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 나의 마나님
다비드 아비께르 지음, 김윤진 옮김 / 창비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원래 제목은 "인간박물관"이라고 하는데 나는 "오, 나의 마나님"이 마음에 든다. 제목때문에 이 책을 남편에게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기도 하다. '오, 나의 마나님'은 남성성이 희미해지고 있는 한 남자의 고백? 안쓰럽긴 하지만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짐에 따라 남성들이 설 자리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건 사실이니 어찌 보면 성별간의 전쟁으로 볼 수도 있으나 그것보다는 담배 없이는 살아도 아내 없이 산다는 것은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한 남성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아내보다 월급이 적은 '나', 아내의 월급은 15% 인상되지만 '나'는 직장에서 잘리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다. 아내가 불륜을 저지른 대가로 월급이 오른게 아닌가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이 주인공은 집안 어디에서도 설 자리가 마땅찮아 걱정이다. 결혼전에는 혼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립형 인간이었으나 지금은 "양치질은 했느냐?"는 질문을 받을정도로 아내에게 의존하며 살아간다. 집안 일을 믿고 맡길 수 없는 아내는 그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 산책을 나가게 한다. 그러나 그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철저하게 감시하는 여자를 물색, 자신의 아이들까지 돌보게 만든다.
아내와 아이들이 없을 때 72시간의 자유시간을 행복해 하는 그는 아내의 잔소리가 환청이 되어 들리고 질투심을 유발하는 아내 덕분에 이 자유시간마저 즐기는게 쉽지 않다. 이 남자의 일상이 우리네 가족의 일상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그의 처지가 불쌍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남성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자존심 상해서 읽는 것을 포기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그의 모습에 즐거워 웃음이 난다. 이들 가족사이에 '사랑'이 없다면 그의 고백을 들으며 내가 이렇게 편안하게 책장을 넘길 수 있겠는가. 그는 아이처럼 투정을 부리고 있을 뿐이다. 아내의 지위가 확고해질수록 왜소해지는 자신을 보며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음을 변명하고 한편으로 가족이 있음에 행복해 한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이 왜 "인간박물관"이었는지는 마지막에 가서야 알게 되는데 프레스코 벽화 앞에서 이 곳 인간박물관에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음을 큰딸에게 이야기 하는 그를 보며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그는 물론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 인간박물관에 있다는 생각에 내 가슴까지 뿌듯해진다. 누군가의 아내, 남편, 아들, 딸이었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피테칸트로푸스, 네안데르탈인을 보며 그렇게 생각해도 무리는 없지 않을까. 지금의 내 모습과 똑같진 않지만 말이다.
프랑스 문화를 잘 알고 있었다면 더 유쾌한 시간을 보냈을텐데 문화적인 차이때문인지 무슨 말인지 몰라서 웃지 못하고 심각하게 읽게 된 곳이 많다. 뒤늦게 웃음이 터지는 것이 아니고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 깊이 생각하다 보면 웃어야 할 시기를 놓치고 말아 조금 아쉽긴 하지만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기꺼이 남편과 아버지가 되어준 그로 인해 가족의 소중함은 물론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인간박물관에 당당히 자신의 자리를 갖고 있다고 말하는 그는 결코 왜소하게 보이지 않는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그의 모습이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