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 이재익 장편소설
이재익 지음 / 네오픽션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이 세상에 행복이라는 것은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일까. 이재익의 '41'을 읽는내내 어두컴컴한 세상만 보였다. 시윤과 혜나, 두 사람의 사랑만이 유일하게 나에게 온기를 주었지만 이마저도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사랑이었다. 한 남자의 모든 것을 알고 싶은 혜나에게 시윤은 아무 것도 줄 수 없었다. 마음도 그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실제 사건을 소설을 만들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몸을 숨길 곳이 없게 된다. 아무리 잔인한 내용이라도, 아무리 가슴 아픈 내용이라도 허구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하면 책을 덮은 후 이곳에서 놓여날 수 있지만 이렇게 나와 같은 하늘 아래에서, 함께 숨쉬며 살아온 아이의 아픔을 들여다 보는 것은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가해자들이 죗값을 제대로 받는 것이 맞다며 가슴으로나마 울분을 토할 뿐이다.

 

집단 성폭행을 당한 미나의 복수를 대신해주는 '그'는 악인인가, 의인인가. 이것은 미나를 성폭행한 가해자들이 죽은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들이 끊임없이 하는 질문일 것이다. 법이 우선인가에 대해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었을 것이다. 정태가 이대로 사건에서 손을 뗐으면 하고 바랐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끝까지 마지막 공을 움켜쥐고 던지고야 만 그의 모습을 보며 이렇게까지 했어야만 했는가 의문이었다. 가족의 행복을 지켜내지 못했던 그가 이 사건을 해결하여 얻을 수 있는 건 무엇이었을까. 그 어떤 이유라도 나를 이해시킬 순 없었을 것이다. 유일하게 긴장감을 고조시켰던 정태가 못마땅했다.  

 

작가 이재익은 먼저 범인이 누구인지 밝히면서 소설을 시작했고 연쇄살인사건이라는 것을 경찰인 제훈이가 알아내게끔 모든 장치를 마련해 놓았다. 그러면서 독자들이 범인의 동선을 충분히 따가갈 수 있도록 친절하게 보여주지만 동기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함구했다. 왜 복수를 하고 있는 것일까. 미나와 가까운 인물일까. 가해자 중 한 사람일까. 죽어간 이들이 범인을 알아보지 못한 것을 보면 가해자 중에 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럼 미나를 사랑한 사람일까. 독자들은 미나의 아픔을 오롯이 바라보며 함께 할 수 없음에도 그녀의 복수를 대신해주는 인물에 대한 관심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소설 '41'은 미나의 복수를 행하는 범인의 동기가 중요하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연쇄살인사건을 통해 과거 미나가 당한 집단 성폭행 사건을 연결하여 과거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가해자는 어떻게 되었는지 진실을 알려주려 하기에 미나와 아무런 접전도 보이지 않는 범인이 왜 미나의 복수를 하고 있는가에 대한 답이 필요한 것이다. 

 

연쇄살인범은 미나를 성폭행한 41명을 모두 죽이지는 않았다. 미나가 죽이고 싶다고 했던 이들만이 죗값을 제대로 받았을 뿐이다. 그러나 다른 가해자들도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을 그대로 살아가지 않았으리라 믿는다. 단 한 번 미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실제로 봤는지조차 의심스럽지만 그녀가 맞을 것이다. 몇 사람이 함께 봤으니 실존하는 인물이겠지. 소설속이라 미나, 그녀가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암시하며 끝이 났지만 진심으로 그녀가 새로운 삶을 살아가며 세상이 조금은 따뜻하다고 느끼게 되기를 바란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골쥐와 감자튀김]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시골쥐와 감자튀김 웅진 우리그림책 15
고서원 글.그림 / 웅진주니어 / 2012년 2월
평점 :
예약주문


