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hug! 아프리카
김영희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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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쌀집 아저씨가 돌아왔다. 아,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고, "쌀집 아저씨"란 말도 이번에 처음 들었으니 돌아왔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은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기 전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그를 먼저 만났다. 어쩌면 저렇게 유쾌할 수 있을까. 예능의 세계에 다시 발을 들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아마도 예능감을 잃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겠지만 아프리카를 품에 안은 그가 못할 것이 뭐가 있을까.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늘 우리들의 가슴에 감동을 심어준 "쌀집 아저씨", 아프리카 여행기는 출간된 다른 사람들의 글을 통해 그 나라에 가지 않았지만 충분히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생각했지만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 느낌이 또 다르다. 흑인들속에 걸어가는 그의 모습이 보여서일까, 위험한 지역도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듬직해 보인다. 추억을 사진에 모든 것을 담아온 것 보다는 손으로 직접 그린 그림을 보면서 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에 나의 마음에도 느낌표가 하나 찍힌다.

 

한 순간을 사진에 담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려면 꽤 오랫동안 관찰해야 하고 머릿속에 담아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관심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물론 그림에 대한 소질도 있어야겠지만 말이다. "쌀집 아저씨"의 그림을 보면서 "에이, 실물을 못보니 어느 정도인지 알게 뭐야"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에디와 함께 찍은 사진과 에디를 그려놓은 그의 그림을 보면서 "정말 잘 그리는구나" 감탄을 했더랬다. 이후부터는 그가 그려놓은 모든 것들을 실물과 똑같이 보게 되었음은 당연한 일, 꽤 긴 시간을 들여 그림을 그리는 그의 모습이 눈 앞에 떠오르는 것 같았다. 아프리카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 중 일부만을 그렸겠지만 자신의 얼굴을 담아내는 "쌀집 아저씨"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한 장의 추억이 또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왜 그는 아프리카로 떠났을까. 사파리에 대한 동경때문인지 나도 아프리카에 대한 열망을 늘 가지고 있다. 언젠가 한 번 가고 싶은 곳이긴 하지만 선뜻 그들속에 섞인다는 것은 감히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여행은 누구나 꿈꿀 수 있지만 그 곳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은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가는 장소마다 느낌표를 찍으며 사람들의 평범한 삶을 보여주는 "쌀집 아저씨", 기억해 두고 싶은 글들이 많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은 책이 되어 버렸지만 타인의 여행의 느낌이 오롯이 내 것이 될 수 없 듯 그가 담아온 느낌표들이 모두 내 안에 담기지 않는다.  

 

빈곤하게 살아가는 아프리카인들, 그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해 안타까워 하는 "쌀집 아저씨"를 보면서, 여행이란 기념물들이 가득한 유명한 곳들을 찾아가는 것이 아닌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거대한 폭포의 물줄기를 바라보며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고, 느리게 살아가는 삶의 철학을 되새겨 보기도 하며, 한 문장의 글을 통해 "아, 인생이 이런 것이구나" 깨닫게 된다면 이것으로 여행의 진실한 모습을 제대로 봤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아직도 아프리카에 간 이유를 모른다는 "쌀집 아저씨", 이제는 여행의 기억이 그리움으로 바뀌었다는 그의 글을 보면서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그리움이 될 때 또 훌쩍 떠나고 싶은 것이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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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츠비 2009-07-20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방금 다 읽은 책인데, 리뷰를 참 잘 쓰셨네요.

학진사랑 2009-07-21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쓰지 못한 글인데.....감사합니다. 책 내용이 참 좋았어요. ^^
 
밀레니엄 2 - 상 - 휘발유통과 성냥을 꿈꾼 소녀 밀레니엄 (아르테) 2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아르테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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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리스베트와 미카엘의 주위에는 늘 심상치 않은 일들이 일어난다. 베일에 쌓여 있던 리스베트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밀레니엄 2'. 첫 장부터 납치된 여성에 대한 이야기로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시작하는 이 책은 이후 리스베트의 수학에 대한 관심에 대해 다룸으로써 책장을 넘기는 시간을 지루하게 만든다. 학창시절에도 골치 아팠던 수학을 왜 이 책에서 자세히 읽어야 하는지 갑갑함을 넘어서 리스베트의 이러한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한다. 사건사고가 없는 리스베트의 단조로운 일상을 보여주는 것일테지만 큰 사건이 발생하기까지 전개가 조금 늘어지는 느낌이 든다.

