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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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거짓말'을 읽고 나니 참으로 우울하다. 밝고 유쾌한 내용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으니 30대를 살고 있는 40대가 코앞인 사람들의 이야기라 이렇게 잔잔하게 일상이 흘러가는 것일까. 겉보기엔 아무 문제 없어 보여도 맘적으로 한없이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 같다. 물론 나도 맘 한켠에 외로움을 꽁꽁 감싸고 아무도 안보이게 잘 감추고 있지만 이 책을 읽으니 내 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진다.

 

어린시절 큰집에 놀러갈때면 반듯하게 놓여있는 피아노가 갖고 싶어 동네 친구들에게 집에 피아노 있다고 호기롭게 외치고 싶으나 차마 맘자리가 작아서 그랬는지 "큰집에 있는 피아노가 우리 것"이라고 거짓말을 한 기억이 있다. 아마 직접 확인해 보지 못할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어서 그랬을까. '오늘의 거짓말'이라는 단편을 보니 치정에 얽혀 자살한 아버지를 "수색 나갔다 돌아오지 않는 부하들 찾으러 갔다가 지뢰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타인에게 이야기 하는 모습을 보니 나의 어린시절이 언뜻 떠오른다. 초등학교 입학하려면 1년은 더 남은 시절 "학교가고 싶다"고 외치던 그때가 지금은 낯선 기억처럼 생각나는 것이다.

 

상품들의 리뷰를 작성하는 일을 하면서 정작 윗집에서 탁탁탁 뛰는 소음을 듣는 그녀가 그 집에 찾아가서 본 운동기구는 "소음이란 전혀 없다"고 리뷰를 썼던 그 제품이었다. 이 사실보다 문을 열어준 그 할어버지가 누굴 많이 닮아있어 신경쓰인다. 정확하게 누굴 닮았다고 이야기 하는지 말하지 않지만 "그 사람" 어쩌고 확인하고 싶어하는 그녀의 모습만 보여주고 그저 어림짐작하게 만들뿐 누구라고 이야기 해 주지 않는다. 난 그녀의 아버지가 아닌가 생각했는데 아마 다른 이를 지칭하나 보다. 역시 단편의 이야기들은 결말을 내지 않아 그녀가 말하고 싶어한 이야기가 무엇일까 짐작이 되지 않아 갑갑하다. 그래서인지 단편들을 읽어가다 보면 어떤 주제로 연관성을 지니고 있을까 의식적으로 생각해보게 되는데 그저 1976년도에 출생하여 70년대 후반과 80년대, 90년대, 2000년대를 살아가면서 쌓아온 내 시간을 가늠하며 이 이야기들에 동조하며 읽을 뿐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모습은 아직 독신인 사람도 있고 결혼하여 지켜야할 자식이 있는 이도 있다. 각자 자신의 공간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인생이란 다 그런 것이다"라고 이야기 해 버리기엔 내가 살아가는 이 시간과 세월이 그들과 겹쳐지기에 나에게 또한 묻지 않을 수 없다. "넌 괜찮니?'라고. 언제 터질지 모르지만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삶이란 어쩌면 그 당시엔 타인에겐 안정적인 평온한 삶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터지기 전에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폭탄을 안고 있는 그 자신조차도.

 

남들한테 "너 하나도 안 변했구나"란 말을 듣는게 참으로 좋다는 생각 한번쯤 해보지 않을까. "촌스럽다"는 말로 생각하고 삐딱하게 받아들일수도 있지만 점점 나이를 먹다 보니 이 말이 옛 기억에 잠기게 하는 말이라 참 좋다. 뭐 "주름살 없는 십대, 이십대 모습 같다"는 말이 아닌것은 잘 알고 있지만. 나는 30대인 나의 앞에 25살이라고 말하며 기억이 멈춰버려 세월을 거꾸로 사는 친구가 있다면 정신나갔다고 생각하고 보지도 않을것이다. 25살때 유행했던 앞머리 세우고 어깨 패드 들어간 재킷을 입고 그 친구를 만나러 갈 용기는 없기에 이해는 한다고 가증스럽게 말하며 아마도 외면해 버리겠지. 채린이의 멈춰진 시간속을 걸어가는 현주란 사람의 넉넉한 마음에 부끄러워진다. 물론 성적을 조작한 채린이에게 "채린이 뒤엔 대걸레뿐"이라는 말을 하여 죄책감이 남아있어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그녀가 대단하다고 박수는 쳐 주고 싶다.

 

자살한 아이의 죽음을 파헤치거나 항문외과에서 환부를 사진 찍어간 의사가 누군지 찾는 단편들은 추리소설 같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역시나 결론이 없기에 '이 사람이 범인인가?' 생각하게끔 유도해두고 끝내버리기에 당황스럽다. 짧게 끝나는 이야기들의 한계는 이것인가 보다. 어떻게 끝날지도 모르는게 인생인데 굳이 결론을 내어 무엇하겠냐 할지도 모르지만 내 인생이 불투명하니 다른이의 삶을 엿보는 그 시간이라도 명쾌하길 바라게 된다. 여운을 남기며 맺는 이야기들에 나머지 이야기는 나의 상황에 맞게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오늘의 거짓말'에 실린 단편들을 읽으며 "내 삶은 행복하구나" 위안삼아 보게 되니 분명 얻는게 있는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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