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비파 레몬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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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의 책을 몇 권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녀의 글이 좋다. 작가가 생각하는 바를 강하게 드러내지 않고도 마음속에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9명, 그녀들의 달콤 쌉쌀한 사랑, 한 사람에게 스포트 라이트를 비추는 것이 아닌 한페이지 한페이지마다 주인공이 달라지는 [장미 비파 레몬]을 통해 타인의 삶과 사랑을 알아간다. 사람들이 달라 누구의 이야기인지 한참 읽은 후에 알 수 있어 빠르게 넘어가는 드라마를 보는 듯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이런 점이 나의 일상에 더 가깝게 다가오기도 한다.  

 

정말 '사랑'이 무엇일까. 서로를 바라보는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일까. 꼭 이루어져야만 '사랑'인 것일까. "결혼해서 행복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는 그 물음에 늘 "행복하다"고 대답해 왔는데 소우코의 질문에 미치코는 "왜 다들 결혼과 행복을 연관시키려 하는지"라고 대답한다. 결혼은 현실이다, 라는 말을 자주 하면서도 결혼이 꼭 행복으로 가는 길인 것처럼 인생이 해피엔드로 끝날 것이다, 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시작인데 말이다. 괜히 시무룩해져서 곰곰히 생각에 잠긴다.

 

에미코와 시노하라, 레이코와 츠치야, 도우코와 미즈누마, 아야와 곤도, 미치코와 야마기시는 결혼을 했지만 서로에게 마음을 두지 못해 불행해 보인다. 이런 지루한 일상에 마침표를 찍듯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홀로 시간을 보내는 에미코, 그녀의 당당함이 멋지다고 말해야 할까. 시노하라가 없는 빈자리에 적응하지 못하고 외로움에 몸을 떠는 에미코를 보며 그냥 그대로 살지, 란 말이 나오려 해서 황급히 입을 닫아버린다. 끊임없이 다른 여성과 관계를 하는 츠치야, 이제야 아내의 곁에서 안식을 찾으려 하지만 이미 레이코의 마음이 떠났다. 이렇듯 늘 늦게 깨닫지만 행복은 가까이에 있음을 왜 진작 알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야마기시와 헤어지고 미즈누마와 결혼한 도우코의 행동은 이해되지 않는 점이 많다. 야마기시에게 느끼지 못했던 매력을 미즈누마에게서 발견하고 함께 살고 싶다고 생각했을텐데 그녀는 아야의 남편 곤도와 관계를 갖는다. 에미코가 경영하는 꽃집을 중심으로 이 꽃집에서 꽃을 사가는 사람들의 부적절한 관계를 보면서 이제는 꽃들의 화사함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오히려 꽃의 화려함 때문에 그녀들의 사랑이 더 어둡고 추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녀들의 일탈, 불륜이라는 이유때문에 고개를 돌려버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그녀들의 일탈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에 공감하게 된다. 도우코를 집안에만 묶어두려는 미즈누마의 이기심과 자신이 원하는 옷만 입게 하는 개인주의, 다른 사내와 사랑을 나눈 후 남편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미치코, 한 때 사랑했던 여자 도우코의 여동생 소우코의 마음을 알면서도 가까이에 두는 야마기시, 이들 관계는 복잡하고 드라마에서 보듯 가까운 사람끼리 얽히고 맺어지는 모습을 통해 이 곳에도 과연 '사랑'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할 것이다. 소우코와 후지오카가 결혼해서 겪는 일들도 이들과 다르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을 부여잡고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닌 자신들의 사랑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드는 그녀들의 모습이 좋다. 때론 지금의 현실이 무너질듯 위험한 사랑을 하지만 사랑이 없다고 과감하게 이혼하고 홀로 서는 그녀들의 당당한 모습이 좋다. 남편의 외도를 눈치채지 못하고 함께 하지 못한채 홀로된 시간을 보내는 그녀들, 이 모두가 여자들의 삶이다. 사랑과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힌 여자들의 삶이 떳떳하지 못한 불륜이 되어 버려도 서로의 비밀스러움을 함께 나누지 못하고 외로움에 몸을 떨지만 이 모든 것들이 여자들의 삶이기에 슬프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우리 연애할래요?" 일탈을 꿈꾸게 하는 이 말을 달콤하게 생각하지 않을 이가 있을까.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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