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마술사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5 링컨 라임 시리즈 5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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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라임은 연쇄살인범을 '요술쟁이'라고 칭했지만 나는 환상마술을 이용하여 사람을 죽이는 자신을 '말레릭'으로 칭한 범인을 따라서 앞으로 '말레릭'이라 부르겠다. 도대체 몇 번인지, 아니 몇 십번인지도 모를 정도로 반전에 반전이 이루어지는 '사라진 마술사'는 책을 덮고 난 후에도 몇 번을 돌이켜보고 그동안 가졌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내리고나서야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 제대로 된 정체도 파악되지 않는 살인자 말레릭을 잡는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아니 잡아넣고서도 그가 탈출하지 않고 법의 심판을 받을 수는 있는 것일까. 좀처럼 말레릭의 정체를 파악할 수가 없다.

 

링컨 라임이 지금까지 맡았던 사건들도 그리 쉽게 해결되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정말 어려운 상대를 만났다. 마술에 대한 자문을 구하기 위해 카라의 도움을 받긴 하지만 모습을 여러 번 바꾸는 범인을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로지 믿을 수 있는 것은 증거들 뿐, 링컨 라임는 그가 믿는대로 따라가지만 그 끝에 이르면 상상도 하지 못할 진실이 기다리고 있다.

 

왜 말레릭은 여러 명을 죽인 연쇄살인범이 되었는가. 자신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고 해도 이렇게 살해동기도 찾아낼 수 없을 정도로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선택하여 죽여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링컨 라임과 말레릭이 주고 받는 게임으로 보인다. 말레릭이 보여준 증거대로 따라가는 링컨 라임, 말레릭이 보여주지 않으려 한 증거들을 따라가는 링컨 라임, 결국에는 링컨 라임이 모든 퍼즐을 맞추고 사건을 해결하겠지만 그동안 말레릭이 저지른 사건은 그야말로 무모한 일이었고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 누구라도 링컨 라임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을테니까. 무대에서 하는 마술 공연처럼 완벽하게 모든 것을 보여주려한 말레릭의 판단으로 인해 링컨 라임은 그에게 다가갈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처음부터 간단하게 사건을 이끌고 갔더라면 말레릭은 자신이 세운 계획을 이루었을지도 모른다.

 

그리 많은 시간이 흐르지 않았음에도 너무나 많은 공연을 보았음인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 먼 길을 돌아온 느낌이다. 지금까지 시리즈들과 다르게 화려하지만 꼭 필요한 이야기들이었나 하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사라진 마술사'는 사건이 끝났음에도 아직 들려줄 이야기가 남은 듯 꽤 많은 페이지가 남아 있어 긴장감을 준다. 또 무슨 반전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닌지 긴장되는 것이다. 그러나 링컨 라임과 색스그리도 두 사람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좀 더 들려주느라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되니 이제서야 증거가 아닌 살아있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건들이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으니 오히려 링컨 라임의 삶이 현실적으로 느껴져 그가 낯선 사람들과도 인연을 맺으며 예전의 삶으로 조금씩 돌아오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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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졌다! 사계절 그림책
서현 글.그림 / 사계절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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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상상력이란 그 끝이 어디일까. 키가 작은 아이의 키가 크고 싶다는 바람은 지구를 넘어 온 우주를 집어삼킬 정도로 간절하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비를 맞으니 저 하늘 끝까지 커지고 지구를 넘어 우주까지 커버린 아이는 그야말로 신이 났다. 새 친구도 사귀고 별똥별 사탕도 먹고 그러다가 지구까지 삼켜 버린다. "엇, 갑자기 어두워지네. 무슨 일이지?"하며 사람들은 깜짝 놀랐을 것이다. 모든 것을 다 뱉어낸 다음에야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아이는 우주에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다. 아빠의 목에 떨어진 아이는 엄마, 아빠와 함께 밥을 먹으며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들려준다.

