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릿파크 - 존 치버 전집 1
존 치버 지음, 황보석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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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제목을 새로이 붙인다면 "불릿파크에서 일어날뻔 한 살인미수 사건?" 해머가 불릿파크로 이사오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이지만 앞에는 온통 네일즈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그리고 다음 장에는 해머의 어린시절부터 현재까지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기에 네일즈와 해머가 어떻게 관계되게 되는지, 이사를 오면서 친구가 되지만 일상 생활을 담담히 말할 때 상대방에 대한 묘사는 몇 번 등장하지 않기에 두 사람의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까 궁금해진다.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이 자란 네일즈의 아들 토니가 "세상이 슬프다"고 말하며 침대에서 꼼짝하지 않고 우울증을 앓으며 네일즈의 집안에는 근심이 끊이질 않는다. 정신과 치료도 받아보고 별별 치료를 다 받다가 마지막으로 루투올라가 토니에게 용기를 심어줌으로써 더 이상 세상이 슬프지 않다고 떨쳐 일어나는 것을 보며 나 또한 안도하게 되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마음이 약한 사람들 뿐인 것 같다. 불안감이나 공포감을 떨쳐버리지 못해 약이나 술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며 나를 포함해 주위에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에 작은 파문이 이는 것 같다. 타인에게 강한 모습을 보이고 살아가지만 실상은 두려움을 잔뜩 안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고 보면 약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 약과 술에 의지하는 모습에 누가 손가락질을 할 수가 있을까.

 

"불릿파크 같은 곳에 정착할 거야. 그 어떤 감동이나 가치도 없이 살아가는 삶의 좋은 예로 결혼을 해서 아이를 둔 광고 회사 간부를 그리스도의 교회 문에다 십자가 처형을 할거야"라고 말하는 해머의 어머니로 인해 아들 해머조차도 부족한 것 없이 사는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증오심을 키우게 된 것일까. 그렇다면 해머도 마음속에 아픔을 지닌채 사생아로 태어난 자신의 출생을 증오하며 살아왔던 것일까. 노란색 벽으로 둘린 방에 들어가야 정신적인 안정을 얻는 해머, 이 집을 갖기 위해 도라 에미슨에게 술을 먹여 차를 몰게 해 죽게 만든 것은 아니겠지? 이 집에 방문하여 계속 있고 싶어 그녀가 외출할 수 없게 만드려고 함께 술을 마셨다고 생각하기엔 뭔가 설명이 부족해 보인다. 왜 나는 이 집을 갖기 위한 의도적인 살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일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해머는 이미 위험한 경계를 넘어섰다. 결혼도 했고 이젠 가정을 꾸려나가며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그가 왜 굳이 네일즈의 아들 토니를 죽이려는 생각을 했을까. 어머니가 말한, 단지 그냥 하는 말("십자가처형을 하겠다")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려고 한 해머의 마음속엔 어떤 진실이 들어있을까. 마음속으로야 나도 무수히 많은 이들을 죽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진 않는다. 어설픈 살인사건 흉내만 낸 해머를 보면서 비틀린 그의 마음이 엿보여 마음이 아파온다.

 

