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의 산책
구로 시로 지음, 오세웅 옮김 / 북애비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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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제 1회 일본 괴담 문학상 장편부문 대상 수상작"이다.

표지에 보이는 시퍼런 얼굴의 여자 모습이 섬뜩하다. 책 속에 등장하는 다섯 살 치아키에게만 보이는 이 여인의 정체는 정녕 "엄마"인가. 타쿠로는 아내가 죽고 치아키를 홀로 키운다. 호러소설을 쓰는 작가인 타쿠로는 집 안에서 일을 할 때가 많고 서재에서 치아키는 그림을 그린다. 엄마에게 물려받은 재능, 그러나 타쿠로가 이해하지 못하는 끔찍한 그림을 그리는 치아키를 보며 그는 어린아이들에게만 보이는 것이라 단정짓고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렇게 무심할 수가 있을까. 시퍼런 얼굴을 한 여자의 얼굴을 그리며 "엄마"라고 하는데 영정사진을 보여주며 "엄마와 다르다"고 이야기 할 뿐이라니, 이런 타쿠로의 행동으로 주위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밤 11시의 산책"의 내용 전개가 느려지기도 한다.

 

미키는 타쿠로와 결혼한 후 매일 악몽을 꾼다. 늘 나타나는 시퍼런 얼굴의 여자, 자신이 이 시퍼런 얼굴의 여자를 닮아가고 있었다. 쇼이치의 딸 히토미가 치아키와 함께 있다 며칠 뒤 자살을 하는 등 치아키 옆에 있었던 이들에게 이상한 일들만 일어난다. 아내를 좋은 곳에 보내야 한다는 주변의 이야기를 귓등으로 흘려버리는 타쿠로가 아내의 방을 뒤져 단서를 찾고 아내와 친하게 지낸 마야미를 찾아나서기 시작한다. 벌써 늦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는 시퍼런 얼굴의 여자, 왜 가족도 아닌 이들에게도 이 여자가 나타나는 것일까. 꿈에서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치아키를 만난 사람들에게 다 나타난다고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시퍼런 얼굴의 여자의 목적이 무엇인지 명확하지가 않다. 단지 타쿠로의 곁에 있고 싶어서? 집을 나간 뒤 들어오지 않는다는 마야미는 어떻게 된 것일까. 죽은 것일까. 

 

밤 11시마다 산책을 가자고 하는 치아키, 시퍼런 얼굴의 여자뿐 아니라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것들을 그리는 치아키를 보며 책장을 넘기는 것이 섬뜩하다. 독자가 볼 수 있게 책 표지에 그려놓은 시퍼런 얼굴의 여자를 계속 보는 것도 두렵다. 과연 타쿠로는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그녀를 떨쳐냈을까. 과거를 보여주는 종이연극을 본 타쿠로, 묘지에서 미키가 본 종이연극과 달랐다. 이제 이 가족은 행복해질 수 있을까. 마야미와 미사코가 완성하지 못한 종이 연극은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미사코는 치아키를 구하기 위해 그동안 어떤 일을 했는가. 시퍼런 얼굴의 여자가 "엄마"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마야미의 힘을 제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모성애로 치아키를 지켜주리라. 아이에게 헌신하려는 미키를 보며 재혼한 신랑에게도 마음을 열 것이다. 좀 더 명확한 결말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는지, 중간에 이야기가 끊어진 느낌이 들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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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책
클라이브 바커 지음, 정탄 옮김 / 끌림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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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무 생각없이 표지를 봤었는데 단편 '피의 책'을 읽고 나서는 표지에 손을 대는 것조차 두렵다. 망자들이 다니는 길인 교차로가 있다. 톨링턴 가 65번지, 이 곳에서 에식스 대학의 초심리학 연구팀이 맥닐을 영매로 써서 사후 세계의 증거들을 기록해왔다. 맥닐은 망자들을 불러내고 망자들은 황토색 벽에 자신의 이야기들을 남긴다. 하지만 벽에 남긴 글들은 망자들이 남긴 것이 아닌 맥닐이 쓴 것으로 그는 사기꾼이었다. 망자들은 이 맥닐을 가만놔두지 않는다. 부서진 물병 조각이 날카로운 바늘이 되어 맥닐의 몸에 그들의 이야기들을 쓰기 시작한다. '피의 책', 망자들은 신체 어느 부분, 눈꺼플조차 공간을 남겨두지 않고 빽빽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들을 남긴다. 망자들이 남긴 이야기들이 이 책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쯤되면 표지를 만지는 것조차 무서워지고 밤에 책을 읽는 것이 얼마나 소름끼치는 일인지 깨닫게 된다.

