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와 뼈의 딸 1 - 판타스틱 픽션 블루 BLUE 4-1 판타스틱 픽션 블루 Blue 4
레이니 테일러 지음, 박산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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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림스톤의 심부름으로 전 세계의 암시장에서 이빨을 사들이는 카루의 일상은 평화로웠다. 천사 아키바가 나타나기 전까지 낮에는 프라하의 예술학교에서 공부하는 카루의 일상은 독자인 내가 느끼기에 지루하기만 했다.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며 실제로 총을 맞아 죽을 뻔 했던 카루가 이 말을 듣는다면 지루하다고 느끼는 내게 몇 마디 퍼부울 것 같지만 그녀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낯설기만 한 나는 그렇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키메라의 존재를 눈 앞에 그려내지 못하는 나는 천사까지 나타난 지금의 상황이 그저 판타지 같기만 했다.
 
카루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왜 브림스톤의 손에서 자랐는지 의문을 품지도 않은 채 키메라들이 가족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어느날 천사가 카루의 눈 앞에 나타난다. 그로 인해 카루는 가족을 잃었고 분노했다. 카루는 아키바가 다시 나타났을 때 그를 죽이기 위해 칼을 휘둘렀으나 그를 죽이고 싶진 않았다. 아니 그를 죽일 수가 없었다. 아키바를 보며 느끼는 감정은 그리움이었고, 사랑이었다. 어째서 그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일까. 아키바는 '적'이라고 각인시켜야 할 정도로 그의 앞에서 카루는 무기력하기만 했다.
 
지금 아키바는 혼란스럽다.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카루가 누구인지 그가 알 수 있는 것은 없었지만 그녀를 만난 이후 그녀가 계속 생각나고 그녀 곁에 있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카루는 인간이었지만 아키바에게 그녀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고 그녀의 두 손에 그려진 함사스가 그렇다고 말해 주었다. 마드리겔 키린을 떠올리게 하는 몸짓은 그를 카루의 곁으로 돌아오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아키바는 카루의 곁으로 돌아온다. 그녀가 그를 죽인다고 해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키메라들과 평화를 원했던 그가 본능대로 그녀를 죽이려 했었고, 그녀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고통을 주었으니까.  
 
형제인 리라즈와 하자엘과 싸움을 하면서까지 카루를 지키려 한 아키바에게 카루는 어떤 존재인가. 카루가 누구인지 알게 된 지금, 자신의 목숨을 바쳐 카루를 구해야 했다. 카루가 지금 이대로 아무 것도 모른 채 살아간다면 그녀와의 사랑을 지킬 수 있겠지만 아키바는 마드리겔을 잃은 후 변했고 그는 카루에게 소중한이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카루를 지켜주는 것 뿐이다.
 
티아고, 그가 카루의 손에 있는 함사스를 보게 되었으니 이제 그가 그녀를 쫓을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된 카루 또한 티아고와 만나게 될 것이란 걸 알고 있다. 이 둘의 만남이 어떤 끔찍한 결과를 맞게 될지 알 수 없다. 브림스톤이 그렇게 막고 싶어했지만 티아고와 카루의 만남 또한 예정되어 있는 일이었고 아키바와 카루, 티아고의 악연은 다시 시작된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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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손가락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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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가 시리즈를 읽으면서 눈물을 흘린 것은 처음이다. '붉은 손가락'은 핏빛을 연상시켜 이번에는 어떤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궁금했는데 마지막에 눈물이 맺혀 책을 덮는 것이 힘겨웠다. 죽어가는 아버지를 외면하는 가가 형사의 모습은 그동안 내가 보아 왔던 모습과 달라 놀라기는 했지만 이번에 맡은 사건과 가가 형사의 지금의 상황이 다르게 느껴지지 않아 더 가슴이 아팠던 책이었다.

 

아키오의 집 정원에 가스가이 유나라는 한 소녀의 시체가 발견된다. 시체가 정원에 묻혀 있는 것인가 생각했는데 이는 아닌 모양이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유나를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 처음부터 밝혀 놓고 시작한다. 가가 형사가 이 소녀를 죽인 범인을 찾는데 어떤 식으로 알아내는지는 지금까지와 다르지 않은 과정을 거칠 것이라 짐작이 가능하다. 사촌인 마쓰미야 형사와 함께 수사를 하게 되어 가가 형사의 활약은 마쓰미야의 시선에 의해 자세하게 볼 수 있고 지금까지와 다른 가가 형사의 인간적인 면모와 함께 그의 뛰어난 수사 능력도 감상할 수 있다.

