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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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계명

1 무엇이건 두 발로 걷는 것은 적이다.
2 무엇이건 네 발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것은 친구이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선 안 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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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나' 같은 모습을 하고, '어떤' 변화도 용납하지 않고, 다름을 시도하는 것도 '안 되며', '모두' 고정된 자리에 머문다면, 그 종(種)은 출발과 함께 멸종했을 것이다.

종이에 쓰여진 법률은 수정이 가능하지만, 돌판에 새겨진 계명은 지우고 고쳐 쓸 수 없다. 다시 말할 수 없는 언어란 생명력을 소진하고 침묵의 품으로 돌아간 화석이다.

그리하여 대의(!)가 희생의 흙더미에서 꽃피우고 농장의 풍요(?)가 인간들을 감동시킬때 언어는 자의성을 회복하고 다시금 하나의 원칙으로 돌아갔으니 그것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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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된 계명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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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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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일리의 죽음은 내가 쉽게 용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마일리는 용감하고 재능 있는 청년이었다. 그는 파시즘과 싸우기 위해 글래스고 대학의 자리를 내팽개쳤다. 또한 내가 목격한 대로, 그는 흠 잡을 데 없는 용기와 흔쾌함으로 전선에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다. 그런데 저들이 그에게 해준 일이라고는 그를 감옥에 집어넣고 방치된 동물처럼 죽게 만드는 것뿐이었다.
...
내가 이런 죽음에 화가 나는 것은 그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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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사건에 역사적 사실을 중첩하면 보이지 않던 진실의 일면이 드러난다는 말은 일정 부분 사실이다.

다만, 거기에는
1. 해석의 여지가 있는 사건인가?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풀이는 따분하다)
2. 현재를 미화하기 위한 인용이 아닌가?
(꽃의 아름다움을 알기 위해 새싹의 싱그러움을 상기할 필요는 없다)
3. 선악의 구도를 벗어나 있는가?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산 자는 굶주려도 입만은 살아 있다)
4. 역사적 결과를 확정된 미래로 착각하고 있는가?
(역사는 이정표이지 단선 철로가 아니다)
를 검토하는 관조의 자세가 필요하다.

즉, 역사의 물길을 잇대어 자신을 정당화하거나 예언자적 통찰을 과시하는 태도가 아니라, 유사한 상황과 인물구도의 결합이 전혀 다른 결과를 빚어내는 것이 인간 행위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앎은 삶을 되짚어볼 뿐,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인간은 지식과 실천, 용기와 겸손, 사려와 결단 사이에서 고뇌하는 시지프스이지, 정상과 지상에 동시에 거하는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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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와 죽은 자 1
제라르 모르디야 지음, 정혜용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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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프랑스 노동자가 뼈가 부서지도록 일하는 공장은 베트남과 중국의 노동자가 뼈가 부서지도록 일하는 공장의 생산성을 이겨낼 수 없다. 공장은 폐쇄되고 노동자들은 장마에 떠내려가는 부유물처럼 흩어진다. 숫자는 많은 걸 말해주지만 그 중 단 한 명의 삶도 담아내지 못한다.

앎은 힘들다. 사실의 본질을 제대로 알기까지 거쳐야 하는 과정의 무게가 힘들고, 기껏 알아낸 사실의 슬픔과 무기력함이 힘들다. 그래서 차라리 알고 싶어 하지 않고, 앎이 곁에 오지 않길 바란다. 고통을 외면하고 피해다닌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너무 멀리까지 연결되어버렸다.

