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시커 1 - 별을 쫓는 아이
팀 보울러 지음, 김은경 옮김 / 놀(다산북스)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책에 빠져들어 주위의 소음조차 귓가에 들리지 않았던 책을 만났던 때가 언제였던가. 그렇다. 난 이 책에 빨려들어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책장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루크가 지구가 생성해내는 모든 소리를 들었다면 나는 그 소음마저 지워진 아주 조용한 세상에 남겨져 있었던 것이다.

 

요즘 귀에 문제가 있는지 음악을 들을 때면 드럼을 치듯 둥둥거리는 느낌때문에 정말 불편하고 기분이 안좋을때가 많다. 이런 작은 소음과 불쾌한 느낌때문에 짜증을 부리는 나와 다르게 루크는 멀리서 들려오는 울음소리, 파도소리, 머릿속에서 울려오는 피아노소리, 하프소리를 아주 소중하게 생각한다. 하루 중 조용한 시간도 있지만 끊임없이 들려오는 이 소리들이 왜 고통스럽지 않았을까. 두렵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이야기 했을 때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할까 보아 말하지 못하고 얼마나 걱정을 했을지 짐작이 간다.

 

모든 소리들이 빛깔을 가지고 있어 그 영상을 그려 볼 수 있는 루크, 신비로운 느낌에 휩싸여 있을 것 같은 그의 삶도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슬픔에 잠겨 모든 것을 잃어버린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스킨, 다즈, 스피드의 무리들과 지내는 일도 없었겠지. 반항적인 시기의 사춘기라고 하기엔 그의 슬픔이 그대로 전해져 오기에 마음이 아파온다. 아이라고 하기엔 스킨은 너무 악랄하다. 리틀 부인의 집에서 본 상자를 갖고 싶어 루크를 집 안에 들여보내는 스킨, 그러나 루크가 그 집안에서 만난건 어린 한 소녀와 흐느끼는 울음소리였다. 멀리 있어도 계속 들려오는 한 여자아이의 울음소리, 타인에게 말할 순 없지만 계속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다.

 

집 안에 도둑처럼 들어온 루크에게 제안을 하는 리틀 부인, "나탈리에게 피아노를 들려달라"고 말한다. 난 솔직히 리틀 부인이 루크에게 나탈리를 도와달라고 했을 때 그가 가진 재능, 모든 소리를 듣는 루크의 재능을 이용하게 될 줄 알았다. 뭐 다른 형태로 나탈리에게 도움이 되긴 하지만 단지 "피아노를 들려달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며 너무 단순한 부탁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천재적인, 피아노를 너무나 잘 치는 루크에겐 식은죽 먹기였을테니까. 아버지가 오래 전 루크에게 들려주었던 곡을 흥얼거리는 나탈리, 이 곡에 유독 집착하여, 곡을 듣고 나서는 편안한 표정을 보이는 나탈리의 마음속엔 이 곡에 대한 기억이 어떻게 자리잡고 있을까.

 

언제나 아버지가 곁에 있는 것을 느끼는 루크, 비록 보이진 않지만 함께 한다는 느낌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스킨이 원하던 그 상자를 발견한 것은 아마 루크에겐 필연적으로 해야만 했던 운명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발리 메이 로버츠"라고 쓰여진 금속팔찌, 어디선가 본 듯 낯이 익은 이 이름과 함께 쓰여진 전화번호를 보고 왜 이 금속팔찌를 가지고 오고 싶었는지, 그리고 컴퓨터에 "발리 메이 로버츠"라고 입력하고 싶어졌는지 그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음악으로 인해 나탈리, 아니 발리와도 인연의 고리가 엮여져 있음을 느끼는 루크, 발리를 부모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자신의 일임을 알아간다. 아마 내가 루크였다면 리틀 부인을 신고하고 세상에 이 일을 알렸을 것 같다. 그저 눈 앞에 보이는 문제만을 직시하고 해결하려 했으리라. 그렇게 했다면 리틀 부인은 물론 발리와 발리의 부모님들도 큰 상처를 받았겠지. 역시 루크는 나와 다르게 현명하게 처신한다. 발리와 함께 있을 때 스킨과 다즈, 스키드가 나타났다면 어쩔뻔 했는지 생각만 하면 등골이 서늘해지긴 하지만 어쨌든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게 잘 해결되어 다행이다.

