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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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자들의 도시를 읽고 이 책을 읽었을때의 첫느낌이란 왜이리 지루한가였다. 정치가들이 모여 구구절절 이야기하니 말장난 하는 것 같고 눈먼자들의 도시에서처럼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심리적인 묘사나 눈 먼 상태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묘사한 것도 아니라서 탁상공론이나 하는 이런류의 책은 역시 읽어나가는것이 너무나 힘이 들었다. 특히나 문단이 나뉘어지지 않고 딱 붙어서 적힌 책이라니. 

 

눈먼자들의 도시 4년후의 상황. 눈은 뜨고 있으나 제대로 보지 않으니 눈멀어 있는 상태라고나 할까. 눈이 멀어 백색의 공포를 느꼈을때 그들을 제일 먼저 버린 것은 정부였다. 낡은 정신병원에 가두고 전염병 환자처럼 대하고 버린 그들이기에 4년후 사람들이 투표함에 백색투표를 던진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가. 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에 이런일이 벌어진다면 과연 정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솔직히 다 똑같아 보이는 권력자들중 누굴 찍어 정부의 일을 맡겨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아 투표하러 가는 것 조차 귀찮기만 하니까. 그나마 어떤 힘에 이끌려 폭우가 그치고 투표하러 갔다는게 대단하다. 경악할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이 백지투표를 내긴 했지만 이것으로 얼마나 속이 후련해지는지. 그러나 이것도 잠시, 무슨 백색투표를 한 사람들이 전염병 환자라도 되는양 정부가 또 이들을 버렸으니 통탄할 일이다.

 

수도를 버리고 그 경계를 군인들이 지키고 있게 하여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봉쇄 해 버린다. 눈이 멀었을때 하던 행동의 반복이다. 명분은 있다.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아 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권력이 없는 상황에서 정부에게 도움을 청하게 될 것이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그러나 너무도 평화로운 이 곳 그들은 허를 찔렸으니 그렇다고 역에 폭탄을 장치하여 수많은 사상자가 나오게 하는 건 좀 너무하지 않나? 화가날 정도로 어리석은 짓을 하는 그들이고 보니 앞으로 이 사태를 어찌 풀어가려나 궁금해진다. 그나마 시장이 "누가 폭탄을 설치 했느냐?"고 정부를 향해 부르짖고 사퇴를 하니 아직 이 사회가 죽은 도시는 아니었던게다. 아직은 양심이 살아있는가 보다.

 

평화로운 시위. 피가 튀기는 상황을 바라는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폭발로 인해 죽은 사람들을 묻고 정부 각처의 건물만 쳐다보고 가는 사람들, 그 무언의 시위속에 얼마나 많은 말들을 했을 것인가. 백색투표를 하지 않고 정당들을 지지했던 사람들도 이 도시에 함께 있는바 참으로 불안했을 것이다. 그러나 밖으로 나가겠다는 그들의 노력이 저지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때 함께 이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짐을 옮기는 것을 같이 도와준다. 피 튀기는 살육이라도 바랬건만 정부의 입장에서는 진퇴양난 빠져나갈 곳이 없음을 느끼게 된다.  

 