 

커지고 싶다는 바람이 어른이 되고 싶다는 바람은 아니다. 친구보다 작은 아이의 바람으로 키가 커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키가 컸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다리를 밀대로 밀고 천장에 거꾸로 매달리고 철봉에 매달려 다리에 고기를 묶어 개가 잡아당기게 하는 행동을 해야할 정도로 간절하다. 머리와 허리를 잔뜩 구부려 다리를 밀대로 미는 모습은 우습긴 하지만 우유를 많이 마시고 음식들을 많이 먹으면 커질까 싶어 열심인 먹는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아이는 어떤 일이든 키가 커질 수 있다면 모두 다 해볼 작정이다. "얼른 크면 좋겠어요" 간절한 마음으로.

 

서현의 "커졌다"는 아이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세계를 그리고 있다. 천정에 테이프만을 붙여 어떻게 매달릴 수 있겠으며 밀대로 민다고 키가 커지겠는가. 어느날 책에서 나무가 자라는 걸 본 후 나무처럼 비를 맞은 후 엄청나게 커지게 되기까지 그야말로 모두 상상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아이의 발가락 끝으로 뿌리가 보이는 것을 보니 나무가 된 모양이다. 비를 맞으니 나무처럼 쑥쑥 자라난다. 버스를 스케이트처럼 타고 다니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경악을 하고 아이의 모습을 사진으로 마구 찍어대는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아이의 발에 밝힐 정도이니 이것은 그야말로 이건 재앙 수준이다.

 

몸이 자라니 목이 마르면 물을 엄청나게 마셔야 하고 마트를 통째로 털어 넣어야 허기가 가시는데 이미 커질대로 커 버린 몸이 비를 맞으면서 또 자꾸만 커져간다. 아이는 구름을 뚫고 우주까지 갈 수 있어 신이나지만 계속 커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하지 않는다. 새로운 세계가 마냥 신나고 즐겁기만 하다. 다행히도 삼켜 버린 모든 것을 뱉고 나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데 비록 다시 예전의 작은 몸으로 돌아왔지만 아이는 행복해 보인다. 잠시동안이지만 꿈을 이루었다는 것, 다른 사람들이 가보지 못한 곳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어 행복하다. 엄마, 아빠에게 그동안 겪은 모험을 이야기하는 아이는 즐겁다.

 

누구나 다 키가 크길 바란다. 키가 작은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 그 마음을 들여다 보면서 나의 마음은 슬프기까지 한다. 성장이 끝났을 때 아이의 키가 작다면 어쩌나. 키는 작을지라도 꿈을 크게 가지면 된다는 위로만으로 아이가 슬픔을 떨칠 수 있을까. 서현의 "커졌다"에 등장하는 아이처럼 비를 맞아 몸이 점점 커져서 우주로 나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온다면 마음이 넉넉해질까. 별별 생각이 다 난다. 이렇게 상상만으로도 큰 세상을 그려볼 수 있다니 아이의 상상력은 그 끝을 알 수가 없구나. 역시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리 즐거운 일만은 아닌 것 같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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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란 세트 - 전3권 - 개정판 기란
비연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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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건이 마무리 된지 고작 10년 뒤만을 보여주다니, 이 책이 '기란'의 일생을 그리고 있지는 않지만 다른 로맨스 소설과 같이 결말을 맺는 것은 역시 양기란답지 않은 일이다. 양기란, 그녀는 황제의 후궁이지만 양기란으로 살고자 했다. 황제보다 자신을 더 사랑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여인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황제가 있음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유령'이라는 드라마에서 박기영이 하는 말을 따라해보자면 "소설을 한 번 써 보자면 황제 윤이 오랫동안 살아 왕권을 강화시켜 놓았을 때만이 기란의 행복도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만약에 윤이 일찍 죽는다면 기란의 삶 또한 자불태후나 효열태후와 다르지 않다고 그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윤이 오래오래 살고 후계 문제가 확실히 매듭지어진 다음에야 기란은 멀고 먼 서촉에서 살았던 때처럼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나. 고작 10년 뒤에 기란과 황제 윤, 이친왕까지 행복해 보인다고 모든 것이 다 잘되었으니 안심할 수 있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직 양기란은 살아있고 자신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 그러니 여기에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이것 하나 뿐이다. 지금 그녀는 행복하고 앞으로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꽤 오랜시간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끝나지 않은 기란의 삶을 상상하며 소설을 써 보자면 하는 말인데 그녀는 황제가 있든 없든, 죽을때까지 양기란으로써 살아가고자 노력할 것이다"

