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 랜덤하우스 히가시노 게이고 문학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 '편지'는 독자들을 감동시킬 요소들을 갖추고 있는 책이다. 처음에 이 책을 읽기 전 들었던 생각이고 마지막 장까지 다 읽은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읽는내내 살인자 형을 둔 나오키의 불행한 삶에 동정심을 느끼며 이런 감정을 느껴도 되는 것인지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물었었다. 나오키의 형이 살인자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그의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냉혹하게 느껴질 정도였고 나 또한 그곳에 있었다면 그들과 다르지 않게 행동했을 것이기에 동정심을 느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나오키에게 느낀 감정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해답은 나오키가 다니는 직장의 히라노 사장이 해 주었는데 살인은 형이 저질렀는데 사회의 냉담한 시선과 차별은 왜 동생 나오키가 받아야 하는가, 에 대한 해답과 같을 것이다. 나오키가 살아가면서 받는 부당한 대우는 범죄자의 가족이기에 형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감옥 안에서 계속 나오키에게 편지를 보내는 형 츠요시의 편지를 읽어 보면 살인을 저지른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뉘우치고 그로 인해 나오키가 힘들게 살아가게 된 것을 미안해 하고 걱정하고 있으나 현실을 제대로 보고 있지는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먹고 살기도 힘든 동생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안다면 어떻게든 대학에 들어가길 바란다는 말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생전에 어머니가 바라던 일이었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자신이 그 뜻을 이어 받아 나오키가 대학에 들어갈 수 있게 하겠다는 책임감을 느낀 그가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훔치고 뜻하지 않게 살인까지 저질렀지만 이런 이유때문에 나오키는 형에게 가족이라는 이유로, 자신때문에 이런 범행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형의 행동을 참아내고 있으며 형 또한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나오키가 꿈을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을 거리낌 없이 드러낼 수가 있는 것이다.

 

츠요시는 나오키에게 피해자의 집에 대신 가 달라는 부탁을 하고 감옥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편지를 쓰는 것 뿐이라 할 수 있는 한 정성을 다해 피해자의 가족에게도 편지를 쓴다. 피해자가 어떤 감정인지 전혀 배려하지 않은 채 단지 자신의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자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츠요시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말하지 않았으니 이런 마음이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피해자의 가족들이 츠요시에게 가진 감정은 이러했다. 편지를 받는 것조차 불쾌해 하고 츠요시 대신 동생 나오키가 대신 찾아와도 범행을 저지른 것은 나오키가 아니므로 불단에 향도 못 올리게 한다. 이것이 피해자가 느끼는 감정인데 츠요시는 감옥 안에서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감옥 밖의 일을 모두 나오키에게만 맡긴다. 

 

츠요시는 계획한 살인은 아니지만 범행이 들킨 후 할머니를 너무 끔찍하게 죽였다. 답답한 감옥 안에서 자유를 억압당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지만 동생을 위한다는 이유로 이 런 행동을 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했다면, 아니 형이 혼자서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오키가 형에게 마음을 열고 좀 더 다가갔더라면 그들의 삶은 달라졌을텐데 안타깝다. 나오키는 감옥 안에서 형이 보내는 편지를 읽으면서 형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 몰랐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나오키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아무 잘못이 없는 아내와 딸을 위해 꼭 해야만 하는, 할 수 밖에 없는 결정을 한다. 나오키는 히라노 사장이 "나오키가 가장 쉬운 길을 가고 있다"고 했던 말을 떠올리며 처음부터 이렇게 했어야 한다 생각한다. 물론 형의 편지로 인해 나오키가 일어설 수 있었지만 힘든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에 나오키는 노래를 불렀을까. 부르지 못했을까. 그대로 무대를 내려오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나오키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아쉬움이 든다. 이것은 츠요시와 나오키 두 사람이 풀어야 할 일이지만 끝까지 볼 수 없어 아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짓말, 딱 한 개만 더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거짓말, 딱 한 개만 더'는 다섯 편의 단편들이 담겨져 있다 해서 가가 형사의 활약을 볼 수 있다는 것에 기대감을 가지고 읽은 책이다. 단편 [거짓말 딱 한 개만 더]를 읽었을 때 살인 사건이 발레 이야기를 빼놓고서는 진행될 수 없음을 알고 난 후 가가 형사가 한때 관심을 보인 여성이 등장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했는데 거기에 대한 언급이 없어 아쉬웠다. 예전에 마음을 준 그 여인과는 그때 이후로 인연이 없었던 것일까. '가가 형사 시리즈'는 가가 형사의 삶 보다는 살인 사건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전개되는지라 이런 면에서는 조금 아쉬움을 느낀다.

