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들려주는 101가지 지혜의 샘.

흐르는 강물처럼
파울로 코엘료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0월

 
제목이 마음에 들어 꼭 읽고 싶었는데 예전에 읽었던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책 뒷 표지에도 이런 문구가 있지 않은가. "빛나는 삶으로 이끄는 101가지 지혜의 샘"이라고, 뭐 의도해서 101가지 지혜의 샘을 이야기한 것은 아닐테지만. 하여튼 이 책은 종교적인 내용이 반 이상을 차지해서 읽는 것이 쉽지 않았다. 외국 에세이 장르라고 하지만 그다지 마음에 담기는 글이 많지도 않아서 조금 실망스럽다. 몇몇 구절은 기억해 두고 싶었지만 말이다.

 

저자는 꽤 오래전부터 이 글을 적었나 보다. 예전 집필할 때 있었던 일이나 세상을 다니면서 들었던 교훈적인 이야기들을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나도 살아가면서 이런 장르의 글은 꼭 써보고 싶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고 과거의 나의 모습을 반성하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흐르는 강물처럼' 유유히 그저 흘러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때론 바람에 강물이 흔들리고 퍼붓는 빗줄기에 차가워지지만 물은 깊을수록 고요하고, 어떤 것이든 품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졌기에 그런 강물이 되고 싶다.

 

최근에 파울로 코엘료의 책 "11분"을 읽어서일까 그가 언급하는 리우데자네이루, 코파카바나 해변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해 반갑다. 좋은 느낌을 가진 곳은 아니었지만, 저자의 책에 나오는 장소들이 그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을 보여주는 것 같아 더 가깝게 다가오는 것 같다. 일평생 살아가면서 모든 사람이 똑같은 인생을 살게 되진 않는데 작가로서 이만큼의 명성을 누리고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잠깐의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일들을 겪을 수 있다니 이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저자가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고 결코 평탄하게 살아온 인생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당신은 꿈꾸던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직은 인생이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하기에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늦지 않다고 말하지만 역시 내가 디디고 서 있는 이 곳을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 꿈꾸던 인생, 텔레비전 화면에서 보는 그런 화려한 인생을 원하지는 않는데 왜이리 마음이 허전한 것일까. 아마도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허탈해져서가 아닐까. 성장해서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성장하여 결혼하고 손자, 손녀를 보고, 또 그 손자, 손녀가 결혼을 하고.......이렇듯 끝도 없이 이어지는 삶속에서 "모두들 그렇게 사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드는 허탈감은 인생에 대해 많은 물음을 던지게 한다. 어렸을 때 그렇게나 궁금했던 "왜 태어났을까?", "나는 커서 무엇이 될까?", "사람은 죽어서 어디로 가나?"등은 아직도 나에게 명확한 답을 제시해 주지 못하고 있으니까.

 

죽음이 임박하여 "당신은 꿈꾸던 인생을 살았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자신있게 웃으며 "네"라고 대답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조금 더 성실한 삶을 살아야겠다. 저자가 제시하는 오늘을 살아가는 법, 이것이 꼭 정답은 아닐 것이다. 그의 인생을 보며 힘이 빠질 필요는 없다. 내가 살아갈 인생이 있는 거니까.

누가 그녀를 괴물이라고 부르는가.

아름다운 흉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1월

190㎝의 갈색피부를 가진 탄탄한 근육에 감싸인 그녀, 이 책에서 시종일관 "괴물", "타란툴라", "범인"으로 불리울뿐 한번도 이름이 등장한 적이 없다. 센도가 만들어낸 비밀병기, 이미 그녀는 센도에 의해 오래전 인간다움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센도가 있는 저택으로 다쿠마, 준야, 유스케, 쇼코가 잠입한다. 이미 이들의 움직임을 알고 있는 센도가 이들과 맞서며 사건이 시작된다. 도대체 이들은 어떤 관계에 있으며, 또 무엇을 찾으려 했던 것일까. 저자는 독자들에게 친절하게 그 사실을 처음부터 알려주지 않는다. 센도를 죽인 이들 네 사람을 쫓는 그녀가 무차별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며 복수를 하며 접근하는 사이 경찰들에 의해 사건이 파헤치고 다쿠마, 준야, 유스케, 쇼코의 독백에 의해 독자들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도록 할 뿐이다.

