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해석을 읽다 - 프로이트를 읽기 위한 첫걸음 유유 고전강의 4
양자오 지음, 문현선 옮김 / 유유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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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세기말의 프로이트


"프로이트는 인간과 인간 자신의 관계를 변화시켰다." "프로이트 이전의 자아는 모든 것의 근원이자 하나의 주체로서 일체의 대상을 탐구하는 필연의 원점이었다. 데카르트의 논증에 따르면, 모든 것을 회의하더라도 최후까지 결코 회의할 수 없는 것은 '내가 지금 회의한다'라는 바로 그 사실이다. 이것이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가 지닌 본래 의미다. 여기서 '생각'은 'Cogito의 번역어로 강력한 회의를 의미한다." "그러나 프로이트에 이르면 무엇을 회의하는 행위는 더 이상 하나의 원점이 아니다. 회의라는 행위는 그 자체로 이면의 동기를 내포한다. 우리는 뒤에서 이 동기를 조작하는 무의식과 잠재의식을 자각하지 못하며, 우리가 이 사실을 잘 모를수록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리고 중요하기에 비로소 억압된다. 인간과 자아 사이에는 이처럼 기괴하고 기묘한 관계가 설정된다."(30-1)


"프로이트는 유럽의 산물이다. 유럽의 역사와 문화, 그 사조의 기복 및 유동은 프로이트라는 개인에게 매우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다음으로 그는 '세기말 비엔나'의 표지 가운데 하나다. 낭만주의가 정점에 이르기까지 발전하며 빚어낸 문제 및 가치 의식은 프로이트의 삶과 사상의 바탕에서도 동일하게 작용했다. 『꿈의 해석』 및 그의 다른 저작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당연하게도 개인주의다. 프로이트에게 개인은 지식의 주체인 동시에 객체다. 둘째는 욕망이다. 낭만주의는 이성과 추상에 반대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성과 추상이 인간의 욕망과 열정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욕망과 열정은 개인이 가장 구체적이고 진실하게 느끼는 무엇이지만 이성과 추상, 객관에 배제되었다." "그리고 19세기 사회와 유럽 문화에서 가장 억압받고 거부되었던 것은 욕망, 특히 개인이 느끼는 욕망 가운데 가장 강렬한 성욕이었다."(48-9)


"빅토리아 시대라는 말은 하나의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분위기를 가리키는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 너무도 신사적이고 억압적이고 냉정한, 뿐만 아니라 아마도 허위적이었을 가능성이 농후한 그런 환경과 시대를 가리킨다."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욕망을 그리 중시하지 않았으며, 디코럼decorum이라 불리는 엄격한 예의범절 규정을 준수했다." "사람들 모두가 남에게 인정받고 남의 눈에 바람직하게 여겨지며 멋진 외양과 상식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했다. 옳다고 생각해서 옳다고 말할 때도, 정해진 어휘를 사용해서 정해진 어감에 따라 정해진 표정을 지어야 했다."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평화롭게 지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평화는 일종의 대가를 요구한다. 모두가 대부분의 시간 동안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탓에 참된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 참된 자아는 끊임없이 억압되고 은폐된다. 그리하여 이런 사회의 이면,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온갖 발산과 해소의 행위가 이루어진다."(50-4)


2장 꿈의 특수한 성질


"꿈은 병이 아니다. 이 점에서 꿈은 히스테리와 다르다. 그러나 자기 꿈을 제어하는 사람은 없다. 이 점에서 꿈은 묘하게 히스테리와 동일하다. 프로이트 시대의 이론에 따르면, 히스테리는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발작하는 질환이었다. 이제 곧 발작할 것 같다고 스스로 깨닫는다면 이미 히스테리가 아니다. '통제'가 바로 히스테리 치료의 관건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어떤 요소와 맞닥뜨리거나 어떤 자극을 받을 때 스위치가 켜지듯 히스테리 발작이 일어나는지, 되짚어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스위치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스위치는 종종 기억 속 깊숙이 숨겨져 있다. 지나간 삶의 감추어진 기억 속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불쾌한 기억들을 되새기며 경험 속에서 발작의 스위치를 찾아내야 한다. 일단 스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 알 수 있다면, 히스테리는 곧 약화된다. 꿈과 히스테리는 '통제 불능'이라는 점에서 서로 닮았다."(66-7)


"꿈은 평소 우리가 전혀 통제할 수 없으며, 스스로 인식하지도 못하는 부분을 드러낸다."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에서 적나라하고 비정하게 자기 자신을 폭로했다. 솔직히 이 점이야말로 프로이트의 대단한 일면이다. 당시 사회의 허위와 위선에서 벗어나 그처럼 용감하게 자신의 허위를 폭로했으니 말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당시 사회가 허위적이고 위선적이었기에 그가 일부러 자신의 허위적 일면을 드러낸 것이라고. 선뜻 밝히기 어려운 개인적인 일면을 먼저 드러냄으로써, 꿈이 전달하는 정보에 독자가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꿈에 나타나는 정보는 개인의 고귀하고 영예로운 일면이 아니다. 프로이트는 이런 어조를 유지하며 꿈의 왜곡을 설명하고, 현실을 왜곡하는 서로 다른 몇 가지 꿈의 기제를 분석했다. 이 책은 전술적으로 기획된 것이다. 『꿈의 해석』의 초판 판매량은 비록 300권에 불과했지만, 그 원인은 사회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던 데 있었다."(73-6)


"프로이트와 인간의 심리를 탐색했던 프로이트 이후의 연구자들은 이원론에서 벗어나 경험에 대한 탐구와 인지를 주장했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주관이냐 객관이냐가 아니라, 주관이 어떻게 객관을 인식하느냐는 점이었다. 우리의 주관, 우리의 감각 기관은 객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다시 말해, 객관 세계와 우리가 형성한 주관적 인상 또는 감상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그 차이는 지대하다. 프로이트의 출발점은 우리가 받아들인 객관 세계가 결코 완전할 수 없으며, 주관의 수정과 왜곡을 통해서야 비로소 우리의 경험으로 변화한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중점은 주관이 어떻게 어떤 경험을 만들어 내느냐 또는 객관 세계가 도대체 무엇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도대체 어떤 요소, 어떤 힘에 의해 하나의 객관적 정보가 우리의 신체와 감각 기관 안으로 들어와 개개인 속에 각각 다른 경험으로 자리 잡느냐가 문제다."(90-1)


3장 '억압'이라는 진화의 원인


"프로이트는 인간의 생존, 곧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로 하는 조건들에 대한 다윈주의의 기본 사유를 받아들였다." "다윈주의는 생물 종種이 유전을 통해 강성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생산하고 번식한다고 주장한다(다윈주의는 반드시 다윈 자신의 주장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환경에서 유리한 조건을 선택해 번식하는 것이야말로 생존과 진화의 기초다. 이런 주장에 의해 계발된 프로이트 체계의 대전제는 다음과 같다. 생물의 한 종으로서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중요한 욕망은 번식과 직결되는 성욕이다. 인간의 리비도와 다른 생물의 번식 및 생식 충동은 무엇이 다른가? 다윈주의에서 받은 영감과 암시에 따라 프로이트는 이렇게 주장한다. 사람이 사람인 이유, 인간이 다른 생물과 다르게 진화의 최첨단에서 고등생물로 진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가 한편으로 강렬한 성욕을 가졌음에도 다른 한편으로 성욕을 억압하고, 나아가 성욕이 품고 있는 거대한 잠재력을 다른 곳에 쓰도록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95-6)


"프로이트는 영유아의 성욕에서 그의 학문 체계의 핵심 개념인 '억압'을 도출했다. 인류는 어째서 서너 살부터 이성의 엉덩이에 열중하는 야수가 되지 않는가? 억압이 있기 때문이다. 억압이 있어 문명과 사회가 만들어졌다."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는 세밀한 기제들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기제들이 인간을 우월한 존재로 만들며, 인간이 너무 일찍부터 유한한 에너지를 성性에 소모하지 않도록 통제한다. 이것이 성을 억압하는 기제들이다. 성욕을 억압한 뒤에야 인간은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를 갖게 된다. 억압은 인간이 거대한 생식 기관으로 변하는 것을 막아 준다. 억압은 인간에게 성적 행위 이외의 다른 일을 할 기회를 주는 중요한 기제이다. 프로이트의 구상 속에서 문명은 억압이 출현한 후에야 비로소 존재했다. 성적 욕망에 대한 억압이 없다면, 인간은 문명화될 수 없을 것이다."(103-4)


"프로이트의 눈에 인생은 리비도와 억압의 대치, 상호 투쟁으로 점철된 드라마였다." "『꿈의 해석』 앞머리에서 프로이트는 모든 꿈이 잠재적인 원망충족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왜 꿈에서조차 욕망은 직접 드러나지 않는가? 그 이유는 꿈이 드러내는 것이 원래의 원망이 아니라 억압되어 왜곡된 원망이기 때문이다." "프로이트가 말한 억압은 상식적이거나 보편적인 욕망의 억압이 아니라, 영유아의 성욕에서 출발해 인류를 근본적인 진화 과정으로 이끄는 억압, 리비도를 잠재의식 속에 욱여넣는 특정한 억압이다. 상식적이거나 보편적인 욕망은 근원적인 것이 아니며 스스로 포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욕은 다르다. 성욕은 번식의 기초이며 인간에게는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욕구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의 가장 특수한 지점이지 보편적인 생물 종의 욕망이 아니다.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성 억압은 줄곧 핵시적인 위치를 차지했다."(106-7)


4장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어둠


"사람의 주관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제는 무의식 내부의 무엇이 어떻게 의식으로 빠져나오느냐 하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해석은 인격에 대한 이해를 완전히 뒤엎는다. 가장 중요한 반전은 의식과 무의식의 중요성이 전도되었다는 사실이다. 의식은 중요하다. 의식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좋은지 결정한다. 집단적인 문명이 구성한 가치에 따라 사람들의 의식은 상당한 유사성을 보인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대부분 도둑질이 해서는 안 되는 나쁜 짓이라고 믿고 '양다리'가 옳지 않다는 데 동의한다. 이것이 의식이다. 그러나 인간의 의식은 몰개성하고 무의미한 재현이다. 의식도 물론 중요하지만, 무의식이 더 흥미롭고 개인의 개성에 가깝다. 의식에 차원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닮아 있다. 그래서 진정으로 당신이 누구인지 결정하는 것, 당신과 다른 사람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은 분명히 무의식에 속하는 무엇이다."(124-5)


"억압된 정보는 인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부분이지만, 일단 억압되면 원래 상태로 돌아올 수 없다. 문지기인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는 언제 비로소 인격의 개성을 결정하는 어두운 면을 볼 수 있는가? 문지기가 문을 잘 지키지 못했을 때뿐이다. 꿈은 왜 중요한가? 꿈은 문지기가 가장 허술한 시간이다. 꿈은 우리가 정신적 에너지를 배출할 수 있도록 돕는 특수한 상황이다. 꿈은 억압된 것들이 빠져나와 다리 쭉 뻗고 내달릴 수 있도록 해준다. 이 억압된 정보들은 내달리면서 자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여전히 문지기의 눈을 피하기 위해 갖은 방식으로 우회하고 수정하며 스스로를 위장할 수밖에 없다." "꿈으로 꾸는 것은 상대적으로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며, 꿈의 정보는 모두 위장된 것이다. 깨어 있을 때의 경험 중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정보만이 꿈에 나타난다. 이는 일종의 암시다. 암시라는 용어도 『꿈의 해석』의 핵심어다."(127-8)


5장 '정신경제학'의 논리


"프로이트의 정신경제학은 이렇게 주장한다. 만약 외부 세계가 어떤 자극을 주든 전적으로 받아들일 뿐이라면 인간은 성장이 불가능하다. 그런 체계는 곧 과부하 상태가 되어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를 모두 소모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여러분에게 무엇을 설명하는 이 순간, 내가 생각한 것을 여러분이 받아들이고 있는 이 순간을 포함하는 모든 심리적 순간마다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한다." "『꿈의 해석』 5장에서 프로이트는 꿈의 재료가 바로 전날 겪었던 삶의 경험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밝혔다. 우리가 꿈의 재료로 삼는 것은 전날의 삶의 경험 가운데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자투리 파편들이다." "그렇다면 꿈을 꾸면서 꿈을 만들 재료를 선택할 때에는 왜 오히려 중요하지 않은 것을 선택하는가? 이는 정신경제학의 원리에 위배되지 않는가? 프로이트는 이 사실을 인식하고 여기에 해석이 필요하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142-4)


# 19세기의 '경제' 개념 : 유한한 사물로 무한한 목표를 만족시키고자 할 때 가장 중요한 분배의 방식을 고려하는 것, 나아가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좋은 방법, 그 비결과 지혜를 가리킨다.