 

범인이 왜 유나를 죽였는지, 그 삐뚤어진 심성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이 가족의 불행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있다. 처음 시체가 발견되었을 때 경찰에 신고를 했어야 했다. 그동안 가족 일에 귀찮다며 외면해 온 아키오가 이 일에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된 데에는 소홀했던 가족에게 이제부터 잘하자는 마음때문이 아니었다. 앞으로 자신이 겪게 될 상황만을 생각했기에 끔찍한 생각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아키오가 만든 음모를 가가 형사는 어떻게 밝혀낼 것인가. 누가 봐도 도저히 무너질 것 같지 않은데 여기에 어떤 반전이 있을까. 아키오의 아내 야에코는 시댁 일에 대해서는 늘 감정적으로 대처하지만 아들 나오미를 끔찍하게 아낀다. 이번 사건으로 아키오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게 되지만 그녀가 지금까지 보여준 행동으로 볼 때 지금 이 가족에게 일어난 일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 아무런 감정을 가질 수가 없다.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아키오가 한 거짓말은 천륜을 저버리는 행위이고 그동안 되돌일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음에도 그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했다. 지금까지의 야에코와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자신의 행동을 뉘우쳤으니 다행이다. 그의 아내 야에코의 생각은 다르겠지만.

 

붉은 손가락은 어머니가 아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고자 한 행동이었다. 가가 형사는 모든 것을 알게 된 후에도 아키오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고 순리에 따라 사건을 해결하려 하는데 아키오가 이에 응해 줄지는 알 수가 없다. 부모의 마음이란 이런 것이다. 이 사건을 해결하는 가가 형사를 보면서 그가 죽어가는 아버지에게는 왜 그렇게 냉혹하게 대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그의 행동에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되면 울컥, 눈물이 날 것이다. 가가 형사와 그의 아버지가 나눈 마음은 평범한 우리들은 결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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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 랜덤하우스 히가시노 게이고 문학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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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책 '편지'는 독자들을 감동시킬 요소들을 갖추고 있는 책이다. 처음에 이 책을 읽기 전 들었던 생각이고 마지막 장까지 다 읽은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읽는내내 살인자 형을 둔 나오키의 불행한 삶에 동정심을 느끼며 이런 감정을 느껴도 되는 것인지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물었었다. 나오키의 형이 살인자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그의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냉혹하게 느껴질 정도였고 나 또한 그곳에 있었다면 그들과 다르지 않게 행동했을 것이기에 동정심을 느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나오키에게 느낀 감정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해답은 나오키가 다니는 직장의 히라노 사장이 해 주었는데 살인은 형이 저질렀는데 사회의 냉담한 시선과 차별은 왜 동생 나오키가 받아야 하는가, 에 대한 해답과 같을 것이다. 나오키가 살아가면서 받는 부당한 대우는 범죄자의 가족이기에 형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감옥 안에서 계속 나오키에게 편지를 보내는 형 츠요시의 편지를 읽어 보면 살인을 저지른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뉘우치고 그로 인해 나오키가 힘들게 살아가게 된 것을 미안해 하고 걱정하고 있으나 현실을 제대로 보고 있지는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먹고 살기도 힘든 동생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안다면 어떻게든 대학에 들어가길 바란다는 말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생전에 어머니가 바라던 일이었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자신이 그 뜻을 이어 받아 나오키가 대학에 들어갈 수 있게 하겠다는 책임감을 느낀 그가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훔치고 뜻하지 않게 살인까지 저질렀지만 이런 이유때문에 나오키는 형에게 가족이라는 이유로, 자신때문에 이런 범행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형의 행동을 참아내고 있으며 형 또한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나오키가 꿈을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을 거리낌 없이 드러낼 수가 있는 것이다.

 

츠요시는 나오키에게 피해자의 집에 대신 가 달라는 부탁을 하고 감옥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편지를 쓰는 것 뿐이라 할 수 있는 한 정성을 다해 피해자의 가족에게도 편지를 쓴다. 피해자가 어떤 감정인지 전혀 배려하지 않은 채 단지 자신의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자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츠요시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말하지 않았으니 이런 마음이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피해자의 가족들이 츠요시에게 가진 감정은 이러했다. 편지를 받는 것조차 불쾌해 하고 츠요시 대신 동생 나오키가 대신 찾아와도 범행을 저지른 것은 나오키가 아니므로 불단에 향도 못 올리게 한다. 이것이 피해자가 느끼는 감정인데 츠요시는 감옥 안에서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감옥 밖의 일을 모두 나오키에게만 맡긴다. 

