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 없음 - 격동의 세계를 이해하는 세 가지 프레임
헬렌 톰슨 지음, 김승진 옮김 / 윌북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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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거대한 교란


"지정학의 역사에서 핵심은 에너지다. 석유와 가스에 대해 말하자면, 미국은 1960년대 이래 어느 시기보다도 높은 에너지 자립 역량을 확보했고 금융 분야에서 가진 극단적인 강점이 이 권력을 한층 더 보완하고 있다. 되살아난 미국의 에너지 우위는 중동에서 지정학적 혼란을 일으키는 주요인이 되었다. 또한 이는 중국의 해외 석유 의존이 석유 시장에서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되게 했고, 러시아는 유럽의 가스 시장에서 심각한 경쟁 상대[미국]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미-러 경쟁 관계는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냉전 종식 이후에 생겨난 단층선들, 그리고 튀르키예를 둘러싸고 더 오래전부터 있었던 단층선들을 압박했다. 여기에 더해, 중국이 세계 최대 탄소 배출국인 동시에 재생에너지 발전 및 그에 필요한 금속 생산에서 막대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은, 녹색에너지가 화석연료에너지가 일으킨 지정학적 불안정과 동시적으로 작용하는 또 하나의 지정학적 불안정의 원천이 되었음을 의미한다."(21-2)


"경제의 역사는 화폐와 금융,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에너지의 요동에 대한 이야기다. 미국, EU, 중국의 정책 대응은 세계 경제를 다시 한번 재구성했다. 모든 곳에서 막대하게 쌓인 부채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음을 기정사실로 못박았다. 연준은 부채 조달 비용이 지극히 낮은 신용 환경을 주도적으로 만들었고 다른 나라의 큰 은행들에 최종대부자 역할을 했다. 유로존 위기는 EU와 유로존 사이의 관계를 뒤흔들었고 영국의 EU 잔류 여부를 불투명하게 만들었다. 뒤이은 유럽중앙은행의 역할 변화 시도는 유로존을 정치적 림보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만들었다. 2010년대의 10년이 지나면서 세계 경제에, 특히 유럽에 중국의 중요성이 커졌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 연준의 새로운 권력에 제약을 받으며, 하이테크 제조 분야에서 독보적인 초강대국이 되려는 시진핑의 목표에 대한 미국의 견제로도 제약을 받는다. 이렇듯 경합하는 다중의 압력하에서, 세계 경제는 더 첨예한 지정학적 갈등의 장이 되었다."(22-3)


"민주정치의 역사에서 유럽과 북미의 대의제 민주정은 사람들이 공동의 정치적 삶을 꾸려가기에 안정적이고 우월한 구조로 여겨져왔다. 하지만 모든 정부 형태가 그렇듯 대의제 민주정도 시간이 가면서 그것이 생겨났을 당시의 지정학적·경제적 조건이 달라지면 불균형 상태로 떨어질 수 있다. 또한 역사적으로 대의제 민주정은 국가공동체주의[또는 민족주의]에 의존했는데, 국가공동체주의는 대의제 민주정의 작동에 꼭 필요하지만 불안정의 원천으로 작용할 소지도 그만큼 크다. 이러한 취약성은 대의제 민주정 정치체들이 생겨났을 때부터 존재했고, 종종 (1930년대 대공황 같은) 부채로 인한 경제 위기 때 등장했다. 1990년대부터 모든 곳에서 민주정 국가의 정치는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이 지금보다 늘도록 경제를 개혁하라는 대중의 민주적 요구에 점점 더 반응하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민주정은 자신 안에 존재하는 금권귀족정plutocracy의 경향성이 커지는 데 취약해졌고 개혁은 더 어려워졌다."(23-4) 


| 1부 | 지정학

1장 석유 시대의 시작


"국내에 석유 매장고가 없는 유럽의 큰 국가들은 에너지 자립에 실패한 것이 유럽의 유라시아 지배가 종말을 고하는 데 결정적이었다고 여겼다. 석유의 시대는 유럽이 세계 패권국이 되거나 대륙을 아우르는 제국적 권력이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터였다. 1970년대부터 미국은 독일이 러시아 석유와 가스에 의존하는 것을 마지못해 용인했다. 대안을 제시하기에는 미국 국내에서도 충분한 공급량이 없고 중동에서 충분한 공급량을 확보할 수단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0년대에 미국과 러시아 모두에서 석유와 가스가 재부상하면서, 독일과 러시아의 연결은 우크라이나의 독립, NATO의 확대, 독일의 취약한 군사력 등과 연결되는 중대한 지정학적 단층선이 되었다. 그리고 러시아-중국-이란의 관계는 이 이슈들의 영향을 한층 더 다루기 어렵게 만들었다. 2015년 이란 핵 합의에 참여한 NATO의 유럽 회원국 세 곳 모두가 이란에서 가스를 공급받는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52)


"미국이 유럽의 에너지 의존도와 관련된 지정학에 오늘날과 같이 관여하게 된 기원은 2차 대전 이후에 벌어진 일들에서 찾을 수 있다. 20세기 중반인 이때 유라시아에서 미국이 지정학적 권력을 행사하는 데는 명심해야 할 커다란 경고등이 하나 있었다. 그전에 유럽에서 벌어진 전쟁에서의 승리가 소련과의 군사적 동맹에 달려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나중에는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하긴 하지만, 그전까지는 유라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두 대륙 강국이 동맹을 맺고 유럽과 중동을 나눠먹으려 할 위험도 충분히 있을 법한 시나리오였다. 석유는 독일 시장을 러시아 자원과 연결함으로써 이러한 지정학적 논리를 한층 더 강화할 가능성이 있었다. 히틀러는 영토 정복과 제노사이드라는 불가능하고 끔찍한 비전 때문에 그 가능성을 깨뜨렸다. 하지만 전후 세계에서 독일과 소련 사이에 어떤 연합 관계라도 다시 생겨나는 것을 막으려면, 미국은 서독이 페르시아만의 석유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책임지고 보장해야 할 터였다."(52-4)


2장 석유를 보장할 수 없다


"전후 유라시아에 대한 미국의 구상에는 근본적인 단층선이 하나 지나가고 있었다. 미국이 중동을 냉전의 장소로 생각하긴 했지만, 트루먼부터 존슨까지 미국 대통령들은 미군을 중동에 주둔시키거나 페르시아만에 미 해군을 진지하게 개입시킬 생각이 없었다. 미국이 너무 많은 군사적 부담을 지는 것이 국내적으로 인기가 없을 것이 우려되었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영국이 중동에서 제국적 통치를 유지해줄 필요가 있었다. 냉전 초기 몇 년간 소련과의 전쟁 가능성에 대한 미국의 대비책에는 이집트에 기지를 둔 영국군이 공습을 해주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이 목적에서, 트루먼은 영국이 수에즈에 짓는 아부 수위르 공군기지 건설을 재정적으로 지원했다. 훗날 나세르가 소련 쪽으로 기울었을 때, 아이젠하워는 영국이 이란, 이라크, 파키스탄, 튀르키예와 반소련 군사동맹을 맺도록 뒤에서 독려 했을 뿐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질 것을 우려해] 그 동맹(바그다드 협약)에 참여하는 것은 고려하지 않았다."(65-6)


"튀르키예도 미국의 1950년대 유라시아 구상에 불편한 문제를 제기했고 이 문제 역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스탈린이 1946년에 다르다넬스해협의 공동 관할권을 요구하면서 튀르키예에 최후통첩으로 압박을 가하자 트루먼은 미 군함을 지중해로 들여보내고 공습을 승인했다. 명분이 무엇이든간에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에너지였다. 트루먼이 의회에 그리스와 튀르키예에 대한 자금 지원 승인을 요청한 바로 그날 미국의 4대 석유회사들이 아람코에 공동 참여하기로 결정한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하지만 냉전이 중동으로 확대되자 튀르키예가 NATO 회원국이 아니라는 사실이 서유럽에 초점을 두고 만들어진 안보동맹의 한계를 드러냈다. 1952년에 트루먼 행정부는 튀르키예와 그리스가 NATO에 들어오게 함으로써 이 모순을 해소했다. 하지만 이는 NATO에 첨예한 내부 분열을 일으켰다. 몇몇 유럽 쪽 회원국이 서유럽 안보와 중동 안보 사이에 명확하게 선을 긋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66-7)


"미국이 중동에 군사적으로 들어와 있지 않다고 해서 중동에서 강압적 위력을 행사하지 않고자 한다는 의미는 아니었고 그럴 수도 없었다. 따라서, 다른 나라들에 대해 은밀한 작전을 펴기 위해(또한 여차하면 관여하지 않았다고 부인할 수도 있게) 트루먼이 세운 CIA가 중동에서 매우 활발하게 활동했다. 새 이란 총리 모함마드 모사데그가 1951년에 앵글로-이란 오일컴퍼니를 국유화하고 양허를 종료하자 영국은 페르시아만에서 이란의 석유 수출을 봉쇄했다. 트루먼은 중재를 시도했지만, 1953년에 취임한 아이젠하워는 영국의 설득으로 CIA가 영국 정보기관과 함께 모사데그 축출 작전을 펴게 했다. 단기적으로 이러한 개입은 이란의 석유 분야 재건을 돕기 위해 미국 회사들이 이란 국영회사가 꾸리는 새로운 컨소시엄에 들어가도록 미국 정부가 미국 기업들을 압박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장기적으로 미국의 개입은 미국-이란 관계를 극도로 악화시켰고 중동이 미국에 더욱 큰 군사전략적 부담이 되게 했다."(67)


"처음부터 중동에 대한 새로운 접근에는 문제가 가득했다. 미국과 유럽의 거대 석유회사들이 중동 지역에 있다는 것 자체가 점점 더 정치적으로 맹렬한 갈등의 소지가 되었다. 수에즈 이후 10여 년 뒤, 미국이 표방한 서유럽의 석유 보장은 일관성이 없었고 부분적으로는 서유럽이 원한 바도 아니었다. 미국 대통령들은 중동에서 충분히 장기적으로 군사력을 사용할 수도, 서유럽 국가들이 소련 석유를 들여오는 것을 막기 위해 역외 제재를 가하거나 금융으로 위협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서유럽이 [소련 석유 대신] 페르시아만 석유를 수입하게 할 수 있으리라는 미국의 기대는 궁극적으로 영국이 중동에 주둔하는 데 달려 있었는데, 영국이 발을 빼기로 했을 때 미국은 이를 막지 못했다. 게다가 이라크가 1968년 이후 소련 쪽으로 기울면서 중동에서 소련의 영향력이 커졌다. 또 이제는 이란에 너무나 많이 의존하게 되었는데, 이란의 야망은 이라크가 소련에 군사 원조를 요청하게 할 인센티브만 만들었을 뿐이었다."(76-8)


"데탕트[1970년대 동서간 긴장 완화]는 베트남 전쟁이 일으킨 문제에 대한 대응이었지만, 에너지와 관련된 이유도 있었다. 1970년대 말이면 미국의 에너지 권력은 사그라드는 반면 소련의 에너지 권력은 떠오르고 있었다. 미국의 원유 생산은 1970년에 정점을 치고 감소하고 있었다. 2018년까지 미국은 1970년 수준의 생산량에 다시 도달하지 못한다. 국내 수요 이상을 생산할 역량이 없었으므로 미국 생산자들은 이론상으로라도 서구에 석유의 최종공급자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아니, 미국 자체도 석유를 수입해야 했다. 따라서 미국은 NATO 회원국들이 석유를 페르시아만에서 공급받게 하는 데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었다. 장기적으로는 소련의 석유 수출보다 소련의 가스 수출이 지정학에 더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중 하나로, 소련의 가스 수출은 핵발전이 크게 제약될 세계에서 녹색 운동이 서독의 정치에 비중 있게 부상하던 시기에 소련-독일 간 우호 관계의 물적 기반이 될 경제적 토대를 제공했다."(80)


3장 유라시아, 재구성되다


"소련 붕괴는 독립 국가 우크라이나가 생겨나게 한 데 더해 흑해와 카스피해 일대 및 이 두 바다 사이에 있는 캅카스 지역에 1차 대전 이후 정착된 질서도 뒤흔들었다. 이 변화는 소련 말기에 카스피해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격화되었다. 1990년대의 나머지 기간 동안 클린턴 행정부는 아제르바이잔의 석유를 운송하는 파이프라인이 러시아나 이란을 통과하지 않게 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바쿠에서 조지아를 거쳐 튀르키예의 항구 도시 제이한으로 이어지는, 공사 비용이 많이 드는 파이프라인을 지원했다. 조지아에서는 많은 이들이 이를 NATO와 EU에 가입할 기회라고 보았고, 2003년 ‘장미 혁명’을 통해 친서구 정부가 들어섰다. 튀르키예로서는 새로 지어진, 그리고 새로 제안된 수송관이 필수 에너지원에 대해 〈수송의 요충지〉가 될 수 있는 기회였다. 되살아난 튀르키예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동유럽을 둘러싸고 NATO와 EU 사이에 발생한 긴장을 한층 더 악화시켰다."(102-3)


"1997년 러시아와 튀르키예 정부는 흑해 해저에 블루스트림 파이프라인을 짓기로 합의했다. 2003년에 개통된 블루스트림은 러시아가 튀르키예로 수출을 늘리고 유럽으로 가는 가스 일부를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를 통하지 않고 유럽 시장에 보낼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이 파이프라인은 유럽에 더 많은 분열의 씨를 뿌렸다. 튀르키예는 수입 석유와 가스에 매우 의존해왔고 여전히 그렇다. 하지만 아제르바이잔에서 새로운 석유와 가스가 발견되면서, 카스피해와 중동을 남유럽 소비자와 연결하는 에너지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이러한 석유와 가스 수송 네트워크는 과거 오스만 제국에 속했던 곳들을 연결하게 될 터였다. 이제까지 튀르키예는 에너지가 풍부한 중동과 카스피해의 캅카스 모두에서 배제되어 있었다. 하지만 향후 30년간 유라시아의 이러한 에너지 지리학은 튀르키예가 NATO 회원국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협력하고자 하게 만들 동기 또한 상당히 많이 만들어내게 된다."(105-6)


"이라크 전쟁의 여파로 석유와 가스 수출의 재정 수입이 늘면서 푸틴은 러시아가 1990년대에 IMF에서 빌린 돈을 갚을 수 있었고, 이로써 미국이 부채를 통해 러시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역량이 사라졌다. 이라크 전쟁은 러시아-중국 간에 떠오르던 이 에너지 협력 관계를 한층 더 활성화했고 중국이 지정학 전략을 다시 짜도록 자극했다. 중국 지도자들에게 미국의 행동은 미래에 석유 공급이 불길하리라고 말해주는 확실한 전조로 보였다. 미국이 에너지 안보를 위해 군사력을 진지하게 사용할 의지가 있다는 사실은 중국도 자신의 해외 공급원을 방어하기 위해 군사 역량을 강화해야 할 이유가 되는 듯했다. 2003년 11월 중국 주석 후진타오는 중국이 ‘믈라카 딜레마Malacca Dilemma’를 겪고 있다고 언급했다. 공동 수역에서 항행의 유지를 실질적으로 담당하는 해상 강국인 미국이 믈라카 해협을 통해 중국으로 들어오는 석유를 차단할 수 있다는 데서 오는 중국의 취약성을 말한다."(110-1)


"오바마의 임기가 끝나가던 시기에 미·중 관계에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잡아당기는 구조적 역학이 있었다. 한편에서 미국은 태평양에서 억지 전략을 펴는 쪽으로 나가고 있었고 중국은 유라시아의 상당 지역을 경제적 세력권에 넣어서 믈라카 딜레마를 해결하려 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제 기후가 미·중이 협력해야 할 문제가 되었다. 기후변화가 미·중 데탕트의 논리를 만들었다면, 그와 동시에 일대일로는 탄소집약적인 대규모 프로젝트들을 포함하고 있었고 중국-러시아의 석유 관계에 가스까지 보탰다. 2016년 대선에서 〈중국에 맞서자〉 후보(트럼프)가 〈러시아에 맞서자〉 후보(힐러리 클린턴)보다 지정학 이슈를 더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과의 협력이 즉각적으로 일으킨 정치적 문제를 반영한 면이 있었다. 관세 압박을 가해 미·중 교역 관계를 재구성한다는 내용 자체에 대한 비판은 거의 없었다. 또한 결정적으로, 테크놀로지 경쟁이 국가안보의 문제라고 보는 데서도 이견이 거의 없었다."(119-20)


"2014년 ISIS가 이라크와 시리아 영토 상당 부분을 점령하고 이라크 정부가 붕괴하면서, 오바마는 이라크와 시리아에 미군을 파병했다. 이 새로운 중동 전쟁은 미국이 유라시아에서 군사 행동을 하려는 의지가 별로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이번에도 미국의 국내 정치가 미국 대통령의 운신을 제약했다. 의회가 승인하지 않을 것을 우려해서 2014년에 오바마는 시리아 ‘공습’에 대해서는 의회에 동의안 제출을 시도하지 않았고 시리아 반군에 물류 지원을 강화하는 것에만 의회에 동의를 구했다. 또한 시리아에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미국의 군사 행동을 약간의 항공 작전과 특수군 활동으로만 한정했으니 지상에서 벌어지는 실제 전투는 현지의 반군 세력을 찾아내 맡겨야 했고, 미국은 쿠르드인민방위군(이하 ‘YPG’)을 선택했다. 이 막다른 전술은 곧바로 튀르키예 정부와 해결 불가능한 갈등을 일으켰다. 튀르키예는 YPG를 테러 집단으로 규정하고 있었다."(126-7)


"이란 문제와 관련해서, 오바마는 이란의 핵 야심을 꺾기 위한 미국의 위력 과시가 관계 재설정의 조건이 되어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오바마가 미국의 에너지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여지에는 한계가 있었다. 2015년의 핵 합의가 일시적으로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제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란이 중동에서 벌이는 지역적 활동에 대해서는 이 합의가 제재하는 바가 없었다.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단지 지연만 시킬 수 있을 뿐이고 이란이 시리아에서의 군사 행동도, 헤즈볼라와 하마스 지원도 계속할 수 있다는 현실은 미국 의회에 첨예한 동요를 일으켰다.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이 조약을 비준할 리 만무했으므로 오바마는 입법부의 동의가 필요 없는 행정부 간의 협정으로 틀을 바꾸었고, 따라서 미래의 어떤 대통령이든 [역시 의회의 동의 없이] 그것을 다시 되돌릴 수 있게 되었다. 당내 경선에 나선 공화당의 주요 후보 모두가 반대했으므로, 이란 핵 합의는 민주당이 대선에서 지면 존속될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128-9)


"미국이 석유 수입을 완전히 멈춘다 해도(가까운 시일 내에 일어나지도 않겠지만) 미국의 에너지 자립은 환상이다. 셰일오일을 처리할 미국 내 정제 시설 용량 때문에 셰일오일 생산량이 제약되기 때문이다. OPEC 플러스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은 유가가 너무 오르면 미국 소비자에게, 유가가 너무 내리면 미국 생산자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실제로, 중국이 미국 대신 세계 최대 석유 수입국이 된, 셰일이 구성한 에너지 세계는 역설적으로 카터 독트린의 군사전략적 논리를 강화한다. 중국이 페르시아만에 해군을 영구 주둔시키고 있지는 않지만 중국 지도부는 이란을 매우 중요한 지정학적 국가로 취급한다. 미·중 간의 지정학적 경쟁 관계가 격화되고 있으므로 어떤 미국 대통령에게라도 중국이 그곳에서 지배적인 해군 주둔국이 되게 내버려두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렇다고 중국으로 가는 석유 수입을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페르시아만에 미국이 계속 주둔한다면, 국내 정치에서 반대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131-2)


| 2부 | 경제

4장 우리의 통화, 당신네 문제


"브레턴우즈 종말 이후의 통화 세계에서 유로달러 시장과 석유가 미국 금융 권력의 기초가 되었다. 유로달러 시스템은 달러의 국제적 위상을 국내적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유지하기가 더 쉬워지게 해주었다. 역외 달러 시장 덕분에 달러가 은행 거래와 신용 거래의 주요 통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73년 오일 쇼크는 유로달러 시장을 한층 더 활성화했다. 또한 아랍 산유국들이 버는 달러 수입이 다시 미국으로 흘러와 재유통되는 메커니즘도 생겨났다. 닉슨의 재무부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로 번 달러를 [미국이 아니라] 유럽 국가들에 빌려주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1974년에 사우디가 미 국채를 사주도록 합의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보면, OPEC 국가의 국영 기업들이 중동에서 활동하던 미국과 유럽 기업들의 점유율을 가져가던 1970년대에, 미국의 중동 에너지 안보에서 사우디의 효용성이 높아진 것과 사우디가 미국이 석유를 달러로 수입할 수 있게 해준 것은 한 세트였다."(154-5)


"1970년대의 경제를 ‘하나의 이데올로기[신자유주의]가 부상해서’라고만 설명한다면 그 10년간 위기의 기저에서 정치인이나 중앙은행장의 성향과 상관없이 구조적으로 펼쳐지던 물적 요인의 중요성을 절하하는 것이다. 특히 에너지는 1970년대에 국가가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논쟁에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유럽과 미국 모두에서 정치인들이 자본 이동 규제를 없애려는 강한 동기가 있었던 이유는 치러야 할 석유 수입 대금이 늘어서 달러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신자유주의의 대표적인 주창자로 꼽히는 프리드먼도 에너지 문제에 집착했고 연방정부의 유가 통제와 사실상의 석유 배급이 에너지 부족의 전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인플레란 늘 화폐적 현상이고 에너지 충격에 영향받지 않는다는 그의 학문적 논지는, 정치적 의미로 보자면 석유의 공급 부족을 없애려면 유가가 올라야 한다는 믿음의 쌍둥이 논지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156-7)


"1971년 초 무렵이면 도이체마르크는 달러 대비 막대한 절상 압력을 받고 있었다. 독일 기업들이 국내의 일반 금리보다 금리가 낮은 유로달러 시장에서 달러를 굉장히 많이 빌린 뒤에 그것을 도이체마르크로 되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1972년에 EC는 스네이크 체제Snake in the Tunnel라는 공동 환율 제도를 채택했다[브레턴우즈 체제 붕괴 이후 유럽 역내의 통화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체결된 환율 시스템. 유럽 역내 통화 사이에서의 환율은 2.25퍼센트의 변동 폭 내에서 움직이도록 하고, 역외 통화에 대해서는 변동환율을 허용했다]. 이 체제는 역내 통화들의 환율이 브레턴우즈에서보다 좁은 변동 폭에서 움직이도록 되어 있었고, 이들 사이의 변동 폭은 달러에 대한 개별 통화의 변동폭보다 낮았다. 하지만 스네이크 체제는 EC 국가들의 통화를 서로에 대해 안정시키려면 통화가 취약한 국가들이 국내 정치적으로 도저히 고려할 수 없는 정책을 그 국가들에 강제해야 한다는 것을 이미 보여주고 있었다."(158-60)


"단기적으로 달러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지만, 중기적으로 달러가 유럽 국가들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려면 독일과 프랑스가 계속해서 〈두 개의 다른 통화 지역〉에 있어서는 안 되었다. 슈미트는 환율조정장치Exchange Rate Mechanism(이하 ‘ERM’)를 중심으로 하는 유럽통화제도European Monetary System(이하 ‘EMS’)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리고 다소 까다로운 상대이긴 했지만 프랑스 대통령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이 함께 이 일을 추진해줄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새로운 유럽 고정환율 시스템에서 모든 당사국은 인위적으로 만든 새 화폐 단위인 유럽통화단위European Currency Unit(이하 ‘ECU’)[EC의 통화 단위. 1979년에 도입되었고 1999년 1월 1일 유로화로 대체되었다]에 자국 화폐를 고정함으로써 유럽통화제도가 수반하는 통화들 사이의 권력 위계를 가리려 했다. 금융 역사학자 찰스 킨들버거는 ECU를 “독일 마르크화에 프랑스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묘사했다."(161)


5장 ‘메이드 인 차이나’는 달러가 필요하다


"2000~2007년, 연평균 성장률이 최고 14퍼센트에 달하기도 했던 중국의 경이로운 경제 성장은 세계 경제에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중국 정부는 달러 대비 인민폐 환율을 수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으로 유지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면서 수출 주도 전략을 폈다. 중국이 2001년에 WTO에 들어오게 하기 위한 사전 조치로 2000년에 미국이 중국과 영구적인 무역 정상화를 하기로 하면서 여기에 더욱 속도가 붙었다. 이 새로운 무역 세계에서 중국의 수출품은 주로 제조품이었다. 따라서 미국과 상당수 유럽 국가들이 막대한 대對중국 무역 적자를 보게 되었다. 미국의 대對중국 상품수지 적자는 1999~2008년 사이에 거의 네 배가 되었다. 중국 제조품 수출의 급증은 북미와 서유럽의 노동시장에, 특히 미국 노동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충격의 규모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중국의 수출이 집중된 분야에서 상당히 충격이 컸으며 자국내 공급망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데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182-3)


"표면상으로 보면 워싱턴에서의 정치적 대치는 후버 행정부 때부터 레이건 행정부 때까지 의회에 존재했던 보호주의적 압력의 재탕 같았다. 하지만 몇몇 미국 기업은 초국적 생산과 중국의 커다란 공급망으로부터 막대한 이득을 얻고 있었다. 미국의 테크 분야와 전자제품 제조 분야는 제품을 중국에서 조립하는 데서 막대한 이득을 보았고 월마트 등 값싼 중국제 수입품을 판매하는 거대 할인 유통매장도 그랬다. 2004년부터는 애플의 거의 모든 제품이 해외에서 제조되었고 대부분은 중국에서였다. 이렇게 이득이 선택적으로 존재했다는 점은 〈중국에 맞서자〉는 레토릭에 대한 공감을 감소시켰다. 아이팟을 중국에서 제조하는 것이 미국의 무역 적자를 심화시킬 수는 있겠지만 제품의 부가가치 대부분은 여전히 미국이 얻고 있었다. 하지만 이 상황은 미국의 정치에서 계급 갈등을 촉발했다. 이득을 얻는 쪽은 주주들이거나 높은 보수를 받는 경영자들이었고 손해를 보는 쪽은 공장 노동자들이었다."(184-5)


