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그든 씨의 사탕가게 - '이해의 선물' 완전판 수록
폴 빌리어드 지음, 류해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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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시절은 어떠했던가. 기억을 더듬어 보니 폴의 어린시절처럼 가슴벅차오르는 감동을 느낀 사건이 없어 단조로운 일상들을 보냈기에 폴에게 약간의 질투심이 생기게 된다. 체리 씨를 가지고 위고든 씨의 사탕가게에 간 그를 꾸짖지 않고 아이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돈이 남는다며 도리어 잔돈을 내어 주는 위고든씨 같은 사람이 세상에 그리 많지 않을 것이기에 그 모습이 감동이 되어 내 마음을 울린다. 찾아보면 좋은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 쉽지 않아 나조차도 진짜 돈을 가지고 오라고 내쫓을 것이란 것을 알기에 마음에 잔잔한 감동이 몰려오는 것이다. 자신이 받은 이 마음을 다시 다른 아이들에게 돌려줌으로써 사람들에게 계속 전해져 따뜻한 마음이 온 세상을 밝혀주게 되지 않겠는가. 

 

약국에서 '짐몰 트로키'를 훔친 그를 다시 보내 훔친 사실을 말하게 하여 잘못을 뉘우치게 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자식을 믿어줌으로써 거짓말을 하지 않는 진실한 사람으로 자라게 한다. 경계선을 넘어올까봐 전전긍긍하는 메츠거씨가 숫자를 헤아리며 키우는 복숭아 하나가 사라졌다고 여름내내 아버지와 싸울때에 폴의 "그러지 않았다"는 정직한 말을 믿고서 당당하게 아버지가 메츠거씨에게 맞서지 않았는가. 비록 샐러리를 흙으로 덮어주라는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상자를 세워놓아 집에서 쫓겨나 아버지와의 사이가 멀어지지만.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기에 완고한 아버지의 모습이 심하다고 생각되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 두 사람이 화해하는 모습을 보며 역시 혈연의 정은 그리 쉽게 끊을 수 있는게 아님을 알아간다.  

 

아버지는 아버지로써의 삶을 살았을뿐이라 생각되어 더이상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게 되는 폴. 위고든씨의 사탕가게의 감동이 아직 가시기전에 폴도 여느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쓸쓸해진다. 나는 그의 삶이 동화처럼 아름다우리라 생각했던 걸까. 산에 불도 나게 하고 지나가는 열차의 등을 장난감 총으로 맞춰 사람을 놀래키는 악동 폴의 모습은 대단하다 싶을정도로 놀랍지만 이웃들의 정을 느끼며 살아온 것 같아 사각의 틀에 갇혀 이웃의 얼굴도 모르고 지내는 아파트에서의 나의 생활이 더 갑갑하게 느껴진다.  

 

나는 살아가며 모르는 문제에 부딪치면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 물어본다. 그러나 폴은 캔 우드에 살 때 "안내를 부탁합니다"며 전화기를 들고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과 모르는 문제에 대해 질문함으로써 기억에 남을 어린시절을 보내게 된다. 전화기를 들면 기계음만 들리는 요즘엔 사람의 목소리가 그리워 "안내를 부탁합니다"라고 말하는 폴의 모습이 떠올라 나도 그렇게 해보고 싶어진다. 용기는 없겠지만. 마음을 나눌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살아가면서 얼마나 힘든일인지 잘 알기에 폴의 전화를 받은 사람의 따뜻한 마음이 내게까지 전해져 오는 것 같다.

 

형이 만든 롤러코스터를 타고 크게 다치는 모습에선 모험을 좋아하는 악동의 모습을 발견하고 축음기를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전류를 흘려보내 손잡이를 돌리지 않아도 되게 만드는 모습은 발명가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 훗날 나이가 들어 자신의 인생을 돌아봤을때 추억할 것들이 정말 많을 것이다. 이제는 어른이 되어 아버지의 삶을 이해할 나이가 되고 그때의 어린시절을 돌아볼 뿐이지만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아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고 할 수 있으니 즐거운 인생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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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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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거짓말'을 읽고 나니 참으로 우울하다. 밝고 유쾌한 내용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으니 30대를 살고 있는 40대가 코앞인 사람들의 이야기라 이렇게 잔잔하게 일상이 흘러가는 것일까. 겉보기엔 아무 문제 없어 보여도 맘적으로 한없이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 같다. 물론 나도 맘 한켠에 외로움을 꽁꽁 감싸고 아무도 안보이게 잘 감추고 있지만 이 책을 읽으니 내 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진다.