사실 흡인력을 느낄 수 없어 이 책을 읽는 것이 조금 힘들었다. 네일즈와 해머의 삶을 통해 보여주는 반어적인 풍자와 직설적으로 묘사하는 글의 유쾌함과 인간 내면을 나타내는 섬세하고 자세한 묘사에 가슴이 서늘해지지만 너무 우울한 단편적인 모습들만 보여준 것 같아 모두 공감하기는 어렵다. 유복한 가정의 네일즈와 출생부터 뒤틀린 해머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전혀 행복한 모습을 볼 수 없어 쓸쓸한 마음이 든다. 아팠던 토니가 이제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여 네일즈 가족이 안정을 찾고 있는데 해머가 손을 뻗쳐 그 행복을 깨부수려고 하는 것을 보며 인간의 욕심과 욕망에 대해 섬뜩한 느낌이 들게 된다. 나의 마음속에도 어떤 억눌린 자아가 있어 끔찍한 모습으로 깨어나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나도 약하디 약한 인간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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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기억의 박물관 1 비룡소 걸작선 49
랄프 이자우 지음, 유혜자 옮김 / 비룡소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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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쉽게 읽었을지 모른다. 아니 너무 쉬워서 아이들이 읽어야할 책이라고 생각해서 오히려 읽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 분야에는 완전 문외한이라 한장 한장 이해하며 읽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이해되지 않긴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과 느낌은 충분히 전달되었다고 생각되기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은 몇살 때부터 기억을 명확하게 할 수 있을까. 내 잠재 의식속에는 분명 어린시절의 기억들이 저장되어 있겠지만 아득히 먼 어린시절은 도통 기억나지 않고 어린시절을 떠올리면 이미 난 많이 자라 6살 때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면 그 전의 기억들은? 내가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본질적인 모습은 사라진 기억들이 존재하는 "크바시나"에 있으려나? 올리버가 모르굼의 진흙수렁에서 태아적의 자신의 모습을 만나 어머니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태어났는지 알 수 있었던 글을 보면서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의 기억을 모두 다 가지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망각"이라는 것이 없다면 살아감에 있어 늘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살아갈 힘을 잃어버릴테지. 때론 기억이 희미해져서 상처 받은 마음이 치유되기도 하기에 모든 것을 다 기억하는 것은 오히려 살아가는데 많은 장애가 되겠지만 사랑받았던 행복한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늘 내안에 머문다면 참 좋을 것 같다. 아냐 오히려 이 행복한 기억으로 아픔을 느낄수도 있겠지? 아, 갑자기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잃어버린 기억속의 왕국인 "크바시나"와 내가 살고 있는 이 곳까지 지배하려는 야욕을 보이는 "크세사노", 이 음모를 막을 수 있는 길은 크세사노의 이름을 세 번 말하는 것이다. 이 일을 먼저 눈치채고 알아보던 올리버와 제시카의 아버지 토마스가 사라지면서 이 책은 시작되고 있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리게 된다. 어떻게 이렇게 모든 기억이 사라질 수 있는 것일까. 잊혀진 물건을 가지고 아버지를 찾아 이슈타르 문을 통해 크바시나로 향하는 올리버, 이로써 제시카는 올리버에 대한 기억까지 다 잊게 된다. 함께 조사하고 계획했던 모든 일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대체 어떻게 크세사노의 야욕을 막을 것인지 갑갑해지며 힘이 빠진다.

 

새로운 해가 되기 전에 그의 이름을 알아내야 한다. 그래도 다행히 박물관 직원인 미리암이 제시카를 도와주기에 크세사노의 계획을 꼭 무산시킬 것 같다. 크바시나에서 "찾는 사람 올리버"라는 이름을 가지고 크세사노를 막을 영웅의 대접을 받는 올리버에게도 도움을 주는 동지들이 생겨 다행이다. 니피, 코퍼, 붓, 페가수스, 레벤, 엘레우키데스 등 많은 존재들이 크세사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되길 소원하고 있으며 크세사노가 있는 곳으로 올리버와 함께 떠나기에 올리버의 발걸음이 그리 무겁진 않다. 어서 아버지를 구해서 이 곳을 빠져나가야 할텐데 점점 현실에서 자신도 잊혀져 가고 있어 마음이 불안하다.

 

올리버를 잡으려는 수색대의 존재는 정말 무시무시하다. 어떤 모습으로든 변화가 가능해서 올리버가 잡혀가기도 했으니 이 암울한 존재로 인해 살아있는 기억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았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온다. 그래서 기억을 부수는 방앗간에 던져 넣고 싶어진다. 물론 만나는 것조차 싫지만, 왠지 찬 기운이 내 곁으로 다가오는 것 같은데 설마 수색대가 날 잡으러 온 것은 아니겠지? 너무 책에 빠져 있나 보다.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이 무섭기까지 하니 큰일이다. 세월이 흘러 늙어서 가족들에게까지 버림받고 기억속에서조차 지워진다면 나는 "크바시나"에서 살게 되겠지. 그 곳에 가면 올리버가 만난 존재들을 나도 만날 수 있을까? 새해가 되기전 꼭 크세사노의 이름을 밝혀 이 악당을 물리쳐다오, 제발.