"어떤 이들은 21세기 초 미국의 통화 이득과 중국의 무역 이득을 보면서 앞으로 꽤 한동안 금리가 내내 낮게 유지될, 사실상 새로운 국제 통화 질서가 만들어졌다고 여겼다. 이 질서가 브레턴우즈의 반쯤 부활한 버전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었다. 경제사학자 니얼 퍼거슨과 모리츠 슐리크는 이 경제 세계를 〈차이메리카Chimerica〉라고 불렀다. 하지만 실제로는 단기적인 불안정성이 상당히 존재했고, 곧 이 불안정성은 세계 경제 전체로 파급 효과를 일으키게 된다. 무엇보다, 석유는 중국의 경제 성장이 무해하기만 한 신용 환경을 창출하고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게 만들었다. 사실 2000년대 중반부터 중국의 석유 수요와 점점 심해지는 공급 부족이 통화 부문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다. 통화 부문에서의 파장은 연준이 유가 상승이 추동하는 인플레를 우려해 통화를 조이기 시작한 2004년 6월에 처음 드러났다. 연준의 고위 정책결정가들에게 고유가의 귀환은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191-2)


"사실 2007~2008년 붕괴는 여러 개의, 다중 붕괴였다. 첫 번째 붕괴는 미국의 주택 시장 붕괴였다. 두 번째 붕괴는 미국에서는 2007년 4분기에, 유로존과 영국에서는 2008년 2분기에 시작된 경제 불황이었다. 이 불황은 유가 충격, 그리고 이에 대한 중앙은행들의 정책 대응으로 일어났다. 세 번째 붕괴는 2007년 8월 9일에 레포 시장에서 시작된 은행 붕괴였다. 은행 간 거래 시장에서 모든 은행의 자금 조달 비용이 급등했다. 연준은 통화 정책 대신 유럽중앙은행, 영란은행, 스위스 중앙은행에 달러 스와프를 제공하는 쪽으로 정책 수단을 변경했다. 그 중앙은행들을 통해 달러가 유로달러 신용 시장의 유럽 은행들에 들어가도록 한 것이다. 연준이 달러 자금 조달 시장을 안정시키려 하는 동안, 은행 위기는 석유가 일으킨 불황과 결합했다. 북아메리카, 유럽, 몇몇 아시아 국가에서 산출과 고용이 더 떨어졌다. 세계 전역에서 소비 수요가 너무 떨어져서 국제 교역이 빠르게 위축되었고 중국의 수출 분야가 타격을 입었다."(194-8)


6장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2007~2008년의 금융 붕괴 당시가 제대로 기능하는 신용 환경이었다면 연준이 매우 완화적인 통화 정책을 폈을 때 신용 시장이 되살아나고 실물 경제가 다시 성장 경로에 올라갔어야 한다. 하지만 유로달러 시장 때문에 금융 시스템의 작동 방식이 매우 꼬여 있었다. 금리 인하만으로는 은행들의 자금 조달 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충분하지 않았으므로, 연준은 유로달러 시장에서 최종대부자 역할을 해야 했다. 연준의 조치는 주요 유럽 은행들의 파산을 막았지만, 동시에 지정학적 함의가 있는 금융·통화 위계를 만들었다. 2008년 이후의 통화 세계에서 연준은 어떤 나라의 은행이 빌리는 달러를 연준이 지원할 것인지를 정할 수 있었다. 총계적 수준에서 국제 신용 환경은 위축되었다. 그런데 이 위축은 주로 유럽에서, 특히 영국의 은행들에서 일어난 것이었고, 중국을 비롯한 신흥시장에서는 국경을 넘는 신용 흐름이 증가했다. 그 결과 2008년 이후 중국 경제는 달러 신용 환경에 훨씬 더 크게 영향을 받게 되었다."(205-6)


"양적완화는 체계적으로 파괴적인 결과를 낳았다. 그중 일부는 자산 가격 인플레와 관련이 있었다. 연준의 조치는 채권수익률을 끌어내리면서 불가피하게 자산 가격을 밀어올렸다. 이는 은행들의 대차대조표가 건전해 보이게 했고 따라서 은행들은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었으며, 그러는 동안 은행들이 빌리는 돈에 대해 금리는 계속 제로 수준으로 유지되었다. 연준의 정책은 자산 가격 상승과 값싼 신용을 동시에 일으키면서, 기업들이 빌린 돈을 생산적인 역량에 투자하기보다 자사주를 매입하는 데 쓰고자 할 유인을 강화했다. 또한 자사주 매입의 급증은 미국의 많은 거대 기업들이 고위험 금융 행동에 나서도록 부추기기도 했다. 따라서 팬데믹이 강타했을 때 기업들의 현금 보유는 매우 낮은 상태였다. 더 일반적인 면에서, 상승하는 자산 가격은 당연하게도 이미 자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유리했다. 그런데 나이 든 사람들이 자산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많으므로, 양적완화는 세대 간 부의 불평등을 증가시켰다."(207)


"유로존의 통화 취약국들은 더 심각한 구조적 동학에 처했다. 우선 스프레드를 관리하려면 금융 시장에서 자국의 신뢰도를 방어해야 하는데, 국채 시장에서 압력을 줄여줄 목적으로 통화 정책을 펼 수 있는 중앙은행이 없었다[유로존에서 개별 국가의 중앙은행은 통화 정책을 유럽중앙은행에 이관했고 유럽중앙은행은 개별 국가의 통화 방어를 위한 통화 정책을 펼 수 없다]. 이에 더해, 마스트리흐트 조약은 유럽중앙은행이 회원국 부채를 직접 매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어서 유럽중앙은행은 어떤 나라의 국채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부채 보증 역할을 할 수 없었다. 국가 안에서도 유럽 차원에서도 최종대부자 역할을 해줄 곳이 없는 상태에서, 국가 간 자금 조달 비용의 차이인 스프레드는 사라질 수 없었다. 자본 시장에서 거부당한 나라들(2010~2011년에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이 자본 시장에서 돈을 빌릴 수 없었다)은 이제 구제금융이 필요했는데, 마스트리흐트 조약은 구제금융도 금지하고 있었다."(211-2)


"2008년 금융 붕괴 이후 중국 지도부는 중국이 〈달러의 덫〉에 빠졌다고 판단했다. 대규모의 달러를 보유하고 무역을 거의 전적으로 달러로 결제하고 있는데, 미국이 언제라도 달러를 평가절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중국이 부채를 조달해 대규모 부양책을 편 후에, 중국의 은행 시스템이 GDP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했고 그 은행 시스템과 중국 기업들은 이전 어느 때보다도 국제 달러 신용 환경에 깊이 통합되었다. 2014년이면 중국의 총 대외 부채는 (아마도 축소되었을 공식 발표에 따르더라도) 2008년보다 450퍼센트 이상 높았고 상당 부분이 달러 표시 부채였다. 이런 상황에서 2015년 여름에 연준이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막대한 자본 이탈을 겪은 중국 당국은 국내의 금융 안정성이냐 국제 시장에서의 인민폐의 지위냐 중 양자택일을 해야 했다. 중국 당국은 전자를 선택했고 자본 통제를 강화했다. 이렇게 누적된 금융 위험은 중국의 성장을 심각하게 제약했다."(232-3)


"시진핑 본인의 말에서도 드러났듯이, 그는 중국 경제를 지정학적으로 다시 계산하고자 했다. 시진핑은 기존의 미국 수출 시장 위주에서 유라시아로의 전환을 한층 더 강화했다. 이러한 지리적 전환은 대對유럽 교역과 투자를 늘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중국의 유라시아로의 전환은 유럽을 분열을 촉진했다. 중국의 유라시아로의 전환, 그리고 2016년 이후 자본 통제 강화로 인한 중국의 유럽 투자 축소 모두가 유럽을 경제적으로 분열시켰다. 두 요인 모두 EU와 유로존 둘 다에서 독일의 경제적 위치가 다른 나라들과 다르다는 점을 한층 더 강화했다. 그러는 동안, ‘차이메리카’의 경제적 공생 관계가 미-중 간의 지정학적 라이벌 관계로 바뀌고 홍콩이 관문 역할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줄면서 유럽의 경제적 분절은 첨예한 지정학적 측면을 갖게 되었다. 중국이 러시아와 더불어 EU에서 NATO를 둘러싼 분열의 원천이 되었고 영국이 EU로부터 멀어지는 데 명시적인 지정학적 이유를 만들어낸 것이다."(236, 240-1)


| 3부 | 민주정치

7장 민주정에서의 ‘시간’


"역사에 민족공동체/국가공동체 의식이 제공하는 정치적 자원 없이 대의제 민주정이 존재한 사례는 없었다. 개념적으로, 대의제 민주정에서 민족공동체/국가공동체는 ‘국민’으로서 기능한다. 누가 그 국민이어야 하느냐에 대한 질문에 대해 역사적으로 사용되어온 답은 ‘민족적 정체성을 공유한 사람들nation’이었다. 대의제 민주정에는 패자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수단이 필요하다. 정부 형태 중 대의제 민주정만이 모든 성인 시민에게 통치자가 누가 되어야 할지를 물은 다음에 그 시민의 일부만 그들이 선택한 대표자를 갖게 한다[나머지 시민들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대표자를 가져야 한다]. 따라서, 선거를 통해 권력이 교체될 수 있으려면 선거에서 진 사람들이 폭력이나 분리 독립으로 가지 않고 선거 결과에 승복할 수 있게 할 암묵적인 정당화 기제가 필요하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이 정치적 문제에 역사적으로 해법을 제공해온 것이 민족공동체/국가공동체 의식nationhood이었다."(253-4)


"국민이라는 개념을 필요로 하는 정치 형태에서 실제로 국가공동체 의식을 일구는 일이 현실적으로 막대하게 어렵다는 사실은 민주정 정치체에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부담이었다. 민족적 공동체 의식을 가진 사람들로서의 ‘국민the people’이라는 용어는 필수 불가결했고, 즉각적으로 활용이 가능했으며, 또한 사라지기 쉬웠다. ‘국민’으로서의 민족공동체 개념이 ‘패자의 동의’를 가능케 해주는 통합의 동인이 되리라 여겨진 곳에서, 이 화법은 동일한 민주정 국가의 권위에 귀속되는 모든 사람은 동일한 정치적 권리를 갖는다는 점을 부인하는 데도 그만큼이나 쉽게 사용될 수 있었다. 민족/국민이 아닌 정체성을 드러내는 사람이나 (실제로야 어떻든 간에) 다른 종류의 충성심을 가졌다고 의심되는 사람들을 배제될 수 있었던 것이다. 민족/국가nation라는 단어의 의미를 현재 확립되어 있는 국가의 시민들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것을 공유하는 사람들로 재정의하려는 세력에 표를 던지려는 사람들이 늘 있었다."(259)


"정치에서 시간이 ‘불안정화의 차원dimension of instability’이라는 점(역사학자 존 포콕이 한 말이다)은 한때 정치 사상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던 개념이었다. 유럽에서는 시간에 따른 부패라는 개념 틀로 정부 형태를 이해하려는 접근이 일찍이 폴리비오스부터 시작해 마키아벨리에서 학술적 정점에 올랐다. 폴리비오스는 각각의 정부 형태가 그 자신의 과잉에 의해 파괴된다고 보았다. 그는 이 사이클을 막고 중간 상태(‘균형 상태’)를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세 가지의 긍정적인 정부 형태인 왕정, 귀족정, 민주정 사이에 균형을 맞추어 서로가 서로에 대해 길항력을 행사하게 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그는 증가하는 외부적 권력과 물질적 번영은 어떤 구조적 균형이 성립되었더라도 그것에 위협 요인이 된다고 경고했다. 폴리비오스가 말한 귀족적 과잉과 민주적 과잉의 축적이라는 개념은 정치체가 시간이 가면서 불안정해지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260-2)


"대의제 민주정이 가지고 있는 귀족정의 요소는 종종 수사적으로 가려지지만, 일반적으로는 귀족정의 요소가 더 지배적이다. 대의제 민주정은 대표를 위임하는 다수의 사람들과 훨씬 소수인 대표자들 사이를 구분하며, 권위 있는 의사결정 권한을 행정부에 있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시킨다. 대통령제에서 이들 중 일부는 선출되지 않고 지명된다. 또한 국민 다수의 표를 얻은 선출직 대표자들이 내리는 정치적 의사결정은 일반적으로 헌법에 의해 제약된다. 모종의 사법적 심사 제도가 있는 민주정 정치체에서, 때로는 헌법 재판소가 선출된 의원들이 만든 법을 철회시킬 수도 있다. 이러한 사법적·헌법적 실행은 소수자를 보호하는데[다수의 의견으로 정해진 결정도 철회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보호받는 소수자에는 부자들도 포함된다(재산권을 통해 보호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부자에게 높은 세금을 물리고 노동자에게 가는 몫을 늘리는 데 필요한 조건을 만든 것은 보편참정권에 기반한 선거가 아니라 전쟁이었다."(264-5)


8장 민주정 과세 국가의 흥망


"전체적으로 보면, 2차 대전 이후의 지정학적·경제적 세계는 1차 대전 이후의 세계보다 민주정 국가들의 미래에 더 유리한 면이 있었다. 구조적으로, 브레턴우즈 체제는 전후 서구 국가들에서 경제적 공동체주의를 촉진함으로써 이 국가들에 필요한 지원을 제공했다. 루스벨트 행정부가 다른 나라들에 자본 이동을 통제할 권한을 주고 단기 신용에 접근할 수 있게 했다는 점은 전후 서유럽 민주정 국가들에 중대한 이점이 되었다. 금융을 국가 단위에서 통제할 수 있게 된 전후 민주정 국가들은 통화 정책에서 [국제 금융의 영향력에 대해] 자율성을 행사할 수 있었다. 자본 이탈 위험이 줄면서, 전후 서유럽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을 국가가 그들에게 공식적·비공식적으로 경제적 권리를 보장하는 시민으로서 이야기했고, 그러한 경제적 권리가 현실에서 가장 잘 실현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를 두고 서로 경쟁했다. 따라서 정부와 당국자들은 경제를 국가 단위로, 즉 국가 단위의 성장 회계와 성장률을 통해 이해했다."(287-8)


"전후 유럽의 민주정 국가들은 1920년대보다 재정 위기에 처할 위험이 적었다. 1945년 이후로 정부들은 부자들에게 상당한 과세를 하는 것도 포함해 전쟁 시기에 도입된 고율 과세 체계를 평화 시기의 복지 제도에 활용할 수 있었다. 이 복지 제도는 이후 몇 년이 아니라 몇십 년간 이어지게 된다. 국가가 자본 이동을 통제할 수 있어서 부자들의 조세 회피와 포탈이 어려워진 것이 여기에 일조했다. 또한 정부들은 과거의 부채를 상환하느라 고전할 필요가 없었다. 마셜플랜을 통해 미국의 자금이 공식적으로 주입되고 이어서 부채 저감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서구 민주정 국가들이 부채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 데는 이들이 이 시기에 새로운 부채를 그다지 많이 쌓지 않았다는 점과도 관련이 있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 자금을 대기 위해 자본 시장에서 돈을 빌리는 쪽으로 돌아서기 전까지, 전후의 정부들은 대체로 균형 재정을 유지했고 지출은 자국의 시민과 기업으로부터 걷는 세금으로 충당했다."(291-2)


"미국에서 인종적·민족적 다양성이 더 높아진 민주정, 모든 시민의 투표권이 연방정부에 의해 보호되는 민주정으로의 전환이 일어난 시기는 베트남 전쟁에서 징집 군인들이 싸우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인종적으로 통합된 군대를 위한 징집제가 새로이 정치적 국가공동체주의를 재생하는 데 기반이 되기는커녕, 되레 인종적·계급적 갈등을 일으켰다. 상당수의 부유한 백인 남성은 [대학생 징집 유예 등으로] 교육 기회를 이용해 징병을 유예했다. 대조적으로 흑인은 인구 비례 수준 이상으로 많이 징집되었고, 인구 비례 수준 이상으로 많이 사망하고 부상을 입었으며, 전쟁 초기에는 더욱 그랬다. 징집은 베트남 전쟁과 함께 종말을 고했다. 징집을 끝내는 것이 정치적으로 필요했을지는 몰라도, 이제 국가공동체 의식을 되살릴 수 있는, 역사적으로 효과가 입증된 선택지는 미국에 별로 남지 않게 되었다. 뉴딜 버전 국가 공동체주의의 토대였던 경제 여건도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298)


"1970년대 이후 더 국제화되고 금융화된 경제의 여러 영향이 함께 작용하면서 경제적 국가공동체주의를 끝장냈다. ‘경제적 운명을 공유하는 국가 단위의 정치체라는 것이 존재하며 그 경제적 운명에 대해 국가 정부가 책임을 진다’는 개념이 그것을 지탱해주는 외부 환경이 사라지면서 무너진 것이다. 사람들 사이의 이익은 너무나 맹렬하고 명백하게 분열되었다. 여러 유럽 국가에서 전국 단위의 단협을 가능하게 했던 국가조합주의는 붕괴했고, 개방적인 자본 흐름과 점점 더 국제화되는 생산 환경에서 그것의 복원은 불가능했다. 예측 가능하게도 부채가 경제적 국가공동체주의의 붕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정부들이 국제 자본 시장에서 돈을 빌려 지출을 충당하는 쪽으로 돌아가자 저축자이자 납세자인 시민들을 통해 국가의 자금을 조달하고 채권자-채무자간 갈등이 일으키는 위험을 제어하던 기제가 없어지고 말았다. 그런 다음에 재정 적자를 유지하는 이자 부담은 세금으로 시민들에게 떨어졌다."(312-3)


9장 개혁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쉽게 고칠 수 없는 조약에 의해 만들어진 통화연맹은 EU 회원국들의 국내 정치에 막대한 부담을 가져왔다. 불안정을 일으키는 요인 중 어떤 것은 맨처음부터 존재했다. 통화연맹 구성이 본질적으로 독일이 제시한 조건대로 이루어졌으므로 회원국 전체에서 지지를 얻기에 정치적 합의가 매우 부족했다. 국가 정치에서의 선거와 EU 조약이 정한 법적 원칙 사이의 관계와 관련된 일반적인 이슈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프랑스에서는 국민투표가 유로존에 일어날 수 없는 변화를 요구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유로존이 부채가 국내 정치의 장에서 논의와 경합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막는 방어막이 되었다. 프랑스에서 2012년에 올랑드가 EU 조약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걸고 선거에 나와 당선되었지만 실제로는 조약을 거부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듯이, 2010년 선거에서 [EU 조약이 정한 단일시장 규칙에 맞서서] 이민자 제한 목표치를 공약으로 내걸고 승리한 캐머런도 실제로 공약을 실행할 수 있는 입장이 전혀 아니었다."(353-4)


"2008년 이후의 통화 환경, 그리고 구성 조약을 개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유럽중앙은행을 변화시켜야 할 필요성은 독일 정치에 유로존 이슈를 다시 불러옴으로써 기본적인 분열의 동학에 교란 요인을 더 보탰다. 여기에 더해 2015년의 국경 위기는 EU와 유로존에서 독일이 갖는 영향력을 둘러싸고 생겨났던 정치적 문제들을 한층 더 어렵게 만들었다. 영국에서는 다국가 연합으로서의 UK의 불안정성이 한층 더 높아졌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유로존의 각기 상이한 측면들에 대해 분출한 대중민주적 불만이 억눌러져야 했다.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는 이것이 대연정 정치로의 움직임을 추동했다. 프랑스에서는 유로존 및 EU 조약이 주요 양당을 너무나 약화시켰기 때문에 대연정이 선택지에 없었다. 프랑스에서는 거리의 시위 정치가 성장했고 때로는 국가가 억압으로 이에 대응했다. 카탈루냐 문제가 대연정의 전조가 되었던 스페인에서는 프랑스에서보다도 더 가혹하게 국가의 억압적인 대응이 벌어졌다."(354)


"미국에서는 민주정치적 과정이 과두 귀족들의 돈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제약되었다. 핵심 질문은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무엇이 동일하게 남아 있어야 하느냐’가 아니라 ‘선거 결과가 합당하다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가 되었다. 경제적 국가공동체주의가 되살아나 더 많은 시민을 포괄하거나 시민권 문제를 해소해주기는 어려워진 상황에서, 냉전이 종식되고 인구 구성이 바뀌면서 ‘패자의 동의’가 잘 작동하도록 국가공동체주의를 일구어야 할 필요성은 오히려 증폭되었다. 공화당은 냉전 시기에 외교 이슈에서 가졌던 이점이 없어졌고 민주당은 남부에서 강하게 가지고 있던 입지가 1964년 이후로 계속 약화되었기 때문에, 두 정당 모두 유권자 과반을 잡는 데 고전했다. 이에 더해 1960년대 이래 대법원의 결정을 둘러싼 맹렬한 싸움은 매번의 대선을 일정 정도 앞으로 대법원의 정치적 방향이 무엇이 될 것인가의 싸움이 되게 했고, 이는 대법원의 역할이 합의된 헌법을 고수하는 것이라는 개념을 훼손했다."(355-8)


"패자의 동의가 취약하다는 사실의 기저에는 미국의 국가공동체주의 그리고 그 공동체주의와 연방제라는 형태와의 관계에 대한 문제가 놓여 있다. 미국의 역사적 기억에 대한 이슈들, 특히 미국 공화정의 건국에 대한 기억의 이슈는 해체적인 정치적 열정에 불을 붙인다. 남부연맹의 역사를 집합적인 미국의 역사적 경험에 포함하는 것은 남북 전쟁 이후에 만들어진 합의의 일부였다. 하지만 이전의 노예가 이제는 시민이 된 국가에서, 이것은 미국 국가공동체주의의 언어를 크게 제약했다. 아직 미국은 미국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포괄할 수 있는 ‘미국인’ 개념을 뒷받침하는 과거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에 더해 인구 변화로 반다수주의적 원칙에 기초한 상원의 구조가 정치의 결과에 더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충돌 양상은 한층 더 복잡해졌다. 이러한 정치적 조건에서, 선거 자체가 민주정의 위기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헌법 자체가 점점 더 민주정치적 쟁투의 대상이 되고 있다."(370-1)


나가는 글: 앞으로 올 더 많은 일들


"팬데믹은 새로운 변화를 불러온 촉매이자 이전 교란의 연속선이었다. 21세기의 첫 20년간 형성된 문제들은 모든 면에서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녹색에너지 투자를 가속화하려는 지정학적 동기는 미·중 경쟁의 강도를 높일 것이다. 가장 명백하게는, 미국이 중국 제조업 공급망에 대한 의존도를 깨는 데 성공할수록 중국의 맞대응이 더 촉발될 것이다. 중국이 이를 보상하기 위해 국내 시장을 확대하면 세계 경제에는 미·중 간의 지정학적 경쟁 관계가 스며들지 않은 영역이 거의 남지 않게 될 것이고 그 안에 묶여 있는 모든 나라는 해양 수송을 경제 안보의 문제로 여기게 될 것이다. 유라시아에서는 중국이 대륙을 가로지르는 육상 벨트의 일부로 추구하는 철도 경로가 한층 더 정치적인 싸움의 대상이 될 것이다. 기후와 관련해서는, 새로운 세계에서 석탄을 태울 수 있는 역량이 중국의 암묵적인 무기가 될 것이다. 대기 오염 문제만으로도 석탄에서 멀어져야 할 국내적 인센티브가 상당하긴 하지만 말이다."(392-4)


"녹색에너지가 만들 지정학적 동학은 석유와 가스가 만들어온 오랜 지정학적 동학과 공존할 것이다. 중국이 계속해서 중동 석유에 의존할 것이고 중국이 추진하는 유라시아 벨트의 파키스탄 부분이 ‘믈라카 딜레마’에 대해 부분적인 안전망밖에 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중국은 에너지와 관련해 미국의 군사적·금융적 권력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여전히 있다. 또한 중국의 중동 에너지 의존은 미국이 페르시아만에서 철수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이러한 옛 에너지 현실의 지정학적 영향은 2021년에 (중국이 이란의 석유와 가스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것을 포함해) 중국과 이란이 25년간의 경제 파트너십을 맺기로 하면서 더 없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과거에 중동을 둘러싼 유럽의 제국주의적 경쟁에서 영국이 승리하는 데 이란이 핵심이었듯이, 석유와 가스에서 벗어나려 하면서도 석유와 가스에 계속해서 의존하고 있는 나라들이 직면하는 어려움 속에서 이란은 앞으로도 중요성을 가질 것이다."(394-5)


"석유 생산을 둘러싼 지정학적·금융적 조건에서 나온 역기능적 동학은 사라질 수 없을 것이다. 공급과 관련해서 셰일오일은 늘 중기적인 해법밖에 되지 못했다. 석유 분야에 막대한 투자가 쏟아져 들어와 고비용의 생산을 가능케 하는 것이 되풀이될 수 없다면, 향후 수십 년 동안 세계 경제는 2000년대에 그랬듯이 중동과 러시아에서 오는 비싼 석유에 의존해야 할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고유가가 돌아오면 투자 인센티브가 생겨야 하지만, 이는 화석연료 투자에 대한 비판적 분위기가 높지 않을 때만 성립하는 이야기다. 고유가는 생산 투자 인센티브는 만들어내지 못하면서 경제 성장을 심각하게 제약할 것이고 다시 한번 소비 수요를 위축시킬 것이며 이라크를 포함해 석유 생산 국가들을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다. ‘OPEC 플러스’에 대한 의존이 재활성화할 옛 문제들은, 이들 OPEC 플러스 국가들이 석유 확보 각축전이 새로이 불러올 막대한 중장기적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과 나란히 다시 불거질 것이다."(396-7)


"국내 정치 면에서 보면, 에너지 소비는 불가피하게 옛 갈등을 강화하는 새로운 분배적 갈등을 맹렬히 일으킬 것이다. 부분적으로 이는 녹색에너지 전환과 전기화에 어떻게 인센티브를 충분히 부여하고 여기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 것인지와 관련이 있다. 일례로 프랑스에서 유류세 인상에 저항하며 일어난 노란 조끼 시위는 ‘패자의 동의’ 문제가 선거에서만으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한 이 문제는 에너지의 미래 모습이 실질적으로 어떠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개인 교통수단이 정치적 갈등의 장소가 될 것이다. 개인의 에너지 소비에 대한 분배적 함의가 명백해질수록 탄소 중립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의 문제는 (얼마나 많은 탄소를 “제거elimination[실질적으로 탄소를 없애는 것]”해야 하는 것인가뿐 아니라 “상쇄offset[자기 배출량을 다른 활동으로 보상하는 것]”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도 포함해서) 정부가 감축목표치를 발표하는 수준을 넘어 선거 경쟁의 장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398-9)