 

츠요시는 계획한 살인은 아니지만 범행이 들킨 후 할머니를 너무 끔찍하게 죽였다. 답답한 감옥 안에서 자유를 억압당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지만 동생을 위한다는 이유로 이 런 행동을 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했다면, 아니 형이 혼자서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오키가 형에게 마음을 열고 좀 더 다가갔더라면 그들의 삶은 달라졌을텐데 안타깝다. 나오키는 감옥 안에서 형이 보내는 편지를 읽으면서 형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 몰랐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나오키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아무 잘못이 없는 아내와 딸을 위해 꼭 해야만 하는, 할 수 밖에 없는 결정을 한다. 나오키는 히라노 사장이 "나오키가 가장 쉬운 길을 가고 있다"고 했던 말을 떠올리며 처음부터 이렇게 했어야 한다 생각한다. 물론 형의 편지로 인해 나오키가 일어설 수 있었지만 힘든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에 나오키는 노래를 불렀을까. 부르지 못했을까. 그대로 무대를 내려오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나오키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아쉬움이 든다. 이것은 츠요시와 나오키 두 사람이 풀어야 할 일이지만 끝까지 볼 수 없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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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딱 한 개만 더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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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딱 한 개만 더'는 다섯 편의 단편들이 담겨져 있다 해서 가가 형사의 활약을 볼 수 있다는 것에 기대감을 가지고 읽은 책이다. 단편 [거짓말 딱 한 개만 더]를 읽었을 때 살인 사건이 발레 이야기를 빼놓고서는 진행될 수 없음을 알고 난 후 가가 형사가 한때 관심을 보인 여성이 등장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했는데 거기에 대한 언급이 없어 아쉬웠다. 예전에 마음을 준 그 여인과는 그때 이후로 인연이 없었던 것일까. '가가 형사 시리즈'는 가가 형사의 삶 보다는 살인 사건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전개되는지라 이런 면에서는 조금 아쉬움을 느낀다.

 

단편소설의 한계라면 이야기의 흐름이 갑자기 끊어진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추리소설에서는 오히려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누구인지 빨리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런 한계를 느낄 수가 없다. 다만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는 것과 사건을 빠르게 끝내버린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 다는 것이 문제인데 현실에서는 추리소설속에서와 달리 '거짓말, 딱 한 개만 더'의 단편들처럼 의외로 사건들이 미궁에 빠지기 보다는 간단하게 해결되는 예가 더 많을 것이다. 물론 가가 형사나 되니까 범인이 누구인지 빨리 밝혀낼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말이다.

 

그런데 단편 중에 나도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단편이 있었다. 단편 [제 2지망]이 그러했는데 범행이 어떻게 일어난 것인지는 가가 형사가 설명을 해주어 알게 되었지만 범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있었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게 된 것이 기뻤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인지 각 단편들이 그리 쉽게 읽을 수 있는 내용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단편 [거짓말, 딱 한 개만 더]를 읽었을 때만해도 '가가 형사 시리즈'의 매력을 느낄 수가 없어 다른 추리소설들과 다른 점을 느낄 수 없었으나 그 뒤에 읽은 단편들을 통해 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상황들에 감정이입이 되면서 결코 가볍게 읽을 수가 없었다.

 

물론 단편 [어그러진 계산]은 계획했던 일이 어그러져 사건이 벌어지는 것이 우연한 일이라고 하기엔 나오코 남편의 죽음이 석연치가 않아 읽는 것이 불편했다. 이 죽음이 없었다면 [어그러진 계산]이라는 단편 자체가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기에 꼭 필요한 일이었다고 해도 역시 억지로 만든 이야기라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우연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기엔 어딘가 부족하다. 그렇다고 운명이라 할 수도 없다. 누가 죽었든 죽어야 할 이유가 있어 죽었다고 해도 그것을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단죄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어그러진 계산]은 허구의 느낌이 강한 단편이다.  

 

가가 형사를 친구로 두어 살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을 막은 단편 [친구의 조언]은 형사이기에 하기와라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지만 진실을 알아내는 것이 불편했을 상황이었다. 자칫했다면 하기와라를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냥 두고 볼 수 없었기에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이 사건에 손을 댔을 것이다. 정말 다행한 일이 아닌가. 그냥 그대로 두었다면 하기와라의 안전은 보장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지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가가 형사는 하기와라가 죽은 후 이 사건을 맡게 되지 않은 것에 감사했을 것이다.