어느날 시골쥐가 서울쥐를 집에 초청했어요. 공기 맑은 시골에서 쉬면서 맛있는 것 먹고 가라고 부른 것이랍니다. 방울토마토와 산나물, 금방 캐 따끈따끈하게 찐 감자를 내 놓았답니다. 그런데 겉멋만 잔뜩 든 서울쥐는 이 음식을 보고 역시 시골이라면서 핀잔을 줍니다. 서울쥐는 진짜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해 주겠다며 시골쥐를 서울로 데리고 갑니다. 예전같으면 보통 이런 상태에서 시골쥐가 먹을 것을 편하게 먹지도 못하고 고양이에게 쫓겨 생명에 위협을 느끼게 되면서 시골로 다시 내려가게 될 텐데요. 요즘의 시골쥐와 서울쥐 이야기는 조금 달라집니다. 고양이조차 맛 없는 쥐는 잡아 먹지 않는답니다. 갖고 놀지도 않아요. 원하는 음식을 원하는 만큼 먹는답니다. 특히 패스트푸드 음식을 많이 먹어요.

 

쥐들도 고양이처럼 햄버거 가게에 가서 편안하게 앉아 케첩에 감자 튀김을 찍어 먹고 마트에 가서 과자와 라면, 냉동만두를 카트에 가득 담을 수 있답니다. 서울쥐처럼 살아가면 금세 살이 찌고 몸이 피곤해지고, 배도 아프고, 노는 것도 귀찮아진답니다. 왜냐구요? 서울쥐가 먹는 음식들은 몸에 좋지 않기 때문이지요. 피자, 치킨, 도넛, 자장면, 아이스크림......서울에서는 이 모든 것이 풍족하고 원하는대로 먹을 수가 있으니 건강이 나빠질 수 밖에 없어요. 시골쥐는 자신이 점점 멍청해지고 있는 게 겁이 났어요. 배는 뒤록뒤룩, 눈동자는 흐리멍덩하고, 얼굴은 푸석해지고 있었어요. 살이 찐 고양이처럼 되는 게 아닐까 무서웠어요. 그래서 결심합니다. 시골쥐는 다시 집으로 내려가 자신이 기른 방울토마토를 한 입 베어 뭅니다. 얼마나 행복할지 상상이 갑니다.  

 

서울쥐는 시골로 내려간다는 시골쥐가 이해가 가지 않겠지요. 이렇게 맛있는 것이 널려 있는데, 전자렌지에 스파게티를 데워 먹으며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밤늦게까지 컴퓨터 게임을 하며 빈둥빈둥 노는 생활이란, 정말 신이 나잖아요. 건강을 전혀 돌보지 않는 줄도 모르고 당장 눈 앞에 맛있는 음식에만 관심을 가지다니 앞으로 서울쥐가 어떻게 될지 뻔합니다. 아파서 시골쥐의 집에 와서 요양을 하게 될거에요. 좋은 음식 먹고 좋은 공기 마시면서요. 이것도 늦지 않아야 가능한 얘기지요. 늦으면 병을 고치기가 힘들 테니까요.

 

저는 현재 시골쥐처럼 살아가고 있진 않아요. 자연에서 얻은 음식들이 몸에 좋다는 것을 알지만 한 번씩 라면, 자장면, 햄버거 등이 먹고 싶거든요. 아이에게 좋은 것만 먹이고 싶은 욕심 많은 엄마지만 스스로가 이런 음식들을 끊어내지 못하는 못난 엄마에요. 아이와 함께 패스트푸드를 먹으며 한 번쯤......이란 생각을 합니다. 반성하고 앞으로는 건강에 신경 쓰는 현명한 엄마가 되어야겠습니다.