"에너지 시간의 근본 문제는 이동하지 않았다. 민주정 국가들이 에너지와 관련해 겪어온 난관에서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으로 달라진 게 있다면, 많은 이들이 에너지 이슈를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론적으로는, 에너지 이슈에 대해 대중의 인식이 높아지면 2050년까지 에너지 전환을 실현한다는 유럽의 원래 공식이 토대를 두고 있는 기술관료적 논리가 느슨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에너지에 대한 인식이 높아질 때 현실에서 더 있을 법한 결과는, 기후변화에 직면해 모든 사람이 공유하게 된 이해관계와 개인 교통수단의 전기화 과정에서 나타나게 될 불평등 사이의, 그리고 높은 화석연료 가격이 늘 유발하기 마련인 불평등 사이의 깊은 간극이 드러나면서 서구 민주정 국가들이 귀족적 과잉의 덫에 더 깊이 빠지는 것이다. 21세기의 첫 20년 동안 에너지가 정치적 격동과 무질서의 ‘기저에 있는’ 요인이었다면, 앞으로의 세계에서 에너지는 정치적 격동과 무질서를 ‘주되게 실어나르는’ 핵심 매개가 될 것이다."(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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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이스라엘에 대한 열 가지 신화 - 유대인 역사학자의 통렬한 이스라엘 비판서
일란 파페 지음, 백선 옮김, 이희수 감수 / 틈새책방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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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모든 분쟁의 중심에는 역사가 있다. 과거를 편견 없이 진실되게 이해하면 평화의 가능성과 마주하지만, 반대로 역사를 왜곡하거나 조작하면 재앙이 싹틀 뿐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허위 사실이 켜켜이 쌓인 탓에 우리는 그 갈등의 기원을 직시하기가 어렵다. 한편, 관련 사실이 지속적으로 조작되면 계속되는 유혈 사태와 폭력으로 다친 모든 피해자들에게 불리해진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분쟁의 땅이 어떻게 이스라엘 국가가 됐는지에 대한 시온주의적 역사 서술은 일련의 신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신화들은 분쟁의 땅에 대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도덕적 권리를 미묘하게 의심하게 만든다. 서방의 주류 미디어와 정치 엘리트들은 종종 이들 신화를 주어진 사실로 받아들이면서, 지난 60여 년 동안 이스라엘이 보여 준 행위를 정당화한다. 대개 암묵적으로 수용된 이러한 신화들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건국 이래 계속되는 갈등에 서방 정부가 의미 있는 개입을 꺼리는 이유를 알 수 있다. 19)


PART I. 잘못된 신화: 과거

1. 팔레스타인은 빈 땅이었다


오스만제국 시대에 팔레스타인은 전체적으로 지중해 동쪽의 다른 나라들과 다르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둘러싸여 고립돼 있기보다는, 광범위한 오스만 제국의 일부로서 다른 문화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쉬운 위치에 있었다. 둘째로, 변화와 근대화에 열려 있던 팔레스타인은 시온주의 운동이 도래하기 훨씬 이전에 국가로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자히르 알 우마르Daher al-Umar, 1690~1775 같은 강력한 지역 지도자의 지배 아래 하이파Haifa, 셰파므르Shefamr, 티베리아스Tiberias, 아크레Acre 등의 도시가 새로이 보수되고 활력을 되찾았다. 항구와 마을로 이어지는 해안 지역 네트워크는 유럽과 무역으로 연결되어 번성했으며, 내륙 평원은 인근 지역과 무역을 했다. 사막과는 정반대로, 팔레스타인은 번창한 빌라드 알샴Bilad al-Sham(북쪽 땅), 즉 당시 레반트Levant 지역이었다. 동시에 풍요로운 농업, 작은 마을들과 역사적인 도시들 덕분에 시온주의 도래할 즈음에는 인구가 50만 명에 달했다. 26)


중동 및 그 밖의 다른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 사회에도 19~20세기에 강력하게 정립된 ‘국가’라는 개념이 유입됐다. 중동에 민족주의 사상이 유입된 데에는 어느 정도 미국 선교사들의 역할이 있었다. 그들은 19세기 초, ‘선교’와 함께 ‘자결권’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전파하려는 열망을 갖고 이 지역에 발을 디뎠다. 당연하게도 주로 기독교도와 소수 집단들은 점유 영토shared territory, 언어, 역사,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세속적인 국가 정체성 개념을 반색하며 수용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민족주의에 동참한 기독교인들이 이슬람교도 엘리트들 사이에서 열성적인 협력자를 찾았고, 그 결과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에는 팔레스타인 전역에 이슬람교-기독교 단체가 급격히 증가했다. 아랍 세계에서 유대인들은 이렇게 서로 종교가 다른 활동가들 간의 동맹에 합류했다. 시온주의가 현지 유대인 공동체에 절대적인 충성을 요구하지 않았다면 팔레스타인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27)


팔레스타인이라는 국가는 없었지만 팔레스타인의 문화적 위치는 매우 분명했다. 하나라는 소속감이 있었다. 20세기 초에 창간된 신문인 〈필라스틴Filastin〉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자신들이 사는 지역을 부르는 이름에서 따왔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자기만의 방언을 사용했고, 자기만의 관습과 의식이 있었다. 그리고 세계 지도에는 ‘팔레스타인’이라는 나라에 거주한다고 표기했다. 그리하여 1918년까지 팔레스타인은 오스만 제국 시대보다 더 통합돼 있었지만, 그 후 더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23년 팔레스타인의 지위에 대한 최종적인 국제 승인을 기다리는 동안 영국 정부는 이 땅의 국경을 다시 협상했다. 그 결과 민족 운동이 투쟁할 수 있는 지리적 공간이 더욱 명확히 정의됐고,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더욱 분명한 소속감을 느끼게 됐다. 이제 팔레스타인이 무엇인지는 명확했다. 누구에게 속하는지가 분명하지 않았을 뿐이다. 팔레스타인 원주민인가, 아니면 새로운 유대 정착민인가? 28-9)


2. 유대 민족에게는 땅이 없었다


16세기 이후 종교 개혁에 따른 신학적·종교적 격변이 일어나면서, 특히 개신교도들 사이에서 천년 왕국의 끝과 유대인의 개종 및 이들의 팔레스타인으로의 귀환 사이에 명확한 연관성이 만들어졌다. 《만들어진 유대인》의 저자 슐로모 산드Shlomo Sand는 근대사의 특정한 시점에 기독교 세계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유대인은 언젠가 성지로 돌아가야 하는 ‘민족’이라는 생각을 지지했음을 보여 준다. 시온주의를 형성하는 사상과 이보다 더 오래 지속된 반유대주의 사이에는 분명한 연관성이 있다. 이렇듯 겉보기에 종교적이고 신화적인 믿음이 실제 식민지화 프로그램과 강탈 계획으로 전환될 징조가 1820년대 초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 이미 나타났다. 팔레스타인을 점령하여 기독교 사회로 편입시키려는 전략적 계획에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귀환을 그 핵심에 두는 강력한 신학적, 제국주의적 운동이 등장한 것이다. 19세기에 이러한 정서는 영국에서 더욱 퍼졌고 제국의 공식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30-1)


시온주의 사상은 1860년대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싹텄고, 계몽주의와 1848년의 ‘국민 국가들의 봄’, 이후에는 사회주의에서 영감을 받았다. 1870년대 말과 1880년대 초 러시아에서 특히 악랄했던 유대인 박해 물결과 서유럽의 반유대 민족주의의 부상에 대응한 테오도르 헤르츨Theodor Herzl의 비전을 통해 시온주의는 지적, 문화적 활동에서 정치적인 프로젝트로 변화했다.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귀환을 이용해 ‘성지聖地’에 더 깊이 관여하고자 했던 영국의 전략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충동은 시온주의의 새로운 문화적, 지적 비전과 일치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과 유대인 모두에게 팔레스타인의 식민지화는 귀환과 구원의 행위로 여겨졌다. 이 두 충동이 일치했기에 반유대주의와 천년 왕국 사상 간에 강력한 동맹이 만들어졌고, 팔레스타인 원주민을 희생시켜 유대인을 유럽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시키는 실제 정착 프로젝트가 이행됐다. 1917년 11월 2일 밸푸어 선언이 선포되면서 이 동맹은 대중에게 알려졌다. 35-7)


수많은 민족 운동이 시작될 때 그랬듯이, 사람들은 스스로를 창조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창세기〉의 서술이 대량 학살, 종족 청소, 억압과 같은 정치적 계획으로 이어진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특히 19세기 시온주의의 주장에서 중요한 점은 그 주장의 역사적 정확성이 아니다. 현재 이스라엘의 유대인이 로마 시대에 살았던 유대인의 진짜 후손인지 아닌지도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중요한 점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전 세계의 모든 유대인을 대표하고, 그들을 위해 모든 일을 하며, 그들을 대신한다고 주장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명확한 연관성이 다른 유대인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미국에서도 도전을 받고 있다. 시온주의는 원래 유대인들 사이에서 소수 의견이었다.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에 속한 국민이고 따라서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이들은 영국 관리들과 군사력에 의존해야 했다. 유대인과 세계 대부분은 유대인이 땅 없는 민족이라고 확신하지 않았던 것 같다. 38-9)


3. 시온주의와 유대교는 같다


유대인의 삶에서 《성경》의 역할은 유대주의와 시온주의 사이의 또 다른 분명한 차이점을 드러낸다. 시온주의 이전 유대 세계에서는 《성경》을 정치적이거나 민족적이기까지 한 의미를 담은 단일 텍스트로 가르치지 않았다. 유럽이나 아랍 세계의 다양한 유대 교육 기관 어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주요 랍비들은 《성경》에 담긴 정치사와 이스라엘 땅에 대한 유대인의 주권 사상을 영적 학습에서 아주 사소한 주제로 취급했다. 시온주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전통적인 《성경》 해석에 근본적으로 도전했다. 예컨대, ‘시온의 연인들’은 《성경》을 팔레스타인 땅에서 태어나 가나안Canaanite 정권의 지배하에서 고통받은 유대인 국가의 이야기로 읽었다. 이들은 나중에 가나안에 의해 이집트(애굽)로 추방됐다가 다시 돌아와 여호수아의 인도 아래 그 땅을 해방시켰다. 그러나 전통적인 해석에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을 국가와 조국보다는 유일신을 발견한 집단으로 본다. 46)


근래에 이 서사에 학문적이고 세속적인 주요 증거를 제공한 것은 소위 성서고고학이다(이는 그 자체가 모순적인 개념인데, 《성경》은 다양한 시기에 여러 민족이 쓴 위대한 문학 작품이지 역사서라고는 보기 어렵다). 이 서사에 따르면, 서기 70년 이후 시온주의자들이 돌아올 때까지 그 땅은 거의 비어 있었다. 그러나 주요 시온주의 지도자들은 《성경》의 권위에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미 거주자가 있는 팔레스타인을 식민지화하려면 정착, 강탈, 심지어 종족 청소까지 체계적인 정책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서 팔레스타인 강탈을 신성한 기독교 계획의 이행으로 묘사했고, 이는 시온주의를 뒷받침하는 전 세계 기독교인의 지지를 모으는 데 귀중한 수단이 됐다. 식민지 원주민들이 빠르게 알아차렸듯이, 정착민들이 들고 온 것이 《성경》이건, 마르크스의 저서이건, 유럽 계몽주의 소책자이건 관계없이 궁극적으로 그들의 운명은 결정되어 있었다. 48)


시온주의 운동이 요구한 공간은 박해받는 유대인을 구출하기 위한 필요에 의해 결정됐다기보다, 가급적 소수의 주민으로 팔레스타인 지역을 최대한 많이 차지하겠다는 의지로 정해졌다. 신중하고 세속적인 유대인 학자들은 ‘과학적’이고자 노력하면서, 고대의 흐릿한 약속을 현재의 사실로 바꾸었다. 이 작업은 팔레스타인 위임 통치 지역 유대인 공동체의 주요 역사학자인 벤지온 디나부르크(디누르)Ben-Zion Dinaburg(Dinur)에 의해 이미 시작됐고, 1948년 건국 후 집중적으로 계속됐다. 18세기 팔레스타인에 살던 유대인들이 19세기 말 정통 유대인들처럼 유대 국가 개념을 거부했다는 역사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20세기에 와서 이 사실은 외면됐다. 역사적으로는 《성경》과 유럽 유대인들에게 일어난 일, 1948년 전쟁을 하나로 묶어 가르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념적으로는 이 세 가지 항목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오늘날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정당화하는 요소로 주입된다. 53-5)


4. 시온주의는 식민주의가 아니다


정착 식민주의를 연구하는 주요 학자 중 하나인 패트릭 울프Patrick Wolfe는 ‘제거 논리’가 정착 식민주의 프로젝트를 주도했다고 주장한다. 정착민들이 원주민을 제거하기 위해 필요한 도덕적 정당성과 실질적 수단을 개발했다는 뜻이다. 나는 여기에 또다른 논리가 침투해 있었다고 덧붙이고 싶다. 바로 인간성 말살의 논리다. 유럽에서는 박해의 희생자였던 유대인들로서는, 자신들이 당한 것과 동일하거나 그보다 더 악랄한 일들을 자행하기 전에 먼저 원주민 국가나 사회의 인간성을 박탈해야 했다. 누군가가 팔레스타인이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었고, 땅 없는 이스라엘 민족을 기다리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스스로를 방어할 논거 자체를 빼앗기게 된다. 팔레스타인인이 자기 땅을 지키기 위해 하는 모든 노력은 정당한 소유자에 대한 근거 없는 폭력 행위가 되어 버린다. 따라서 시온주의를 식민주의로 논의하는 일과, 팔레스타인인을 식민지 원주민으로 논의하는 문제를 분리하기는 어렵다. 56-7)


19세기 말 시온주의자들이 팔레스타인에 도착했을 때 팔레스타인 공동체 내에서는 여전히 두 가지 욕구가 존재하고 있었다. 많은 지식인과 활동가들이 아랍연합공화국United Arab Republic을 꿈꾸고 있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대시리아Greater Syria 개념에 매료되어 다마스쿠스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국가에 팔레스타인을 편입시키고자 했다. 범아랍주의자이건, 자기 지역만을 사랑하는 애국자이건, 대시리아의 일부가 되기를 바라건, 유대 국가에 포함되기를 바라지 않는 마음은 모든 팔레스타인인이 똑같았다.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은 정착민 공동체에 자그마한 영토 일부라도 넘겨주는 정치적 해결책에 반대했다. 1920년대 말 영국과의 협상에서 그들이 분명히 선언했듯이, 이미 도착한 정착민들과는 기꺼이 공유하겠지만 그 이상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집단적 목소리는 1919년부터 10년간 매년 개최된 팔레스타인민족회의Palestinian National Conference 집행부에서 구체화됐다. 58-9)


1928년, 팔레스타인 지도부는 나중에 만들어질 정부에서 유대 정착민이 팔레스타인인과 동등한 대표권을 갖도록 하는 데 동의했다. 시온주의 지도부는 팔레스타인인이 거부할 것으로 판단하고는 이를 지지했지만, 사실 공동 대표권은 시온주의가 추구하는 지향점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인이 동등한 대표권 제안을 수락하자, 시온주의자들은 이를 거부했다. 이는 1929년 폭동으로 이어졌다. 헤브론에서 유대인 학살이 일어나고, 팔레스타인 공동체에서는 훨씬 더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여기에 유대민족기금이 부재지주와 지역 유지의 토지를 매입하면서 팔레스타인 소작인들에게서 땅을 몰수하자 소작인들은 도시 빈민가로 쫓겨났다. 그런 빈민가 중 하나인 하이파 북동쪽에서 1930년대 초에 망명한 시리아 종교 지도자 이즈 앗딘 알카삼Izz ad-Din al-Qassam이 이슬람 성전聖戰 추종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후 하마스가 그의 이름을 딴 무장 조직으로 유산을 계승했다. 59-60)


5. 1948년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고향을 떠났다


1948년 전쟁에 대한 잘못된 가설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자발적으로 떠났다는 생각만이 아니다. 그해에 일어난 사건들을 설명할 때 자주 사용되는 세 가지 가설이 더 있다. 첫 번째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1947년 11월 유엔이 결의한 분리안을 거부했기 때문에 본인들에게 일어난 일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시온주의 운동의 식민주의적 성격을 무시하는 주장이다. 분명한 것은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종족 청소가, 팔레스타인인과 아무런 협의없이 만들어진 유엔의 평화안을 거부한 데 대한 ‘처벌’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이다. 1948년에 관한 가설은 두 가지가 더 있다. 하나는 이스라엘이 아랍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이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쟁이 끝난 후 이스라엘이 평화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팔레스타인인과 아랍 세계가 이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전자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인은 전혀 군사력이 없었으며, 아랍 국가들도 상대적으로 적은 군대만 파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67-8)


이스라엘 국가가 분쟁 이후에 평화의 손길을 내밀었다는 세 번째 신화는 어떨까. 자료가 보여 주는 사실은 정반대다. 사실 이스라엘 지도부는 영국 위임 통치 이후 팔레스타인의 미래에 관한 협상에 참여하기를 거부하거나, 추방됐거나 도망쳤던 사람들의 귀환을 검토하지 않는 등 비협조적이었다. 아랍 정부와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은 비교적 합리적인 유엔의 새 평화 계획에 기꺼이 참여하려고 했던 반면, 이스라엘 지도부는 1948년 9월 유엔이 파견한 평화 중재자 베르나도테Bernadotte 백작을 유대인 테러리스트들이 암살했을 때 모른 척했다. 이스라엘 지도부는 또한 베르나도테 백작을 대신하여 협상을 시작한  유엔 팔레스타인조정기구PCC가 채택한 새로운 평화안도 모두 거부했다. 역사가 아비 쉬라임Avi Shlaim이 《철의 장벽The Iron Wall》에서 보여 주었듯이, 팔레스타인인들이 기회만 있으면 평화를 거부했다는 신화와는 반대로, 지속적으로 평화 제안을 거부한 쪽은 이스라엘이었다. 68)


정치적 함의는 이렇다.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 발생은 전적으로 이스라엘의 잘못이며, 이스라엘에게 책임이 있다. 법적 함의는 이러하다. 비인간적인 범죄에 비록 법적 소멸 시효가 있다고 해도, 그토록 긴 시간이 지나는 동안 여전히 아무도 법의 심판을 받지 않은 범죄라는 점이다. 도덕적 함의는 유대 국가가 죄악에서 탄생했고(물론 많은 국가가 그렇다), 그 죄, 범죄를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 나쁜 점은 이스라엘의 특정 집단이 이를 인정했지만, 동시에 과거를 돌이켜 볼 때나 미래의 팔레스타인인 정책을 펼칠 때는 자신들의 범죄를 완전히 정당화한다는 사실이다. 그 범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저질러지고 있다. 이스라엘 정치 엘리트들은 이 모든 의미를 완전히 무시했다. 대신 1948년 사건에서 매우 다른 교훈을 얻었다. 국가가 인구의 절반을 추방하고, 마을을 파괴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한 교훈으로 인해 1948년 직후와 그 이후에도 다른 수단을 통한 종족 청소가 계속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74)


6. 1967년 6월 전쟁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전쟁이었다


1967년 전쟁을 재평가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1948년 전쟁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스라엘의 정치, 군사 엘리트들은 1948년 전쟁을 날려버린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 전쟁은 이스라엘이 요르단강에서 지중해까지 ‘역사적 팔레스타인’ 전체를 차지할 수 있었고, 그래야 했던 역사적 순간이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하지 않았던 단 하나의 이유는 이웃 요르단과의 합의 때문이었다. 둘의 결탁은 영국의 위임 통치 기간이 끝나갈 무렵에 이뤄졌고, 합의에 따라 요르단군은 1948년 전쟁에서 아랍 전체 군사 작전에 제한적으로만 참여했다. 그 대가로 요르단은 팔레스타인의 일부 지역을 합병할 수 있었는데, 나중에 서안이 되는 지역이었다. 다비드 벤구리온은 요르단이 서안을 차지하도록 한 결정을 ‘베키야 레도로트bechiya ledorot’라고 불렀다.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미래 세대가 한탄할 결정’이라는 뜻이다. 보다 은유적으로 번역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실수’라고 할 수 있겠다. 78)


한쪽 팔레스타인 집단(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소수 민족)을 통치하던 군정 통치 기구가 다른 팔레스타인 집단(서안과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인)을 통치하러 옮겨갈 기회가 1967년에 찾아 왔다. 1966년 말 이스라엘의 시리아 공격이 임박했다고 굳게 믿고 있던 소련이 나세르에게 벼랑 끝 전술을 부추겼을 때였다. 그러나 전쟁에 돌입하게 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당시 이스라엘 지도부 내부에 전쟁 도발을 막을 힘이 없었다는 점이다. 내부에서 어떤 형태로든 마찰이 있었으면 강경파의 갈등 유발을 지연시켜, 국제 사회가 평화로운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미국이 주도하는 외교적 노력이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던 1967년 6월 5일, 이스라엘이 이웃 아랍 국가 모두를 공격했다. 이스라엘 내각은 평화 중재자들에게 시간을 줄 생각이 없었다. 놓칠 수 없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6월 11일까지 이스라엘은 골란 고원, 서안, 가자 지구, 시나이반도를 모두 장악하고 작은 제국이 됐다. 82-4)


이 역사적 분기점이 이스라엘에게 얼마나 중요했는지는, 종전 직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242가 요구한 1967년에 점령한 모든 영토에서 철수하라는 강력한 국제적 압력에 이스라엘 정부가 어떻게 저항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고대 성서 유적지가 있는 서안의 점령이, 특히 1948년 이전에도 시온주의의 목표였으며, 이제야 전체적으로 시온주의 프로젝트의 논리에 들어맞는다고 말하고 싶다. 이 논리는 가능한 한 적은 수의 팔레스타인인만 남기고 가능한 한 많은 팔레스타인 땅을 차지하려는 바람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들이 내린 첫 번째 결정은 이스라엘은 서안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 결정은 서안과 가자 지구의 주민들을 이스라엘 국가의 시민으로 편입시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시민권 부여를 거부하고 다른 한편으로 독립을 허용하지 않는 정책이 서안과 가자 지구 주민들을 기본적인 시민권과 인권이 없는 삶으로 내몰게 됨을 이스라엘 정부는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85-6)


1967년 이후 이스라엘의 실제 의도가 무엇인지 판단하는 또 다른 방법은 이 정책들을 팔레스타인인 피해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점령 이후 새 통치자는 서안과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매우 불가능하고 불확실한 상황에 가두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난민도 아니고, 시민도 아니었다. 시민권 없는 거주민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시민권과 인권이 없고 스스로의 미래에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는 거대한 감옥에 갇힌 수감자이고, 여러 면에서 여전히 그렇다. 세계가 이런 상황을 용인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이 상황이 일시적이며, 적절한 팔레스타인 측 평화 협상 상대가 나타날 때까지만 지속될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 협상 파트너를 지금까지도 찾지 못한 건 놀랄 일도 아니다. 이 글을 쓰는 이 시점에도 이스라엘은 여전히 다양한 수단과 방법으로 팔레스타인인을 삼대째 감금하고 있으면서, 이 거대 감옥은 임시적이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평화가 오면 바뀔 거라고 설명한다. 88)


PART II. 잘못된 신화: 현재

7.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유일한 민주 국가다


민주주의를 판별하는 기준은 그 사회에 살고 있는 소수자를 얼마나 포용하는가다.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은 진정한 민주주의에 훨씬 못 미친다. 이스라엘은 국민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기본권이나 시민권을 일체 부정한다. 그 사례가 있다. 이스라엘은 새로운 영토를 얻은 다음에 여러 법안을 통과시켰다. 시민권에 관한 법, 토지 소유권에 관한 법,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귀환법이 그것이다. 귀환법은 세계 어디에서 태어났더라도 모든 유대인에게 자동적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내용이다. 특히 이 법은 노골적으로 비민주적이다. 1948년 유엔 총회 결의안 194를 통해 국제적으로 인정된 팔레스타인인의 귀환권을 전면 거부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시민은 직계 가족이나 1948년에 추방된 이들과 함께할 수 없다.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권리를 부정하고, 동시에 그 땅과 관련이 없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 권리를 부여하는 일은 비민주적 관행의 전형이다. 92-3) 


여기에 팔레스타인 민족의 권리를 더욱 부정하는 행위가 하나 더 추가됐다.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시민들이 군 복무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근거로 이들에 대한 거의 모든 차별을 정당화한다. 국방부의 전제는 이랬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군 복무를 원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들은 잠재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내부의 적이다. 이 논리의 문제점은 이스라엘과 아랍 세계가 벌인 모든 주요 전쟁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들의 예상대로 행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제5열을 형성하지도 않았고, 정권에 맞서 반기를 들지도 않았다. 오늘날까지도 팔레스타인인들은 해결해야 할 ‘인구통계학적’ 문제로 여겨진다. 토지 문제를 살펴봐도 민주주의 국가라는 주장이 의심스럽다. 오늘날 이스라엘 토지의 90퍼센트 이상은 유대민족기금의 소유다. 토지 소유자는 비유대인과 거래할 수 없으며, 이 때문에 유대인 정착지는 새롭게 건설되는 반면, 팔레스타인 정착지는 거의 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93-4)


이런 비난에 대해 이스라엘의 외교계와 학계는 이들 조치가 모두 일시적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어디에서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더 나은’ 행동을 보이면 바뀔 조치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정책 입안자들은 유대 국가가 유지되는 한 이 땅의 점령 상태를 계속 유지할 작정이다. 이스라엘 정치 체제는 이 점령 상태를 ‘현재 상태’로 간주하며, 언제나 현상 유지가 어떠한 변화보다 낫다고 본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계몽적 점령enlightened occupation’을 주장한다. 여기서 신화는, 이스라엘이 선한 의도로 자비롭게 점령하려고 했지만 팔레스타인인의 폭력 때문에 점점 더 강경한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1967년 이스라엘 정부는 서안과 가자 지구가 당연히 ‘에레츠 이스라엘Eretz Israel’, 즉 ‘이스라엘 땅’의 일부라고 여겼고, 이런 입장은 그 이후로도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 내 우파와 좌파 정당들이 의견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이 목표의 타당성이 아니라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에 대해서다. 95)


