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김종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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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악몽을 꾸고 나면 어김없이 손톱 하나가 사라진다. 피를 닦아낼때면 통증과 함께 섬뜩한 느낌을 받는 홍지인, 대체 그녀에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친구 민경이와 함께 네일아트 샵을 하고 있는 홍지인은 다른 사람으로 빙의되어 사신의 손톱에 의해 죽는 꿈을 계속 꾸게 된다. 정신마처 황폐해지는 요즘 주위에서는 "이젠 그만하라"는 눈빛을 보내고 자신조차 왜 이런일을 당해야 하는지 죽을만큼 괴롭다. 단지 알아낸 것이라고는 희수가 죽은 6월 15일과 관련이 있다는 것뿐이다.

 

"라만고"

온갖 악취를 풍기는 노숙자가 홍지인을 보며 뱉은 말이다. 손톱이 빠지는 이유를 알고 있는 그를 꼭 만나야 한다. 전남편이 나타나 "아이가 죽기 전에 다른 남자와 놀아났냐"며 원망을 하고 사라진다. 이미 전남편은 이 시간 죽은 뒤 화장되고 있었는데 희수마저 자신에게 나타나 컴퓨터 모니터를 가리키며 무언가 알려주려고 하지만 모니터에 나타난 얼굴은 찢어진 얼굴뿐 무엇을 말하는지 알수가 없다. 죽은 사람에게는 보이는 라만고, 대체 정체가 무엇일까.

 

책을 읽는내내 섬뜩한 공포에 휩싸여 내 마음속에 있는 이성과 본능이 싸우고 있었다. 무서우니 이제 책을 덮고 자라는 본능과 끝까지 사건에 관계된 일을 알고 싶다는 마음, 나는 어느새 홍지인처럼 두려움에 맞서 "라만고"와 마주하고 있었다. 민경과 세준마저 자신의 꿈에 등장하고 그들의 과거로 인해 혼란스러운 홍지인, 세준도 악몽을 꾸며 손톱이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단 열 번의 고통만 참으면 "라만고"의 실체를 알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손톱은 다시 자라니 그럴때마다 라만고와 마주해야 한다면? "라만고"를 말해준 노숙자 최명재처럼 자신의 손을 절단할지도 모른다. 홍지인도 자신의 손으로 손톱을 뽑아버렸지 않은가. 그러나 이것조차 라만고가 손톱을 먹어치우고 어김없이 악몽을 꾸게 되니 어떤 방법으로도 라만고의 손아귀에서 벗어날수가 없다. 

 