 

리틀 부인의 상자를 갖고 싶어하던 욕망이 이젠 루크의 손을 망가뜨리고 아주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들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된 스킨, 정말 보는 내가 다 섬뜩해진다. 손을 화상입히려고 하고 그것이 잘 되지 않자 루크가 좋아하는 나무 오크와 함께 불에 태워 죽이려고 하다니 정말 이것이 아이가 할 수 있는 행동일까, 화가나서 견딜 수가 없다. 나무 오크는 그에겐 가족과 같은 존재이거늘, 스킨의 손아귀에 처참히 죽음을 당하게 된다면 루크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스타시커"의 이야기는 행복한 결말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사실 리틀 부인이 발리를 데려온 동기가 약해서 현실감이 조금 떨어지지만 이젠 그녀도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니 동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된다. 루크도 이제 가족의 품 안에서 편안해지고 스킨과 다즈는 더 이상 악행을 저지르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읽는내내 하얗게 빛나는 별의 느낌을 전해주었던 '스타시커', 오늘은 주위의 소음조차 사랑스럽게 느껴질 것 같다. 루크가 들려주는 피아노 소리를 듣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어떤 음악일지 짐작은 간다. 이 글을 읽는동안 내 마음속에도 무언가가 잔잔하게 흘러들어왔으니까. 별을 쫓는 아이, 루크는 지금도 사람들에게 행복을 선사하고 있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도로시 밴드 Dorothy Band 1
홍작가 글 그림 / 미들하우스 / 200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까리까리 아주까리 말죽거리 보도블럭 껌딱지같은 기분이지!"

도로시 밴드의 보컬인 도로시가 부르는 노래의 가사다. 도로시가 "버스 손잡이에 누가 껌딱지 붙여놨냐!"고 목청껏 소리지르는 것을 보면서 어느 새 나도 "까리까리...."를 따라부르고 있었다. 때론 살아가면서 특별함을 선물받을 때가 있는데 도로시와 남자친구 토토에겐 이곳에서 겪은 모든 일들이 스스로가 진실에 다가가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었고 살아가는데 있어 힘이 불끈 솟게 만드는 큰 선물이었다고 생각된다.

 

음치 대마왕, 노래를 못 불러 비틀려진 자아로 인해 음악을 금지시키는 녀석이다. 원작인 "오즈의 마법사"에서의 도로시가 이상한 나라로 오면서 마녀를 죽였다면 "도로시밴드"의 도로시는 이 음치 대마왕을 죽인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새 삶을 준 영웅이 된 도로시. 지금 그녀는 허수아비, 사자, 강철나무꾼을 만나 록 밴드를 결성하고 이 세계에 음악을 뿌려대고 있다. 그들의 음악은 막혔던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고 내 마음을 열광시킨다. "쿵쿵, 쾅쾅" 대체 무슨 음악인지 모르지만 "음음, 야야......." 어느새 흥얼거리게 되어 나도 이젠 그들과 한패가 되어 음치 대마왕을 무찌르는 전사가 되어 있었다. "무엇으로? 그냥 응원하는거지. 무슨 재주가 있나. 전단지라도 붙여주고 싶지만 그 곳으로 갈 수 없으니 그저 구경만 할 밖에. 아, 슬프다"

 

허수아비에게 생명을 준 사람, 약한 아이를 괴롭혀 강철머리를 쓰게 된 강철나무꾼, 그리고 사자. 이들은 모두 인연이든, 악연이든 엮여 있었다. 원인과 결과를 따지기 전에 서로가 상처를 주지만 마지막엔 화해하는 것을 보면서 음악은, 모든 이들의 마음까지 녹여내는 힘을 가졌다는 것을 알아간다. 허수아비는 뇌가 없어 애드리브의 달인이 되었지만 꼭 머리에 남기는 것이 아닌 가슴 어딘가에 남겨지는 것을 위하여 음악을 하고,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지만 키스도 못하는 강철나무꾼은 한순간 서러워지지만 점점 가슴이 뜨거워지며 용서하는 마음도 갖게 된다. 사자? 무술의 달인인 그는 엄청 소심하다. 가면을 써야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그도 유감없이 열정을 발휘하니 이 "도로시 밴드"는 그 누구도 깨버릴 수 없는 강력한 밴드다.

