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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 1
스제펑 지음, 차혜정 옮김 / 북스토리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황석영의 삼국지를 7권까지 읽다가 관우와 장비가 죽는 것을 보고 흥미가 떨어져 손에서 놔 버렸지만 이 '적벽대전'만큼은 확실하게 기억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가장 재밌는 부분을 발췌하여 따로 '적벽대전'이라는 책이 나온 것에 대해 사실 조금은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왠걸, 뒤에 어떤 사건이 벌어졌는지 기억이 안나는 거다. 거기다 삼국지보다 쉽게 현대적으로 쉽게 풀어쓴 이 책의 책장이 왜그리 빨리 넘어가던지, 나는 점점 영웅들의 싸움에 몰입해가기 시작했다. 이 책에 표현된 "까놓고 말해서"라든가, "강동의 여자들이 주유를 보면 쓰러진다"는 표현은 확실히 요즘에서야 볼 수 있는 표현이라 삼국지의 그 묵직한 무게감을 떨어뜨리긴 하지만 영화의 스틸 사진이 들어 있어 이 싸움의 승자를 알고 있음에도 빠져들게 만든다.
삼국지보다 '적벽대전'에서 좀 더 많이 다루어지는 내용이 있다면 대교와 소교 두 여인에 대한 내용일 것이다. 어린시절부터 조조를 흠모해 온 대교가 손책의 여자가 되어 아들까지 낳았어도 여전히 그를 마음속에 품고 사는 비련의 여인으로 등장하지만 소교는 주유의 아내가 되어 그를 사랑하며 언니 대교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 솔직히 대교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들까지 낳았건만 조조를 영웅으로 여기며 손책을 간신배 대하듯 하는 그녀의 진짜 속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아들의 장래를 생각하는 모성조차 찾아볼 수 없는 대교의 모습은 오히려 형수를 사랑하는 손권의 마음으로 인해 일편단심 조조를 향한 마음마저 진실성이 없게 만들 뿐이다.
소교를 데리고 전장에 나갈 수 있게 허락한 손권의 명으로 주유는 소교와 함께 '적벽대전'에 임하게 된다. 피가 튀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전장에 한 떨기 꽃 같은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니, 그것도 이 세상 그 누구의 미모와 비교할 대상이 없다는 소교가 이곳에 있음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많을 것이다. 조조는 왕실의 이름을 걸고 나섰다는 명분이 있긴 하지만 사실 속마음은 대교, 소교를 손 안에 넣기 위한 마음도 있을 터, 눈 앞에 소교가 있다는 생각에 하늘이 자신을 돕는다는 자만심과 함께 가슴마저 들뜬다. 주유 또한 만약 이 싸움에 진다면 소교와 함께 죽으리라는 어찌 보면 슬픈 사랑의 결말을 보는 것 같지만 그런 마음으로 이 싸움에 임하고 있으니 누가 이길지는 이 싸움을 지켜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당연히 이 '적벽대전'의 볼거리는 주유와 제갈공명의 계략으로 조조와 싸우는 내용일 것이다. 제갈공명이 없었다면 이 싸움의 승패가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역사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서로 속고 속이는게 전쟁이라지만 눈에 뻔히 보이는 계책을 쓰는 것을 보면서 아마, 이같은 내용은 사실이 아닐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독자들도 눈치챌만큼 뻔한 수법이라니 영웅들도 이런면에서는 지극히 인간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을까. 제갈공명과 비교되는 조조와 주유의 계책을 보고 있자면 한 편의 '쇼'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제갈공명도 동풍을 불어오게 할 수 있다며 제단을 쌓게 하여 자신의 손으로 동풍을 불러오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지만 사실 이 장면은 독자들이 제갈공명의 생각을 알고 있긴 하지만 과연 때맞춰 동풍이 불어줄까란 생각에 긴장감마저 들게 하여 가볍게 느껴지는 장면이 아니었다.
'적벽대전'만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보니 싸움이 끝나고 손권과 대교의 이야기로 마무리 되는 것이 뜬금없이 느껴져 많이 아쉽긴 하지만 영화도 함께 본다면 오롯이 영웅들의 싸움에 함께 있는 듯 긴장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적벽대전'이라 책을 읽는 것이 저어되었다면 이제는 그런 생각은 하지 말기를 바란다. 영화에서는 더 완벽하게 '적벽대전'을 재현했겠지만 영웅, 전쟁, 사랑이야기 등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소재들이 들어있는 책 또한 영화 못지 않은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