정부의 잘못이건만 근본적인 잘못은 뒤로한채 그들에겐 희생양이 필요하다. 백색공포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눈을 떴으니 세상을 좀 제대로 봐야하지 않겠는가. 여전히 그들은 왜 그때 눈이 멀었는지 모른채 똑같은 행위들을 반복하고 있으니 슬프다.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그들에게 벌을 내린 것이 백색공포가 아니겠는가. 권력자들만 눈이 멀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겨우 하루 벌어 먹고 사는 사람들이 무슨 죄라고. 또 그 벌은 일반 시민들이 받고 있지 않은가. 울분이 솟는다. 차라리 이들이 눈먼자들의 도시에 살고 있을때가 더 좋았던 것 같다. 이젠 모든 것을 봐야만 하는 상황에서 여전히 그들을 버리고 도망가는 정부를 봐야만 하기에 그 배신감을 어찌 다스려야할지. 그들이 내세운 희생양만으로 이 사회는 예전의 정부를 지지하던 국민들이 있던 세상이 돌아올 수 있다고 믿는 것인가. 어리석다. 참으로 어리석어. 이들에게 또 어떤 큰벌이 내릴 것인가. 벼락이라도 쳐야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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셉티무스 힙 1 - 녹색 눈동자 셉티무스 힙 1
앤지 세이지 지음, 송경아 옮김, 마크 저그 그림 / 서울교육(와이즈아이북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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셉티무스 힙 시리즈가 몇권에 이르러서야 완결이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읽은 단 한권만으로 모든 내용을 파악할 수가 없어 조금 답답하나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예측하는 것만으로도 유쾌한 기분이 든다. 판타지나 동화들은 아이들만 읽는 전유물은 아니기에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아직은 마음이 어리다는 것을 내심 즐기고자 판타지 장르의 책을 읽곤 하는데 내가 만난 셉티무스 힙의 1권 녹색눈동자는 제나가 사라 힙과 사일러스 힙의 손에 자라게 되면서 열살이 되어서야 자신의 신분이 공주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점점 상황이 긴박감속에 전개된다.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던 일이라 크게 놀라진 않지만 자신이 낳은 자식처럼 길러왔기에 사라와 사일러스에겐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갓 태어난 아들이 죽은날 사일러스가 데려온 딸이니 친자식처럼 길렀을게다. 제나는 친구와 자신들이 공주자매라는 상상을 하며 놀았기에 한편으로는 기쁜 소식이기도 하지만 가족들과 함께 하지 못할까 두렵기도 하다.

 

공주가 있는 곳을 친위대장에게 들켜버렸다. 10년만에 찾아낸 것을 보면 좀 아둔하기도 하지만 그가 모시는 네크로맨서인 돔다니엘의 야심이 무엇인지 아직은 알 수가 없으니 여왕을 죽이고 이젠 공주까지 해하려 하기에 목숨을 보전하는 것이 제일 시급하다. 특별 마법사 마르시아는 차갑고 무뚝뚝한 성격이긴 하나 공주인 제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돔다니엘과 결투를 벌릴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마법사인 것 같아 조금 안심이 된다. 거기에 비하면 평범한 마법사 사일러스는 메시지 쥐의 입을 열게 하기 위한 마법의 주문도 겨우 기억할 정도라 안심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제나가 딸이기에 기꺼이 희생하여 지켜주리라는 믿음이 있다. 제나가 어서 자라 돔다니엘에게 대적 할만한 멋지고 강한 공주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직은 연약한 아이이기에 걱정이 된다.

 

보통 마법사라면 왕과 여왕을 지키기 위해 예속된 경우가 많은데 앨더 멜라의 도제인 마르시아는 여왕을 죽이려는 움직임을 알았으나 앨더가 이를 눈치채지 못해 여왕의 죽음에 손을 쓸 수가 없었다는게 솔직히 불만이다. 이로 인해 자신도 죽어 유령으로 떠 돌며 제나에게 힘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여왕을 지키는 자가 몇 되지 않았기에 앨더의 책임 없는 행동이 괘씸하기까지 하다. 친위대장이 돔다니엘에게 넘어간 상황이라 특별 마법사가 그렇게 되기까지 눈치를 채지 못했다는게 조금 이해가 가지 않기도 한다. 성안에서의 마법사의 일은 대체 무엇이었단 말인가. 앨더가 자신의 임무를 소홀히 한것만은 틀림없으니 유령으로 떠도는 모습이 무섭고 처량해 보이긴 하지만 그냥 지켜봐야겠다. 앨더가 죽고 대신 특별 마법사가 된 마르시아는 공주를 무사히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제나의 곁엔 그녀를 지켜주는 사람들이 많다. 아마 412호 소년의 활약이 대단할 것 같다. 그가 혹 사라와 사일러스의 죽었다던 아이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우연히 얻게 된 반지로 인해 마르시아에 대적할만한 마법의 기운을 가지게 되니 앞으로 돔다니엘이 어떤 것을 얻게 되든 쉽게 가질 수 없으리라. 이 반지의 존재는 무엇일까. 평범한 사람이 가지고 있어도 마법의 힘을 쓸수가 있는 것일까. 이름이 무지하게 삭막한 412호 소년이 어떻게 성장하게 될 것인지 기대가 된다. 근데 이름 좀 고쳐주면 안될까. 412호는 좀.....