8. 오슬로 신화


오슬로 신화의 첫 번째는 그것이 진정한 평화를 위한 과정이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야세르 아라파트가 2차 인티파다를 선동해 의도적으로 오슬로 협정 이행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1993년 협정에서 팔레스타인이 한 약속을 아라파트가 지키지 않았다는 주장에는 꺼림칙한 점이 있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을 이행할 수는 없었다. 예를 들면, 팔레스타인 당국은 점령지 내에서 이스라엘의 보안 하청 업체 역할을 하면서 저항 활동이 없게 해야 했다. 바라크는 비무장 팔레스타인 국가를 요구했고, 수도는 예루살렘 근처의 아부 디스Abu Dis에 두라고 했다. 그러고는 서안 중에서 요르단 계곡, 대형 유대인 정착촌 구역, 대예루살렘의 일부 지역은 제외하도록 했다. 그렇게 세워지는 국가는 독립적인 경제 및 외교 정책을 가지지 못하고, 국내 특정 영역에서만 자치권을 가지게 될 것이었다. 이 합의의 공식화는 이후 팔레스타인이 더 이상의 요구, 예를 들면 1948년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권을 청구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101)


영토 분할안은 오슬로에서 초기 논의를 이끈 핵심 논리였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은 결코 분할을 요구한 적이 없다. 영토 분할은 언제나 시온주의자, 나중에는 이스라엘의 생각이었다. 게다가 이스라엘의 힘이 커짐에 따라 이스라엘이 요구하는 영토 비율도 늘어났다. 따라서 분할안이 점차 세계적인 지지를 얻으면서, 이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다른 방식의 공격 전략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팔레스타인 측이 협상 조건으로 이 상황을 차악으로 받아들인 것은 단지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초 파타는 영토 분할을 완전한 해방으로 가기 위한 필요 수단으로 받아들였지만, 그 자체를 최종 합의로 인정하지는 않았다. 사실 극단적인 압박이 있지 않고서야 원주민 집단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자기 땅을 정착민 집단과 나눌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슬로 협상이 공정하고 평등한 평화 추구의 과정이 아니라 패배하고 식민지화된 민족이 타협에 동의하는 과정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102-3)


오슬로 평화 프로세스가 실패한 것은 단순히 분할 원칙을 고수했기 때문이 아니다. 원래 협정에는 5년의 이행 기간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팔레스타인을 가장 괴롭히는 세 가지 문제, 즉 예루살렘, 난민, 유대인 정착촌 문제를 협상한다는 이스라엘의 약속이 있었다. 이 이행 기간 동안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보안 하청 업체로서 이스라엘과 그 군대, 정착민과 시민에 대한 게릴라전이나 테러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했다. 그러나 오슬로 DOP에서 약속한 바와는 달리, 5년, 즉 첫 단계가 끝났을 때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더 중요한 문제들을 논의해야 할 두 번째 단계가 시작되지 않았다. 네타냐후 정부는 팔레스타인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두 번째 단계를 시작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 과정이 중단된 주 원인은 1995년 11월 이스라엘 총리 이츠하크 라빈이 암살됐기 때문이다. 평화 프로세스는 1999년 에후드 바라크가 이끄는 노동당이 집권할 때까지 매우 느리게 진전됐다. 103-4)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권을 의제에서 제외한 것은 오슬로 협정이 평화 프로세스와 관련이 없는 두 번째 이유다. 분할 원칙이 ‘팔레스타인’을 서안과 가자 지구로 축소시켰다면, 난민 문제와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소수 민족 문제를 배제하면서 인구학적으로 ‘팔레스타인 국민’이 팔레스타인 국가 인구의 절반 미만으로 축소됐다. 2000년 1월 바라크 정부는 미국 협상자들의 승인을 얻어 협상의 범위를 설명하는 문서를 제시했다. 최종 ‘협상’은 본질적으로 팔레스타인인이 이 문서를 받아들이도록 하려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동 노력이었는데, 여기에는 팔레스타인인의 귀환권을 절대적이고 명확하게 거부하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논의가 열려 있던 부분은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관리하는 영토로 귀환이 가능한 난민 수였다. 하지만 관련자들 모두 이 밀집 지역에 더 이상 사람들을 수용할 수 없으며, 이에 반해 이스라엘 및 팔레스타인의 나머지 지역에 난민을 귀환시킬 공간이 충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104-6)


이것이 오슬로 협정에 관한 두 번째 신화로 이어진다. 아라파트의 완고함 때문에 2000년 캠프 데이비드 정상 회담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미 국무부 관리들의 증언에 따르면, 바라크는 유대인 식민지 정책이나,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일상적인 학대에 관련된 이스라엘의 정책을 바꾸기를 거부했다. 그는 아라파트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는 어려운 입장을 취했다. 현실에서 즉각적인 변화를 약속할 수 없다면 바라크가 최종 합의안으로 무엇을 제안하든 별 의미가 없었다. 예상대로 아라파트는 캠프 데이비드에서 돌아온 직후, 제2차 인티파다를 부추겼다는 이유로 이스라엘과 그 동맹국들에게 전쟁광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여기서 신화는 제2차 인티파다를 야세르 아라파트가 지원한, 심지어 계획적인 테러 공격이라는 것이다. 진실은 이렇다. 제2차 인티파다는 오슬로의 배신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온 대규모 시위였고, 아리엘 샤론의 도발적인 행동이 더해져 악화됐다는 사실이다. 106-8)


9. 가자 신화


팔레스타인 사람들 사이에서 하마스가 인기 있었던 이유가 오슬로 협정의 성공이나 실패 때문만은 아니다. 이스라엘 점령하에서 살아가는 일상적 괴로움을 해결할 방법을 세속적 현대성을 통해 찾지 못했기 때문에 하마스가 (점령지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많은 이슬람교도의 마음을 사로잡게 됐다. 아랍 세계의 다른 정치적 이슬람 단체와 마찬가지로, 세속 운동이 고용, 복지, 경제적 안정성을 제공하는 데 실패하자 많은 사람들이 다시 종교로 돌아갔다. 종교는 위안을 줄 뿐만 아니라 자선과 연대의 네트워크도 제공했다. 제2차 인티파다 중에 이스라엘이 도입한 새로운 탄압 방식―특히 장벽 건설, 바리케이드, 표적 암살―탓에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에 대한 지지는 더욱 약화되고 하마스의 인기와 명성이 높아졌다. 그러므로 역대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인에게 다른 선택지를 주지 않고, 점령에 저항할 준비가 된 유일한 집단에 투표하도록 몰아갔다고 결론을 내려야 합당할 것이다. 114)


이스라엘 정부의 공식 서사에서 하마스는 가자 지구에서 철수한, 평화를 사랑하는 이스라엘을 상대로 악랄한 행위를 저지르는 테러 조직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평화를 위해 철수했는가? 대답은 전혀 ‘아니오’이다. 오슬로 협정 이전에는 가자 지구 내 유대 정착민의 존재가 복잡한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일단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자, 유대 정착민은 이스라엘의 자산이 아닌 부채가 됐다. 샤론은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이 철수하고 하마스가 부상하면, 이스라엘 시민이 다칠 염려 없이 하마스에게 보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리쿠드당의 좌파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눈에 샤론의 움직임은 평화의 제스처이자 정착민을 상대로 용감하게 대치하는 것이었다. 샤론은 좌파와 중도 우파의 영웅이 됐다. 그때부터 가자 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의 반응과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이스라엘 정책 비판은 평화를 논의할 분별 있고 믿을 만한 팔레스타인 파트너가 없다는 증거로 여겨졌다. 118-22)


샤론도, 그를 따르는 어느 누구도 가자 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전략을 명확히 제시할 수 없었다. 이스라엘인의 눈에 가자 지구는 서안과는 매우 다른 지정학적 실체다. 가자 지구에는 이스라엘이 탐내는 땅도 없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추방해서 보낼 요르단 같은 배후지도 없다. 종족 청소도 여기서는 효과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그럼에도 가자 지구 공격 작전은 모든 영역에서 악화되고 있다. 첫째, ‘민간인’과 ‘비민간인’ 표적 사이의 구분이 사라졌다. 분별없는 살인으로 인구 전체가 작전의 주요 표적이 됐다. 둘째, 이스라엘 군대가 보유한 모든 살상 무기를 확대하여 사용했다. 셋째, 사상자수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마지막으로, 작전이 점차 전략으로 구체화됐다. 이스라엘이 향후 가자 지구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 즉 바로 계산된 대량 학살 정책을 드러낸 것이었다. 하지만 가자 지구 주민들은 계속해서 저항했다. 이스라엘은 더 많은 대량 학살 작전으로 응수했지만, 지금도 그 지역을 차지하지 못했다. 127-8)


PART III. 잘못된 신화: 미래

10. ‘두 국가 해법’이 유일한 길이다


‘두 국가 해법’은 동그라미를 네모로 만들려는 이스라엘의 발명품이다. 서안에 사는 사람들을 배제하고 서안을 이스라엘의 통치하에 둘 방법으로 찾아낸 것이다. 그래서 서안 일부를 자치 지역, 준準 국가로 만든다는 제안이 나왔다. 그 대가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귀환이나, 이스라엘 내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평등한 권리, 예루살렘의 운명, 고향에서 인간으로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희망 모두를 포기해야 한다. ‘두 국가 해법’은 유대 국가가 유대인 문제를 해결하는 제일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에 기초하고 있다. 즉, 유대인은 다른 곳이 아닌 팔레스타인에서만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이 개념은 반유대주의의 핵심에 가깝다. 간접적으로 말하자면, ‘두 국가 해법’은 이스라엘과 유대교가 같다는 가정에 기반해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유대교의 이름으로 하는 일이라 고집하고, 그것이 세계 각국에서 거부당하면 이스라엘뿐 아니라 유대교를 향한 비판이라고 주장한다. 134)


‘두 국가 해법’은 가끔 영안실에서 시체를 꺼내어 잘 차려입히고 살아 있는 존재처럼 내세우는 것과 같다. 생명이 남아 있지 않다고 다시 한 번 입증되면 영안실로 돌아가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을 역사적 실체의 10분의 1로 축소하여 그것을 평화의 지도로 내세웠던 지도 제작법은 영원히 사라지기 바란다. 대체 지도는 준비할 필요가 없다. 갈등의 지형은 자유주의적 시온주의 정치인, 언론인, 학자의 담론에서는 끊임없이 변해 왔지만, 실제로는 1967년 이후 전혀 변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은 항상 요르단강에서 지중해까지의 땅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운명의 변화를 결정한 것은 지형이 아니라 인구 변동이었다. 19세기 말에 이 지역에 도래한 정착 운동으로 인해 지금은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나머지 절반의 사람들을 인종 차별 이데올로기와 인종 격리 정책으로 통제하고 있다. 평화는 인구통계학적 변화의 문제도, 지도를 다시 그리는 문제도 아니다. 이런 이데올로기와 정책을 제거하는 일이다. 135-6)


맺음말: 21세기의 ‘정착 식민지 국가’ 이스라엘


이스라엘, 그리고 그 이전에 시온주의 운동이 누렸던 예외주의는 아랍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 침해에 대한 서구의 비판을 조롱거리로 만들어 버린다. 팔레스타인 인권 침해에 대해 논의하려면, 시온주의 같은 정착 식민주의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를 이해해야 한다. 유대 정착민은 이제 이 땅의 유기적이고 필수적인 일부가 됐다. 그들은 제거할 수도 없고, 제거되지도 않을 것이다. 유대 정착민도 이 지역 미래의 일부가 돼야 하지만, 그렇다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끊임없는 억압과 강탈을 기반으로 해서는 안 된다. 팔레스타인은 비어 있지 않았고, 유대 민족에게는 조국이 있었다. 팔레스타인은 “구원”받은 게 아니라 식민지화됐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1948년에 자발적으로 떠난 게 아니라 강탈당했다. 심지어 유엔 헌장에서도 식민지화된 민족은 해방을 위해 군대까지 동원해 싸울 권리가 있고, 그 투쟁의 성공적인 결말은 모든 주민을 포함하는 민주주의 국가의 건립에 있다. 1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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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 - 트럼프와 1조 달러 전쟁 기계의 야망
윌리엄 D. 하텅.벤 프리먼 지음, 백우진 옮김 / 부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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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군비합중국의 탄생


"미국 대외 정책을 둘러싼 싸움에서는 전쟁으로 이익을 누리는 집단이 거의 언제나 승리해왔다. 오늘날의 전쟁 기계는 아이젠하워 시대보다 훨씬 더 많은 사회 영역을 지배하고 있다. 더 많은 세금을 먹어치우고, 아이젠하워가 상상도 못 했을 규모의 초대형 기업들을 떠받치고, 싱크탱크와 대학, 스포츠, 할리우드, 게임산업, 주류 언론을 통해 광범위한 정치적·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 전쟁 기계의 정치 권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반면에 이 전쟁 기계가 효과적인 국방력을 합리적인 비용으로 제공할 역량을 지녔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정부는 해마다 미군에 더 많은 예산을 쏟아붓고 있는데 왜 얻는 성과는 갈수록 줄어드는 걸까? 물가 상승을 고려해도 현재 미국은 냉전 시절 기록한 최고액보다 1000억 달러를 더 쓰고 있다. 그러나 당시와 비교하면 현역 병력도 절반, 해군 함정도 절반, 공군 전투기도 절반 수준이다. 미국은 거의 1조 달러짜리 전쟁 기계를 만들었지만, 이 기계는 고장 나 있다."(23-4)


1부 고장 난 전쟁 기계


1장 미국은 어떻게 세계 최고의 무기 딜러가 되었나


"미국은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전 세계 무기 시장의 43% 이상을 장악했는데, 이는 러시아의 3배, 중국의 6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미국은 전 세계 107개국에 무기를 공급하고 있으며, 이는 지구상 국가의 절반이 넘는 숫자다. 왜 미국은 그렇게 많은 무기를 판매할까? 국방부나 국무부 관리에게 묻는다면, 미국산 무기가 안정을 강화하고 동맹국이 스스로를 방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미국산 무기는 불안정을 줄이기보다는 오히려 증폭한 경우가 많았다. 이를 뚜렷이 드러내는 증거가 미국의 도움으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와 레바논 등에서 벌이는 전쟁과 미국의 아랍에미리트UAE에 대한 강력한 지원이다. 아랍에미리트는 예멘부터 수단, 리비아까지 중동과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극단주의 세력과 억압적인 반군 조직에 무기를 공급하고 있다. 미국산 무기는 세계 대부분의 분쟁에 불을 지필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병기창”이라는 주장과 달리 비민주적 정권에 너무나 자주 공급된다."(40-1)


"이 치명적인 무기 거래에서 명확한 승자는 무기회사들뿐이다. 전쟁과 전쟁 준비는 미국의 초대형 방위산업 기업들의 생명줄이다. 9·11 이후 지난 20년 동안 상위 5개 방산업체인 록히드 마틴, 레이시온, 보잉, 제너럴 다이내믹스, 노스럽 그러먼은 국방부와 해외 바이어에 대한 판매 계약으로 2조 달러를 나누어 가졌다. 전체로 보면 이 기간에 미국 국방부가 지출한 14조 달러 중 절반이 민간 군수기업으로 흘러들어갔다. 이처럼 터무니없는 이익 하나만으로도 미국이 전 세계에 무기를 보내는 관행을 재고하도록 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다. 바로 방위산업계가 전쟁을 핑계로 오랫동안 원해왔던 특혜를 압박해 얻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방위산업계는 가격 부풀리기에 대한 규제 완화와 해외 판매 승인 절차의 신속화를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대량 생산에 들어가기 전 주요 무기 체계에 대한 시험 같은 핵심 절차를 축소함으로써 국방부의 무기 조달 과정을 더 빠르게 만들 것을 주장하고 있다."(42-3)


2장 ‘민주주의의 병기창’에서 ‘끝없는 전쟁 공장’으로


"이미 1961년 아이젠하워가 유명한 연설을 했을 때조차 미국은 세계의 자유 수호자에서 세계의 전쟁을 생산하는 병영 국가garrison state로 변모할 위험에 놓여 있었다. 무엇보다 최악은 이런 배신의 결과 세상이 미국인 자신들에게 더 위험한 곳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이 위험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영역은 다름 아닌 핵무기 경쟁이었다. 이는 아이젠하워 집권기에 본격 시작되었는데, 합리적인 방위 개념만큼이나 자금 추구 욕구에 따라 추동된 것이었다. 핵무기 예산의 더 큰 몫을 차지하려고 해군과 공군이 벌인 세력 다툼은 명확한 승자를 가린 뒤 끝나는 대신 값비싼 타협으로 마무리되었다. 바로 ‘3대 핵전력nuclear triad’(핵 3축, 핵 3원) 체계였다. 이는 미국이 육상, 공중, 해상 세 축을 기반으로 핵탄두를 발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이런 3축 접근법이 군사적으로 꼭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에 앞서 펼쳐진 온갖 전략적 수사 아래 감추어진 실상은 단지 홍보 경쟁에 불과했다."(63-5)


"3대 핵전력 체계의 공식 근거는 적이 선제공격으로 미국의 전체 핵무기 보유고를 한꺼번에 파괴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근거는 해당 프로그램들이 상당히 진행된 이후에야 마련되었다. 그럼에도 오늘날 3대 핵전력 체계 개념은 미국 핵 정책 논의 속에 깊이 뿌리내려 있어서 워싱턴의 국가 안보 기구 내에서는 사실상 비판이 통하지 않는다. 미국의 무기회사들은 해군과 공군이 다투는 내내 바짝 달라붙어 관여했다. 이들이 핵무기 예산 확대를 위해 가장 노골적으로 압박한 것은, 소련과 미국 사이에 위험한 ‘미사일 격차missile gap’가 존재한다는 점을 대중에게 납득시키려는 캠페인이었다. 그들의 주장은 미국이 선제공격 위험에 놓여 있다는 것이었다. 이 '격차'라는 개념은 주로 군복을 입은 군 고위층과 미국 정보 기관, 군수산업 관계자들의 압력으로 언론과 의회를 통해 널리 퍼졌다. 핵무장 신형 폭격기 제조 캠페인과 더불어 미사일 격차 논란은 군산복합체가 작동한 초기 사례였다."(67-8)


"다음에 이어진 것은 베트남전쟁이었다. 케네디가 깊게 개입한 이 전쟁을 후임인 린든 존슨과 리처드 닉슨이 관장했다. 케네디는 매파로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고, 당시 부통령으로 출마한 닉슨을 능숙하게 제치며 승리했다. 집권 후 케네디는 국방부 지출 확대를 추진했는데, 여기에는 다수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예산도 포함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케네디가 베트남에서 미국 개입 확대의 씨앗을 뿌렸다는 점이다. 그는 베트남 주둔 미군 군사 고문단을 700명에서 1만 6000명 이상으로 늘렸다. 미군의 개입은 1960년대 내내 꾸준히 확대되었고, 그 결과 막대한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베트콩과 북베트남군을 물리치는 데는 거의 성과를 보지 못했다. 곧 미국은 이 전쟁터에서 병력을 철수해야 한다는 절박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래서 50년 뒤 바이든이 그랬듯이 닉슨은 미군 사망을 줄이고 미국 이익을 저비용으로 보존하는 최선의 방법은 무기 판매라고 결론 내렸다."(70-1)


"닉슨은 앞으로 미국은 대규모 병력을 해외에 파병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신 미국은 이란의 샤 같은 ‘대리인’에게 무기를 공급하겠다고 말했다. 대리인에게 해당 지역에서 미국의 이익을 지켜주는 대가로 미국산 무기에 대한 사실상 무제한 접근을 제공하겠다고 설명했다. 닉슨은 예컨대 앞으로 아시아에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 미국의 목표는 “아시아 병사들이 아시아 병사들과 싸우게 하는 것”이지 미군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닉슨의 새로운 정책은 훗날 ‘닉슨 독트린Nixon Doctrine’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지미 카터는 1976년 대선 후보로서 인권을 지지하고 무기 판매를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후 카터 역시 결국 대외 정책에서 군사적인 접근 방식을 취했다. 마지막 국정 연설에서 카터는 미국이 필요하다면 군사력을 사용해 페르시아만에서 미국 이익을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선언했다. 이 입장은 ‘카터 독트린Carter Doctrine’으로 알려지게 되었다."(71-2)


"베를린 장벽 붕괴와 소련 해체 이후 ‘지상군 투입’ 방식의 분쟁 개입에 반대한다고 선언했던 빌 클린턴은 세르비아의 밀로셰비치 정권을 상대로 대규모 폭격 작전을 벌였고, 냉전 종식 후 몇 년 동안 감소했던 국방부 예산을 다시 끌어올리는 과정을 시작했다. 그는 1995년 국정 연설에서 국방부 예산은 건드리지 않은 채 다른 모든 연방 재량 지출 프로그램을 20% 삭감하자고 제안했다. 클린턴은 1994년 말 국방부 예산을 수년에 걸쳐 250억 달러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임기 말에는 6년 동안 1120억 달러 증액을 제안했는데, 이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의 더 큰 예산 증액을 위한 발판이 되었다. 클린턴의 국방 정책 가운데 가장 오래 지속된 것은 방위산업에서 합병을 장려하고 보조하는 정책이었다. 덕분에 록히드 마틴과 레이시온(현 RTX) 같은 거대 기업이 탄생하는 길이 열렸다. 방위산업의 통합은 결과적으로 군수업체들에 더 큰 협상력을 안겨주었다. 주요 방산업체의 수는 51개에서 단 5개로 줄어들었다."(74-5)


"군사주의적인 성향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널리 알려진 대로 클린턴 이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끝없는 전쟁을 시작해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나 부시는 이 분쟁들을 주도한 유일한 인물은 아니었다. 오바마는 이라크 개입 같은 〈어리석은 전쟁〉에 반대하며 선거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집권 후 그는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병력을 증강했고, 드론 공격을 확대했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두 차례에 걸쳐 가장 높은 국방부 예산을 기록했다. 그 결과 수천 명의 미군이 목숨을 잃고 수만 명이 부상당했지만 그 전쟁들을 끝내지도 못했고,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지도 못했다. 대선 유세에서 했던 공약과 반대로 국방부 예산을 증액하는 행태는 도널드 트럼프 시기에도 이어졌다. 2016년 대선 기간과 당선 후 취임하기까지 기간에, 트럼프는 무기 계약업체들이 납세자들을 등쳐먹고 있다며 그들을 단속할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취임 몇 달 만에 그는 바로 그 업체들을 따스하게 감싸안았다."(75)


3장 아마겟돈 속 폭리 취득자들


"핵 시대 초기부터 미국 핵무기 보유량의 규모는 최선의 방어를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에 관한 고려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크게 예산 영역 다툼과 계약 확보 경쟁에 의해 좌우되었다. 잠재적으로 세계를 끝장낼 수 있는 무기들을 만드는 데 얽힌 예산과 이윤, 일자리는 거대한 사업이다. 핵무기 생산에 관여하는 업체들을 비롯한 군수기업들은 2024년 한 해 동안 로비 활동에 1억 4800만 달러 이상을 지출했다. 이들 덕분에 군수기업들은 미국인이 필요로 하지도 않고 가격도 감당할 수 없는 자신들의 무기 체계에 들이는 세금을 쓸어 담기가 대단히 유리해진다. 대륙간탄도미사일 기지를 보유한 지역 사회의 지도자들은 기지의 존재와 향후 대륙간탄도미사일 예산 및 배치가 지역 수입과 고용에 필수적이라고 본다. 노스럽 그러먼 같은 기업들은 대륙간탄도미사일 기지가 위치한 주의 기업들 및 지역 사회 단체들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해왔다. 이런 관계는 무기회사들이 워싱턴 내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는 기반이 된다."(86-90)


"그러나 1950년대에는 중요했을지라도 오늘날의 경제 환경에서는 군사 지출이 지역 경제 활성화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군사 지출이 지역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하지 못하는 것은 그 혜택이 지나치게 제한적으로 집중되었거나, 오히려 건전하고 다변화된 경제 기반을 구축하는 데 방해물이 되었기 때문일 수 있다. 게다가 새로운 대륙간탄도미사일 사업이 이루어진다고 주장되는 32개 주 중 대부분은 극히 적은 일자리만 얻게 될 것이다. 노스럽 그러먼이 주장하는 일자리 1만개가 고르게 분배된다면 주당 약 310개에 불과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부분의 주가 그보다 적을 텐데, 이는 해당 프로젝트 관련 고용의 가장 큰 몫을 차지할 새로운 생산 시설이 유타주에 있기 때문이다. 즉 새로운 대륙간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은 투입되는 수십억 달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일자리만 만들어낼 것이다. 더 중요한 점은 같은 돈을 다른 어느 곳에 쓰더라도 훨씬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93-6)


4장 죽음을 파는 상인들


"‘통합 타격 전투기Joint Strike Fighter, JSF’ 프로젝트는 1990년대 중반에 시작되었는데, 이 프로젝트에서 개발하기로 한 F-35 전투기는 초기에 군수 조달의 미래로 떠받들어졌다. 그러나 초기부터 F-35는 예산 초과와 성능 문제에 시달렸다. 복잡하고 상충하는 요구 사항들이 애초에 이 프로그램에 욱여넣어졌기 때문이다. F-35는 모든 이들에게 모든 것이 되기를 요구받았다. 즉 공군에는 전투기/폭격기, 해군에는 항공모함 이착륙 전투기, 해병대에는 단거리 이륙 및 수직 착륙기가 되어야 했다. 배경이 된 발상은 공통 기종 하나를 각 군의 필요에 맞게 개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F-35는 요구된 임무 중 어느 것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지상군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에는 속도가 너무 빠르고, 많은 폭탄을 탑재하기에는 기체가 너무 가볍다. 공중전에서는 이전 세대 전투기들보다 열세이다. 게다가 유지·보수가 너무 어려워 거의 절반의 시간을 격납고에서 정비받으며 보낸다."(110-1)


