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번째 밀실 작가 아리스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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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마카베 세이치는 자신의 별장인 성화장으로 지인들을 초대하는데 왜 하필 올해 이런 끔찍한 살인 사건이 벌어진 것일까. 알고 보면 지금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사건이었지만 임상범죄학자 히무라 히데오가 초대된 올해 이렇게 살인 사건이 벌어진 것이 결코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히데오는 이곳에서 명탐정으로서 활약을 하고 경찰보다 먼저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낸다. 범인을 향해 "당신, 이렇게 살인을 저질렀지?"하고 밝혀내는 것은 여느 미스터리 소설과 다르지 않아 재미는 크게 느낄 수 없다. 히데오 옆에서 멍청하게 다른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혼자 가슴 아파하는 아리스를 보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을 주긴 하지만 말이다. 누가 되었든 범인은 아는 사람일 터이니 아리스에게는 그리 유쾌한 상황이 아니다. 거기다 마카베 세이치에 관한 비밀스러운 부분까지 알아야 했으니 아리스에게는 이 사건이 크리스마스의 악몽처럼 여겨질 것이다.

 

추리 소설가들과 출판사 편집인들이 모인 자리인만큼 밀실 살인에 대한 의견이 분분할 것 같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서로 타인의 비밀을 폭로하거나 자신의 이익 챙기기에 급급하니 사람에 대한 실망만 늘어날 뿐이다. 추리소설가 아리스가와 아리스 또한 범인이 될만한 인물들의 살해 동기에 대해 떠올리며 괴로워하니 지금 상황으로서는 범인을 제외하고 누구나 비슷한 생각을 한다. 사실 밀실 트릭은 알고 보면 꽤 간단한 장치일 것이다. 그럼에도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어쩔 땐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히데오가 미워 보일 때도 있다. 범인이 누구인지 빨리 알려주면 좋으련만, 괜히 초조해진다. 아리스도 어느 정도 트릭을 밝혀 냈으나 히데오와 의미심장한 눈빛만 교환하며 알려주지 않는다. 둘 다 똑같아서 괘씸하다. 그런데도 기다려 보는 수 밖에 할 일이 없다.

 

마카베 세이치가 살해되기 전 각 방에 꾸며진 이상한 일들, 이는 분명 살인 사건과 관련이 있을 터이나 그 누구도 내가 했다고 하며 나서는 이가 없다. 그렇다면 살인범이 꾸민 짓이라는 것인데 대체 의미가 뭘까. 왜 쓸데없는 장난을 쳐 놓은 것일까. 히데오가 설명해주면 아하, 하고 무릎을 치게 되지만 지금은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조자 알 수가 없어 답답해질 뿐이다. 살인 사건의 범인조차 모르겠는데 다른 곳에 신경 쓸 여유가 어디 있나. 살인 사건 두 건에 각 방에 꾸며진 이상한 것들 이 모든 것들이 독자들에게 혼란만 줄 뿐이다.

 