 

다그 스벤손과 미아 베리만의 죽음, 아니 리스베트의 법적 보호인 니우르만의 죽음까지 3명의 죽음이 결코 작은 사건은 아니지만 이 사건은 점점 부풀어 올라 터질까 손대기조차 두려운 아주 거대한 풍선이 되어 버린다. '밀레니엄 1'에서의 전개와 같이 결국에는 머릿속에서 정리조차 되지 않을정도로 사건이 거대해져 버리는 것이다. 니우르만의 죽음에는 리스베트의 살해 동기가 충분하다. 만약 그녀가 니우르만을 죽였다면 대중매체에 모든 것이 드러난 리스베트는 더이상 이곳에서 살아갈 수 없게 된다. 정말 그녀가 죽였을까? 다그 스벤손과 미아 베리만의 살인에 대해서는 리스베트에게 살해 동기가 없다. 그러나 그들이 죽기 전 이 두 사람을 만난 리스베트, 과연 그녀에게 아무런 죄가 없는 것일까.

 

미카엘은 리스베트를 신뢰하여 그녀가 범인이 아님을 밝히고 이 일의 모든 것을 파헤쳐 보고자 한다. 독자들도 리스베트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을 굳게 믿고 그들의 행동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지만 글쎄, '밀레니엄 3'으로 이어지는 이 책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마지막에 가서야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니 여유를 가지며 책을 읽어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여성 인신매매단 이야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다그 스벤손과 미아 베리만의 죽음 또한 다른 것을 밝혀내기 위한 하나의 사건으로 보여져서 조금 어이가 없긴 하지만 '밀레니엄 1'만큼 어이가 없을까. 

 

[밀레니엄] 잡지사는 이번일로 또 큰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미카엘이 목숨을 걸고 얻어낸 정보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되겠지만 리스베트와 또 다른 인물 '살라'에 대한 만남을 이끌어내기 위한 다른 모든 것들이 큰 사건과 맞물리지 못하고 어긋나는 느낌이 들어서 조금 불편해진다. 리스베트를 정신병자로 취급하는 경찰과 언론에 분개하며 이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마지막에 이르게 되지만 '밀레니엄 3'를 읽어야만 이 사건의 진정한 결말에 이르게 되니 이제 무엇을 더 말할 수 있겠는가. 무엇과 싸우든 미카엘과 리스베트는 이길 것이다. 통쾌한 복수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가슴이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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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병동
하하키기 호세이 지음, 권영주 옮김 / 시공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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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병동의 시대적인 배경은 책 표지 때문인지, 아니면 이 병원에 30년 동안 입원해 있었던 주 씨 때문인지 아주 오래전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 든다. 바깥 세상의 사람들에게 거부당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 분명 이 곳은 휴식처가 아님에도 많은 사람들은 이 곳에서 안식을 얻기도 한다.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은 폐쇄병동에 갇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의 일상은 개방병동에서 이뤄지고 있어 왜 책 제목이 "폐쇄병동"일까 고민하게 되지만 종반부에 이르게 되면 주 씨의 독백으로 인해 왜 이렇게 이름 붙여졌는지 알 수 있다.