 

망자들이 남긴 이야기라고 하지만 딱히 그들이 어떻게 죽임을 당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여타의 추리소설과 다를 바 없이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단편들을 엮어 나가고 있다. '피의 책'이라는 첫 시작이 괜찮았다. 공포의 서막을 올렸고 그 뒤에 등장하는 단편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을 읽으며 가슴이 제어가 되지 않을정도로 쿵쿵 나의 몸을 흔들어 버린다. 피의 책이 되어버린 남자의 표지 밑에 지하철이 온통 피로 물든 그림, 아 이제야 이 책이 나에게 어떤 공포심을 선사하는지 그 끝을 알 수 없어 두려워진다. 내 머릿속에서 상상으로만 공포심을 준 것들이 이제는 실체를 가지고 다가오게 된다.

 

꼼꼼하게 면도질 당한 상태, 실오라기 하나 없는 알몸의 시체는 지하철의 손잡이에 발부터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검은 플라스틱 통이 시체의 상처에서 계속 흘러내리는 피를 받고 있고 이 '로레타 다이어'의 시체가 열차 차량 안에서 발견된다. 이 얼마나 자세한 설명인가. 어떤 상태인지 이미 머릿속에서 그 형상이 그려지고 있다. 속은 거북해지고 이 단편에 등장하는 카우프만이 다음 희생자가 되지 않을까 가슴이 두근거린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과연 카우프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잔인하고 끔찍한 살육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열차 안에는 고깃덩어리로 변한 시체들이 계속 지하철 손잡이에 걸리게 된다. 살인범 마호가니를 카우프만이 죽여 버려 그의 살육은 멈춰지지만 이 후 이 살육은 계속 되고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도시의 아버지가 시체들을 원하는 한.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 단편을 읽고 난 후 그 뒤엔 또 어떤 끔찍한 이야기들이 있을까 긴장하게 되지만 이후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공포심을 반감시킨다. 단편 '야터링과 잭'은 잭을 무너뜨리려는 악마 야터링의 존재가 귀엽기까지 하고 '피그 블러드 블루스'는 거대한 돼지가 인간의 목소리를 내며 사람들을 잡아먹지만 그리 현실감있게 다가오진 않는다. '섹스, 죽음 그리고 별빛'은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같지만 이미 죽은이들이 무덤에서 나와 자신만의 연극을 하고 이들에게 죽임을 당한 이들이 영원한 삶을 얻어 또 다른 연극 무대를 향해 떠나는 모습을 그리고 있어 그 실체를 바로 앞에서 본다고 해도 그리 무섭지 않을 것 같다.

 

단편 '언덕에, 두 도시'는 무엇을 이야기 하고 있는지 솔직히 이해하기 힘들고 '드레드', '로헤드 렉스'는 자주 접하는 내용들이라 불편감없이 아주 편안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너무 강력한 공포심을 유발한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을 먼저 읽었기 때문일까. 공포심이 반감되거나 느낄 수 없고, 여타의 추리소설처럼 비슷한 느낌을 갖게 하는 단편들이 조금 아쉽게 다가온다. 아마도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에서 느낀 공포심을 끝까지 느낄 수 있길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장편소설인줄 알았는데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어 다른 빛깔을 담은 이야기들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을 장편소설로 엮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아쉬움을 느끼며 "피의 책" 마지막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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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0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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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두 발 보행 로봇 흉내'는 어떻게 내는 것일까. 판타지 청춘소설인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가 너무 재밌어서 마지막 책장을 덮은 지금 '두 발 보행 로봇 흉내'나 '궤변춤'을 추고 싶어진다. 책에서 설명한대로 '궤변춤'을 추자니 고릴라가 걸어가는 듯 한데 설마 이렇게 추는 춤은 아니겠지?