 

사투리를 쓰는 듯한 보가트, 젤다 고모의 오두막집은 마법으로 가려져 있어 도저히 찾을 수가 없고 뒤에는 사냥꾼이 쫓아오고 오두막에 가는 길이 너무나 험난하다. 거기다 사냥꾼에게 고함을 쳐 알리려는 412호 소년의 정체는 대체 아군이냐 적군이냐 최대 위기를 맞게 하니 제나가 그를 제압하고 입을 틀어막아 다행이다. 마음이 꽁꽁 얼어붙어있는 412호 소년의 마음이 빨리 녹아 이들과 함께 편안하게 생활한다면 참 좋을텐데. "잘 따라오고 있수우?"라며 계속 이들을 챙겨 오두막으로 향하는 보가트의 존재는 그들에게는 좀 무서울지 모르겠지만 긴장된 분위기를 녹이는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것 같다. 메시지 쥐 '특별 신뢰 장거리 쥐'인 스탠리의 존재도 여기가 마법을 부릴 수 있는 세계란 것을 생각나게 하니 조금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있게 된다. 스탠리가 사일러스를 무사히 운반하여 사라 힙에게 보내는 마르시아의 특별 임무를 잘 해내길 바래본다.

 

사일러스는 과연 제나의 곁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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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광인 - 상 - 백탑파白塔派, 그 세 번째 이야기 백탑파 시리즈 3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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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에 대한 충성심, 이것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게 아니다. 나조차도 목에 칼을 갖다대는데 고문을 하는데 목숨을 걸고 곧은 소리 하는건 상상할 수가 없으니 자송문을 지으라 하명한 임금의 명을 따르지 않는 모습은 진정한 선비의 자태이지 않은가. 어찌 생각하면 목숨보다 귀한것이 없을진데 왜 자송문을 지어야 하는지 따지기도 하고 쓰다 지우다 쓰다 지우다를 반복하다 속에 병이 들어 죽어간 청장관 이덕무를 보면 참 답답하기도 하다. 

 

백탑파 시리즈에 대해서는 최근에야 듣게 되었다. 김탁환님의 책을 좋아한다고 자부하면서도 속속들이 다 읽진 않은 독서에 대한 깊이가 아주 얕은 것이 이참에 확연히 드러나게 되니 부끄럽기만 하다. 방각본 살인사건, 열녀문의 비밀을 먼저 읽었어야 했으나 열하광인을 먼저 대하게 되었다. 그래서 결말을 먼저 보아버린 것 같아 아쉽고 걸승 덕천, 청장관 이덕무와 오랜시간 함께 하지 못함에 섭섭하기까지 하다.

 

열하광이라 자처하는 무리들이 하나씩 죽어갈때 나름대로 누가 범일일까 추측도 해 보았으나 그런 내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이명방이 은혜하는 명은주가 범인이 아닐까 생각했으나 이것도 아니었으니 이젠 대체 이 모든 일이 왜 일어나게 되었으며 누가 범인인지 속도를 빨리하여 책장을 넘기는 수 밖에 달리 알아차릴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숨어있는 미치광이들을 찾아내라. 주해서까지 만들어 젊은 서생들의 맘을 어지럽히는 열하광들의 무리를 찾아내라"는 밀명을 받은 이명방은 간자노릇을 해야함에 마음이 심란하나 충심하나로 입을 다물고 명을 따르게 된다. 열하광 무리들이 억권루에서 모이기로 한날 미행이 따라붙고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가는데 그 죄를 이명방이 뒤집어쓰게되니 정말 모를일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막연하기만 하다.

