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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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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리나에게 점점 끌리는 마거릿이 자신의 삶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리들은 그 어떤 의견도 말할 자격이 없다. 자신에게 소중했던 사람을 잃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우리는 누구나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 자신 또한 그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고 싶어한다.) 영매인 셀리나에게 끌릴 수 밖에 없다.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약해질 수 있는지 알게 되면 놀랄 것이다. 그로인해 또한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더 놀라게 될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내밀한 공간에 타인의 숨결이 닿으면 그것은 사랑 못지 않은 파괴력과 열정을 지니게 된다. 마거릿에게도 단지 그 뿐이었다. 그 마음이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마거릿과 감옥 밀뱅크에서 복역 중인 죄수 셀리나의 일기가 반복해서 담겨져 있는 세라 워터스의 '끌림'은 셀리나가 밀뱅크에 갈 수 밖에 없었던 사건을 첫 장에 담아 놓음으로써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시작한다. 독자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훨씬 뒤에 가서야 알아차릴 수 있지만 나에게 큰 의미를 전달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셀리나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마거릿이 이미 그녀에 대해 알아본 일들을 언급하고 있어 불필요한 이야기라 생각될 정도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는 그동안 셀리나가 어떤 삶을 살았으며 어떻게 밀뱅크에 오게 되었는지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며 영매인 셀리나가 강신회를 위해 영혼인 피터를 불러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거릿이 밀뱅크에 다니는 동안 자신이 숙녀로 대우받고 있으나 자살을 시도해 밀뱅크에서 복역중인 죄수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모르핀을 먹고 자살을 시도한 마거릿은 어머니의 감시 아래 살아가는 자신의 일상이 감옥 밀뱅크에서 살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여기며 아버지, 헬런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시간이 파괴됨으로써 삶의 의욕을 잃어 버리게 된다. 찬란하게 빛나는 햇살 속에서 셀리나와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을 때부터 마거릿의 삶은 더 걷잡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고 마거릿은 알지 못했으나 이미 정해져 있는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결말은 잠시동안 나의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듯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동안 내가 지켜봤던 셀리나의 독백은 무엇이며 많은 시간을 그리워하고 고뇌했던 마거릿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 한 가지 생각만 겨우 떠올렸을 뿐이다. 밀뱅크의 여교도관인 리들리가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대처했었더라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결말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혹자는 마거릿에겐 그저 그리워하는 대상만 달라졌을 뿐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 아픔의 정도는 다를 것이다. 이제 마거릿은 바보 같이 자신의 마음조차 살피지 않고 지금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갈 것이며 자신의 심장의 마지막 실이 약해질 날을 기다리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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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치바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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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위에는 이런 사람이 없다. 아니, 이런 사신이 없다. 있는데도 알아 보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하면 할말은 없지만 아무리 사신이라도 한 사람의 인생을 삶이냐, 죽음이냐를 결정하기 위해 조사를 하면서 일주일간의 기간동안 그들의 삶에 관여하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 아닌가. 죽기 전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사신도 있다고? 그러나 결국은 그들의 죽음에 "보류"가 아닌 "가"라고 정해두고 스스로 만족할 시간을 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반성이 필요하다.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 세상에 내려와 인간들의 죽음에 대한 조사를 하면서도 인간의 삶에 익숙해지지 않는 사신 '치바'의 이야기는 그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 내뱉는 두서없는 말들로 인해 '죽음'이라는 어두운 면이 평범한 일상이 되어 버린다. 사신은 절대 자살이나 병사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사고사로 인한 죽음이라는 점에서 이를 막을 수도 있었을텐데, 사신이 "보류"라고 결정해 주면 삶을 연장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은 죽음에 이르러 삶에 대한 애착을 보이지 않음으로써 사신에게는 그들의 죽음에 "보류"라는 결정보다 "가"라는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게 한다. 이는 "죽고 싶다"는 말을 함부로, 쉽게 내뱉지 말아야겠다 결심하게 했다. 의미 없는 시간은 없는 것이다.

 

눈 내리는 산장에서의 연쇄살인사건은 사신이라면 한 번쯤 겪을 만한 일이었다. 오호 이제야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이야기가 나오는군, 하며 읽었지만 사신들이 개입된 사건은 미묘하게 무언가가 어긋난 느낌이라 기분이 이상하다. 한 곳에서 몇 명의 사람들이 죽어갈 때 보게 되는 사신들이라니 그들을 바라보는 것은 그리 썩 유쾌한 느낌이 아닌데 이 상황을 어떤 감정으로 봐야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 곤혹스럽다. 이런식으로 인간의 삶에 또 한 번 관여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를 따지기 전에 자신이 조사한 인간이 죽을 때 꼭  그 죽음을 확인해야 하는지 그것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겠다 여겨진다. 인간들의 입장에서 보면 증인 내지는 목격자가 될 수도 있는 존재가 사신이라는 것은 좀. 이러니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사신 치바는 인간에게 딱 한 번 기회를 줬다. "가"가 아닌 "보류"를 결정한 것이다. 한 여자의 음울했던 삶이 이대로 끝나길 원하지 않았던 치바는 그녀가 자신의 삶을 다시 한 번 살아낼 기회를 주게 된다. 삶을 허락받은 이 사람은 그 뒤로 어떻게 살아갔을까. 그 궁금증은 치바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나오지만 세상이 "기적"이라고 부르는 삶을 살아갔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죽음이 중첩되는 안타까운 상황도 보았다. 끝까지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사랑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면 다른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라 여겨지는 안타까운 삶이었다. 사랑이 시작되려는 연인에게는 고통스러운 결과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도 남아 있는 사람은 살아갈 힘을 얻었을 것이다. 