범인이 말한 살해 동기는 범인에게는 꽤 중요한 일이나 나에게는 굳이 살인까지 저질렀어야 했었나 싶을 정도로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되는 일은 아니었다. 한정된 인원 속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이어서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질 수 밖에 없는데 자결을 생각하지 않는 한 자신의 남은 인생을 살인범으로 지내기로 결정했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작가가 억지로 만든 설정 같다. 이러니 마카베 세이치가 죽어서 그가 말한 '천상의 추리소설'을 읽어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범인조차 살인을 한 후 현장에서 벗어나지 않고 정신 없이 빠져들어 읽었다는 그 작품은 이제 범인의 기억속에서만 남아 있을 뿐이다. '46번째 밀실'의 작품성을 놓고 볼 때 '천상의 추리소설'을 읽어 볼 수 없다는 것이 독자들에게는 가장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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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소녀에 얽힌 살인 고백
사토 세이난 지음, 이하윤 옮김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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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미에 당신이 엄마 자격을 잃은 것은 스기모토를 만난 순간부터가 아니다. 스기모토의 아이를 가졌을 때도 아니다. 아키가 도와달라 손을 내밀었을 때 그 손을 잡아주지 않은 그 때 당신은 아키의 엄마 자격을 잃었다. 그때 당신은 오히려 아이에게 죄책감을 심어줬으니 살아가는 동안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숨쉬는 동안에 계속 떠올리게 될 것이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철저하게 내던져지고 학대 받았던 아키, 이 아이가 살아남으려는 의지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달리는 차 앞으로 뛰어 들고, 자신이 받은 학대를 고스란히 자신보다 더 약한 이에게 돌려준다. 이런 아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고? 쿠마베는 자신의 잘못으로 그리 되었다고 하며 아키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학대받은 아동이 보이는 심리상태라고 보기엔 아키의 행동은 너무나 잔인한 결과를 낳았고 여러 사람이 고통 받았다. 한 사람은 당연히 치뤄야 할 죗값을 받았다고 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현재도 그녀에 의해 또 다른 이가 고통당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째서 그녀를 이해해야 하지? 이제 그녀의 행동이 순수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학대 받은 사람들이 보이는 심리상태로 보이지도 않는다. 아키의 감정을 스기모토가 잡혔을 때 끊어내줬어야 했다. 쿠마베는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내고자 해서는 안 될 일에 가담한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이것으로 나는 아키에 대한 애처로움을 조금 떨쳐 버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세상이 그렇게 만들었지만 이미 아키에게도 숨겨진 본성 같은 것이 드러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책을 덮자 나의 기억속에서 그녀를 깨끗하게 몰아내 버렸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 타인의 삶까지 파괴할 수 있는 권한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사토 세이난의 '어느 소녀에 얽힌 살인 고백'은 '그'가 아키를 알고 있는 이들을 찾아가 그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는 인터뷰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으나 아키가 살아 있으니 실은 이것에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아키가 자신의 독백으로 10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려주었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드니까. 물론 다른 이에게 듣는 것이 훨씬 충격이 크긴 했다. 인터뷰를 하는 이가 누구인지 짐작도 할 수 없지만 그의 정체를 알게 되는 것은 이 책의 반전이 아니다. 이미 아키가 한 행동으로 인해 독자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아키에 대해 알아보는 이가 누구라고 한 들 놀랄 일이 또 있겠는가. 단지 아키의 모든 것을 알게 된 그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는 관심이 간다. 앞으로 아키가 행복할 수 있을까와 동일한 질문이기도 하기에 그의 결정이 중요하다.

 

왜 '그'가 아키에 대해 알아볼 필요를 느꼈을까. 이는 이미 그녀에 대한 불신이 싹트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를 아키에게 맡기지도 못하고 불안한 생활을 하는 그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어떤 결정을 내리든 아키에게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아키는 여전히 자신의 어린 시절인 과거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불행의 고리들은 여전히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있다. 그녀의 감정의 끝이 어디로 향하게 될지 무섭다. 이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어른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닌 오로지 아키, 그녀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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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더 선 시스터 문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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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메는 대학 사년 동안의 기억이 없다고 했지만 아야네와 마모루, 두 사람의 기억으로 그들이 생각지는 않았으나 그 사년 동안의 시간은 꿈을 향해 나아가는 기반을 만들어준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세 사람의 기억 속에 똑같이 각인되어 있는 사건(뱀이 날아온 사건)은 인상깊어 학창 시절을 떠올리는 한 사건이 되었고 이 사건으로 인해 세 사람은 몇 년간의 시간을 함께 하게 된다. 그러나 세월이 훨씬 지난 후 하지메와 아야네, 마모루 자신들의 기억은 추억속에 머무르게 된다.

 

대학을 졸업한 후 취직을 한 후 사회에 몸 담았던 하지메는 현재 영화감독이 되어 있다. 그의 다음 작품으로는 옛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짐작이 되지만 아쉽게도 아야네와 마모루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메가 인터뷰 중에 같은 금융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다고 했으니 그 상대가 아야네는 아닐 것이다. 마모루의 기억속에서는 하지메가 아야네를 좋아했다고 언급했기에 두 사람이 이어지지 않아서 안타깝다. 청춘남녀의 사랑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나이가 들어서도 사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메와 아야네와 마모루는 서로 추억속에서 존재하는 것이 더 좋은데도 말이다.