 

단편소설의 한계라면 이야기의 흐름이 갑자기 끊어진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추리소설에서는 오히려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누구인지 빨리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런 한계를 느낄 수가 없다. 다만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는 것과 사건을 빠르게 끝내버린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 다는 것이 문제인데 현실에서는 추리소설속에서와 달리 '거짓말, 딱 한 개만 더'의 단편들처럼 의외로 사건들이 미궁에 빠지기 보다는 간단하게 해결되는 예가 더 많을 것이다. 물론 가가 형사나 되니까 범인이 누구인지 빨리 밝혀낼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말이다.

 

그런데 단편 중에 나도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단편이 있었다. 단편 [제 2지망]이 그러했는데 범행이 어떻게 일어난 것인지는 가가 형사가 설명을 해주어 알게 되었지만 범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있었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게 된 것이 기뻤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인지 각 단편들이 그리 쉽게 읽을 수 있는 내용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단편 [거짓말, 딱 한 개만 더]를 읽었을 때만해도 '가가 형사 시리즈'의 매력을 느낄 수가 없어 다른 추리소설들과 다른 점을 느낄 수 없었으나 그 뒤에 읽은 단편들을 통해 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상황들에 감정이입이 되면서 결코 가볍게 읽을 수가 없었다.

 

물론 단편 [어그러진 계산]은 계획했던 일이 어그러져 사건이 벌어지는 것이 우연한 일이라고 하기엔 나오코 남편의 죽음이 석연치가 않아 읽는 것이 불편했다. 이 죽음이 없었다면 [어그러진 계산]이라는 단편 자체가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기에 꼭 필요한 일이었다고 해도 역시 억지로 만든 이야기라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우연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기엔 어딘가 부족하다. 그렇다고 운명이라 할 수도 없다. 누가 죽었든 죽어야 할 이유가 있어 죽었다고 해도 그것을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단죄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어그러진 계산]은 허구의 느낌이 강한 단편이다.  

 

가가 형사를 친구로 두어 살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을 막은 단편 [친구의 조언]은 형사이기에 하기와라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지만 진실을 알아내는 것이 불편했을 상황이었다. 자칫했다면 하기와라를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냥 두고 볼 수 없었기에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이 사건에 손을 댔을 것이다. 정말 다행한 일이 아닌가. 그냥 그대로 두었다면 하기와라의 안전은 보장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지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가가 형사는 하기와라가 죽은 후 이 사건을 맡게 되지 않은 것에 감사했을 것이다.

 