"인간은 성장 과정 가운데 심리적으로 먼저 두 가지 기본적인 억압을 지니게 된다. 그래서 인간이 정신적으로 처음 배우는 일은 외부 세계를 처리하는 첫 번째 기제, 곧 모든 것에서 성욕을 제거하는 '중성화'다." "우리가 외부 세계와 대면하면서 어떤 것을 의식으로 받아들여 정신 구조의 일부로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욕과 연관되는 부분을 삭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제거된 욕망은 잠재의식으로 침잠한다. 그러나 인간의 성장은 단순하거나 일방적이지 않다. 일생을 통틀어 인간이 중성화에 온 힘을 다하고 거세가 정말 철저하게 성공해 문명이 욕망에 완전한 승리를 거둔다면 인간은 결국 멸종하고 말 것이다. 인간은 성욕 없이 번식할 수 없다. 그래서 일정한 단계까지 성장한 뒤에는 이 과정을 역전시켜 재성화再性化해야 한다. 어릴 때 거세된 것, 욕망의 가능성을 배제당한 것이 다시 한 번 욕망의 대상이 된다. 재성화의 과정은 또다시 거대한 파란을 일으키며 우리의 의식을 뒤집는다."(158-9)


"프로이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거나, 의식의 내용을 배치하는 일은 이성이나 이치로 쉽게 통제되지 않는다. 의식의 내용은 이미 변조된 것, 여과되고 정제된 무엇이다. 우리의 의식 속에 진입한 것은 모두 가짜이며 허위이다. 진실에 가까울수록 의식으로의 진입은 더욱 어려워진다. 문지기의 관문을 통과해야만 하므로 변조된 이후에야 의식 속으로 진입할 수 있다." "의식은 끊임없이 잠재의식과 전의식 또는 무의식과 잠재의식이 일으키는 소란 속에서 무엇인가를 받아들이고 호트러진다. 우리의 의식은 매우 어지러운 체계를 형성하며, 끊어지고 갈라진 채 자주 연속성을 잃는다. 의식은 '연상 법칙'에 따르지 체계적인 논리 법칙에 따르지 않는다. 이런 전제는 20세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프로이트가 없었다면 우리는 (기억의 거대한 미로를 드러낸) 마르셀 프루스트나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한) 제임스 조이스를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162-3)


"프로이트가 말하는 의식 구조는 이렇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자극을 받으며, 이런 자극은 특별한 기제를 통한 뒤에야 의식으로의 진입이 결정된다. 의식으로 진입하지 못한 것은 억압되어 무의식 안에 갇힌다. 무의식은 기본적으로 들어갈 수는 있지만 나올 수는 없는 일방통행로다. 그러나 무의식과 잠재의식/전의식 사이에는 구멍이 존재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는 영원히 '잠재의식'의 내용을 알 수 없다. 그것은 실제로는 '무의식'이며 의식으로 진입할 수 없는 것이다. 잠재의식 또는 전의식이라는 애매한 영역은 사실 무의식의 내용이 뚫고 올라온 취약한 부분이다. 그러나 무의식이 뚫고 올라올 때는 원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낼 수 없다. 무의식의 내용은 잠재의식이나 전의식이라는 애매한 공간으로 들어가면서 의식과 서로 뒤섞인다. 뒤섞임의 가장 주요한 기제는 '변형'과 '전이'다. 무의식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언제나 추리에 의존하며 '변형'과 '전이' 등의 원칙을 이용해 역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다."(165-7)


6장 정신병 및 치료


"프로이트를 이해하려면, 그의 자아론 또는 자아 구조라 불리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리비도를 지니고 태어난다. 리비도가 구성하는 자아를 프로이트는 이드id라 불렀다. 이드는 충동으로 가득 차 있어 언제나 그 성욕의 대상을 추구하거나 획득하고자 하며 다른 사람을 공격한다. 남자아이가 타고나는 공격성은 이드의 표현이다." "그러나 이 세계에 살고 있는 하나의 개체로서 우리는 이드를 통해 세계와 접촉해서는 안 된다. 이드 위에 에고라 불리는 것을 덧씌워야 비로소 우리는 그것을 '자아'라 부를 수 있다." "셀프는 자아로서의 에고와 이드를 포함한다. 셀프 안에는 충동적이고 말을 듣지 않으며 하루 종일 번식에 대해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의 기반을 빼앗는 일에 골몰하는 이드가 존재한다. 또 다른 자아인 에고는 상대적으로 단순한 이드에 비해 복잡하다. 프로이트의 개념에서 사람의 복잡하고 흥미로운 정신 활동은 모두 에고 속에서 일어난다."(178-9)


"에고란 무엇인가? 에고는 사실 이드에 쫓기는 신세이며 진정한 의미로는 이드에 저항할 수 없다. 그렇지만 에고는 외부 세계를 대할 때나 내면의 이드를 대할 때 오히려 주인 행세를 한다. 따라서 에고는 가장 대단한 기만이자 일종의 가장假裝이다. 에고는 서로 다른 상황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에고는 끊임없이 핑계를 대고 그것이 진실인 것처럼 말하면서 실제로는 통제받는 스스로의 처지를 은폐한다." "대부분 시간에 진정한 조종자는 이드다. 그러나 에고는 다양한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설득한다. '내가 바로 주인이다.' 에고는 이드를 포장하는 분장사이며 외부 세계와 이드 사이를 조율하는 협상자이다. 에고는 이드뿐 아니라 실제로는 이드와 상호 작용하는 외부 세계를 속이고자 하나의 자아로서 외부 세계와 마주한다. 에고는 세계와 마주하면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이드가 주는 것과 외부 세계의 자극을 조율하고자 한다."(179-80)


"20세기에는 인간을 연구하는 과학적 방법론에 중대한 혁신이 있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과 물질의 가장 큰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인간은 자주적인 의식을 지니고 있으나 사물은 그렇지 않다. 이것이 가장 큰 차이다. 컵을 가지고 100번쯤 실험을 하더라도 컵은 여전히 컵이다. 그러나 대상을 바꿔 어떤 사람을 두고 실험을 하면서 같은 실험을 다시 한다면 그는 아마 다른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 "프로이트는 이에 대응해 '분석'을 설계하고 제시했다. 사람을 연구하는 연구자와 연구 대상인 피연구자 사이에도 상호 작용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어느 한쪽이 전적으로 능동적이거나 수동적일 수는 없다. 사물을 연구하는 과학은 이런 상호 작용에 골몰할 필요가 없다. 프로이트가 연구자와 연구 대상의 상호 작용을 파악하는 데 모범을 보인 뒤, 20세기에는 철학, 사학, 사회학, 인류학, 정치학 등 모든 학과가 새로운 방법론을 모색하기 시작했다."(185-6)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아 20세기 정신분석과 정신이해는 스펙트럼 형태로 변했다. 우리는 더 이상 어떤 사람이 정신병 환자이고 다른 사람은 아닌지 명확하게 가려낼 수 없다.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모든 사람은 잠재적인 정신병자다. 정신병자는 환자가 아닌 사람보다 심리 기제의 운용이 다소 극단적일 뿐이다. 인간의 정신 상태는 하나의 스펙트럼을 형성한다. 이쪽에 정상인이 있고 저쪽에 정신병자가 있으며, 그 가운데 둘을 나누는 경계가 명확한 구조가 아니다. 이런 생각은 나중에 문학과 예술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후의 모든 예술가는 자기 안에 내재된 정신질환을 자각했다. 그래서 20세기 예술가들은 강렬한 광기의 경향을 지녔으며 극심한 고통을 받아들였다. 그런 광기나 고통이 없었다면, 이 예술가들은 자신의 예술을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20세기 예술은 기본적으로 광기의 예술이자 정신분열적 예술이다."(188)


7장 프로이트의 성공


"세기말 비엔나에서 프로이트가 직업을 선택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그는 유대인이었다. 유대 문화는 고도로 내향적인 자기반성 경향을 지녔을 뿐 아니라 농후한 신비주의 전통을 따랐으며 복잡한 종교의식을 갖추고 있었다. 이런 특징들은 모두 유럽의 보편적인 발전 경향과 크게 대조를 이루었다." "둘째, 유대인이란 신분은 그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프로이트는 의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자 무던히 노력했지만, 유대인이라는 신분은 그에게 커다란 장애였다." "유대인인 그로서는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노력이나 능력이 부족해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유대인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을 수 없는 것인지 아무래도 알 수가 없었다." "'반유대주의'는 무척 미묘한 것이기도 했다. 물론 아주 적나라한 '반유대주의'도 존재했다. 그러나 훨씬 더 만연하고 처치 곤란한 것은 은밀하고 말하기 어려운 '반유대주의'였다."(195-7)


8장 프로이트의 유행


"프로이트는 어떻게 제1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로 건너가자마자 그토록 빨리 학계를 정복할 수 있었는가? 전쟁이 몰고 온 비관적인 분위기와 불가피한 반성 작업 덕분이었을 것이다. 왜 인간이 그런 방식으로 서로를 도살해야 했는가? 왜 일찍이 휘황찬란하고 낙관적이며 진취적이었던 문명이 그 문명에 의해 창조된 새 시대의 인간을 이토록 황당한 방식으로 전멸시켜야 했는가?" "프로이트가 이해한 인간성의 전제는 리비도와 성욕, 공격성이다. 보다 중요한 점은 이런 성질이 문명의 닿을 수 없을 만큼 깊은 곳에 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이 개념은 곧바로 제1차 세계대전의 황당무계한 파괴에 꼭 들어맞았다. 이런 전쟁은 더 이상 과거의 현실 조건으로 해석할 수 없었으며, 그 내재적 인과 사이에는 방대하고 맹목적인 어둠이 자리했다. 그것은 이성으로 측량될 수도 없고 극복할 수도 없는 파괴의 욕망이자 원초적인 공격성이었다."(219-20)


"그렇다면 어떻게 자기 자신의 어둠을 직시하고 파헤칠 것인가? 가장 쉬운 방법은 프로이트를 읽는 것이었다. 프로이트의 개념으로 자신의 꿈을 해석하고 자신도 프로이트와 마찬가지로 탐욕스러우며 명예와 이익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여기서 나아가 유행했던 또 다른 수단은 이성적인 삶과 이성의 존재 상황에서 도저히 해석되지 않는 대상들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이성적인 삶과 이성의 존재 상황에서 해석되지 않는 모든 대상에는 특수한 가치가 있었다." "이렇게 해서 사물의 가치는 완전히 전도되었다. 이성으로 해석되지 않을수록 더 중요한 것이었고, 더 파헤칠 가치가 있는 것이었으며, 표현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프로이트 이론이 유입된 프랑스의 시대 흐름에서 우리는 비로소 당시를 풍미한 초현실주의 운동을 이해할 수 있다. 초현실주의는 인류의 마음 속에 꿈처럼 해석되지 않는 것들을 새겨 넣었다."(225-7)


"프로이트의 이론과 관점은 우리에게 인류의 문명사를 다시 읽도록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다. 프로이트는 그리스 신화를 즐겨 인용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도 그리스의 신화와 비극을 인용한 것이다. 우리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거꾸로 이용해 그리스 비극을 다시 해독하고 그리스 비극이 진정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그리스 비극의 '비극성'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다." "프로이트는 인류의 문명이란 욕망이 억압을 거쳐 승화된 결과라고 말한다. 프로이트가 말한 '승화'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정화'(카타르시스)는 다른 의미다. 더욱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이다. 한편으로 문명은 변형되고 승화된 욕망의 창조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발전을 거듭해 욕망을 억압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인간의 존재는 이렇게 순환을 반복한다. 욕망의 억압은 문명을 창조하고 문명은 욕망을 억압한다. 멈추지 않는 과정이다."(237-8)


9장 프로이트의 서사 혁명


# 19세기 소설의 5대 원칙(에드워드 사이드)

1. 보완의 원칙 : 소설은 이미 벌어진 사건을 보완 서술한다.

2. 전진의 원칙 : 서술은 기본적으로 (시간상) 앞으로 나아간다.

3. 적합의 원칙 : 서술은 의미를 전달하는 데 목적을 둔다.

4. 결말의 원칙 : 서술 배치는 선형적으로 결말을 향해 간다.

5. 완결의 원칙 : 소설의 서사는 하나의 완결된 세계이다.


# 5대 원칙에 반하는 양피지 서사(프로이트)

1. 꿈은 끊임없이 서술하고 해석할 뿐 사건이 선행하지 않는다.

2. 꿈은 전진한 후에 제자리를 맴돌고 이리저리 방향을 바꾼다.

3. 꿈은 서술에 어떤 의미를 담은 정합성을 갖고 있지 않다.

4. 꿈은 모든 단락이 끊임없이 수정되고 반복 등장할 수 있다.

5. 꿈은 의미와 서술 사이에 주어진 주종 관계를 해체한다.