"지금까지 록히드 마틴은 자사의 실패에 책임을 지지 않았다.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록히드 마틴과 동업자들은 정부의 감시와 규제를 완화하는 한편 펜타곤 자금을 더 빨리 받아내려고 한다. 이는 업계의 숙원이었는데, 이들은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 상황을 빌미로 이를 되살리고 있다. 방산업계의 요구 목록은 펜타곤 핵심 관리들의 목표와 대체로 일치한다. 여기에는 펜타곤 보조금을 받아 더 많은 무기 공장 짓기, 복잡한 무기 구매 규정을 단순화해 서류 절차를 줄이고 군에 납품되는 무기 체계가 광고한 대로 작동하는지 독립적으로 평가하는 과정 축소하기, 성과와 무관하게 특정 공급업체를 이용하도록 펜타곤을 묶어두는 다년 계약 시행하기, 기업이 정부에 제출해야 하는 가격 정보의 양을 줄여 기본 품목에 과도한 비용을 청구하기 쉽게 만들기, 그리고 미국산 무기를 수입하는 국가들의 인권 기록 심사 기간 단축 등 해외 고객에게 무기를 신속히 공급하는 데서 걸림돌 제거하기 등이 포함된다."(112-3)


2부 전쟁 기계의 비용


5장 해외에서는 끝없는 전쟁, 국내에서는 끝없는 비용


"미국의 군사 예산은 2024년에 거의 9000억 달러에 달했고, 이는 사회보장제도나 메디케이드Medicaid 같은 권리성 지출을 제외한, 연방 정부가 집행하는 모든 활동을 포함하는 재량 예산의 절반을 훨씬 웃도는 비중을 차지했다. 즉 연방 세금 중 교육, 환경 보호, 직업 훈련, 과학 연구, 법 집행 등 다른 주요 정부 활동 전체보다 더 많은 금액이 펜타곤으로 흘러들어간다는 뜻이다. 게다가 9000억 달러는 전쟁 기계의 총예산 비용을 보수적으로 잡은 금액이다. 이 수치에는 펜타곤 예산과 더불어 에너지부의 핵탄두 관련 사업 예산이 포함된다. 그러나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다른 많은 예산 항목들도 존재한다. 여기에는 국토안보부와 보훈부의 예산, 국무부 예산에 포함된 군사 원조와 과거 군사 지출로 인한 국가 부채 이자 부담분이 포함된다. 이렇게 군사 지출을 더 빠짐없이 집계한 연간 총액은 거의 1조 5000억 달러에 이른다. 현재처럼 폭주하는 지출 추세가 이어진다면 머지않아 2조 달러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140-1)


"단지 재정 비용만 걸린 사안이 아니다. 21세기 내내 이어진 미국의 끊임없는 분쟁 개입이 초래한 가장 충격적인 결과 중 하나는 바로 이 전쟁들을 수행한 군인이 입은 피해였다. 최소 190만 명의 참전 용사가 9·11 이후 미국이 치른 전쟁을 겪었고, 7000명이 넘는 미군 병사가 목숨을 잃었으며, 수십만 명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외상성 뇌손상, 심각한 신체 부상으로 고통받고 있다. 한정된 자원을 전쟁 기계에 쏟아붓는 선택은 공중 보건과 영양, 의료, 환경 보호 등 다른 우선 과제들을 고사시킨다. 이러한 분야에 대한 지출 부족은 또 다른 팬데믹 발생 위험, 수천만 미국인의 굶주림, 치료받지 못하는 질병, 더 오염된 공기와 물로 이어진다. 이는 단순히 예산 편성의 불균형 문제가 아니다. 총성이 울리는 전쟁터의 위태로운 목숨과 마찬가지로 소중한 생명이 걸려 있는 문제다. 이 모든 결과로 1억 4000만 명의 미국인이 빈곤 속에서 살거나 작은 위기 하나만으로도 빈곤층으로 전락할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다."(142-3, 146)


6장 해외 군사기지와 군사 과잉 확장의 비용


"수천 명의 병력이 주둔하는 완전한 요새든, 무장 드론의 발진 기지 역할을 하는 소규모 시설이든, 위기 상황에서 미군이 접근해 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비축해두는 ‘전진 배치 거점’이든, 해외 군사기지는 미국의 대외 정책이 실행되는 가장 눈에 띄는 상징이다. 미국의 군사기지는 전 세계 80개국에 걸쳐 750곳이 존재한다. 이 방대한 해외 주둔망을 기반으로 미국은 2021년부터 2023년 사이에 78개국에서 대테러 작전을 수행했다. 게다가 17만 명이 넘는 미군이 상시 해외에 주둔하고 있다. 이 해외 기지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데 드는 연간 비용은 무려 550억 달러에 달한다. 천문학적인 국방부 예산을 밀어 올리는 가장 큰 요인이 바로 이처럼 ‘전 세계를 포괄하는’ 미국의 군사 전략이다. 이 전략의 목표는 언제, 어디서든, 짧은 준비 기간만으로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해외에서 군사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은 전 세계에 걸쳐 있는 기지 네트워크에 단단히 뿌리를 두고 있다."(157-8)


"미국이 전투 병력 파병에는 점점 더 주저하게 되었음에도 군사기지에는 더욱 집착해왔다.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새로운 무기인 드론을 운용하려면 여러 주요 기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직접 개입한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그 결과 오바마 행정부 시절 핵심 정책결정자들은 미국의 대외 정책과 군사 정책을 ‘정치적으로 지속 가능한 전쟁politically sustainable warfare’으로 무게 중심을 옮겼다. 이는 전투 지역에 투입되는 미군 병력을 줄이고 미군의 사상자를 최소화함으로써 본국 내에서 본격적인 반대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낮은 형태의 군사 개입을 뜻한다. 바이든 임기 동안 미국의 가장 눈에 띄는 군사 행위는 동맹국에 대한 무기 지원 확대였는데, 특히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에 수백억 달러 규모의 군사 원조를 제공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판매의 결과는 참혹했다. 무차별 폭격을 부추겨 지금까지 4만 6000명 이상이 사망했는데, 그중 많은 수가 여성과 아동이었다."(172-5)


3부 전쟁 기계의 판매


7장 전쟁 기계의 로비스트들은 어떻게 워싱턴을 설득하는가


"로비스트의 연봉이 아무리 화려하다 해도 그 돈이 수십억 달러 규모의 국방부 계약으로 이어질 수만 있다면 군수업체들에는 한 푼도 아깝지 않은 투자다. 군산복합체가 가진 영향력의 무기는 실로 다양하지만, 다른 어떤 것도 로비만큼 직접 미국 정책 변화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국방부 계약업체들은 영향력 게임에서 거의 비용을 아끼지 않으며, 미국 정책을 자기들 뜻대로 비틀기 위해 소규모 ‘로비스트 군대’를 구축해왔다. 2024년 한 해에만 국방부 계약업체들은 로비에 1억 4800만 달러 이상을 썼고, 로비스트 945명을 고용했다. 이를 모두 합치면 오늘날의 전쟁 기계는 의원 1명당 거의 2명의 로비스트를 고용하고 있으며, 의원 1명당 27만 5000달러 이상을 로비 자금으로 쓰고 있는 셈이다. 하원 의원과 상원 의원 대부분 연봉이 20만 달러 이하라는 점을 고려하면, 국방부 계약업체들이 의회 의원들이 버는 돈보다 더 많은 자금을 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쓰고 있다는 뜻이다."(196-7)


"개별 의원실에서 일하는 보좌진은, 의회 위원회 소속이 아닌 경우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폭넓은 분야를 맡고 있기 때문에 매일 모든 업무에서 전문성을 발휘하기란 불가능하다. 보좌진은 이렇게 경험이 부족하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업무가 많은 가운데, 방대한 법안을 제한된 시간 안에 분석하고 자신이 보좌하는 의원에게 권고안을 제공해야 하는 상황에 종종 처한다. 예를 들어 2024년 국방수권법NDAA(일명 국방정책법안)은 거의 1000쪽에 달했다. 이 수많은 페이지 중 어느 한 문구의 뉘앙스 차이가 상관의 지역구에서 일자리를 늘리거나 잃게 만드는 차이가 될 수 있고, 따라서 재선 여부를 좌우할 수도 있다. 바로 여기서 국방부 계약업체의 로비스트들이 등장한다. 우리가 인터뷰한 모든 로비스트들은 자신들의 일이 개별 의원실, 심지어는 개별 직원에게 맞게 모든 것을 맞춤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반적인 것을 구체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한 현직 로비스트는 말했다."(199)


"이러한 정보는 대단히 귀중할 수 있다. 하지만 결코 공정하지는 않다. 로비스트들은 국가에, 심지어 미군에 최선이 무엇인지를 위해 활동하는 객관적 정보 중개인이 아니다. 그들의 1차 목표는 고객의 이익 증진이다. 어떤 로비스트가 고객의 이익을 희생하면서까지 미국의 국가 안보를 옹호한다면, 그는 곧 업무 경비 계정을 잃게 될 것이다. 만약 국방부 계약업체를 대신해 이루어지는 로비 활동이 미국 국가 안보에 이득을 주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다만 운 좋은 우연일 뿐이다. 이것이 전쟁 기계가 실제로 우리를 더 안전하게 만들지 못하는 핵심 이유다. 애초에 그렇게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은 납세자의 돈이 국방 부문으로 더 많이 흘러 들어가게 하고, 이 흐름과 연결되어 있다면 록히드 마틴의 CEO든 워싱턴 K스트리트(로비회사들이 줄지어 있는 거리)의 로비스트든 누구나 부유해지게끔 고안되었다. 이 시스템은 군에 가장 훌륭한 서비스나 제품을 제공하는 회사를 보상하는 능력주의 체제가 아니다."(200-1)


"국방부 계약업체의 로비스트들은 왜 선거 자금 기부가 선출직 정치인들에게 중요한지, 그리고 더 일반적으로는 의회 의원들과 행정부 관료들이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안다. 왜일까? 대체로 이 로비스트들 자신이 과거에는 의원이었거나 최소한 의회나 행정부에서 일했기 때문이다. 거기서 얻은 지식은 이 전직 관료들을 국방부 계약업체가 탐내는 인재로 만들었고, 업체들은 그들의 정부 시절 급여를 단번에 2~3배로 올려줄 의향이 있다.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국방부 계약업체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활용하는 가장 값진 일자리들은 의원 지역구의 주민들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대신 바로 의원들 자신에게 돌아간다. 의원들은 공직 경력을 내려놓고 이러한 특수 이익을 위해 봉사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군산복합체에 내재된 완전히 합법적인 부패 시스템으로, 민간인과 현역 군인에게 국방부 계약업체와 잘 지내도록 하는 강력한 유인을 만들어낸다. 바로 ‘회전문’이라고 불리는 시스템이다."(203-5)


8장 조작된 합의 : 매수될 준비가 되어 있는 싱크탱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2년 뒤인 2024년 2월. 우크라이나는 미국산 신형 M1 에이브럼스 탱크를 처음으로 전선에 배치했고, 이 탱크는 러시아 진지를 향해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군은 이 신형 탱크를 투입한 지 불과 두 달 만에 철수시켰다. 왜 그랬을까? 거대한 과녁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이 탱크는 러시아 드론의 자폭 공격에 무참히 파괴되고 있었다. 이런 탱크를 또 다른 미국의 ‘탱크’가 열렬히 선전했는데, 바로 싱크탱크였다. 이 비영리 단체들은 미국의 공공 정책에 영향을 미치려 하며, 우리가 TV, 라디오, 신문에서 보고, 듣고, 읽는 많은 전문가를 고용하고 있다. 그리고 M1 에이브럼스 탱크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전문가 가운데 상당수는 탱크 제조사인 제너럴 다이내믹스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은 싱크탱크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는 전쟁 기계가 단지 무기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인위적인 합의까지 만들어내는 또 다른 사례다."(219-20)


"싱크탱크는 흔히 ‘저장 탱크holding tank’ 역할을 하며, 전현직 정부 관리들에게 일종의 경력 보관소 같은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행정부가 교체되면, 특히 백악관을 장악한 정당이 달라지면 정치적으로 임명된 관료들 대부분은 기존 자리를 지키지 못한다. 이런 전직 관료들은 새로운 생계를 찾아야 하고, 그중 대부분은 싱크탱크 부문(또는 앞서 논의했듯 로비 부문)에서 자리를 얻는다. 회전문 반대편에서는 집권한 새로운 행정부가 임명직 자리 수천 개를 채워야 한다. 외교 정책 관련 직위의 경우, 새 행정부는 흔히 국방부 계약업체의 자금을 받는 싱크탱크를 찾게 되며, 이곳에는 공직에 들어가거나 재진입하려는 지식인이 다수 대기하고 있다. 싱크탱크 인사들은 행정부의 요직을 채울 뿐 아니라, 앞 장의 로비스트들처럼 입법부도 채운다. 다만 여기서는 사람 대신 정보로 채운다. 국방부 계약업체의 자금을 받는 싱크탱크 소속 학자들은 외교 정책을 다루는 의회 청문회에 단골 증인으로 불려 간다."(239-40) 


9장 미국 과학의 군사화 : 상아탑 매수하기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군사 연구가 주요 공공 쟁점으로 떠올랐던 마지막 시기는 베트남전쟁 때였다. 당시 진보 성향 학생들은 캠퍼스가 국방부 자금 수주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그 결과 일부 대학들은 국방부와의 관계를 바꾸었다. 어떤 경우에는 MIT의 일부였던 드레이퍼연구소Draper Labs처럼 독립 기관으로 분리되기도 했다. 다만 독립한 기관은 여전히 모교와 비공식 연계를 유지했다. 가장 중요한 움직임 중 하나는 국방부가 베트남에서 대량으로 사용하던 네이팜을 단독으로 공급한 다우 케미컬에 맞선 학생들의 항의였다. 컬럼비아대학교는 1968년 건물 점거와 학생 700명이 부상당한 경찰 진압, 한 학기 전체 수업 중단 끝에 기밀 군사 연구와 캠퍼스 내 군대 모집을 종료하기로 합의했다. 반전 시위는 미국 전역의 캠퍼스로 확산되었다. 학생들과 경찰, 주 방위군 간 충돌은 비극적 결과를 낳았는데, 1970년 5월 켄트주립대학교와 잭슨주립대학교에서 시위 학생들이 사망한 사건이 대표적이다."(250-1)


"그 이후 오랫동안 군사 연구에서 대학이 맡는 역할은 대다수 미국 캠퍼스에서 별로 논의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파괴적 공격에 대한 반발로 대학과 군 사이 유대 관계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이스라엘의 잔혹한 학살 작전에 반대하는 시위가 미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동안, MIT에서는 ‘집단 학살 반대 과학자들SAGE’ 같은 단체들이 이스라엘로부터 군사 연구 자금을 더 이상 받지 말 것을 요구했다. MIT 지도부는 이를 거부했는데, 그러한 요구가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학문의 자유에 민간인 집단 학살에 사용될 수 있는 도구를 만들 자유까지 포함된다고 가정하지 않는 한, 이 논리는 학문의 자유라는 개념을 새롭게 해석한 셈이었다. 완전한 수치가 공개된 가장 최근 회계 연도인 2022년에만 국방부는 미국 대학들에 80억 달러 이상을 군사 연구개발 자금으로 투입했으며, 그중 13개 대학은 각각 1억 달러 이상을 수주했다."(251-2)


"대학에 대한 국방부의 영향력은 흔히 무기 관련 연구와 연결되지만, 사회과학 분야에 대한 자금 지원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국방부가 지원하는 사회과학 연구는 특히 잠재적 적의 행동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연구 의제에는 원래 해외 적대 세력을 상대로 쓰이던 기법을 국내 대중에게 적용하도록 정교화하는 작업도 포함되어 있었다. 심리학자들은 또 다른 논쟁적인 방식으로 동원되었는데, 바로 쿠바 관타나모만수용소, 이라크 아부그라이브교도소 등지에서 CIA의 고문 프로그램에 조언자로 참여한 것이다. 현재로서는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는 사회과학 프로그램 가운데 심리학자들을 동원해 CIA의 고문 체제를 개발, 실행하게 한 것만큼 파렴치한 사례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국방부가 AI로 구동되는 자동화 전쟁을 현재 방식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효과적인 개선책이라고 대중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면, 새로운 국방부 지원 연구는 장차 심각한 인명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269, 273-4)


10장 미디어 포섭 : 프로파간다로 전쟁 기계에 힘 실어주기


"1991년 1월,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베트남전쟁 이후 미국이 수행한 첫 번째 대규모 해외 전쟁이었다. 잔혹하고 파괴적인 베트남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미국 대중은 해외 개입에 염증을 갖게 되었고, 이 현상은 ‘베트남증후군’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국방부와 군 수뇌부, 동맹은 이라크군을 쿠웨이트에서 몰아내는 군사 목표 외에 선전 목표 또한 이루고자 했다. 바로 베트남증후군을 종식시키고 군사 개입에 다시금 긍정적인 이미지를 씌우는 일이었다. 화려한 언변과 강경한 발언이 미국중부사령부 사령관인 노먼 슈워츠코프와 합참의장 콜린 파월의 브리핑을 가득 채웠다. 여기에 더해 미군의 폭탄이 항상 목표를 정확히 명중하는 장면만 보여주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참혹한 현실은 결코 비추지 않는 영상 클립들이 능숙하게 활용되었다. 전쟁을 피 한 방울 보이지 않게 전하는 이런 세련된 첨단 영상은 군사 개입과 정부의 무력 사용 명분 모두에 깊은 회의를 품었던 대중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280-1)


"그러나 군사 분석가 앤드루 바세비치가 지적했듯이 1991년 걸프전쟁은 30년 넘게 이어진 분쟁의 서막에 불과했다. 1990년대에는 군사 개입에서 제재와 비행금지구역 설정으로, 그리고 2003년 이후에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개입과 사담 후세인 축출로 이어졌다. 가장 최근의 중동 장기전 단계에서 미국 정부 관리들이 예측했던 ‘손쉬운 승리’(전직 국방부 관리 케네스 애덜먼의 표현대로라면 〈식은 죽 먹기〉)는 실현되지 않았다. 또한 전쟁이 장기화되자 2003년 침공 이전 부시 행정부 관리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값싸게〉 끝나지도 않았다. 브라운대학교 ‘전쟁 비용 프로젝트’의 분석에 따르면,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20년 넘게 지속된 전쟁의 비용은 무려 2조 9000억 달러에 달했는데, 이는 이라크 개입 직전 부시 행정부의 수석 경제 고문 로런스 린지가 당시 추산한 1000억~2000억 달러를 거의 15배나 초과한 규모였다. 1991년 걸프전쟁(페르시아만전쟁)은 뒤따른 장기전을 무시했을 때만 〈빠른 승리〉였다."(282-3)


"주류 언론이 더 잘하도록 압박하는 것이든, 독립 언론의 청중을 키우고 확산시키는 것이든, 군산복합체를 통제하거나 미국이 직면한 시급한 국내외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든 노력에서 필요한 변화는 군산복합체의 영향력 축소를 넘어선다. 근본 문제는 미국 예외주의라는 개념에 대한 대중의 잘못된 중독이다. 즉 미국의 의도는 언제나 선하고, 미국은 거의 항상 옳으며, 미국은 전 세계에 평화와 민주주의를 확산시킬 특별한 사명을 지녔다는 발상이다. 전쟁과 전쟁 준비보다 외교, 경제, 문화 교류를 중시하는 균형 잡힌 대외 정책이 가져올 다면적인 이점을 대중에게 교육함으로써 그런 환상적 세계관을 상쇄할 필요가 있다. 더 나은 언론 보도는 덜 군사화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성공적 노력 중 하나일 뿐이지만 또한 필수 요소다. 거대한 전쟁 기계와 군사 우선 대외 정책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과 결과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전쟁 기계를 통제하는 데 필요한 민주적 대항 세력을 결집하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298-9)


11장 마음과 정신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 : 할리우드와 전쟁 세탁


"만약 당신이 어떤 스포츠 경기든 관람해봤다면, 가장 오래된 군사 오락 중 하나인 공중 분열식flyover(행사용 편대 비행, 저공 비행)을 바로 눈앞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2024년 슈퍼볼 경기장 상공에서 F-16 전투기 6대가 정렬 대형을 이루며 하늘을 가르듯 날아 내려오면서 창문을 흔들자 관중석에서는 탄성과 환호가 터져 나왔다. 대중의 시선은 하늘을 나는 6대의 전투기에 쏠려 있지만, 실제로 선더버즈는 130명 규모의 대규모 비행대이며, 그들 중 상당수의 임무는 명확히 홍보다. 그리고 그들의 일정은 떠돌이 세일즈맨조차 지칠 정도로 빡빡하다. 이 프로그램에 연관된 모든 이들(선더버즈 조종사, 항공기 정비사, 홍보 전문가, 사진가 등)은 시간 중 대부분을 한 공연에서 다음 공연으로 이동하며 보낸다. 2024년 한 해만 해도 슈퍼볼과 자동차 경주 데이토나 500, 인디애나폴리스 500에서 선보인 공중 분열식 등 전국 각지에서 34차례 공개 행사에 참여했고, 그중에는 20번이 넘는 에어쇼 공연도 포함되어 있었다."(300-1)


"냉전 시기, 아니 그 이후까지도 군의 위상 선전에 영화가 발휘할 수 있는 힘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작품은 단연 〈탑건Top Gun〉이었다. 이 영화는 미군에 매우 중요한 시점에서 등장했다. 극심한 반발을 일으킨 베트남전쟁 후유증에서 벗어나려고 여전히 애쓰는 한편, 소련을 군비 경쟁에 지치게 해 항복시키려는 레이건 행정부의 군비 확장 정책이 한창일 때였다. 실제로 〈탑건〉이 개봉하기 1년 전인 1985년 미국 정부의 국방비 지출은 냉전 기간 전체를 통틀어(물가를 고려하더라도) 최고 수준이었다. 레이건은 소련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펜타곤에는 〈탑건〉이야말로 그 엄청난 군비 지출을 정당화해주는 최고의 선전물이었던 셈이다. 더구나 〈탑건〉은 모병률을 8%나 끌어올렸다. 이는 놀라운 수치였다. 제작진이 사용한 모든 군 장비의 총가치는 수십억 달러에 달했지만, 전체 제작 예산은 약 1500만 달러에 불과했다. 해군은 장비 사용료보다 훨씬 더 값진 대가를 원했다. 바로 시나리오 통제권이었다."(314-6)


"《밀리테인먼트 주식회사》(2009)의 저자인 로저 스탈의 연구는 미군이 할리우드에 얼마나 깊이 개입해왔는지를 이해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요컨대 영화 제작자가 군사 장비나 군의 전문 지식을 활용하고 싶다면 군의 규칙에 따라야 한다. 보통 이 과정에서 엔터테인먼트연락실이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대사를 수정하며, 심지어 영화나 TV 프로그램의 줄거리 자체를 바꾼다. 제작자가 이런 변경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군의 지원을 잃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엔터테인먼트연락실이 이렇게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들의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그들의 ‘장난감(군 장비)’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인터뷰한 여러 엔터테인먼트업계 인사들에 따르면, 오늘날 군과 협력해 영화를 제작할 때 ‘무엇을 해도 되고, 무엇은 절대 해선 안 되는지’는 업계에 잘 알려져 있다. 아예 처음부터 엔터테인먼트연락실이나 각 군의 할리우드 담당 부서가 불쾌해할 만한 내용은 제안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319-20)


12장 군대를 더 ‘디즈니스럽게’ 만들기 : 펜타곤과 게임산업


"2000년대가 시작될 무렵 많은 사람들은 화면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고 그에 따라 신체 활동이 줄어드는 현상을 위기로 보았다. 그러나 미군은 이를 자동화된 전쟁 수행에 필요한 인재를 찾을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 2001년 미국 육군과학위원회는 〈현대 청소년들의 기술과 태도는 그들의 윗세대와 다르고, 이는 미국의 새로운 ‘무국가형 적stateless enemies’과 싸우는 전쟁 수행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연구는 특히 청소년들이 여러 일을 동시에 수행하는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예컨대 음악을 들으면서 휴대폰으로 통화하고, 컴퓨터를 사용하는 능력이다. 이에 따라 미군은 2001년 다음과 같이 결정했다. “군은 더 이상 포신砲身의 물리학을 가르치는 데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근접 시가전에서 매우 빠르게 상황을 식별하고 판단하는 인지적 의사결정 훈련을 시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 훈련의 상당 부분은 신병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상업용 비디오게임을 본뜬 시뮬레이터를 통해 이루어질 참이었다."(329-30)


"게임 기술은 냉전 이후 규모가 축소된 군 조직에 잘 맞았다. 군이 예비군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되는 가운데, 예비군은 시뮬레이션 덕분에 어디에서든 훈련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비용이 절감되었고 예비군 훈련의 부담이 줄었다. 또한 군사 훈련에서 시뮬레이션의 활용이 늘어난 시점에 실제 군사 작전 자체도 점점 게임과 닮아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드론 조종사들인데, 이들은 외국의 전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원격 조종으로 공격을 수행했다. 오늘날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로보틱스 및 무인 시스템 통합 과정RUSIC’이다. 이 과정은 6주간의 드론 전쟁 훈련 프로그램으로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리버티에 위치한 미국 육군 존F.케네디특수전학교에서 진행된다. 이 과정과 다른 훈련 부대를 총괄하는 스티브 슈어맨 소령은 〈처음에 드론을 한 번도 조종해보지 않았던 수련생들은 6주 과정을 거치면 1인칭 시점 공격을 지능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다〉라고 말한다."(333-4)


4부 전쟁 기계의 미래


13장 멋지고 새로운 전쟁 기계 : 빅테크와 군수산업의 미래


"전쟁 기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이 변화를 주도하는 벤처캐피털 펀드들과 방위기술기업들은 조종사 없는 무기 체계와 극초음속 무기, AI가 통합된 통신·통제 시스템 등 많은 기술 변화를 이끌 차세대 첨단 무기를 공급하고자 한다. ‘기적의 무기’ 개발을 통해 군사력 중심의 대외 정책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낯설지 않은 접근 방식이다. 그것은 베트남,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미국이 치른 주요 전쟁에서 반복적으로 실패해온 방식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산업계와 금융권, 국방부 내의 신세대 전쟁론자들은 지난 60년간 전쟁이 남긴 핵심 교훈을 무시하고 있다. 기술만으로는 승리를 보장할 수 없으며, 특히 사회적·정치적·민족주의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힌 전쟁에서는 더욱 그렇다는 교훈을 말이다. 신기술 전사들은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국방부가 록히드 마틴과 RTX, 보잉 같은 거대 방산기업들을 제쳐두고 자신들을 무기 개발의 최전선에 세우기만 하면 된다고 본다."(340, 343)


