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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병동
하하키기 호세이 지음, 권영주 옮김 / 시공사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폐쇄병동의 시대적인 배경은 책 표지 때문인지, 아니면 이 병원에 30년 동안 입원해 있었던 주 씨 때문인지 아주 오래전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 든다. 바깥 세상의 사람들에게 거부당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 분명 이 곳은 휴식처가 아님에도 많은 사람들은 이 곳에서 안식을 얻기도 한다.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은 폐쇄병동에 갇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의 일상은 개방병동에서 이뤄지고 있어 왜 책 제목이 "폐쇄병동"일까 고민하게 되지만 종반부에 이르게 되면 주 씨의 독백으로 인해 왜 이렇게 이름 붙여졌는지 알 수 있다.
"폐쇄병동"은 여러모로 "내 심장을 쏴라"와 비교될 수 밖에 없는데 출간된 시기가 비슷하고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기에 더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가슴 먹먹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같지만 밝은 분위기를 보여주는 "내 심장을 쏴라"와 다르게 "폐쇄병동"은 회색빛의 세상을 보는 듯 마음까지 우울해진다. 마음속에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서 그럴까? 세상과 격리된 채 살아가는 그들에게 동정심을 느껴서? 아닐 것이다. "내 심장을 쏴라"의 '승민'과 '나'는 이 폐쇄병동으로부터 탈출하여 새처럼 훨훨 날아가고 싶다는 열망을 담고 있지만 이 책 "폐쇄병동"은 나갈 수 있음에도 이 곳에서 안식을 찾고자 하는 이들로 인해 움직임을 느낄 수 없어 오히려 죽은 삶으로 여겨기지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세상에 대한 동경은 남아 있었다. 퇴원하여 이전의 삶을 살아가고 싶은 열망은 가지고 있지만 책에 표현된대로 오랜 여행에 지친 새들이 쉬어가는 숲일 뿐인 이 곳에서 최후의 안식처를 얻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에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없었을 뿐이다.
돌아갈 곳이 없는 환자들이 이 곳에 모여 서로를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느끼긴 했지만 주 씨가 퇴원하여 부모님께서 사셨던 집에 돌아가고자 했을 때 나도 그의 여동생 부부처럼 그가 병원에 계속 남아 있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주 씨의 상황을 이 책을 통해 들여다 보며 인간적으로 그의 마음에 신뢰감을 느끼긴 했지만 이것이 실제 나에게 일어난 일이라고 본다면 선뜻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라 말할 수 있기에 나 또한 폐쇄병동의 사람들에게 안식처가 되어 줄 수 없는 사람일 것이다. 주 씨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만이 그의 퇴원을 축하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행복', 30년을 정신병원에서 살았지만 주 씨에게도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일까? 물론이다.
시마자키를 위하여 자신의 마지막 남은 삶마저 던져 버리려는 히데마루를 보면서 그의 진심을 오해하기도 했지만 죄가 많지만 속죄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상처를 가진 사람을 도와주려는 그의 진심을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입원한 환자들의 입원하기 전의 삶을 간략하게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인간다움을 더 부각시켰던 "폐쇄병동",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감동을 몰고와 실제 이런 상황을 현실에서 맞이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긴 하지만 마음이 아픈 이들의 '행복'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병원에서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는 것조차 두려운 이들에게 '행복'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 말자. 세상에 대한 동경이야말로 그들이 꿈꾸어야 할 진정한 '행복'일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