"프로이트 그리고 『꿈의 해석』이 보여준 글쓰기의 영향으로 20세기에 이르러서는 서사와 서술의 모든 것이 전도되어 오히려 좋은 텍스트나 서술이란 본디 애매한 것이라고 인식되었다. 좋은 텍스트나 서술은 그 자체로 하나의 행위이지, 또 다른 의미를 실어 나르기 위한 부수물이 아니었다. 프로이트의 시대에, 『꿈의 해석』과 같은 작품을 계기로, 이런 인식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오늘날에는 너무도 당연하게 보이는 수많은 상식, 예컨대 서로 다른 사람이 같은 작품에서 서로 다른 의미를 읽어 낸다는 사실조차 19세기 프로이트 이전에는 불가사의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적어도 19세기 서술 주류에서는 이런 사실이 용납되지 않았으며 아예 그 관념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19세기에는 작가만이 권위를 지녔다. 작가는 독자에게 텍스트의 모든 것을 수여한다고 간주되었으며, 작가와 독자 사이의 상하 질서는 너무도 확고했다."(270-1)


"(프로이트 이후로) 작가의 의도와 작품은 점점 거리를 두고 멀어졌다. 이는 엄청난 해방이었다. 글을 짓거나 쓰면서 작가는 더 이상 무엇을 쓰는지 설명할 필요가 없다. 말하는 그 자체, 말하는 과정이 곧 문학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관점을 달리해서 말하면, 작가는 기존에 누리던 보호와 보장을 잃은 셈이다. 독서 행위에서 독자가 지니던 맹목적인 신앙은 사라지고 말았다. 19세기의 독자는 기본적으로 작가를 믿었고 그의 능력과 그가 쓴 것을 믿었다. 작가에게는 지고의 권위가 있었다. 20세기에 이르면, 작가의 권위를 독자의 권위가 대체한다. 나아가 독자는 작가의 권위를 위협하고 부정하기에 이른다. 작가는 더 이상 자기 작품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나 그 작품에 대한 최고의 해석자로 여겨지지 않는다. 작가가 뭐가 뭔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작품을 써낼 수 있기에, 독자는 작가보다 더 작품에 가까운 존재일 수도 있고, 나아가 작품 내부의 논리로 작품에 대한 작가의 해석을 거부할 수도 있다."(273-4)


10장 프로이트와 더불어


"다윈에서 마르크스를 거쳐 프로이트에 이르는 사상 조류는 점점 더 개인을 추구하며 개인화하는 경향이 있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개인주의의 기초 위에 성립한 것으로 언제나 개인에 대해 이야기하며 개인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한다. 그의 이론에서 집단과 사회는 개인 억압의 근원일 뿐이었다. 그러나 1930년대부터 종족 및 우생학과 관련한 새로운 집단주의의 영향으로 다음과 같은 논제가 제기되었다. 그렇다면 민족이나 종족 같은 집단에도 정신의 구조가 존재하는가? 프로이트가 개인의 차원에서 창안했던 이론은 어떤 방식으로 민족이나 종족과 같은 기타 집단 단위의 인식 연구에 활용될 수 있는가?" "나치 독일이 유대인 프로이트의 이론에 매우 적대적이었기에 그때까지 프로이트 학설의 영향력은 잠재적이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고 전쟁에 대한 반성, 특히 나치 독일의 집단 행위에 대한 반성이 이루어짐에 따라, 프로이트의 사유는 잠복기를 끝내고 발현되어 정신분석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282-3)


"정신분석은 상징에 매우 민감해 많은 곳에 적용할 수 있다." "가령, 영화는 1초에 24프레임으로 구성되지만 아무도 프레임 별로 영화를 보지 않는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이 수많은 이미지 프레임이 연결된 허상이다. 영화와 꿈은 이 점에서 가장 닮아 있다. 중요하지 않은 자잘한 부스러기가 수없이 그 사이에 끼어 있다. 하나의 장면은 누군가의 연출에 의해 설정되지만, 더할 나위 없이 '말끔한' 장면에도 중요하지 않은 부스러기는 수없이 포함된다. 이 이미지들은 중요하지 않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으며, 중요하지 않다고 해서 우리 의식 속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중요하지 않은 이미지들은 꿈에서 사용되는 일상생활의 파편과 유사하다. 프로이트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영화관에서 이처럼 서로 다른 것들을 쉽게 발견할 것이다." "(정신분석의 방법으로 행하는) 분석의 중요한 기능은 확실한 답안을 제출하는 데 있지 않고 더욱 풍부한 의미를 추구하는 길을 찾는 데 있다."(2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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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경제적 이성의 광기
데이비드 하비 지음, 김성호 옮김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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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장 운동하는 가치로서의 자본의 시각화


"맑스는 가치를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으로 정의한다. 내가 타인이 사서 사용할 재화를 만드는 데 쓰는 노동시간은 사회적 관계다. 그래서 그것은 중력이 그렇듯이 비물질적이면서도 객관적인 힘이다. 이 관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맑스에 따르면 〈물질적 요소들이 자본을 자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자본이 또다른 측면에서는 가치이기도 하다는 점, 즉 비물질적인 어떤 것, 그 물질적 일관성과는 무관한 어떤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가치의 본질에 대한 모종의 물질적 표상, 우리가 만지고 잡고 측정할 수 있는 어떤 것에 대한 절실한 요구가 생겨난다. 이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가치의 한 표현 또는 표상으로서의 화폐의 존재다. 모든 사회적 관계는 직접적인 물질적 탐구를 비켜 간다. 화폐는 이런 사회적 관계의 물질적 표상이고 표현이다."(24-7)


"생산수단은 다양한 형태로 주어지는 상품들로, 자연에서 무상으로 직접 채취된 원료, 자동차 부품이나 실리콘칩 같은  공장과 도로, 하수도, 상수도 같은 주변 물리적 기반시설의 사용권 등이다. 그중 일부는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이 상품들 대부분은 시장에서, 그 가치를 표상하는 가격에 구매해야 한다. 그러므로 화폐제도와 노동시장이 이미 존재해야 할 뿐 아니라 자본이 이용할 정교한 상품교환체계와 적절한 물리적 기반시설이 있어야 한다. 자본은 이미 확립된 화폐·상품·임금노동의 순환체계 내에서만 생겨날 수 있다고 맑스가 역설한 이유다. 순환과정의 이 지점에서 가치는 변신(metamorphosis)을 한다. 애초에 자본은 화폐 형태를 지녔다. 이제 화폐는 사라졌고, 가치는 상품의 외양, 즉 배치를 기다리는 노동력과, 조합을 이루어 언제라도 생산에 이용될 수 있는 생산수단의 외양을 하고 나타난다."(28-9)


"가치와 잉여가치는 생산된 물질적 상품의 형태로 응결되어 있다." "여기서 (맑스가 즐겨 부른 대로) '돈주머니 씨'(Mr.Moneybags)를 따라 시장에 가기 전에, 생산의 숨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어떤 일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거기서 생산되는 것은 새로운 물질적 상품만이 아니다. 노동력을 착취하는 사회적 관계도 거기서 생산되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이중적 성격을 지닌다. 그것은 사용될 물질적 상품의 생산뿐 아니라 자본가의 이익을 위한 잉여가치의 생산도 수반한다. 결국 자본가들은 화폐적 이윤으로 실현될 잉여가치에만 신경을 쓴다. 자기가 생산한 특정 상품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자본순환의 이 계기는 상품의 생산뿐 아니라 잉여가치 형태를 띤, 자본과 노동 간의 계급관계의 생산과 재생산도 포함한다." "생산은 맑스가 자본의 '가치증식'(valorisation)이라고 부르는 것이 일어나는 마술적 순간이다."(32-3)


"상품은 판매를 위해 시장으로 보내진다. 성공적인 시장거래의 과정을 통해 가치는 화폐 형태로 되돌아간다. 이런 일이 일어나려면 지불능력에 의해 뒷받침되는, 상품의 사용가치에 대한 욕구나 필요나 욕망(유효수요)이 있어야 한다. 이런 조건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자본주의 아래서의 욕구·필요·욕망 창출의 길고 복잡한 역사가 있다. 게다가 유효수요는 곧 다루어질 화폐분배의 실상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맑스는 가치 형태의 이 핵심적 전이를 '가치실현'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가치가 상품에서 화폐 형태로 전화되는 변신은 부드럽게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 가령 특정 상품을 아무도 원하거나 필요로 하거나 욕망하지 않는다면 그 상품의 생산에 아무리 많은 노동시간이 투입되었더라도 그것은 가치가 없다. 그리하여 맑스는 가치의 흐름이 유지되려면 생산과 실현 사이에 반드시 성립해야 할 '모순적 통일'에 대해 말한다."(34)


"임금 형태로 노동자에게 흘러가는 화폐는 임금재 형태로 생산되는 상품들에 대한 유효수요의 형태로 자본의 전반적 순환으로 되돌아간다. 이 유효수요의 힘은 임금의 수준과 임금노동 인구의 크기에 달려 있다. 하지만 화폐가 순환으로 되돌아갈 때 노동자는 일하는 자가 아니라 구매자의 역할을 떠맡고 자본가는 판매자가 된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에게서 나오는 유효수요가 표현되는 방식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소비자 선택권이 작동한다. 여기서 문화적 표현의 여지, 노동인구 내에 사회적으로 계발된 선호사항─자본은 이에 반응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고 돈벌이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이 추구될 여지는 상당하다." "임금재(노동자가 생존과 재생산을 위해 필요로 하는 재화)가 (값싼 수입품과 기술변화 등을 통해) 점점 더 저렴해지면서 가치 중의 몫은 줄면서도 물질적 생활수준은 높아질 수 있다. 이것이 최근 자본주의 역사의 핵심적 특징이었다."(37-6)


"분배는 잉여가치 생산의 수동적인 최종 산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맑스의 설명은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다. 금융과 은행업은 화폐 형태로 생산된 잉여가치 지분의 수동적 수령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자 낳는 자본의 순환을 통해 화폐가 잉여가치 생산에 재투입되는 화폐순환의 능동적 중재자이자 행위자이다. 중앙은행을 정점으로 하는 은행제도는 생산을 통한 가치 창출에는 무관심한 화폐 창출의 용광로다. 그렇기 때문에 금융업자와 은행가는 과거 잉여가치 생산의 수혜자인 만큼이나 추가적인 가치순환의 추동자다. 소유에 따른 재산권에 기초해 수익을 요구하는 이자 낳는 자본의 순환으로 인해, 이제까지 운동하는 가치의 단일한 흐름으로 개념화된 것이 이중성을 띠게 된다. 산업자본가는 이 이중의 역할을 내재화한다." "이 사태의 모순적 측면은 금융제도 내부로부터의 부채 창출이 추가적 축적의 집요한 추동력이 된다는 것이다."(43-5)


# 자본의 전반적인 순환과정

1. 자본이 생산에서 잉여가치 형태로 생산되는 가치증식의 과정

2. 가치가 상품의 시장교환을 통해 화폐 형태로 다시 전화되는 실현의 과정

3. 다양한 청구자들 사이의 가치와 잉여가치 분배의 과정

4. 청구자들 사이에 유통되는 화폐 일부를 포획하여, 이후 가치증식을 통과하는 자신의 길을 계속 가도록 그것을 화폐자본으로 다시 전화시키는 과정


2장 『자본』이라는 책


제1권


〈생산의 발전을 위한 위한 모든 수단은 변증법적으로 전화되어 생산자에 대한 지배와 착취의 수단이 되며, 노동자를 파편화된 인간으로 기형화하고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시키며, 그의 노동을 고통으로 바꿔놓아 노동의 실제 내용을 파괴하며, 과학이 독립된 힘으로서 노동에 결합되는 것에 비례하여 노동과정의 지적 잠재력을 노동자에게서 소외시키며, 그의 노동조건을 왜곡하고, 비열해서 더욱 가증스러운 전제(專制)에 그를 종속시키며, 그의 일생을 노동시간으로 전화시키며, 그의 처자식을 자본이라는 거대한 수레의 바퀴 밑에 밀어넣는다. 그러나 잉여가치의 생산을 위한 모든 방법은 동시에 축적의 방법이며, 역으로 축적의 모든 확대는 잉여가치 생산의 방법을 발전시키는 수단이다. 그러므로 자본이 축적되는 데 비례하여 노동자의 상황은 급여가 많건 적건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 (···) 그것은 부의 축적에 상응하는 곤궁의 축적을 필연적인 상황으로 만든다.〉 57)


제2권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모순 : 노동자들은 상품의 구매자로서 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나 자기 상품─노동력─의 판매자인 노동자들을 자본주의 사회는 최저 가격에 묶어두는 경향이 있다. 또다른 모순 : 자본주의적 생산이 자신의 모든 힘을 발휘하는 시기는 어김없이 과잉생산의 시기로 나타난다. 생산력의 사용은 가치의 생산만이 아니라 가치의 실현에 의해서도 제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품이 판매, 상품자본의 실현, 따라서 또한 잉여가치의 실현은 사회 일반의 소비요구에 의해 제약을 받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가 언제나 빈곤한, 그리고 언제나 빈곤 상태에 있어야만 하는 사회의 소비요구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 "노동계급이 보상적 소비주의 속에서 길을 잃을 운명에 처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본이 자기 시장을 온전하게 유지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1권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잠정적인 결론은 그 가정들에 의존한다."(64-5)


제3권


# 잉여가치의 분배 양상

1. 개별 자본가들 사이의 가치분배 : 완전경쟁 하에서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별 자본가는 자본가 계급의 재생산을 위협하는데, 그 이유는 개별 자본가들이 잉여가치 생산의 극대화보다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도록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추동되기 때문이다.

2. 계급 분파로서의 산업자본가 : 산업자본가는 가치와 잉여가치의 일부를 상인에게는 이윤 형태로, 부동산 소유주에게는 지대 형태로, 그리고 은행가와 금융업자에게는 이자 형태로 건네주어야 한다.

3. 상업자본가 : 생산물을 시장에서 판매하는 데 드는 시간은 상실되는 시간이며 시간은 돈이다. 따라서 산업자본가는 온전한 가치에서 할인된 가격에라도 상품을 상업자본가에게 인도하고자 하며, 이 할인이 상업이윤의 원천이다.

4. 지주와 지대 : 자본은 인클로저와 사유화를 통해 토지에 대한 노동자의 접근을 체계적으로 배제하면서 임금노동을 재생산한다. 또한 자본은 토지와 건물 개량으로 완전 경쟁 시장으로 가는 길을 매끄럽게 닦아준 지주에게 지대를 지급한다.

5. 은행과 금융기관 : 산업자본가들은 상품을 생산할 때 투입물과 산출물 사이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회전시간들을 조율하기 위해 은행과 금융기관에 신세를 진다. 이때 신용제도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일상에서 작동하는 다양한 시간성들을 취하여, 시간에 따른 금리로 환원한다.

6. 이자 낳는 자본의 순환 : 순환하면서 이자를 낳는 자본은 생산에 능동적으로 기여하기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재산권에 의거해서 잉여가치 중의 자기 몫을 청구한다. 즉, '상품으로서의 화폐'는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데 사용가치가 있다.