 

"폐쇄병동"은 여러모로 "내 심장을 쏴라"와 비교될 수 밖에 없는데 출간된 시기가 비슷하고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기에 더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가슴 먹먹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같지만 밝은 분위기를 보여주는 "내 심장을 쏴라"와 다르게 "폐쇄병동"은 회색빛의 세상을 보는 듯 마음까지 우울해진다. 마음속에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서 그럴까? 세상과 격리된 채 살아가는 그들에게 동정심을 느껴서? 아닐 것이다. "내 심장을 쏴라"의 '승민'과 '나'는 이 폐쇄병동으로부터 탈출하여 새처럼 훨훨 날아가고 싶다는 열망을 담고 있지만 이 책 "폐쇄병동"은 나갈 수 있음에도 이 곳에서 안식을 찾고자 하는 이들로 인해 움직임을 느낄 수 없어 오히려 죽은 삶으로 여겨기지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세상에 대한 동경은 남아 있었다. 퇴원하여 이전의 삶을 살아가고 싶은 열망은 가지고 있지만 책에 표현된대로 오랜 여행에 지친 새들이 쉬어가는 숲일 뿐인 이 곳에서 최후의 안식처를 얻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에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없었을 뿐이다.

 

돌아갈 곳이 없는 환자들이 이 곳에 모여 서로를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느끼긴 했지만 주 씨가 퇴원하여 부모님께서 사셨던 집에 돌아가고자 했을 때 나도 그의 여동생 부부처럼 그가 병원에 계속 남아 있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주 씨의 상황을 이 책을 통해 들여다 보며 인간적으로 그의 마음에 신뢰감을 느끼긴 했지만 이것이 실제 나에게 일어난 일이라고 본다면 선뜻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라 말할 수 있기에 나 또한 폐쇄병동의 사람들에게 안식처가 되어 줄 수 없는 사람일 것이다. 주 씨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만이 그의 퇴원을 축하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행복', 30년을 정신병원에서 살았지만 주 씨에게도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일까? 물론이다. 

 

시마자키를 위하여 자신의 마지막 남은 삶마저 던져 버리려는 히데마루를 보면서 그의 진심을 오해하기도 했지만 죄가 많지만 속죄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상처를 가진 사람을 도와주려는 그의 진심을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입원한 환자들의 입원하기 전의 삶을 간략하게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인간다움을 더 부각시켰던 "폐쇄병동",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감동을 몰고와 실제 이런 상황을 현실에서 맞이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긴 하지만 마음이 아픈 이들의 '행복'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병원에서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는 것조차 두려운 이들에게 '행복'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 말자. 세상에 대한 동경이야말로 그들이 꿈꾸어야 할 진정한 '행복'일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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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인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9
기예르모 델 토로 외 지음, 조영학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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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스트리고이"

밝고 높은 음의 목소리가 아닌 낮게 깔린 아주 음침한 목소리로 조용히 내뱉어야만 할 것 같은 단어다. 뱀파이어란 뜻을 지닌 이 단어가 처음에는 생경스럽겠으나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 아주 친숙한 단어가 되어 버린다. '트와일라잇'의 열풍으로 뱀파이어에 대한 로맨틱한 이미지를 그리고 있었음일까. '블레이드'의 분위기를 보이는 "스트레인"은 나를 결코 죽이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뱀파이어에게 배신이라도 당해 그들처럼 변종 바이러스를 일으키게 된 듯 공포심을 증폭시킨다.

 

현대문명이 발달할수록 관료주의란 것이 늘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다.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해주지도 않을 뿐더러 이미 한 마을이 초토화 되어서야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만 이미 손 쓸수도 없을정도로 사태는 악화 되어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이지만 바이러스를 일으킨 사람들을 처단할 수 있는 권리를 누구든지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순 없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당연한 일이라는 정당방위를 내세우기엔 양심이란 것이 선뜻 나의 마음을 놓아주지 않으니까. 좀비들을 베어나가며 자의식마저 흔들리는 에프를 보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처리 해야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든 쉽지 않은 일임을 뼈져리게 느끼게 된다.   

 

영문도 모른 채 죽어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이미 죽었지만 자신의 가족들이 있는 보금자리로 돌아오는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자신의 먹이를 찾아 온다? 가족들의 곁으로 돌아오고자 하는 본능이라고 보면 될까? 어떤 이유이든 첫 희생자는 대체적으로 가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피해는 더 커지고 가족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몸을 사슬에 묶어 버린 앤셀 바버를 보면 가슴까지 먹먹해지고 만다.