 

흑발의 귀여운 아가씨가 나타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간다. 여학생이 '선배'라고 부르는 '그'는 그녀와 우연을 가장하고 자주 마주쳐도 "어쩌다 지나는 길이었거든. 그런데 넌 어째서 이런 곳에?"라고 말할 뿐 고백다운 고백도 해보지 못하는 숙맥이다. 그녀도 그렇지, 이쯤되면 운명이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나? 자신을 좋아한다고 눈치챌만도 하건만 그의 마음을 몰라주는 그녀가 야속하다.  

 

그와 그녀가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하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이야기 하는 화자가 그녀라고 생각하고 읽다 보면 '그'이고 '그'라고 생각하고 읽다보면 '그녀'인지라 이런 헷갈림만 없다면 오롯이 빠져들어 이 몽환적인 세상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누가 이야기 하는지 따로 표시해 줬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뭐 '히구치 씨'나 '하누키 씨'가 헷갈리는 나이고 보면 제대로 정신 차리고 책 읽기는 쉽지 않다.

 

기야마치에서 시작하여 본토초 일대의 밤길 순례기, 이 몽환적인 분위기의 거리에서는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못할 법한 일들을 볼 수 있다. 가짜 전기부랑을 제조하는 이백, 흑발의 그녀를 따르는 그의 바지와 속옷을 벗기는 기행을 일삼는 이 이백의 모습은 3층짜리 전차를 타고 다녀 애니메이션에서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존재로 여겨진다. 어디 이것만 이상한가. 이 전차의 오래된 연못으로 도도씨의 잉어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만 봐도 이것이 현실이라고 믿기 힘들 것이다. 헌책시장에 나타난다는 '헌책시장의 신'까지 꼭 하룻밤의 꿈 같은 상황들 뿐이다.

 

대학축제에서 그녀를 열심히 따라다니는 선배라고 불리는 '그', 그녀와 같은 장소에 머물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괴팍왕>이라는 연극에서 마지막을 장식한 두 사람. 아마도 이 때부터 그녀의 기억속에 그가 자리잡기 시작했을 것이다. 물론 여전히 자주 마주치는 선배의 우연한 만남을 깊이 생각하지 않긴 하지만 자주 보이던 선배가 보이지 않을 때 감기라도 걸린게 아닌지 걱정한다. 감기의 신이 지나간 자리는 죄다 감기환자들 뿐이다. 거리는 텅 비었고 모두 끙끙 앓아댄다. 그녀가 문병 와주길 바라지만 그녀에게 자신의 소식을 전해줄 이들도 모두 감기로 누워있다. 앞으로 그와 그녀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 시종일관 유쾌하다. 커다란 비단잉어를 등에 매고 대학캠퍼스를 누비고 다니는 그녀, 달마오뚝이공주의 역할을 맡은 그녀의 모습은 전혀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사람들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은 망상속에 살고 있는 '그'와 너무 잘 어울린다. 이 두 사람의 만남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그 끝을 모른 채 마지막 책장을 덮어야했지만 분명 지금까지보다 더 기괴한 일들을 겪으며 그들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을까. 하늘로 붕붕 날아오르며, 회오리바람을 타고 저 먼 곳에서 날아와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은 거리. 오늘밤에도 이백은 그녀에게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라는 말을 해주고 있을 것이다.

 

내 머릿속으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곳, 바람아~나도 여기로 데려가 주면 안되겠니? 가짜 전기부랑도 마셔보고 싶고 갖고 싶은 책을 얻기 위해 이백이 제공하는 뜨거운 음식도 먹으며 버텨보고 싶다. 밤새도록 이들과 함께 하며 추억을 만들 수 있다면 참으로 행복할텐데, 책으로만 바라봐야 한다는 것은 너무 고통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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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 우산을 펼치다 - 세상으로의 외침, 젊은 부부의 나눔 여행기!
최안희 지음 / 에이지21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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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우산을 펼치고 걸을 때면 온 세상에 홀로인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땅을 보고 걷다 보면 타인의 발끝만을 바라보게 되는 세상, 그 곳에서 나는 온전히 혼자가 되는 것이다. '마음속 우산을 펼치다'는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부부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특별하지 않은 그들이 일상을 떨쳐버리고 인도, 네팔을 여행하는 것을 보며 부럽기도 하지만 여행을 가지 못하는 이유를 수십가지는 만들어 낼 수 있는 나의 상황을 보며 나는 그저 내 인생에서 비겁자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