추리소설에서는 살인을 저지르지 않고 지나갈 수도 있었을 일을 한 순간의 감정을 참지 못하고 살인을 저지르는 일이 많다. 여기에서는 단편 [차가운 작열]이 그러할 것이다.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경찰에게 맡겼다면 죄를 짓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요우지는 그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행동을 했을 것이다. 본능에 의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지만 죗값은 받아야 하는 것이다. 무능한 경찰이였다면 잡히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었던 범인들이 가가 형사에 의해 모두 죄를 자백하고 잡히는 것을 보는 것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살인 사건들이 모두 끔찍하긴 하지만 평범한 일상 생활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건들은 독자들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든다. 피할 수 있었던,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사건들이었기에 가슴이 아픈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드 1 - 가난한 성자들 조드 1
김형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테무진(칭기즈칸)의 뿌리는 외눈박이 형이 동생에게 아내를 찾아주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물론 하늘에서 조그만 연못이 떨어져 이 연못이 자라서 아주 커다란 호수가 되었다는 전설에서부터 시작해야겠지만 이는 너무 까마득한 시절의 이야기로 인간의 수명이 짧아 그 넓디 넓은 호수 둘레를 둘러 본 이도 없다고 하니 그것은 그냥 하늘과 땅만이 알고 있는 것으로 놔두고, 움직이는 보르칸 산이나 이 넓은 연못은 이미 테무진이 태어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해도 무지한 인간인 우리들은 알랑고아와 외눈박이를 형으로 둔 동생이 부부가 되어 살아간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남편이 죽은 후 알랑고아는 아이를 둘 더 낳게 된다. 달빛에 아이 둘이 태어났다고 하니 왕이 될 아이에 대해 말하고자 함인가 생각했으나 아마 황금가문의 흰 뼈 이야기의 모태가 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가 보다. 아버지가 죽은 후 테무진이 키릴툭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는 이유가 되는 것이 테무진의 뿌리에 해당될 터라 '선녀와 나뭇꾼'과 비슷한 이야기, 화살 꺾어 형제들 우애 변하지 않게 하는 이야기 등은 우리나라 전래동화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라 해도 이 이야기들을 들려주지 않고는 그냥 지나갈 수는 없는 것이다. 테무진이 이복형제를 응징하며 내뱉은 말로 인해 키릴툭에게 쫓기게 되지만 실상은 역시 황금가문의 흰 뼈(보돈차르 몽학의 직계를 흰 뼈라한다)라는 것 때문인데 이는 광활한 초원을 지배하게 되는 테무진의 존재를 더 강인하게 만들어준다.

 

늑대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한 이를 도와주게 되는 테무진은 뜻하지 않게 자무카를 만나게 된다. 누구보다 지도자가 되고 싶어하는 자무카는 황금가문의 검은 뼈로 테무진의 태생을 부러워한다. 지도자가 되고 싶어하는 자무카와 아직은 키릴툭의 손아귀를 벗어나는 것에 급급하는 테무진의 인연은 "태어난 곳은 달라도 묻히는 곳은 같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되는데 그들에게 놓여진 운명은 같지 않을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영웅의 이름으로 태어난 것이 아닌 테무진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에 무수히 많은 역경과 고난이 함께 할 것이며 자무카가 원하는 것 또한 그리 쉽게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세상을 움직일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칭기즈칸'이라는 이름은 오래 전부터 들어왔었고 그에 관한 책도 읽었었지만 그가 어떤 자리에 서게 되는지 알고 있었기에 영웅적인 모습만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을 뿐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했던 고뇌와 인간적인 면모는 떠올리지 못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시대의 세상은 어떠했는지, 아버지 예수게이가 죽은 후 남겨진 그의 가족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졌었는지를 떠올리면 그가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는지 알 수 있다. 늑대의 먹이를 가로채 먹어야했던 가족들의 이야기는 그때의 상황이 얼마나 비참했었는지를 보여준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어디까지 내려가야 하는 것인지 격정이 끓어올라 견딜 수 없어진 테무진에게 오히려 이 일은 살아갈 힘을 주었을 것이다. 이를 악물고 살아내야 한다는 말을 씹어 뱉는 모습이 눈 앞에서 그려질 정도로 그 때의 감정은 절절하다. 

 