 

추리소설에서는 살인을 저지르지 않고 지나갈 수도 있었을 일을 한 순간의 감정을 참지 못하고 살인을 저지르는 일이 많다. 여기에서는 단편 [차가운 작열]이 그러할 것이다.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경찰에게 맡겼다면 죄를 짓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요우지는 그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행동을 했을 것이다. 본능에 의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지만 죗값은 받아야 하는 것이다. 무능한 경찰이였다면 잡히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었던 범인들이 가가 형사에 의해 모두 죄를 자백하고 잡히는 것을 보는 것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살인 사건들이 모두 끔찍하긴 하지만 평범한 일상 생활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건들은 독자들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든다. 피할 수 있었던,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사건들이었기에 가슴이 아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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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드 1 - 가난한 성자들 조드 1
김형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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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무진(칭기즈칸)의 뿌리는 외눈박이 형이 동생에게 아내를 찾아주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물론 하늘에서 조그만 연못이 떨어져 이 연못이 자라서 아주 커다란 호수가 되었다는 전설에서부터 시작해야겠지만 이는 너무 까마득한 시절의 이야기로 인간의 수명이 짧아 그 넓디 넓은 호수 둘레를 둘러 본 이도 없다고 하니 그것은 그냥 하늘과 땅만이 알고 있는 것으로 놔두고, 움직이는 보르칸 산이나 이 넓은 연못은 이미 테무진이 태어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해도 무지한 인간인 우리들은 알랑고아와 외눈박이를 형으로 둔 동생이 부부가 되어 살아간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남편이 죽은 후 알랑고아는 아이를 둘 더 낳게 된다. 달빛에 아이 둘이 태어났다고 하니 왕이 될 아이에 대해 말하고자 함인가 생각했으나 아마 황금가문의 흰 뼈 이야기의 모태가 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가 보다. 아버지가 죽은 후 테무진이 키릴툭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는 이유가 되는 것이 테무진의 뿌리에 해당될 터라 '선녀와 나뭇꾼'과 비슷한 이야기, 화살 꺾어 형제들 우애 변하지 않게 하는 이야기 등은 우리나라 전래동화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라 해도 이 이야기들을 들려주지 않고는 그냥 지나갈 수는 없는 것이다. 테무진이 이복형제를 응징하며 내뱉은 말로 인해 키릴툭에게 쫓기게 되지만 실상은 역시 황금가문의 흰 뼈(보돈차르 몽학의 직계를 흰 뼈라한다)라는 것 때문인데 이는 광활한 초원을 지배하게 되는 테무진의 존재를 더 강인하게 만들어준다.

 

늑대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한 이를 도와주게 되는 테무진은 뜻하지 않게 자무카를 만나게 된다. 누구보다 지도자가 되고 싶어하는 자무카는 황금가문의 검은 뼈로 테무진의 태생을 부러워한다. 지도자가 되고 싶어하는 자무카와 아직은 키릴툭의 손아귀를 벗어나는 것에 급급하는 테무진의 인연은 "태어난 곳은 달라도 묻히는 곳은 같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되는데 그들에게 놓여진 운명은 같지 않을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영웅의 이름으로 태어난 것이 아닌 테무진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에 무수히 많은 역경과 고난이 함께 할 것이며 자무카가 원하는 것 또한 그리 쉽게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세상을 움직일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칭기즈칸'이라는 이름은 오래 전부터 들어왔었고 그에 관한 책도 읽었었지만 그가 어떤 자리에 서게 되는지 알고 있었기에 영웅적인 모습만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을 뿐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했던 고뇌와 인간적인 면모는 떠올리지 못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시대의 세상은 어떠했는지, 아버지 예수게이가 죽은 후 남겨진 그의 가족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졌었는지를 떠올리면 그가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는지 알 수 있다. 늑대의 먹이를 가로채 먹어야했던 가족들의 이야기는 그때의 상황이 얼마나 비참했었는지를 보여준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어디까지 내려가야 하는 것인지 격정이 끓어올라 견딜 수 없어진 테무진에게 오히려 이 일은 살아갈 힘을 주었을 것이다. 이를 악물고 살아내야 한다는 말을 씹어 뱉는 모습이 눈 앞에서 그려질 정도로 그 때의 감정은 절절하다. 

 

테무진이 죽은 지 그리 많은 세월이 흐르진 않았으나 한 사람의 삶을 이렇게 생생한 모습으로 복원될 수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한겨울 유라시아 대륙에 몰아닥치는 혹독한 추위 '조드'는 인간에게는 대재앙으로 우리들을 거대한 자연 속에 살아가는 아주 하찮은 존재로 만들지만 그 속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며 살아낸 테무진의 이야기야말로 하늘과 땅에 들려주는 우리들의 역사인 것이다. 작가 김형수는 '조드'에서 '전쟁의 시대가 막을 올렸군, 제기랄'이라며 구성지게 이야기하며 서막을 알리지만 이곳에서 벌어졌던 전쟁, 그 결과는 너무나 참혹해서 죽어간 이들이 많은 이곳의 영웅이야기나 들려주자고 우리들을 멈춰 세우진 않았을 것이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12세기 급변하는 세계속에서, 드넓은 초원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과 함께 했던 테무진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의 내가 서 있는 곳을 다시 돌아보게 하기 위해 이 길고 긴 여정을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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