 

비행기를 타기 전 핸드폰을 놔 두고 용감하게 새로운 세상을 향해 한걸음 내딛는 그녀, 하루라도 핸드폰이 없으면 갑갑하고 불안해져서 살 수 없을텐데 핸드폰과 연결된 인연의 고리를 끊음으로써 홀로서기의 시작을 하게 된다. 사람들은 왜 여행을 떠나고 싶어할까. 갑갑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고 자신의 상황이 더 잘 보이는 세상으로 떠남으로써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기 위함일 것이다. 물론 일상의 지루함을 떨쳐버리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싶어 떠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현실을 버리고 훌쩍 떠나지도 못하는 용기 없는 내가 이 책을 읽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부부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 보고 싶은 욕망때문이다.

 

책을 통해 만족감을 느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물론 간접적으로 발자취를 따른다는 것이 얼마나 큰 만족감을 줄 수 있겠냐만은 그래도 산을 오르내리는 상황에서도 이 길을 인생에 비유하는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여행지에까지 현실의 무게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하기에 오히려 나는 갑갑함을 느꼈다. 인도에서 거지를 보며, 아픈 사람들을 보면서도 자신의 상황이 얼마나 행복한지, 그동안 손 안에서 버리지 못한 욕심을 생각하며 사색에 잠기는 그녀를 보노라면 자신을 버리기 위한 여행이 아닌 인생을 되돌아보기 위한 여행을 떠난 것 같아 아쉽게 느껴지는 것이다.

 

책이 중간을 넘어서면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해 준다. 이때부터가 진짜 여행같다. 새로운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것으로인해 나는 현실을 잠깐 잊을 수 있었으니까. 여행을 하면 사진을 빼고는 말할 수 없다. 흘러가는 시간을 기억속에 가둬두는 것, 그 시간을 더 잘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남긴다. 어딜가나 사진기로 사진을 찍어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sam. 평생 처음 사진을 찍는다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 앞에 나의 마음이 울컥하고 말았다. 거창한게 아닌 이 작은 사진 한장이 사람들에게 행복함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다니, 정말 감동적이었다. 사슴 고기를 비싸게 사 달라는 아이를 떼어버릴 생각만 했던 그녀와 다르게 남편 sam은 비싸서 사줄 상황이 아니라서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말을 하고 이것으로 아이에게 조그만 행복을 선사하게 된다. 아무도 사주지 않는다는 이 비싼 사슴 고기를 사진 받은 선물로 선뜻 내미는 아이의 눈망울이 먼 곳에 있지만 나의 마음까지 울려 버린다.

 

이 책속에 많이 등장하는 사진들, 어떤 상황에서 찍었는지 자세한 설명을 밑에 적어 놓았으면 좋았을텐데 이 부부가 보았던 세상을 사진속에서나마 볼 수 있어 좋았지만 이 사진은 무엇을 담은 것인지 짧은 설명이 없어 여행의 감동을 오롯이 느낄 수 없어 아쉬웠다. 이 여행이 부부가 함께 한 첫 여행이었을까? 또 다른 곳을 여행하게 된다면 더 많은 것을 말해주겠지.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캘커타의 마더 테레사라는 곳에서 봉사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일상속에 녹아들어 세상을 살아가는 나는 잠시 반성의 시간을 가진다. 이 세상엔 다른이들이 하지 않는 많은 일들을 나의 일처럼 묵묵히 해 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들로 인해 세상이 아직은 따뜻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참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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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옷을 입은 여인
윌리엄 월키 콜린스 지음, 박노출 옮김 / 브리즈(토네이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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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 제목이 '흰옷을 입은 여인'이긴 하지만 이 책속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진 않는다. 다만 로라가 결혼하는 퍼시벌 경을 파멸시킬 수 있는 엄청난 비밀을 가지고 늘 사건의 중심에 등장한다. 책 표지에 흰옷을 입고 계단 밑에 누워 있는 이 여인에게서 핏자국을 발견할 순 없지만 나는 이 여인이 죽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미 저자는 이 책을 처음 대면하는 독자들에게 자신이 등장시키는 '흰옷을 입은 여인'이 어떤 결말을 맞게 될지 미리 알려줌으로써 독자들에게 너무나 많은 단서들을 제공한다. 책속에서 화자로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친절한 설명 덕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훤히 알 수가 있어 아무 생각없이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 답답하게 여겨진다.