"팔머 러키는 서른두 살의 억만장자이자 군수산업의 새로운 핵심 주자인 안두릴의 창립자다. 그는 2012년 처음 출시되자마자 큰 인기를 끈 가상현실 헤드셋 개발사 오큘러스 VROculus VR을 매각하면서 억만장자가 되었다. 그는 스물두 살 때인 2014년 오큘러스를 마크 저커버그의 메타Meta에 20억 달러 이상을 받고 팔았다. 차세대 살상 무기를 생산하는 회사를 이끌고 있으면서도 러키는 여전히 게임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게임이라는 환상의 세계를 넘어 현실로 돌아와, 러키는 군사 기술기업을 창업하기로 결심했다.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유명한 검 ‘안두릴’을 회사 명칭으로 정했다. 러키는 실리콘밸리의 논란 많은 군사 계약업자 피터 틸로부터 재정적·도덕적 지원을 받아 안두릴을 설립했다. 틸 역시 공동 창업한 회사 이름 ‘팔란티어’를 《반지의 제왕》에서 가져왔다. 이 소설에서 팔란티어는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파괴 불가능한 돌이다."(349-52)


"안두릴은 공중용과 수중용 드론뿐 아니라 첨단 통신 시스템과 감시 시스템도 제작한다. 그중 가장 야심 찬 제품은 래티스Lattice로, 모든 사용 가능한 정보원을 통합해 군 지휘관의 손에 신속하게 전달하는 정보 수집 시스템이다. 또는 회사 웹사이트에서 말하는 것처럼 〈래티스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규모와 속도로 기계 간 작업을 조율해 복잡한 킬 체인kill chain을 가속화한다.〉 우리가 신중하게 다루지 않을 경우 신세대 군사 기술기업이 생산하는 제품들은 인간의 통제가 거의 또는 전혀 없는 로봇 전쟁을 현실로 만들고, 이는 많은 인명 피해를 초래하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로 이어질 수 있다. 러키는 기술군사주의techno-militarism를 홍보하는 데 거침이 없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회는 언제나 선한 목표를 위해 다른 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에 열정과 흥분을 느끼는 전사 계층이 필요합니다. … 자유를 지키기 위해 폭력의 도구를 만드는 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나 같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352-3)


"다음은 팔란티어의 창립자 피터 틸이다. 그는 실리콘밸리 군사 기술 혁명의 사실상 대부로 불릴 만하다. 팔머 러키, 피터 틸, 일론 머스크와 이들의 동료들은 반정부 정서가 강하고 현실 인식이 왜곡되어 있다. 그렇기에 세계정세가 불확실하고 위험한 이 순간에 미국의 군사 정책을 설계하기에 가장 부적합한 인물들이다. 주요 무기 제조업체들이 선호하는 접근법과 달리, 실리콘밸리의 많은 군사 신기술 옹호자들은 당파성이 철저하고, 도널드 트럼프나 J. D. 밴스 같은 주요 공화당 후보들에게 돈과 영향력을 쏟아붓는다. 이에 비해 록히드 마틴이나 RTX와 같은 기업들은 양쪽 정당의 관계자들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 이는 정치적 우위가 언제 바뀌더라도 여전히 영향력 행사가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더 균형 잡힌 접근 방식을 틸과 같은 극단적 자유지상주의자libertarian들은 탐탁지 않게 여긴다. 이들은 기술기업이 사실상 어떤 업무에서든 정부를 능가할 수 있다고 믿는다."(355-6)


14장 전쟁 기계에서 평화 기계로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평화 네트워크다. 이 네트워크는 군사주의를 직간접으로 다루는 다양한 단체와 운동이 결집한 형태여야 한다. 다시 말해 새로운 평화 네트워크는 국경의 군사화와 경찰의 군사화, 예산 우선순위의 군사화, 할리우드의 군사화, 대학의 군사화, 그리고 온실가스 배출 주범이자 석유 국가들의 수호자로 기능하는 펜타곤으로 인해 악화된 기후위기의 군사화까지 망라하는 군사주의의 모든 형태를 변혁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이처럼 더 큰 규모의 평화 네트워크가 필요한 것은, 미국 사회의 군사화를 되돌리기 위해서는 막대한 국민적 압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 워싱턴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하고 있으며 중국과 관계에서 점점 더 군사화된 접근을 하고 있는데, 이는 국방부 예산에서 민생을 위한 지출로 방향을 전환하는 데 장애물이 되고 있다. 전쟁 기계는 사실상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어 있으며, 이를 되돌리려면 사회 전체의 노력이 필요하다."(375, 378)


"중국의 경우 미국에 대한 가장 큰 도전은 군사 분야가 아니라 정치와 경제 분야다. 핵무장을 한 대국과 그 나라 앞마당에서 벌이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무장을 강화하는 것은 위험하며, 심각한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미중 간 충돌은 핵 대결로 비화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모든 당사자에게 재앙이 될 것이다. 더 나은 길은 대만의 지위, 핵무기 정책과 배치, AI가 통제하는 로봇 무기 같은 신기술의 규제 방안 등에 대해 두 나라가 진지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다. 또한 기후변화 억제와 미래 팬데믹 방지, 세계 경제 안정이라는 과제를 진정으로 해결하려면 미중 간 협력이 필수적이다. 미래를 위한 구상과 그것을 정책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지금 가장 결여된 핵심 요소가 힘이다. 군산복합체가 지닌 막대한 권력과 영향력을 상쇄할 만큼의 정치적 힘 말이다. 이 힘은 놀랍게도 우리 각자에게서 시작된다. 이웃인 우리, 노동자인 우리, 안전하고 번영하는 국가와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의 동반자인 우리에게서 나온다."(380-2)


에필로그 : 머스크 · 트럼프 시대의 전쟁 기계


"트럼프의 과거 행적(예컨대 북한과 핵 감축 대화를 하다가도 〈화염과 분노〉로 위협하던 행태)을 보면, 러시아와 중국을 상대로 한 복잡한 핵 협상에서 일관된 노선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그가 2기 취임 한 달도 안 되어 국제무대에서 핵 평화 중재자 역할을 자처한 것은 그런 이미지를 취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했음을 보여준다. 핵심 질문은 이렇다. 트럼프 지지층 중 반전 성향의 인사들이 전통적인 군축 단체나 진보 진영과 연대해 국방비 지출과 핵 정책 문제에서 정부를 압박할 수 있을까? 미국 사회의 깊은 분열을 고려하면 이런 좌우 연대는 실현 가능성이 낮을지 모른다. 하지만 서로 다른 정치 진영의 여러 단체가 독립적으로라도 군산복합체의 확장을 제한하라고 요구한다면 실제로 변화 가능성이 생길 수도 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것은 바로 ‘지금 당장의 긴박함’이다. 앞으로 몇 년 사이에 우리가 이 과업을 이루어낼 수 있을지 없을지가 판가름 날 것이다."(3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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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보수 본능 - 자본주의, 기독교, 음모론, 민족주의, 반페미니즘을 추앙하는 사피엔스의 본성에 대하여
최정균 지음 / 동아시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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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도대체 보수란 무엇인가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극우가 아니라 보수 전체다. 극우는 단지 보수의 극단적인 형태일 뿐이다. 어떤 이들은 다른 이들에 비해 더 강한 보수적 성향을 타고났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둘은 정도의 차이일 뿐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생물학을 따른다. 또한 같은 사람일지라도 그가 처한 환경이나 사회적 상황에 따라 보수에서 극우로 발전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바로 이러한 마땅한 의심으로 보수 전반을 평가하고자 한다. 중도적인 보수주의자들은 스스로가 ‘합리적’이라며 극우와 선을 긋는다. 그러나 우리가 보수의 이념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판단한다면, 그것은 중도 보수나 극우나 똑같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다만 그 신념에 얼마나 매달리는가 또는 그 신념을 어떻게 실현하려 하는가 하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보수의 이념이 합리적이지 않다면, 애당초 합리적인 보수란 존재할 수 없다. 온건하기는 하지만 합리적이지 않은 보수와 비합리적인 데다가 과격하기까지 한 보수만 있는 것이다. 7)


1장 보수의 심리: 그들이 지키려는 것은 따로 있다


정치 성향과 관련해 오랜 기간 체계적으로 연구된 대표적인 세 가지 심리학적 기제는 체제 정당화system justification , 사회 지배 지향성social dominance orientation , 그리고 우익 권위주의right-wing authoritarianism다. 흥미로운 것은 주어진 체제를 정당하게 여기는 것, 사회의 지배 구조를 옹호하는 것, 그리고 권위주의적인 성향은 모두 보수의 특성이다. 이 세 가지 가운데 보수의 사전적 의미, 즉 전통을 지킴으로써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고자 하는 경향과 가장 잘 부합하는 것은 체제 정당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보통 기득권층이 체제를 정당화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회적 약자나 체제에 피해를 입는 이들도 체제를 정당화할 수 있다. 바로 이 문제가 체제 정당화 이론의 핵심이며, 존 조스트John Jost가 처음 연구를 시작하게 된 동기이기도 하다. 정당화, 즉 어떤 생각 또는 행동 유형에 정당성을 부여하거나 지지하는 태도는 여러 사회심리학 이론들의 기반이 되어왔다. 14-5)


이러한 심리는 크게 세 가지 형태, 즉 자기 정당화, 집단 정당화, 그리고 체제 정당화로 구분할 수 있다. 자기 정당화는 기득권자들이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고정관념을 활용하는 경우에 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사회적 혹은 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가난한 사람들은 게으르고 그 결과로서 가난을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하다는 고정관념을 가질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집단 정당화는 자기 정당화를 확장된 자아, 즉 자신이 속한 집단으로 확대한 개념으로, 자신과 사회 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 구성원들의 행동을 방어하는 상황에서 주로 나타난다. 집단 정당화 과정에서는 직접 대면해 본 적 없는 다른 집단에 대해, 자기 집단 속 다른 이들의 고정관념을 공유하는 일도 일어난다. 이와 달리 체제 정당화는 비주류 집단이나 소외 계급이 스스로에게 이득이 되지 않거나 해를 입는 상황에서도 기존 체제를 수용하거나 심지어 옹호하는 현상을 다룬다. 체제 정당화는 자기 정당화나 집단 정당화보다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15-6)


우리가 경험해 아는 보수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 어떤 내재적인 가치관, 신념, 심리적 기조를 지니고 있다. 게다가 적극적이거나 능동적인, 때로는 과격한 행동까지 동원함으로써 사회나 체제의 변화를 주도하거나 급진적으로 뒤바꾸기도 한다. 반대로 현실의 진보 역시, 사전적인 의미와 달리, 특정 가치관과 신념을 가지고 체제의 변화에 격렬하게 저항하기도 한다. 따라서 체제 정당화가 사전적인 보수와 일치할지는 몰라도 실제 보수와는 일치하지는 않는다. 보수를 사전적 정의나 체제 정당화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는 보수적인 이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편견, 혐오가 그들의 본성과 같이 너무나 확고하며 때로는 비이성적일 만큼 과격하고 위험한 행태로까지 나타난다는 것을 우리가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들이 기를 쓰고 고수하는 것은 단지 그들의 뿌리 깊은 본능일 뿐, 무슨 고상한 인식론적, 실존적, 관계적 동기를 가지고 체제를 지키려 한다는 고차원적인 설명은 그저 잘 포장된 핑계로 들릴 뿐이다. 17-9)


사회 지배 지향성과 우익 권위주의 이론에서는 진화의 결과로 나타난 인간 본성을 중요한 요인으로 간주한다. 사회 지배 지향성은 특정 개인이나 계층이 다른 이들을 지배하는 것을 옹호하는 성향을 말한다. 즉, 힘과 능력에 기반한 위계를 지지하는 폭넓은 지향성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 지배 지향성이 높은 사람들은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한 것으로 여기며 계층적 질서를 선호한다. 한편 우익 권위주의는 사회적으로 부여된 권위를 인정하고 그에 복종하며, 권위에 반하는 이들을 배척하고, 기존의 규범과 전통을 따르는 성향을 말한다. 이는 크게 세 가지 요소로 나뉜다. 첫째는 권위에 대한 순응이다. 정치적, 종교적, 군사적 권위 등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경향을 말한다. 둘째는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들에 대한 공격성이다. 체제에 반하는 개인이나 집단을 강하게 배척하며, 강력한 법과 질서를 통한 체제의 유지를 원한다. 셋째는 전통적 가치관과 사회적 관습을 고수하려는 태도다. 19-20)


사회 지배 지향성은 세상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정글로 인식하게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힘 있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믿음으로서, 이들은 타인을 지배하고 우위에 서려는 동기를 지속적으로 갖는다. 이러한 세계관을 가진 이들은 사회적 불평등과 권력의 차이를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것으로 여기며, 부자나 기업에 대한 세금 인상, 복지 확대, 무상 또는 평준화 교육과 같은 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반면 우익 권위주의는 세상을 위험하고 위협적이며 예측 불가능한 곳으로 인식하며, 질서와 안정, 기존 규범을 중시한다. 따라서 새로운 것을 경계하고 규칙을 중시하는 성격적 특성과도 연결된다. 사회 지배 지향성이 주로 경제적 측면을 중심으로 형성된다면, 우익 권위주의는 전통적 가치, 국가 안보, 사회 규범 등에 대한 태도를 설명한다. 과학에 대한 보수의 부정적인 태도도 우익 권위주의로 설명할 수 있다. 우익 권위주의는 주로 사회적 위협을 인식했을 때 촉발된다. 20-1)


사회 지배 지향성과 우익 권위주의는 인간의 진화적 본성을 비중 있게 다룬다. 이것이 체제에 대한 유연한 심리적 반응에 더 큰 무게를 둔 체제 정당화 이론과의 차별점이다. 그러나 집단 수준에서 유리한 어떤 형질이 진화적으로 선호된다는 가정은 생물학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기존 체제를 합리화하거나 우월성과 능력에 따른 위계와 차등적인 분배를 옹호하며 사회적 관습, 규범, 질서를 지키고자 하는 심리의 기저에 진화적 압력이 작동했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체 수준에서 일어났어야 한다. 이렇게 개체 수준의 진화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종교성이다. 우리 선조들은 적과 포식자를 탐지하거나, 자연 현상과 사건들의 원인을 추론하거나, 싸울 것인지 협력할 것인지를 두고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인지 능력이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행위자 탐지agent detection, 인과관계 추론causal reasoning, 마음 이론theory of mind이 초자연적 존재인 신에게 투영된 것이 종교의 기원일 수 있다. 24-5)


# 보수의 심리 

1. 그저 본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구축된 것이 우리의 사회 체제다. 혁명은 예외적이며 일시적이다. 이것이 보수가 기성 체제를 옹호하는 이유다. 

2. 보수가 지키려 하는 것은 체제가 아니라 본능이다. 체제를 정당화하는 동기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을 정당화하는 체제가 존재하는 것이다. 

3.  사회 지배 지향성은 돈과 권력, 우익 권위주의는 권위와 관습에 대한 노예근성이다. 권위와 비교해 권력은 더 동물적이다. 고로 권력의 논리에 사로잡힌 현대판 노예들이야말로 야만적인 상태에 놓여 있다. 


2장 보수의 뇌: 참을 수 없는 불확실성의 두려움


내재성 휴리스틱inherence heuristic은 사람들이 어떤 현상의 원인을 내재적인 속성 때문이라고 간단히 추론해 버리는 인지 전략으로, ‘원래 그렇다’ 혹은 ‘그럴 수밖에 없다’라는 식의 본질주의적 사고방식을 말한다. 많은 현상은 다양한 외적 요인들이 작용해 발생하지만 그러한 정보 수집과 해석에 노력을 들이는 대신, 상대적으로 쉽게 얻을 수 있는 내적 요인으로 설명함으로써 인지적 종결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다. 내재성 휴리스틱과 유사한 개념으로 가격-품질 휴리스틱price-quality heuristic이 있다. 한마디로 어떤 상품이 값비쌀 때 곧바로 그것이 우수한 품질이나 성능을 지녔을 것이라고 추론하는 것이다. 상품의 품질을 제대로 평가하는 것은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이기에, 제품이 질적으로 우수하기 때문에 높은 가격이 매겨져 있다고 간단히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심피언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 사용하는 내재성 휴리스틱은 우리의 본능과 같아서 매우 어린 시기부터 작동하기 시작한다. 29-30)


그런데 휴리스틱에 대해 심리학에서 그다지 주목되지 않은 것이 그것의 적응적 측면이다. 여러 사람에게 어떤 인지적 성향 혹은 선호가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그에 대한 진화적 기원이 있음을 시사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윈의 성선택sexual selection  이론과 행동생태학자 아모츠 자하비Amotz Zahavi의 핸디캡 이론handicap theory 을 알아야 한다. 유성생식을 하는 동물들을 살펴보면 크고 화려하며 노래하거나 춤추는 것은 거의 예외 없이 수컷이다. 여기서 다윈은 생존에 불리해 보이는 수컷의 형질과 행동이 암컷에게 짝짓기 상대로 선택되는 면에서는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다윈의 이론에서는 생존에서의 불리함과 번식에서의 유리함을 연결하는 메커니즘이 확실하지 않았다. 이 빠진 퍼즐 조각을 맞춘 것이 바로 핸디캡 이론이다. 자하비는 생존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핸디캡 그 자체가 암컷이 수컷을 선택하게끔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값비싼 신호costly signal’라고 불렀다. 32)


미국의 진화심리학자 제프리 밀러Geoffrey Miller는 이러한 성선택과 신호 이론의 관점으로 인간 고유의 자질들을 설명하고자 했다. 밀러는 그의 저서 『연애』에서 인간의 복잡한 특성들을 짝짓기 경쟁의 부산물로 보면서, 인간이 생존 기계가 아닌 연애 기계라고 주장한다. 지능, 창의성, 예술적 감성, 유머 감각 등은 모두 생식 성공을 위한 신호로 작동하며, 따라서 진화적인 적합도 지표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밀러는 더 나아가 『스펜트』에서 비싼 차나 미술 작품 등을 구매하는 현대인의 과시적 소비 행동도 이러한 신호 전략의 일부라고 설명한다.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 은 일찍이 그의 명저 『유한계급론』에서 이러한 과시적 소비를 비판한 바 있다. 이처럼 동물로서 우리 인간은 다른 개체가 과시하는 속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쉽도록 진화해 왔다. 이것이 바로 내재성 휴리스틱이 타인을 대상으로 작동할 때 우리 안에서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33-4)


뇌의 정보 처리와 추론 방법을 설명할 때 휴리스틱 이론이 직관에 기반한다면, 베이지언 뇌Bayesian brain 이론은 확률에 기반한다. 베이지언 뇌에서 확률은 사람들이 특정 사건이나 명제에 대해 가지는 신념도 혹은 불확실성에 대한 주관적 평가를 뜻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내일 비가 올 확률이 80퍼센트라고 말할 때, 주관적 베이즈주의자는 그 사람이 내일 비가 올 것을 80퍼센트 확신한다고 해석한다. 뇌는 세상에 대한 선험적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베이지언 통계에서 사전 확률prior probability에 대응한다. 그리고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뇌는 믿음을 조정하는데, 이는 이론에서 사후 확률posterior probability에 대응한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사람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 나올 확률이 똑같이 0.5라고 생각한다. 반면 편향을 가진 사람은 동전이 조작되어 앞면이 나올 확률이 0.8이고 뒷면이 나올 확률이 0.2라고 믿는다. 이렇게 사전 확률에 차이가 있으면 같은 결과를 가지고도 사후 확률이 다르게 계산된다. 35-6)


보수적 베이지언 뇌가 지닌 선험적 믿음의 방향성은 혐오, 행동면역계, 교감신경의 진화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생존에 필수적인 능력들 중 하나는 위험한 대상을 재빨리 인식하고 그에 대응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복잡하고 정교한 이성적 판단을 내리기보다 단순하고 즉각적인 감정적 반응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위험한 것을 안전하다고 착각하는 것보다는 안전한 대상을 위험하다고 착각해 과잉 대응 하는 편이 생존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불확실한 대상에 대한 유전자의 두려움이 진화 과정에서 혐오의 감정으로 둔갑한 것이다. 이렇게 진화한 심리적, 행동적 기제를 ‘행동면역계 be-havioral immune system’라고 한다. 즉, 행동면역계는 병원균의 가능성을 알리는 지각 신호에 반응해, 혐오와 같은 심리 반응이나 회피와 같은 행동 방식을 유도한다. 최근에는 행동면역계가 분자와 세포 수준에서 작동하는 생리학적 면역 반응과 연결된다는 보고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37)


여러 뇌 영상 연구들에서 발견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전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과 뇌섬엽insula cortex이라는 뇌 부위의 역할이다. 먼저 강한 보수 성향이 더 큰 편도체amygdala로 나타났다면, 더 강한 진보 성향은 더 큰 전대상피질의 부피로 나타났다. 또한 보수에게서 편도체가 활성화되는 행동실험 상황에서 진보 성향의 사람들은 뇌섬엽이 더 많이 활성화되었다. 전대상피질과 뇌섬엽의 기능은 경제적 의사 결정, 예컨대 자원을 분배하는 상황에서도 나타난다. 이에 관한 대표적인 실험이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이다. 여기서 참가자들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제안이 불공정하다고 느낄 경우 그 제안을 거절한다.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본인에게 금전적으로 더 이득일지라도 말이다. 이렇게 불공정한 제안을 받을 때 전대상피질과 뇌섬엽이 활성화된다. 이는 공정성에 대한 의식이 단순히 손익 계산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경생물학적 기반을 가진 정서적 반응임을 시사한다. 41-2)


쉽게 말해, 이 뇌 기관들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감지하고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상충하는 정보, 기대를 저버리는 불공정, 사회적 부조리와 고통 등을 모두 오류로 인지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종교적 신념이 갈등 탐지 기능을 약화시킨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종교적 개념에 노출된 신앙인들의 뇌에서는 전대상피질에서 발생하는 오류 반응이 약화된다. 즉, 종교적 신념이 오류에 대한 불안 반응을 완충시킴으로써 갈등을 회피하거나 외면하게 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종교의 성인들을 우러러보는 이유는 인간 세상의 부조리와 고통을 깨닫고 그것을 초월하는 해탈의 길을 제시하거나, 심지어는 죽음을 감수하고 그에 맞서 투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현대 종교의 교리는 신앙인들의 종교성만을 자극하며 세상의 아픔을 회피하거나 정당화하게 하는 심리적 방어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종교가 점점 사회적 영향력을 잃어버리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42)


# 보수의 뇌

1. 보수의 뇌에서 휴리스틱이 많이 사용되는 이유는 불확실한 상태를 견디지 못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빨리 결론에 도달하고자 하는 인지적 ‘종결 욕구’ 때문이다. 

2. 의식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인간의 휴리스틱 본능은 왜곡된 능력 과시마저 정직한 신호로 착각해 받아들이게 한다. 이처럼 값비싼 신호가 교란된 상태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기득권층이다. 

3. 기존 신념을 고수하는 보수적 베이지언 뇌는 불확실한 대상을 무조건 과잉 경계 하는 진화적 습성에서 비롯한다. 이러한 편향성이 끼치는 폐해는 인공지능의 문제보다 더 시급하게 다루어야 할 ‘자연 지능’의 현실적인 위험이다. 


3장 보수의 유전자: 대대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들


인간의 행동과 같은 어떤 형질들이 복잡해 보이는 이유는 유전자로부터 그 형질까지의 경로가 길고 복잡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 방식으로는 생명체가 유전자의 조절하에 제대로 작동할 수 없고,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도 작동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실험실에서 특정한 유전자형을 도입해 형질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는 것처럼, 자연적으로 생기는 유전자형도 형질에 곧바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오히려 형질의 복잡성은 여러 유전자들이 병렬적으로 함께 작용하기에 나타난다. 복잡한 형질일수록, 혹은 더 많은 유전자가 관여할수록 개별 유전자의 영향력은 작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 개별적인 영향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이 환원주의적 접근이 가능한 이유다. 모든 자연 현상은 개별 요소들로 환원할 수 있기에 자연과학은 환원주의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환원되지 않는 창발 현상에서도 개별 요소들의 영향력이 존재한다. 다른 유전자형을 지닌 사람들이 같은 환경 조건에서도 분명한 표현형의 차이를 보이는 이유다. 47-8)


인간의 공격성과 지배적 행동 중 일부는 성적인 행위의 일환으로 추정된다. 또한 편도체와 교감신경이 주도하는 불안 및 공포 반응도 출산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환경적 불안정성이 출산율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건강 기대수명이 짧고 평균 소득 수준이 낮은 지역이 첫 출산 연령이 더 낮고 자식의 수가 더 많다. 그런데 주관적인 불안감도 출산 욕구에 영향을 준다. 예컨대 자연재해나 지역사회에 대한 테러를 경험한 경우, 거주지 인근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 경우와 같이 불안 및 공포 반응이 유도되는 환경에서는 임신 욕구가 증가하고 실제 출산율이 늘어난다. 또한 단순한 심리적 조작으로 사망 위험성을 인지하게 하는 것만으로 이상적이라고 여기는 자식의 수가 많아지고 첫 출산 연령이 낮아진다. 자신의 생존이 불확실하다고 느낄수록 번식을 통해 빨리 유전자를 남기고자 하는 욕구가 발생하는 것인데, 우익 권위주의 성향의 사람들이 그러한 경향을 더 강하게 드러낼 것이다. 52)


한편, 기존 연구들에서 정치성과 관련하여 직접 다루지 않았으나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인자 중 하나가 옥시토신 oxytocin 이다. 흔히 ‘사랑 호르몬’ 혹은 ‘모성애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옥시토신은 사회적 심리와의 연관성이 많이 알려져 있으며, 보수 성향을 대표하는 뇌 구조인 편도체와 관련해서도 다수의 연구가 이루어졌다. 옥시토신은 우익 권위주의가 추구하는 내집단 중심주의와 깊은 관련이 있다. 우익 권위주의는 외집단을 위협으로 간주하며 그에 맞서 내집단 구성원들의 정체성을 고취하고 협응을 강화하려는 속성을 가진다. 실제로 우익 권위주의와 내집단을 우선시하는 태도에는 같은 유전학적 요인이 함께 작용한다. 옥시토신 회로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유전자들이 여기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성향을 다른 말로 ‘지역적 이타주의parochial altruism’라고 표현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지역’은 물리적인 의미의 지역만이 아니라 특정한 공동체, 집단, 계층, 문화권 등을 포함한다. 53)


한편 사우스웨스턴대학교 연구진의 조사에서 진보 성향을 설명하는 도파민 수용체는 균형 선택의 흔적을 보였다. 여기서 ‘균형 선택balancing selection’이란 어떤 유전자형이 유리한 상황에서는 점점 많아지다가 상황이 바뀌면 반대로 다시 줄어들기도 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지능의 역할이 한층 중요해져왔다는 맥락에서 진보 성향을 대표하는 뇌 부위인 전대상피질과 뇌섬엽이 지능과 관련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이들은 과거의 경험이나 지식에 의존하지 않고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사고 능력인 유동성 지능fluid intelligence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동성 지능은 선천적 요인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어린 나이에 활발하게 작동하는 반면, 반대 개념인 결정성 지능crystallized intelligence은 후천적 경험을 바탕으로 나이가 들수록 발달한다. 그러므로 문화의 발전으로 생겨난 새로운 생존 기술을 어릴 때부터 효과적으로 습득하기 위해 주로 요구된 것은 유동성 지능이었을 것이다. 56-8)


요컨대 보수적 본능이 인간 역사에서 대체로 우세하게 작용한 것과 비교해, 진보 성향을 설명하는 유전자들은 지금으로부터 머지않은 아주 가까운 시기에 이르러서야 활성화된 것으로 보인다. 문명의 발전은 생존과 번식에 대한 자연선택의 압력을 완화했고, 그 결과 보수적 본능이 약한 이들도 점차 더 많이 살아남게 되었을 것이다. 예컨대 편도체가 주관하는 교감신경, 싸움-도주 혹은 돌봄-방어 반응, 행동면역계 등의 작동이 약한 이들도 살인과 전쟁이 줄어든 사회에서, 그리고 감염 질환을 치료하는 의학이 발전한 상황에서 더 높은 수준의 생존 가능성을 확보하게 되었을 것이다. 아울러 전대상피질과 뇌섬엽 등이 매개하는 유동성 지능 역시 문명화된 환경에서 생존과 적응에 더욱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의 생존을 수동적인 결과로 보아서는 곤란하다. 인간의 자부심은 자연적으로 주어진 조건을 뛰어넘는 데서 비롯한다. 인간의 문명은 자연을 넘어서기 위한 창조적 몸부림의 산물이다. 58)


# 보수의 유전자

1. 세로토닌, 옥시토신, 리포칼린 등을 둘러싼 유전자들의 생물학적 기능과 진화적 양상, 출산율 통계 등은 보수의 유전자형이 생존과 번식에 기여했음을 보여준다. 