 

"저것은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다...." 도대체 누가 '타란툴라' 그녀를 괴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진짜 괴물은 그녀가 아니다. 궁지에 몰려 잃을 것이 많은 사람이 목숨의 위협을 받을 때 어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지, 이번에도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는 살인을 저지르는 그녀와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저지르는 인간의 모습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나는 '타란툴라', 그녀가 많은 이들을 죽였지만 잡히지 않기를 희망했다. 그리고 한 사람은 꼭 죽이기를 소원했다. 잔인하게 들리겠지만 센도도 죽을만 했다고 생각했다. 비밀병기로 길러진 그녀에게 어떤 잔인한 짓을 했는지 알게 되었으니까.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문제가 되는 '도핑', 최고로 만들어 주겠다는 유혹의 손길을 뿌리치지 못했던 사람들은 센도에 의해 인생 자체가 무너져 버린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서 행해진 일들이지만 '타란툴라', 그녀도 자신의 의지가 들어간 결과일까. 센도와 그녀의 관계에 대한 서술이 미흡해 보인다. 오래전 그녀를 봤던 쇼코의 기억에 의해 알려진 정보뿐이라 이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더 자세한 설명이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조금 아쉽다. 

 

'타란툴라' 그녀에게 센도는 어떤 존재였을까. 센도를 죽인 네 사람을 쫓을 때 그녀는 사회생활 자체가 익숙치 않아 보였다. 낯선 나라인 이유도 있겠지만 꼭 아이들이 세상을 처음 경험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오래전부터 센도에 의해 길러진 그녀에게 센도는 사랑하는 사람이고 세상 전부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센도에게 그녀는? 비밀병기 외에 다른 무엇도 아니었겠지. 그녀가 잃어야 했던 것들은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다쿠마, 준야, 유스케, 쇼코는 최고의 자리에 올라봤고 안정적인 직업과 가족을 얻었다. 자신들이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했지만 자신이 얻게 될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가진 것들을 다 잃어야만 했던 그녀에게 누가 '괴물'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을 것인가. '타란툴라' 그녀가 유스케의 아내 사요코를 보며 던진 말이 가슴에 박혀 떨어지지 않는다. 처음 그녀를 '괴물'로 생각하며 끔찍해 했던 나를 돌아보며 한동안 책을 손에서 쉬 놓을 수 없는 격한 감정에 휩싸인다.

사랑 그리고 용서.

구해줘
기욤 뮈소 지음, 윤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7월

 
나였다면 '샘'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까지 내 놓았을까. 아니,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상대를 알게 된지 단 며칠 뿐, 무엇을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운명의 상대를 알아보는데는 단 몇초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해도 말이다. 서로가 찾게 되기까지 몇 번의 엇갈림속에, 상대를 거부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서도 늘 망설이지만 '사랑'을 선택한 샘과 줄리에트. 단 1초의 어긋남이 있어도 만나지 못했을 이 두 사람의 '사랑'은 운명이라고 할만하다. 단 몇 초의 어긋남이라도 있었다면 이루어지지 못했을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운명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되리라.

 

프랑스로 떠나는 줄리에트를 샘은 잡지 않았다. 죽은 아내를 살아있다고 말함으로써 줄리에트와의 시간을 한시적으로 보내겠다 다짐을 했던 샘, 이것으로 이 두 사람의 시간은 끝이 난 것일까. 샘 앞에 나타난 그레이스, 경찰인 그녀가 줄리에트는 비행기를 타지 않았고 지금 살아있다고 했다. 비행기가 뜨기 전 샘에게 가기 위해 직원들과 실랑이를 벌이며 비행기에서 내린 줄리에트는 어느새 경찰들의 표적이 되어 있었다. 911 이후 미국이 테러에 대한 삼엄한 경계를 하고 있다고 해도 어떻게 줄리에트를 테러범으로 만드나, 이건 너무 웃기는 상황 아닌가.