 

흐르는 물을 건널 수 없는 스트리고이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인 존재는 누구인가. 스트리고이들이 가장 잔혹한 존재인 것 같지만 실상은 그들보다 더 무서운 것이 사람인가 보다. 스트리고이들도 처음엔 인간이었겠지만. 영화처럼 한 장면, 한 장면을 담고 있는 듯 여러 사람들을 등장시켜 가며 시선을 이동시키는 "스트레인"은 이곳에 등장하는 이름 있는 사람들이 결국엔 희생자가 된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면 책장을 넘기는 것조차 힘겨워지게 된다. 비행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죽고 비행기마저 죽은 것 처럼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첫 장면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모르고 글을 읽어나갔던 그 때가 얼마나 평온한 때였는지 깨닫게 된다.

 

아직 스트리고이와 인간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인가. 그 어떤 모습이든 촉수를 뻗어오는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을 죽일 수 있는 무기, 그리고 강인한 정신과 육체뿐이다. 내가 스트리고이가 될 것인가, 그들을 죽이고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 삶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보다 더 난해한 것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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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6
카를로 콜로디 지음, 김양미 옮김, 천은실 그림 / 인디고(글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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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여왕"을 읽어서 그런지 작은 책 "피노키오"가 낯설지 않다. 거짓말 하면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의 이야기를 알고 있긴 하지만 책 제목을 "피노키오의 모험"이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렇게 에피소드들이 많은줄 몰랐다.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아이의 모습을 한 피노키오가 제페토 할아버지의 손에 탄생 되자마자 학교가기 싫다고 말하는 것을 보니 나무로 만든 인형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순진해서 다른 이들에게 너무나 쉽게 속지만 할아버지에 대한 마음만은 지극한 피노키오, 나에게도 이런 피노키오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동화속에서나 가능한 일이겠지?

 

일러스트가 예쁜 '피노키오', 내가 기억하고 있는 피노키오에 대한 이야기와 책속의 피노키오 이야기는 너무나 달랐다. 나무 인형에서 사람이 된 피노키오만을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책속에 등장하는 피노키오가 전혀 다른 존재로 다가왔다. 피노키오를 찾아다니는 제페토 할아버지, 그리고 피노키오의 모습은 우리네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다. 아이 때 읽었다면 정말 거짓말하면 코가 길어질까 싶어 겁이 나기도 했겠지만 어른이 되어서 읽는 피노키오는 잊었던 나의 어린시절을 기억나게 해서 책과 함께 하는 동안 내내 즐거웠다.

 

제페토 할아버지와 비록 혈연으로 맺어지지는 못했지만 제페토 할아버지의 손안에서 탄생한 피노키오는 분명 제페토 할아버지의 가족이다. 할아버지가 외투를 팔아 피노키오의 책을 사주고 집을 떠난 피오키오를 열심히 찾아다니는 모습은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감동이 있다. 충언을 하는 귀뚜라미의 말을 무시하고 비록 죽게 만들기도 하지만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들을 겪으며 피노키오는 조금씩 성장해간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피노키오의 다리가 타 들어가는 것을 보며 이미 말을 하고 움직이는 피노키오가 생명이 있는 존재로 느껴져 불에 타버린 다리를 보며 그 섬뜩함에 마음이 아프기는 했지만 먹을 것을 달라는 피노키오에게 물을 퍼붓는 인심을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럴 것이라고 생각지 않기를 바랐다.

 

제페토 할아버지와 아무일 없이 평탄하게 살아갔다면 피노키오의 이야기는 세상에서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행운을 가져다 주는 "피노키오", 이제는 제페토 할아버지와 추억을 만들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겠지? 어른으로 자란 피노키오의 모습을 상상할 순 없지만 나의 기억속에는 여전히 똑같은 모습의 피노키오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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