 

내가 명은주를 의심하게 된데는 걸승 덕천이 조명수가 죽었다고 이야기 하러 찾아온 것을 모른다고 이야기 했을때 분명 그녀가 범인일 것이라 생각하고 왜 빨리 그녀에게 의심을 두지 않는지 가슴이 조마조마해졌었다. 그러나 이것이 잠들어 있을때 행한 행동 즉 몽유병이라 덕천을 보았으되 못보았다고 하니 내가 범인을 잘못 짚었음을 알고 의심을 거두었으나 이젠 누구를 범인으로 지목해야할지 알수 없어 그저 멍한 상태가 되어 버린다. 조명수가 제 목숨 버리고 벗들을 살리고자 화살받이가 되었을때는 얼마나 가슴이 뭉클했던가.

 

한명씩 죽어갈때마다 증거들은 모두 의금부 도사 이명방을 가리키고 벗을 죽인 범인을 잡기 보다 오히려 자신이 죽을 위험에 처하는데 임금이 내린 밀명은 뒤로 한채 목숨을 구하기도 바쁘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얼마나 대단하기에 임금이 나서서 경계를 하는것인가. 정녕 그들을 중히 쓰신 임금이 그들을 버리려 함인 것일까. 끝까지 임금에 대한 충성심을 버리지 않는 우직한 이명방의 모습은 고문을 당하여 살이 찢겨지고 터지는 모습에 충성심을 알아주지도 않는 군왕을 왜 저리 가슴에 담고 가려고 하는지 바보 같기만 하다.

 

의금부 도사 이명방이 모든 사건을 풀 것이라 생각했지만 화광 김진이 범인을 지목하고 모든 사실을 밝혀낸다. 비록 이명방이 매설가로 "열하광인"을 짓긴 하지만 왠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김진인 듯 하다. 왜 이런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났는가. 그 이유란 것이 솔직히 억지스러워 공감하기가 힘들다. 그때 그시절에는 문체 하나로 목에 칼이 들어올수도 있었는지라 충분한 명분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범인의 마음을 헤아리기가 힘들다. 무엇을 얻고자 했는가. 그저 장원급제하여 정승반열에 오르는 꿈을 꿨던 것일까. 아비의 원수를 갚는다고는 하지만 그 끝을 헤아릴 수 없어 동조하기 힘든 것이다.

 

화광 김진의 말처럼 군왕의 편은 오직 군왕뿐이다. 어심이 돌아서면 하루 아침에 목이 달아나는 세상이라 이번 사건에 나조차도 임금이 무관하지 않다 여겨지기에 임금에 대한 충성심을 끝내 던져버리지 않는 이명방이 어리석어 보인다. 연암 박지원이 지은 열하일기는 이렇게 세상을 한번 들었나 놓으니 그 시대에는 더 큰 세상을 열망한 사람들의 오랜 꿈이었나 보다. 범인의 뒤에 더 많은 세력이 있을 듯 생각되나 사건은 거기서 마무리 되고 세월은 흘러 이명방이 매설가로써 자신의 지난날을 글로 써 세상에 나오게 되니 그 시절을 겪어내며 힘들었던 몸과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안해졌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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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기 좋은 날 - 제136회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
아오야마 나나에 지음, 정유리 옮김 / 이레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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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고 싶다. 한적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되는데 가을이면 어김없이 드는 생각인것 같다. 그러나 정말 혼자있고 싶을까. 홀로될까봐 두려워 먼저 피하는 것은 아닐까. 타인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바라보며 그 기억의 끝을 잡고 외로워하는 사람이 있다. 도쿄에서 깅코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게된 치즈는 사람들의 추억을 훔쳐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도벽증세로 인해 사람들이 잊고 잘 찾지 않는 물건이나 가지고 싶은 것들에 손을 댄다. 이런 것을 오히려 즐긴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데 그 물건들의 주인들도 각각의 추억들과 기억을 가지고 있을텐데 늘 세상을 겉돌며 그 물건들을 보며 그때의 기분을 떠올리는 치즈의 모습은 정말 생경스럽다. 내가 그런일을 당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화가날 것 같다. 내 시간들을 도둑맞았으므로.

