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기 좋은 날 - 제136회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
아오야마 나나에 지음, 정유리 옮김 / 이레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혼자 있고 싶다. 한적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되는데 가을이면 어김없이 드는 생각인것 같다. 그러나 정말 혼자있고 싶을까. 홀로될까봐 두려워 먼저 피하는 것은 아닐까. 타인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바라보며 그 기억의 끝을 잡고 외로워하는 사람이 있다. 도쿄에서 깅코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게된 치즈는 사람들의 추억을 훔쳐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도벽증세로 인해 사람들이 잊고 잘 찾지 않는 물건이나 가지고 싶은 것들에 손을 댄다. 이런 것을 오히려 즐긴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데 그 물건들의 주인들도 각각의 추억들과 기억을 가지고 있을텐데 늘 세상을 겉돌며 그 물건들을 보며 그때의 기분을 떠올리는 치즈의 모습은 정말 생경스럽다. 내가 그런일을 당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화가날 것 같다. 내 시간들을 도둑맞았으므로.

 

늘 생각이 많은 치즈는 앞으로 올 불행을 예상하고 사귀는 사람에게 이별을 통고받아도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라는 가정하에 모든 문제에 대처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깅코 할머니와 함께 보내면서 오히려 할머니가 더 젊은 사람같이 생각되고 치즈는 의욕도 없고 타인에게 의지하려는 나약한 모습을 보여준다. 다니는 회사에서 정직원이 되어 회사 기숙사로 나간 것은 이런 일련의 상황들을 벗어나려는 노력이라 박수를 쳐줘야 하는건지. 정이 듬뿍 들어버린 깅코 할머니와 고양이 두마리와의 동거생활이 더 좋을텐데 치즈에겐 사람의 향기가 더 필요한듯 생각되어 홀로 외로움에 잠기는 모습은 애처롭기만 하다.

 

"젊을때 다 써버리고 싶은 것에 무엇이 있을까?" 허무, 실망, 슬픔 등 많을 것인데 깅코 할머니말대로 나쁜 것을 다 써 버리고 나면 나이 들어서 좋은 것만 가지고 있어 죽기 싫어지지 않을까. 그래서 한숨도, 아픔도 세월과 함께 지닌채 늙어버려야지 삶을 대함에 있어 느긋해질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늘 쾌활한 사람이 좋다. 세상의 혼돈을 혼자 다 끌어안은듯이 살아가는것은 너무 힘이드므로 가끔은 나도 유쾌하게 지내고 싶다. 치즈는 늘 우울해 보이고 깅코 할머니에게조차 젊음을 과시하는 모습은 어린애 같아 보인다. 돈을 많이 벌어 독립하고 싶지만 세상 밖에 던져지는 것도 무섭다. 세상엔 안도 없고 밖도 없다는 깅코 할머니의 말은 나의 마음속에도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세상을 안과 밖으로 나눠놓은 것은 누구인가. 아무도 나뉘어져 있다고 말한적이 없건만 나 스스로 세상에 금을 그어놓은 것이다. 문을 닫아버리고 외롭다고 혼자있는게 좋다고 변명하고 살아온 것인가. 가슴속에서 바람이 부는 것 같다.

 

중국에 교환 유학을 떠난 엄마가 잠시 치즈를 만나러 와도 가족에게도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그녀, 난 그녀를 세상속으로 끌어내고 싶어진다. 엄마 따로 나 따로라는 느낌은 오히려 깅코 할머니와 함께 사는 것보다 더 차갑기만 하니 이런 차가움 속에서 그녀를 끌어내어 따뜻한 공간으로 데려가고 싶어진다. 그녀와 함께한 일년의 세월에 20대의 시절로 잠깐 돌아간듯 그 시절의 혼란스러움을 다시금 겪어본 것 같다. 그때의 마음을 30대의 지금도 겪고 있지만 분명 가슴속에 들어오는 세월의 깊이에 조금은 의연해진 것 같기도 하다. 깅코 할머니 나이로 눈 깜짝할새에 이동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손 내밀기 주저하게 되는 70대의 노인의 생활을 동경하기 보다 세월의 흐름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 부러워 가까이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싶어진다. 깅코 할머니는 치즈의 피부가 너무 부럽지만 호스케 할아버지와 핑크빛 로맨스를 즐기는 그녀의 모습이 오히려 더 싱그러워 보인다. 나도 그 나이가 되면 저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아마 이런것이 부러워 치즈는 할머니를 괴롭혔겠지. 나도 괜시리 심술이 생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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