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소녀에 얽힌 살인 고백
사토 세이난 지음, 이하윤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키미에 당신이 엄마 자격을 잃은 것은 스기모토를 만난 순간부터가 아니다. 스기모토의 아이를 가졌을 때도 아니다. 아키가 도와달라 손을 내밀었을 때 그 손을 잡아주지 않은 그 때 당신은 아키의 엄마 자격을 잃었다. 그때 당신은 오히려 아이에게 죄책감을 심어줬으니 살아가는 동안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숨쉬는 동안에 계속 떠올리게 될 것이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철저하게 내던져지고 학대 받았던 아키, 이 아이가 살아남으려는 의지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달리는 차 앞으로 뛰어 들고, 자신이 받은 학대를 고스란히 자신보다 더 약한 이에게 돌려준다. 이런 아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고? 쿠마베는 자신의 잘못으로 그리 되었다고 하며 아키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학대받은 아동이 보이는 심리상태라고 보기엔 아키의 행동은 너무나 잔인한 결과를 낳았고 여러 사람이 고통 받았다. 한 사람은 당연히 치뤄야 할 죗값을 받았다고 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현재도 그녀에 의해 또 다른 이가 고통당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째서 그녀를 이해해야 하지? 이제 그녀의 행동이 순수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학대 받은 사람들이 보이는 심리상태로 보이지도 않는다. 아키의 감정을 스기모토가 잡혔을 때 끊어내줬어야 했다. 쿠마베는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내고자 해서는 안 될 일에 가담한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이것으로 나는 아키에 대한 애처로움을 조금 떨쳐 버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세상이 그렇게 만들었지만 이미 아키에게도 숨겨진 본성 같은 것이 드러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책을 덮자 나의 기억속에서 그녀를 깨끗하게 몰아내 버렸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 타인의 삶까지 파괴할 수 있는 권한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사토 세이난의 '어느 소녀에 얽힌 살인 고백'은 '그'가 아키를 알고 있는 이들을 찾아가 그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는 인터뷰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으나 아키가 살아 있으니 실은 이것에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아키가 자신의 독백으로 10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려주었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드니까. 물론 다른 이에게 듣는 것이 훨씬 충격이 크긴 했다. 인터뷰를 하는 이가 누구인지 짐작도 할 수 없지만 그의 정체를 알게 되는 것은 이 책의 반전이 아니다. 이미 아키가 한 행동으로 인해 독자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아키에 대해 알아보는 이가 누구라고 한 들 놀랄 일이 또 있겠는가. 단지 아키의 모든 것을 알게 된 그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는 관심이 간다. 앞으로 아키가 행복할 수 있을까와 동일한 질문이기도 하기에 그의 결정이 중요하다.

 

왜 '그'가 아키에 대해 알아볼 필요를 느꼈을까. 이는 이미 그녀에 대한 불신이 싹트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를 아키에게 맡기지도 못하고 불안한 생활을 하는 그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어떤 결정을 내리든 아키에게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아키는 여전히 자신의 어린 시절인 과거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불행의 고리들은 여전히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있다. 그녀의 감정의 끝이 어디로 향하게 될지 무섭다. 이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어른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닌 오로지 아키, 그녀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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