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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지키기 위해 꿈을 꾼다
시라쿠라 유미 지음, 신카이 마코토 그림, 김수현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잠깐 자고 일어났는데 세상은 나를 빼놓고 7년을 흘러갔다? 솔직히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여부를 떠나서 정말 끔찍할 것 같다. 물론 그 7년간 실종된 사쿠를 걱정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긴 세월이겠지만 사쿠에게는 이 7년의 공백기간이 슬프다. 거기다 첫 데이트의 아련한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사쿠에겐 이같은 일에 가슴이 더 아플 것이다. 신선들만 산다는 곳에 잠깐 있었는데 몇 백년이 흘렀다는 이야기처럼 전래동화에서나 일어날 일이다.
세상은 사쿠를 7년간 성장이 멈춘 괴물로 여긴다. 어른이 되는 것이 무섭다는 스나오를 꼭 지켜주겠다고 약속한 사쿠는 그녀와 함께 하지 못한 7년간의 세월을 이제 홀로 보내야한다. 스나오는 사쿠를 기다리며 어딘가에서 사쿠도 자신과 같이 성장하고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가지며 기다려 왔다. 이젠 열살과 열일곱살의 사쿠와 스나오지만 사쿠는 스나오에게 "널 지키기 위해 꿈을 꾼다"는 또 다른 약속을 한다. 사쿠와 스나오의 이야기가 더 이어졌다면 좋았을 것이다. 7년뒤 유학을 간 스나오를 만나러 가는 사쿠의 모습을 그려줬다면 사쿠를 바라보는 내 마음의 슬픔이 조금 덜어졌을텐데. 빨리 어른이 되어야 하는 사쿠에게 스나오는 삶의 희망이었기에 어떻게 어른으로 성장하는지 지켜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7년전의 모습으로 나타난 사쿠를 가족들은 따뜻하게 맞아준다. 물론 동생인 기미히코는 처음엔 믿지 않지만 역시 형이라고 인정해 준다. 스나오를 좋아하는 기미히코에겐 형이 나타나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느껴야 했을 것이다. 형이 돌아오길 바라며 기다려온 시간이지만 여전히 형을 생각하는 스나오를 마음에서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러나 비록 자신보다 어리게 보이는 사쿠지만 형이기에 형이 잘하는 축구를 통해 미련없이 스나오를 놓아준다. 나보다 키가 작고 어린 형을 진심으로 인정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사쿠가 7년간의 공백기간때문에 스나오를 포기했다면 동생에게 형 대접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을 향해 맞서주리라 용기를 가지게 된 것이 다행스럽다.
친구들이 먼저 간 세월을 따라잡기 위해 다시 초등학교로 향하는 사쿠. 그 모습이 왜이리 눈부실까. 사쿠의 담당의사 미키는 사쿠의 말을 믿어주고 의지처가 되어준다. 미키 선생님은 사고로 죽은 여동생도 사쿠처럼 나타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쿠를 통해 위안을 얻지 않았을까. 아픔이 있는 사람들만이 공감할 수 있기에 더 많은 것을 알 순 없지만 미키 선생님의 존재도 신비에 싸여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의 시선을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가지 못할 사쿠, 비록 괴물 취급을 받겠지만 분명 훌륭하게 그 시간을 잘 버텨낼 수 있을 것이다.
7년간의 세월이 한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특히 성장기 아이들에겐 치명적일 수 있다니, 지켜야 할 여자가 있고 함께 해야할 가족이 있는 사람에겐 단 하루의 시간도 소중하지 않을리가 없으니. 사쿠가 보낼 7년은 혹독하겠지만 다시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스나오만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평생을 사람들의 시선속에서 벗어나지 못할 사쿠, 더 나이가 많아 보이는 동생이 형으로 보일테니 사쿠는 죽을때까지 자신이 잃어버린 7년간의 세월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갑자기 내가 보내고 있는 이 시간이 소중하게 여겨진다. 혹 내 마음속에서도 "잠깐 자고 가자"는 울림이 들려오지 않을까 두렵다. 어른이 된다는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사쿠를 생각하며 그가 간직한 첫사랑의 아련한 느낌을 나도 함께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