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표지, 색에 물들다. 점점이 떨어지는 핏빛 물결 같기도 하고 깊은 물속을 보는 듯 고요함을 느끼기도 한다. '투스'는 한족 황제의 책봉을 받은 티베트 영주라고 한다. 티베트와 한족의 접경지대를 배경으로 한 '색에 물들다'는 마이치 투스의 둘째 아들, 누구나 바보로 알고 있는 '나'의 시선으로 이 책은 시작되고 있다. 장자로 세습되는 투스, 이 권력의 자리에 오를 수 없는 바보 '나'는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낮춰 모든 사람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도 바보라고 생각하도록 놔 두었을 것이다. 왕뻐 투스와의 싸움에 마이치 투스가 한족의 황 특파원을 데려와 신식무기로 무장하고 왕뻐 투스를 무찌르는 것을 보며 그들의 권력과 삶이 어떤 식으로 이어져 내려왔는지 조금을 알 수 있게 된다. 황 특파원이 가면서 남기고 간 양귀비 씨앗. 이것으로 투스들간의 전쟁인 '양귀비꽃 전쟁'이 벌어지는 것을 보며 나는 왜이리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일까. 양귀비가 어디에 쓰이는지도 모르는 이들이 양귀비를 심고 은돈을 가지고 온 황 특파원이 보낸 사람들에게 이것을 팔아서 막대한 부를 누린다. 티베트 문화가 무너지는데 이것도 일조를 했을 것이다. 마이치 투스의 딸이 영국으로 간 것을 보면 이 곳 문화가 폐쇄적인 것은 아닌것 같다. '나'에겐 이 누나가 산채에 잠깐 다녀가며 냄새조차 역겨워 하는 것을 보며 오히려 누나에게서 나는 체취로 인해 구역질을 느끼게 된다. 비록 피가 섞인 누나지만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존재로 이질적인 느낌을 갖게 된다. 지참금을 가져가기 위해 이곳으로 온 누나는 그렇게 떠나고 다시는 볼 수 없게 된다. 양귀비가 막대한 이익을 남기게 되면서 이것을 심기 위해 투스들간에 목숨을 건 싸움이 벌어지지만 바람에 의해, 새에 의해 이 양귀비 씨앗은 멀리까지 퍼진다. 돈에 눈이 멀어 양귀비만 심어 식량이 없어 굶어죽는 사람들, 그러나 운명은 마이치 투스의 편이었다. 창고에 썩어나갈 정도로 많은 식량들, 이 일로 세상에 바보로 알려진 '나'는 똑똑한 사람보다 더 똑똑한 존재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행운? 운명? 어떤 것을 붙여야 할까. 무슨 말을 하든 아버지인 마이치 투스와 의견을 같이 하는 '나'. 내가 보기엔 사람들에게 바보인척 할 뿐이지 권력의 핵심에 다가가는 그의 몸짓에 역시 '투스'의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혀가 잘린 사관조차 그가 투스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해 혀뿌리까지 뽑히지 않았던가. 하늘은 형을 선택하지 않고 바보인 '나'를 선택했다. 아버지와 형을 죽이려는 자객을 그냥 둬 결국 투스의 자리에 가깝게 다가가는 '나'. 롱꽁 투스의 딸 '타나'를 아내로 얻음으로써 롱꽁 투스의 자리에 오를 수 있지만 마이치 투스로 인정받지 못하면 이 롱꽁 투스의 자리에 오르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아내 '타나'와 형의 불륜. 그러나 아내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그를 보며 역시 바보가 아닌가, 오히려 내가 화를 내게 된다. '나'가 바라보는 투스제도는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삶에 초연한 모습을 보인다. 권력의 중심에 있지만 비켜 서있는 듯한 '나'는 티베트의 운명을 벌써 본 것일까. 사관 웡버이시는 이들의 역사를 어떻게 기록해 놓았을까. 생성되고 소멸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지만 어디서나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이고 보면 새롭게 알게 된 티베트의 문화가 그리 낯설진 않다. 그들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핏빛보다 더 붉은 그들의 삶에 아릿한 아픔을 느끼게 된다.