"자본순환 과정 내부의 그 상이한 계기들은 기능적으로 서로를 끌어안으면서 긴밀히 결합되어 있다기보다는 서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관련을 맺고 있다. 〈총체로서의 이 유기적 체제 자체는 자신의 전제들을 가지고 있으며, 총체로의 그것의 발전은 바로 사회의 모든 요소를 자신에게 종속시키는 데, 또는 자신에게 아직까지 결여된 기관들을 사회로부터 창조해내는 데 있다. 역사적으로 그것은 이런 방식으로 총체가 된다. 이러한 총체가 되는 과정은 그것의 과정, 그것의 발전의 한 계기를 이룬다.〉" "여기서 말하는 총체는 인간 신체 같은 단일한 유기체의 총체가 아니다. 그것은 생태계적 총체로서, 거기에는 경쟁하거나 협력하는 다수의 활동 종(species of activity)이 있으며, 진화의 역사는 침공에, 새로운 분업과 새로운 기술에 대해 열려 있다. 그것은 어떤 종과 하위체계가 멸종되는 사이에 다른 것들이 형성되고 번성하며, 동시에 에너지의 흐름이 온갖 방식의 진화 가능성을 가리키는 역동적 변화를 창조하는 체제다."(82-3)


3장 가치의 표상으로서의 화폐


"가치는 사회적 관계다. 그러므로 그것은 '비물질적이면서도 객관적'이다. 가치의 〈유령 같은 객체성〉이 생겨나는 것은 〈가치로서의 상품의 객체성에 단 한조각의 물질도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가치로서의 상품의 지위는 〈물리적 객체로서의 상품이 지닌 거칠고 감각적인 객체성〉과 대조된다. 〈하나의 상품을 아무리 돌리고 뒤집어보아도 그것을 가치를 지닌 사물로 파악하기는 여전히 불가능하다.〉 상품의 가치는 사회적 삶의 다른 많은 특징들─권력, 명성, 지위, 영향력이나 카리스마 같은─처럼 물질적 표현을 갈망하는 비물질적이면서도 객관적인 사회적 관계다. 가치의 경우 이 필요는 맑스가 '눈부신'(dazzling) 화폐 형태라고 부르는 것을 통해 충족된다. 맑스는 화폐를 거의 전적으로 가치의 '표현 형태' 또는 '표상'이라고 지칭한다." "화폐와 가치는 자율적이고 상호독립적이지만 변증법적으로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94)


"『1844년 경제학 철학 수고』에서 이미 맑스는 자본주의하에서 가치란 생산에서 자본에 의해 착취되고 가격 결정 시장에서 사유재산과 상품교환에 의해 확보되는 소외된 노동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외적 계급권력에 지배되는 소외된 노동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맑스가 볼 때 화폐는 (소외된) 노동가치를 표상했다. 그러므로 〈생산관계는 그대로 두고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가격 형성의 불합리성을 제거하려는 것은 본질상 실패를 자초하는 일인데, 그것은 가격 형성의 불합리성이 그 표현인 가치생산의 불합리성 자체를 마치 없는 것처럼 가정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가치법칙의 토대가 되는 사회적 관계를 비판하지 않고 (시간 전표 같은) 소외된 노동에 대한 더 나은 방식의 표상을 구하는 것은 그저 그 소외가 계속되도록 놓아두는 것이었다. 맑스의 생각에 수많은 리카도주의 사회주의자들과 더불어 프루동과 그 추종자들이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던 일은 그것이다."(99-100)


"프루동이 자기 범주들을 이끌어낸 매뉴팩처(공장제 수공업)의 세계는 1840년대 파리의 작업장들이었다. 대체로 이것들은 자기 자신의 노동과정을 통제하는 장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사업체로서 뒤쪽에는 작업장이, 앞쪽에는 가게가 있었다. 주로 마주치는 자본 형태는 상업자본으로, 상인들은 작업장에서 물건을 사서 (1850년대에 생겨난 백화점의 전신인) 자신들의 포목점에서 통합 판매하곤 했다. 장인들은 자신들의 노동과정을 통제했으므로 노동과정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생산 시점에 노동은 소외되지 않았다. 그들의 주된 불평거리는 상인이 제시하는 낮은 가격과 선대제도(a putting out system)를 통한 상인 지배의 강화였다." "그들의 노동의 가치는 시장에서 강탈(소외)되고 있었다. 화폐와 시장에 관한 프루도의 주장은 이 청중들에게 직관적 차원에서 어느 정도 이치에 맞는 것으로 여겨졌다."(101)


4장 반(反)가치: 가치저하 이론


"『자본』 제1권 1장 1절을 끝맺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어떤 것도 사용의 대상이 되지 않고는 가치가 될 수 없다. 만일 그것이 쓸모가 없다면 그것에 내포된 노동 역시 그러하다. 노동은 노동으로 인정되지 않고, 따라서 어떤 가치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 한번의 예리한 발언으로 맑스는 우리를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인도한다. 즉, 자본의 순환은 취약하고, 갑자기 멈춰 설 수 있으며, 그 순환의 과정 중에 가치저하의 위협, 가치상실의 위협이 언제나 그 위를 맴돈다는 것이다. 게다가 상품에 내포된 생산수단의 가치는 노동에 의해 부가된 가치가 상실되면서 같이 상실된다. 상품 형태에서 가치의 화폐적 표상으로의 이행은 위험이 수반된 이행이다." "맑스는 〈살아 있는 노동이 가치를 창조하는 반면 자본의 순환은 가치를 실현한다〉는 점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생산과 실현 사이에 필연적으로 성립하는 통일성은 (헤겔의 '부정의 부정'의 사유가 녹아들어 있는) 〈모순적 통일성〉이다."(123-4)


"맑스에게 반가치 개념은 자본의 핵심에 속하는 심층적이고 지속적인 특징이다." "자본은 운동하는 가치이며, 어떤 이유로든 이 운동이 잠시 멈추거나 심지어 속도를 늦추는 것은 가치의 상실을 의미하고, 자본의 운동이 재개되는 때에만 부분적으로나 전체적으로 가치를 되살릴 수 있다. 자본이 특정한 형태─생산과정, 판매되기를 기다리는 생산물, 상업자본가의 손에서 유통되는 상품, 이체되거나 재투자되기를 기다리는 화폐 등의 형태─를 취할 때 자본은 〈잠재적으로 가치저하된다.〉 이들 중 어느 하나의 상태에서 〈쉬고 있는〉 자본은 '부정된'(negated), '유휴'(fallow), '휴면'(dormant), '고정된'(fixated) 자본 등 여러가지로 일컬어진다. 〈자본이 완성된 생산물의 형태로 동결되어 있는 한 그것은 자본으로서 활동적일 수 없다. 그것은 부정된 자본이다.〉 이 '잠재적 가치저하'는 자본이 자신의 운동을 다시 시작하자마자 극복되거나 '중지된다'."(125-6)


"실현된 가치는 생산으로 돌아가서, 생산을 위한 노동의 추가적 사용을 통해 '가치 증식됨'으로써만 자본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 자본이 소외되고 반항적인 노동자의 형상을 한, 능동적 부정의 또다른, 더 집요한 위협을 마주하는 것은──화폐가 노동과정에서 다시 자금을 대기 위해 돌아가는─가치증식의 지점에서다. 노동계급(이것이 어떻게 정의되든)은 반가치의 화신이다. 이런 소외된 노동의 개념에 기초해서 트론티와 네그리, 그 밖의 이탈리아 자율주의자들은 생산의 지점에서 나타나는 노동자의 저항과 계급투쟁에 관한 자신들의 이론을 구축한다. 노동 거부 행위는 인격화된 반가치다. 이 계급투쟁은 생산의 숨은 공간에서 일어난다. 그것은 실현의 계기에 지배적인 구매자와 판매자 간의 정치와는 아주 다른 정치를 수반한다. 잉여가치를 생산함으로써 노동자는 자본을 생산하고 자본가를 재생산한다. 노동하기를 거부하는 것을 둘 다를 거부하는 것이다."(130)


"어느 경우든 대출된 화폐─발생된 부채─는 이자 낳는 자본으로 신용제도 내부를 순환하는 일종의 반가치가 된다. 부채의 거래는 금융제도 내의 한 능동적 요소가 된다. 이는 더 많은 유동성을 창조하며, 회전시간이 서로 크게 다른 자본들이 만들어내는 연속적 순환의 방해물을 우회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신용 개입의 즉각적인 역할은 비축된, 따라서 '죽은' 화폐자본을 되살려 다시 운동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채는 미래의 가치생산에 대한 청구로서, 이는 가치생산을 통해서만 상환될 수 있다. 미래의 가치생산이 부채가 상환되기에 불충분할 경우 위기가 온다. 가치와 반가치의 충돌은 주기적으로 화폐·금융 위기를 촉발한다. 결국 자본은 부채 경제와 신용제도 내부에 쌓여가는 반가치를 상환하기 위해 미래의 가치에 대한 갈수록 불어나는 청구와 마주해야 한다. 자본이 초래하는 것은 가치와 부의 축적이 아니라 상환되어야 할 부채의 축적이다. 가치생산의 미래는 압류된다."(133-4)


"부채라는 반가치는 가치와 잉여가치의 추가적인 생산을 보장하는 주요 유인이자 수단 중 하나가 된다. 자본순환을 추동하는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한 전통적·관습적 시각의 답은 언제나 개별 자본가의 이윤추구(탐욕)였다." "그러나 이윤 극대화의 추구가 잉여가치 생산의 극대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윤의 신호는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니더라도 우리를 오도한다. 그런 신호를 쫓아가는 것은 이윤의 저하와 위기로 이어질 수 있음을 맑스는 보여준다. 그렇다면 두 가지 해결책이 떠오른다─경쟁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한 대기업으로의 자본집중, 그리고/또는 유효수요의 창출과 실현 조건의 조작을 통해 축적의 유인을 제공하기 위한 국가의 개입, 국가와 민간의 부채금융(debt-financing)은 가치생산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자본주의 세계의 대부분에 걸쳐 1945년부터 1980년까지의 기간이 그런 경우였다."(134-5)


"맑스는 위기에 대해 대체로 다음과 같은 가능성을 환기한다. (1) 사용가치의 물리적 파괴(destruction)와 하락(degradation), (2) 교환가치의 강제적인 화폐적 평가절하(depreciation), (3) 과잉축적의 불합리성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하게 '합리적인' 방법으로서, 앞의 가능성들에 수반하는 가치의 가치저하(devaluation). 여기서 나오는 용어에 주목하자. 연관된 각각의 형태─사용가치, 교환가치, 가치─는 특정 형태의 부정에 종속되는데, 한 형태가 자동적으로 다른 형태를 함축하지 않는다. 가치저하와 교환가치의 평가절하가 반드시 사용가치의 물리적 파괴를 의미하지 않는다. 사용가치는 자본주의적 축적의 부활에 쓰일 무상 재화─가령, 가치가 평가절하된 주택의 사용가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가령 부동산 시장에서) 교환가치의 급격한 절상(appreciation)이 반드시 가치의 그 어떤 증가를 함축하지는 않으며, 또 그것은 사용가치의 그 어떤 실질적 향상도 의미하지 않을 수 있다."(143-4)


"가치의 계산에 지식과 과학, 무급 가사노동, 자연의 '무상 증여물' 등을 포함시키는 것이 최근 비판적 평론의 크나큰 관심사였다. 그런 것들은 결국 가치의 원천이 아닌가? 맑스의 답변은 그것들이 기계의 경우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즉, 그것들은 노동력의 생산성에 기여하는 한에서 자본가계급을 위한 상대적 잉여가치의 원천이지만 자본이 규정하는 가치의 원천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정치적으로 사태를 완전히 오도한다. 그것은 대항정치에서 비가치나 반가치가 (그리고 소외되지 않은 노동과 처분 가능한 시간이) 행하는 변증법적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바로 그 비가치와 소외되지 않은 노동의 공간으로부터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그 고유의 가치 형태 및 그 소외들에 대한 심오하고 광범위한 대중적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자본주의 생산양식 내에서 가치 및 잉여가치의 생산자가 되는 것은 맑스의 말에 따르면 축복이 아니라 '불행'이다."(150-1)


"반가치는 자본순환의 연속성이 깨질 가능성을 예고한다. 그것은 어떻게 자본의 위기 경향이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고 하나의 계기(가령 생산)에서 또다른 계기(가령 실현)로 옮겨다닐 수 있는지를 예시(豫示)한다. 위기는 반드시 자본주의의 종말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갱신의 장을 마련한다고 맑스는 (많은 통념에 반하여) 말한다. 자본의 재생산에서 반가치가 수행하는 변증법적 역할이 가장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이 지점에서다. 〈위기는 기존 모순의 일시적이고 폭력적인 해결책, 흐트러진 균형을 잠시 회복시키는 폭력적인 폭발 그 이상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자본의 재구성은 불안하며, 한계가 있다. 부채(미래의 가치생산에 대한 청구)의 축적은 미래의 가치 및 잉여가치 생산 능력과 실현 능력을 넘어설 수 있다. 부채가 성공적으로 상환된다 해도 그것을 갚아야 할 의무가 대안적 미래를 압류한다. 부채노역은 개인의 미래와 경제 전체의 미래에 족쇄를 채운다."(154)


5장 가치 없는 가격


"가치와 가격 사이의 질적 불일치는 곤혹스러우며, 맑스가 인정한 것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둘 사이의 모순은 시간이 흐르면서 더 첨예해졌을지 모른다. 투자자가 가치와 잉여가치 창출에 투자하는 대신, 가격 결정 시장에서 (예술품이나 통화 선물先物, 탄소배출권 선물 같은) 가치가 없는 자산에 대한 투기적 이익을 추구하는 경우, 이는 가치가 (가치 전유와 대비되는) 직접적인 가치생산이 이뤄지지 않는 가공의 시장에서 화폐로서 순환되도록 자본의 전반적 순환으로부터 걸러져 나올 수 있는 경로를 나타낸다. 가격신호(price signals)가 그것이 표상하게 되어 있는 가치를 배반할 때 투자자는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 만일 부동산시장이나 그밖의 자산투기 형태에서 화폐적 이윤율이 가장 높다면 합리적인 자본가는 생산활동의 영역보다 거기에 자기 화폐를 배치할 것이다. 그 결과는 경제 전체의 장기 침체 경향이 심화되는 것일 수도 있다."(157-8)


