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을 일구기 전 억새밭

돌을 골라내고 있는 초보농부의 아내

완성된 밭

밭에서 바라본 석양

"비료 한 포 주세요!"

어제 오전, 서울에서 내려 온 친구 만나러 잠시 외출한 사이, 남편은 오후에 약속이 있어서 그 전에 일을 좀 해야겠다고 그러더군요.
한 이십일 전부터 남편은 큰길 건너 개울가에 작은 밭을 만들고 있어요. 장래희망이 농부라니 전들 어쩌겠어요. 연습장 삼아 연습이라도 해 보라고 두었지요. 근데 그게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어요.
저도 보름 가까이 호미로 땅을 파로 돌을 골라내느라 피곤했던지 자고나면 손발과 얼굴이 퉁퉁 부었어요.
우리가 동분서주하니까 교인이나 이웃인들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어요. 산에 가서 흙을 파다가 경운기로 실어 날라다 주었어요.
저는 저대로 동네에 퇴비를 구하러 다니고, 평소에 커피도 뽑아드리고 교회에서 국수를 삶으면 갖다드리고 해서 얼굴을 읽혀둔 회 파는 아주머니께 생선찌꺼기도 얻어 와서 호박 심을 구덩이에 갖다 넣기도 했지요.
억새를 다 베고, 뿌리를 뽑아내고, 큰 돌들을 골라내고 흙을 여섯 경운기나 갖다 부었더니 이젠 제법 밭모양이 되어갔어요.
지난 장날에는 대추 한그루, 매실 두 그루를 사서 심었겠지요.
그리고 교인들이 준 두룹 두 그루, 복분자 네 그루, 엄나무 한 그루를 밭가에 심었어요.
오전에 소를 키우는 교인의 축사에 가서 거름을 내와야 한다더군요.
그러면 미래의 농부는 열심히 농사 준비하고, 미래의 농부 아내는 잠시 외출하여 친구랑 좀 놀다오겠다고 집을 나섰지요.
친구 만나서 점심도 먹고, 사진도 찍고, 호수 주변을 산책도 하고,
봄날 속에서 그 봄을 느긋하게 즐기고 돌아왔어요.
“거름은 얼마나 갖고 왔어?”
“세 수레 갖다가 밭에 섞어놓았지.”
“잘 했네. 손수레 운전은 할 수 있었어?”
바퀴가 하나 달린 손수레는 초보자로서는 만만치가 않을 것 같아서 제가 물어보았어요.
근데 문제는 손수레가 아니었어요. 비료를 사야겠다 싶어서 이웃에 물어보았다는 거예요.
그랬더니 ‘농협’에 가면 살수 있다고 했대요.
집에 마누라가 있었으면 “여보, 비료” 했으면 끝났을 텐데, 하고 싶은 일을 걸쳐놓고 있지 못하는 성격이라 비료까지 사서 밭에 뿌리고 싶었나 봐요.
비료 사러 농협에 갔다는 거 아닙니까.
우리 동네에는 세 가지 농협이 있어요.
<농협은행> <농협마트> <농협주유소>
근데 은행 창구에 가서
너무나 공손하게 - 이건 남편의 표현이에요 -
“비료 한 포 주세요.”
이랬다네요.
웃음을 어금니로 누르며 물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
“은행에서는 비료 안 판대.”
자존심 상할까봐 목마른 척 얼른 주방으로 들어가서 냉장고 문을 열고 한참 얼굴을 식혔어요.
그래도 비료는 사서 밭에 뿌렸답니다. 그만한 일에 기 죽으면 장래희망인 농부의 꿈을 접어야겠지요. 농협주유소에서 샀다네요. 주유소 옆에 농협 창고가 있거든요.
그래도 기 죽을까봐 남편에게 한 마디

"사람들이 말이야, 가르쳐 주려면 제대로 가르쳐 줘야지 그냥 농협이 뭐야?" 



첫추수

 ***이렇게 지난 해 봄, 남편은 한 해 농사를 지었습니다.  현실에 좀 고전하고 있는 탓인지 매일매일 시골로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릅니다. 아내인 저는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귀농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닐 듯 합니다. 현실을 피해서 가다니요. 대안으로 생활근거지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쯤 거리에 두해 전 사논 땅 360평에 텃밭이라도 가꿀 수 있도록 다섯 평 가량 조립식 집을 지을까 합니다. 그것도 돈과 별로 친하지 않는 직업이라 우리 내외가 쓰고 서울에서 사립대학 다니는 아들의 학비 대기도 허리가 휩니다. 그러나 그림은 그려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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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0-01-23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땅 일구느라 고생하셨을텐데, 은행창구에서 비료 한포 주세요에 한참을 웃었습니다. (죄송해요.) 도시에서 사시다가 귀농하셨다면 모든게 낯설고 힘드실테지만, 그래도 아래의 고구마 수확 사진을 보니 잘 이겨내고 계신 것 같네요. 남편분의 농부의 꿈도 중전님의 또다른 꿈도 모두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gimssim 2010-01-23 20:49   좋아요 0 | URL
저흰 아직 귀농이 아니고 면 단위의 시골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지요. 귀농은 십여 년 쯤 위에 은퇴한 후의 일인데 남편이 자신의 자리에서 고전하고 있다보니 현실에서 좀 도망가고 싶은 모양입니다.
저는 농사하고는 안친합니다. 남편이 외출하면서 고추 좀 따라고 하면 고추만 따옵니다. 그 옆에 토마토 익은 것은 눈에 안들어 와요. 냠편이 돌아와서 "토마토는?" 묻습니다. 전 스트레스 받지요. "고추 따라며?" 손발 안맞는 도둑질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