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에 ‘스승’을 생각함 

오늘이 주일이어서 교회에 갔더니 예배당 벽에 이런 포스터가 붙여져 있었습니다.
아마 교회학교 어린아이들이 스승의 날이라 자기들 나름대로 깜짝 이벤트를 준비한 모양입니다.
막내가 대학교 4학년이니 스승의 날을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칩니다.
작년까진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 거리에 은퇴해서 사시는 남편의 고등학교 은사님을 찾아뵈었는데 올해는 이런저런 핑계로 그것마저 걸렀습니다.
그러나 고사리 손으로 작은 머리를 맞대고 이런 것들을 준비한 교회학교의 어린아이들을 생각하며 무심한 세월 위에 서 있는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우선 ‘스승의 날’하면 평생 지워지지 않을 두 개의 단상이 떠오릅니다.

저는 부산에서 초등학교 일학년까지를 다녔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도래한 베이비 붐 세대여서 제가 1학년 12반 102번이었는데 제 기억으로는 112번까지 있었고 그것도 14반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니 1학년 학생 수만 천 명이 넘었지요.
교실이 모자라 미군이 철수하면서 버려두고 간 미군 양철막사까지 교실로 사용을 하였습니다. 4학년이었던 오빠도 오전, 오후반을 나누어서 공부를 했지요.
하루는 학교에 갔더니 교실 안에 누가 똥을 한 무더기 누어놓았습니다.
잠시 난감해하던, 미모가 뛰어난 여선생님이 우리 반에서 제일 형편이 어렵고 그래서 옷도 특히 더 남루했던 아이를 불러서 그것을 치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집에 갈 때 급식 빵을 하나 더 주겠다고 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그 충격이란 말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것은 다 잊었는데 선생님이 호명한 그 아이의 이름은 아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래 전의 일인데 제게는 아직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또 하나의 기억은 아름답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시인 유치진 선생님이 지은 ‘겨레의 밭’이라는 교훈을 가진 학교에 다녔습니다.
공부보다도 소설책, 영화, 사진, 음악을 좋아하며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그 때는 지금처럼 공부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 그런 시절은 아니었습니다.
학교가 시내 중심가에 있어서 플라타너스 그늘아래 학교 담장에서 시화전, 미술전도 열곤 했지요.
토요일 오후, 학생들이 다 집으로 돌아간 텅 빈 교정이었습니다.
저는 무슨 일인가 있어서 다른 친구 한 명과 다시 학교에 갔습니다.
교실에 들렀다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화장실에 갔습니다.
아, 그 때 제가 본 장면은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학생들이 모두 하교하고 난 텅 빈 교정 한 쪽 화장실에서 교장선생님께서 손수 화장실문에 흰색 페인트를 칠하고 계셨습니다. 그것도 재래식 화장실을요.
지금 같으면 행정실에서 알아서 관리부에 일을 맡기거나 했겠지요.
평소에도 여학생들의 정서에 맞게 교정 구석구석을 아름다운 정원으로 만들어 주시기에 열심이셨던 교장선생님이셨지요.

스승의 날이 되면 항상 이 두 장면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자주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는 근원은 아마 이 두 가지 단상에서 나오는 듯 합니다.
소설가 김훈은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데에 거부감이 있는 듯 하지만 저는 자주 ‘너는 어느 쪽이냐?’고 제 자신에게 묻습니다.
스스로를 위로 하자면 아마 그렇게 물을 수 있는 동안은 그래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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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5-17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는 한반에 아이들이 60명정도 되었지요?
박시글박시글 했지요. 하하
활기차고 가난하든 시절입니다.

말씀처럼 고등학교 때도 놀며 공부하며 했었지요.
저는 탁본을 배워 열심히 비석 글씨 뜨러 다녔답니다.
웬만한 영화는 모두 봤지요. 극장에서요(잡히면 또 되게 혼납니다). 하하

훌륭한 선생님들의 가르침은 여직 그대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머리속에, 마음속에 꼭꼭 간직하고 있지요.


gimssim 2010-05-17 14:43   좋아요 0 | URL
소풍가는 날이면 마치고 극장에 갈려고 도시락도 안갖고 카메라만 들고가던 기억이 납니다.
부산은, 글에 올린 그 아이 때문에 마음 아린 곳입니다.
늘 빚진 기분이 듭니다.
그 때 나는 왜 다른 아이들처럼 그냥 구경만 하고 있었을까...
조만간 카메라만 들고 한 번 가볼까 합니다.
작년에 오빠와 함께 우리가 살던 집에 가보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