 

어린시절 큰집에 놀러갈때면 반듯하게 놓여있는 피아노가 갖고 싶어 동네 친구들에게 집에 피아노 있다고 호기롭게 외치고 싶으나 차마 맘자리가 작아서 그랬는지 "큰집에 있는 피아노가 우리 것"이라고 거짓말을 한 기억이 있다. 아마 직접 확인해 보지 못할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어서 그랬을까. '오늘의 거짓말'이라는 단편을 보니 치정에 얽혀 자살한 아버지를 "수색 나갔다 돌아오지 않는 부하들 찾으러 갔다가 지뢰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타인에게 이야기 하는 모습을 보니 나의 어린시절이 언뜻 떠오른다. 초등학교 입학하려면 1년은 더 남은 시절 "학교가고 싶다"고 외치던 그때가 지금은 낯선 기억처럼 생각나는 것이다.

 

상품들의 리뷰를 작성하는 일을 하면서 정작 윗집에서 탁탁탁 뛰는 소음을 듣는 그녀가 그 집에 찾아가서 본 운동기구는 "소음이란 전혀 없다"고 리뷰를 썼던 그 제품이었다. 이 사실보다 문을 열어준 그 할어버지가 누굴 많이 닮아있어 신경쓰인다. 정확하게 누굴 닮았다고 이야기 하는지 말하지 않지만 "그 사람" 어쩌고 확인하고 싶어하는 그녀의 모습만 보여주고 그저 어림짐작하게 만들뿐 누구라고 이야기 해 주지 않는다. 난 그녀의 아버지가 아닌가 생각했는데 아마 다른 이를 지칭하나 보다. 역시 단편의 이야기들은 결말을 내지 않아 그녀가 말하고 싶어한 이야기가 무엇일까 짐작이 되지 않아 갑갑하다. 그래서인지 단편들을 읽어가다 보면 어떤 주제로 연관성을 지니고 있을까 의식적으로 생각해보게 되는데 그저 1976년도에 출생하여 70년대 후반과 80년대, 90년대, 2000년대를 살아가면서 쌓아온 내 시간을 가늠하며 이 이야기들에 동조하며 읽을 뿐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모습은 아직 독신인 사람도 있고 결혼하여 지켜야할 자식이 있는 이도 있다. 각자 자신의 공간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인생이란 다 그런 것이다"라고 이야기 해 버리기엔 내가 살아가는 이 시간과 세월이 그들과 겹쳐지기에 나에게 또한 묻지 않을 수 없다. "넌 괜찮니?'라고. 언제 터질지 모르지만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삶이란 어쩌면 그 당시엔 타인에겐 안정적인 평온한 삶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터지기 전에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폭탄을 안고 있는 그 자신조차도.

 

남들한테 "너 하나도 안 변했구나"란 말을 듣는게 참으로 좋다는 생각 한번쯤 해보지 않을까. "촌스럽다"는 말로 생각하고 삐딱하게 받아들일수도 있지만 점점 나이를 먹다 보니 이 말이 옛 기억에 잠기게 하는 말이라 참 좋다. 뭐 "주름살 없는 십대, 이십대 모습 같다"는 말이 아닌것은 잘 알고 있지만. 나는 30대인 나의 앞에 25살이라고 말하며 기억이 멈춰버려 세월을 거꾸로 사는 친구가 있다면 정신나갔다고 생각하고 보지도 않을것이다. 25살때 유행했던 앞머리 세우고 어깨 패드 들어간 재킷을 입고 그 친구를 만나러 갈 용기는 없기에 이해는 한다고 가증스럽게 말하며 아마도 외면해 버리겠지. 채린이의 멈춰진 시간속을 걸어가는 현주란 사람의 넉넉한 마음에 부끄러워진다. 물론 성적을 조작한 채린이에게 "채린이 뒤엔 대걸레뿐"이라는 말을 하여 죄책감이 남아있어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그녀가 대단하다고 박수는 쳐 주고 싶다.