"이를 상쇄할 만한 것은 어떤 사용가치들이 '무상 증여물'로서 자본주의적 생산에 진입한다는 사실이다. 〈금속, 광물, 석탄, 석재 등의 경우처럼 노동의 대상이 (···) 자연이 무상으로 제공하는 어떤 것〉일 때 그런 일이 일어난다. 자본은 자연과의 신진대사적 관계에 물질적으로 의존하지만 이는 자연 그 자체가 가치를 지님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연은 자본이 어떤 댓가도 지불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무상 증여물들의 저장소다. 그러나 그런 사용가치가 울타리쳐져 다른 이의 사유재산이 되면 그것은 가격을 지닐 수 있다. 그러면 그것이 가치를 지니지 않더라도 그 소유자는 그 자원으로부터 화폐지대(money rent)를 추출할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된다. 구축된 환경, 개척·경작지, 먼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적 가공물도 마찬가지다. 간혹 '제2의 자연'으로 지칭되는 것도 생산에서 사용가치로 기능할 무상 증여물의 보고(寶庫)다."(158)


"맑스는 가치의 한 형태로서의 지식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지식과 정신적 능력─인간 본성의 무상 증여물─이 어떻게 가치를 생산하는 고정자본에 편입되고 그럼으로써 가치생산의 동인인 노동이 쓸모없게 될 정도로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리는지(우리 자신의 시대에 나타나는 인공지능으로의 전회轉回가 그 한 예다)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노동가치론을 쓸모없게 만들 것임을 맑스는 암시한다. 맑스의 연구 대상은 고정자본이지, 지식 그 자체가 아니다." "이로부터 우리는 생산력의 향상으로 순환에 투입되는 물리적 상품의 양이 급속히 증가함에도 가치와 잉여가치가 감소하거나 심지어 순환에서 사라져버릴 때 어떤 일이 발생할지 생각하게 된다. 물리적 상품생산 및 가격 책정의 증가와 가치 및 잉여가치의 사회적 생산의 감소 사이의 간격은 파국적으로 벌어지고, 많은 맑스주의자가 보기에 이는 자본주의의 최종적 붕괴를 향한 불가피한 경로를 선명히 제시한다."(162-7)


"자본을 '운동하는 가치'가 아니라 '운동하는 화폐'로 정의하는 것은 오늘날 자본축적이 맞닥뜨린 딜레마를 이해할 수 있는 복잡하긴 해도 중요한 길을 차단하는 것이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유럽중앙은행은 양적 완화를 시행할 때 가치가 부재한 상태에서 화폐를 창출한다. 그 화폐가 이자 낳는 자본으로서 유통될 때 그것은 미래의 가치 및 잉여가치 생산에 의해 상환되어야만 하는, 그리고 상환되리라고 추정되는 반가치로 기능한다. 그러나 방출된 화폐가 부동산시장, 주식시장, 미술시장 같은 자산시장으로 유입되면 거부(巨富)는 투기로 더더욱 부유하게 되더라도 그 반가치는 청산되지 않는다. 그럴 경우 앞서 발생한 반가치를 청산하기 위해 더 많은 반가치를 창출해야 할 강한 유인이 존재한다. 그 결과는 가치생산에서의 장기 침체일 뿐 아니라, 근래에 우리가 걸어온 위험한 길, 즉 끝없는 화폐 확대의 길인 폰지 자본주의의 창출이다."(173-4)


6장 기술의 문제


"자본가에게 기계는 그것의 진정한 본질, 즉 초과 잉여가치의 원천으로 보인다. 이로부터 자본가는 기계는 가치의 원천이라고 추론한다. 맑스는 결코 그럴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기계는 죽은 자본 또는 불변자본이며, 따라서 기계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다. 기계 가치의 일부는 상품 가치로 이행하지만 그것은 불변자본(사용을 통해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 자본)으로서 그렇게 한다. (과거의 노동이 아니라) 살아 있는 노동이 잉여가치의 유일한 원천이다. 기계는 그저 노동력의 생산성이 향상되도록 도와서, 총가치는 그대로인데 개별 상품의 가치는 떨어지게 된다. 그 결과는 역설이다. 기계가 노동과 결합하면, 생산된 가치는 불변하더라도 기계는 자본가를 위해 더 많은 잉여가치를 생산한다. 대부분의 자본가는 (대중과 마찬가지로) 기계가 가치를 생산한다고 믿으며, 이 믿음에 따라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181-2)


"많은 혁신은 시장에서나 노동과정에서나 노동자를 무력화하도록 고안된다. 기술은 (여성과 아이들도 수행할 수 있는 종류의) 탈숙련화된 직무구조로써 숙련노동을, 그리고 어떤 기량들(skills)에 따른 독점적 권력을 축출하는 바, 그것은 계급투쟁의 중요한 무기다. 〈그러나 기계는 언제나 노동자를 불필요하게 만들 태세인 우월한 경쟁자로서만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기계는 노동자에게 적대적인 힘이며, 자본은 이 사실을 큰 목소리로, 의도적으로 선언하고 또 이용한다. 기계는 파업, 즉 자본의 전제(專制)에 대한 노동계급의 주기적 반란을 억누르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기술로 유발되는 실업을 통한 실업 노동자 산업예비군의 형성은 노동을 절감해주는 기술적 적응(technological adaptations)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능률과 공조를 향상시키는, 또는 생산과 유통 모두에서 회전시간을 가속화하는 혁신은 자본을 위해 더 많은 잉여가치를 산출한다."(183-4)


"기술(technology) 그 자체가 하나의 사업이 되면서, 이제 우리가 다루는 것은 어떻게 특정한 생산시설에서 스스로 무언가를 발명하고 혁신함으로써 생산성을 향상시킬까 고민하는 개별 기업가가 아니라, 혁신을 전문으로 하며 혁신을 다른 모든 사람(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판매하는 데 몰두하는 거대한 산업 부문이다. 길모퉁이 식료품점이나 철물점은 재고를 관리하고 판매·구매·세금 문제를 챙기기 위해 어떤 정교한 사무기기를 들여놓도록 꼬드겨지고 설득되고 마침내는 (세무 당국에 의해) 강요된다. 그런 기술에 대한 비용 부담은 작은 가게들을 문 닫게 만들고, 슈퍼마켓과 할인매장이 번성하게 하며, 그럼으로써 자본의 점진적 집중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런 혁신들 중 많은 것의 채택 여부는 그것이 얼마나 노동자를 훈육하고 무력화하며,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생산과 유통에서 자본 회전의 능률과 속도를 증가시킬 수 있는가에 달렸다."(196-7)


"그러므로 경제적 불안정성이라는 현재의 딜레마에 대해 어떤 기술적 해결책을 구한다면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그리고 물신주의적인) 것이리라. 거의 확실히 해답은 주어진 사회적 목표에 적합한 기술적·조직적 변화와 더불어 사회·정치적 관계의 변화에서, 또 정신적 관념, 생산체제, 그밖에 진화과정 상의 다른 모든 계기들에서 유발되는 변화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기술적 해결책에 대한 물신주의적 믿음은 기술적 진화는 불가피하고도 유익하며, 우리가 그것을 제한하는 것은 물론, 그것을 집단적으로 통제하고 그 방향을 바꾸는 것도 결코 가능하지 않고 그렇게 하려고 시도해서도 안 된다는 자연주의적 관점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사회적 행동을 신화적 믿음에 개방하는 것이야말로 물신 구성물이 지니는 성격에 속한다. 이러한 믿음은 물적 토대를 지닐지 모르지만 물질적 제약은 재빨리 벗어나고, 일단 현실에 적용되면 또 뚜렷한 물질적 결과를 지닌다."(198)


7장 가치의 시간과 공간


"가치법칙은 세계시장을 형성하고 자본 자신의 형상대로 생산과 소비의 지형을 바꿔놓으라는 이 요구를 내면화한다." "여기에서 마찰 없는 공간적 세계에서 작동하려는 자본의 유토피아적인 꿈(지금 사이버머니의 이동성과 더불어 대체로 성취된)이 생겨난다. 이것이 지리적 차이의 역할을 무의미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 차이의 중요성을 높이는데, 왜냐하면 이제 화폐자본은 초과이윤을 얻을 목적으로 생산조건의 작은 차이라도 활용하기 위해 비용 없이 옮겨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전세계의 노동인구는 서로간의 경쟁에 내몰린다. 화폐자본의 초(超)이동성에 의해 형성된 노동공급 세계시장은 갈수록 더 현저한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국제무역에 대한 물리적 장벽의 제거가 사회적·정치적·문화적 장벽의 제거를 동반해야 한다는 점은 자명하다. 대중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자유무역 이데올로기와 정치가 헤게모니를 지니는 이유다."(213-4)


"일단 특정 장소의 토지에 투자자금이 투입되면 자본은 그 자금이 가치저하를 겪지 않도록 그것을 그 장소에서 이용해야 한다. 자본의 운동은 계속해서 더 넓은 공간적 범위로 자본의 유동적 운동을 확장하는 임무를 띤 바로 그 투자에 의해 공간적으로 제한된다. 시간에 의한 공간의 소멸은 세계시장의 상대적 시공간(relative space-times)을 개조하려는 충동 내부의 중요한 현상이다." "그러나 『자본』에서 맑스는 확실히 공간보다 시간의 연구를 우선시한다. 가치는 세계시장에서의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으로, 이는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다수의 구체적인 시계-시간과 대조된다. 잉여가치는 한가지이나, 자본이 작업장 안팎에서 온갖 술수를 동원해 가능한 한 많은 추가 노동시간을 절취함에 따라, 필요노동시간과 과잉노동시간으로의 노동일의 분할(그리고 절대적 잉여가치를 증가시키는 노동일의 길이)이 어떻게 이뤄지느냐를 두고 매일같이 싸움이 벌어진다."(215-222)


"자본은 과잉인구(산업예비군)와 과잉생산물(실현의 문제에 직면하는 상품)을 생산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그것은 고정자본의 형성을 초래하는 조건을 체계적으로 생산한다. 고정자본의 규모가 클수록 더 많은 과잉노동과 과잉자본이 흡수될 수 있다. 〈그리하여 기계류를 만드는 데보다 철도, 운하, 수로, 전신 등등을 만드는 데 더 많이 [동원된다]〉. 그러나 이런 일이 일어나려면 자본이 모여 화폐력의 집중 형태를 구성해야 한다." "어떤 특별한 종류의 고정자본에 대해 생각해보면 이 경향은 한층 더 분명해진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물리적 기반시설(그중 일부는 공공재의 성격을 지닌다)은 자본주의 형태의 발전을 위한 사용가치로서 긴요하다. 이 기반시설 중 많은 것(주택, 학교, 병원, 쇼핑몰 등)은 생산보다 소비의 목적에 이용되는 반면 철도와 고속도로 같은 다른 것들은 생산과 소비에 똑같이 잘 이용될 수 있다." "우리 시대 선진자본주의 세계에서는 확실히 후자의 투자가 커다란 중요성을 띤다."(238-9)


"이자 낳는 자본의 순환을 통해 공급되는 반가치의 '암흑 물질'은 미래의 가치생산에 대해 자기 몫을 요구하는데, 미래의 가치생산은 복리이자 지급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증가해야 한다." "자본가가 고정자본을 구매하거나 빌릴 때 그는 그것의 가치가 완전히 상환될 때까지 그것을 사용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가치저하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부동 고정자본은 그것의 수명 전 기간에 걸쳐 그 가치가 상환되려면 본래의 위치에서 사용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역설이 있다. 자본 일반의 공간적 이동성을 해방시키기 위해, 어떤 장소에 자리잡는 물리적 기반시설을 제공하도록 계획된 자본 형태는 결국 고정자본이 규정하는 그 공간으로 자본이 흘러들 것을 요구하며, 그렇지 않으면 고정자본의 가치가 저하되면서 그것에 자금을 댄 이자 낳는 자본(가령 연금기금)에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이것이 자본의 위기 경향이 첨예화되는 강력한 방식들 가운데 하나다."(240-1)


8장 가치체제의 생산


"1980년대 중반 이후 발생한 기술적·조직적 혁신의 물결은 지역 가치체제를 근본적으로 재편해왔다. 관세와 그밖의 국경 장벽들이 축소되거나 선택적으로 제거됨에 따라 운송비가, 한층 더 중요하게는 조정시간(coordination times)이 점차 줄어들어왔다. 생산과 유통에서의 속도 향상은 시대가 추구하는 물신적 목표였다. 세계적 생산사슬의 창출로 국경을 넘어서는 생산의 조합이 가능하게 되며, 이 경우 가령 미국의 기업은 디자인과 조직 및 마케팅 기술을 제공하고 여기에 멕시코의 저가 노동이 결합되는데, 이는 독일 기업이 폴란드에서 하는 것과 거의 동일한 방식이다. 멕시코와 폴란드로서도 얼마간 수익이 생기지만 가치는 대부분 미국과 독일 기업들 차지가 된다─비록 미국과 독일의 노동자들은 외국 노동자들과 훨씬 더 격렬한 경쟁을 벌이게 되고 그 재조직화로부터 (어쩌면 더 값싼 소비재를 누린다는 점 외에는)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하지만 말이다."(262-3)


"자연과 인간 본성의 무상 증여물은 불변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제공된 잠재적 사용가치들에 대한 자본주의적 가치평가에 의존한다. 천연자원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이용할 수 있는 요소들에 대한 경제적·기술적(technical)·사회적·문화적 평가물이다. 한동안 수력에 대한 접근이 중요했으나 증기기관의 등장은 그런 위치상의 제약에서 자본을 해방했다. 우라늄은 원자력이 발명되기 전까지는 무의미한 자원이었다." "1970년대 이전, 산업화된 지역에서 완벽하게 연마된 노동 기량은 그 이후 그 기량을 기계기술과 자동화 속으로 흡수한 기술변화로 인해 쓸모없게 되어버렸다. 문화적 소양은 세계의 어떤 시장들에서 나타내는 구별짓기, 계급, 좋은 취향 등의 표지에 대한 열광적인 추구를 지탱하는 어떤 소비주의의 진화에 중요하다." "그것들은 생산되고 또 계속 변하고 있으며, 자본 자체가 그 생산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 결과는 세계적 동질성이 아니라 지역적 다양화다."(264-5)