 

하지메처럼 아야네도 자신의 꿈을 이루었을 것이라 믿는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둘러, 둘러 들려준다고 꽤나 지루한 이야기를 들어줘야했음에도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글로 쓰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그런 감정들이 아무 상관 없어진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성인이 되어 버린 후의 일은 대학을 들어오기 전이나 후 모두 지루한 시간들이었지만 사년 동안은 '글을 쓰고 싶다'라는 꿈을 가지게 하는 기반이 되어준 시간이었으니 그리 헛되게 보낸 것은 아닐 것이다.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는 듯 무난하게 세월을 보낸 마모루와 아야네와 하지메의 이야기는 나를 옛 기억속으로 데려간다. 나도 입이 삐뚫어져도 그 시절이 좋았다고 말하진 않겠지만 나이를 먹는 것이 무서워지는 요즘 그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어떨까 가끔 떠올려 보기도 한다. 다시 돌아가봐야 지금까지 겪었던 일들을 다시 겪을 뿐이겠지만 어쩌면 다른 결말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삶은 늘 바뀌니까 말이다. 

 

동료들과 함께 밴드에서 연주를 했던 마모루가 지금은 배가 나온 중년의 아저씨가 되어 있을지는 모르지만 음악을 들으며 다시 연주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렸을 그의 모습은 눈 앞에 그려볼 수 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세월이 마모루와 아야네의 꿈을, 하지메의 현재를 이해할 수 있게 하니까. 현실은 때론 가혹하고 빛나 보였던 옛 기억을 퇴색시키지만 그 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진다면 학창시절을 그리워해도 되지 않을까. '그 시절이 좋았다'고 무심결에 말해 버려도 상관 없을 때가 분명 올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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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치드 매치드 시리즈 1
앨리 콘디 지음, 송경아 옮김 / 솟을북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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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아는 잰더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을 포기했다. '일탈자' 카이와의 사랑을 선택함으로써 이제 가족들까지 위험에 빠뜨리게 되었지만 그 어떤 희생이 따른다고 해도 그녀는 결코 카이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앨리 콘디의 '매치드'는 카시아와 잰더와 카이의 삼각관계를 다룬 단순한 로맨스 소설이 아니다. 소사이어티내에서 '오피셜'들에 의해 모든 것들이 통제된 상태에서 선택권을 부여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세 사람의 사랑과 그들이 지키려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스스로의 삶을 결정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소사이어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먼 우주에서나 일어나는 일들처럼 낯설기 그지 없는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도 선택하지 못하고 오피셜들이 정해주는 매칭 상대를 받아 가족이 되어 함께 살아가야 하다니, 그들은 심장이 뛰는 살아있는 사람이지만 기계 인간과 다를 바가 없는 삶을 살아간다. 카시아는 누군가에 의해 매칭 상대가 잰더가 아닌 카이의 얼굴로 바뀌는 것을 봐야 했고 그때부터 그녀의 삶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는 오래전부터 예측 되어 왔던 상황이다. 카시아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삶도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아니 오피셜들이 처음부터 그 균열을 보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오피셜들이 백 편의 시만 남기고 모두 폐기하였으나 카시아의 할아버지는 콤팩트에 할머니가 숨겨둔 '시'를 간직하고 있었고 이를 카시아에게 남겨 준다. 오피셜들이 정해준 수명에 따라 죽지만 카시아의 할아버지는 다음에 이어질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한다. 자신의 표본을 그들에게 넘겨 주지 않고 다시는 그들에게 미래를 맡기지 않는다. 이는 대단히 위험한 행동에 해당되지만 할아버지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소사이어티의 '오피셜'들이 지배하기 전 세상을 기억하는 이들은 아직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려 하는 것이다.   

