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
인디스토리 엮음 / 링거스그룹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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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워낭소리"가 무엇인지 몰랐었다. 영화를 보고서야 알게 되었고 할아버지에게 혹사 당하는 소를 보면서 왜 저렇게 죽을 때까지 부려먹나 그런 철 없는 생각을 했더랬다. '땡땡땡'거리는 소리가 잔잔하게 울려퍼지면 할머니의 푸념이 시작된다. 영화에서는 자신이 받아야 할 사랑을 소가 다 받고 있어서일까, 못내 섭섭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 푸념속에 소에 대한 안쓰러움이 실려 있다는 것을 안다. 말을 못해 그렇지 얼마나 욕을 하겠냐는 말, 나도 소가 말을 못하지만 할아버지와 대화를 하게 된다면 한 발짝 떼는게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얼마나 철 없는 생각이었던가.
 
할아버지가 잠이 들어도 소는 묵묵히 자신이 오랜 세월 걸어온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온다. 마지막 몸을 태워 사람들의 식탁에 고기로 오르는 것이 아닌 할아버지의 손에 의해 묻힐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이었다는 것을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알지 못했는데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워낭소리" 그 뒷 이야기를 통해서 말이다.
 
해가 넘어가는 순간 실체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고 실루엣을 드러내는 할아버지와 소, '땡땡땡' 울리는 워낭소리는 소의 목에 걸려 있는 방울이 맑게 퍼지는 소리가 아닌 한 평생 가족들을 위해 고단한 몸을 이끌고 일을 해야 하는 아버지에게서 나는 소리란 것을 책을 통해 또 알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잘 들리지 않는 대화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니 내가 놓친 감정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영화를 그대로 옮겨 온 책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은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감동을 느끼는 것이 힘들겠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그리고 소를 다시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이 고단하다 느껴졌기에 이들을 보면서 그동안 내가 느꼈왔던 고단함이 그저 나의 푸념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소는 죽어서 무엇이 되었을까. 할아버지와 소는 서로의 마음을 모두 이해받고 이해했을까. 자식들 입에 먹을 것이 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을 가장 큰 행복으로 알았던 부모님들은 소가 재산이라 이 소를 팔아 자식들 대학 등록금을 내기도 하고 함께 논을 갈며 가족으로서의 유대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 가족. 할아버지에게 이 소는 가족과 같았다. 부리는 소가 아닌, 늘 함께 하는 소. 진정 가족 같아 보였다. 그래서 마지막 가는 길이 더 애처로워 보였던 소의 모습에 눈시울이 젖어 들었을 것이다.
 
"독립영화"라는 것을 처음 보았다. 제작비가 거의 들지 않은 이런 장르의 영화를 선호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평범한 삶이란 것이 이렇게 한 편의 영화로 탄생할 수 있음을 알게 되어 나의 삶 또한 소중하게 느껴졌다. 죽음이란 모든 것을 비워내는 것처럼 보여도 그 자리엔 또 다른 무언가가 채워지는 것이다. 새로운 삶, 그러나 새롭게 채워진다고 이전에 누군가와 함께 누렸던 삶이 사라질 것인가. 아닐 것이다. 부모님이 나에겐 그런 존재다. 감사해야 함을 알면서도 선뜻 손 내밀기 어렵고 언젠가 세월이 많이 흘러 나의 곁을 떠나셔도 늘 함께 있는 듯 마음속에 그 자리를 느낄 수 있는 존재, 그래서 이제는 '땡땡땡' 워낭소리가 울릴 때마다 아버지가 생각날 것 같다.  
 
책 속에 실려 있는 시를 읽으며 남겨진 워낭을 기억에 떠올리며 이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다. 나는 다른이들에게 어떤 존재로 보일 것인가. "워낭소리"의 뒷 이야기를 통해 가슴 저릿한 감동을 또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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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브 1
모리 에토 지음, 오유리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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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나 영화를 보고 가슴 벅찬 감동을 느껴 본 적이 언제였던가.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감동적인 장면을 찾아 영화관으로, 책 속으로 파고드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하지 못할 일을 어떤 이들은 피나는 노력을 통해 해 내고야 마는 그 감동을 느껴보고 싶어서일 것이다. 물론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있는 반면 대부분은 아주 작은 소질이라도 가지고 있는 주인공이 이것을 갈고 닦아 세상에 우뚝서게 되는 일을 표현하는게 다반사다. 운명적으로, 어쩔 땐 운에 의해 평범한 사람들보다 수월하게 뻗어나가는 그들을 보면서 작위적인 느낌을 많이 받긴 하지만 그 나름대로 만들어진 감동이나마 느낄 수 있는 작품이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무서운 일들이 많이 터지는 요즘 세상이라 만들어진 이야기라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감동을 그리워하게 되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이브"는 비록 만들어진 이야기지만 순수한 10대 아이들이 자신만의 노력으로 세상에 우뚝 서기 위해 다른 선수들과 공정한 시합을 함으로서 가슴 벅찬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다.