 

그레이스가 등장하고부터 이 책이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지, 알수가 없다. 10년전에 죽은 그레이스는 비행기 사고로 죽었어야 할 줄리에트가 사고를 피했기에 그녀를 데려가기 위해 온 '사자'라고 했다. 죽음을 피한 것도 줄리에트의 운명일텐데, 꼭 죽어야 한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장면부터는 영화 '데스티네이션'이 생각났다. 이런 장르의 내용들이 워낙 많아서인지 "구해줘"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이 책을 읽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줄리에트를 데려가기 위해 왔다는 그레이스는 물리적인 힘을 가진 똑같은 살아있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같은 공간에서 숨 쉬는 그녀를 어떻게 '사자'로 생각한단 말인가. 유령처럼 손에 닿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 총에 맞아 죽은 것을 봤는데 다음날 다시 나타난 그레이스를 보며 이제야 그녀가 살아있는 존재가 아닌 '사자'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레이스가 줄리에트를 데려가기 위해 왔다고 하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자신의 딸 '조디'를 위험한 상황에서 구하고 샘에게 부탁하기까지, 그리고 그녀가 못다한 사랑을 이루고 떠나기까지 이 책은 샘과 줄리에트의 사랑이야기인지, 그레이스의 이야기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물론 그레이스와 샘의 관계로 봐서 그레이스가 죽은지 10년만에 이곳에 와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 이해는 하지만 그들의 감정에 몰입이 되지 않는다.

 

이 책은 '사랑'을 이야기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용서와 화해를 다루고 있다. 죽은 사람이 이 세상에 다시 나타나 생전에 사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니, 책이나 영화,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기욤 뮈소의 책들은 그 소재가 비슷한 것 같다. 줄리에트가 비행기를 타기전까지 두 사람의 이야기에 빠져들었으나 그 이후부터는 가슴이 따라가지 못해 무척 아쉬웠다. 샘과 줄리에트의 사랑은 둘에겐 애절하지만 중간에 나타난 그레이스라는 존재로 인해 그 사랑조차 희석되는 느낌이다. 그레이스, 그녀의 딸 '조디'에 대한 사랑이 더 커 보였으니까.

"우리 연애할래요?" 9명의 그녀들이 이야기 하는 '사랑'.

장미 비파 레몬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10월

에쿠니 가오리의 책을 몇 권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녀의 글이 좋다. 작가가 생각하는 바를 강하게 드러내지 않고도 마음속에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9명, 그녀들의 달콤 쌉쌀한 사랑, 한 사람에게 스포트 라이트를 비추는 것이 아닌 한페이지 한페이지마다 주인공이 달라지는 [장미 비파 레몬]을 통해 타인의 삶과 사랑을 알아간다. 사람들이 달라 누구의 이야기인지 한참 읽은 후에 알 수 있어 빠르게 넘어가는 드라마를 보는 듯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이런 점이 나의 일상에 더 가깝게 다가오기도 한다.  

 

정말 '사랑'이 무엇일까. 서로를 바라보는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일까. 꼭 이루어져야만 '사랑'인 것일까. "결혼해서 행복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는 그 물음에 늘 "행복하다"고 대답해 왔는데 소우코의 질문에 미치코는 "왜 다들 결혼과 행복을 연관시키려 하는지"라고 대답한다. 결혼은 현실이다, 라는 말을 자주 하면서도 결혼이 꼭 행복으로 가는 길인 것처럼 인생이 해피엔드로 끝날 것이다, 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시작인데 말이다. 괜히 시무룩해져서 곰곰히 생각에 잠긴다.

 