 

늘 생각이 많은 치즈는 앞으로 올 불행을 예상하고 사귀는 사람에게 이별을 통고받아도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라는 가정하에 모든 문제에 대처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깅코 할머니와 함께 보내면서 오히려 할머니가 더 젊은 사람같이 생각되고 치즈는 의욕도 없고 타인에게 의지하려는 나약한 모습을 보여준다. 다니는 회사에서 정직원이 되어 회사 기숙사로 나간 것은 이런 일련의 상황들을 벗어나려는 노력이라 박수를 쳐줘야 하는건지. 정이 듬뿍 들어버린 깅코 할머니와 고양이 두마리와의 동거생활이 더 좋을텐데 치즈에겐 사람의 향기가 더 필요한듯 생각되어 홀로 외로움에 잠기는 모습은 애처롭기만 하다.

 

"젊을때 다 써버리고 싶은 것에 무엇이 있을까?" 허무, 실망, 슬픔 등 많을 것인데 깅코 할머니말대로 나쁜 것을 다 써 버리고 나면 나이 들어서 좋은 것만 가지고 있어 죽기 싫어지지 않을까. 그래서 한숨도, 아픔도 세월과 함께 지닌채 늙어버려야지 삶을 대함에 있어 느긋해질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늘 쾌활한 사람이 좋다. 세상의 혼돈을 혼자 다 끌어안은듯이 살아가는것은 너무 힘이드므로 가끔은 나도 유쾌하게 지내고 싶다. 치즈는 늘 우울해 보이고 깅코 할머니에게조차 젊음을 과시하는 모습은 어린애 같아 보인다. 돈을 많이 벌어 독립하고 싶지만 세상 밖에 던져지는 것도 무섭다. 세상엔 안도 없고 밖도 없다는 깅코 할머니의 말은 나의 마음속에도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세상을 안과 밖으로 나눠놓은 것은 누구인가. 아무도 나뉘어져 있다고 말한적이 없건만 나 스스로 세상에 금을 그어놓은 것이다. 문을 닫아버리고 외롭다고 혼자있는게 좋다고 변명하고 살아온 것인가. 가슴속에서 바람이 부는 것 같다.

 