자신의 꿈에 등장한 사람들의 꿈에도 홍지인이 나타난다. 서서히 자신이 애써 버렸던 홍지인의 다른 모습이 떠오르기 시작하는데.......괴롭고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망각속으로 던져버리고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 자신의 자리를 돌려받기 원하는 "라만고". 어쩌면 이렇게 자신의 기억이 사라질 수 있는 것인지. 홍지인은 지금의 자신으로 살아가길 원하고 "좀 더 새로운 모습으로 인생을 꾸려나가자"고 결심하게 된다. 민경과 세준도 곧 라만고의 정체를 알게 되겠지만 그 뒤에 선택하게 될 삶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이 세상의 많은 이들이 망각의 세계로 기억들을 던져 버리고 있을 것이다. 그냥 잊혀진 기억, 애써 묻어둔 기억, 기억의 내용을 바꿔 새롭게 다른 기억으로 심어둔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 어김없이 "라만고"가 나타나 평온했던 내 삶을 온통 휘저어 놓는다. 두렵지 않은가. 당신이라면 과연 라만고를 만난 뒤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 라만고에게 영혼의 자리를 내어줄 것인가.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죗값을 치르며 살아갈 것인가. 라만고가 나타나기전 인생을 돌아보길 바란다. 밤에 손톱을 깎으면 쥐가 물어간다는 옛 말이 있다. 라만고에서 유래되었을지 모르는 이 말 때문에 내 손톱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한동안 고민하게 될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빙의되어 사신의 손톱에 의해 죽어가는 악몽을 꾸는 홍지인, 이 꿈이 죽은 희수를 떠올리게 하는 역할을 하긴 하지만 서로가 빙의되어 왜 악몽을 꾸게되는지 그 이유가 명확하게 나오지 않아 조금 아쉽게 느껴진다. 마구잡이로 관련이 없는 사람들을 묶어 악몽을 꾸게 하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단지 홍지인의 라만고가 무엇인지 밝혀내기 위해 등장한 사람들은 아닐텐데 조금 더 비중을 두어 다루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그들도 열번의 악몽을 꾸면 자신의 라만고와 마주하게 되겠지만 빙의 되었을때 자신이 죽는 공포감을 느끼며 빙의 된 사람을 죽인 사신에게도 살의를 느끼는 모습은 정말이지 섬뜩하고 무섭기만 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 등골은 서늘해지니 이 책을 읽으려면 낮에 해가 훤히 떠 있을때 읽으라고 이야기 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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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슬립 - 전2권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이수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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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시대를 앞서 살아가고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46년간의 차이라면 요즘같아선 인간의 수명도 길어지고 있으니 분명 현시대에서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2001년 시대에서 1944년 전쟁상황으로 간 겐타와 1944년 시대에서 2001년으로 온 고이치, 이 둘 중 '누가 가장 힘들까?'라고 생각했을 전쟁이 끝나지 않은 곳으로 간 겐타의 상황은 생명의 위협도 느끼고, 현대적인 곳에서 살다가 먹을 것도 충분치 않은 곳에서 살아야 했기에 억울하지 않을까 생각 되었지만 역시 가족을 두고 떠나온 고이치도 안쓰럽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고이치는 처음에 바뀐 상황에 적응하지 못해 포로로 잡혔다고 생각하고 우스꽝스러운 행동들을 함으로써 나를 웃음짓게 했지만 전쟁중에 조국을 위해 목숨까지도 바치려는 고이치는 현재의 일본을 보며 "이렇게 변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버려야 하나?"란 생각을 한다. 물론 겐타도 텔레비전 방송국의 조작이 아닌가 의심하며 가볍게 대처하다 진짜 이것이 전쟁중이라는 것을 알고 내가 살았던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처절한 삶을 살아가며 오직 사랑하는 여자 미나미를 보기 위해 "꼭 살아남아야겠다" 다짐하게 된다. 전쟁이 언제 끝나는지 알고 있는 겐타로서는 그때까지만 목숨을 보전하면 된다는 생각이 있으니까 상황을 그리 절망적으로 느끼진 않는다.

 

전쟁을 겪은 할아버지 기쿠오의 말을 가볍게 들은 벌일까. 겐타는 전쟁이 끝나기전 특공대가 되었을때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젊은 모습의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말대로 그리 용감한 모습은 아니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미나미의 할머니인 후미코와 가모시다를 이어주기 위해 가모시다 대신 가이텐에 오르는 겐타, 이들을 지켜줘야 후에 미나미도, 자신도 태어날 수 있다. 내내 탈출만을 생각하던 겐타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게 되는데.......

 

가족들의 지극한 보살핌을 받으며 겐타로 살아가는 고이치는 미나미를 사랑하게 되면서 이 곳을 떠나는 것이 싫다. 하지만 자기 대신 힘들게 살아갈 겐타를 생각하면 꼭 그 곳에 다시 돌아가야 한다. 가족들의 묘를 찾아간 고이치의 묘에는 "1945년 사망"으로 적혀 있어 겐타가 어디에 있는지 알았기에 물러설수가 없다. 나는 겐타가 죽는 것도 고이치가 죽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겐타가 다시 제자리에 돌아온다면 고이치가 죽는 것은 아닐까 가슴이 두근두근 거린다. 어쩌면 1945년 전쟁이 끝난 그 곳으로 간다고 해도 꼭 죽지 않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결말에 이르러 이 두 사람은 제자리에 돌아갈 수 있는 상황에 이르지만 저자는 미나미의 곁으로 돌아온 사람이 고이치인지 겐타인지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미나미가 할머니 후미코의 유품을 정리하며 겐타가 입었던 옷을 발견하게 되면서 난 후미코가 사랑한 사람이 누구였는지 알게 되었다. 냉정하게도 겐타가 후미코와 맺어지고 고이치가 미나미의 곁에 머물게 되기를 얼마나 바랬던가. 물론 이렇게 된다면 현재의 미나미는 사라지겠지. 그러면 자신이 꼭 살아야 하는 이유도 함께 사라지게 될 것이다. 겐타로서는 가족들과 미나미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했을 것인가.

