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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지다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오유리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사랑"이라는 단어는 하나뿐이지만 각자가 가슴속에 품고 있는 사랑의 유형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금지된 사랑, 삐뚤어진 사랑, 학대하는 사랑, 상처만 내는 사랑 등 이름을 붙이자면 이름만 듣고도 슬퍼지는 단어들이 제목을 장식할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사랑의 유형도 혼자하는 짝사랑이 아닌 둘이 하는 사랑이지만 육체적인 사랑만이 있을뿐 가슴떨리는 사랑의 존재는 없다. 왠지 여자들에게 불리한 것이 사랑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왜냐구? 여기에 표현된 8가지 사랑의 형태는 남자보다 여자가 사랑이라는 단어에 의미를 두기 때문이다. 참 쉽지 않은 사랑이다. 힘든 사랑을 하지만 왜 그런 사랑을 하게 되었는지 이유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의 유형들이라 이게 뭐냐고 말 하지도 못하겠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온통 핑크빛이다. 하지만 영원한 사랑은 없기에 그 끝이 결코 핑크빛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나이가 많이 들어서 그렇게 보이는지도 모른다. 세상이 거꾸로 보이니 말이다. '사랑'이면 '사랑' 이것 하나만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등장하는 사랑의 유형중 불륜인 내용도 있지만 이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들의 사랑에 마음이 아프기 때문이다. "빠지다"라는 제목을 봤을때 조건 없이 오로지 한가지에 빠지게 되는 것을 표현한 책인줄 알았는데 완전 속아버렸다. 무엇에 빠진다는 것일까? 어쩌면 나는 현실을 생각하고 계산해서 선택하는 사랑을 하지만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계산하지 않고 그 상황만 생각해서 빠져들기에 이렇게 제목을 정했는지도 모른다. 주변상황이 보이지 않을때 '빠진다'는 말을 할 수 있을테니까.
어떤 사랑이든 그 주체는 우리 자신이다. 책임질 수 있는 사랑만이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다. 사랑하고 그 사람과 결혼했다고 해서 올바른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결국엔 현실에 타협하고 지극히 평범해지는 사랑 앞에 가슴 절절한 시절이 있었다고, 열정이 있었다고 말한들 그 사랑의 색깔은 퇴색되어 버린걸. 책임진 사랑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기 있는 것이다. 물론 저자는 여기에 나오는 사랑이 옳다고 말하지 않는다. 책임지지 않은 사랑에 대한 결말, 권선징악의 구도는 여기서도 나온다. '간통'이라는 죄를 지어 배우자의 저주로 죽지 않게 된 그녀와 도우타. 그녀가 화자가 되어 도우타와의 일을 이야기 하고 있다. 5백년쯤 같이 살았다. 불로장생의 길이라 부러운 사람도 있겠지만 이들에게는 끔찍한 천형이다. 자식이 늙어서 죽는 것을 봐야만 하는 느낌이 어떻겠는가. "세상에 이런일이"나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법한 이야기지만 분명 몸은 죽음의 길에 들어갔는데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때 더이상 새로울 것 없는 사랑이 되고 옛것을 보면 그저 추억에 잠기게 된다.
5백년 같이 살게 되면 어떨까? 몇십년도 같이 살지 못해 바람이 나고 배우자는 '가족'이라고 부르짖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사람들에게 5백년쯤 같이 살라고 하면 아에 "날 죽게 해 달라"고 외쳐댈지 모른다. 불로장생의 기쁨을 누릴 수나 있을까. 그러고 보면 죽지 않는 벌을 받은 그들은 몇백년을 함께 살아야 하는 벌을 추가로 받게 되는 것이겠지. 사랑의 느낌도 퇴색된채 말이다. 어떤 사랑의 모습보다 더 가슴절절하게 느껴진다. 내 사랑의 유형은 앞으로 어떻게 펼치지게 될까. 아니 어떻게 변질될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