2. 성공적으로 진화한 ‘다정한’ 자들의 사회성이란 편협한 이타주의, 집단 이기주의, 권력과 위계에 대한 복종에 불과하며, 그들이 잃어버린 공격성은 불의에 맞서는 데 필요한 투쟁심이다. 

3.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자부심은 자연적으로 주어진 조건을 뛰어넘는 데 있다. 반면 진화에서의 ‘적응’이란 인간 조건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한 몸부림 없이 자연에 수동적으로 굴복하는 ‘순응’을 말한다. 


4장 보수의 환경: 젊어서나 늙어서나, 부유해도 가난해도


같은 유전자형이라도 다른 환경 조건에서는 다른 표현형으로 나타날 수 있다. 유전자-환경 상호작용에 관한 연구에서 세로토닌이 주관하는 위계적 행동과 우울증 간의 연관성은 진화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의 데이비드 린든David Linden 교수가 『우연한 마음』에서 설명했듯이, 학자들은 우울증과 같이 생존과 번식에 불리해 보이는 감정이 왜 지금까지 남아 있는지에 대한 몇 가지 가설을 제시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사회적 지위가 낮은 경우에는 활력 없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생존에 유리하다는 가설이다. 이러한 상태가 자신의 공격성을 줄이는 한편, 지위가 높은 개체로부터 공격당할 가능성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지위가 낮아질수록 그에 따라 세로토닌 수치가 낮아지므로, 세로토닌 부족이 우울증을 유발하는 것은 그러한 적응상의 이점 때문일 수 있다. 세로토닌 회로 체계가 발달시켰다고 하는 소위 ‘친사회성’과 공격성 감소라는 이면에는 우울증이라는 비극이 있는 것이다. 62-3)


반대로 세로토닌의 활성이 너무 높은 경우도 문제가 된다. 5-HTT에는 두 가지 유전자형이 있는데, 유전자형에 따라 세로토닌 재흡수 기능이 달라 세로토닌의 활성 정도도 다르다. 그런데 세로토닌 활성을 강화하는 유전자형을 지닌 이들에게서 편도체의 공포 반응이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스트레스에 더 과민 반응 하는 것이다. 과거와 달리 현대사회에서는 일상적인 갖가지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편도체의 교감신경이 싸움-도주 반응을 유발하기에, 5-HTT 유전자형에는 ‘예민한 유전자grouchy gene’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예상대로 예민한 유전자를 지닌 이들이 여러 우울증 척도에서 높은 수치를 보였다. 그러나 삶에서 경험한 스트레스 사건의 수가 많은 경우에만 그러했다. 최근에 이루어진 또 다른 메타분석에서는 스트레스 상황에 놓인 기간, 최근에 겪은 스트레스 사건이 언제였는지와 같은 시간적 요소도 작용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요컨대 우울증이 유전자, 환경, 시간의 삼중 상호작용에 따른 결과라는 것이었다. 63-4)


남성들이 보이는 보수 성향이 주로 경제와 관련해 드러난다는 점은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성별에 따른 정치 성향 차이의 상당 부분은 경제적 보수주의인 사회 지배 지향성으로 설명되는 반면, 사회적 보수주의를 나타내는 우익 권위주의에서는 남녀 간에 뚜렷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다. 흥미롭게도, 우익 권위주의는 연령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위험’이라는 관점에서 형성되는 우익 권위주의의 근간에는 보수적 베이지언 뇌의 작용, 교감신경의 싸움-도주 반응, 옥시토신의 돌봄-방어 반응 등으로 매개되는 생존 본능이 있다. 위협에 대한 신체적 대응이 점차 둔화되는 고령층의 보수성이 사회적 보수주의로 이어지는 이유라고 하겠다. 한편 ‘경쟁’이라는 관점에서 형성되는 사회 지배 지향성에는 내재성 휴리스틱과 신호 체계, 세로토닌, 페로몬 등이 주관하는 번식 본능이 있다. 이는 성공과 쟁취의 욕망으로 발현된다. 따라서 남성들, 특히 젊은 남성층의 보수성은 능력주의 기반의 경제적 보수주의로 나타난다. 71-2)


젊은 남성들의 보수화와 관련해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남성이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들의 번식 경쟁력에 대한 전망이 어두운 가정은 딸을 선호하게 되는데, 전 세계적으로 자유경쟁이 심화되어 감에 따라 이런 현상이 보편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부모가 아들을 원한다는 이유로 태어나지 못하는 여아의 수가 무려 8분의 1로 줄어들 만큼 남아 선호도는 확연한 감소 추세다. 사실 보수를 자칭하는 젊은 남성들의 대표적인 특징이 바로 자신들을 사회적 약자 내지는 피해자로 여긴다는 점이다. 가정, 또래 관계, 학교, 직장, 혼인 시장 내에서 능력에 따라 남자들을 평가하는 인간 본성이 여전한 가운데, 신자유주의의 경제 이데올로기는 이제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자 생활 양식으로 곳곳에 스며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의 학업 성취와 사회적 성공이 일부 남성들의 부진을 더욱 부각시키면서 그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압박감이 심화된 것으로 보인다. 72)


이는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적 성향을 띠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대역폭 세금 bandwidth tax’이라는 개념은 인지적 자원에 부과되는 보이지 않는 세금을 의미한다. 즉, 빈곤한 상황이 정신적 여유 혹은 에너지를 고갈시켜 인지 기능을 저해하는 상황을 표현하는 말이다. 이렇게 인지 자원이 고갈되면, 기존의 믿음을 고수하는 보수적 베이지언 사고가 지배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깊이 있는 분석적 사고보다는 직관이나 간단하고 빠른 판단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작업 기억을 기반으로 하는 체계적 사고가 약해지면서 휴리스틱이 더 쉽게 작동한다. 특히 내재성 휴리스틱으로 인한 능력주의적 사고방식에 매몰되어 버리면, 성공은 타고난 이들의 것이며 그들이 누리는 혜택은 정당한 것이라는 세계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또한 사회 지배 지향성이 강화되어 여성에 비해 남성이, 이민자들에 비해 내국인들이 경제적으로 더 많은 혜택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72-3)


# 보수의 환경

1. 인간 정치성의 표현형을 만드는 공격적인 유전자, 예민한 유전자, 탐색 유전자 등은 경제를 비롯한 사회적 환경에 따라 다르게 발현된다. 

2. 노화에 따른 보수성이 생존을 위협하는 개인의 생물학적 변화에 기인한다면, 젊은 남성들의 보수성은 번식을 향한 생물학적 본능이 경쟁적인 사회 환경에 반응해 나타나는 결과다. 

3. 오늘날 젊은 남성들은 자신들의 자유를 권력에 종속시키는 신자유주의를 마치 절대적인 진리처럼 신봉한다. 결국 자신도 모르게 ‘자발적 노예’가 되어버린 이들은 스스로를 ‘비자발적 독신자’라 부르는 처지가 되었다. 


5장 보수의 문화: 경쟁과 맹신과 배척의 본능들이 만든 세상


서문에서 지적했듯이, 겉보기에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광범위한 여러 사안들에 대해 보수는 일관된 입장을 보인다. 이는 그들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쉽사리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먼 과거 자연 속에서 생존과 번식에 성공하며 구축된 진화적 심리가 현대사회의 문화적 요소들에 반응해 발현되는 것을 보수라고 규정하면, 이 모든 현상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다. 휴리스틱과 보수적 베이지언, 신호 체계에 기반한 번식 전략과 같은 인지심리학적 요소들과, 편도체, 교감신경, 행동면역계, 싸움-도주 혹은 돌봄-방어 반응, 페로몬 시스템, 전대상피질, 뇌섬엽과 같은 신경생리학적 요인들, 그리고 옥시토신, 세로토닌, 도파민과 같은 신경전달물질들은 현대사회의 다양한 사안들에 반응해 사회 지배 지향성이나 우익 권위주의와 같은 심리 기제로 나타난다. 이러한 자연적 본능에 따르는 가치관을 지닌 자연인들이 만들어 낸 문화,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보수주의다. 86)


# 보수의 문화

1. 보편적인 보수의 특징은 평등을 부정하고 자본주의적 경쟁을 옹호하는 사회 지배 지향성이다. 공산주의 정권을 군사적 위협으로 인식하는 우익 권위주의는 강한 반공 정서를 형성한다. 

2. 성서의 내용을 왜곡해 교리로 고착시킨 기독교는 인간의 진화적 종교성을 충실하게 충족함으로써 보수의 핵심 사상으로 군림했다. 한편 과학에 대한 불신은 음모론 맹신으로 이어진다. 

3. 배타적 민족주의는 도덕적 범주가 협소해 자신이 속한 집단으로 한정되기에 나타난다. 이민자, 여성, 성소수자에 대한 배척은 전 세계 우파 정권과 근본주의적 종교의 공통점이다. 


나가며: 그러면 진보란 무엇인가


정치적 동물로서의 인간은 기본적으로 호모 컨서버티버스Homo conservativus, 즉 보수적 사피엔스sapiens 다. 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거나 비합리적이라고 보는 이들은 호모 리버럴리스Homo liberalis, 즉 진보적 사피엔스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다시 새로운 분기점 앞에 서 있다. 컨서버티버스가 지니고 있는 특성이 '조상형ancestral allele'이라면, '파생형derived allele'의 비율이 늘어날수록 사피엔스는 리버럴리스에 가까워질 것이다. 리버럴리스가 지닌 파생형은 주로 새로운 것을 탐색하고 학습하고 해결하는 데 필요한 자질들을 설명한다. 이들은 자연 상태에서는 생존에 불리하거나 눈에 띄지 않았을 특성들이지만, 문명의 보호 속에서 살아남고, 나아가 문명의 발전과 함께 더욱 번창해 왔다. 그러므로 호모 사피엔스의 분기를 촉진하는 것은 자연선택이 아닌 문명의 발전이다. 문명은 리버럴리스를 낳고, 리버럴리스는 문명을 더욱 발전시키며, 더 고도화된 문명은 더 많은 리버럴리스를 탄생시킨다. 89-90)


호모 리버럴리스의 도덕적 합리성은 ‘공정’이라는 이상으로 수렴한다. 만약 현재의 체제가 뒤바뀌어 능력 경쟁보다 평등이 중시되고, 남성보다 여성이, 백인보다 흑인이, 이성애자보다 동성애자가 주류인 사회가 만들어진다면, 진보주의자들의 태도는 어떻게 바뀔까? 그렇게 뒤바뀐 체제가 오랜 시간 유지된다면, 현 체제에 반항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이들이 다시 옛 체제를 바라게 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체제 아래에서도 이들이 지향하는 것은 공정성이기 때문이다. 타고난 능력, 성별, 인종, 성적 지향 등의 이유로 누군가가 다른 이들보다 우위에 서거나 차별을 받는 사회 구조는 공정성에 위배된다. 따라서 진보는 그저 기득권의 교체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특권 없는 구조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공정이야말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어쩌면 유일한 도덕률인지도 모른다. 합의에 도달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준은 모든 이해 당사자에게 공정한 결과가 주어지는가 하는 것이다. 90-2)


기독교가 존엄하게 창조된 인간을 말할 때, 성서는 공정하게 창조되어야 할 인간을 말한다. 우리가 도덕적 명제처럼 받아들이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신념은 사실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공정한 생존의 보장을 위한 합의에서 비롯된 윤리적 수단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들 사이의 공정한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며, 그 신념 위에 우리의 모든 윤리 체계가 구축되어 온 것이다. 그렇다면 인권, 즉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권리들 역시 존 로크John Locke 가 주장한 자연권이 아니라, 도덕적 합의를 통해 도출한 사회적 구성물로 받아들여야 한다. 존엄성은 우리 안에 생물학적으로 내재하지 않고, 따라서 자연적으로 규정될 수 없다. 인간에게 존엄성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혹은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가는 철학적으로는 난제이겠지만, 생물학의 관점에서 보면 논란의 여지조차 없다. 인권은 인간이 합의해 도출한 사회적 개념이다. 역사가 이를 분명히 말해준다. 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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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멀린 셸드레이크 지음, 김은영 옮김, 홍승범 감수 / 글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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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내가 만약 곰팡이라면


곰팡이는 우리와 우리가 생존을 위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유지해준다. 화산섬이 생성되거나 빙하가 후퇴해 맨 암석이 드러나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지의류地衣類, lichen ― 곰팡이와 조류藻類, algae 또는 박테리아의 연합 ― 이고, 이어서 식물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진다. 잘 발달된 생태계에서도 흙을 붙들어주는 곰팡이 조직이 빽빽한 그물망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흙이 빗물에 금방 쓸려 내려가 버린다. 깊은 바다 밑 충적층에서부터 사막의 모래밭, 남극의 꽁꽁 언 얼음계곡, 심지어는 우리 몸의 내장이나 모든 구멍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에서 곰팡이를 발견할 수 없는 곳은 거의 없다. 한 그루 나무의 줄기와 잎에만도 수천 종의 생명이 존재할 수 있다. 이 곰팡이들은 스스로 식물세포 사이의 빈틈으로 들어가 촘촘한 비단을 짜고 그 식물이 질병을 막아내는 데 도움을 준다. 자연 상태에서 자란 식물치고 이런 곰팡이가 없는 식물은 없다. 곰팡이는 잎이나 뿌리처럼 식물 세상의 일부다. 30-1)


곰팡이 중에서 일부는 당분을 발효시켜 알코올을 만들거나 빵을 부풀게 만드는 효모처럼 하나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발아發芽를 통해 두 개의 세포로 증식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곰팡이는 많은 세포가 연결된 네트워크인 균사hypae를 형성한다. 미세한 관 구조인 균사는 갈라지고, 합해지고, 서로 얽히면서 무질서하지만 매우 섬세한 균사체를 만든다. 균사체 만들기는 거의 모든 곰팡이의 공통적인 습관인데, 균사체는 물체라기보다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더 합당하다. 균사체는 탐험적이고 불규칙적인 경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균사체 네트워크 안의 생태계를 통해 물과 영양분이 흘러 다닌다. 일부 곰팡이종의 균사체는 전기적으로 들뜨기도 해서 균사를 따라 전기파가 전도된다. 대사상의 특이성 덕분에 곰팡이는 광범위하고 다양한 관계 맺기에 능하다. 뿌리에서든 줄기에서든 식물은 생겨난 순간부터 양분 흡수와 방어에 있어 곰팡이에 의존한다. 동물도 곰팡이에 의존하기는 마찬가지다. 32-3)


한 개체는 어디서 끝나고 다른 개체는 어디서 시작하는가. 우리는 대개 우리 몸이 시작하는 곳에서 우리가 시작되고 우리 몸이 끝나는 곳에서 우리가 끝난다는 생각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우리는 미생물의 생태로 이루어진, 그리고 분해되는 생태계이며, 그 의미는 최근 들어서야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우리의 몸 안과 표면에 사는 4조 개 이상의 미생물 덕분에 우리는 음식을 소화시키고 우리 몸에 자양분이 되는 필수 미네랄을 생성할 수 있다. 식물의 내부에 사는 곰팡이처럼, 미생물은 우리를 질병으로부터 보호해주기도 한다. 미생물은 우리 몸의 발육과 면역 시스템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우리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유심히 관찰하고 통제하지 않으면 질병을 일으키고 심지어는 우리를 죽이기도 한다. 인간에게만 있는 특수한 경우도 아니다. 박테리아도 몸 안에 바이러스를 갖고 있다. 바이러스도 자기보다 더 작은 바이러스를 몸 안에 갖고 있다. 공생은 생명이 있는 곳 어디에나 있다. 40-1)


유혹하는 곰팡이: 버섯과 곰팡이가 퍼져나가는 방법


트러플은 몇 종류의 균근 곰팡이가 땅속에서 키워내는 자실체다. 트러플은 토양에서 흡수한 영양분과 식물의 뿌리에서 흡수한 당분으로 생명을 유지하면서 연중 대부분을 균사 네트워크로 존재한다. 그러나 땅속이라는 서식 환경이 트러플에게는 근본적으로 문제가 된다. 식물이 씨앗을 만들어내듯이 트러플은 포자를 만들어내는 유기체다. 땅속에서는 포자가 바람에 실려 갈 수도 동물의 눈에 뜨일 수도 없다. 트러플이 내놓은 해결책은 냄새다. 그러나 숲속에서 풍겨나는 온갖 냄새를 누르고 더 멀리까지, 더 강하게 냄새를 풍겨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트러플의 냄새는 토양층을 뚫고 퍼져나갈 수 있을 만큼 자극적이어야 하고, 다양한 냄새의 스펙트럼 안에서 땅을 파내고 찾아먹을 수 있을 만큼 입맛 도는 냄새여야 한다. 이처럼 시각적으로 불리하다는 단점 ― 땅속에 파묻혀 있는 데다 땅을 파헤쳐도 쉽게 찾아낼 수 없고, 찾아냈다고 해도 그다지 먹음직스럽게 생기지 않은 ― 을 트러플은 냄새로 역전시켰다. 49)


유혹은 곰팡이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교배형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트러플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한쪽의 균사 네트워크에서 나온 균사가 성적화합성이 맞는 다른 균사 네트워크와 융합하여 유전물질의 풀pool을 만들어야 한다. 균사 네트워크로서 한살이의 대부분을, 트러플은 곰팡이의 기준으로 ‘-’ 또는 ‘+’ 의 교배형 중 하나를 가지고 살아간다. 이들의 교배 형태는 아주 솔직담백하다. - 균사가 + 균사를 유인해 융합하면 접합이 일어난다. 이 두 파트너 중 부계의 역할을 하는 쪽은 유전물질만 제공한다. 다른 쪽은 모계의 역할을 맡아, 유전물질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트러플과 포자로 성장하는 과육flesh을 기른다. 트러플의 성별은 인간과 달라서 + 교배형이나 - 교배형 모두 부계가 될 수도 있고 모계가 될 수도 있다. 인간으로 비유하자면 모든 사람이 남자가 될 수도 있고 여자가 될 수도 있으며, 따라서 반대 성을 가진 개체와 관계를 맺는다면 어머니가 될 수도 있고 아버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59)


그러나 트러플과 나무 사이의 관계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며, 이들 사이의 화학적 상호작용도 섬세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어린 트러플 균사는 파트너로 삼을 나무를 찾지 못하면 금방 죽어버린다. 식물은 질병을 일으킬 수도 있는 곰팡이를 피해, 서로 이득이 되는 관계를 형성할 곰팡이를 자신의 뿌리에 받아들여야 한다. 이 과정도 또 다른 형태의 유혹, 화학적인 ‘밀고 당기기’라고 할 수 있다. 트러플이 숲속에서 동물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그러는 것처럼, 식물과 곰팡이도 서로를 끌어당기기 위해 휘발성 화학물질을 이용한다. 나무뿌리는 흙 속에 풍부한 휘발성 화합물을 발산함으로써 곰팡이가 포자를 퍼트리고 균사의 가지를 더 빨리, 더 왕성하게 자라게 한다. 곰팡이는 뿌리를 조종하는 식물 성장 호르몬을 분비해 식물이 솜털 같은 잔뿌리를 많이 뻗어내도록 만든다. 잔뿌리가 많이 나올수록 뿌리의 표면적이 넓어지고, 따라서 뿌리 끝과 곰팡이의 균사가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 59-60)


곰팡이가 식물과 결합하기 위해서는 뿌리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서로의 독특한 화학적 조성에 반응하는 과정에서 신호물질은 식물세포와 곰팡이의 세포를 관통해 직렬로 흐르면서 유전자를 활성화시킨다. 식물 뿌리와 곰팡이의 균사 모두가 각자의 신진대사 과정과 성장 프로그램을 새롭게 구성한다. 곰팡이는 나무의 면역반응을 정지시키는 화학물질을 내놓는다. 그러지 않으면 공생구조를 밀접하게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공생구조가 확립되면, 균근 파트너십은 지속적으로 발달한다. 균사와 뿌리의 관계는 매우 다이내믹해서, 뿌리 끝과 곰팡이의 균사가 늙어 죽으면 관계를 새롭게 형성한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리모델링하는 관계인 것이다. 트러플을 재배하려면, 곰팡이의 특이한 생식 체계를 비롯하여 공생하는 나무, 박테리아의 기벽과 요구를 이해해야 한다. 게다가 토양, 계절, 기후 등 곰팡이를 둘러싼 환경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의 중요성까지도 파악해야 한다. 60)


살아 있는 미로: 곰팡이가 길을 찾는 방법


균사체 네트워크라고 하면 균사의 정단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마치 벌 떼나 개미 떼가 바글거리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체구가 아주 작은 개체들이 수없이 모여서 마치 거대한 개체가 움직이는 것처럼 떼를 이루어 움직이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이러한 군집행동swarm은 집단행동의 패턴이다. 그러나 균사체는 개미 떼나 정어리 떼를 훌쩍 뛰어넘는다. 한 네트워크 안의 균사 정단은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흰개미 둥지는 여러 단위의 흰개미 집단에 의해 만들어진다. 군집 속의 개체를 하나씩 분리하듯 균사체 네트워크에서 균사를 한 올 한 올 분리해낼 수는 없지만, 균사체 네트워크와 동물 또는 곤충의 군집을 나란히 놓고 비유하자면 균사 정단은 군집 속의 개체와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균사체는 그 개념이 매우 모호하다. 네트워크의 관점에서 보면 균사체는 상호연관된 하나의 존재다. 하지만 균사 정단의 관점에서 보면 균사체는 복수의 개체다. 69-70)


# 균사 정단(Hyphal apex)은 균사의 가장 끝부분을 말하며, 이곳에서 세포 성분과 융합이 일어나 균사가 성장하고 분지하며, 기질로 침입하는 등 생장 활동이 집중된다.


균사체를 내는 곰팡이는 미로 거주자이며, 곰팡이가 공간적, 기하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보면 곰팡이가 어떤 유기체로 진화해왔는지를 알 수 있다. 곰팡이는 매 순간 자신의 몸을 최적의 상태로 분포시킬 방법을 찾는다. 균사체는 탐험 모드로 출발해 모든 방향으로 확산되어 나간다. 사막에서 물을 찾고자 할 때면 우리는 보통 한 방향을 정해서 찾아 나선다. 곰팡이는 동시에 모든 경로로 찾아 나서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다가 먹이를 발견하면 그와 연결된 네트워크 부분을 강화하고 소득이 없는 부분은 정리한다. 이런 현상을 자연선택으로 볼 수도 있다. 균사체는 연결점을 과잉생산한다. 그러다 보면 어딘가는 다른 부분에 비해 경쟁력이 더 높은 것이 드러난다. 그러면 그 부분은 두터워지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분은 차츰 약화되어 마치 도시의 간선도로처럼 몇 가닥의 균사만 남게 된다. 한쪽의 네트워크는 거두어들이고, 다른 쪽으로는 생장을 거듭함으로써 균사체 네트워크는 새로운 환경으로 이주한다. 70-1)


머리카락곰팡이 자실체는 직접 접촉하지 않아도 수 밀리미터 안에 있는 다른 물체를 피해서 자란다. 그 물체가 투명하든 불투명하든, 부드럽든 거칠든 상관없이 머리카락곰팡이는 약 2분 정도 후면 우회하기 시작한다. 머리카락곰팡이는 곰팡이 중에서도 통상적인 범위를 벗어날 정도로 민감한 종이지만, 대부분의 곰팡이가 빛(방향, 강도 또는 색깔), 온도, 습도, 영양분, 독성물질, 전기장을 감지하고 반응할 수 있다. 식물처럼 곰팡이도 청색광과 적색광에 민감한 수용체를 이용해 빛의 스펙트럼에서 색을 ‘볼’ 수 있다. 식물과는 달리, 곰팡이는 동물 안구의 간상체와 추상체에 있는 시각색소인 옵신opsin도 가지고 있다. 균사는 평면의 질감도 감지할 수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콩녹병균bean rust fungus의 어린 균사는 CD의 레이저 트랙 사이에 패인 홈보다 세 배나 얕은 0.5마이크로미터 깊이의 홈을 감지할 수 있다. 균사들이 모여 자실체를 만들기 시작하면 중력을 매우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게 된다. 78)