 

만화책이라고 우습게 보지 말자. 제대로 내 감정을 울린다. 웃으며 읽다 보니 어느 새 마지막 장을 이르게 되어 무지 아쉽지만 이들과 함께 한 시간은 유쾌하고 즐거웠다. 나도 도로시 밴드가 해체되지 않았으면 하는 이기적인 생각으로 도로시와 토토가 영원히 이 곳에 남길 바랬지만 세상이 어디 그렇게 호락호락한가. 마음속 키가 커지고 세상을 알아갈 때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는 도로시, 모든 것은 꿈이었을까. 아, 꿈이라면 너무 안타깝다. 음치 대마왕이 환생한 이야기는 너무 웃겨서 꿈이라고 하면 속상할 것 같다. 악당조차도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이 곳에서 "도로시 밴드"는 희망을 선물하고 열정을 남겼다. 만화책에서 모두 생동감있게 살아있는 존재들로 만나는 기쁨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큰 행복이다. 흑백의 모습들을 하고 있지만 이미 이들은 내 마음속에서 화려하게 색이 입혀져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으니 우울할땐 "까리까리......."를 부르게 될 것 같다. 그러면 삶이 조금은 유쾌해질테니까. 더불어 강철나무꾼의 숨겨진 얼굴이 궁금하지 않은가? 강철나무꾼을 보기 위해서 이 책을 펼칠 이유는 충분하다. 자, 모두 준비되었는가? 1, 2! 1, 2, 3, 4! "까리까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엄마의 집
전경린 지음 / 열림원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힘들면 그냥 "힘들다"라고 이야기 하면 안되나? 감정을 한마디의 말로 딱 잘라 표현한다는 것은 말이 안될지도 모르지만 이 책 "엄마의 집"을 읽고 있으니 호은과 호은의 엄마(호은은 엄마를 '미스 엔' 이라고 부른다)의 감정의 무게때문에 내 어깨까지 아파온다. 공지영님의 "즐거운 나의 집"을 읽고 나서 이 책을 본 탓일까, 비슷한 시대로 설정한 때문인지 "즐거운 나의 집"의 연장선에서 책을 읽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조금은 식상하고 "즐거운 나의 집"과 다르게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에 적응이 안되는 것 같다.

 

'엄마의 집'이라는 말은 단어 자체에서도 외로움이 묻어나는 것 같다. 우리 집, 나의 집이 아닌 '엄마의 집'은 엄마 홀로 그 집에 있는 인상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전남편의 아이인 승지, 승지와 함께 온 아빠는 호언에게 승지를 맡기고 떠나 버린다. 이혼한 전부인에게 재혼한 여자의 딸을 맡기는 아빠의 행동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이 책을 읽는 나도 어이가 없고 황당하기만 하다. 괜시리 승지를 맡으면 안된다고 주먹을 불끈 쥐게 된다. 너무도 현실적인 생각때문이리라. 호은은 승지가 아빠의 피가 섞인 딸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엄마와 살고 있을때부터, 오래전부터 알아 온 승지의 엄마이기에 그렇게 생각해 기어코 호은은 아빠에게 승지에 대해 물어본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엄마가 승지를 맡은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 전남편의 아이를 맡으면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은 전남편과 합치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될 터인데 외할머니가 승지를 맡는다고 해도 굳이 자신이 돌보는 이유가 나는 승지와 호은이 같은 피를 나누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생선의 눈도 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가족을 위해 현실과 타협하지 못하는 옛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편을 떠난 것에 대한 미안함일까. 마음을 닫고 감정을 숨기는 미스 엔에게 이유를 듣지 못하니 그저 짐작만 할 밖에.

 

"승지와 호은의 눈빛이 닮았다"고 미스 엔은 말한다. 상처받은 사람들의 눈빛에서 성숙함이 묻어나는가 보다. 이제는 언니, 동생으로 자매가 되어 잘 지내는 승지와 호은, 엄마도 만나는 아저씨와 냉전을 끝내고 잘 지내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며 산다면 삶의 무게 또한 줄어들텐데, 말없이 짊어진 이들의 삶에 가슴이 답답해지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아래 잘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아프다, 기쁘다, 힘들다.......감정 표현하면서 살자. 참다가 병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이상운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참 시적인 제목이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긴 세월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될 것을 예감하게 하는 제목인 것 같은데 설레임과 함께 한쪽 가슴을 뻐근하게 하는 아픔도 느껴진다. 첫 눈에 반한 "박은영", 이 여인을 평생 네 번 밖에 만나지 못한다고 누군가가 이야기 한다면 "사랑"에 대한 설레임이 오래도록 남을까, 아니면 가슴 아파하며 괴로워 하게 될까. 마지막에 만났을 때는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것이 마지막인줄도 모르고 그대로 떠나보내야 하지 않았던가. 세월이 많이 흘러 청년시절처럼 저돌적으로 "좋아합니다. 만납시다"라고 고백할 열정은 없지만 가슴 한쪽에 그녀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음으로 핑크빛 첫 사랑에 대한 기억은 그렇게 세월이 지나도 변색되지 않고 있었다. 