중국에 교환 유학을 떠난 엄마가 잠시 치즈를 만나러 와도 가족에게도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그녀, 난 그녀를 세상속으로 끌어내고 싶어진다. 엄마 따로 나 따로라는 느낌은 오히려 깅코 할머니와 함께 사는 것보다 더 차갑기만 하니 이런 차가움 속에서 그녀를 끌어내어 따뜻한 공간으로 데려가고 싶어진다. 그녀와 함께한 일년의 세월에 20대의 시절로 잠깐 돌아간듯 그 시절의 혼란스러움을 다시금 겪어본 것 같다. 그때의 마음을 30대의 지금도 겪고 있지만 분명 가슴속에 들어오는 세월의 깊이에 조금은 의연해진 것 같기도 하다. 깅코 할머니 나이로 눈 깜짝할새에 이동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손 내밀기 주저하게 되는 70대의 노인의 생활을 동경하기 보다 세월의 흐름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 부러워 가까이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싶어진다. 깅코 할머니는 치즈의 피부가 너무 부럽지만 호스케 할아버지와 핑크빛 로맨스를 즐기는 그녀의 모습이 오히려 더 싱그러워 보인다. 나도 그 나이가 되면 저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아마 이런것이 부러워 치즈는 할머니를 괴롭혔겠지. 나도 괜시리 심술이 생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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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로 만든 사람들
살바도르 플라센시아 지음, 송은주 옮김 / 이레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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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옛추억이 되어 버렸지만 또래 친구들과 인형놀이를 했던 기억이 난다. 종이위에 그려진 것들을 가위로 잘라 종이인형에게 옷도 입히고 구두도 신기고 가방까지 들려주며 친구들과 내가 인형의 화자가 되어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었던 기억. 그땐 그게 최고의 놀이였다. 뒤에 나온 마루인형이니 바비인형 같은건 비싸서 아무나 갖고 놀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어쩌면 "종이로 만든 사람들"을 첫 대면했을때 그런 아련한 추억속에 파묻혀 나만의 세계를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날카로운 종이에 손을 베일까 두려워지고 나와 같이 따뜻한 피가 흐르는 그들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며 책장을 넘기는 것이 힘든 일이 될 줄은 몰랐다. 종이로 내장기관이 만들어지고 혈관까지 만들어지는 과정은 '정말 가능한 이야기였음 좋겠다. 그러면 장기이식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 하는 단순한 생각을 넘어 종이인간을 만든 창조주에게 감탄이 절로 나오게 된다. 그래 창조주. 분명 이 책에서는 창조주가 되는 것이다. 비록 내가 있는 세계에선 이런일이 일어난다고 이야기한다면 다분히 정신이 나간 사람으로 손가락질을 받겠지만 책속의 세계에서는 이런 일도 가능한 것이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구멍이 뚫린 곳에서 손을 대보게 되고 시커멓게 칠해진 곳에서는 나름대로 유추를 하며 읽게 된다. 하지만 슬며시 일어나는 짜증. 파본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대로 인쇄가 되었다고 하지만 독자의 인내심을 무한히 시험한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이때까지 접해보지 못한 내용에 인쇄상태까지 대체 날 어디까지 몰고갈 셈일까? 여기에 등장하는 '토성'은 또 뭘까? 내가 학창시절 배운 그 '토성'이 맞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을 따라가자니 전혀 생소한 세계에 던져진 나를 발견하게 된다. 자신을 따라다니고 감시하는 존재인 '토성'에 대항하는 사람들 어쩌면 반전일 수도 있는 '토성'의 존재가 작가인 살바도르 플라센시아란 것을 너무 쉽게 밝혀주면서 또 다른 혼란을 야기하는데 '나 또한 이들을 위에서 압박하며 감시하는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실소를 하게 된다. "자신을 만들어준 작가에게 대항한다?" 정말 삼차원 메타판타지라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님을 깨닫게 되면서 이 책속에 등장하는 여러 세계들 중 나도 그 속에 존재하는 세계, 작가가 만들어낸 허상이 아닐까 하는 기분까지 들게 되는 것이다.
 
전쟁이야기를 즐겨보긴 하지만 많은 전쟁중에 종이와 싸우는 건 왠지 약자를 건드리게 되는 것 같아 싸움을 보는 것초차 피하고 싶다. 그런데 이것을 영화로 만든다면 어떤 장르가 될까? SF? 전쟁물? 갑자기 궁금해진다. 많은 사람들을 만들었지만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는 작가의 태도는 군중에 파묻혀 버리는 현대의 외로운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듯 하여 마음에 찬바람이 휘감는 것 같다. 종이의 날카로운 면을 늘 조심해야 하지만 베였을때야 아픔을 느껴 그 경고를 떠올리게 되니 어쩌면 종이로 만든 사람들의 존재는 무시무시할 수도 있지만 쉽게 바스라지기 쉬운 존재여서 오히려 대면하면 피하게 될 듯 하다. 물에도 쉽게 젖어드는 그들이 쉴 곳이 있을까. 그들도 나와 똑같다는 인정부터 하기가 힘들어지니 이런 존재가 이 세상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래야 할까.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탄생한 존재들이지만 아직 나의 머릿속에 남아 활개를 치고 있는 그들이기에 생명력이 없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이제는 종이를 보면 종이인형보다는 종이로 만든 사람들이 먼저 떠오르겠지만 또 하나의 기억이 더해짐을 감사히 여기며 책을 덮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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