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해줘
기욤 뮈소 지음, 윤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나였다면 '샘'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까지 내 놓았을까. 아니,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상대를 알게 된지 단 며칠 뿐, 무엇을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운명의 상대를 알아보는데는 단 몇초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해도 말이다. 서로가 찾게 되기까지 몇 번의 엇갈림속에, 상대를 거부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서도 늘 망설이지만 '사랑'을 선택한 샘과 줄리에트. 단 1초의 어긋남이 있어도 만나지 못했을 이 두 사람의 '사랑'은 운명이라고 할만하다. 단 몇 초의 어긋남이라도 있었다면 이루어지지 못했을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운명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되리라.

 

프랑스로 떠나는 줄리에트를 샘은 잡지 않았다. 죽은 아내를 살아있다고 말함으로써 줄리에트와의 시간을 한시적으로 보내겠다 다짐을 했던 샘, 이것으로 이 두 사람의 시간은 끝이 난 것일까. 샘 앞에 나타난 그레이스, 경찰인 그녀가 줄리에트는 비행기를 타지 않았고 지금 살아있다고 했다. 비행기가 뜨기 전 샘에게 가기 위해 직원들과 실랑이를 벌이며 비행기에서 내린 줄리에트는 어느새 경찰들의 표적이 되어 있었다. 911 이후 미국이 테러에 대한 삼엄한 경계를 하고 있다고 해도 어떻게 줄리에트를 테러범으로 만드나, 이건 너무 웃기는 상황 아닌가.

 

그레이스가 등장하고부터 이 책이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지, 알수가 없다. 10년전에 죽은 그레이스는 비행기 사고로 죽었어야 할 줄리에트가 사고를 피했기에 그녀를 데려가기 위해 온 '사자'라고 했다. 죽음을 피한 것도 줄리에트의 운명일텐데, 꼭 죽어야 한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장면부터는 영화 '데스티네이션'이 생각났다. 이런 장르의 내용들이 워낙 많아서인지 "구해줘"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이 책을 읽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줄리에트를 데려가기 위해 왔다는 그레이스는 물리적인 힘을 가진 똑같은 살아있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같은 공간에서 숨 쉬는 그녀를 어떻게 '사자'로 생각한단 말인가. 유령처럼 손에 닿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 총에 맞아 죽은 것을 봤는데 다음날 다시 나타난 그레이스를 보며 이제야 그녀가 살아있는 존재가 아닌 '사자'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레이스가 줄리에트를 데려가기 위해 왔다고 하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자신의 딸 '조디'를 위험한 상황에서 구하고 샘에게 부탁하기까지, 그리고 그녀가 못다한 사랑을 이루고 떠나기까지 이 책은 샘과 줄리에트의 사랑이야기인지, 그레이스의 이야기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물론 그레이스와 샘의 관계로 봐서 그레이스가 죽은지 10년만에 이곳에 와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 이해는 하지만 그들의 감정에 몰입이 되지 않는다.

 

이 책은 '사랑'을 이야기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용서와 화해를 다루고 있다. 죽은 사람이 이 세상에 다시 나타나 생전에 사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니, 책이나 영화,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기욤 뮈소의 책들은 그 소재가 비슷한 것 같다. 줄리에트가 비행기를 타기전까지 두 사람의 이야기에 빠져들었으나 그 이후부터는 가슴이 따라가지 못해 무척 아쉬웠다. 샘과 줄리에트의 사랑은 둘에겐 애절하지만 중간에 나타난 그레이스라는 존재로 인해 그 사랑조차 희석되는 느낌이다. 그레이스, 그녀의 딸 '조디'에 대한 사랑이 더 커 보였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