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말 걸지 않기...공깃놀이 

온 나라가 법정 스님의 입적으로 연일 술렁거립니다.
자본주의의 나라에 살면서 스님이 던지신 화두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봅니다.
‘무소유’의 삶을 추구하고 그렇게 살아오신 분의 빈 자리가 이렇게 커보이는 것은 아마 우리 모두들 그렇게 살기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기 때문이 아닌지 돌아봅니다.
마침 읽고 있는 책이 <혼.창.통> 인데 진도 엄청 안나갑니다.
타이밍이 맞지 않습니다.
온 나라가 ‘무소유’ 바람인데 출세, 성장, 최고, 마케팅, 초일류, 감동서비스, CEO …… 도대체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지요.

몇 해 전, 예수쟁이지만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명상의 집>에 피정을 갔드랬습니다.
마음에 드는 것이 ‘아무하고도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묵언수행’ 같은 것이지요.
다른 분들은 두 명이 한 방을 썼는데 저는 혼자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면서 성경책과 신현림 시집 <빵은 유쾌하다>를 갖고 갔는데 참 많이 후회를 했습니다. 
우리는 늘 시간에 쫓겨 삽니다.
그 때 느낀 것이 우리가 시간이 없는 것은 말을 너무 많이 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전 10시에서 12시까지 수녀님의 강론을 듣고, 그 다음은 들은 강론에 대해 묵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누구의 구속도 받지 않는 자유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토요일에 자기의 느낀 점들을 이야기 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하루이틀은 정말 꿈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인간관계 때문에 할 수 없이 해야 하는 많은 말들에서 놓여날 수 있었고, 식사준비의 부담도 없고, 잠 오면 자고, 산책하고, 성경 읽고, 시집 읽고…….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였습니다.
말은 얼마든지 하지 않고 지낼 수 있는데 일중독 증세가 있는 저로서는 할 일이 없다는 게 힘들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한 권만 가지고 간 것을 얼마나 후회했는지요.

숙소 뒷쪽에는 작은 자갈들이 깔려 있는 정원이 있었습니다.
다섯 개의 돌을 주어 와서 방에서 혼자 공기놀이를 했습니다.
그림을 한 번 상상해 보세요.
부대끼며 사는 것, 일이 있는 것, 읽을 책이 많이 있는 것, 가족을 위해 끼니를 준비해야 하는 것, 말을 할 수 있는 것 …….

욕심내지는 않더라도 작게나마 그런 것들이 범인들에게는 행복이라는 것이라는 그런 깨달음이 ……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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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0-03-19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범사에 행복하라"라는 말이 생각나는군요. 전 그 작은 행복들을 잘 알고 있어요. 예전에 그런 내용으로 '작은 행복'이란 수필도 썼어요. 요즘 제가 느끼는 행복은 제 방에 쌓여 있는 책들을 쳐다보기만 해도 행복하고, 식구들을 일터로, 배움터로 다 보낸 뒤에 청하는 아침잠의 달콤함에 행복하고, 자고 일어나 밥을 먹고 머그잔에 커피를 타서 그것을 들고 신문을 펼칠 때 행복해요.

그런데 어떤 날은 살기가 귀찮을 때가 있어요. 이거 갱년기인가요? 외출이 귀찮고 이불 속에서 나오기 싫은...

그런 날도 가장 좋은 건, 커피 마시며 내가 읽고 싶은 책을 펼칠 때입니다. ㅋ

gimssim 2010-03-19 14:03   좋아요 0 | URL
귀찮을 땐 귀찮은 대로 그냥 두는 거지요.
장수의 비결.
몸이 하는 말을 들어라! 너무 듣다 게으름뱅이 되면 곤란하겠기만...
방법은 있어요.
게으름뱅이 되기 전에 이번엔 마음의 말을 듣는 거죠.
'몸의 말은 마음이 듣고 마음의 말은 몸이 듣는다'... 중전 어록

순오기 2010-03-19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공깃돌이 너무 고운데요. 매끄럽고... 묵언수행, 침묵수행 그런게 힘들지요.
저도 교회에서 중고등 학생들과 수련회 가면 항상 침묵수행이 있었어요.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주머니는 열라고 하더군요.^^

gimssim 2010-03-19 23:54   좋아요 0 | URL
나이들수록 입은 닫으라는말슴 맞는 것 같아요.
어느 모임에서든 연장자라고 말씀들을 많이 하는 것...별로 아름다와 보이지 않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