 

만약 겐타가 미나미의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면 그 곳에서 죽었을 것이다. 조국을 위해, 아니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미나미는 여전히 고이치를 겐타로 생각하며 살아갔을 것이다. 고이치가 아닌 겐타로 살아가는 고이치의 인생도 그렇게 행복하진 못했으리라.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자신의 삶을 대신 살아간 겐타가 늘 생각났을테니까. 왜 저자는 이런 상황을 만들었을까. 어떤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였을까. 현대인들의 무분별한 모습에 일침을 가하기 위해서? 아니면 전쟁을 겪은 사람들을 가볍게 여기는 겐타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 명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내내 마음이 아팠다. 겐타와 고이치가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해도 예전과 같은 삶은 누릴 수 없었을테니까. 극한 상황에서 삶의 이유를 이제야 알아차린 바보같은 겐타와 고이치, 두 사람 다 행복해질 순 없었을까. 한 여인을 두고 함께 사랑한 겐타와 고이치, 어떤 결말을 맞게 되든 이들에겐 아픔이 남기에 이들의 사랑이 결코 가볍게 다가오지 않는다. 사랑이 이렇게 힘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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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퍼 1 (보급판 문고본) - 순간 이동
스티븐 굴드 지음, 이은정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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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는 장소라면 어디든지 간다"

정말 매혹적인 말이지 않는가. 몸이 피곤해서 꼼짝하기도 싫을 때 회사에 가야 한다면 순간 이동능력으로 가고, 데이비드처럼 뮤지컬 보다가 화장실 가고 싶으면 긴 줄을 기다리기 않고 집에 가서 볼일 보고 다시 오기도 하고, 여행갈 때도 가뿐하게 몸만 갔다가 필요한게 있을 때 집으로 점프하는 것은 참으로 유용한 일인 것 같다. 자주 점프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시키지 못하는게 문제고 은행에 있는 돈을 턴 데이비드를 보면 범죄의 길로 빠지기도 하니 큰일이긴 하다. 뭐 그래도 유혹을 이겨내는 강인한 마음이 있다면 이런 능력도 괜찮지 않을까.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때론 큰 불행을 몰고 오긴 하지만 점프 능력으로 인해 인류를 구하는 영웅의 모습으로 변모하게 되는 것은 하나의 과정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아버지의 폭력에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아버지의 혁대 버클로 구타를 당하는 데이비드, 생명을 위협을 느꼈을 때 자신이 익숙하게 생각한 스탠빌 공공 도서관에 와 있었다. 이것이 첫 번째 점프였다. 이때까지는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 자신에게 병이라도 있는지 무서웠겠지만 위급할때 또 점프를 함으로써 이 능력을 아주 적절하게 사용하기 시작한다. 자신을 겁탈하려한 토퍼를 골탕 먹여 준 것은 참으로 통쾌하고 어머니 메리가 테러범에게 죽게 되었을 땐 왜 어머니에겐 점프 능력이 없었는가 마음이 너무 아팠다. 점프 능력이 있었다면 살 수 있었을 테니까. 이제야 겨우 사랑하는 여자 밀리를 만나고 어머니와 재회하여 따뜻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는데 어머니의 죽음은 너무 큰 시련으로 다가온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성숙해지고 다른 이들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어 데이비드는 이제 평범한 사람이 아닌 '영웅'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모든 것을 이해해주는 밀리가 옆에 있으니 어떤식으로든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점프 능력이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불행을 몰고 오고 이 능력을 이용하기 위해 손길을 뻗치는 사람을 보면서 세상이 무섭게 느껴진다. 데이비드처럼 그리핀도 점프 능력을 가지고 있다. 데이비드와 다른 것이 있다면 그리핀은 부모님들이 그리핀을 보호하기 위해 점프 능력을 쓰지 말 것을 주의시키고 보호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핀의 이 능력으로 인해 부모님이 살해당하고, 자신을 보호해 준 사람들에게도 해를 끼치게 되니 마음속에 복수심을 품게 된다고 해도 뭐라 말할 수 있으랴. 그저 마음만 아파올 뿐이다.

