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3 - 나의 식인 룸메이트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2
이종호 외 9인 지음 / 황금가지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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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엔 뾰족하고 긴 손톱을 가진 정체불명의 한 녀석이 문을 잡고 있다. 입안의 치아까지 날카로운 것을 보니 선량한 존재로 보이진 않아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책 제목인 '나의 식인 룸메이트'는 이 안에 있는 10편의 단편들중 하나의 제목을 가져왔는데 아주 탁월하게 잘 선택한 것 같다. 벽장속에 들어 있는 식인 룸메이트, 이 괴물은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능력까지 보유하고 있어 경찰에 신고해서 죗값을 치르게 하긴 힘들겠다. 사람들을 먹어치운뒤 모구를 뱉어내는 괴물을 첫 단편에 실어놓다니 처음부터 독자들의 힘을 빼는 작전일까.

 

각각 다른 색깔을 담고 있는 10편의 단편들로 인해 이 책을 읽는 것이 즐겁다. 근데 정말 즐겁다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일어날법한 일들을 다루고 있기에 책속에서만 국한된 내용이라고 마음 편하게 읽어서는 안될 것 같다. 물론 다음 단편에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궁금하다. 대부분의 내용이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인간의 욕심으로 만든 모든 것들이 다시 우리들에게 되돌아오는 것을 볼 때면 독자들의 가슴은 서늘해지고 섬뜩함마저 느끼게 된다. 

 

'공포'라는 것은 인간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지는 추상적인 개념이긴 하지만 이것이 나의 눈 앞에 실체가 있는 존재로 나타났을 때 나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책을 읽으며 느끼는 공포는 책을 덮어서 외면하거나 더이상 머릿속에 떠올리지 않으면 사라진다. 단지 등뒤로 스멀거리며 뭔가가 다가오는 느낌에 섬뜩하긴 하지만 직접 대면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충격보단 약할 것이다. 나는 마음속에 어떤 공포를 심어두고 있을까. 단편 '공포인자'를 보며 포비아(공포증)에 걸렸을 때 내가 대면할 환상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다. 고소공포증이나 유령공포증이 올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천길 낭떠러지를 내려다보며 과연 정우처럼 힘차게 발을 뗄 수 있을까, 침대 밑에서 스윽 나오는 귀신는 또 어떻게 물리칠 것인가. 아마도 귀신이 무서워 유미처럼 불을 끄지 못하는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이렇듯 공포는 한번 나를 덮치면 그 속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 쉽지 않아 실체가 없다고 무시할 수가 없다.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다시 그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분명 살아가는 동안 내내 잔혹하게 나를 덮쳐올 것이다.

 

초자연 현상을 다루고 있는 단편들은 그저 애써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가볍게 읽을 수 있겠지만 단편 '은혜'나 '얼음폭풍', '스트레스 해소법'은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벌어진 사건들을 다루고 있어 외면하기가 쉽지 않다. 뉴스에서 오늘의 사건사고에서 심심치 않게 들어온 일들이니까. 물론 혹자는 이 단편들은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할지 모르지만 세상에 제일 무서운게 '사람'이더라고 사람에 의해 저질러진 사건들이 더 큰 공포심을 심어주니 이 범주에 넣는데 무리는 없다고 본다.

 

끔찍하고 무서운 이야기들만 있다고 이 책을 읽는데 주저하지는 말기를 바란다. "나는 전설이다"와 "셀"을 읽는 듯 당신을 즐겁게 해주는 단편 '붉은 비'가 있어 10편의 단편들을 읽으며 긴장된 마음을 조금은 풀어낼 수 있으니까. 뭐 더 무섭더라고? 물론 무섭지 않으면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에 들어갈리가 없었을테니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어야 할게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 또 다른 공포소설을 찾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니 이 증상에 너무 놀라지 말기 바란다. 이 책이 우리들에게 선사한 일종의 선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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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특별한 악마 - PASSION
히메노 가오루코 지음, 양윤옥 옮김 / 아우름(Aurum)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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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널린 섹시코드에 질리긴 했다. 워낙 날씬하고 예쁜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고 보니 평범하게 생긴 나는 발붙일 곳도 없더라. 평범한 나처럼 매력이 없다고 체념하고 사는 프란체스코, 그러나 프란체스코에게 찾아온 인면창 고가씨로 인해 그녀 또한 나와는 다른 인생을 살게 되니 이 책 또한 여성들의 피곤을 한방에 날려주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피곤함을 던져주는 건 아닐까.

