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레이드 오늘의 일본문학 1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한동안 요스케, 고토, 미라이, 나오키, 사토루가 기거하는 이 공간에 나도 함께 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다. 타인의 잔상만을 끌어 안으며 지낼 수는 없는 거니까. 이들은 세상 밖에 진실을 숨겨 둔채 이곳에 숨어 보여주고 싶은 것들만 보여주고 산다. 그래서 타인의 잘못, 아픔 모두 감싸 안아줄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사토루가 나오키를 협박하지 않을까 쓸데없는 걱정도 했다. 나의 기억속을 스쳐 지나갔던 일이 이렇게 큰 사건이 되어 나타나야 했을까 의문이지만 이 잔혹한 결말에 충격을 받아 한동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어느 쪽이 무너져 내려야 이들의 기묘한 동거가 끝이 날까.

 

좋다. 요스케, 고토, 미라이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하자. 알고 있었겠지. 그러면 미사키는 어떨까. 미사키가 제멋대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는 이곳을 계속 찾아오는 이유는 아, 마, 도 그녀 또한 이곳이 편안해서 일 것이다. 이는 나오키와 중년의 애인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애매모호한 행동을 하는 미사키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이유와 같을 것이다.

 

요스케, 고토, 미라이, 사토루, 나오키 이 다섯 명이 차례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퍼레이드'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진실이 있다. 서로가 진실성이 없이 살아간다고 믿고 있으나 분명 이들은 독자들에게만 들려주고 싶은 진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진실이 세상속으로 풀려나오는 순간 모든 익명성은 사라지는 것이다. 그때는 이 기묘한 동거가 지속될 수 없다. 그래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유쾌해지는 이 공간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모두들 연기를 하는 것이다. 또 한가지 더, 세상에 알려지면 안되는 큰 비밀을 공유하면서 서로가 가진 작은 비밀은 그대로 노출시킨다. 이것이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인 것이다.   

 

사토루가 밤일을 그만두고 나오키가 주선한 곳에서 일을 하길 바라고 요스케는 자신을 바람정도로 여기는 여자와 헤어지고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하기를 바란다. 고토는 마루야마 도모히코와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고 미라이는 자신이 소원하는대로 하와이에 가서 사는 것도 좋겠다. 나의 이런 바람을 들려준다고 해도 내가 원하는대로 살아갈 사람들은 아니지만 조금은 현실감을 가지고, 행복이라는 것을 느끼며 살아갔으면 한다. 함께 지내는 생활이 아무리 편안하고 유쾌하다고 해도 파도에 곧 무너질 모래성으로 보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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