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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드 1 - 가난한 성자들 ㅣ 조드 1
김형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2월
평점 :
테무진(칭기즈칸)의 뿌리는 외눈박이 형이 동생에게 아내를 찾아주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물론 하늘에서 조그만 연못이 떨어져 이 연못이 자라서 아주 커다란 호수가 되었다는 전설에서부터 시작해야겠지만 이는 너무 까마득한 시절의 이야기로 인간의 수명이 짧아 그 넓디 넓은 호수 둘레를 둘러 본 이도 없다고 하니 그것은 그냥 하늘과 땅만이 알고 있는 것으로 놔두고, 움직이는 보르칸 산이나 이 넓은 연못은 이미 테무진이 태어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해도 무지한 인간인 우리들은 알랑고아와 외눈박이를 형으로 둔 동생이 부부가 되어 살아간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남편이 죽은 후 알랑고아는 아이를 둘 더 낳게 된다. 달빛에 아이 둘이 태어났다고 하니 왕이 될 아이에 대해 말하고자 함인가 생각했으나 아마 황금가문의 흰 뼈 이야기의 모태가 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가 보다. 아버지가 죽은 후 테무진이 키릴툭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는 이유가 되는 것이 테무진의 뿌리에 해당될 터라 '선녀와 나뭇꾼'과 비슷한 이야기, 화살 꺾어 형제들 우애 변하지 않게 하는 이야기 등은 우리나라 전래동화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라 해도 이 이야기들을 들려주지 않고는 그냥 지나갈 수는 없는 것이다. 테무진이 이복형제를 응징하며 내뱉은 말로 인해 키릴툭에게 쫓기게 되지만 실상은 역시 황금가문의 흰 뼈(보돈차르 몽학의 직계를 흰 뼈라한다)라는 것 때문인데 이는 광활한 초원을 지배하게 되는 테무진의 존재를 더 강인하게 만들어준다.
늑대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한 이를 도와주게 되는 테무진은 뜻하지 않게 자무카를 만나게 된다. 누구보다 지도자가 되고 싶어하는 자무카는 황금가문의 검은 뼈로 테무진의 태생을 부러워한다. 지도자가 되고 싶어하는 자무카와 아직은 키릴툭의 손아귀를 벗어나는 것에 급급하는 테무진의 인연은 "태어난 곳은 달라도 묻히는 곳은 같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되는데 그들에게 놓여진 운명은 같지 않을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영웅의 이름으로 태어난 것이 아닌 테무진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에 무수히 많은 역경과 고난이 함께 할 것이며 자무카가 원하는 것 또한 그리 쉽게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세상을 움직일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칭기즈칸'이라는 이름은 오래 전부터 들어왔었고 그에 관한 책도 읽었었지만 그가 어떤 자리에 서게 되는지 알고 있었기에 영웅적인 모습만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을 뿐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했던 고뇌와 인간적인 면모는 떠올리지 못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시대의 세상은 어떠했는지, 아버지 예수게이가 죽은 후 남겨진 그의 가족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졌었는지를 떠올리면 그가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는지 알 수 있다. 늑대의 먹이를 가로채 먹어야했던 가족들의 이야기는 그때의 상황이 얼마나 비참했었는지를 보여준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어디까지 내려가야 하는 것인지 격정이 끓어올라 견딜 수 없어진 테무진에게 오히려 이 일은 살아갈 힘을 주었을 것이다. 이를 악물고 살아내야 한다는 말을 씹어 뱉는 모습이 눈 앞에서 그려질 정도로 그 때의 감정은 절절하다.
테무진이 죽은 지 그리 많은 세월이 흐르진 않았으나 한 사람의 삶을 이렇게 생생한 모습으로 복원될 수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한겨울 유라시아 대륙에 몰아닥치는 혹독한 추위 '조드'는 인간에게는 대재앙으로 우리들을 거대한 자연 속에 살아가는 아주 하찮은 존재로 만들지만 그 속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며 살아낸 테무진의 이야기야말로 하늘과 땅에 들려주는 우리들의 역사인 것이다. 작가 김형수는 '조드'에서 '전쟁의 시대가 막을 올렸군, 제기랄'이라며 구성지게 이야기하며 서막을 알리지만 이곳에서 벌어졌던 전쟁, 그 결과는 너무나 참혹해서 죽어간 이들이 많은 이곳의 영웅이야기나 들려주자고 우리들을 멈춰 세우진 않았을 것이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12세기 급변하는 세계속에서, 드넓은 초원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과 함께 했던 테무진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의 내가 서 있는 곳을 다시 돌아보게 하기 위해 이 길고 긴 여정을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