산 자는 누구이고 죽은 자는 누구인가? 해고를 피한 자와 생계를 택한 자가 산 자인가? 반대로 해고를 당한 자와 신념을 지킨 자가 산 자인가? 삶은 어느 것으로도 답할 수 없다. 매일 밤 잠들고 매일 아침 다시 깨어나는 자신에게 물어볼 따름이다. 너는 산 자인가? 죽은 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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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으로 읽는 한국사 2 - 근현대
역사비평 편집위원회 엮음 / 역사비평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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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제강점기
1) 1860~70년대는 척사론과 개국론이 맞섰고, 1880년대에는 독립론과 (청의) 속방론을 논의했으며, 대한제국기에는 군민공치론을 억압한 황제권 강화론을 추구하였다.
2) 단발령은 을미사변을 무마하고 근대개혁을 추진하려는 개화파의 시도로, 중화문명과 성리학적 질서를 수호하려 했던 보수반동을 정당한 민족적 저항으로 만들었다.
3) 대한제국이 추진한 광무개혁은 외세의 침략 앞에서 국권-군주권과 동일한-을 지키기 위해 지배계급의 주도로 마지막으로 시도된 근대화 개혁이라는 한계를 지녔다.
4) 을사조약은 위임•조인•비준의 어느 과정도 거치지 않았고, 고종이 적극적으로 승인을 거부했으며, 한국 정부의 동의표시도 결여된, 체결되지 않은 강압적 시도에 불과하다.
5) 개신교의 정착은 축자영감설에 기반한 정복자의 태도와 정치•사회 문제를 배제하는 '오직 신앙'의 관점이 주류를 형성하여 민족주의 운동에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6) 문화역량 우선주의를 표방한 민족주의 세력의 '김윤식 사회장' 추진은 사회주의 세력이 이들과의 통일전선 논의를 통해 운동론의 차이를 가시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7) 3•1운동의 실패를 내부 역량 강화로 돌린 물산 장려 운동에 대해 사회주의자들은 생산력의 증진과 정치혁명 간의 우선성을 논의하면서 노선의 불일치를 해소해갔다.
8) 창조파는 임정의 대표성 부족과 지역적 제한성을 지적하여 새로운 대표회를 주장했고 개조파는 임정의 한계가 시기적 절박함 때문이라면서 법통의 유지를 주장했다.
9) 이승만의 외교노선은 러일전쟁 직후의 대미청원, 3•1운동에 즈음한 위임통치 청원, 1930년대 소련과의 접촉 시도, 해방 직전의 반소•반공 선전과 임정 승인 요청이다.
10)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은 문화정치 아래에서 친일로 기울던 지주•자본가 계급에게 정치성을 배제하고 역량 강화에 힘쓰자는 개량주의적 민족운동의 길을 열어주었다.
11) 중국정부의 입장에서는 재만조선인들이 일제의 만주 점령의 선봉이자 전위로서 '만보산 사건'에서도 드러났듯이 대륙침략 정책을 막기 위해 타도해야 할 대상이었다.
12) 단군신화는 단군을 민족시조이자 동방문화의 연원으로 주장한 최남선에 의해 되살아났으며, 역사적 실증보다는 식민기 및 해방 이후의 국수주의적 우상화에 이용됐다. 
 

2 해방~1960년대
1) '소련 신탁통치 주장, 미국 즉시독립 주장'이라는 오보에서 비롯한 친탁과 반탁의 대결 구도는 친일파들이 적극적으로 반공•반탁을 주장하며 애국자로 둔갑하게 했다.
2) 도강파가 서울 수복 후에 잔류파를 부역자로 몰아 마녀사상을 벌인 일은 전쟁 초기의 패전 책임을 모면하고 반공이 애국이라는 절대 명제를 각인시킨 정치적 폭력이었다.
3) 북한은 1956년 종파사건을 계기로 중공업 중심의 독자적 사회주의를 모색했고, 개인숭배를 배격한 소련의 수정주의를 벗어나 자주적 주체사상의 도식화를 강화했다.
4) 이승만 정권의 반대세력을 옭아매기 위한 신국가보안법은 피고의 변호사 접견을 금지하고 상고심제도를 폐지한 헌법 위의 법이었으며 59년 2.4 날치기 통과되었다.
5) 4•19 혁명 이후 통일은 자립적 경제개발의 선결 조건으로 논의되었으나 체제 경쟁에서 앞서기 위한 경제개발 통일유보론이 득세하다 5•16 쿠데타로 가속화되었다.
6) 한일회담은 경제개발 자금이 시급했던 한국, 잉여자본을 해외로 수출하려는 일본, 지역블럭을 구축하여 대소봉쇄의 전초지로 삼으려는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은 결과였다.

