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기억의 박물관 1 비룡소 걸작선 49
랄프 이자우 지음, 유혜자 옮김 / 비룡소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고고학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쉽게 읽었을지 모른다. 아니 너무 쉬워서 아이들이 읽어야할 책이라고 생각해서 오히려 읽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 분야에는 완전 문외한이라 한장 한장 이해하며 읽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이해되지 않긴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과 느낌은 충분히 전달되었다고 생각되기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은 몇살 때부터 기억을 명확하게 할 수 있을까. 내 잠재 의식속에는 분명 어린시절의 기억들이 저장되어 있겠지만 아득히 먼 어린시절은 도통 기억나지 않고 어린시절을 떠올리면 이미 난 많이 자라 6살 때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면 그 전의 기억들은? 내가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본질적인 모습은 사라진 기억들이 존재하는 "크바시나"에 있으려나? 올리버가 모르굼의 진흙수렁에서 태아적의 자신의 모습을 만나 어머니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태어났는지 알 수 있었던 글을 보면서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의 기억을 모두 다 가지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망각"이라는 것이 없다면 살아감에 있어 늘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살아갈 힘을 잃어버릴테지. 때론 기억이 희미해져서 상처 받은 마음이 치유되기도 하기에 모든 것을 다 기억하는 것은 오히려 살아가는데 많은 장애가 되겠지만 사랑받았던 행복한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늘 내안에 머문다면 참 좋을 것 같다. 아냐 오히려 이 행복한 기억으로 아픔을 느낄수도 있겠지? 아, 갑자기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잃어버린 기억속의 왕국인 "크바시나"와 내가 살고 있는 이 곳까지 지배하려는 야욕을 보이는 "크세사노", 이 음모를 막을 수 있는 길은 크세사노의 이름을 세 번 말하는 것이다. 이 일을 먼저 눈치채고 알아보던 올리버와 제시카의 아버지 토마스가 사라지면서 이 책은 시작되고 있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리게 된다. 어떻게 이렇게 모든 기억이 사라질 수 있는 것일까. 잊혀진 물건을 가지고 아버지를 찾아 이슈타르 문을 통해 크바시나로 향하는 올리버, 이로써 제시카는 올리버에 대한 기억까지 다 잊게 된다. 함께 조사하고 계획했던 모든 일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대체 어떻게 크세사노의 야욕을 막을 것인지 갑갑해지며 힘이 빠진다.

 

새로운 해가 되기 전에 그의 이름을 알아내야 한다. 그래도 다행히 박물관 직원인 미리암이 제시카를 도와주기에 크세사노의 계획을 꼭 무산시킬 것 같다. 크바시나에서 "찾는 사람 올리버"라는 이름을 가지고 크세사노를 막을 영웅의 대접을 받는 올리버에게도 도움을 주는 동지들이 생겨 다행이다. 니피, 코퍼, 붓, 페가수스, 레벤, 엘레우키데스 등 많은 존재들이 크세사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되길 소원하고 있으며 크세사노가 있는 곳으로 올리버와 함께 떠나기에 올리버의 발걸음이 그리 무겁진 않다. 어서 아버지를 구해서 이 곳을 빠져나가야 할텐데 점점 현실에서 자신도 잊혀져 가고 있어 마음이 불안하다.

 

올리버를 잡으려는 수색대의 존재는 정말 무시무시하다. 어떤 모습으로든 변화가 가능해서 올리버가 잡혀가기도 했으니 이 암울한 존재로 인해 살아있는 기억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았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온다. 그래서 기억을 부수는 방앗간에 던져 넣고 싶어진다. 물론 만나는 것조차 싫지만, 왠지 찬 기운이 내 곁으로 다가오는 것 같은데 설마 수색대가 날 잡으러 온 것은 아니겠지? 너무 책에 빠져 있나 보다.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이 무섭기까지 하니 큰일이다. 세월이 흘러 늙어서 가족들에게까지 버림받고 기억속에서조차 지워진다면 나는 "크바시나"에서 살게 되겠지. 그 곳에 가면 올리버가 만난 존재들을 나도 만날 수 있을까? 새해가 되기전 꼭 크세사노의 이름을 밝혀 이 악당을 물리쳐다오, 제발.

 

크바시나에는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이 살고 있다. 역사속의 인물도 있고 잊혀진 물건들도 그 곳에 가면 있다. 크바시나로 가는 길이 열려 있다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을 찾으러 떠날수도 있겠지. 그러나 현실에서 내가 기억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 곳까진 가지 않으련다. 가끔은 아주 희미해진 기억으로 인해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하니까. 그래서 세상은 살만하다고 느끼니까. 기억이 잊혀지고, 내 존재가 사라지는 것 같다고 슬퍼하진 않으련다. 앞으로 웃을 일이 많을테니까. 이슈타르 문 너머의 세상은 그렇게 또 다른 세상으로 사람들이 자신들을 기억해 주기를 바라며 기다리겠지만 육신은 사라져도 기억은 남아 크바시나에 있다고 생각하니 불안했던 마음이 오히려 안정이 된다. 이 책을 통해 소중한 기억 하나쯤 다시 떠올려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행복했다면 그것으로 된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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