서로에게 배터리가 되어 줄 수 있다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러나 타석에 선 선수에게 신경쓰는 것이 아닌 오로지 나가쿠라의 미트만 바라보고 공을 던지는 다쿠미를 가이온지가 걱정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로지 자신의 공을 받아줄 수 있는 사람만 본다니, 그러니 요코테와의 연습시합에서 나가쿠라가 무너지자 서로의 배터리가 되어주어야 할 다쿠미도 함께 무너져 버린 것이 아닌가. 배터리는 투수와 포수를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다쿠미와 나가쿠라의 거리는 18.44미터. 아주 빠른 속공을 던지는 다쿠미의 공은 요코테의 선수 천재 타자 가도와키의 승부욕을 건드린다. 천재 투수와 천재 타자중 누가 승리할 것인가. 사실 야구는 사람들이 하는 경기이고 보니 꼭 이 두 사람만의 싸움이라고 할 수 없어 닛타히가시 야구팀에서는 끊임없이 다쿠미에게 주지시키는 것도 이것이었다. 야구부 고문인 오토무라이는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다른 선수들과 어울려서 할 수 없다면 경기에 출전시키지 않을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의 실력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다쿠미에겐 이 말도 통하지 않는다. 오로지 던지는 것에만 집중하는 다쿠미와 다쿠미의 공을 치기 위해 훈련을 하는 가도와키, 동료 선수들은 모두들 가도와키가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책은 여섯권이긴 하지만 다쿠미와 나가쿠라가 어떻게 성장해 가는지 서로에게 어떻게 배터리가 되어주는지 보여주기에 사건들이 스피드있게 전개되지 않아 조금 지루하다. 4권부터는 그 내용도 비슷하고 요코테와의 연습시합에서 무너진 닛타히가시 야구팀이 3학년이 졸업한 후 봄에 요코테와 재경기를 하게 되며 이야기가 전개되기에 똑같은 이야기들이 반복되는 느낌이 든다. 전국대회 4위 요코테와의 시합, 한점도 내어주지 않겠다 말한 다쿠미는 첫 시합에서 무너졌다. 이 두 팀의 경기를 실감나게 볼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시간이 흐른 뒤 다쿠미나 다른이들의 기억속에서 이 경기가 언급될뿐이라 실망감을 느꼈다. 두번째 경기에서는 이들의 시합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일까. 야구부 고문인 오토무라이는 전 주장 가이온지에게 이 팀을 맡기고 요코테와의 시합을 관전한다. 나가쿠라를 타석에 세운 뒤 요시사다에게 포수의 임무를 맡겨보는 가이온지. 이소베는 이 같은 행동에 반발하고 이미 나가쿠라나 다쿠미의 마음속엔 누가 내 앞에 서든 던지고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때문에 가이온지의 지시를 수용하고 연습에 임한다. 아마 나가쿠라의 미트만 바라보는 다쿠미에게 투수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려주고 싶었던게 아닐까. 이 일로 한층 더 성숙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게 된 것 같다. 배터리 6권은 요코테와의 시합중에 끝이났다. 제대로 읽은 것이 맞는지 몇번을 다시 읽었는데 가도와키가 타석에 들어서고 다쿠미와의 승부가 어떻게 끝이났는지 알 수 없는 채 끝이 나 버렸다. 이후의 결말은 독자들에게 남긴 것이다. 두번째 요코테와의 시합 또한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다. 전체 여섯권에서 다쿠미가 나가는 시합은 선배와 후배들이 하는 청백전과 요코테와의 시합 두번뿐이다. 요코테와의 시합보다 오히려 배터리가 되어 시합에 나갈 수 있을지 없을지를 평가받던 청백전이 더 긴장감을 높였고 이후 요코테와의 시합은 좀 더 큰 시합에 나갈 수 있는 실력을 키우는 무대였던 셈이다. 여섯권에 나오는 시합이 고작 3번이라면 속도감이 얼마나 떨어졌을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야구만 하고 싶은 아이들에게 선배들의 린치로 야구부 활동이 중단되고 전국대회에 나가지 못한 3학년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 요코테와의 시합을 주선하는 오토무라이와 가이온지. 천재 타자 가도와키를 끌어내기 위해 다쿠미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어느것 하나 명확하게 결론이 난 내용은 없는 것 같다. 다쿠미의 동생 세하의 야구에 대한 열정, 전설속의 명감독 요조의 이야기도 함께 다루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닛타히가시 야구팀이 전국대회에서 요코테와 만나 정면승부를 겨루고 나아가 고시엔에 서는 다쿠미의 모습도 함께 볼 수 있었다면 여섯권의 책이 지루하게 느껴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점에서 많이 아쉬웠다.