 

3 1970년대 이후
1) 국사교육 강화 정책은 1972년 10월 유신과 때를 같이 하여 주체성 있는 국민정신 교육을 강조하였고, 이를 위한 방편으로 단일한 국정교과서를 1974년부터 시행했다.
2) 70년대에 역사적 주체로서 재발견된 '민중'은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을 한몸에 지닌 역동적인 세력으로 추상화되었다가 현실사회주의의 몰락과 함께 '시민'으로 전환되었다.
3) 86년 정립된 NL-CA 논쟁은 반미,반봉건의 민족통일전선과 노동계급 중심의 반파쇼 투쟁이 쟁점이었고, 87년 6월 항쟁을 기점으로 NL의 대중노선이 우위를 점했다.
4) 87년 대선 때 NL세력의 김대중 비판적 지지, 후보단일화, 소수 운동권파의 독자후보 운동은 각자의 주관적 당위에 객관적 상황과 조건을 꿰맞춘 이론과 실천의 괴리였다.
5) 보호감호는 70년대 초반에 본격적으로 출소하게 된 해방 직후의 사상범들을 재구금 또는 사상전향시키기 위한 방안이었으며, 일제의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을 본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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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으로 읽는 한국사 1 - 전근대
역사비평 편집위원회 엮음 / 역사비평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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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시•고대
1) 원시공동체와 고대 국가 사이의 과도기의 성격 규정 문제는 계급과 혈연, 지연 같은 요소를 기준으로 부족국가나 부족연맹, 성읍국가론, chiefdom론 등이 전개된다.
2) 고조선의 요동과 만주 제국론은 '단군민족주의'의 목적론적 주장에 불과하며, 요동 지역에서 발생한 느슨하고 왕권이 공동체에 여전히 예속된 부족 연맹 체제로 판단된다.
3) 임나일본부설은 가야 지방의 일본적 요소가 거의 없는 독자적인 문물 출토를 감안하면, 외교 및 무역 교류 거점이 후대의 과장과 첨삭을 거쳐 정복지로 윤색된 것이다. 
 
2 고려•조선
1) 중세기점 논쟁은 토지 이용방식의 상경화와 조세의 기준이 되는 토지의 사유화 여부, 농촌공동체의 친족적 자연호/군현제 전환 등에 따라 나말여초/여말선초로 나뉜다.
2) 고려는 음서제와 폐쇄적 통혼권을 형성한 귀족제, 상당한 지배세력이 과거 출신이라는 관료제, 다양한 종교와 문화, 신분이동 시도가 공존한 다원사회라는 주장이 있다.
3) 고려 성립에서 호족의 역할에 대해 왕권과의 연합으로 통일을 달성하고, 지방 분권을 유지했다는 호족연합설에, 형식적 배려와 실질적 왕권 우위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4) 고려 사회의 신분제는 전통적 지배체제가 온존한 4신분제론(귀족,중간층,양인,천민)과 천인을 제외한 나머지 신분의 개인적 성취를 강조한 양천제론(양인,천민)이 있다.
5) 사병은 무인 정권을 지탱하는 근간이었지만 공적 활동과 향촌사회 지배에는 삼별초가 동원되었고, 대몽항쟁 역시 민족적 성격보다는 권력 상실에 기인한 반발이었다.
6) 원 간섭기의 개혁 정치는 내부 권력투쟁의 산물이자 계급 갈등을 미봉책으로 해소하려 했지만, 신진 개혁 세력을 중심으로 원의 영향을 벗어나려는 시도도 공존했다.
7) 조선왕조 성립을 보는 관점은 신분•토지개혁을 이룬 새로운 사회의 성립, 농업생산력 발전이 일군 신흥사대부의 성장, 성리학적 지배질서를 전제한 봉건국가론이 있다.
8) 훈구가 국가적 부를 축적하여 사림의 거점인 향촌 기반을 위협하자, 사림은 공론 형성과 정책 반영에 힘을 기울였고, 매서운 사화를 이겨내고 붕당정치 체제를 수립했다.
9) 인조반정은 쿠데타이자 공신세력(서인-노론)의 권력 독점, 대청 외교 실패라는 부정과 광해군대 북인 정권의 전횡을 타파하고 붕당정치를 회복했다는 긍정이 공존한다.
10) 실학은 일제 식민지 시기의 민족주의자들이 한민족의 주체성과 독자성을 강조하면서 발명한 개념으로, 조선 후기의 개혁안은 주자 성리학의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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