낯선 자의 친밀함: 함께 뒤엉켜 진화한 미생물


수평적 유전자 교환이 발견되기 전에는 다른 모든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박테리아도 생물학적인 섬이라고 여겨졌다. 한 개체가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기간에서 어느 한 중간에 새로운 DNA를 획득하는 것,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진화한 유전자를 획득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수평적 유전자 교환은 이런 사고를 바꿔놓았으며 박테리아 게놈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범존적汎存的 존재, 수백만 년 동안 따로 떨어져서 진화해온 유전자들로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주었다. 박테리아의 경우, 수평적 유전자 교환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어떤 개체든 박테리아 개체 하나가 가진 유전자의 대부분은 진화의 역사를 공유하지 않으며, 마치 우리가 집에 물건을 쌓아두듯이 한 조각씩 획득해서 쌓인 것들이다. 이런 방식으로 박테리아는 ‘기성품’ 특질을 획득함으로써 진화의 속도를 몇 배나 빠르게 가속해왔다. 비록 박테리아가 가장 민첩하고 적극적이기는 하지만, 유전물질은 생명의 모든 영역에서 수평적으로 교환되어왔다. 96)


1967년 미국의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는 생명체의 초기 진화에서 공생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이론이 불러온 논쟁에서 이 이론을 강력히 지지했다. 마굴리스는 진화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들은 서로 다른 유기체들이 합쳐지면서 ― 그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진핵생물은 단세포 유기체에 삼켜진 박테리아가 그 유기체 안에서 공생을 시작하면서 발생했다. 미토콘드리아가 바로 그런 박테리아의 후손이다. 엽록체는 초기 진핵세포가 삼킨 광합성 박테리아의 후예다. 사실 이런 표현이 상황에 딱 들어맞지는 않는다. 식물의 조상은 광합성 능력을 가진 박테리아를 획득한 것이 아니라, 광합성을 할 수 없는 유기체와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유기체의 결합으로부터 발생했다. 진핵세포 안에서, 생명의 나무에서 서로 멀리 떨어져 있던 가지들이 함께 얽혀서 분리 불가능한 새로운 계통으로 녹아들었다. 곰팡이 균사가 그렇듯이 융합 또는 접합된 것이다. 98-9)


지의류는 보편적인 실체이며 생명이 만나는 장소다. 곰팡이는 스스로 광합성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조류 또는 광합성 박테리아와 짝을 이룸으로써 광합성 능력을 수평적으로 획득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조류 또는 광합성 박테리아는 질긴 보호 조직을 뚫거나 바위를 소화시킬 수 없다. 그러나 곰팡이와 짝을 이룸으로써 그런 능력을 갖게 된다, 갑자기! 분류학적으로 거리가 먼 유기체들이 함께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을 가진 혼성 생명체를 구성한다. 엽록체와 떨어질 수 없는 식물 세포와 비교하면, 지의류의 관계는 개방적이다. 지의류는 이 관계를 단절하지 않고도 번식한다. 공생 파트너를 온전히 품고 있는 지의류 조각이 새로운 장소로 이동해 새로운 지의류로 자라날 수 있는 것이다. 지의류는 곰팡이와도, 광합성공생자와도 비슷하지 않다. 수소와 산소가 결합하여 성분 원소와는 전혀 다른 화합물인 물이 되듯이, 지의류도 창발 현상, 즉 부분의 합 이상의 것이 된다. 99-100)


균사의 마음: 곰팡이가 우리의 마음을 조종한다면


오피오코르디셉스 곰팡이Ophiocordyceps unilateralis는 목수개미carpenter ant 주변에서 살아간다. 이 곰팡이에 감염된 개미는 자기 둥지를 떠나 가까운 식물을 타고 기어 올라간다. 좀비 곰팡이는 가장 능수능란하고 창의적으로 동물의 행동을 조종하는 하는 것이 바로 곤충의 몸 안에 사는 곰팡이 집단이다. 이 ‘좀비 곰팡이’는 숙주의 행동을 자신에게 확실히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조종한다. 곤충의 몸을 가로챔으로써 그 곰팡이는 자신의 포자를 퍼뜨리고 한살이의 주기를 완성하는 것이다. 숙주 곤충의 행동을 대단히 정밀하게 제어한다. 오피오코르디셉스는 자실체를 생성하기 좋은 온도와 습도를 갖춘 곳에서 개미가 식물을 물고 버티게 만든다. 대개 숲의 바닥으로부터 25센티미터 정도 높이다. 이 곰팡이는 개미가 태양의 방향에 맞추어 행동하게 만드는데, 이 곰팡이에 감염된 개미는 정오에 맞춰서 식물을 문다. 나뭇잎 아랫면은 물지 않고, 감염된 개미의 98퍼센트가 주요 잎맥을 문다. 112-3)


2018년, 캘리포니아대학교 연구진은 엔토모프토라Entomophthora의 놀라운 기술을 상세히 밝힌 논문을 발표했다. 엔토모프토라는 파리에 기생하며 파리의 정신을 조종하는 곰팡이다. 연구진은 엔토모프토라 곰팡이가 다른 곰팡이를 감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곤충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를 갖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 논문의 제1저자는 이 발견을 과학계에서 ‘가장 기이한 발견 중의 하나’라고 보고했다. 이 발견이 ‘기이하다’는 의미는, 이 곰팡이가 바이러스를 이용해서 동물의 마음을 조종한다는 데 있다. 아직 가설 단계지만 상당히 개연성이 있는 논리다. 엔토모프토라가 기생하고 있는 말벌에 의해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무당벌레는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꼼짝도 하지 못하고 말벌의 알을 지키는 경비병 신세가 된다. 마음을 조종하는 바이러스를 이용함으로써, 이 곰팡이는 자신이 깃들고 있는 곤충 숙주의 마음을 조종하는 능력을 굳이 스스로 진화시킬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118)


존스홉킨스대학교의 정신의학자 매슈 존슨Matthew Johnson의 말을 빌리자면, 실로시빈 같은 환각제는 “사람들로 하여금 약에 취하게 함으로써 불만족스러운 상태로부터 빠져나오게 만든다. 말 그대로 시스템 리부팅이다. (…) 환각제는 우리가 현실을 체계화하는 데 이용하던 정신적인 모델을 놓아버릴 수 있도록 정신적인 유연성의 창을 열어준다.” 약물중독처럼 굳어버린 습관 또는 우울증으로부터 생긴 ‘질긴 비관주의’도 부드러워진다. 인간의 경험을 체계화하는 범주를 유연하게 함으로써, 실로시빈 같은 환각제는 새로운 인식의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다. 인간의 가장 강건한 심리 모델 중 하나가 자아감이다. 실로시빈을 비롯한 환각 성분이 바로 이 자아감을 교란한다. 인간이 그토록 의존해왔던, 잘 방어된 ‘자아’가 완전히 사라질 수 있으며 오락가락 흔들리거나 타자 속으로 차츰 녹아들 수도 있다. 그 결과는? 더 큰 어떤 것과의 합일, 그리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관계감이다. 124)


뿌리가 생기기 전: 식물보다 앞서 길을 낸 개척자


최초의 식물은 뿌리도 없고 특별한 구조도 갖추지 못한 초록색 조직 덩어리에 불과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초록색 덩어리가 응축되어 기관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 조직이 곰팡이 동지를 수용했으며, 곰팡이는 흙 속에서 영양분과 물을 끌어다 주었다. 진화의 결과 첫 뿌리가 나타났을 즈음, 균근은 조류와 곰팡이가 지상으로 올라온 후에 생겨난 모든 생명의 뿌리를 이루었다. 균근mycorrhiza이라는 이름이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다. “균mykes에 이어 뿌리rhiza가 생겨났다.” 그로부터 수억 년이 흐른 오늘날, 식물은 더 가늘어지고 더 빨리 성장하며 식물이라기보다 곰팡이처럼 행동하는 기회주의적인 뿌리를 갖도록 진화했다. 그러나 그렇게 진화한 뿌리도 땅속을 탐색하는 데에는 곰팡이를 넘어설 수 없다. 균근 균사mycorrhizal hyphae는 가장 가느다란 뿌리보다도 50배나 가늘고 그 길이도 식물 뿌리의 100배까지 더 길어질 수 있다. 균사는 뿌리보다 먼저 생겼고, 뿌리보다 더 멀리 나아간다. 138-9)


식물과 곰팡이 모두가 이 관계에서 이득을 얻어가지만, 어떤 종류의 식물과 곰팡이냐에 따라 공생의 방식이 달라진다. 키어스의 연구팀은 한 종류의 균근 곰팡이를 인이 불평등하게 공급되는 상황에 노출시켜 보았다. 그러자 인이 부족한 균사 네트워크에서는 식물이 더 비싼 ‘값’을 치렀다. 다시 말해 식물이 받는 인 한 단위당 더 많은 단위의 탄소를 공급했던 것이다. 인을 더 쉽게 얻을 수 있는 쪽에서는 곰팡이가 더 낮은 ‘교환 비율’로 탄소를 받아갔다. 가장 놀라운 것은 곰팡이가 네트워크 전체에서 거래 행동을 조율하는 방식이었다. 키어스는 ‘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는 전략을 알아볼 수 있었다. 곰팡이는 힘차게 움직이는 미세소관 ‘모터’를 이용해서, 인이 풍부해 싼 값으로 식물과 거래해야 하는 영역으로부터 인이 귀해 수요가 높고 비싼 값으로 거래할 수 있는 영역으로 인을 힘차게 운반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곰팡이는 인을 더 유리한 교환 비율로 더 많이 거래할 수 있었고, 그 보상으로 더 많은 탄소를 얻을 수 있었다. 146-7)


식물의 잎이나 새싹에서 사는 곰팡이 ― 식물공생균이라고 알려진 ― 도 식물이 새로운 장소에 적응하는 능력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 염분이 있는 해변의 흙에서 풀을 뽑아 원래의 식물공생균 없이 기르다가 다시 염분이 있는 땅에 옮겨 심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지열이 뜨거운 토양에서 서식하는 풀도 마찬가지다. 연구자들이 이 두 가지 풀의 식물공생균을 바꿔치기해서 해변에 서식하는 풀은 지열이 뜨거운 토양에서, 지열 뜨거운 토양에서 자라던 풀은 해변에서 길렀다. 그러자 각각 서식지에서 생존하는 습성이 바뀌었다. 원래 해변에서 자라던 풀은 염분이 들어 있는 토양에서는 더 이상 살지 못한 대신 지열이 뜨거운 토양에서는 잘 자랐다. 원래 뜨거운 토양에서 자라던 풀은 더 이상 뜨거운 지열을 버티지 못하는 대신 해변의 염분 섞인 토양에서 잘 자랐다. 어떤 식물이 어디서 잘 자랄지는 곰팡이가 정한다. 곰팡이는 식물 집단을 서로 격리시킴으로써 새로운 종의 진화를 촉진할 수도 있다. 150)


균근 곰팡이는 식물에게 자양분을 공급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한다. 어떤 이들은 균근 곰팡이를 ‘생태계 엔지니어’라고 부른다. 균근 균사체Mycorrhizal mycelium는 흙이 흩어지지 않고 서로 뭉쳐 있도록 붙들어주는, 살아 있는 접착제다. 만약 흙에서 곰팡이를 제거한다면 흙은 바스스 부서져서 흩어져버린다. 균근 곰팡이는 토양이 흡수할 수 있는 물의 양을 증가시키고, 빗물에 씻겨 흘러가버리는 영양분의 양을 50퍼센트까지 감소시킨다. 토양에서 발견되는 탄소 ― 놀랍게도 식물과 대기 중에서 발견되는 탄소를 모두 합친 양의 두 배에 가깝다 ― 중에서 상당한 비율이 균근 곰팡이에 의해 생산되는 단단한 유기화합물 속에 갇혀 있다. 균근의 통로를 통해 토양 안에서 흐르는 탄소는 복잡하고 섬세한 먹이그물을 지탱한다. 건강한 흙 한 찻숟가락 속에는 수십만 킬로미터에 이르는 균사 외에도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살았던 사람의 수를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수의 박테리아, 원생생물, 곤충, 절지동물이 있다. 153)


우드와이드웹: 땅속에서 그물처럼 얽혀 있는 식물


‘정상적인’ 녹색식물은 곰팡이에게 에너지가 풍부한 탄소화합물을 당이나 지질의 형태로 내주고 그 대신 곰팡이를 통해 토양 속의 무기영양소를 얻어간다. 수정란풀은 균근 곰팡이로부터 탄소와 무기영양소를 모두 받아간다. 그리고 아무것도 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수정란풀이 가져가는 탄소는 어디서 난 것일까? 균근 곰팡이는 모든 탄소를 녹색식물로부터 얻어간다. 즉 수정란풀의 생명을 유지해주는 탄소는 결국 균근 네트워크를 공유하고 있는 다른 식물로부터 온 것일 수밖에 없다. 수정란풀은 식물학자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1980년대 이후 수정란풀은 비정상적인 식물이 아님이 분명해졌다. 대부분의 식물은 여러 종의 균근 파트너와 문란하게 관계를 맺는다. 균근 곰팡이 역시 여러 식물과 관계를 맺는다. 각각 별개의 곰팡이 네트워크가 서로 합쳐지기도 한다. 그래서 그 결과는? 광대하고 복잡하며 협력적인 균근 네트워크의 공유 시스템이 탄생하는 것이다. 158-9)


캐나다의 숲에서 자작나무와 더글러스 전나무를 연구한 또 다른 사례에서, 식물의 성장이 멈추는 겨울을 제외하고 봄부터 가을 사이에 탄소 이동의 방향이 두 번이나 바뀌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상록수인 전나무는 광합성을 하고 잎이 없는 자작나무는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는 봄이면 자작나무는 흡수원이 되어 탄소가 전나무에서 자작나무로 흘렀다. 자작나무 잎이 무성해지고 전나무는 그늘에 가려지는 여름이면 탄소가 자작나무에서 전나무로 흘렀다. 자작나무 잎이 떨어지는 가을이면, 탄소는 다시 전나무에서 자작나무로 흘렀다. 양분은 풍족한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 흘렀다. 수수께끼 같은 행동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이런 것이다. 왜 식물이 양분을 곰팡이에게 주어서 이웃 식물, 즉 잠재적인 경쟁자에게 흘러가도록 두는가? 처음에는 이타주의로 해석되었다. 하지만 진화론은 이타주의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타주의적 행동은 공여자의 희생을 담보로 수혜자가 이득을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165)


이 수수께끼를 푸는 가장 빠른 방법은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지금까지 공유 균근 네트워크에 대한 모든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식물이었다. 곰팡이는 식물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에만 이야기에 등장했고, 식물과 식물 사이를 이어주는 파이프 정도로만 인식되었다. 식물과 식물 사이에서 물질을 옮겨주는 배관 시스템 정도의 역할로만 설명되었던 것이다. 이런 관점을 식물중심주의라고 한다. 그러나 곰팡이는 수동적인 케이블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왔듯이 균사 네트워크는 복잡한 공간 감각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자기 주변으로 물질을 운반하는 능력을 아주 섬세하게 발달시켜왔다. 물질이 곰팡이 네트워크를 통해 위에서 아래로, 영양원에서 흡수원으로 흐르는 경향은 분명하지만, 그 운반이 수동적인 확산의 형태로만 일어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자기 네트워크 안에서의 흐름을 제어하는 능력이 없다면, 버섯의 생장이라는 섬세한 군무를 포함해 곰팡이의 한살이 대부분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166-7)


우드와이드웹이 단 한 가지 종류로만 존재한다는 생각은 오해다. 곰팡이는 식물과 연결되어 있든 아니든 간에 서로 얽히고설킨 그물망을 만들어낸다. 공유 균근 네트워크는 식물이 함께 얽힌 곰팡이 네트워크라는 특별한 케이스일 뿐이다. 생태계는 유기체들을 꿰매주는 비균근 균사체의 그물망으로 얽혀 있다. 린 보디가 연구한 부패균은, 수 킬로미터를 뻗어가며 놀라운 네트워크를 만들어내는 뽕나무버섯이 그러하듯이, 생태계 전반의 매우 넓은 영역에서 썩어가는 나뭇잎과 떨어진 나뭇가지를 연결하고 썩어가는 나무 밑동과 썩어가는 뿌리를 연결한다. 이 균은 다른 종류의 우드와이드웹을 만든다. 이 웹은 나무를 살리는 웹이 아니라 죽은 나무를 먹어치우는 웹이다. 우드와이드웹의 모든 링크는 제 나름의 생명을 가지고 있는 곰팡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드와이드웹을 식물이 영양분을 두고 서로 경쟁하는 경직된 위계 구조로부터 자유로운, 보살핌과 나눔 그리고 상호 협조의 공간으로 보는 시각을 뒷받침한다. 167-8)


풀뿌리 균학: 세상을 구하는 곰팡이


목질 식물이든 아니든 모든 식물 세포에 들어있는 특징적인 물질인 섬유소, 즉 셀룰로스cellulose는 지구를 구성하는 물질 중의 하나이면서 가장 풍부한 중합체이다. 또 하나의 물질인 목질소, 즉 리그닌lignin은 두 번째로 풍부하다. 리그닌은 나무를 나무로 만들어주는 중요한 물질이다. 리그닌은 셀룰로스보다 질기고 구조가 복잡하다. 셀룰로스는 질서정연하게 연결된 포도당 분자의 사슬로 이루어진 반면, 리그닌은 분자 고리가 아무렇게나 뭉쳐 있는 형태다. 오늘날까지도 리그닌을 제대로 분해할 수 있는 유기체는 소수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리그닌 분해에 가장 성공한 유기체는 백색부후균white rot fungi이다. 리그닌의 화학적 구조는 너무나 불규칙하다. 백색부휴균은 형태에 구애받지 않는 비정형성효소를 써서 이 난제를 극복했다. 이 ‘과산화효소’는 ‘자유 라디칼free radical’이라는 고반응성 분자를 폭포수처럼 방출해서 리그닌의 단단한 구조를 깨뜨리고 ‘효소 연소enzymatic combustion’ 과정을 진행시킨다. 182)


버섯을 키워내는 대부분의 곰팡이는 인간이 만든 폐기물에서 잘 자란다. 쓰레기에서 환금성 작물을 기르는 것은 현대판 연금술과 같다. 곰팡이는 마이너스 자산으로 가치 있는 상품을 만들어낸다.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에게도 이익, 곰팡이를 기르는 사람에게도 이익, 곰팡이 자체에도 이익이다. 인간이 만든 쓰레기가 곰팡이의 관점에서는 기회일 수 있다는 사실은 크게 놀랍지도 않다. 곰팡이는 생물종 전체의 75퍼센트에서 많게는 95퍼센트까지 사라진 대멸종을 다섯 번이나 견디고 살아남았다. 어떤 곰팡이는 그런 재앙의 시기에 오히려 더 무성했다. 공룡이 멸종되고 숲이 대량으로 파괴되었던 백악기 제3기 대멸종 이후, 분해해야 할 죽은 나무가 풍부한 환경 속에서 곰팡이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방사능 입자가 방출한 에너지를 제거하는 방사능 제거 곰팡이Radiotrophic fungi는 체르노빌의 폐허에 무성할 뿐만 아니라 곰팡이의 긴 역사와 인간의 짧은 핵기술의 역사에 최근에 진입한 새로운 참여자이기도 하다. 185-6)


곰팡이는 불필요한 효소는 생산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곰팡이종이 무엇을 대사 작용으로 분해할 수 있는지 예측하는 것이 항상 쉬운 일은 아니다. 맥코이는 제초제 글리포세이트를 몇 방울 떨어뜨린 배양접시에서 여러 계통의 느타리버섯 균사체를 길러보았다. 그중 일부 균사체는 제초제를 피해서 뻗어갔지만, 일부는 제초제를 그대로 통과했다. 또 다른 일부는 제초제 가장자리까지 자라다가 더 이상의 생장을 멈추었다. “그렇게 생장을 멈추었던 균사체는 일주일쯤 지나자 그 제초제를 분해하는 방법을 터득했어요.” 맥코이의 회상이다. 그는 곰팡이를 화학결합을 풀 수 있는 효소 열쇠꾸러미를 가진 교도소 간수에 비유했다. 곧바로 쓸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는 곰팡이도 있다. 그렇지 않은 곰팡이는 그 열쇠가 자신의 게놈 안 어딘가에 있기는 하지만, 일단 새로운 물질을 피해보려고 한다. 또 다른 곰팡이는 열쇠꾸러미를 뒤져 이 열쇠 저 열쇠를 꽂아보면서 맞는 열쇠를 찾느라 일주일을 보낸다. 186-7)


곰팡이가 세상을 구할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오염된 생태계의 복원을 돕는 것이다. 그 과정을 균류정화mycoremediation라고 한다. 근본적으로, 곰팡이는 환경을 복원하는 데 최고의 능력을 가진 유기체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균류정화는 쉽게 접목할 수 있는 대안이 아니다. 어떤 곰팡이종이 배양접시 안에서 보여주는 행동이 오염된 생태계의 격렬한 환경에서도 그대로 재연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산소나 추가적인 영양원처럼 곰팡이에게도 필요한 것이 있고, 우리는 그런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분해는 여러 단계를 거쳐 진행되고, 곰팡이와 박테리아가 연달아가며 배턴을 이어받아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곰팡이가 할 일을 하고 떠난 자리를 박테리아가 이어받아 과정을 마무리하거나 그 반대의 순서로 진행되기도 한다. 실험실에서 훈련된 곰팡이종이 새로운 환경에서도 능숙하게 문제를 처리하고 변화를 일으킬 수 있으리라는 상상은 순진한 발상이다. 188-9)


곰팡이를 이해한다면: 술을 빚는 효모의 신비


인간과 가장 친밀한 역사를 가진 곰팡이는 효모다. 효모는 우리 피부에서도, 우리 폐에서도, 그리고 우리 식도와 우리 몸의 모든 구멍에서도 산다. 우리 몸은 이 효모 집단을 통제하도록 진화해왔으며 긴긴 진화의 역사를 통틀어 항상 그렇게 그들을 통제해왔다. 인류의 문화 역시 수천 년 동안 우리 몸 밖에서, 술통과 항아리 안에 효모를 가두고 통제하는 복잡한 방법을 발전시켜왔다. 오늘날 효모는 세포생물학과 유전학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표본 유기체 중 하나다. 빵이든 술이든, 효모는 초기 농경 사회의 주요한 수혜자였다. 빵이나 술을 만들기 위해서, 인간은 자신의 배를 채우기 전에 효모의 배를 먼저 채워주어야 했다. 생활 영역이 농경지에서 도시로 발전하고 부를 축적하며, 곡물상이 등장하고 또 새로운 질병의 출현에 이르기까지 농경과 연관된 문화의 발달은 효모와 인간이 공유한 문화의 일부를 형성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효모를 길들인 것이 아니라, 효모가 우리를 길들였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205-6)


19세기 후반 진화론의 등장 이후 미국과 서유럽을 지배하던 서사는 갈등과 경쟁의 서사였으며 그러한 분위기가 조성된 배경에는 산업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인류의 사회적 발전관이 투영되어 있었다. 샙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기체가 서로에게 이익이 되도록 협력하는 사례는 “예의 바른 생물학적 사회의 가장 후미진 변방에 머물러 있었다.” 지의류 또는 균근 곰팡이에서 볼 수 있는 서로 돕는 관계는 우리에게 알려진 규칙의 의문스러운 예외였고, 그런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조차 마지못해 인정했을 뿐이었다. 진화에서 상호협력과 협조의 아이디어는 서유럽의 진화론자들보다 러시아에서 더 두드러졌다. ‘피 묻은 이빨과 발톱’으로 상징되는, 치열하고 인정사정없는 경쟁이 지배하는 자연의 모습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박은 러시아의 무정부주의자 표트르 크로포트킨이 1902년에 쓴 책 《만물은 서로 돕는다》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생존을 위한 투쟁 못지않게 ‘사교성’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강조한다. 211)


오늘날 모든 곰팡이를 ‘질병의 원인’ 또는 ‘기생물’의 범주로 한꺼번에 묶는 것은 부조리하다. 알베르트 프랑크가 ‘공생’이라는 용어를 고안하기 전까지는 서로 다른 유형의 유기체들 사이에 형성된 관계를 설명할 방법조차 없었다. 최근 들어 공생 관계를 둘러싼 서사가 더욱 미묘해졌다. 지의류가 둘 이상의 참여자로 구성된 유기체임을 처음으로 발견한 토비 스프리빌은 지의류를 시스템의 한 형태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식물과 균근 곰팡이는 더 이상 상호협력적으로 또는 기생의 형태로 행동한다고 생각할 수 없다. 단 한 종의 균근 곰팡이와 단 한 그루의 나무 사이에 만들어진 관계라 할지라도 그들 사이의 ‘상호 거래give and take’는 유동적이다. 연구자들은 획일적인 이분법이 아니라 상리공생과 기생이라는 양극단 사이의 연속체로 설명한다. 공유 균근 네트워크는 협력과 동시에 경쟁도 촉진할 수 있다. 우리는 관점을 바꾸어서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적응하거나 적어도 감내해야 한다. 213)


공생적 상호관계는 종의 경계를 초월한다. 나는 곰팡이를 연구할 때보다 더 곰팡이처럼 행동했던 적이 없었고, 그래서 호의와 데이터를 서로 주고받는 학계의 상리공생의 세계에 빠른 속도로 녹아들어 갔다. 스웨덴과 독일에서 나와 협업했던 과학자들은 나를 통해서 더 많은 양의 흙을 연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직접 열대지역으로 가볼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그들의 손과 발 역할을 했다. 반대로, 곰팡이가 그러하듯이 나 역시 혼자서는 접근할 수 없었던 자금과 기술을 이용할 수 있었다. 파나마에서 나와 협업한 과학자들은 잉글랜드에 있는 내 동료들의 기술적 지원과 연구기금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잉글랜드의 내 동료들은 파나마의 내 협업 과학자들을 통해 똑같은 혜택을 누렸다.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네트워크를 연구하기 위해, 나 역시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했다. 어떻게 보면 그건 일종의 순환구조였다. 내가 네트워크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 네트워크도 나를 들여다본다.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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