 

"다이브", 올림픽에서 경기하는 모습을 몇 번 보긴 했는데 높이 10미터에서 1.4초의 찰나의 연기를 위해 이렇게 힘들게 연습을 하는지 몰랐다. 올림픽에 출전하게 되면 MDC의 폐쇄를 막을 수 있다는 목적을 가지고 이 곳에 코치로 오게 된 아사키 가요코로 인해 아이들의 가슴에 꿈과 희망을 심어놓게 되지만 어른들의 세상에서는 순수하게 실력만으로 아이들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하진 않아 누가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느냐를 놓고 마지막까지 그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요이치, 도모키, 시부키 이렇게 세 명으로 그 후보가 좁혀지지만 올림픽 출전권을 타인에 의해 따낸 요이치가 실력으로 당당하게 따내겠다는 말을 한 후 드라마에서 흔희 볼 수 있었던 최고가 되기 위해 서로 속고 속이는 치졸한 싸움으로 번지지 않아 나의 마음속에도 이들 세 사람 모두를 응원하게 되었다. 오로지 자신의 노력에 의해 최고가 되어야 할 아이들, 물론 이들에게 전혀 소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요이치는 부모에게 능력을 물려 받았고 도모키는 동체 시력을 가졌다. 시부키는 또 어떠한가, 할아버지의 다이빙 실력을 그대로 물려받지 않았는가. 그러나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시합을 통해 이들은 분명 성장하고 있었다.

 

서로를 다독거리며 시합에 임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1년 뒤 올림픽은 물론 또 그 4년 뒤의 올림픽에서도 멋진 활약을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 가슴이 뛴다. 시드니에 누가 가게 될 것인지는 마지막 장까지 읽어봐야 알 수 있지만 실력이 고만고만한 료와 레이지도 이들과 함께 다이빙을 함으로서 결코 최고의 선수들만 내세우는 것이 아닌 땀 흘리며 노력하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기회가 있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 책은 독자들의 마음까지 녹여 버린다. 빠르게 사건을 전개시키는 작가의 필력에 휘말리다 보면 어느 새 책의 마지막장을 덮고 있어 이 아이들이 훗날 어떤 모습으로 성장했을지 보지 못한다는 것에 속상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1.4초의 찰나를 위해 온몸이 멍들고 다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다이빙의 세상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했다. 물론 물에서 함께 호흡하지 않은 내가 오롯이 그들의 열정을 다 이해할 순 없겠지만 말이다.  

 

올림픽 출전권은 단 한 명이 가질 수 있지만 시합을 마친 아이들은 최선을 다했으므로 후회는 없다. 다음 시합을 위해 또 열심히 노력할 그들이기에 여기서 좌절하지 않고 서로를 격려하며 훗날 또 같은 무대에서 실력을 겨룰 그 날을 기다릴 것이다. 그 때를 위해 지금도 아이들은 높이 10미터에 서서 물 속으로 뛰어들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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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심판한다 - 마이크 해머 시리즈 1 밀리언셀러 클럽 30
미키 스필레인 지음, 박선주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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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탐정 '마이크 해머'를 보면 데니스 루헤인의 책에 등장하는 '패트릭'과 '앤지' 생각이 많이 난다. 패트릭과 앤지는 사건을 함께 풀어가며 죽을 고비를 무수히 넘긴다. 마이크 해머도 미녀 여비서 벨다의 도움을 받긴 하지만 위험에 노출되는 일은 모두 혼자서 처리한다. 마이크의 이런 점은 패트릭과 앤지의 모습과 다르긴 하지만 '정의'를 위해 가차없이 총을 쏠 수 있는 배짱이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마이크는 친구 '잭'이 살해 당한 것을 알게 된 후 범인을 잡으면 직접 처단하겠다는 말을 하고 다닌다. 전쟁에서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잭에 대한 의리지만 성격상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것 같다. 법정에서 죄를 지은 녀석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고 스스로 처단하겠다는 굳은 결의가 보인다. 이런 모습이 멋져 보여서 늘 아름다운 여자들의 유혹을 받는 건가. 이해가 안가긴 하는데 뭐, 나도 내 곁에 마이크가 있다면 가슴이 두근거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부딪쳐오는 아름다운 여자들의 행동과 마이크의 행동은 솔직히 너무 가벼워 보이긴 한다. 그래서 이야기의 전개가 빠르다는 느낌도 함께 받는다. 샬럿의 행동이 제일 이해가지 않았는데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 이야기를 내뱉는 것을 보면서 "이거 진심이야? 장난이야?" 하는 생각이 들어 이 여인을 요주의 인물로 메모를 해 놓는다. 여비서 벨다의 마음이 가장 순수해 보이는데 왜 마이크는 그녀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것일까. 벨다와 마이크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 지켜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범인이 누구인지 이번에는 제대로 짚었는가 하면, 물론 아니다, 라고 말해야겠다. 살짝 마지막장을 들춰보았는데 그 때 등장한 인물이 범인이 아닐까 생각했었으니, 범인이 누구라고 나 스스로가 생각해 낸 것은 아닌 것 같으니 말이다. 마이크는 왜 범인에게 살인을 저질렀는지 변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을까. 마이크는 내내 범인을 자신이 처단하겠다는 말을 했기에 스스로 범인을 알아내고 범인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잡자 스스로 처단해 버린다. 그렇기에 잭의 죽음에 이여 계속 발생한 살인사건에 대한 설명에는 헛점이 생길 수 밖에 없는데 범인이 누구인지,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궁금했던 나로서는 이렇게 끝나는게 아쉽기만 하다. 마이크가 처음부터 궁금해 했던 '살해동기'를 명확하게 알 수가 없으니, 왜 살인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나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다. 한 사람의 욕망으로 인해서? 물론 살인사건에 꼭 동기를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명의 희생이 있었으니 무언가 이유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나 보다.
 