"사회적·물리적 기반시설에 대한 투자는 상대적 이점의 지리적 집중을 초래하며, 자본은 여기로 이끌릴 수밖에 없다. 자연 및 인간 본성의 무상 증여물은 먼저 생산되어야만 자본에 선물로 주어질 수 있다. 고유한 지리적 가치체제들의 불균등발전 뒤에서 작동하는 원형적(cicular)·누적적(cumulative) 인과과정을 깨뜨리는 어떤 위기가 발생하지 않는 한, 빈곤 지역은 더 빈곤하게 되고 부유한 지역은 대개 갈수록 더 부유하게 된다. 장기간 지속되는 이점은 고정자본의 가치나 소비자금이 상환되는 날을 훨씬 넘겨서까지 유지된다. 미국에서 고등교육에 대한 초기 투자는 1970년대 이후로 제조업에 피해를 입힌 탈산업화에 맞서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등의 인터넷·첨단기술 기업은 재빨리 세계적 독점 기업으로 자리잡았는데, 물론 그 혜택은 늘 그렇듯이 노동이 아닌 자본으로 흘러간다."(268-9)


"우리는 가치의 운동법칙이 관철되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 탐색을 상당히 개연성 있는 주장, 즉 세계시장을 정복하고 구축하는 것은 자본 자체의 본성에 속한다는 주장으로 시작했다. 그 법칙이 작동해야 하는 모순적 영역을 가로질러 온 우리는 이제, 집단적 인간 역사를 피로 얼룩지게 하는 인간의 온갖 비이성적 결함들과는 별개로, 세계시장의 통일성, 동질성, 초감각적 합리성을 이질성, 차이, 지리적 불균등발전의 잠재적으로 위험하고 공존 불가능한 수많은 파편들로 산산조각 내는 것 역시 자본의 본성에 속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세계적 차원의 파워블록들 간에 벌어지는 지정학적 투쟁의 문제로 변형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이제까지 자본주의의 지정학적 역사는 상당히 추했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변별적 가치체제들의 창조로부터 생겨나는 고려사항들은 그 역사지리학에서 미묘한 역할을 수행한다."(273)


9장 경제적 이성의 광기


"상품생산의 직접적인 목적은 사회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므로, 상품의 관점에서 교환가치는 〈다만 일시적인 관심사〉다. 교환의 세계에서 화폐는 교환을 용이하게 할 뿐이다. 그러나 자본 및 잉여가치 생산의 세계에서 화폐는 아주 다른 성격을 띤다. 여기서  가치는 〈증대를 통해서만 자신을 보존한다. 그것은 끊임없이 자신의 양적 장벽을 뛰어넘어 돌진함으로써만 자신을 보존하는 것이다. (···) 그리하여 부유하게 되는 것은 그 자체로 목적이다.〉" "바로 이 점이 자본주의하의 화폐를 다채로운 전(前)자본주의적 화폐 형태들 모두로부터 구별시켜준다. 〈어떤 금액으로서의 화폐는 그 양으로 측정된다. 이런 측정됨은 무량한 것(the measureless)을 지향해야 하는 그 성격과 모순된다.〉 화폐는 결코 제어되거나 제약될 수 없다. 바로 이것이 헤겔이 '악무한'이라고 지칭하는 것이다. 이는 종결이 없는, 그리고 신의 지혜처럼 인간의 모든 이해를 넘어서는 무한의 형태다."(277-8)


"『자본』 제3권에서 맑스는 이 광기의 또다른 차원을 들춰낸다. 이자 낳는 자본이 〈모든 정신 나간 형태의 근원〉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이 경우 화폐는 상품의 역할로 되돌아가지만, 그 상품의 사용가치는 그것이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타인에게 무한한 양으로 대출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 교환가치는 이자다. 가치의 표상인 화폐 자체가 화폐가치를 획득한다. 이자는 〈처음부터 불합리한 표현〉이다. 그 결과는 〈부조리한 모순〉으로서, 여기서 〈자본의 내적 경향은 타인 자본이 그것에 가하는 강제로 현상한다.〉 여기서 반가치가 지배하게 된다. 이자 낳는 자본의 순환(주식 및 채권 소유자의 권력)이 가치를 계속 운동하게 하는 최상의 힘이 되면 〈이로써 자본의 물신적 성격과 이 자본 물신의 표상은 완성된다.〉 경제적 이성의 광기는 화폐가 쉼없이 더 많은 화폐를 만드는 마술적인 힘을 지닌 것으로 나타나는 물신 형태에 의해 은폐된다."(279-80)


"부르주아적인 경제적 이성의 광기는 가치와 그것의 화폐적 표상 사이의 적대성이 커져감에 따라 더욱 확대된다는 점을 맑스는 발견한다. 화폐가 필연적으로 일체의 (금·은 화폐상품과 같은) 물적 기반에서 분리되어 자유로워지면서, 화폐의 관념적 구성물(달러·유로·엔화 등의 숫자)은,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화폐가 점점 더 신용화폐 형태로 현상하는 사태는 인간 판단의 변덕에 취약해지며, 권력의 고삐를 쥔 모든 자의 무절제한 행위와 조직에 노출된다. 〈단순한 유통수단으로서 (···) 종의 역할을 하던 화폐는 갑자기 상품세계의 지배자이자 신으로 변모〉하는데, 이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형태로 특정 개인의 소유가 될〉 수 있다. 부채가 타인의 미래 노동에 대한 청구인 것과 정확히 똑같은 방식으로 화폐는 타인의 사회적 노동에 대한 개별화된 청구다. 화폐는 그 소유자에게 〈사회에 군림하는 권력, 만족과 노동 등등을 포괄하는 세계 전체 위에 군림하는 권력〉을 선사한다."(281-2)


"『열일곱가지 모순과 자본주의의 종말』에서 나는 현시대에 자본주의의 생존에 분명한 현재적 위험을 초래하는 모순이 세가지 있다는 생각을 피력했다. 그 하나는 자연에 대한 우리 관계의 악화였다(지구온난화에서 서식지와 종의 파괴, 물 부족, 환경 악화에 이르는 모든 것). 두번째는 지수 성장곡선─J자 형태를 그리는 지수함수적(기하급수적) 성장곡선─ 상의 변곡점에 도달한 영구적 복합성장으로, 수익성 있는 투자 기회가 갈수록 부족해지는 마당에 그 성장곡선이 계속 유지되기는 점점 더 어렵다는 사실이 빠르게 드러나고 있었다. 이것은 또한 무한히 늘어날 수 있는 저 한가지 형태의 자본, 특히 통제 불가능하게 되어가는 듯한 신용 형태의 화폐에 강한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세번째는 내가 보편적 소외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맑스에게 가치는 소외된 사회적 필요노동이다. 자본은 운동하는 가치이므로 자본의 순환은 소외된 형태들의 순환을 동반한다."(307-8)


"그러나 이 문제에는 다른 차원들이 있다. 노동자들은 개별적으로 고용되며 일자리를 두고 경쟁한다. 그들은 자기 자질을 홍보하는 한편 자기 경쟁자들의 자질을 축소하고 심지어는 헐뜯음으로써 자신을 노동력의 담지자로서 자본에 팔아야 한다.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은 협력을 좌절시키고 계급연대의 형성을 방해한다. 그것은 온갖 방식의 분열을 가져온다. 노동자들은 서로 소원해진다. 여기에 노동시장에서 인종차별주의, 젠더차별, 성적이거나 인종적(ethnic)이거나 종교적인 적대성(자본이 열심히 조장해온 역사가 있는 분열들)이 스며들면 그것은 한층 더 흉측하게 된다. (광범위한 실업과 세계 노동인구의 더 긴밀한 공간적 통합이라는 조건하에서) 고조된 경쟁은 도처에서 노동인구 내부의 이 분열과 긴장을 강화하고 있으며, 특히 탈산업화를 통해 과거의 사회적 연대가 해체되어 온 상황 속에서 예측 가능한 결과를 낳고 있다."(310)


"엄청난 경쟁의 압박이 자본순환의 가속화를 부추긴다면 이는 소비속도의 증가를 요구한다." "자본은 소비에서 회전시간을 가속화하기 위해 계획적 노후하에서 광고의 압력과 유행을 설득수단으로 동원하는 데 이르기까지 온갖 전술을 전개한다." "한순간에 소비되는 덧없는 생산물의 일종의 시장 성장을 보장하기 위해 자본이 '스펙터클의 사회'를 조성한 것도 별로 놀랍지 않다. 이것의 사회적 결과는 광범위하고도 이중적이다. 생활양식, 기술, 사회적 기대 등에서의 빠른 변화는 사회적 불안정성을 배가하며 여러 세대 사이, 다양화하는 사회집단들 사이의 사회적 긴장을 증가시킨다." "문화적 의미의 착근성(rootedness)은 당대의 환상에 따라 임의적으로 재구성되기도 하며, 정체성은 일시적이고 덧없는 애착의 바다에서 떠다닌다. 자본이 끝없는 복합성장의 요구에 부응하려면 그런 상태에 상응하는 사람들과 생산물이 필요하다. 무한한 자본축적의 관점에서 보면 '합리적 소비'는 바로 이렇게 보인다."(312-3)


"기회주의적 형태의 자본은 또한 정당한 몫보다 훨씬 더 많은 가치를 전유하려고 실현의 순간에 개입한다. 헤지펀드가 제약회사를 인수하거나 압류된 주택을 대량으로 사들인 뒤에 방향을 바꿔 그것을 빈궁한 소비자에게 터무니없는 가격에 내놓을 때 실현은 강탈에 의한 축적의 체계적 조직을 위한 순간이 된다." "실현의 순간에 일어나는 부의 추출에 연루된 정치는 생산을 둘러싸고 생성되는 정치와는 다르다. 그런 투쟁은 이론화하거나 조직하기 어렵다." "더구나 자본은 실현으로부터 많은 부를 추출하지만 분배로부터는 더 많은 부를 빨아들인다. 가장 뻔뻔한 형태의 재분배는 세계 여러 나라의 국민생산에서 노동의 몫이 감소하는 점, 특히 근래에 노동이 생산성 향상에서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하는 점을 부각시킨다. 그 대신 노동은 기술변화로 인한 실업과 노동의 질의 빠른 저하로 고통 받아왔다. 국가와 기업 내부의 과도한 관료화가 동반된, 생산적 노동에서 비생산적 노동으로의 이행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314-5)


"온갖 종류의 사회적 의미를 담고 있을 인간의 부가 갈수록 화폐력이라는 단일한 측정기준에 갇힌다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적이다. 맑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편협한 부르주아적 형태가 벗겨지고 나면, 부란 개인의 필요, 능력, 쾌락, 생산력 등등의 보편성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 창조적 잠재력의 절대적 발현, (···) 하나의 특정성 속에서 자신을 재생산하는 대신 자신의 총체성을 생산하는 것, 이미 형성된 어떤 모습을 유지하려 애쓰는 대신 되어감(becoming)의 절대적 운동 속에 있는 것[이 부가 아닌가]?〉 부르주아 경제학에서─그리고 이에 조응하는 생산 시기에─인간적 내용의 이러한 완전한 발현은 완전한 비움(emptying-out)으로, 이 보편적 대상화는 총체적 소외로, 모든 편협한 일면적 목표의 해체는 완전히 외적인 목적에 대한 인간적 목적 자체의 희생으로 나타난다. 이것이야말로 〈온갖 환상을 무색하게 한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정신 나간, 심히 우려되는 세계다."(322-3)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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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의 도시 -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
데이비드 하비 지음, 한상연 옮김 / 에이도스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서문 르페브르의 구상


"르페브르는 1965년 저서 『코뮌 선언』에서 혁명운동은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자주 도시적 차원에서 진행된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했다." "1967년에 펴낸 『도시에 대한 권리』는 마르크스의 『자본』 출간 100주년을 기념하는 책이라고 했으나, 그 이면에는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적 사고에 문제제기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사실 전통적 마르크스주의는 파리 코뮌을 프랑스 역사의 핵심 사건으로 신화화하고 높이 평가하면서도 혁명 전략의 차원에서 도시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르페브르는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노동자계급'이 혁명적 변혁의 주체임을 환기시켰지만, 혁명적 노동자계급에 도시 노동자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은연중 암시했다. 훗날 자신이 말한 대로 이는 통념과는 갈래가 전혀 다른 혁명적 계급 편성 방식이었다. 도시 노동자는 파편화되고 분열이 심하며 목적과 요구가 다양하다. 또한 한곳에 고정적으로 정착하기보다는 일자리를 찾아 떠돌아다니기 일쑤고 조직화 수준이 무척 낮다."(14-5)


제1장 도시에 대한 권리


"여기서 내가 말하는 도시권에 대한 요구는 도시 공간의 형성 과정에 행사하는 권력, 즉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를 만들고 뜯어고치는 방법을 지배하는 권력을 철저하고 근본적으로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 도시는 본래 잉여생산물이 사회적, 지리적으로 집적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이 때문에 도시화는 언제나 일종의 계급현상이었다." "자본주의 하에서도 이런 일반적 상황이 지속되고 있으나 이전 시대와는 다소 다른 역동성이 존재한다. 마르크스가 말하듯 잉여가치(이윤)의 영속적 추구가 자본주의의 토대를 이룬다. 하지만 잉여가치를 만들어내려면 자본가는 잉여생산물을 생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사실은 자본주의가 도시 공간의 형성에 필요한 잉여생산물을 끊임없이 생산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정반대의 관계도 성립한다.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생산한 잉여생산물을 흡수하는 도시 공간의 형성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자본주의 발전과 도시화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28-9)