 

자살한 아이의 죽음을 파헤치거나 항문외과에서 환부를 사진 찍어간 의사가 누군지 찾는 단편들은 추리소설 같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역시나 결론이 없기에 '이 사람이 범인인가?' 생각하게끔 유도해두고 끝내버리기에 당황스럽다. 짧게 끝나는 이야기들의 한계는 이것인가 보다. 어떻게 끝날지도 모르는게 인생인데 굳이 결론을 내어 무엇하겠냐 할지도 모르지만 내 인생이 불투명하니 다른이의 삶을 엿보는 그 시간이라도 명쾌하길 바라게 된다. 여운을 남기며 맺는 이야기들에 나머지 이야기는 나의 상황에 맞게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오늘의 거짓말'에 실린 단편들을 읽으며 "내 삶은 행복하구나" 위안삼아 보게 되니 분명 얻는게 있는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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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장 선거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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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부가 돌아왔다. 여전히 물욕없는 어린애같은 모습 그대로다. 그동안 나는 욕심이 더 많아져서 머릿속이 복잡한데 이라부는 더 어려진 것 같으니 여전히 순수하다고 해야하나? 단새우를 좋아하고 먹을때는 돼지와 동급으로 무지막지하게 드시는 이라부는 신경정신과 의사다. 딱딱한 표정의 권위를 내세운 의사들의 모습만 보신 분이라면 아마도 모든 환자들이 처음 대면할때의 당혹스러움을 느낄 것이다. 아마 나도 환자로 갔다면 다시 오고 싶지 않았을텐데 예의 그 편안함을 느끼게 해 준다면 마음속에 있는 응어리들을 털어놓기 위해 다시 방문하게 될 것 같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유도하는 이라부는 존경심을 가지게 되는 의사는 아니지만 편안해서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공중그네'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내 주위에서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면 '면장선거'에는 좀 범접하기 힘든 대단하신 분들이 이라부를 찾아오게 된다. '공중그네'책을 읽을때는 몰랐는데 이라부의 아버지가 도쿄에서 아주 유명한가 보다. '나베맨'이라 불리우는 미쓰오는 <대일본신문>의 대표이사 회장이다. 그런 그에게도 고민이 있었으니 죽음에 대한 공포다. 엘리베이터는 '관'에 들어가는 느낌때문에 타는것이 힘들고 어둠에 대한 공포심도 함께 가지고 있어 보는 것이 다 측은할 정도이다. 돈, 명예, 권력 어느 것하나 갖추지 않은 것이 없건만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지금 죽기 싫다는 강박관념이 자신을 옭아매고 있다.

 

신분이 높든 낮든 자신이 생각하는 바대로 밀어붙이는 소신있는 행동은 사람들에게 신화적인 존재로 생각되어지고 있다. 물론 본인만 모를뿐이지만 자기의 의견을 당당하게 밝힐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이 않으니 퇴직하여 한가롭게 사는 것이 두려운 미쓰오가 이라부를 찾아 진료를 받게 된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이라부가 고치지 못한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왕진오라는 미쓰오의 말에 "싫단 말~야"라며 어린애가 말하듯 거절하는 이라부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고 마음을 털어놓아야 하는 신경정신과 특성에 제대로 부합되는 성격인것 같아 보는 것이 즐겁기만 하다. "엄마, 아빠"라고 이야기 하는 어른을 보면 어이가 없긴 하지만 왠지 이런 모습이 너무 잘 어울리니 어쩌랴.

 

현대에는 신종병이 많은 것 같다. IT 산업에서 잘나가는 '안퐁맨' 다카아키는 시대를 너무 앞서가버려 쓸데없는 시간은 낭비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논리적이지 않은 것에 수긍도 하지 않기에 히라가나도 쓰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니 이것도 신종병이 아니겠는가. 너무 앞서가는게 좋은 것만은 아니란 것을 알아간다. 늘 남보다 뒤처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제자리 뜀이라고 했건만 그것이 다 부질없다고 느껴질때라면 아마 내 몸이 지쳐버렸을때가 아닐까. "여유를 가지고 싶다. 여행을 떠나고 싶다" 이런 생각은 아마도 타인과의 경쟁상태에서 잠시 놓여나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가을이면 어김없이 떠나고 싶은 나도 이라부가 절실히 필요한 상태인 것 같다.

 

유치원생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는 이라부의 모습은 잊었던 나의 순수한 모습을 찾아내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마저 갖게 한다. 늘 살찌는 것을 두려워하고 늙어가는 것을 겁내하는 나를 포함한 현대인들에게 "살 찌워보는 건 어때?"라고 물어보는 신경정신과 의사라면 아마 살쪘을때 발병할 수 있는 성인병에 대해 주절주절 열거해도 이라부에겐 당하지 못하리라. 늘 스스로를 잡아채 가둬두고 살아왔기에 먹는것조차 편하게 먹지 못하고 살아온 날들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정말 한번 실컷 먹어볼까?" 나이든다는 것은 참 슬프고 쓸쓸한 일이긴 하다.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닌 나를 위해 아름답게 가꾸는 마음이 필요하니 먹기만 하면 칼로리를 소모해야하는 강박증이 있는 가오루의 모습은 현대에 빈번하게 볼 수 있는 병이니 가오루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덩달아 가라앉는다.