마이크와 마지막으로 대면한 범인의 행동 또한 이해되지 않기는 마찬가지, 그 마음속에는 어떤 말들이 숨겨져 있었는지 이왕 마지막 가는 길인데 변명할 시간이라도 주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잭의 원수를 갚는 마이크의 멋진 모습을 부각시키는 것은 좋았는데 이런 점이 많이 아쉬웠다. 다음 권에는 좀 더 멋진 모습의 마이크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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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문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김주영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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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문. 이 책을 끝까지 읽으면 이 달의 문을 통해 무엇을 하고자 했는지 알 수 있으나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일이란 대체로 "~했더라더라"고 마무리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개기월식이 일어났을 때 나의 눈 앞에서 사람들이 사라졌다고 해도 믿기 힘들었을 것이다. 마술처럼, 어떤 트릭에 의해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았을까 그리 생각하지 않았을까. 7월 16일, 22시 30분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 일에 꼭 필요한 이시미네 다카시가 유괴사건의 용의자로 잡혀간 상황이라 이시미네를 오키나와 나하 공항으로 데려오기 위해 마카베, 가키자키, 사토미는 세 사람은 비행기 납치극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야 만다.

 

탈출경로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납치범들을 보면서 대체 어떻게 이 일을 해결할 것인지 궁금해진다. 하지만 비행기내 화장실에서 벌어진 밀실 살인으로 인해 비행기 납치극이 갑자기 밀실 살인사건을 밝히기 위한 장소가 되어 버린다. 이래서야 무엇이 중요한 사건이 되는지 독자들이 헷갈리지 않겠는가. 아이를 인질로 잡힌 부모들의 행동은 초반 납치극이 벌어졌을 때 잠깐 보여줄 뿐 그 뒤부터는 납치범들과 이들이 내세운 자마미군과 그의 여자친구, 그리고 또 한 사람인 '마리'와 계속 화장실 앞에 모여서 밀실 살인을 풀어나가는데 여념이 없다. 이런 상황은 지극히 일본소설 다워서 헛웃음이 나오기도 하는데 간혹 영화에서 군인들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총으로 무장하고 비행기 납치극을 벌일 때 긴장감이 고조되던 것에 반해 "달의 문"은 오로지 화장실에서 일어난 밀실 살인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납치극을 벌린 듯 착각하게 만들어서 지루해진다.

 

자마미군 나름대로 비행기 납치극의 전모를 파헤치기 위해 마카베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던지며 승무원에게 정보가 들어가게 만들거나 납치범 세 사람을 분열하게 만들기 위해 그들을 밀실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납치극의 끝에 서서 이 사건을 아주 명쾌하게 해결함으로써 이들과 공범이라는 느낌을 받게 하기도 한다.

 

이시미네에게는 어떤 능력이 있기에 사람들이 그와 함께 있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일까. 납치범의 요구대로 이시미네가 이들과 합류했을 때 납치극은 그저 해프닝에 지나지 않는 사건이 되어 버리고 이제야 이시미네를 내세워 하고자 했던 일의 서막이 열리게 되긴 하지만 납치극이라는 것이 선한 일은 아니니 그 끝이 좋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지면을 밀실 살인을 풀어내는데 쓰고 진정한 목적이었던 이시미네가 왔을 때 벌어진 일은 단 몇 장으로 마무리 하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닌가. 갑자기 허무해진다. 