 

사신 치바는 인간 세상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하지만 그들을 완전하게 이해하지는 못한다.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그를 보면서 역시 그는 인간이 아닌 '사신'이라고 깨닫는다. 인간의 삶을 알게 되면 사신의 일을 더이상 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신들이 우리들 삶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죽어야 할 사람들이 좌절감에 내뱉는 말보다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그들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길 바란다. 분명 그들에게도 행복했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행복했던 한 때의 시간으로 인해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것을 그는 아니 사신들은 왜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몇 천년이 지나도 치바는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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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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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반짝반짝 빛나는'의 쇼코와 무츠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해서 관심을 가진 책이다. 쇼코와 무츠키를 오랜시간 볼 수 없었다는 것이 무척이나 섭섭했지만 10년 후에도 변함없는 모습을 보는 것은 꽤 유쾌했다. 그들의 일상도 타인의 일상과 다르지 않았고 사랑때문에 가슴 아파하고 타인과 별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하루들을 보내고 있었다. 변화가 없다는 것에 안심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쇼코와 무츠키가 여전히 함께 한다는 것은 분명 나를 안심하게 했다. 여러 편의 단편들을 읽을 마음의 여유가 없을 만큼 단편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은 오랜 시간 연락이 닿지 않았던 이들의 소식을 듣는 듯 나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고 다른 이의 일상을 통해 쇼코와 무츠키의 소식을 알게 되는 것이 못마땅하긴 했지만 타인들속에서 편안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이 책 속에는 아주 짧은 단편들도 있고 한 권의 장편 못지 않은 매력을 가진 단편들도 있었다. 물론 작품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글들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무난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사랑하는 남자의 곁을 유체이탈하여 자주 머무르게 되는 단편 [선잠], 그 사랑을 끝맺지 않는 한 이 고통스러운 시간은 멈추지 않을 것 처럼 보인다. 단편 [포물선]은 학창시절을 그리워하는 간다, 고이치로, 미치코가 일 년에 한 번 모이는 것을 담아냈다. 만나는 동안에는 학창시절을 이야기하지 말자고 정해 놓았지만 누가 봐도 옛 시절을 그리워해 이 모임을 이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중년이 된 그들의 모습은 어떨까.

 

가장 재미 있었던 단편을 선택하라면 [재난의 전말]을 선택할 것이다. 벼룩으로 인해 이전의 삶과 다른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그 상황이 되면 그럴 수 밖에 없겠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벼룩을 묻혀 오는 고양이를 내보내면 될텐데 원인은 그대로둔채 벼룩과 함께 하는 것을 그러려니 하며 일상으로 생각해 버린다. 그러면서 사랑보다 자기 자신이 더 소중하다나? 희안하게도 이 말이 이해된다는 것이 더 이상하다.

 

좋아하는 남자가 있지만 여러 남자와 관계를 맺는 단편 [녹신녹신]은 이해가 안된다. 뭐가 녹신녹신이라는 건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대충 눈치를 채고 있는 신지에겐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신지의 품 안에서 미요의 모습은 글쎄, 나에게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오히려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을 참석하는 단편 [시미즈 부부]의 상황이 더 이해하기 쉽다고 할까. 가까운 사람이 죽었을 때 참석하는 장례식과는 그 슬픔의 깊이가 다르겠지만 현재와 미래의 삶에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그리 추천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타인의 죽음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 자신의 삶을 오롯이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그리 엉뚱한 행동은 아니었다는 것이 이해할 수 있는 정도여서 이 책 속에 담겨져 있는 모든 단편들이 모두 괜찮았다고 말할 순 없겠다.  