"1800년대 중반, 오스만은 파리의 기반시설을 전면적으로 바꿔놓았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도시형 생활양식을 창조하면서 새로운 유형의 도시형 인격을 구축했다. 파리는 '빛의 도시'가 되었고, 소비, 관광, 쾌락의 일대 중심지로 변모했다. 카페, 백화점, 패션산업, 대형 박람회 등은 조야한 소비주의를 자극해 잉여를 흡수했고 생활양식을 확연히 바꿔놓았다. 그러나 이후 파리 대개조를 뒷받침했던 금융 시스템과 신용구조는 점차 투기적 성격을 띠었고 결국 1868년 파탄 나고 말았다." "오스만이 파리를 근대적 도시로 바꿔놓은 것처럼 모제스도 제2차 세계대전 후 뉴욕 대도시권을 전부 뜯어고쳤다. 뉴욕 개조 사업에서 모제스는 도시 형성 과정에 관한 사고의 규모와 기준을 다시 한 번 바꿔놓았다. 부채로 조달한 자금으로 고속도로망과 도시 기반시설을 건설하는 시스템으로, 적극적인 교외화로 그리고 도시만이 아닌 대도시권 전체의 재개발로, 잉여생산물을 흡수하고 과잉자본을 처리하는 방법을 제시했던 것이다."(33-5)


"군사화와 더불어 교외화가 1950~60년대 잉여를 빨아들인 양대 저수지였다. 그러나 교외화는 도심 공동화를 초래했다. 도심은 지속가능한 경제기반을 상실한 채 그대로 방치되었고, 1960년대 이른바 '도시 위기'를 불러왔다. 번영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채 이너시티(황폐화된 도심 빈곤 지대)로 몰려든 다양한 소수자(주로 흑인)가 반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오스만이 주도한 파리 대개조가 파리 코뮌의 역동성을 설명해주는 하나의 요인이었다면, 1968년 미국에서 극적으로 전개된 여러 운동의 결정적 요인은 삭막한 교외생활이었다. 불만을 품은 중산층 백인학생은 반란을 일으켰고 소외된 다양한 사회집단을 규합했다. 그들은 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한편 전과는 다른 도시 생활을 꿈꾸며 또 하나의 세계를 건설하기 위한 운동을 전개했다(이때에도 아나키즘과 리버테리어니즘을 지향한 세력은 위계적, 중앙집권적 대안을 내세운 세력과 맞서 싸웠다)."(36-7)


"2000년대 들어 도시 형성 과정은 또 한 차례 대규모 변화를 겪었다. 간단히 말해 글로벌화되었다. 따라서 미국에만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시야를 넓혀야 한다. 영국, 아일랜드, 스페인을 비롯한 많은 나라의 부동산시장 붐은 미국 부동산시장 붐과 더불어 자본주의의 역동성이 더욱 커지는 데 힘을 보탰다." "중국은 전세계적으로 진행되는 도시화 과정에서 하나의 중심지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두바이, 상파울루, 마드리드, 뭄바이에서 홍콩과 런던에 이르는 글로벌 금융시장이 세계화의 일환으로 긴밀하게 통합되는 중이다. 이때 부채로 조달한 자금을 도시 개발 사업에 유연하게 투입하는 방법이 주로 애용된다. 이를테면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미국의 2차 주택 담보대출 시장에서 대활약했다. 골드만삭스는 뭄바이의 부동산시장이 과열되는 데 한몫했고, 홍콩 자본은 미국 볼티모어에 투자했다. 전 세계 거의 모든 도시에서 부자(세계 어디서나 부자는 습성이 비슷하다)를 위한 건설 붐이 한창이다."(39-40)


"현재의 도시 개발 붐은 새로운 금융기관과 금융제도를 구축해 신용을 조직하는 방법으로 유지되었다. 여기서 1980년대에 발동이 걸린 금융혁신, 특히 전 세계 투자자에게 판매하기 위한 지역 모기지의 증권화와 패키지화, 2차 주택 담보대출 시장을 촉진하고 부채담보부증권을 보유할 새로운 금융기관의 설립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것의 이점은 무척 컸다. 무엇보다 위험 분산이 가능했다. 고여 있던 잉여 저축이 주택수요 쪽으로 쉽게 흘러갔다. 그러나 아무리 위험을 분산한다 해도 위험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위험을 넓게 분산할 수 있다는 사실은 지역 차원의 위험한 행동을 부추긴다. 위험을 얼마든지 다른 곳으로 떠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위험이 적절하게 평가되고 관리되지 않기 때문에 주택 담보 대출 시장은 통제권을 벗어났다. 결국 1867~68년 페레르 형제 사태나 1970년대 전반에 벌어진 뉴욕 시 파산 사태가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와 주택자산 가치 폭락 사태에서도 되풀이되었다."(41)


"과거에도 그랬듯 최근 도시 형성 과정이 급격하게 확산되면서 생활 양식도 엄청나게 변화했다. 이제 돈 많은 부자에게 도시생활의 질은 일개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 소비주의, 관광, 문화·지식산업뿐만 아니라 스펙타클형 경제에 대한 끝없는 의존이 도시 정치경제의 주요 측면으로 자리 잡은 세계에서는 도시도 하나의 상품이다. 도시형 생활양식과 소비습관의 틈새를 파고든 시장과 다양한 문화 형태 개발을 부추기는 포스트모던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도시 경험은 시장을 통한 선택의 자유 일색으로 물들었다." "이런 세계에서는 극심한 소유적 개인주의라는 신자유주의 윤리가 인격을 사회적으로 형성하는 규범으로 작용한다. 그 결과 인류가 역사 속에서 마음속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 애써 창조해낸 (적어도 그 엄청난 스케일과 모든 것을 포괄하는 특성 측면에서 판단할 때) 가장 위대한 사회적 성과 중 하나인 대도시에서는 개인주의적 고립감, 불안, 신경증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43-4)


"에르난도 데 소토는 남반구에서 저소득층이 빈곤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명확한 사적 소유권이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적 있다(명확한 사적 소유권이 정립된 사회도 빈곤문제가 눈에 띈다는 사실은 무시한 주장이었다). 리우데자네이루와 리마 빈민가 주민에게 사적 소유권을 인정해준 덕분에 개인들이 넘치는 의욕으로 기업가적 노력을 기울여 개인적 지위 향상을 이룬 사례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이윤 극대화를 지향하지 않는, 사회적 연대와 상호부조에 바탕을 둔 집단적 생활양식이 빈번하게 파괴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무튼 사적 소유권을 인정함으로써 일정한 성과가 나오기도 했지만, 안정적이고 마땅한 일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성과가 무색해지곤 했다. 예를 들어 줄리어 엘리어차가 분석한 카이로의 사례를 보면, '약탈 시장'은 상호존중과 호혜성에 기초한 도덕경제에서 가치를 효과적으로 빨아들여 자본주의적 기관에 갖다 준다."(53)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세계은행과 IMF 같은 워싱턴 금융기관이 지구적인 빈곤문제 해결책이라며 제시하는 마이크로 크레디트와 마이크로 파이낸스에도 적용된다." "마이크로 크레디트는 집단적으로 부채상환 책임을 져야 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부채에서 해방시키기는커녕 부채에 더 옭아매는 기능을 한다. 더구나 워싱턴 금융기관이 밝힌 마이크로 파이낸스의 세계는 글로벌 금융기관을 위한 고이율 수입원을 만들어낼 소지가 다분하다." "마이크로 파이낸스는 다국적기업이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빈곤층 20억 명을 새로운 시장으로 여기며 접근할 길도 열어주었다. 다국적기업은 이 거대한 '피라미드의 맨 밑바닥 시장'에 여성 중심의 마케팅 네트워크로 뚫고 들어가 다국적 창고와 노점상을 연결하는 치밀한 마케팅 사슬을 만들어놓았다." "마이크로 파이낸스는 겉보기에는 그럴 듯해서 더 생산적인 대안을 찾지 못하게 방해한다. 그 어떤 '도시권'도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53-5)


제2장 자본주의 위기의 진원지, 도시


"자본가가 잉여가치를 생산하려고 노동자의 '야성적 충동'을 동원할 때 마주하는 여러 난관은 생산과정의 중심부에 노동과정이라는 특이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한다(건설 산업 이상으로 이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는 산업 부문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마르크스의 이론적 장치를 갖고 현실의 사건을 분석하려 할 때 신용 시스템은 물론 이자율과 이윤율 사이의 관계를 자본의 생산·유통·실현의 일반법칙 속에 집어넣는 것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기존의 이론적 통찰을 유지하려면, 신중한 자세로 신용을 일반이론에 통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신용 시스템 자체를 하나의 실체로 다뤄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월스트리트나 런던에서 활발하게 이뤄지는 금융 활동을 메인 스트리트(산업계)에서 전개되는 다양한 활동과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실 신용에 기반을 둔 많은 활동은 투기적 거품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자본이 기능하는 데 근본적이고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80-1)


"이 사실을 이해하려면 마르크스가 '의제자본'의 범주로 분류한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의제자본과 토지시장 및 부동산시장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명확히 분석해야 한다. 또한 괴츠만과 뉴먼이 말했던 것처럼 증권화가 투기자본과 모험적 건설사업자를 연결시켜주는 고리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토지가격 및 건물가격, 지대를 둘러싸고 벌어진 투기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근본 요인이기 때문이다." "시중은행끼리 서로 대출해주거나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대출해준 덕분에 시중에 흘러 다니는 자금이 풍부해져 지대를 획득하고자 하는 부동산 투기업자가 쉽게 투기자금을 확보한다면, 한 의제자본 위에 다른 의제자본이 더해지는 식으로 의제자본이 무한히 돌고 도는 것처럼 보인다. 레버리징의 고도화(현재 보유한 현금예탁금 총액의 3배가 아니라 30배, 아니 그 이상의 대출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의제자본의 형성과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 흐름에 의해 실물자산은 가공자산으로 바뀐다."(81-3)


"생산에서 창출된 가치와 잉여가치 상당수는 다양하고 복잡한 경로를 거쳐 의제자본의 회로로 흡수된다. 은행이 다른 은행에 대출을 해주면서 서로에게 레버리지로 작용하면 자산가치가 끊임없이 변동한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온갖 부대지출과 투기적 운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들 자산가치는 '자본화'라는 위태로운 과정에 따라 결정된다. 마르크스는 이를 의제자본이 형성되는 하나의 형태로 여긴다. 〈정기적으로 확보되는 그 어떤 소득도 자본을 대출할 때 적용되는 평균이자율에 따라 계산된다. ······ 이것의 소유권을 구입한 사람이 보기에 1년 동안 거둔 소득은 자기가 투자한 자본에 대한 이자이다. 이리하여 자본의 실제 가치증식 과정과의 연관은 모두 사라져 자본은 스스로의 힘으로 저절로 가치증식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확고해진다.〉" "여기서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요점은, 지불된 이자는 어디선가 생산된 가치에서 나온다는 것이다."(84-3)


"부동산의 생산과 유통 기간은 어떤 상품과 견주어도 장기적이기 때문에 부동산 공급은 아주 비탄력적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광풍 당시 막대한 양의 의제자본이 주택금융으로 유입되어 주택 수요를 부추겼지만, 그 중 일부만이 신규주택 건설에 투입되었다. 서브프라임 주택 담보대출 시장은 1990년대 중반만 해도 약 300억 달러였으나, 2000년에 이르러 1,300억 달러로 늘어났고 2005년에는 6,250억 달러에 달해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수요가 이렇게 급속도로 증가하면, 제아무리 건설업자라도 공급을 맞출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가격은 상승했고, 그 추세가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보였다. 이 모든 것은 의제자본의 유입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자본은 〈자동적으로 가치를 증식할 수 있다〉는 물신적 신념이 온전히 유지되어야만 가능했다. 마르크스는 생산을 통한 가치 창조가 불충분하면 물신적 신념이 유지될 것이라는 환상은 반드시 가혹한 결과를 낳는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92)


"이 이야기는 또 하나의 상황과도 맥이 닿는다. 미국의 경우 주택가격의 상승은 유효수요를 늘렸다. 2003년 한 해만 봐도 1,360만 건의 주택 담보대출이 발생했고(10년 전 주택 담보대출 발생건수는 그 절반에 지나지 않았다), 그 총액은 3조 7,000억 달러였다. 그 중 2조 8,000억 달러는 차환 목적의 주택 담보대출이었다(비교를 위해 말해두자면, 2003년 기준 미국 총 GDP는 15조 달러에 약간 못 미쳤다). 소유한 부동산 가치의 상승으로 이득을 거둔 가구가 많았다. 임금은 제자리 수준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이득은 꼭 필요한 경비(의료비 등)나 소비재 구입비(신차나 휴가)로 쓸 추가 현금을 입수하는 유력한 방법이었다. 주택은 편리한 캐시 카우, 개인 ATM이 되었고, 덕분에 주택수요는 말할 것도 없고 총 수요도 더욱 늘어났다." "문제는 이들 금융기관은 기차가 탈선하기 전까지 기차에서 뛰어내릴 수 없다는 데 있다. 자본은 '스스로의 힘으로 가치를 증식할 수 있다'는 망상은 저절로 유지된다."(94-5)


제3장 도시는 누구의 것인가?