 

목소리 듣고 싶으면 핸드폰으로 전화하고 만날 약속을 정하는 요즘 시대와 다르게 박정희가 살아있었던 시대의 "사랑"은 더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연하남과 연상녀의 사랑을 주위에서 차갑게 바라보던 그 때 그 시절 첫 눈에 반한 그녀이고 보니 아직은 풋풋하고 어색한 모습이 남아 있어 참 순순해 보였다. 기타를 든 그녀, 십 만명의 군중 앞에서 노래를 하고 싶다는 그녀의 소망을 망상으로 치부해 버려 그 첫 만남은 끝이나고 만다. 뒤에 '오르페우스'에서 박은영, 그녀를 다시 만나지만 제대로 이야기도 나눠보지 못한채 울음을 터뜨린 그녀의 얼굴만 보았을 뿐 이야기도 나눠보지 못하고 떠나보낸 후, 그 시절 늘 지니고 다녔던 관제엽서에 떠오르는 대로 낙서한 '시'를 그녀에게 전해달라 오르페우스의 털보에게 부탁한 뒤 그 '시'가 그녀의 손에 전해졌다는 말을 들으니 이 둘의 인연이 참으로 신기하고 그 이어짐에 가슴이 아파온다.

 

이름 외에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신비에 싸인 그녀, 박은영. 세월이 많이 흘러 다시 만난 두 사람은 또 만날 것을 약속하지만 끝내 다시 나타나지 않는 그녀, 왜 나타나지 않은 것일까. 이제는 세월이 지나며 그녀에 대한 기억은 점점 잊혀져 가고 있다. 그가 작가가 된 것은 어쩌면 풋풋했던 그 시절 그녀를 만남으로써 마음속에 있던 감성이 깨어난 것이 아닐까. 몇 십년이 지나 그녀의 기억마저 희미해질 때 그를 찾아온 김수영이라는 사람은 그저 '편지'라는 이름의 까페로 초대를 한다. 거기서 그는 예전 박은영에게 적어 주었던 시를 가사로 만든 노래를 듣게 되는데, 그 때의 충격이란, 아마도 그 순간 그의 기억은 그녀를 처음 만났던 그 시절로 돌아갔을 것이다.

 

약속한 날 나타나지 않은 박은영을 기다리며 마음 아팠을 그에게 몇 십년이 흘러 그녀의 아들이 나타나 어머니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는 내 마음까지 아프게 했다. 바람 따라 왔다 가던 사람의 아이를 가지고 그를 기다리는 세월들이 얼마나 힘에 겨웠을까. 끝내 아이의 아버지는 오지 않고, 홀로 아이를 키웠을 그녀를 생각하면 두 사람이 맺어졌으면 좋지 않았을까 지금 이순간 아주 현실적인 생각이 들었다. 분명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기에 훗날 그가 준 시를 간직하고 노래로 만들었을테니까. 드라마로 만들었다면 운명적인 만남, 사랑으로 보여졌을 두 사람의 인연이 너무 짧게 끝나버려 아쉽기만 하다. 이제야 그녀가 했던 행동들이 이해가 가고 세월이 많이 흐른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난다면 좀 더 좋은 인연으로 만나길 기대했겠지만 이렇게 한 사람의 빈자리를 느껴야 하는 상태가 된 것은 전혀 예상 밖의 일이였을 것이다.