 

크바시나에는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이 살고 있다. 역사속의 인물도 있고 잊혀진 물건들도 그 곳에 가면 있다. 크바시나로 가는 길이 열려 있다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을 찾으러 떠날수도 있겠지. 그러나 현실에서 내가 기억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 곳까진 가지 않으련다. 가끔은 아주 희미해진 기억으로 인해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하니까. 그래서 세상은 살만하다고 느끼니까. 기억이 잊혀지고, 내 존재가 사라지는 것 같다고 슬퍼하진 않으련다. 앞으로 웃을 일이 많을테니까. 이슈타르 문 너머의 세상은 그렇게 또 다른 세상으로 사람들이 자신들을 기억해 주기를 바라며 기다리겠지만 육신은 사라져도 기억은 남아 크바시나에 있다고 생각하니 불안했던 마음이 오히려 안정이 된다. 이 책을 통해 소중한 기억 하나쯤 다시 떠올려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행복했다면 그것으로 된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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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램프 제2권 - 정절국 여왕
천하패창 지음, 곰비임비 옮김 / 엠빈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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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인디아나존스, 여기에 버금가는 모험은 이제부터 시작일 것이다. 앞권에서는 뚱보와 호팔일이 도굴하는 모습이 나왔다면 "정절국 여왕"편에서는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정절국 여왕의 무덤을 찾아가는 고고학 발굴대 이야기라고 보면 된다. 물론 뚱보와 호팔일이 함께 한다. 뚱보와 호팔일이 없었다면 이 고고학 발굴대는 아마 정절국 여왕의 무덤을 찾지 못하고 목숨도 유지하지 못한채 모두 죽었을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본다면 뚱보와 팔일이는 없어서는 안될 주인공인 셈이다.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떠난 아버지가 실종되고 그 시신조차 찾을 수 없어 이 고고학 발굴대에 금전적으로 지원하며 함께 따라나선 셜리 양, 그녀의 존재는 정절국 고성을 찾고 난 후 미스터리하게 변한다. 사실 팔일이가 정절국 여왕이 있는 관 위에 핀 사체화 덕에 환각을 본 것이기는 하지만 현재까지 그 사악한 기운을 뻗고 있는 것을 보면 셜리 양이 정절국 여왕의 환생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지 않을까. 그녀의 정체는 뒷 권에서 밝혀진다고 하니 그동안 기다리며 추리를 해 보아야 할 문제다.

 

뚱보가 늘 지니고 다니던 귀동문이 있는 옥패는 이 고고학 원정대에게 큰 도움이 된다. 옥돌 눈에 움푹 패인 홈이 이 옥패와 일치하기에 이 옥패를 끼우자 옥석 눈이 고정되어 있던 위치에서 떨어져 내린다. 왠지 뚱보와 팔일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 정절국 고성으로 오게 되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정절국 여왕, 그녀가 이들을 손짓하여 이 곳으로 부르지 않았을까. 정절국 여왕의 부장품들은 상당하다. 보물, 이것을 보고 뚱보가 잘 참아내다니 대견하다. 말할때마다 도굴꾼임을 드러내어 셜리 양이 결국 눈치채긴 하지만 믿음직 하다.

 

그나저나 검은 혹이 달린 뱀은 정말 무시무시하다. 이놈으로 인해 학애국이 죽고 이들에게 위협이 되고 있으니 이것이 환각으로 보여진 장면이라도 폭탄을 써서 동굴 입구를 막아버린데도 할 수 없는 문제 아닌가. 두동강을 내도 머리가 달려들어 물어버리니 정말 무서운 존재다. 정절국 여왕의 힘은 어디까지 미치는 것일까. 점점 미쳐가는 모습을 보이는 진 교수, 그에게 정말 악귀가 씌인 것일까. 여럿이 죽은 이 고고학 발굴대의 앞날이 밝아보이진 않는다. 진 교수는 약해서 계속 기절하니 사건이 모두 끝나면 회복하여 "무슨일이 있었나" 어리둥절한 모습만 보여주지 않을까. 정절국 고성을 봐야만 한다고 사막을 헤치고 찾아온 진 교수에겐 이것보다 슬픈일이 있을까. 고고학 발굴대를 이끌 사람이 기절을 해 버리니 누굴 믿고 움직이나. 역시 호팔일과 뚱보뿐이다.