 

누가 "이라부는 순수한 사람이다"이라고 말해준것도 아닌데 나 혼자 지레 짐작하여 생각했기에 센주시마 섬에 간 이라부가 오쿠라파와 야기파가 면장 자리를 놓고 각축전을 벌리는 중간에서 뇌물 받은 것을 어찌 처리할까 궁금했었다. 아무 생각없이 넙죽 받아든 뇌물을 어찌 처리할까 정말 궁금하지 않겠는가. 내가 생각하던 이미지가 와르르 무너질수도 있었기에 신경이 쓰였다고나 할까. 그런데 역시 나만의 기우였으니 어린애다운 감정으로 양쪽에서 주는 돈을 받고 금액이 커짐에 따라 도망치고 싶어하는 모습이라니.

 

섬에서야 면장자리를 놓고 공략을 걸고 싸우는 것이 법을 어기기도 하고 무식해 보여도 이것을 토대로 섬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지만 2개월간 단기간 근무하는 이라부는 이 선거에 휘말려 조금 괴로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라부답게 잘 헤쳐나가니 오히려 이 두 파간의 화합을 도모하는 존재가 되어 사람들을 유쾌하게 만들어줘서 나의 마음도 즐거워진다. 당분간 이라부를 보기 힘들려나. 아마 아직 센주시마에 있지 않을까. 마음 기댈때 없어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라부를 만날 필요가 있다. 나 또한 언제라도 갈 준비가 되어 있으나 사실 주사를 무척 무서워해서 아직 고민중이다. 뭐 잘생긴 남자가 주사를 놔 준다면 한번 생각해 보고. 솔직히 마유미는 몸매가 이쁘다 보니 남자들은 주사를 맞아도 즐겁지만 나는 이런 즐거움을 누릴 수 없으니 살짝 억울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이것도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 오는 생각이니 역시 이라부를 빨리 만나야겠다. 이라부를 그냥 보고만 있어도 즐거워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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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마을 전쟁
미사키 아키 지음, 임희선 옮김 / 지니북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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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전쟁은 피난을 떠날새도 없이 아마도 앉은자리에서 죽을수 있는 초스피드에 강력한 살상용 무기를 이용한 전쟁이 될 것이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선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무수히 많은 인명이 죽어간다. 내가 생각하는 전쟁은 이렇듯 피가 튀고 사지가 잘려나가고 아이가 울부짓으며 많은 시체가 거리에 쓰러져있는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다. 기타하라도 나와 같은 전쟁을 생각하기에 소리없는 전쟁에 익숙하지 않고 피부로 느껴지지 않아 전사가자 나왔다고 해도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다.

 

이웃마을을 통과하여 직장을 가야만 하는 가타하라에게 마이사카에서 우편물이 도착한다. '이웃마을전쟁'에 대한 글을 보고 내일 당장 직장에 가야할 일이 걱정이지만 거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움직이며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런 그에게 정찰임무를 맡지 않겠느냐는 마이사카의 권유에 선뜻 응하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단조로운 삶을 벗어나고픈 생각도 있겠고 분명 전사자가 있는데 전혀 전쟁의 기운을 느낄 수 없어 직접 뛰어들어야겠다 마음을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소리없는 전쟁이든 피가 튀는 전쟁이든 이 전쟁으로 인해 그도 잃어가는 것이 있었으니 역시 '전쟁'이란 어떤 종류의 전쟁이건 발생하지 않길 빌어야 할지도 모른다.

 

아마 나에게 정찰임무를 준다면 못하겠다고 거절하겠지. 명분도 없는 전쟁도 무섭지만 적이 보이지 않는 전쟁은 더 무섭다. 전쟁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는지 알아보고자 지역설명회에 참여해 보는 기타하라는 사람들의 전쟁에 대한 자신의 마을에 대한 마음을 확인했을뿐 그 마음에 동조를 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그래서 호기롭게 외치며 질문을 해대던 긴머리 남자와 코트입은 남자가 어떤 대화를 하는지 뒤따르게 된다. 무슨 말을 듣길 바란 것일까. 지금 분명히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눈에 보이는 결과를 듣길 바랬을 것이다. 사실 나도 기타하라처럼 황당하게 여겨지는 전쟁이니 말이다.