 

별을 바라보며 사랑을 속삭이는 아주 낭만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라는 책은 인연에 대해, 사랑에 대해, 사람들의 기억속에 각인 될 나의 모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 나 둘.......별과 나의 분별이 아닌 그 별과 나의 인연에 대해 잔잔히 이야기하는 목소리에 빠져 가만히 밤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싶어진다. 나는 세월이 흘러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결혼을 하고 내가 지냈던 집이 "친정"이 되고 남편과 함께 하는 보금자리가 "우리 집"이 되었을 때의 기분이란, 설레기도 했지만 뭔가가 가슴속에서 빠져나간 듯 마음 한구석이 시리기도 했었다. "즐거운 우리집"이 아닌 "즐거운 나의 집"은 역시 "우리"라는 말 보다 조금 덜 따뜻한 느낌이 드는 것 같다. 이것이 나의 기분탓인지, 이 책을 읽고나서 든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암튼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즐거운 나의 집"을 반 넘게 읽다 보니 이 책은 위녕의 성장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의 세 번의 이혼, 아빠와 새 엄마 사이에 태어난 동생 위현, 엄마가 아빠와 이혼한 뒤 두 번의 결혼으로 낳은 동생 둥빈과 제제, 상처 많은 가족들이 한 집에 모여 살아가는 이야기는 어느 새 위녕이 가족의 의미를 알아가는 한편의 성장 소설이 되어 있었다. 위녕의 엄마는 작가다. 그래서인지 자식들의 의사를 존중하고 그에 따른 책임도 질 수 있게 가르친다. 내가 어린 시절 이상적으로 생각하던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현실에서 나의 친정 엄마는 위녕의 친구 쪼유의 엄마처럼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하여 자신이 바라는대로 커 주기를 바라는 분이셔서 자라면서 갈등도 많이 겪었었다. 그렇다고 내가 아이를 낳으면 위녕의 엄마처럼 자식을 키울 수 있을 것인가. 아마 내가 살아온 시각에 맞춰 쪼유의 엄마처럼 소유욕을 한껏 드러내며 키우지 않겠는가. 조금 걱정이 된다.

 

세 번의 이혼을 하고 다니엘 아저씨와 풋풋한 연애를 하고 있는 엄마, 세상의 시선으로 보면 말도 안된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녀의 홍조 띤 볼을 보는 것이 좋다. 부끄러워 하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모습이 부럽다. 참고 살수도 있지만 불행하게 살지 않기 위해 세 번의 이혼을 했지만 함께 사는 동안은 최선을 다했으니까, 또 다른이를 만나 사랑을 한다고 해도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섯 계절을 보내는 동안 위녕이 엄마와 동생들과 함께 하는 생활,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보내지 못하고 아빠와 새 엄마와 함께 하는 세월동안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는지, 위녕이 큰 결심을 하고 아빠와 새 엄마를 찾아가는 모습은 솔직히 나로서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어 안타까웠다. 단 몇줄 만으로, 설거지를 해 놓지 않아 야단 맞고, 훔치지 않았다고 이야기해도 믿어주지 않는 아빠에게 맞았다는 글을 보며 위녕의 아픈 마음을 이해 할 순 없었다. 조금은 억지스러웠고 더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 엄마와의 감정의 깊은 골도 단 몇 마디로 해결되는 것을 보면 반쪽자리긴 해도 "가족"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아빠를 두고 새 엄마와 같은 편이된 듯한 느낌은 생경했지만 가족이었으니까, 전혀 어색하지 않다. 정말 위녕의 가족과 같은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현실에 살고 있을까. 너무나 드라마적인 이야기라 현실적이지 않아 낯설기까지 한데, 그 이유는 아마도 위녕의 엄마가 아이들이 원하는 삶을 살게끔 자유롭게 키우는 것을 보며 너무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내가 바라는 어머니의 모습이면서도 그런 부모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지어 생각하고 있었다니 나란 인간도 참 어지간히 배타적인 삶을 살고 있나 보다.  

 

위녕이 스무살이 되어 대학을 가기 위해 또 한번 엄마의 곁을 떠나지만 이제는 몸과 마음을 편안히 쉬게 할 수 있는 베이스캠프인 "즐거운 나의 집"이 있으니 외롭지 않을 것이다. 이제 세월이 지나면 아빠의 죽음을 힘들어하는 둥빈이 상처를 딛고 좀 더 성숙한 모습을 보일 것이고, 제제는 조금 있으면 사춘기를 겪겠지. 위녕의 엄마말대로 그때쯤이면 그녀는 할머니가 되어 있을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흘러간다. 죽을때 "심심하지 않게 즐겁게 살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삶, 나도 그런 삶을 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