 

비행기 납치, 밀실 살인, 판타지라는 세 가지를 다 잡을 것이 아니라 한 가지에만 몰두했다면 더 좋은 작품이 되었을텐데 많이 아쉽다. 납치극이긴 하지만 전혀 긴장감을 느낄 수 없었고 밀실 살인이지만 오로지 자마미군의 머릿속에서 해결 가능한 사건이었다는 점과 달의 문을 통해 이들이 보여주고자 했던 바가 판타지로 보여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키나와 나하 공항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급속도로 빠르게 잊혀져 버렸을 것 같다. 이제는 이 사건의 중심에서 함께 했던 자마미군만이 그들을 추억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날 곳곳에서 사라졌다는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과학적으로 입증할 순 없지만 이들을 통해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말할 순 있을테니 납치극이 완전한 실패로 끝난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것으로 납치범들은 만족했을까. 아니, 스스로 결정한 결말이 너무 아쉽게 느껴져 억울해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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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한 다스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문화인류학, 개정판 지식여행자 7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이현우 감수 / 마음산책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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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한 다스라고 하면 바로 '12'라는 숫자를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마녀의 한 다스라? 이건 무얼 말하는 것일까. 누구든 이 호기심으로 이 책의 첫 장을 펼치게 되지 않을까? 마녀의 세계에서는 한 다스가 '13'이라고 하는데 정말 신빙성이 있는 것인지는 장담을 못하겠다. 내가 마녀의 세계에 가 본적이 없으니 알 수가 있나. 그렇지만 저자가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거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아는 이들에게 말해 주어야겠다 싶어 머릿속에 각인시킨다.
 
'13'이라는 숫자는 우리나라가 '4'를 멀리하는만큼 불길한 숫자로 다가온다. "13일의 금요일"에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날 문득 금요일인데 '13'일이 찍혀 있으면 왜인지 기분이 별로 안좋다. 지구촌이 세계화가 되면서 이웃나라는 물론이고 먼 나라의 일을 집 안에서 알 수 있는 세상에 살다보니 남일 같이 느껴지지 않나 보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에 대해서, 일본에서 살고 있는 일본인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면 요네하라 마리가 들려주는 문화인류학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장소에서 벌어지는 여러 인종들이 겪는 이야기는 그녀가 들려주기에 그래서 더 신선하게 다가온다. 간간이 통역일을 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들려주어 이제야 그녀의 글을 제대로 맛볼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즐겁기만 했는데 세계 곳곳을 방문하지 않고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지식을 독자들은 이렇게 편안하게 집 안에 앉아서 접할 수 있다는 행복도 함께 누려볼 수 있었다.
 
문화를 이야기함에 있어 '언어'는 결코 빼 놓을 수 없는 부분인가 보다. 그래서 저자와 함께 하는 지식여행은 그리 쉽지 않다. 그저 발길 닿는대로 따라가서 유명한 건축물 앞에서 사진이나 찍는 여행기가 아니기에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 모든 것을 오롯이 흡수하기엔 나의 지식이 너무 짧아 속이 상할 정도다. 아무리 화려하고 좋아도 일본인은 절대 타고 싶지 않을 차가 무엇인지 문제를 내도 둔해 빠진 나의 머릿속에서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저자의 발걸음을 따라가기도 버거울 정도였다. 저자가 정답을 말해주지 않았다면 끝내 모르고 지나갔을텐데 다행히 뒤에 답을 말해주어 한참을 웃었더랬다. 나도 아무리 좋은 차라도 저 차는 안타고 싶다. 누구든 그러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니 아마 어떤 차인지 책을 읽지 않았다면 몹시 궁금할텐데 그렇다면 이 책을 읽어봐라. 나는 결코 저자처럼 쉽게 답을 말해주지 않을테니까.
 
요네하라 마리의 책은 지식만을 전하지 않는다. 삶도 함께 이야기 한다. 그녀의 글에는 살아 숨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하다가도 돌연 어떻게 이런 어려운 정보를 얻었나 싶게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그녀를 보고 있으니 저자와 독자사이의 간격이 더 멀어지는 것 같아 못내 서운하게 생각되지만 오히려 그녀의 글을 오랜 세월 계속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더 크게 느껴진다. 독자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들이 많이 남았을텐데, 맛깔나게 이야기하는 그녀의 유쾌한 여행에 계속 동참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슬프다. 옆에서 들려주는 그녀의 이야기에 내가 버렸던 열정들이 다시 살아날 것 같은데 이렇게 책으로나마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 무척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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