에미코와 시노하라, 레이코와 츠치야, 도우코와 미즈누마, 아야와 곤도, 미치코와 야마기시는 결혼을 했지만 서로에게 마음을 두지 못해 불행해 보인다. 이런 지루한 일상에 마침표를 찍듯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홀로 시간을 보내는 에미코, 그녀의 당당함이 멋지다고 말해야 할까. 시노하라가 없는 빈자리에 적응하지 못하고 외로움에 몸을 떠는 에미코를 보며 그냥 그대로 살지, 란 말이 나오려 해서 황급히 입을 닫아버린다. 끊임없이 다른 여성과 관계를 하는 츠치야, 이제야 아내의 곁에서 안식을 찾으려 하지만 이미 레이코의 마음이 떠났다. 이렇듯 늘 늦게 깨닫지만 행복은 가까이에 있음을 왜 진작 알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야마기시와 헤어지고 미즈누마와 결혼한 도우코의 행동은 이해되지 않는 점이 많다. 야마기시에게 느끼지 못했던 매력을 미즈누마에게서 발견하고 함께 살고 싶다고 생각했을텐데 그녀는 아야의 남편 곤도와 관계를 갖는다. 에미코가 경영하는 꽃집을 중심으로 이 꽃집에서 꽃을 사가는 사람들의 부적절한 관계를 보면서 이제는 꽃들의 화사함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오히려 꽃의 화려함 때문에 그녀들의 사랑이 더 어둡고 추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녀들의 일탈, 불륜이라는 이유때문에 고개를 돌려버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그녀들의 일탈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에 공감하게 된다. 도우코를 집안에만 묶어두려는 미즈누마의 이기심과 자신이 원하는 옷만 입게 하는 개인주의, 다른 사내와 사랑을 나눈 후 남편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미치코, 한 때 사랑했던 여자 도우코의 여동생 소우코의 마음을 알면서도 가까이에 두는 야마기시, 이들 관계는 복잡하고 드라마에서 보듯 가까운 사람끼리 얽히고 맺어지는 모습을 통해 이 곳에도 과연 '사랑'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할 것이다. 소우코와 후지오카가 결혼해서 겪는 일들도 이들과 다르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을 부여잡고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닌 자신들의 사랑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드는 그녀들의 모습이 좋다. 때론 지금의 현실이 무너질듯 위험한 사랑을 하지만 사랑이 없다고 과감하게 이혼하고 홀로 서는 그녀들의 당당한 모습이 좋다. 남편의 외도를 눈치채지 못하고 함께 하지 못한채 홀로된 시간을 보내는 그녀들, 이 모두가 여자들의 삶이다. 사랑과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힌 여자들의 삶이 떳떳하지 못한 불륜이 되어 버려도 서로의 비밀스러움을 함께 나누지 못하고 외로움에 몸을 떨지만 이 모든 것들이 여자들의 삶이기에 슬프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우리 연애할래요?" 일탈을 꿈꾸게 하는 이 말을 달콤하게 생각하지 않을 이가 있을까.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가?

지금 행복하냐고?

지금 행복해
성석제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지금 행복해?"라고 묻는 것 같다. 책속의 단편 [지금 행복해] 글을 읽어보면 세상의 잣대로 보자면 그리 행복한 것도 아닌데 제목이 이렇다. 아들과 함께 한 시간이 적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그런다. "우리 친구하자". 감옥에서 나온 아버지가 노인들 목욕봉사를 하며 '행복'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독자인 우리들이 많은 것을 느끼기를 바란다. "나, 지금 무지 행복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에게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몸 건강하고 근심걱정 없으니 행복하지. 그러나..........이렇게 여운을 남겨본다.

 

내 아들, 내 아버지란 말은 늘 가슴 밑바닥에서 무언가 울컥 솟아나게 만든다. 쓰러졌다가도 일어나게 만들고 잘못된 길로 가다가도 이 말에 용기를 가지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올 수 있다. 친구 같은 아들, 친구 같은 아버지. 이 부자간의 사이는 이렇듯 가족의 위계질서를 무너뜨리지만 요즘 세태가 그렇다. 친구 같은 엄마, 내가 무척이나 바라는 바다. 행복의 기준이 이렇게 단순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을 비우면 가능한 행복의 조건이다.

 

저자는 학창시절 여행에 대한 기억이 많은가 보다. 단편 [여행], [설악풍정], [피서지에서 생긴 일]을 보면 손목 잡기도 힘든 시절, 어린시절부터 좋아해온 세희와 입맞춤 하는게 소원인 양우를 보며 '혹시 작가 실제 경험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만큼 그 시대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예포이따이따이예..." 기타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려니 왠 팝송인가? 했다가 자세히 보고는 웃고 말았다. 나도 학창시절 자주 불렀던 노래가 아닌가. 무슨 노래인지도 모르고 따라 불렀던 그 노래, 나도 옛 추억에 빠져들게 된다. 세대차이가 난다고 자주들 말하지만 이런 것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무전여행에 대한 꿈은 나도 있었는데, 단편 [여행]에서처럼 실행해 보지는 못했다. 그 시대 준비하고 가는 물품들은 거의 비슷했던 모양인데 고추장, 된장, 간장, 쌀 등등 요즘처럼 먹거리가 풍부해서 현지에서 사 먹을 수 있는 편리한 상황과 다르지만 그 속에 '정'을 느낄 수 있다. 9편의 단편들속엔 사람들이 보이고 인생도 보인다. 물론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마음이 많이도 변했지만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어 좋다. 단편 [톡]부터는 저자의 글을 따라가는게 그리 간단하지는 않은데 조금 생각이란 것을 해야 한다. 뭘 말하고자 하는지, 작가의 세계를 깊이 있게 파고든다는 것이 어렵긴 하지만 오히려 이런 것도 괜찮다. 힘든 삶속에서도 웃음이 있듯이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내 삶속에도 웃을 날이 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