 

이웃간의 균형잡힌 발전을 위하여 결재를 밟아 행해지는 전쟁. 아마 이것이 이웃마을과의 전쟁일 것이다. 분명 사상자가 있다. 쓰레기더미에 버려지는 전사자들은 가족들에게 돌아가지 못한채 시체도 없이 장례식을 치르니 전쟁이 없다고 말하지 못하리라. 그런데 정말 누구를 위한 전쟁일까. 이웃마을에 침투하여 고사이와 함께 부부로 살아가는 기타하라는 암거를 통해 그곳을 탈출할때도 끊임없이 전쟁중이라고 자신의 머릿속에 주입시켜야 할 정도로 여기에 무감각했다. 암거를 이동중에 만난 긴머리 남자는 이 전쟁을 즐기기까지 하니 그저 자신은 고사이와 편안한 일상을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는지도 모른다.

 

이웃주민들이 하는 대화가 무엇을 말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기타하라를 제외하고 모두가 한통속이 되어 속이고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고사이가 분명 기타하라에게 마음을 열었으나 전쟁이 끝나고 이웃마을 읍장의 아들과 결혼한다는 말은 아직도 이웃마을과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니 이 전쟁에서 그는 마음 한쪽을 잃었으니 전쟁이 끝나고도 전혀 변함없는 마을을 보는 것이 쓸쓸해질 뿐이다. 그런데 업무분담표에 의해 부부로 완벽하게 행동하는 고사이의 모습은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마음없이 어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아마도 처음엔 마음이 없었겠지만 점점 지쳐가는 자신의 마음을 전쟁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기타하라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이라 생각되기도 한다.

 

아직도 어느곳에서는 이웃마을과 전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부디 전쟁의 소리를, 빛을, 기척을 느끼도록 하세요" 고사이가 말한 것처럼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닌 이 세상 곳곳에서 행해지는 전쟁의 기운을 피부로 느껴야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내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고 무관심으로 대하지 않았는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모두 싸워서 이겨야 할 전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평생 이웃마을과 전쟁을 하며 살아가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그 상대가 이웃마을이 아닌 자신이나 타인일테지만. 피가 튀고 사람들이 죽는 전쟁도 겁나지만 이 소리없는 보이지 않는 적과 싸워야 하는 전쟁이 나를 더 작게 만들고 무섭게 느껴진다.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를 적과 대치한다는 것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먼저 이겨야만 당당하게 맞설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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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1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휴머니스트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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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두가 사랑한대요. 준비됐어요?"

방직공장에 다니는 임홍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이광두가 다섯명의 아이들에게 소리치게 한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이 "이광두가 임홍이랑 성교한대요. 준비됐어요?"로 외치게 될 줄이야. 역시 아이들에겐 이 말이 어려웠나 보다. 방직공장에 가다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잊었으니 말이다. 아마도 이 때가 이광두에겐 송강과 최고로 행복했던때가 아니었을까. 이광두가 복지공장의 공장장이 되고 그 임명장을 손으로 써서 간직할 정도로 송강이 무엇보다 기뻐해줬으니까. 물론 송강의 마음이 임홍을 향하고 있어 그 마음은 무척이나 괴로웠겠지만 어찌되었든 이광두와 자주 나타난 송강을 임홍이 사랑하게 되어 두 사람이 이루어졌으니 나중에야 세상을 다 얻은듯 기뻤을 것이다. 그러나 동생 이광두가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했다는 자괴감은 사라지지 않고 평생 괴롭히게 되니 송강의 처지가 참으로 애처롭다고 해야하나.

 

송강의 아버지 임범평이 이광두의 어머니 이란과 재혼을 하고 이 둘은 형제가 되었다. 송범평이 문화대혁명때 희생되고 나중에 이란마저 세상을 떠났을때 이광두를 부탁한다는 어머니의 말에 "밥 한그릇만 있으면 광두를 먹일게요. 옷 한벌만 있으면 광두에게 입힐게요"라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임홍이라는 여자로 인해 이 둘 관계가 허물어져 버렸으니 형제란 말이 무색할 정도다. "사랑하는 임홍을 뺏아가는 사람은 도륙을 낸다"고 호기롭게 외치던 이광두에게 송강은 "형제여도?"라도 묻는다. "그렇다"고 대답하는 이광두의 말에 마음의 짐을 내던지고 임홍과 결혼하는 송강을 형제이기에 도륙을 내지 않고 내버려둔다. 형제로 송강을 생각하는 이광두의 마음이 느껴져 마음이 짠해진다. 물론 먹고 살기 힘들때 이광두가 송강의 돈을 빼앗아 가는 모습에선 화가 좀 나긴 하지만 말이다. 형제이기에 힘들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크게 화가 날 상황은 아니긴 하다. 밥 못먹고 사는 동생이 있다면 형제라면 누구든 배고프지 않게 도움을 주지 않겠는가.