 

중국문화가 생소하여 쉽게 읽어진 책은 아니었다. 정절 고성을 찾아내고 그 뒤에 겪는 모험이 신비롭고 흥미를 더하여 책 읽는 속도가 빨라져갔다. 호팔일의 모험은 아마도 이제야 시작된 것이리라. 도굴꾼에서 어쩌면 고고학에 관심을 두고 변해가는 모습을 보일지도 모르겠다.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정절국 고성을 너무도 쉽게 찾아낸 호팔일, 주인공답게 역시 믿음이 간다. 여러일들을 겪으면서 앞으로 어떻게 성장해갈지 기대가 된다. 고스트램프의 결말은 어떻게 나게 될까. 끝이 나지 않을 이야기속에 파묻히는것은 아니겠지? 정절국 여왕의 얼굴을 끝까지 보여주지 않은 의도는 무엇일까. 그녀의 얼굴이 참으로 궁금하다. 이어지는 뒷권에서는 정절국 이야기가 끝이 날지 더 이어질지 궁금하여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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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투쟁 - 조선의 왕, 그 고독한 정치투쟁의 권력자
함규진 지음 / 페이퍼로드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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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사극드라마를 많이하는 요즘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시청을 하고 있다. 새롭게 시작하는 "세종" 이야기가 모방송국에서 방영되고 있는바 여기에 관련한 책들이 출판이 많이 되고 있는 것 같아 나도 그 시류에 편승하고자 "왕의 투쟁"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전에 저자의 "다시쓰는 간신열전"을 읽어보아서 그런지 글을 쓰는 분위기는 비슷하여 낯설지 않게 다가오며 현대의 시점에 맞게 지금의 정치하는 모습과 비교도 하고 옛 시대를 살다간 네 명의 왕들의 알려지지 않은 점들을 부각시키며 세세하게 잘 표현한 것 같다. 그러나 2부에 들어가면 앞서 언급했던 말들이 반복적으로 다시 나와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단점이 있어 조금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세종, 연산군, 광해군, 정조가 왕좌에 앉기 전의 정치적 상황을 통해 그가 겪은 일들로 인해 왕좌에 앉아 어떤 군왕의 모습을 보여주었는지 연계성을 살펴볼 수 있어 좋았다면 일국의 군왕이긴 하지만 인간이었기에 가시밭길을 걸어야 하는 절대왕정의 강한 모습과 다르게 약한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애초에 큰 포부를 가지고 정치개혁을 단행하고 친인척조차 믿지 못해 고독함속에 인생을 보내야했던 정조가 귀향을 간 이복동생을 신하들 모르게 만나고자 한 모습은 그 말년이 얼마나 쓸쓸한지 보여줌으로써 모두가 우러러 보는 자리에 이쓴 것이 그리 큰 기쁨은 아니란 것을 알수 있다.

 

"왕과 나"라는 드라마를 통해 폐비윤씨의 일로 성정이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연산군의 모습은 이미 폐비윤씨의 일을 알고 있었던 연산군이 세월이 지난 후에 사실상 정적들을 제거하는데 쓴 명분이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지만 이것도 실은 기록에 의해 추측을 할 뿐이지 정확한 사실이라고 볼 수 없어 이 책을 읽으면서 객관성을 유지하며 책을 읽는 것이 참으로 힘들었다. 영조대에 사도세자를 뒤주속에서 죽게 한 의도는 없고 그저 반성의 시간을 주기 위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행한 일이었으나 뜻하지 않게 사도세자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대목에서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 텔레비전에서 하는 드라마를 통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그 경계마저 모호해지는 느낌이 받는다.

