는 것을 알았을때 그 공포심이 얼마나 컸을까. 거기다 내가 살해당해 토막날 것이란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정말 끔찍하다. 나라면 그저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그저 덜덜 떨면서 나를 가둬둔 사람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혈육의 정은 대단하다. 남동생만이라도 살리려고 온몸을 던져 막아서는 누나의 계획으로 열려진 문을 통해 도망가는 남동생은 다른 방에 갇힌 사람들도 구해주게 된다. 이 대목에서 정말 다행이라고 범인이 갇혀 버린 것에 대해 제대로 된 벌을 받는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함께 있는 누나의 웃음소리가 전기톱소리에 잦아들때는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밖으로 빗장이 질러졌으니 납치 당한 사람들이 열지 못한 문 안에서 살인자도 이젠 그 방안에서 굶어 죽어갔을 것이다. 

 

사람만큼 무서운 존재가 없다고들 한다. 이 책을 보면 더 실감하게 되는 것 같다. 끔찍하게 무서운 존재들이 나오는 것이 아닌 그저 평범하게 내 주위에 있을 법한 사람들이 아주 잔인한 짓을 하게 되니 공포감을 더 조성한다. 쌍둥이를 낳았건만 카자리는 아주 귀하게 키우는 반면 요코에겐 먹을 것도 주지 않고 구타를 일삼고 믹서기에 손을 넣어 갈아버린다는 협박을 하고 죽여버리겠다는 말을 서슴치 않고 하는 이가 이 아이들의 엄마란 사람이다. 무슨 이유일까. 이유는 나오지 않았지만 오히려 아무 이유없이 학대하는데는 정말 무섭다. 이런 공포심 때문에 카자리가 요코에게 동정심을 느끼고 잘해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엄마처럼 요코를 괴롭히는 것을 즐기고 있었으니 자신이 지은 죄를 요코에게 뒤집어 씌우려다 요코의 기지로 오히려 자신이 죽임을 당하는 장면에서는 아무런 슬픔도 느낄 수가 없다. 악에 대한 벌이 명확하다는 생각이 들뿐이다. 내 마음속에도 잔인한 면이 있다고? 아마 그럴지도.

 

다시 말하지만 이건 어떤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공포심을 느끼게 하는 책이 아니다. 모두 인간이 저지르는 일 때문에 생기는 일들을 보여준다. 블랙코미디 같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칼에 맞아 죽어가는 아버지를 살릴 생각은 안하고 눈앞에서 죽어주길 바라는 태도를 보이는 아내와 아들들의 모습은 사람의 마음에 대해 적나라하게 보여주지 않는가. 혈액을 찾아야만 수혈을 받고 살수 있는데 혈액이 든 그 가방을 아무도 찾아내지 못하니 그대로 죽어버릴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정말 헛살았지. 죽어가는데 기뻐하는 가족들이라니. 난 평소에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게 되면 주사 맞는게 무서워서 아픔을 느끼지 못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게 한두번이 아닌데 칼에 맞아 죽어가는 이 사람이 뇌를 다쳐 아픔을 느끼지 못해 칼이 꽂혀도 모르는 장면에선 이것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피가 보여야만 자신이 다친줄을 알게 되니 늘 의사를 데리고 다녀야 하고 이렇듯 죽어가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인간의 내면을 이렇듯 잘 표현해 낼 수 있다니 놀랍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고 누가 반대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소름이 끼친다. 혹 내 안에 나도 모르는 무언가가 튀어나와 또 다른 나를 대면하게 되는 일이 생길까 두렵다. 극한의 상황에 가면 사람들이 어떻게 돌변하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 않나. 아마 나도 괴물로 변할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무엇이 무섭냐고 물으면 병원도 아니고 주사도 아닌 사람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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