 

자불태후와 효열태후는 황제의 사랑을 받았던 그 시절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삶을 살아간다. 다른 여인의 품 속에 있는 황제를 보는 것이 괴롭고, 자신이 점점 늙어가는 것이 원망스럽다. 모든 것은 자신들이 선택한 삶의 결과이지만 도통 인정할줄 모르는 그녀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말만을 외쳐댄다. "이가의 남자들이란......" 그녀들도 이가의 남자를 사랑했으면서 더이상 사랑받지 못하는 삶을 타인의 삶을 파괴하는 즐거움으로 자신의 고통을 덜어내기 위해 타인의 생살을 뜯어 먹으며 살아간다. 이런 그녀들에게 황제 윤의 사랑을 받는 양기란은 죽여야 마땅할 여인일 뿐이다. 자신만을 바라본 황제 윤이 여색만을 탐하는 것은 황제로써 절대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자불태후는 기필코 양기란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야 말 것이며 호열태후는 그녀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릴 것이다.

 

구중궁궐 안에서 후궁들간에 암투가 벌어진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권력자에 의해 모든 사건이 오랜세월 짜임새 있게 사건이 만들어져 가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나 섬뜩해서 지켜볼 수가 없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아는 사람은 있을까. 촘촘하게 펼쳐진 그물을 피해갈 수 있는 이가 있을까. 그물을 만든 이조차도 이 그물이 무엇을 만들어 놓았는지 몰라 온몸이 감겨 죽어버릴 정도로 치명적인 독까지 품고 있다. 이 속에서 양기란이 살아남을 확율이란 거의 없을 것이다. 기란이 야맥처럼 정치적인 술수를 부리는 사람이 되는 것은 싫지만 너무나 순수하게 사랑만을 원하는 그녀는 너무나 바보같아서 답답하다. 냉궁에 내쳐진 후 윤의 품으로 다시 돌아온 그녀가 선택한 것이 자유로운 삶이라고? 과연 그럴까. 사랑을 미끼로 자신의 안정된 미래를 보장받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소소가 함께 떠나자고 했을 때 선뜻 따라나서지 못한 그녀다. 황제가 정말 그녀의 바람대로 놓아줬다면 자유롭게 훨훨 날아서 과거의 사랑을 추억하며 행복하게 살아갔을까.

 