 

자신을 지키고 가까운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선 힘을 키울 필요가 있지만 개인적인 복수심을 누른다는게 쉽지가 않다. 이런 능력을 진정으로 이해하며 다가오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늘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리핀도 마음이 통하는 소녀를 만나게 되지만 이후 자신이 걸어가야할 길은 외길이 될테니 얼마나 험난할지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다. 그러나 그리핀도 데이비드처럼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많은 이들을 구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내어 살아가지 않을까. 남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기쁨을 느끼진 못하겠지만 개인의 복수를 위해 이 힘을 쓰는 것이 아니라 분명 성숙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점프 능력이 있다면 좋겠지만 나는 이렇게 평범한 나의 모습이 좋다. 다만 점프 능력을 한시적으로 쓸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정말 요긴하게 쓸 수 있을 때 쓰게 된다면 그것도 좋을텐데, 역시 이런 일이 생기진 않겠지? 데이비드와 그리핀을 보면서 내가 악당을 물리치는 기쁨을 함께 가져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볼까 한다. 그나저나 나는 점프를 할 수 있다면 첫 번째로 어디로 갈까나, 남편 회사에 가서 놀래켜 주기? 아, 너무 평범하지 않은가. 역시 난 평범하게 살아야 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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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전
쓰카 고헤이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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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내가 여자여서 그랬는지 솔직히 남자가 따르는 얼굴이 있다며 두꺼운 안경을 벗은 '미치코'의 모습을 그렇게 묘사하는 사람들이 정말 싫었다. 도쿄대에 수석으로 합격한 그녀가 왜 노리개마냥 그런 인생을 살아야 했을까. 그래 나는 미치코가 '노리개'였다고 생각한다. 오니시마가 미치코를 자신의 여자로 생각하여 함부로 대할때조차 딱부러지게 내치질 못하고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를 버려 자살까지 하게 한, 여자문제가 복잡한 가쓰라기에게 마음을 주는 미치코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가쓰라기에게 마음을 주면서도 왜 그녀는 기노시타와 동거를 했던 것인가. 가족들에게까지 천대받고 식모와 함께 지내야 했던 지난날을 볼 때 많이 외로웠으리라 짐작되지만 이후의 그녀의 행보를 보면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기동대 대장 야마자키가 미치코의 엉덩이를 만지고 두꺼운 안경을 뺀 미치코의 모습에 반해버려 시위할때 기동대가 지켜줄 것이라 말하는 것을 보면서 "전설의 돌, 파란 하늘에 유성처럼 빛의 꼬리를 끌며 나타나 기동대의 방패를 부수고 새로운 일본을 만드는 돌"이라고 어떤 남자가 말하는 대목에서 '아, 이 책의 제목의 뜻이 그러하구나' 묵직하게 다가왔던 "비룡전"이 너무도 가볍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격렬하게 학생운동을 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어쩌면 기동대 대장 야마자키의 행동은 조금은 유쾌하게 느껴져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듯 하지만 이후에 정보 수집을 위해 미치코가 야마자키와 함께 살며 아이까지 낳는 모습은 "미치코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게 만든다.

 