 

리머리지 가의 자매 로라와 마리안에게 수채화를 가르치게 된 월터 하트라이트, 그가 런던을 떠나기 전에 정신병원을 탈출한 '흰옷을 입은 여인'을 만난 것은 우연일까, 운명일까. 다음날 월터가 방문하게 될 리머리지 가에 대해 말하는 이 여인과의 만남은 솔직히 너무나 잘 짜여진 각본 같은 느낌이 든다. 마리안이 월터에게서 이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녀가 누구인지 금세 정체를 밝혀내고 흰옷을 입은 여인이 끔찍하게 생각하는 준남작이 로라와 결혼하게 될 퍼시벌 경이라는 추측은 누구든 할 수 있기에 나의 이런 생각에 무리는 없어 보인다.

 

그림 교사일뿐인 월터는 로라를 깊이 사랑하지만 이미 약혼자가 있는 로라를 위해 그는 그녀의 곁을 떠난다. 로라는 약혼자 퍼시벌 경에게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고백을 하여 그에게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그녀를 놓아주지 않는다. 이미 퍼시벌 경은 사랑이 아닌 로라의 재산이 목적이었으니까. 마리안의 곁에서 늘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로라에겐 결혼생활을 헤쳐나가는 것이 버겁다. 마리안조차 포스코 백작과 퍼시벌 경의 은밀한 대화를 엿듣는데까지는 성공하나 몸이 아파 오래 일어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로라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런데 마리안이 로라의 신혼집에 함께 살고 싶다고 했을 때 퍼시벌 경은 왜 반대하지 않았을까. 로라에게 돈을 받기 위해 서명을 강요할 때 분명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텐데 말이다. 친구인 포스코 백작조차 마리안을 적으로 돌렸을 때의 두려움을 이야기 하지 않았는가. 잠시 그 이유를 생각해 보지만 답이 떠오르진 않는다.

 

나는 월터가 만난 '흰옷을 입은 여인' 앤 캐서릭이 준남작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몸서리를 쳤을 때 이 준남작이 앤의 남편이며 그녀를 정신병원에 가뒀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퍼시벌 경과 결혼하는 로라에게 그의 사악함을 알려 결혼을 막으려고 했다고 예측했지만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앤의 모습이 로라와 흡사하다고 했을 때 나는 이미 퍼시벌 경과 포스코 백작의 계획을 짐작할 수 있었고 이 후에 로라의 삶이 어떻게 될지 거기에만 관심을 가졌었다. 그녀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로라의 남편 퍼시벌 경 뿐이라고 생각했기에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앤이 폭로하겠다는 엄청난 비밀, 그를 파멸시킬 수 있는 그 비밀을 없애려다 죽은 것이지만 내내 앤이 말하고자 한 비밀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가슴이 답답했다. 월터가 밝혀낸 이 비밀이 물론 퍼시벌 경을 파멸시킬 정도의 위력을 가지지만 이렇게 죽음을 맞는건 갑자기 사건이 끝나버린 느낌이 들어 거북하다.

 

결혼 전의 모습과 결혼한 후의 모습이 확연히 달랐던 퍼시벌 경, 그의 끔찍한 음모로 인해 희생된 사람도 있고 그 자신도 벌을 받았지만 이 사건으로 월터와 로라의 사랑이 이루어졌으니 다행인 것인가.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고 삶이 평화로워졌지만 '흰옷을 입은 여인'인 앤 캐서릭의 삶이 안타까워 가슴이 아파온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 월터와 로라가 얻게 된 행복, 앤 캐서릭이 그토록 원하던 리머리지 가의 무덤에서 안식을 찾을 수 있었음에 이 끔찍한 사건을 마음에서 털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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