 

"지금 버드나무가 아름다워요. 보러 올래요?" 쇼코가 물었었지. 한가롭게 버드나무를 볼 수 있을만큼 쇼코와 무츠키를 만나는 것이 편안하진 않겠지만 한번쯤 이곳에 가 보고 싶다. 우라베 나무와 곤 나무가 보고 싶어서. 그림에게 노래를 들려주는 쇼코가 보고 싶어서 말이다. 치나미는 쇼코의 집에 가는 것을 그리 달가워 하지 않으면서도 남편 로와 함께 다닌다. 치나미에겐 버드나무의 아름다움 따윈 눈에 들어오지 않을테지만 버드나무 또한 인간들의 일에 무심할 뿐이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계절 같겠지. 이렇게 말하고 보니 마음이 쓸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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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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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을 좋아하는 무츠키와 결혼한 쇼코는 편안해 보였다. 타인의 시선으로 보자면 너무나 불행한 결혼생활인데 말이다. 무츠키의 상황을 알고 있는 시부모님은 쇼코를 안쓰러워 한다. 무츠키의 아버지는 쇼코에게 무츠키와 사는 것을 "물을 안는 것"이라고 하셨다. 어떤 의미일까. 안으려 해도 손 안에 쥐어질 수 없는 상태를 이르는 말일까. 더 깊은 뜻이 있는 것일까. 물을 안아 흠뻑 젖는 것만으로도 무츠키를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했을 쇼코에게 이 말은 내내 그녀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든다.

 

의사인 무츠키와 사는 것을 부러워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아이만 있다면 완전한 가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쇼코의 부모님이 무츠키의 상황을 알게 되었을 때 쇼코의 행복을 먼저 생각했다면 또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쇼코의 부모님은 쇼코의 마음이 어떠한지 묻지 않으셨다. 무츠키가 쇼코에게 충실하고 두 사람에게 아이가 생긴다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하셨다. 무츠키가 좋을 뿐이라는 쇼코의 말을 들을 생각도 없으셨다.

 

그런데 쇼코는 곤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끼는 걸까. 남편의 연인인데 아무렇지 않게 만날 수 있다니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무츠키 곁에 있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녀의 마음은 어떤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긴 무츠키와 결혼한 쇼코를 이해하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갖고 싶다는 쇼코의 마음조차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평범하진 않았으니까.

 

에쿠니 가오리는 쇼코의 정서가 불안한 것으로 무츠키와 쇼코 그리고 곤의 이야기를 그려 나간다. 알콜 중독 수준으로 술을 마시는 쇼코에게 이런 상황에까지 오게 한 사건이 있었는지 여기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은 채 무츠키만이 쇼코에게 안정을 줄 수 있다 말한다. 무츠키의 상황이 이런 쇼코와 어울릴 수도 있다고 독자들을 안심시키는 것이다. '두 사람이 이대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간절하게 바랄 수 있게 하는 것, 이것이 무츠키, 쇼코, 곤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이 위기만 지나가면 아무 일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걸까.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 앞으로 이들의 일상이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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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레이드 오늘의 일본문학 1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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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요스케, 고토, 미라이, 나오키, 사토루가 기거하는 이 공간에 나도 함께 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다. 타인의 잔상만을 끌어 안으며 지낼 수는 없는 거니까. 이들은 세상 밖에 진실을 숨겨 둔채 이곳에 숨어 보여주고 싶은 것들만 보여주고 산다. 그래서 타인의 잘못, 아픔 모두 감싸 안아줄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사토루가 나오키를 협박하지 않을까 쓸데없는 걱정도 했다. 나의 기억속을 스쳐 지나갔던 일이 이렇게 큰 사건이 되어 나타나야 했을까 의문이지만 이 잔혹한 결말에 충격을 받아 한동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어느 쪽이 무너져 내려야 이들의 기묘한 동거가 끝이 날까.

 

좋다. 요스케, 고토, 미라이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하자. 알고 있었겠지. 그러면 미사키는 어떨까. 미사키가 제멋대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는 이곳을 계속 찾아오는 이유는 아, 마, 도 그녀 또한 이곳이 편안해서 일 것이다. 이는 나오키와 중년의 애인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애매모호한 행동을 하는 미사키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이유와 같을 것이다.

 

요스케, 고토, 미라이, 사토루, 나오키 이 다섯 명이 차례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퍼레이드'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진실이 있다. 서로가 진실성이 없이 살아간다고 믿고 있으나 분명 이들은 독자들에게만 들려주고 싶은 진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진실이 세상속으로 풀려나오는 순간 모든 익명성은 사라지는 것이다. 그때는 이 기묘한 동거가 지속될 수 없다. 그래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유쾌해지는 이 공간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모두들 연기를 하는 것이다. 또 한가지 더, 세상에 알려지면 안되는 큰 비밀을 공유하면서 서로가 가진 작은 비밀은 그대로 노출시킨다. 이것이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인 것이다.   

 

사토루가 밤일을 그만두고 나오키가 주선한 곳에서 일을 하길 바라고 요스케는 자신을 바람정도로 여기는 여자와 헤어지고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하기를 바란다. 고토는 마루야마 도모히코와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고 미라이는 자신이 소원하는대로 하와이에 가서 사는 것도 좋겠다. 나의 이런 바람을 들려준다고 해도 내가 원하는대로 살아갈 사람들은 아니지만 조금은 현실감을 가지고, 행복이라는 것을 느끼며 살아갔으면 한다. 함께 지내는 생활이 아무리 편안하고 유쾌하다고 해도 파도에 곧 무너질 모래성으로 보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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