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경관의 피 - 상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1
사사키 조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선과 악의 기준은 무엇일까. 아버지 안조 세이지의 죽음을 파헤치던 다미오 또한 죽음을 맞고 다미오의 아들 가즈야에 이르러서야 이들 두 사람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가 밝혀진다. 당연하게도 나는 안조 세이지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 져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지만 살인사건의 희생자들과 안조 세이지의 죽음은 철저하게 그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수를 지켜내기 위한 희생이었다면 나는 이들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경관의 피'의 저자는 절대적인 선과 절대적인 악이란 없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일까.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사람만이 죄가 있는 사람을 단죄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모르겠다. 아아, 머릿속이 너무 혼란스럽다. 60여 년에 이르는 3대에 걸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쉼없이 달려왔는가. 사건을 파헤치던 세이지가 죽고 그 죽음이 자살로 처리되고 순직이 되지 못했을 때 나는 오로지 정의감에 불타올라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범인이 꼭 잡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권의 마지막장까지 읽은 나는 다시 되묻게 된다. 정말 범인이 누구인지 밝힐 이유가 있었을까.
1대 안조 세이지, 2대 안조 다미오, 3대 안조 가즈야까지 시간 순서대로 이야기가 이어져 마지막에 가서야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기에 이 책은 긴 호흡을 필요로 한다. 세이지가 파헤치던 두 건의 미해결 살인사건과 그 자신의 죽음이 큰 축이 되지만 다미오는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덴노지 주재소에 와서야 아버지의 죽음을 본격적으로 파헤친다. 그전까지는 다미오가 경찰이 되어 자신에게 부여된 업무인 스파이 활동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그 외에 자신에게 맡겨진 사건들에 대해 간간이 서술할 뿐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지만 아버지가 걸어간 길을 따라 경관이 된다는 것은 어떤 운명의 힘이 작용했다고 생각된다. 안조 세이지의 죽음이 발판이 되었겠지만 이상적인 경찰관이 되고 싶은 사명감이 다미오는 물론 가즈야를 경찰관이 되도록 이끌었을 것이다. 다미오는 경찰관이 되어 아버지 세이지의 죽음을 알아보겠다는 포부가 있었지만 막상 경찰관이 되어 맡게 된 스파이 활동으로 인한 인격파괴 장애로 자신의 의지를 제어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러 세이지의 죽음에 가까이 다가서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러야 했다. 또한 아버지 세이지를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 밝히지도 못한 채 충분한 복선만 깔아두고 안타깝게도 자신 또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 때문에 가즈야의 역할이 이 책에서 아주 중요해지는 것이다.
강해져야 살아남을 수 있는 이 냉혹한 사회에서 정의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며 살아가는 경찰관들의 이야기는 3대에 걸쳐 경관이 되어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살아간 세이지, 다미오, 가즈야의 삶을 통해 선과 악은 물론 정의가 무엇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저 범인이 누구인지 궁금하여 이 책을 펼쳤다면 가슴이 답답하여 좀처럼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될 것이다. 불의에 타협하고 정의에 맞서 싸우는 것이 진정한 용기라고 생각한다면 이 또한 저자가 만든 결말에 동조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당신에게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인가. 다수를 위한 희생이라도 선이 될 수 있다면 다수를 위해 살인을 저지른 범인은 선이 될까, 악이 될까. 이 물음에 명확하게 답할 수 있는 이가 이 세상에 존재하긴 할까. 아직도 머릿속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미해결 된 두 건의 살인사건에 대한 설명이 너무 미흡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야 했는지 좀 더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이 결말에 더 동조가 안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