 

그런 송강의 모습을 보기 싫어하는 임홍으로 인해 "형제가 아니다"라고 선언하게 되는 송강, 이것으로 이광두와의 관계는 정녕 정리가 되었는가. 이광두가 고물을 모아 파는 사업이 커나갈때 일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송강에게 달려가지만 형제의 관계를 자신이 끊어버렸기에 물리쳐버리는 송강을 바라보는 임홍은 그저 "고물상을 하는 사람일 뿐이다"라고 무시해 버린다. 아, 어찌 이런일이. 함께 기뻐해주는 가족을 원했건만 그것마저 임홍은 끊어버리게 하다니 정말 안타깝다. 어린시절 할아버지를 따라 시골로 간 송강이 이광두가 보고싶을때면 달려와 "토끼표 캐러멜"을 놓고 가곤 했던 그 시절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일까.

 

세월이 흘러 이광두와 송강의 처지는 너무도 크게 달라진다. 이광두는 류진에서 초특급 갑부가 되고 송강은 직장에서 쫓겨나 폐에도 병이 들어 변변한 직장하나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곤궁하여 "이광두를 찾아가 보라"는 임홍의 말을 죄책감에 여전히 물리쳐 버리는 송강. 찾아가 보라고 부추기는 임홍이 난 왜이리 싫어질까. 형제가 함께 할 수 있게 해 주었다면 두 사람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텐데. 분명 이광두는 임홍과 결혼한 송강을 용서해줬을테니까. 그것이 형제니까. 거칠게 욕설을 뱉긴 하지만 자신과는 일을 함께 하지 않고 주유와 장사를 하러 떠났다는 말에 화를 내지 않았던가. 이것이 송강에 대한 이광두의 마음인 것이다. 훗날 송강이 죽었을때 "난 고아다"라고 우는 그의 외로운 심정이 이해가 간다.

 

그 옛날 변소에서 임홍의 엉덩이를 훔쳐보고 "새끼엉덩이, 엉덩이 대왕"이라는 별명을 얻고 임홍의 엉덩이 이야기를 팔아 삼선탕면을 수없이 얻어먹는 광두는 이때부터 이미 사업에 대한 소질을 보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첫시작은 끔찍했지만 진정으로 임홍과 이광두가 잘 되었으면 하고 바랬었다. 잘생긴 송강과 결혼하여 아이는 없지만 행복했을 임홍도 이광두의 재력에선 무너져 내리지 않던가. 사람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인공유방을 가슴에 붙여 유방크림을 팔아 임홍에게 큰돈을 쥐게 해 주고 싶었던 송강의 마음은 철저히 버려지게 된다. 인공유방이라니..어쩌다 이 지경까지 갔는지 마음이 아프다.

 

이광두가 류진에서 초특급 갑부가 되면서 그의 사업에 투자했던 여뽑치, 왕케키는 주주가 되어 세계여행을 하며 여생을 편하게 보내게 된다. 썩은이나 뽑던 여뽑치, 아이스케키를 팔던 왕케키가 이렇게 큰 부자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어린시절 송강과 자신을 그렇게나 괴롭히던 조시인과 류작가도 그의 그늘 아래서 먹고 살게 되니 이것으로 그때의 복수는 다 한 것이 아니겠는가. 다만 모든 것을 함께 하고 싶었던 형제가 없어 마음이 쓸쓸하고 슬플뿐이니 우주여행을 갈때 송강의 유품이나마 함께 하고자 하는 이광두의 마음이 와 닿아 송범평, 이란도 오래오래 살아 네식구와 가족사진을 찍었던 그때의 행복을 다시 느끼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나의 쓸쓸한 마음을 밀어내 본다. 이발비가 없어 번쩍번쩍 대머리로 다닌다고 '이광'이라는 이름이 아닌 '이광두'라는 별명으로 불리어진 그가 이렇게 크게 성공했으니 죽은 부모님도 아마 크게 기뻐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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