 

'시골쥐와 감자튀김'은 고양이와 쥐가 단골로 등장하는 다른 그림책들과 다르게 아이들에게 올바른 식습관을 알려줍니다. 화려하고 멋진 서울과 시골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서울쥐과 시골쥐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자연에서 얻은 음식들이 얼마나 좋은 음식인지 알려주기 위해 만든 이야기일 뿐입니다. 요즘에는 도시에서도 자연에서 얻은 음식들을 먹을 수 있으니까요. 건강을 위해 몸에 좋은 것들을 챙겨 먹도록 해야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철천사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박수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제철천사'는 누구라도 쉽게 읽어지지 않는 소설일 것이다. 만화를 소설로 담아냈다는 글을 본 후에야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아즈키가 보여주는 세상을 따라갈 수 있었고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어린 나이에 질주본능을 느낀 여자 아이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를 횡단하는 그 모습 그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추고쿠 지방의 하이웨이를 통일시키고 홀연히 사라진 폭주단 <제철천사>, 이들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설이 되어 전해지고 있었다. 아니, 단 한 명만의 입을 통해 들었을 뿐인데 그가 전설 속에 등장하는 영웅으로 각색하여 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아즈키의 이야기는 전혀 현실성이 없었다. 얌전하게 공부 잘하고 있던 아이들이 가슴 속에 잠들어 있는 불꽃이 터지듯 질주본능을 느끼고 튀어 나가면 어른들은 "백말띠라 그렇다"며 이해해 버린다. 그러나 다른 폭주단에게 제압당해 버리거나, 어른이 되면 이 질주본능은 갑자기 사라져 버려 예전의 얌전한 아이로 돌아가게 된다. 질풍노도, 그것은 역시 사춘기 아이들만이 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인 것인가.

 

새빨간 오토바이가 제 스스로 아즈키의 곁에 왔다는 것이 한 편으로 어이없는 설정이지만 만화라고 생각하면 이해못할 것도 없다. 영화에서도 흔한 소재이니까. 철의 사랑을 받아 이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아즈키이고 보면 새빨간 오토바이가 스스로 아즈키의 곁에 왔다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될 정도니까. 그때부터였다. 바람을 느끼며 오토바이를 타고 하이웨이를 질주하기 시작한 것이.

 

'에드워드 족'과의 싸움에서 조각칼로 멋지게 몸에 글씨를 새겨주는 아즈키, 이 현란한 몸동작이라니 역시 그녀는 평범하지 않다. "우정은 사람을 강하게 합니다"라고 말하며 에드워드 족에게 잡혀간 스미레를 구하러 가는 아즈키의 모습은 추고쿠 지방을 통일할 재목으로 보인다. 쇠파이프만 가지고 가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스미레를 뒤에 태우고 바람을 가르며 도로를 질주하는 아즈키의 모습은 '자유' 그 자체였다. 하이웨이라고 쓰고 자유라고 읽는다, 며 오늘 즐거우면 내일 죽어도 상관없다는 폭주단 아이들, 그들의 마음을 어렴풋이 알 것도 같으나 역시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고개를 돌리고 만다. 아즈키가 리더로 있는 폭주단 <제철천사>를 아무리 좋게 봐 주려고 해도 봐줄 수가 없다. 칼이나 체인, 죽창, 쇠파이프 등으로 싸우는데 '트라이앵글'이나 '나팔'을 들고 다니는 것은 애교로 봐줄 정도다. 누구 하나 죽어나가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위험한 무기들로 싸운다. 그나마 다행한 일이라면 폭주단들과의 싸움의 끝은 이긴 쪽에서 제압의 표시로 유성매직으로 몸에 낙서를 하는 것인데 이것만은 어린애다운 행동으로 보여 그나마 봐줄만 하다.

