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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 세트 - 전2권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들녘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아, 여행 떠나고 싶다".
일상을 떨쳐버릴 용기도 없으면서 또 말만 이렇게 한다. 여가시간을 내어 여행을 떠나면 되지 않냐고 하겠지만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읽고 난 후 돌연한 일탈을 통해 아는이 하나 없는 낯선 세상속으로 들어가는 그레고리우스가 되고 싶어졌다. 출근길에 키르헨펠트 다리에서 만난 여자로인해 그레고리우스를 둘러싸고 있던 낯익은 세상들이 변하기 시작한다. 붙박혀 살아온 인생, 전혀 다르게 살고 싶은 욕망은 책방에서 만난 한 권의 책이 그를 리스본으로 떠나게 만든다. '아마데우 이나시오 드 알메이다 프라두'가 쓴 "언어의 연금술사"는 프라두가 쓴 글이지만 읽을수록 그레고리우스의 인생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영혼의 끌림, 아마도 이 두 사람은 꼭 만날 운명이었던거다.
키르헨펠트 다리에서 만난 여자, 처음 본 그녀는 그레고리우스의 이마에 전화번호를 쓴다. 메모할 곳이 없다며 쓴 이 전화번호는 그레고리우스와 그녀의 유일한 끈인데, 그는 그녀를 만나고자 하는 적극적인 노력은 하지 않는다. 모국어가 포르투게스라는 그녀, 책방에서 만난 프라두의 책, 그녀는 그레고리우스에게 자신의 인생의 틀을 벗어나게 하는 동기부여만 하는 존재였던 셈이다. 프라두의 "언어의 연금술사"를 리스본에서 찾았다는 책방 주인의 말을 듣고 짐을 꾸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몸을 싣는 그레고리우스의 행동은 다소 엉뚱하긴 하지만 그가 적을 두고 강의한 학교의 교장 '캐기' 말대로 홀연히 떠날 수 있는 그의 용기가 부럽다.
아마데우가 누군지 알아내기 위해 그의 가족들과 친구, 그가 사랑한 사람들을 만나 아마데우의 전체적인 모습을 그려나가는 그레고리우스, 한 권의 책으로 책의 저자를 찾아나선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리스본으로 가는 기차안에서 만난 실우베이라의 도움으로 인연들이 이어져 아마데우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아마데우의 삶이 눈앞에 그려진듯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게 된다. 아마데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 후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 것이며, 나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할 것인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기억속에서 잊혀져 간다는 것이 참 슬프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아마데우의 완전한 삶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그가 마지막으로 사랑한 여인 에스테파니아 에스피노자를 만나야만 한다. 갑작스럽게 베른으로 떠나는 그레고리우스는 아직 남아 있는 인연의 끈을 마무리 하기 위해 그녀를 만나고 아마데우의 삶을 모두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타인의 인생으로 살아가는 것, 길에서 만나는 무수히 많은 이들을 바라보며 '저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궁금했던 그들의 삶, 왜 그리도 부러웠던 것일까.
아마데우의 여동생 아드리아나의 오빠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 헌신, 희생. 그레고리우스가 아드리아나를 처음 만났을 땐 그녀의 삶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오빠에 대한 맹목적인 존경심이 아드리아나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 한 권의 책으로 삶의 방향을 바꿔버린 그레고리우스, 그리고 오빠로 인해 삶의 목표가 바뀐 아드리아나, 이들 모두 내면의 여행을 떠나기 위해 일탈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타인의 삶을 찾아가는 길이 결국엔 나를 찾는 여행이 된 "리스본행 야간열차", 프라두가 남길 글들이 어려워 모두 이해할 수 없어 아쉬웠지만 그들과 함께 한 여행이 무척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