 

나는 이 책을 읽는내내 마음이 불편해서 책장을 넘기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나에게 '성'에 대한 관념은 사람들에게 드러내기 보다는 억압하고 압박을 가하며 꽁꽁 싸매고 숨겨야 하는 섣불리 내뱉을 수 없는 금기어로 생각 되어 왔다. 그러니 자신의 신체 일부와 다름없는 '고가씨'지만 '성'에 대해 이렇게 솔직하게 대화하는 프란체스코를 보고 있는 것이 불편할 밖에. 혹자는 현실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을 소재로 삼아 우리들에게 아주 통렬한 깨달음을 주는 이 소설을 너무 심각하게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할지 모르겠다.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고가씨와 프란체스코의 솔직한 대화를 통해 마음자리가 시원해진다면 그것으로 된 것일까? 책속에 표현된 글들은 가까운 이들에게 내가 지금 어떤 내용의 책을 읽고 있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없게 해 나도 '고가씨'의 상담이 필요한게 아닌가 심각하게 생각해 볼 정도였다.

 

팔에 난 종기가 프란체스코의 아주 은밀한 부위에 자리잡게 된다. 동거라지만 이거 불편해서 어떻게 살아가나. '고가씨'라고 이름 붙인 이 인면창은 참으로 뻔뻔하고 말도 너무 직설적으로 하는 녀석이라 결코 가까이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악마같은 이 고가씨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분명 프란체스코에게 애정이 있어 이런저런 충고를 하는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몹쓸 여자~"라는 말은 너무 자주 들어서 독자인 나의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인데 큰 상처 받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프란체스코를 보고 있으면 "이 여자 참 착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아니 이렇게 매력적인 그녀를 왜 남자들은 그냥 보고만 있는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힘든 프란체스코에게 고가씨는 이제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다. 내 안의 악마가 사랑스러워진다? 고가씨와 프란체스코가 맞는 결말은 동화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오히려 이 상황에서 다른 결말을 맞는다면 이상해졌을 것이다. 1페이지에 3번은 웃게 된다는 이 둘의 대화에 몰입이 되지 않아 나는 아주 심각하게 읽었지만 소설속에서나마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작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가씨가 부끄러운 표현들에 얼굴을 붉히고 불편해하는 내 모습을 본다면 분명 너의 마음속에서도 프란체스코의 모습이 보인다고 말하겠지. 그렇다고 내가 고가씨 당신과 동거하고 싶다 말하겠수? 정말로 진짜 멋진 왕자님이 되어 나타난다는 보장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어쨌든 고가씨와 힘든 동거 끝에 맞이한 행복, 프란체스코가 계속 행복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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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일 1 - 불멸의 사랑
앤드루 데이비드슨 지음, 이옥진 옮김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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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년의 기다림 끝에 다시 시작된 불멸의 사랑, '가고일'. 700년을 살아온 마리안네 엥겔을 정신분열증 환자라고 진단내리는 현대의 의료진을 나무라지 말자. 이 책을 다 읽은 나로서도 믿기 힘드니까. 이제야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왜 마리안네는 사라져야만 했을까. 그토록 오래 기다렸건만 그를 홀로 놔두고 사라진 마리안네, 그래서 이 두 사람의 사랑은 꼭 꿈속에서 일어난 일인 것 같이 현실감을 느낄 수 없게 한다.

 

자동차 사고로 화상 환자가 된 '나'는 어느날 마리안네 엥겔의 방문을 받는다. 오로지 이 병원을 탈출하게 되면 '자살할 것이다' 결심하는 그에게 마리안네는 '천일야화'의 세헤라자데처럼 조금씩 그녀와 그의 운명적인 만남을 이야기해줌으로써 삶에 애착을 가지게 만든다.

 

"너 화상 입었구나. 또. 이번이 세 번째 화상이야" 마리안네는 분명 그에게 세 번째 화상이라고 말했다. 주인공 '나'는 전생에 용병으로 끔찍한 화상을 입고 엥겔탈에 있는 마리안네의 간호를 받게 된다. 수녀와 용병, 그때도 끔찍한 화상을 입었었는데 지금도 이렇게 그녀와 화상 환자로 대면하게 되다니, 계속 이렇게 삶이 반복된다면 죽고 나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할 것인가. 죽음의 고통속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 그녀, 마리안네라면 이 고통쯤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 온몸이 화상으로 엉망이 된 그의 몸을 아무렇지 않게 만지고 700년동안 그를 잊지 못한 마리안네를 보며 그녀 또한 이 긴 세월동안 마음이 그리 편안하지 않았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어 두 사람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 또한 아프다.