단지 기란이 선택한 것이라면, 효열태후 앞에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황제 윤의 사랑이 자신을 떠나갔을 때 자신은 그의 곁을 떠날 것이란 말이었다. 사랑을 잃고 권력만을 손 안에 움켜쥔 채 늙어가며 타인에게 고통만 주는 효열태후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말이지만 자불태후, 효열태후, 황후, 야맥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목숨을 지켜야 하는 기란이 한 일은 결국 황제의 사랑에 기댄 것 밖에 없다는 것이다. 황제의 사랑이 떠나가면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삶을 기란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비연의 '기란'은 아주 잘 만들어진 로맨스 소설이다.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한 여자를 지키기 위해 남자가 아닌 황제가 되어야 하는 윤의 마음을 잘 표현해내고 있으며 황제의 사랑만을 바라고 그 안에서 설레임을 느끼는 기란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기란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황제가 지켜주지 않으면 자신의 안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후궁의 삶을 보여줄 뿐이다. 권력의 다툼에서 물러나 행복만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허나 이는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야맥은 아주 치졸하고 끔찍한 방법을 썼지만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삶을 살아갔고 자신이 선택한 삶의 결과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함께 자란 야맥에게조차 배신당한 기란이 권력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을 보여준 적이 있었던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한 의문조차 가지지 못했다. 적어도 자식을 지켜내기 위해 처절하게 싸우는 부모의 모습이라도 볼 수 있다면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강한 어머니의 모습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왕권이 안정되었으니 강한 어머니의 모습조차 보여줄 필요가 없다. 황제와 사랑을 나누는 기란의 모습이 잦은 것이 답답할 정도로 여기에는 황제의 후궁 양귀인만 있을 뿐 진정으로 그녀가 원했던,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던 양기란의 삶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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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 - 사라진 릴리를 찾아서,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4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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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코넬리의 작품치고는 꽤 단조로운 작품이다. 경찰이 주인공이 되어 사건을 해결하는 것도 아니고 릴리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궁금하게는 하는데 깊이 들어가보면 릴리가 문제가 아니라 헨리 피어스가 문제이고 피어스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해결하는 사건이라는 것 또한 내게는 꽤 단조롭게 다가온다. 물론 피어스가 일생일대의 가장 위험한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작품이 정교하다거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작품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애미디오 테크놀로지즈의 대표이자 천재 과학자인 헨리 피어스는 프로테우스의 특허 신청을 앞두고 있다. 투자자를 받기 위해 중요한 일도 잡혀있는데 이 남자, 지금 정신이 다른 곳에 있다. 새로 받아 쓰는 전화로 릴리를 찾는 전화가 오고부터 그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한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다 잃을 수도 있는데 왜 이렇게 무모하게 릴리를 찾아다니는 것일까. 누나 이저벨에 대한 죄책감이 릴리를 꼭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부른다고 하자. 그러나 이저벨에 대한 언급을 극도로 자제하기 때문에 이해는 하지만 피어스의 감정에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피어스가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이저벨의 존재인데 여기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이저벨이 관련된 사건이 해리 보슈시리즈에서 다루고 있는 사건이라하지만 짧은 시간안에 사건이 일어나고 급작스럽게 해결되는 이 사건은 뭔가 빠진 듯 허전하다. 레너 경찰의 부재때문일 것이다.

 

레너 경찰이 그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압박해 들어와 릴리가 실종된 이 사건에서 손을 떼라는 변호사의 말이 있었으나 피어스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단독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왜? 자신의 삶이 걸려 있으니까. 그래 이해는 하는데 경찰보다 더 뛰어난 수사력에 냉철한 판단력, 사건 해결 능력까지 갖추고 있으면 어쩌란 거냐. 이러니 내가 해리 보슈를 떠올릴 수 밖에. 레너 경찰이 실력있는 경찰이라고 하는데도 피어스를 의심하고 별다른 활약을 하지 않음으로써 떠오르게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해리 보슈였다. 피어스가 해리 보슈를 만난 적이 있을까 궁금할 만큼 그가 그리웠다.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디서든 악연이라도 인연이 되어 이어지는데 이번에도 그런 연결이 있었지만 릴리의 사건이 소모품처럼 큰 사건에 묻혀 버린 것 같아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다.

