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이상운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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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시적인 제목이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긴 세월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될 것을 예감하게 하는 제목인 것 같은데 설레임과 함께 한쪽 가슴을 뻐근하게 하는 아픔도 느껴진다. 첫 눈에 반한 "박은영", 이 여인을 평생 네 번 밖에 만나지 못한다고 누군가가 이야기 한다면 "사랑"에 대한 설레임이 오래도록 남을까, 아니면 가슴 아파하며 괴로워 하게 될까. 마지막에 만났을 때는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것이 마지막인줄도 모르고 그대로 떠나보내야 하지 않았던가. 세월이 많이 흘러 청년시절처럼 저돌적으로 "좋아합니다. 만납시다"라고 고백할 열정은 없지만 가슴 한쪽에 그녀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음으로 핑크빛 첫 사랑에 대한 기억은 그렇게 세월이 지나도 변색되지 않고 있었다. 

 

목소리 듣고 싶으면 핸드폰으로 전화하고 만날 약속을 정하는 요즘 시대와 다르게 박정희가 살아있었던 시대의 "사랑"은 더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연하남과 연상녀의 사랑을 주위에서 차갑게 바라보던 그 때 그 시절 첫 눈에 반한 그녀이고 보니 아직은 풋풋하고 어색한 모습이 남아 있어 참 순순해 보였다. 기타를 든 그녀, 십 만명의 군중 앞에서 노래를 하고 싶다는 그녀의 소망을 망상으로 치부해 버려 그 첫 만남은 끝이나고 만다. 뒤에 '오르페우스'에서 박은영, 그녀를 다시 만나지만 제대로 이야기도 나눠보지 못한채 울음을 터뜨린 그녀의 얼굴만 보았을 뿐 이야기도 나눠보지 못하고 떠나보낸 후, 그 시절 늘 지니고 다녔던 관제엽서에 떠오르는 대로 낙서한 '시'를 그녀에게 전해달라 오르페우스의 털보에게 부탁한 뒤 그 '시'가 그녀의 손에 전해졌다는 말을 들으니 이 둘의 인연이 참으로 신기하고 그 이어짐에 가슴이 아파온다.

 

이름 외에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신비에 싸인 그녀, 박은영. 세월이 많이 흘러 다시 만난 두 사람은 또 만날 것을 약속하지만 끝내 다시 나타나지 않는 그녀, 왜 나타나지 않은 것일까. 이제는 세월이 지나며 그녀에 대한 기억은 점점 잊혀져 가고 있다. 그가 작가가 된 것은 어쩌면 풋풋했던 그 시절 그녀를 만남으로써 마음속에 있던 감성이 깨어난 것이 아닐까. 몇 십년이 지나 그녀의 기억마저 희미해질 때 그를 찾아온 김수영이라는 사람은 그저 '편지'라는 이름의 까페로 초대를 한다. 거기서 그는 예전 박은영에게 적어 주었던 시를 가사로 만든 노래를 듣게 되는데, 그 때의 충격이란, 아마도 그 순간 그의 기억은 그녀를 처음 만났던 그 시절로 돌아갔을 것이다.

 

약속한 날 나타나지 않은 박은영을 기다리며 마음 아팠을 그에게 몇 십년이 흘러 그녀의 아들이 나타나 어머니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는 내 마음까지 아프게 했다. 바람 따라 왔다 가던 사람의 아이를 가지고 그를 기다리는 세월들이 얼마나 힘에 겨웠을까. 끝내 아이의 아버지는 오지 않고, 홀로 아이를 키웠을 그녀를 생각하면 두 사람이 맺어졌으면 좋지 않았을까 지금 이순간 아주 현실적인 생각이 들었다. 분명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기에 훗날 그가 준 시를 간직하고 노래로 만들었을테니까. 드라마로 만들었다면 운명적인 만남, 사랑으로 보여졌을 두 사람의 인연이 너무 짧게 끝나버려 아쉽기만 하다. 이제야 그녀가 했던 행동들이 이해가 가고 세월이 많이 흐른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난다면 좀 더 좋은 인연으로 만나길 기대했겠지만 이렇게 한 사람의 빈자리를 느껴야 하는 상태가 된 것은 전혀 예상 밖의 일이였을 것이다.

 

별을 바라보며 사랑을 속삭이는 아주 낭만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라는 책은 인연에 대해, 사랑에 대해, 사람들의 기억속에 각인 될 나의 모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 나 둘.......별과 나의 분별이 아닌 그 별과 나의 인연에 대해 잔잔히 이야기하는 목소리에 빠져 가만히 밤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싶어진다. 나는 세월이 흘러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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