테무진이 죽은 지 그리 많은 세월이 흐르진 않았으나 한 사람의 삶을 이렇게 생생한 모습으로 복원될 수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한겨울 유라시아 대륙에 몰아닥치는 혹독한 추위 '조드'는 인간에게는 대재앙으로 우리들을 거대한 자연 속에 살아가는 아주 하찮은 존재로 만들지만 그 속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며 살아낸 테무진의 이야기야말로 하늘과 땅에 들려주는 우리들의 역사인 것이다. 작가 김형수는 '조드'에서 '전쟁의 시대가 막을 올렸군, 제기랄'이라며 구성지게 이야기하며 서막을 알리지만 이곳에서 벌어졌던 전쟁, 그 결과는 너무나 참혹해서 죽어간 이들이 많은 이곳의 영웅이야기나 들려주자고 우리들을 멈춰 세우진 않았을 것이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12세기 급변하는 세계속에서, 드넓은 초원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과 함께 했던 테무진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의 내가 서 있는 곳을 다시 돌아보게 하기 위해 이 길고 긴 여정을 시작한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그를 죽였다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를 읽으며 범인에 대한 생각에 놓여나지 못했던 나는 '내가 그를 죽였다'를 읽기 전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보고 읽는 잘못을 저질렀다. 이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기에 범인의 동선을 철저하게 따라가 볼 수 있었고 어느 정도 작가가 의도한 바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범인의 독백이 진실이 아니고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줬다는 것을 일찍 깨닫지 못해 나는 마지막 책장을 덮은 지금도 여전히 혼란스럽다.

 

'내가 그를 죽였다'에서도 작가가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주지 않는다 하기에 이 책을 읽기까지 꽤 많이 망설였었다. 첫 장을 몇 번이나 펼쳤으나 집중을 할 수 없었는데 막상 읽기 시작하자 금세 다 읽어 버리고 말았다. 호다카 마코토를 죽였을 것으로 보이는 용의자들이 서로 번갈아가며 자신을 드러내며 서로가 호다카 마코토를 죽였다고 하니 누가 범인인지 밝혀내는 것이 쉽지 않아 책 읽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간바야시 미와코의 초대로 모두 한 자리에 모였을 때 서로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하긴 했지만 범인이 누구이든 가가 형사가 모든 것을 밝혀내 줄 것이니 그리 걱정할 문제는 아니지만 우선은 범인을 밝혀내는 역할이 독자의 몫으로 남겨지니 답답한 상황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범인은 당신입니다"하고 끝내 버리냐. 가슴만 치면 무엇하나 일단 추리를 해 봐야지 추리를.

 

간바야시 미와코는 오빠 간바야시 다카히로와 평범한 사이가 아니다. 결혼식을 앞둔 미와코와 다카히로 사이에 미묘한 감정이 흐르지만 이것보다 오히려 짧은 연애기간을 거쳐 결혼에 이른 간바야시 미와코의 호다카 마코토를 향한 감정을 알 수가 없었다. 오빠를 피하기 위해 결혼이 꼭 필요해 보이진 않았다. 그렇다고 호다카 마코토를 사랑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분명 이유가 있어 보였지만 그때는 알 수 없었다. 연극 무대처럼 용의자로 보이는 유키자사 가오리와 스루가 나오유키, 간바야시 다카히로를 가가 형사와 한 자리에 모이게 한 후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려 하는 모습은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결혼할 사이였다고 해도 호다카 마코토를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 이렇게까지 해서 알아내야 하는 것일까. 물론 가가 형사 시리즈의 다른 책들과 다르게 추리 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이런 형태의 결말이 형사에 의해 범인의 트릭을 밝혀내고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것이 미와코로 인해 자연스럽게 느껴지긴 했지만 오빠까지 의심해야 할 정도로 그녀의 감정이 절실해 보이지 않는다.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를 떠올려 보면 범인의 살해 동기만 생각해 봐도 범인은 의외로 쉽게 찾아낼 수 있다. '내가 그를 죽였다'에서도 다카히로와 스루가, 유키자사 가오리 이 세 사람의 살해 동기에 대해 생각해 보면 누가 유력한지 짐작이 가능하다. 미와코의 오빠 다카히로의 경우에는 아무리 여동생을 사랑한다고 해도 그녀의 남편이 될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살인을 저질렀을 경우 경찰에게 잡히지 않는다해도 미와코가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확신이 없을 뿐더러 미와코의 슬픔은 어떻게 할 것인가. 유키자사는 호다카 마코토에게 버림 받은 적이 있다고 해도 이제 와서 살인을 저지르기엔 살해 동기가 약해 보인다. 스루가는 짝사랑했긴 하지만 사랑했던 사람을 호다카에게 빼앗겼었으니 앙심을 품을만 하다. 세 사람 다 살해 동기는 있다. 문제는 누가 실행에 옮겼나 하는 것인데 끝까지 가 봐도 "니가 범인이지"라고 가리킬 정도의 확신이 없다.

