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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일 1 - 불멸의 사랑
앤드루 데이비드슨 지음, 이옥진 옮김 / 민음사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700년의 기다림 끝에 다시 시작된 불멸의 사랑, '가고일'. 700년을 살아온 마리안네 엥겔을 정신분열증 환자라고 진단내리는 현대의 의료진을 나무라지 말자. 이 책을 다 읽은 나로서도 믿기 힘드니까. 이제야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왜 마리안네는 사라져야만 했을까. 그토록 오래 기다렸건만 그를 홀로 놔두고 사라진 마리안네, 그래서 이 두 사람의 사랑은 꼭 꿈속에서 일어난 일인 것 같이 현실감을 느낄 수 없게 한다.
자동차 사고로 화상 환자가 된 '나'는 어느날 마리안네 엥겔의 방문을 받는다. 오로지 이 병원을 탈출하게 되면 '자살할 것이다' 결심하는 그에게 마리안네는 '천일야화'의 세헤라자데처럼 조금씩 그녀와 그의 운명적인 만남을 이야기해줌으로써 삶에 애착을 가지게 만든다.
"너 화상 입었구나. 또. 이번이 세 번째 화상이야" 마리안네는 분명 그에게 세 번째 화상이라고 말했다. 주인공 '나'는 전생에 용병으로 끔찍한 화상을 입고 엥겔탈에 있는 마리안네의 간호를 받게 된다. 수녀와 용병, 그때도 끔찍한 화상을 입었었는데 지금도 이렇게 그녀와 화상 환자로 대면하게 되다니, 계속 이렇게 삶이 반복된다면 죽고 나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할 것인가. 죽음의 고통속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 그녀, 마리안네라면 이 고통쯤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 온몸이 화상으로 엉망이 된 그의 몸을 아무렇지 않게 만지고 700년동안 그를 잊지 못한 마리안네를 보며 그녀 또한 이 긴 세월동안 마음이 그리 편안하지 않았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어 두 사람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 또한 아프다.
용병인 그와 마리안네와의 사랑이 끔찍한 결말을 맞게 되리란 것을 누가 알려주진 않았지만 이 두사람의 사랑이 결코 행복한 결말을 맞게 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수녀와 용병의 사랑, 누군가 시기하여 이 둘을 갈라놓지 않을까 내내 불안했었다. 마리안네가 화상을 입은 현재의 그에게 나타났을 때 두 사람이 아주 옛날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추억할 수 있었다면 그를 바라보는 마리안네의 눈빛에 깊은 슬픔이 담겨있진 않았으리라. 마리안네에게서 느껴지는 아픔은 결코 자신을 기억해주지 못하는 그에게 느끼는 서운함이나 안타까움이 아니었다.
사랑, 죽음, 지옥, 자살, 종교, 구원 등 이 책에서 빠지지 않는 단어들을 보면서 마리안네가 그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과거 못다한 사랑을 위해 두 사람이 함께 한다는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다. 자살을 생각하는 그에게 마리안네는 분명 구원의 손길이 되어 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마리안네가 다시 그의 앞에 나타난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할 순 없다. 이 소설이 단테가 쓴 "지옥편"의 패러디라고 하지만 구원이니 지옥이니 이런 말들로 내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하기 보다는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지 못한 그녀가 그에게 못다한 말을 전하기 위해 왔다고 생각하련다.
온통 신비로운 이야기가 들어있는 '가고일'. '가고일'은 고딕 성당의 외벽을 장식하는 괴물 형태의 물받이 조각상을 말하는데 솔직히 '가고일'은 이 책의 제목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옮긴이가 언급한대로 "사랑과 사고"라고 해야 할 만큼 여기에 등장하는 사랑이야기는 독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가고일을 조각하는 마리안네로 인해 가고일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친숙하게 다가오지만 불멸의 사랑과 '가고일'은 역시 어울리지 않는다. 700년이라는 세월은 한 사람이 100년을 산다고 했을 때 7번은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긴 세월이다. 참으로 긴 시간이었을텐데 마리안네는 그 세월동안 어떻게 살았을까. 잠깐의 '사랑'으로 너무 오랜 세월 힘들어한 그녀를 보며 '사랑'이란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