 

용병인 그와 마리안네와의 사랑이 끔찍한 결말을 맞게 되리란 것을 누가 알려주진 않았지만 이 두사람의 사랑이 결코 행복한 결말을 맞게 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수녀와 용병의 사랑, 누군가 시기하여 이 둘을 갈라놓지 않을까 내내 불안했었다. 마리안네가 화상을 입은 현재의 그에게 나타났을 때 두 사람이 아주 옛날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추억할 수 있었다면 그를 바라보는 마리안네의 눈빛에 깊은 슬픔이 담겨있진 않았으리라. 마리안네에게서 느껴지는 아픔은 결코 자신을 기억해주지 못하는 그에게 느끼는 서운함이나 안타까움이 아니었다.

 

사랑, 죽음, 지옥, 자살, 종교, 구원 등 이 책에서 빠지지 않는 단어들을 보면서 마리안네가 그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과거 못다한 사랑을 위해 두 사람이 함께 한다는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다. 자살을 생각하는 그에게 마리안네는 분명 구원의 손길이 되어 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마리안네가 다시 그의 앞에 나타난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할 순 없다. 이 소설이 단테가 쓴 "지옥편"의 패러디라고 하지만 구원이니 지옥이니 이런 말들로 내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하기 보다는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지 못한 그녀가 그에게 못다한 말을 전하기 위해 왔다고 생각하련다.

 

온통 신비로운 이야기가 들어있는 '가고일'. '가고일'은 고딕 성당의 외벽을 장식하는 괴물 형태의 물받이 조각상을 말하는데 솔직히 '가고일'은 이 책의 제목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옮긴이가 언급한대로 "사랑과 사고"라고 해야 할 만큼 여기에 등장하는 사랑이야기는 독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가고일을 조각하는 마리안네로 인해 가고일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친숙하게 다가오지만 불멸의 사랑과 '가고일'은 역시 어울리지 않는다. 700년이라는 세월은 한 사람이 100년을 산다고 했을 때 7번은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긴 세월이다. 참으로 긴 시간이었을텐데 마리안네는 그 세월동안 어떻게 살았을까. 잠깐의 '사랑'으로 너무 오랜 세월 힘들어한 그녀를 보며 '사랑'이란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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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의 마나님
다비드 아비께르 지음, 김윤진 옮김 / 창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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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래 제목은 "인간박물관"이라고 하는데 나는 "오, 나의 마나님"이 마음에 든다. 제목때문에 이 책을 남편에게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기도 하다. '오, 나의 마나님'은 남성성이 희미해지고 있는 한 남자의 고백? 안쓰럽긴 하지만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짐에 따라 남성들이 설 자리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건 사실이니 어찌 보면 성별간의 전쟁으로 볼 수도 있으나 그것보다는 담배 없이는 살아도 아내 없이 산다는 것은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한 남성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아내보다 월급이 적은 '나', 아내의 월급은 15% 인상되지만 '나'는 직장에서 잘리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다. 아내가 불륜을 저지른 대가로 월급이 오른게 아닌가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이 주인공은 집안 어디에서도 설 자리가 마땅찮아 걱정이다. 결혼전에는 혼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립형 인간이었으나 지금은 "양치질은 했느냐?"는 질문을 받을정도로 아내에게 의존하며 살아간다. 집안 일을 믿고 맡길 수 없는 아내는 그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 산책을 나가게 한다. 그러나 그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철저하게 감시하는 여자를 물색, 자신의 아이들까지 돌보게 만든다.  

 

아내와 아이들이 없을 때 72시간의 자유시간을 행복해 하는 그는 아내의 잔소리가 환청이 되어 들리고 질투심을 유발하는 아내 덕분에 이 자유시간마저 즐기는게 쉽지 않다. 이 남자의 일상이 우리네 가족의 일상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그의 처지가 불쌍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남성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자존심 상해서 읽는 것을 포기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그의 모습에 즐거워 웃음이 난다. 이들 가족사이에 '사랑'이 없다면 그의 고백을 들으며 내가 이렇게 편안하게 책장을 넘길 수 있겠는가. 그는 아이처럼 투정을 부리고 있을 뿐이다. 아내의 지위가 확고해질수록 왜소해지는 자신을 보며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음을 변명하고 한편으로 가족이 있음에 행복해 한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이 왜 "인간박물관"이었는지는 마지막에 가서야 알게 되는데 프레스코 벽화 앞에서 이 곳 인간박물관에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음을 큰딸에게 이야기 하는 그를 보며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그는 물론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 인간박물관에 있다는 생각에 내 가슴까지 뿌듯해진다. 누군가의 아내, 남편, 아들, 딸이었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피테칸트로푸스, 네안데르탈인을 보며 그렇게 생각해도 무리는 없지 않을까. 지금의 내 모습과 똑같진 않지만 말이다.

