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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킹 걸즈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6
김혜정 지음 / 비룡소 / 2008년 5월
평점 :
어렸을 때 그렇게 어른이 되고 싶더니, 어른이 된 지금 왜이리 즐겁지 않는 거지? 아마 어릴적 "이거해라, 저거해라, 이거 하면 안된다" 등의 말을 들으면서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어른이 빨리 되고 싶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화장품을 바르며 여자가 되고 싶은 것 보다 그래, 빨리 어른이란게 되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왜 그 어린시절이 그리운 것일까. 자유를 가졌지만 너무나 많은 책임과 의무,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들이 나를 점점 더 작고 초라하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제 1회 블루픽션상 수상작인 "하이킹 걸즈"는 프랑스에서는 비행 청소년들을 소년원에 보내는 대신 도보 여행을 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것을 토대로 우리 나라에도 접목 시켜 은성과 보라가 인솔자 미주와 함께 실크로드를 도보로 여행한다는 설정을 담고 있다. 나는 프랑스에서 이런 것이 시행되고 있는지를 이 책을 통해 처음 들었기에 너무도 생소한 도보 여행이 낯설기만 하고 아주 먼 세상에서나 있을법한 그런 일로 생각되어 사실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자신이 가는 길이 신기루일지, 오아시스일지 모르고 마냥 걷기만 하는 아이들은 자신들의 인생 또한 이것과 다르지 않음을 알기에 끝까지 해내겠다는 마음이 자리잡게 된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1,200km를 도보로 간다는게 어디 쉬운 일인가. 나 같았으면 금세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은성과 보라에겐 이것이 막다른 길이었다. 중도에 포기하게 되면 소년원에 들어가는 길만이 남아있지만 도보 여행을 끝내고 나서도 돌아가고 싶지 않은 한국으로 가야하는 보라와 자신을 예뻐해주시던 할머니가 안계신 한국이 낯설게 다가오는 것은 은성 또한 마찬가지다.
나도 십대시절을 보냈었지만 아이들이 도착지를 향해가며 하나씩 깨달아 가는 그 여정이 왜이리 답답하기만 할까. 일본 여행객들이 보라를 왜 때렸는지, 그저 맞고 가만히 있는 보라의 모습은 은성뿐 아니라 나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왜? 이런 장면이 들어갔는지 저자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와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 속에 묻어두었던 그 아픔의 덩어리들을 뱉어내게 하기 위한 역할이었을까.
서로의 마음이 열리고 하나씩 자신의 껍질을 벗어던지는 아이들, 왕따를 당했던 보라와 아이들을 때리며 왕따를 시킨 주동자였던 은성 두 사람의 감정은 극한으로 치닫고 자신을 괴롭힌 아이들과 은성을 동일하게 생각하여 마음을 닫아버리는 보라를 보며 어쩌면 이 여행은 보라를 위한 여행이 아니라 은성을 위한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괴롭힌 아이들에게 한번도 사과하지 못했던 은성은 보라를 통해 그 아이들의 마음을 느낀다.
만화가 그리고 싶은데 그것을 하지 못하게 막는 엄마가 있는 한국,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이 있는 학교, 이 도보 여행이 끝나면 다시 한국으로 가야하는 상황이 보라는 너무 싫다. 그래서 이 도보 여행에서 이탈하는 보라, 거칠긴 하지만 속마음이 깊은 은성은 배낭도 짊어지지 않은 채 보라를 데려오기 위해 함께 이탈하게 된다.
실크로드에서 하는 이 도보 여행은 자신을 찾기 위핸 대장정이다. 그래서인지 조금 억지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 두 아이가 이 곳을 걸으며 뭔가 깨달아야 할테니까. 은성과 보라가 왜 이 여행에 선택된 것인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다른 상황의 아이들이었다면 어땠을까. 두 사람은 이탈로 인해 이 도보여행은 사실상 끝이 났지만 아이들은 스스로 이 도보 여행을 꼭 끝내고 싶다고 무릎을 꿇고 사정한다. 비록 소년원으로 가야하겠지만 이것이 자신들을 밀어낸 세상을 향해 한걸음 다가서며 내린 최초의 자신들만의 결정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신기루라 하더라도 그 끝은 오아시스로 가는 길임을 알기에 은성과 보라는 어떤 일이 닥쳐도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