전공투 40만을 대표하는 위원장이 되는 미치코, 물론 이것도 가쓰라기를 위해 위원장 자리에 앉아 그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기 위해 맡았다. 위원장이 되며 가쓰라기와 동거하는 미치코. 일본문화를 잘 몰라 전공투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알 수가 없으나 도쿄대에 수석으로 합격하여 가쓰라기를 사랑하는 마음에 위원장까지 되고 점점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 채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미치코를 보면서 왜이리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인지. 멋지게 성공하여 자신을 천대하는 아버지에게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손으로 우뚝 세울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연약한 모습으로 한껏 외로워 하는 모습을 하고 몇 명 남자의 품에 안기게 되는 모습에 이것이 무슨 "엇갈린 운명의 뜨겁고 안타까운 사랑"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녀가 선택한 삶이기에 후회가 없을거라고? 그렇게 말한다면 할 말이 없다. 분명 나중에는 야마자키를 사랑하게 되었으니까. 그것으로 되었다고 해야하나.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 적이 된 기동대 대장 야마자키와 학생운동 리더 미치코의 안타까운 사랑을 그리려고 했다면 내 마음속에는 이들의 사랑이 머물지 않아 조금 부족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1970년대의 일본의 상황을 알 수 있어 좋았다. 낯설지 않게 다가온 일본의 학생운동, 하지만 역시나 거리감을 많이 느끼게 된 책이었다. 그만큼 "비룡전"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의 지식이 짧았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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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드 1 - 엘파바와 글린다 위키드 6
그레고리 머과이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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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즐겨 봤던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도로시와, 사자,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을 다시 만나니 너무 반갑다. "위키드"는 동생의 구두를 신고 있는 도로시를 쫓는 마녀가 이들을 지켜보면서 이야기는 시작되고 있다. 하지만 이야기는 갑자기 초록색으로 태어난 엘파바 이야기로 옮겨져 "오즈의 마법사"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인지 빨리 뒷 내용을 알고 싶어 조바심을 느끼게 된다.

 

목사인 아버지 프렉스와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어머니 멜레나의 아기 엘파바가 태어났을때, 몸이 초록색이라 사랑스럽고 이쁜 딸이었음에도 불길한 존재로 여겨진다. 멜레나의 유모조차 멜레나에게 "방탕한 남자관계로 인해 아이의 몸이 초록색이 되었지 않냐"고 추궁까지 하고 치아마저 상어의 이빨 같아 젖도 물리지 못해 따뜻한 어머니의 품속에서 자라는 행복도 누리지 못한다. 프렉스조차 '악'이 깃들여 있는 듯 생각되어 여느 아이처럼 사랑해주지 않아 앞으로 엘파바가 어떤 인생을 살아가게 될지 그리 평탄하지는 않을것이라 짐작하게 된다.

 

지각있는 동물들의 인권을 위해 조직운동에 가담하게 되는 엘파바, 불완전했던 자신의 모습때문에 이들의 상황을 가슴아프게 생각했던 것일까. 초록색인 피부때문에 따돌림 당했던 기억이 지각있는 동물들의 인권을 위해 조직운동에 가담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엘파바의 인생을 따라가다 보면 한참 뒤에서야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에게 죽은 마녀가 엘파바의 두 팔 없는 여동생인 네사로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폭풍우와 함께 날아간 도로시의 집 밑에 깔려 죽은 마녀의 모습이 생각나 "왜 네사로즈가 죽었야 했는가"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어린시절, 아니 지금까지도 마녀라면 당연히 착한 사람을 괴롭히는 존재로 부각되어 죽어도 마땅하다고 생각했으니 왜 그런 이미지를 갖게 되었을까 이상한 생각이 들게 된다.

 

도로시에게 동쪽 마녀의 구두를 주는 착한 마녀 글린다 역시 내 기억속에서나 착하지 여기에서는 허영덩어리고 가난한 엘파바와 룸메이트가 된 것을 불평해대니 내가 본 "오즈의 마법사"를 앞으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헷갈리게 된다. 선과 악의 기준은 대체 무엇인지, 누가 정해놨을까. 동쪽마녀인 네사로즈와 서쪽마녀인 엘파바를 미워해야 하는 이유조차 알수가 없으니 전혀 다른 시각으로 이 책을 바라보게 된다. 철저히 도로시의 입장에서 본 "오즈의 마법사"가 아닌 불완전한 존재로 태어나 지금의 서쪽 마녀로 불리우게 되기까지의 엘파바의 인생을 지켜보노라면 사라진 그녀가 애처롭기만 하다.

 

뾰족한 모자를 쓰고 빗자루를 타고 다니는 "마녀"라는 이미지는 내 머릿속에 어떻게 심어진 것일까. '위키드"는 현재 내가 살고 있는 곳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세상인 것 같다. 목사인 프렉스의 종교적인 이야기, 인권운동 등 조금 어렵게 다가온 책이었지만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준 이 책으로 인해 "마녀"들이 왜 그렇게 미움받아야 했던 존재였는지 한번쯤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미워할 수 없는 엘파바, 그렇게 사라졌지만 자신에 대해 할말이 참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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