 

프랑스 문화를 잘 알고 있었다면 더 유쾌한 시간을 보냈을텐데 문화적인 차이때문인지 무슨 말인지 몰라서 웃지 못하고 심각하게 읽게 된 곳이 많다. 뒤늦게 웃음이 터지는 것이 아니고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 깊이 생각하다 보면 웃어야 할 시기를 놓치고 말아 조금 아쉽긴 하지만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기꺼이 남편과 아버지가 되어준 그로 인해 가족의 소중함은 물론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인간박물관에 당당히 자신의 자리를 갖고 있다고 말하는 그는 결코 왜소하게 보이지 않는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그의 모습이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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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랜덤 - 마법에 걸린 떠돌이 개 이야기
J.R.R 톨킨 지음, 크리스티나 스컬 & 웨인 G. 해몬드 엮음, 박주영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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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에 걸려 장난감이 되어 버린 '로버'. 로버도 억울하다. 어떻게 파란색 깃털 모자를 쓴 할아버지를 마법사와 구분한단 말인가. 그런데 깃털이 있으면 마법사란다. 늘 기억해 두기 바란다. 책속 세상이 아닌 지금 현실에서 이런 모자를 쓴 사람을 만난다면 이내 잊고 말겠지만 한번 돌아보긴 하겠다. 이 모자가 참 독특하니까.

 

어린 강아지 '로버'가 노란공을 가지고 놀고 있는데 이 노란색 공을 빼앗긴다면 파란색 깃털 모자를 쓴 마법사가 그 공을 들고 무엇을 고민하든 말든 로버는 화가 났을게 틀림없다. 그런데 자신의 소유인 노란공을 되찾기 위해 마법사의 바지자락을 물어뜯었기로서니 장난감으로 바꾸다니 마법사로서의 자질을 의심해 봐야겠다. 장난감으로 변해버린 덕분에 로버의 모험이 시작되지만 장난감으로 변해 다시 이 모험을 하겠느냐고 물어본다면 과연 로버가 "예"라고 대답할까? 다시 예전 모습으로 바꿔달라고 해도 외면하며 쉽게 바꿔주지 않는 '아르타제르젝스'를 믿을 수 없으니 섣불리 모험에 나서지 않는게 좋을 것이다. 

 

J.R.R 톨킨의 책은 "반지의 제왕"만 읽어보았는데 이마저도 영화를 보고 나선 완결편도 제대로 읽지 않고 책을 덮어 버린 기억이 있다. 그의 작품으로 두 번째 만나는 "로버랜덤"은 분명 처음 읽었던 "반지의 제왕" 같은 대작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소소한 기쁨을 주고 있다. 아들 마이클이 늘 가지고 다니던 강아지 인형을 잃어버려 크게 상심하는 것을 보고 톨킨은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아들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져서 내 마음까지도 따뜻해져 온다. 

 

달나라에는 화이트 드래곤이 살고 있다? 나는 토끼만 방아 찧고 있는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많이 있었다. 거미, 목에 종을 달고 있는 양, '로버'라는 이름을 가진 또 다른 개. 근데 이 '로버'란 이름은 아주 오래전부터 개에게 붙여주는 이름으로 주로 쓰였던 모양이다. 바다 강아지도 '로버'였으니까. 달 강아지 덕분에 '로버'의 이름은 '로버랜덤'이 되어 버렸는데 이 세상에 곳곳에 있는 '로버'란 이름을 가진 개들을 모아 두면 정말 어마어마 할 것 같다. 날개를 달고 달나라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모험을 하는 로버랜덤, 이 곳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을 일들이 없는 것 같다. 순수한 아이들이 꿈속에서나 올 수 있는 달의 뒤편 정원, 어떤 모습일지 선명하게 그려낼 순 없지만 참 따뜻한 곳일게다.

 

아름다운 인어 부인과 결혼한 마법사 아르타제르젝스, 인어 부인과 결혼하다니 참 복도 많지. 마법에 걸린 로버랜덤의 일이 결국엔 프사마토스와 아르타제르젝스의 자존심 싸움이 되어 버려 험난한 모험을 하게 되지만 함께 하고 싶은 소년을 만나게 되어 로버랜덤은 행복하다.

 

마법에 걸린 떠돌이 개 이야기라곤 하지만 그리 많이 떠돌아 다닌 것도 아니다. 장난감 크기의 작은 몸으로 이 세상 여기저기 다 돌아다니기엔 험난하고 힘들겠지만 모험이 너무 일찍 끝나 버려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쩌란 말인가. 로버랜덤이 들으면 으르렁 거리겠지만 내가 가보지 못한 세상을 보여주는 이 모험이 즐거워서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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