 

피어스의 개인비서 모니카, 그의 연인 니콜, 전직 FBI 요원 클라이드 버넌, 찰리 콘든, 거기다 범인까지, 여기에는 피어스를 제외한 인물들이 그다지 비중있는 존재로 등장하지 않는다. 거대한 계획속의 일부가 된 피어스로 인해 현실감이 떨어지기때문이겠지만 범인이 왜 피어스를 겨냥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갑작스럽게 해결된 결말로 인해 작품의 가벼움과 허무함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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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형사 베르호벤 추리 시리즈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서준환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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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가 자신을 납치한 남자에게 물었다. "왜 하필 나예요?" 알렉스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내 이 질문을 했을 것이다. 왜 하필 나지. 왜 하필 나야. 나도 남들처럼 예쁘게 살고 싶었는데 왜 하필 나지? 그런데 생명의 위협을 받는 지금 그녀가 자신을 납치한 사람에게 묻는다. "왜 하필 나예요?" 이 말이 이렇게 슬픈 말인지 몰랐다. 처음에는 그녀가 납치된 상황에 충격을 받아 그녀가 처한 상황에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납치범을 잡지 못한 잘못을 저지른 비다르 예심판사가 미울 정도였다. 그러나 납치범의 아들을 아주 끔찍한 방법으로 죽인 사람이 알렉스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녀에 대한 동정심은 옅어져 갔다.

 

납치범은 아들이 어디에 있는지, 죽었다면 어디에 묻혔는지 궁금했을텐데 왜 알렉스에게 이것부터 묻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는 알렉스가 죽기 전에 그것을 묻기 위한 시간은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녀를 굶겨 죽이려고 했으니 말이다. 납치범이 '어린 소녀'라 불리는 새장을 만들어 알렉스를 여기에 넣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납치범의 뒤에 거대한 세력이 있지 않을까 예측했었으나 아니었다. 카미유의 말대로 '어린 소녀'를 만들려는 것이 아닌 알렉스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만든 것이 우연히 '어린 소녀'가 된 것 뿐이라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이것은 어린 소녀가 아닌 그냥 나무 궤짝으로 보인다. 납치범은 자신의 아들을 죽인 알렉스를 가장 고통스럽게 죽이는 방법을 꽤 오래 생각했을 것이다. 아들이 죽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부터 그녀를 가장 잔인하게 죽여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동아줄에 매달린 나무 궤짝을 만들어 놓은 것만 보아도 꽤 오래 고민했을 것으로 보인다.

 

알렉스가 납치된 사건을 맡은 카미유, 레이, 아르망은 알렉스를 찾아내기 위해 한 일이 아무 것도 없다. 납치범이 만든 '어린 소녀'라는 이름의 새장에서 벗어난 것도 알렉스 스스로 한 일이고 그녀가 사람들을 죽이고 다녀도 그녀의 뒤만 따라다녔을 뿐 그녀 가까이에 다가가지도 못했다. 카미유가 드디어 알렉스를 만나게 된 것도 그녀 스스로 한 일일 뿐이었다. 그나마 카미유가 한 일이라면 알렉스가 계획해 놓은대로 따라간 것 뿐이다. 카미유는 아내 이렌이 납치되어 죽은 사건때문에 이 사건에만 오롯이 열정을 쏟아 붓기엔 감정적으로 힘겨운 상황이었지만 알렉스가 지나간 길을 착실히 따라간다. 그리고 알렉스가 들려주지 않은 이야기, 들려주지 못한 이야기를 카미유와 레이, 아르망이 그녀 대신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한다.

 

알렉스는 나무 궤짝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나무 궤짝에서 탈출한 후 그녀가 한 행동은 독자들을 충격에 빠뜨렸으나 그녀는 꼭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알렉스가 왜 자신의 삶을 파괴한 사람부터 죽이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그녀 방식대로 복수를 하긴 했지만 그녀가 끝내 내려놓지 못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불행한 일을 겪지 않았다면 그녀가 얼마나 예쁘게 성장했을지,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열정적인 삶을 살았을지 눈앞에 그려져 더 가슴이 아프다. 우리는 그녀가 잃은 것이 무엇인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 알렉스가 어떤 일을 겪고 있었는지 알았음에도 그녀의 상황을 외면한 사람들은 죽는 날까지 그녀를 잊지 못할 것이다. 물론 우리들도 그녀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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