 

<제철천사>의 마스코트인 스미레가 고등학생이 되어 폭주단을 떠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처음부터 스미레가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고 아즈키의 곁을 떠나는 것에 더이상의 미련은 없어 보였다. 다만 그냥 이렇게 스미레가 평범하게 살아갔다면 좋았겠지만 어떤 일이든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바람을 느낀 아이들이라면 좀 더 순수하게 살아갈 것 같으나 스미레는 그렇지 않았다. 어른이 되면 하이웨이를 떠날 수 밖에 없는 아즈키가 추고쿠 지방의 하이웨이를 통일시킨 후 할 수 있는 행동이라면 역시 '영원한 나라'로 가는 길 뿐이었다. 스미레도 함께 가길 바랐지만 함께 할 수 없었기에 슬픈 길이겠지만 아즈키는 그곳에서도 여전히 새빨간 오토바이를 타고 다닐 것이다. 빠라바라, 빠라바라......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별이 된 소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별이 된 소년 비룡소 걸작선 19
팜 무뇨스 라이언 지음, 피터 시스 그림, 송은주 옮김 / 비룡소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네프탈리'가 소녀인줄 알았다. 몸이 약해서 침대에서만 생활하는 아이는 처음, 나에게 소녀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파블로 네루다'의 어린 시절 이야기라는 소개의 글을 보면서도 '별이 된 소년'이 내게 준 이미지는 그랬다. 상상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네프탈리는 학교에 가는 길에서도 모든 사물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는 아이다. 나뭇잎 하나 허술하게 보아 넘기지 않는 네프탈리는 모든 물건에는 어떤 힘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 힘을 꼭 필요한 곳에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몸이 약한 네프탈리가 자신의 상상속에서만 꿈 꾸는는 세상이다.

 

'시'를 쓰는 사람들은 이렇게 세상을 다르게 보는 것인가, 라고 떠올릴 수 있지만 네프탈리의 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의사나 치과의사가 되지 않는 한 다른 직업은 모두 얼빠진 일쯤으로 여겼고, 아이의 꿈이 무엇인지 물어보지 않고 이미 미래를 결정지어 버린다. 부모들이 흔히 저지를 수 있는 행동이지만 몸이 약한 네프탈리를 강하게 만들겠다고 바닷가에 들어가 견디도록 한 행동은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네프탈리 뿐 아니라 그의 어린 여동생 로리타까지 함께 바다에 들어가도록 강요하여 어린 네프탈리가 오랜시간 로리타가 물에 잠기는 악몽을 꾸기도 했으니 그때 네프탈리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능하다. 수영을 가르칠려고 했다면 아이들과 함께 바다에 들어가 추억을 만들어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네프탈리의 아버지는 아이의 몸을 강하게 만드는 것에만 신경을 썼고 이런 권위적인 아버지의 모습은 아이들의 미래를 불행하게만 만들 뿐이다.

 

네프탈리의 형 로돌프는 노래부르는 것을 좋아해서 음악학교에 진학하고 싶어했지만 아버지가 정해준 삶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형을 보면 글을 쓰고 싶어하는 네프탈리의 꿈 또한 좌절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용기를 낸다고 해도 아버지는 넋 빠진 놈, 얼빠진 놈, 바보 같은 놈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네프탈리는 용기를 냈고 마침내 그 꿈을 이룰 수 있었다. 네프탈리에게 용기를 준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라 형과 올란도 삼촌이었다. 네프탈리는 올란도 삼촌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자랐다. 올란도 삼촌은 출판사가 불에 타는 위협에도 불구하고 마푸체족에 관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네프탈리도 '파블로 네루다'라는 이름으로 계속 글을 쓰고 정의롭게 살아가고자 노력한다.

 