잠깐 자고 일어났는데 세상은 나를 빼놓고 7년을 흘러갔다? 솔직히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여부를 떠나서 정말 끔찍할 것 같다. 물론 그 7년간 실종된 사쿠를 걱정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긴 세월이겠지만 사쿠에게는 이 7년의 공백기간이 슬프다. 거기다 첫 데이트의 아련한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사쿠에겐 이같은 일에 가슴이 더 아플 것이다. 신선들만 산다는 곳에 잠깐 있었는데 몇 백년이 흘렀다는 이야기처럼 전래동화에서나 일어날 일이다. 세상은 사쿠를 7년간 성장이 멈춘 괴물로 여긴다. 어른이 되는 것이 무섭다는 스나오를 꼭 지켜주겠다고 약속한 사쿠는 그녀와 함께 하지 못한 7년간의 세월을 이제 홀로 보내야한다. 스나오는 사쿠를 기다리며 어딘가에서 사쿠도 자신과 같이 성장하고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가지며 기다려 왔다. 이젠 열살과 열일곱살의 사쿠와 스나오지만 사쿠는 스나오에게 "널 지키기 위해 꿈을 꾼다"는 또 다른 약속을 한다. 사쿠와 스나오의 이야기가 더 이어졌다면 좋았을 것이다. 7년뒤 유학을 간 스나오를 만나러 가는 사쿠의 모습을 그려줬다면 사쿠를 바라보는 내 마음의 슬픔이 조금 덜어졌을텐데. 빨리 어른이 되어야 하는 사쿠에게 스나오는 삶의 희망이었기에 어떻게 어른으로 성장하는지 지켜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7년전의 모습으로 나타난 사쿠를 가족들은 따뜻하게 맞아준다. 물론 동생인 기미히코는 처음엔 믿지 않지만 역시 형이라고 인정해 준다. 스나오를 좋아하는 기미히코에겐 형이 나타나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느껴야 했을 것이다. 형이 돌아오길 바라며 기다려온 시간이지만 여전히 형을 생각하는 스나오를 마음에서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러나 비록 자신보다 어리게 보이는 사쿠지만 형이기에 형이 잘하는 축구를 통해 미련없이 스나오를 놓아준다. 나보다 키가 작고 어린 형을 진심으로 인정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사쿠가 7년간의 공백기간때문에 스나오를 포기했다면 동생에게 형 대접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을 향해 맞서주리라 용기를 가지게 된 것이 다행스럽다. 친구들이 먼저 간 세월을 따라잡기 위해 다시 초등학교로 향하는 사쿠. 그 모습이 왜이리 눈부실까. 사쿠의 담당의사 미키는 사쿠의 말을 믿어주고 의지처가 되어준다. 미키 선생님은 사고로 죽은 여동생도 사쿠처럼 나타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쿠를 통해 위안을 얻지 않았을까. 아픔이 있는 사람들만이 공감할 수 있기에 더 많은 것을 알 순 없지만 미키 선생님의 존재도 신비에 싸여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의 시선을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가지 못할 사쿠, 비록 괴물 취급을 받겠지만 분명 훌륭하게 그 시간을 잘 버텨낼 수 있을 것이다. 7년간의 세월이 한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특히 성장기 아이들에겐 치명적일 수 있다니, 지켜야 할 여자가 있고 함께 해야할 가족이 있는 사람에겐 단 하루의 시간도 소중하지 않을리가 없으니. 사쿠가 보낼 7년은 혹독하겠지만 다시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스나오만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평생을 사람들의 시선속에서 벗어나지 못할 사쿠, 더 나이가 많아 보이는 동생이 형으로 보일테니 사쿠는 죽을때까지 자신이 잃어버린 7년간의 세월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갑자기 내가 보내고 있는 이 시간이 소중하게 여겨진다. 혹 내 마음속에서도 "잠깐 자고 가자"는 울림이 들려오지 않을까 두렵다. 어른이 된다는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사쿠를 생각하며 그가 간직한 첫사랑의 아련한 느낌을 나도 함께 느껴본다.