 

왜 저자는 세종, 연산군, 광해군, 정조의 이야기를 썼을까. 정치를 하는데 있어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인 이들의 모습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지만 그 깊은 의중을 알길이 없다. 어쩌면 요즘 정조, 세종의 이야기가 부각됨으로써 좀 더 사실에 입각한 이야기들을 독자에게 들려주고 싶지 않았을까. 왕이기는 하나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개인의 감정이 실린 처결도 많았고 개혁정치를 위해 철권을 휘두른 왕도 있었지만 아주 오래 쌓여온 벽들은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을 즐겼던 세종, 연산군의 말에 "아니되옵니다"를 일관한 신하들, 정적을 제거하는데 힘을 쏟아 친국장에 드나들기를 예사로 했던 광해군, 천재적인 모습을 보인 국왕이었지만 오히려 자신이 만든 정책의 늪에 빠졌던 정조의 이야기를 통해 느낀 바는 '왕이란 자리가 참 고독하고 외롭거늘 그렇게 목숨바쳐 가며 앉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왕좌에 앉지 않으면 목숨조차 보존받지 못하기에 왕이 되기 위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그 자리에 올라야 했지만 그 곳은 권력을 놓치 않으려는 사람들의 자리보전을 위한 치열한 투쟁의 장소란 점에서 그저 가슴만 답답해져 올 뿐이다.

 

절대권력을 가진 왕이지만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지 못했던 군왕의 자리, 사냥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성종인 아버지를 보며 자란 연산군은 "아니되옵니다"를 일관하는 신하들의 말을 받아치는 연산군 어록을 보면 웃음만 나올뿐이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말장난 같이 대답해 버렸을 것인가. 모두가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밀고 당기는 힘 겨루기를 했으니 불쌍한건 왕뿐만 아니라 늘 빼앗기며 살아야했던 백성들이 아니었겠는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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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부자 - 대한민국 2030을 위한 경제이력서
김혜경 지음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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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어보니 독자들에게 저자가 하고 싶은 말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모두 전해주고 싶어 많은 주제들을 말하다 보니 전체적인 분위기가 조금 산만하게 느껴진다. 이것 저것 해할 것들이 왜 이리 많은지. 책장을 넘기다 보니 이웃집 아줌마의 수다를 듣는 듯한 기분에 휩싸인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재테크에 이르기까지 뭘 어떻게 해야한다는 말들을 정신없이 듣다보니 이 책에서 말하는 주제는 과연 무엇일까 잠시 고민하게 된다. 

 

대체적으로 기업가들의 이야기들이 많이 보인다. 대기업의 CEO들의 명언을 인용함으로써 내 행동의지에 불을 붙이기는 하지만 솔직히 너무 먼 이야기라 마음에 담기진 않는다. '당당한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부자들이 어떻게 힘든 역경을 뚫고 그 자리에 올랐는지 설명하는 것이 큰 공감대를 형성하긴 하지만 오히려 저자의 살아온 이야기들을 많이 담아놓았다면 조금 더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아무것도 할 줄 몰라서 가만히 있는 사람은 없다. 평소에 미래를 위해, 도태되지 않기 위해 꾸준히 자기계발을 하기에 내게 온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늘 촉각을 곤두세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평생직업의 개념이 사라진 요즘 투잡 내지는 저자처럼 포잡까지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정말 부러워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지만 이런 예를 들며 당당한 부자가 되라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얼마만큼의 긍정적인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결혼을 하고 전업주부가 된 나도 한군데만 이용하여 장을 보러 가기에 저자의 글에서처럼 포인트가 많이 쌓여서 나름 혜택을 보고 있다. 얼마 없는 돈을 쪼개서 통장 여러 개를 만드는 수고로움은 하지못하고 있지만 누구보다 돈의 위력이 어떤지 결혼전과 다르게 생활전선에 뛰어든 지금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이 책을 통해 많은 부분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랬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들기에 책을 읽으면서 조금 실망감을 느꼈다. 명언 같은 것은 어디서나 한번쯤 들어본 말들이라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서민들의 사는 이야기들을 들었다면 마음의 변화를 더 많이 겪지 않았을까. 짧게 이어지는 이야기들로 인해 읽는 호흡이 빨라지는 단점이 있고 당당한 부자가 되는 법에 대해 저자의 경험이 들어갔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 책에 언급하는 내용들은 사실상 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것들이라 그저 자기계발서를 보는 듯 하여 책을 덮고 나서 또 잊어버리게 되니 여기에 대해서 나도 조금 반성하고 있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본다면 분명 "부자는 될 수 없다"라고 따끔하게 충고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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