아버지가 정의롭지 않은 것은 분명 슬픈 일이다. 그렇지만 올란도 삼촌의 출판사가 불타고 네프탈리의 글을 본 이웃이 더이상 왕래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보인다면 그의 아버지처럼 행동할 수도 있다. 네프탈리는 그런 아버지의 행동을 비난하지 않았고 자신의 글이 멀리 퍼져 나가면 세상이 분명 변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상상의 세계에서 자신의 꿈을 펼친 네프탈리의 삶은 아버지의 권위 아래에 놓여 있지 않았다면 좀 더 행복하게, 좀 더 넓은 세상을 꿈꿀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네프탈리의 아버지가 일을 나가고 없을 때 가족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았다. 남편의 권위 아래 아무말도 하지 못하는 마마드레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지만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 나갔다. 행복하냐, 행복하지 않냐의 결과만 다를 뿐이지만. 꿈이 좌절당한 형 로돌프는 동생의 꿈을 이루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형의 도움으로 네프탈리의 꿈이 이루어졌지만 더 넓은 세상을 품에 안은 것은 모두 네프탈리의 노력으로 이룬 것이다. 아우구스토 할아버지가 말하지 않았던가 "네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할 방법은 항상 있는 법이다"라고. 꿈을 이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스트 헌트 2 - 인형의 집
오노 후유미 지음, 박시현 옮김 / 북스마니아 / 201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공포를 느끼게 해 주는구나.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노리코의 집에 영능력자들이 모여든다. 서로 다른 사람의 소개로 모였지만 모이고 보니 '구교사 괴담'에서 봤었던 인물들이 모두 모였다. 나르, 스님, 무녀 아야코, 존, 마사코까지. 이들이 얼마나 많은 활약을 할지 별로 기대는 하지 않았으나 오옷 의외로 몸을 사리지 않는다. 제령을 하는 스님과 아야코가 '영'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의외긴 하지만 '영'이 보이든, 보이지 않든 상관 없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한다. 여전히 마이는 잡무 담당이다. 나르 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후 처음으로 맡게 된 사건이 이번 '인형의 집' 사건이란다. 대체 그 동안에 뭐 하며 지낸거냐.  

 

1권 '구교사 괴담'에서 뛰어난 활약을 했던 나르가 '인형의 집' 편에서는 하는 일이 없어 보여 겉도는 느낌이 든다. 최첨단 기계로 알아낼 수 있는 것들은 많으나 영능력자들도 버거워 하는 위력을 가진 무시무시한 존재를 어떻게 할 생각인지 알 수가 없다. 나르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행동에 관심은 보이지만 이렇다 할 행동을 하지 않은 채 이 집에 얽혀 있는 사건들을 알아보러 다닌다. 이런 일쯤이야 나르가 늘 하던 일이긴 한데 나르를 제외한 스님, 아야코, 존, 마사코의 능력으로는 이번 일을 해결할 수 없으니 걱정이다.

 

여덟 살 쯤의 아이들이 죽었다는 이 집에서 유령들의 표적이 된 아야미를 구할 순 있을까. 등골이 서늘해져 온다. 어쩌면 나르조차도 상대하지 못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존재일지 모른다. 능력이 없다 해도 스님, 아야코, 마사코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영능력자들이 이번에는 제대로 된 사건을 맡지 않았는가. 아야미를 데려가려는 유령들과 영능력자들의 싸움은 그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인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긴박감이 흐른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라 무녀 아야코는 자신의 목숨이 더 중요하다며 발을 뺄 생각도 했으나 어쩐 일인지 끝까지 행동을 같이 한단다. 나르때문이냐? 나이 차이도 많이 나는데 혹시 이성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마사코도 아야코도 나르의 곁에 머무는 것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야코는 무녀이면서 제령을 할 때 아무런 능력이 없는 마이를 곁에 두었다. 너 제정신인 거냐. 이런 위험한 일에 평범한 아이를 곁에 두다니,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다. 이 무녀는 이상하게 밉다. 능력도 없으면서 왜 무녀인 것인지. 덕분에 마이가 위험에 노출 되었지만 뜻하지 않게 마이가 평범한 아이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아야코는 앞으로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는 인물이다. 어떤 사건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대충 이렇다.  

 

노리코와 아야미의 새 엄마 카나와의 미묘한 신경전은 이 사건이 '유령'에 의해 발생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해결이 되었지만 이 일로 인해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카나는 아야미의 새 엄마였으나 딸의 안전보다는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이 집을 떠났었기에 아야미가 유령들의 표적이 될 수 밖에 없었던 환경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아야미는 외로웠던 것이다. 어린 시절 겪은 이 일이 앞으로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힘들지 않았으면 한다. 아직은 살아가야 할 날이 많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