다쿠미를 "공주님"으로 부르는 요코테의 미즈가키. 솔직히 자꾸 농담처럼 "공주님"이라고 부르는데 짜증이 났었다.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얕보는 것인지, 야구에 대해 많은 것을 아는 것도 아니건만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듯이 나가쿠라와 다쿠미를 대하는 것을 보며 슬슬 지겨워지던 참이었다. 닛타히가시의 연습시합의 타석에 선 미즈가키는 진지하지 않았고 말장난으로 나가쿠라와 다쿠미를 상대했다. 야구공을 줍기 위해 달려가는 나가쿠라의 발을 걸지를 않나, 다쿠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려고 왔겠지만 다쿠미에게 당해도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타자를 겨냥하고 공을 던진 다쿠미의 행동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미즈가키가 진지하지 않아 놀아주려고 했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배터리 5권은 특별한 사건없이 느리게 시간이 흘러간다. 요코테와 봄에 있을 시합을 위해 닛타히가시 야구팀이 준비하는 모습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인지 4권의 내용과 비슷하다는 생각에 지루해서 좀이 쑤신다. 선배들과 한 청백전, 요코테와의 연습시합, 그리고 또 요코테와의 시합을 앞둔 닛타히가시, 야구하나 하려는데 막아서는 것들이 너무 많아 진정 시합다운 시합은 보지 못했다. 그저 무수히 많은 갈등과 나가쿠라와 다쿠미의 캐치볼만 본 것 같다. 처음 나가쿠라와 다쿠미가 배터리가 되어 시합에 나갈 수 있을지 그 실력을 테스트 받던 그 때는 긴장감이 고조 되었었다. 그러나 그 뒤부터는 지리한 일상이 계속되는 느낌이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마운드에 선 다쿠미의 땀 흘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 야구를 이기고 지는 문제를 떠나 오로지 공을 던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다쿠미만이 아니다. 요코테의 에이스 투수 유토도 다쿠미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런 것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다만 야구공을 던질뿐이다. 참 대단하다. 승부와 상관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이렇게 순수한 모습만 보여도 되는 것일까. 지금까지 배터리의 내용은 다쿠미와 나가쿠라에 시선이 맞춰져 있어 그 외에 다른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도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아이들이 있었으니 야구하나로 이들이 전국대회에서 만났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기대감을 갖게 한다. 천재 타자 가도와키와 천재 투수 다쿠미의 대결은 불가피할 것이다. 숙명적이라고 할만하다. 이번에는 가도와키를 무너뜨렸다고 스스로 자멸하는 나가쿠라와 다쿠미가 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이번 책의 또 다른 이야기는 요코테의 배터리 유토와 다쓰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기는 이미 닛타히가시와 요코테가 시합을 치룬 뒤였다. 어떤 결과가 나왔길래 요코테의 배터리가 이렇게 긴장하는 것일까. 배터리 6권에서는 시합다운 시합을 보게 되는 것일까. 배터리 여섯권은 너무 긴 호흡을 필요로 한다. 땀냄새가 나는 야구가 아닌 그저 말장난뿐인 글들을 읽은 느낌이라 6권에서는 뭔가 다른 이야기가 들어있길 기대해 본다.
대한민국에도 원주민이 있었나? 이 책의 저자 최규석은 원주민이란 "자신들의 과거와 삶의 방식이 자연스런 형태로는 남아 있지 않은 사람들을 뜻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원주민일까, 아닐까. 깊이 생각해 보니 지나온 어린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을 보면 나도 원주민인가 보다.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하고 밤늦게 들어가 보면 평상에 앉아 이웃들과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던 어른들의 모습을 많이 그리워하고 있으니까. 현재 삶의 질은 높아졌는지 모르지만 사람들간의 마음속 거리는 보이지 않을 정도라 그 시절이 참 그립다. 최규석의 "대한민국 원주민"을 보면 드라마나 책을 통해 그리고 어른들의 그리움을 통해 많이 접해온 내용들이다. 옛것들은 이제 박물관에 가서야 찾을 수 있는 시대, 사람들은 그 시절을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 땐 가족들의 유대감이 있었고 이웃들 또한 내 일처럼 도와주던 시대라 공동체가 되어 살아가던 시절이니 못먹고 힘들게 살았어도 오히려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까. 고향땅은 이제 도심속으로 변해버려 낯선곳이 되어 버렸지만 여전히 나의 기억속에는 그 곳이 존재하기에 그저 기억만을 떠올려 볼 뿐이다. 저자 최규석과는 나이차이가 별로 나지 않건만 나의 어린시절의 기억과 왜이리 다를까. 같은 시대를 살았어도 다른 세계를 살아 온 사람들, 아마 나는 여기에 해당되는 걸까. 고무신을 신어도 놀림을 받지 않는 시골로 가자고 한달내내 학교를 다녀오면 울기부터 했던 책속의 '나'는 계층간의 차이를 그때부터 알게 되었을 것이다. 어렵게 살아온 시간이지만 옛일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대한민국 원주민", 곳곳에 가난이 덕지덕지 묻어있지만 읽는동안 나는 이 가족의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그땐 그랬으니까. 그렇게 사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을테니까.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를 읽어보지 못했다. 저자 최규석의 책은 이 책이 처음이다. 요즘 세대 아이들은 이 책을 봤을 때 얼만큼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살아온 이야기도 누군가에겐 전혀 낯설고 생소한 이야기가 되겠지. 나무에서 쌀이 열리는 줄 아는 아이들도 있다는데 그러고보면 이미 내 삶도 박물관에 전시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왜이리 슬플까. 그때 그때 참으로 치열하게 살아온 내 삶이 깡그리 없어지는 듯한 느낌, 누구와도 공감하여 나눌 수 없는 나의 시간들이 닫혀버린 것 같다. 오직 나의 가슴속에만 살아있는 이야기들. 대한민국 원주민들은 지금도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예전 가난했던 어린시절을 진저리치며 주먹을 불끈 쥐고 오늘도 땀흘리며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