 

하필 세 사람 다 독약을 가지고 있을게 뭐람. 뭐 범인이 누구이든 호다카 마코토의 죽음에 동정심이 느껴지지 않으니 상관 없긴 하지만 다카히로는 아니기를 바란다. 어린 시절부터 남매가 불행한 삶을 살았는데 이제 또 다른 불행이 닥친다면 앞으로 살아갈 길이 더 힘들어지지 않겠는가. 지금도 충분히 힘든 상황이지만 다카히로만은 범인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다카히로는 고양이에게 독약을 두 알을 다 먹였나? 다카히로가 가진 독약 세 알 중 한 알에 대한 정확한 언급이 없어서 궁금하다. 이 한 알은 어디에 있을까. 고양이에게 다 먹였다고 하기엔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 가가 형사는 왜 여기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을까. 그도 놓치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부메의 여름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요괴가 나타나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이었다. 책 안에 우부메의 그림까지 있었으니 이렇게 생각하는 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교고쿠도가 "이 세상에는 이상한 일 같은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해 사건을 이성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고 해도 20개월 째 출산하지 못하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면 누구라도 그 뱃속에 무엇이 있을지 끔찍한 상상을 하게 될 수 밖에 없다. 료코가 탐정 에노키즈를 찾아온 것은 어떤 운명이 작용해서일 것이다. 아니, 세키구치가 그곳에 있었던 것이 운명이라 할 수 있겠다. 교고쿠도와 세키구치와 인연이 있는 마키오가 실종된 사건이라 그냥 두고볼 수 없었던 이유도 있지만 교고쿠도는 세키구치가 없어서는 이 사건이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에노키즈에게 가 보라 말한다.

 

마키오가 대신 전해주기 원했던 편지를 받은 여자는 교코일까, 료코일까. 누구일지 짐작이 가능하지만 피를 흘리며 세키구치를 바라봤던 이 여인과 세키구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을 것일까. 이에 대해 말하려는 세키구치를 말리는 교고쿠도에 의해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기회가 번번이 사라져 버려 궁금증만 커져간다. 그냥 놔 두었어도 해결될 사건을 자신이 나섰다는 것이 그리 유쾌하지 않은 교고쿠도, 그러나 분명 그가 아니었다면 사건이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가족들조차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잘 알지 못한 채 끝이 났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해결된 것을 해결되었다고 봐야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또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될 일은 끊어진 셈이니 다행한 일일 것이다.

 

탐정 에노키즈는 이제 경찰에 신고하는 일만 남았다고 했다. 그가 무엇을 보았는지 모르겠으나 세키구치는 이렇게 사건을 포기할 수 없어 홀로 사건에 접근하기 시작한다. 사실 교고쿠도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한다. 의뢰받은 에노키즈는 료코의 청에 의해 마키오의 생사에 대해서만 알면 끝이지만 세키구치는 이대로 끝낼 수 없었던 것이다. 교고쿠도가 설명한 것을 들으니 료코의 가족에게 생긴 일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는 있으나 20개월 째 출산하지 못한 교코의 몸에 일어난 일은 기이하기만 하다. 오랫동안 출산하지 못했다는 것이 기이한 것이 아니라 그 뒤의 일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녀에게 일어난 일이 너무나 끔찍하지 않은가 말이다.

 

대를 이어 내려온 끔찍한 사건들, 교코도 이 사건의 희생자 중 한 명이다. 일그러진 사랑으로 인해,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해야 했던 교코, 그녀는 끝까지 자신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료코와 세키구치의 인연도 이것으로 끝이 났다.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괴감은 세키구치를 평생 괴롭힐 테지만 그녀가 세키구치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편안한 마음이 되었을 것이라 믿는다. 이렇게 밖에 악행을 끊어낼 수 없었기에 누구에게나 아픔이 될 사건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