 

매칭 상대의 얼굴이 잰더에서 카이로 바뀌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누군가에 의해 카시아와 카이의 만남이 정해져 있었던 거라면 두 사람의 감정을 진정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지금까지 끊임없이 되묻고 있는 질문들이다. 카시아는 이미 여기에 대해 확고한 답을 내린 모양이지만 누가 자신의 삶을 바꿔 버렸는지 알지 못하는 한 그 무엇도 완전하게 믿지 못할 것이다. 모든 것을 감시 당하는 카시아가 카이를 찾아가는 일은 쉽지 않은 여정이 될 것이다. 카이를 향한 마음과 그가 남겨 준 공예품만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카이가 있는 곳을 알게 되면 카시아는 꼭 그를 찾아 떠날 것이다.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삶을 위해,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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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
구라치 준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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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믿을 사람 하나 없구나. 어쩐 일인지 작가가 사건에 대한 힌트를 주길래 주의 깊게, 아주 유심히 봤는데 오히려 이것이 나의 허를 찌를 줄은 몰랐다. 오히려 무념무상인채로 사건을 들여다 보았다면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낼 수도 있었을 것을 아깝다 아까워. 물론 이번에도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낼 수 없었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누구 누구는 범인이 아니라는 작가의 말을 믿고 다른 사람만 의심하다가 범인을 놓쳤으니 이것은 꽤 억울한 일이다. 아, 물론 작가의 말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독자들에게 혼란을 주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비천한 시중꾼인 가즈오가 별 내리는 산장에서 살인사건을 겪게 된 일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잘못때문이었다. 뜻하지 않게 살인사건에 휘말려, 평범한 사람도 이런 일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은 무섭긴 하지만 이것은 가즈오가 자초한 일이니 너무 불안해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시체 곁에 아무렇지 않게 다가가는 사람들을 보면 조금 놀라게 되긴 하지만 말이다. 눈으로 인해 조난 당한 사람들이 스스로 범인을 밝혀내기 위해 시체 곁에 다가가는 것이니만큼 이 정도는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해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이 사건의 결말이 나지 않으니까.

 

작가가 미리 범인으로 제외할 사람을 말해줘서 군더더기가 없긴 하지만 5명 중에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호시조노가 트릭에 대해 설명해줘도 도통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나는 범인이 누구인지 결코 알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긴박감있게 진행되던 사건이 호시조노가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보겠다고 나서는 순간 사건 진행이 느려지는 것은 원하지 않던 일이다. 이 잘난체 하는 호시조노가 버터가 줄줄 흐르는 모습을 하고 사건을 밝혀냈노라고 말하다니 어울리지 않는다. 왜 자신이 나서서 범인을 밝혀내려는 것일까. 가즈오에게 자신이 살았던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을 때부터 탐정의 역할을 맡게 되리라는 것을, 탐정 역할을 맡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이해하긴 했지만 경찰이 올 때까지 그대로 두어도 될 일을 굳이 자신이 나서서 밝혀내다니 이상한 사람이다. 살인사건이 계속 일어나니 불안하기도 했겠지만 천장을 향해 손가락을 하나 세우고 버터가 줄줄 흐르는 대사를 하는 호시조노에겐 어울리는 모습은 아니다.

 

전화도, 전기도 끊겨 버린 이 폐쇄된 공간에 이들이 모이게 된 배경부터 의심해 보아야 할까. 여기에 모이지 않았다면 살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추악한 진실 또한 은폐된 채 아무일 없이 살아가고 있었을 이들이 여기에 모인데는 이유가 있을 것인데,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은 없다. 거기다 두 번째 살인사건까지 이건 뭐 가즈오와 호시조노를 제외한 이들이 모두 범인으로 보이니 내가 나선다면 사건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느끼하긴 하지만 호시조노가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게 내버려 두는 것이 낫겠다.

 

산장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들, 몇 명 되지 않은 이들 속에 범인이 있는 설정은 미스터리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트릭과 반전이 독자의 허를 찌르지 않는 한 다른 소설들과 다르지 않을 터라 처음 이 책을 읽기 전 독자들은 두 갈래로 나뉘었을 것이다.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읽거나 그래도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이 있어 재밌지 않을까하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구라치 준의 '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은 후자에 속한다. 뻔한 소설과는 다른 기발한 트릭과 반전으로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책,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읽은 후에 느낀 감상이다. 여기서 더 이야기 해 줄 수가 없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읽게 되는 것은 누구나 원하지 않는 일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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