"미국 생태학자 개럿 하딘의 고전적 논문 「공유지의 비극」은 사유재산권이 확립되면 토지와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거나 민영화를 정당화하는 반박 불가능한 근거로 자주 인용된다." "소를 기르는 사람은 공유 목초지에 방목하는 소의 마릿수를 늘려 개인적 이득을 취하려고 한다. 이로 인해 목초지의 지력이 쇠퇴하면, 이는 공유 목초지 이용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소를 기르는 사람은 서로 앞다퉈 소의 마릿수를 지속적으로 늘려나간다. 공유 목초지가 지력을 상실해 황무지로 변할 때까지 이런 일이 지속된다. 여기서 목초지가 아닌 소가 공유된다고 해보자. 그러면 자원의 공유적 성격이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 소를 사적으로 소유하면서 개인적 효용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임을 알 수 있다." "오늘날 공유재에 관한 사고는 사적 재산권을 강화하자는 해결책과 국가의 권위주의적 개입을 강화하자는 해결책 사이를 극단적으로 오락가락하기만 한다."(128-9)


"공교롭게도 전통적 사고에서는 '위계'라는 말을 아주 싫어한다. 특히 좌파에게 더욱 인기가 없다. 사실 비국가적·비위계적 수평 조직을 정치적으로 유일하게 올바른 조직으로 여기는 급진파 연구자가 많다. 이들은 자신들의 연구가 중층적, 위계적 조직의 필요성을 암시하는 것으로 귀결될까봐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대규모 공유재(지역 차원의 소규모 공유재와는 전혀 다르다)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의 문제(예컨대 하딘이 관심을 기울였던 지구적 차원의 인구문제)는 가급적 피하려고만 한다." "그러나 한정된 규모에서 공유자원을 합리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식은 지구온난화 같은 문제, 아니 심지어 화력발전소로 인해 발생한 산성비가 넓은 지역으로 확산되는 문제에는 적용이 안 될 뿐더러 불가능하다. '규모를 뛰어넘으면'(지리학자는 이렇게 말하기 좋아한다) 공유재 문제의 전반적 성격은 물론 공유재 문제의 해결책을 발견할 전망까지 판이하게 바뀌고 만다."(131)


"흔히 악으로 치부되는 인클로저와 공유재 사이의 관계를 둘러싸고 많은 혼란이 있다. 하지만 큰 규모의 사회질서(특히 지구적 차원의 사회질서)에서 모종의 인클로저는 때로 귀중한 공유재를 보호하는 최상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모순된 말처럼 들릴 것이다. 아니 모순된 말이다. 그럼에도 여기에는 현실의 모순된 상황이 반영되어 있다. 가령, 아마존 열대우림 지대의 생물다양성과 원주민 고유문화를 지구 전체의 자연·문화 공유재로 정하고 보호하려면 인클로저를 강제하는 엄격한 법이 필요하다." "즉, 공유재 문제는 모순적 성격이 다분하고, 때문에 논쟁의 대상이 되곤 한다. 이런 논쟁의 배후에는 서로 충돌하는 사회적·정치적 이해관계가 가로놓여 있다. 자크 랑시에르가 말했듯이 〈정치라는 것은 끊임없이 다툼이 벌어지는 공동의 활동영역이다.〉 결국 공유재를 분석하다보면 다음과 같은 물음에 종종 직면하게 된다. 즉, 어느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어떤 이들의 공동이익을 어떤 수단으로 옹호해야 하는가?"(132-4)


"하딘이 거론한 사례에서 진정한 문제는 공유지 그 자체가 아니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근본문제는 소를 소유할 개인적 권리와 개인의 효용 극대화 행동이지 공동 목초지는 아니다. 자유주의 이론은 사적 소유권이 공정하고 자유로운 시장교환 제도를 통해 사회 속에 자리 잡을 때 공동이익이 극대화된다는 주장으로 사적 소유권을 정당화한다. 토머스 홉스에 따르면 강력한 국가권력의 틀 안에서 사적 이익을 경쟁적으로 추구하는 가운데 공동의 부가 생산된다. 존 로크, 애덤 스미스 같은 자유주의 이론가도 명확하게 밝힌 이런 견해는 이후에도 힘을 잃지 않았다." "이런 유형의 신화는 널리 퍼져 있다. 빈곤층 내면에서 잠자는 기업가정신을 일깨우면 만성적 빈곤문제가 해결되고 공동의 부가 늘어나는 등 만사가 잘 풀릴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 중세 후기 이후 영국에서 일어난 최초의 인클로저 운동을 옹호하기 위해 나온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두말할 나위 없이 그릇된 것이다."(140-1)


"마르크스가 노동력이 어떻게 개별 상품이 되어 '공정하고 자유로운 시장'에서 매매되는지를 논의하는 단계에 이르면 로크의 허구적 이론은 그 정체가 폭로되고 만다. 교환가치의 평등에 토대를 둔 시스템은 (부르주아적 권리와 합법성이 지배하는 시장이 아니라) 생산 영역에서 살아 있는 노동을 착취함으로써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를 위해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공장에서 노동자는 집단적으로 조직된다. 이런 노동형태에서 파생되는 소유권은 집단적, 협동적 소유권일 수밖에 없다." "가치, 즉 사회적 필요 노동시간은 자본주의적 공유재로 화폐, 즉 공동의 부를 측정하는 보편적 등가물을 통해 표현된다. 따라서 이 가치라는 공유재는 과거에 존재했지만, 현재에는 사라진 그런 것이 아니라 도시 공유재와 마찬가지로 지속적으로 생산되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집단적 노동이 쉬지 않고 생산하는 가치를 자본가가 상품화되고 화폐화된 형태로 인클로저하고 영유한다는 것이다."(142-4)


"자본은 예전부터 사회적 재생산 비용을 외부성으로 여기고 싶어 했다. 다시 말해 시장에서 책임질 필요가 없는 비용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선진자본주의 세계에서 사회민주주의 운동이 활발해지고 공산주의라는 대안이 현실적 위협으로 대두하자 자본은 1970년대에 이르러 환경 악화에서 비롯되는 외부비용의 일부와 함께 사회적 재생산 비용의 일부도 내부화해야 했다. 1980년경부터 신자유주의 정책은 이렇게 내부화한 비용을 사회적 재생산의 글로벌 공유재와 환경에 전가해 이른바 '부정적 공유재'를 만들어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오늘날 선진자본주의 세계의 거의 모든 주민은 부정적 공유재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렸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본은 사회적 재생산과 환경 개선을 지탱하는 공공재의 공급을 줄여 그 질을 더욱 떨어뜨렸다. 자본은 또 이 위기를 이용해 더욱 극성스럽게 약탈 활동에 나섰고, 경제성장이라는 명목으로 공유재를 사적으로 영유하는 데 힘썼다."(156-7)


제4장 지대의 기법


"시장 프로세스는 자본가가 자금과 토지를 포함해 생산수단의 소유를 사적으로 독점하는 것에 좌우된다. 자유로운 경쟁은 결국 엄청난 규모의 자본 집중을 촉발한다. 돌이켜보면 모든 지대는 토지와 특허 등 생산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자산을 자본가 개인이 사적으로 소유해 독점력을 행사하는 데서 나온다. 따라서 사적 소유에서 비롯되는 독점력은 모든 자본주의적 활동의 처음이자 끝이다. 모든 자본주의적 거래의 바탕에는 매매하지 않을 법적 권리도 있는데, 매매하지 않겠다는 선택(이를테면 돈을 쌓아놓는 구두쇠 행동)은 자본주의적 시장에서 중요한 문젯거리이다. 따라서 순수한 시장 경쟁, 자유로운 상품교환, 완전한 시장 합리성은 오히려 드물 뿐더러 생산과 소비 결정을 내릴 때 믿고 의지하기에는 고질적으로 불안정한 장치이다. 문제는 자본가가 정치경제 시스템인 자본주의의 토대가 되는 사적 소유에 대한 개인적·계급적 독점 특권을 내려놓지 않으면서 경제관계의 경쟁적 성격을 유지하려고 하는 데 있다."(170-1)


"교통과 통신 환경의 변화로 공간의 장벽이 얇아지면서 지역의 독점 특권이 침식되고 있는 세계화 시대에 독점력을 유지하는 첫 번째 경로는 거대기업에 자본을 집중적으로 몰아주는 것, 혹은 시장을 지배하는 느슨한 계열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항공산업과 자동차산업 등). 두 번째 경로는 글로벌 거래를 규율하는 국제상법을 무기로 사적 소유권의 독점권을 한층 확고하게 정립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특허 그리고 이른바 '지적 재산권'은 독점력이 자신의 이익을 주장하고 관철하기 위한 투쟁의 장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대규모 자본 집중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특허와 사용권 계약으로 보기 드문 독점력을 행사하는 제약 산업이 전형적 사례이다. 제약산업은 온갖 종류의 유전물질에 대한 사적 소유권을 확립해 한층 더 강고한 독점력을 누리려고 발버둥 친다. 하나의 원천에서 나오는 독점 특권이 줄어들면서, 다른 방법으로 특권을 유지, 집적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173)


"독특함과 특수함, 진정성과 특별함을 주장하는 것이 독점지대를 획득하는 능력의 토대를 이룬다면, 역사적으로 구성된 문화적 산물과 관습, 특별한 환경적 특징(건조환경, 사회환경, 문화환경 등)만큼 내세우기 좋은 것이 있을까? 와인 거래에서 알 수 있듯 이런 모든 주장은 물질적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다른 한편 그럴듯한 설명과 표현을 만들려는 노력의 결과이자 이를 깎아내리려는 외부의 시도에 맞서 싸운 산물이기도 하다. 이런 주장의 많은 것들이 역사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집단적 기억을 해석해 적절한 의미를 부여하고, 의미 있는 문화적 실천을 하는 것 등에 좌우된다. 독점지대를 뽑아내기 위한 명분을 쌓을 때는 언제나 강력한 사회적·담론적 요소가 작동한다." "가장 명백한 사례는 관광업일 테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집합적 상징자본의 힘, 즉 어떤 장소에 특별한 차별성을 부여하는 행동이 갖는 힘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말해 자본의 흐름을 이끌어내는 유의미한 힘이다."(183-4)


"독점지대의 바탕이 되는 탁월성을 상실할 정도의 상업주의로 방향을 바꾸느냐, 아니면 상업적으로 거래되기 힘든 특수한 탁월성을 더욱 쌓아올리느냐 하는 딜레마는 끊임없이 존재한다. 그래서 생산물, 장소, 문화 형태, 전통, 건축유산과 관련하여 무엇이 특별하고 무엇이 특별하지 않은지를 정의하는 문제를 놓고 치열한 담론 전략이 항상 맞붙는다. 담론을 놓고 벌이는 싸움은 게임의 일부가 되고, 여기서 독점지대를 옹호하는 사람들은(이를테면 언론과 학계) 이런 담론 과정에 끼어들어 재정 지원을 받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사람도 얻게된다. 이때 유행에 호소하면 얻을 수 있는 게 많다(흥미롭게도 유행의 중심에 서는 것은 도시가 집합적 상징자본을 축적하는 한 가지 수단이다). 자본가는 이 점을 잘 안다. 이에 다문화주의, 유행, 미학 같은 복잡한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더 나아가 문화전쟁도 서슴지 않는다. 그렇게 해야만 독점지대를 잠시라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191)


"하지만 독점지대는 모순적이다. 독점지대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글로벌 자본은 지역의 독특함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긴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독특할수록, 또 지금 같은 시대에는 일탈적 성격이 강할수록 더 좋다. 독특함과 특수함, 진정성과 독창성뿐만 아니라 상품생산의 전제인 균질성과 어울리지 않는 사회생활의 모든 차원이 가치평가 된다. 아울러 만약 자본이 독점지대를 영유하는 토대인 독특함을 완전히 파괴할 수 없다면(실제로는 그런 사례나 그랬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는 사례가 많다), 차라리 일정한 방식의 차별화를 지원한다. 또 너무 다양해서 완전히 제어하기 힘든 지역 문화가 자본 자신이 원활하게 움직이는 데 방해가 된다 해도 어느 정도 발전할 여지를 인정하기도 한다." "자본의 과제는 독점지대를 영유하기에 충분한 문화적 차이와 문화 공유재를 통합하고, 포섭하며, 상품화하고, 화폐화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본은 문화생산자 사이에서 광범위한 소외와 분노를 자아낸다."(193-4)


"대항운동의 과제는 문화 공유재가 광범위하게 영유되는 현실을 고발하는 것이다. 또 특수함과 독특함, 진정성, 문화, 미적 의미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새로운 가능성과 대안을 만들어 활용해야 한다. 대항운동은 최소한 진정성과 창의성, 독창성이 노동자계급과 농민 등 비자본가계급의 역사 지리에서 나온 게 아니라 부르주아가 배타적으로 생산한 것이라는 사고에 저항해야 한다." "그렇다고 문화적 특수성의 미학과 진정성, 독창성의 '순수한' 가치에 애착을 보이는 것이 진보적 대항정치의 적절한 토대라는 뜻은 아니다. 그럴 경우 자칫 지역주의적, 지방주의적, 국수주의적 네오파시스트형 정체성 정치로 쉽게 방향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유럽 전역은 물론 그 이외의 지역에서도 이런 골치 아픈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좌파가 붙잡고 해결해야만 하는 중심 모순이다. 바로 거기에 자본이 폐쇄할 수 없는 변혁의 정치를 위한 공간이 존재한다."(194-5)


제5장 반자본주의 투쟁을 위해 도시를 되찾자


"전통적 좌파(내가 염두에 둔 것은 사회주의 정당과 공산주의 정당, 노동조합이다)에 속한 많은 사람들은 정치적, 전술적 선험 전제를 깔고 도시 기반 정치운동의 역사 지리를 해석하는 습성이 있다. 이 때문에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변화의 불을 지피는 도시 기반 운동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하고 오해하는 사례가 많았다. 특시 도시 사회운동은 당연히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노동의 착취와 소외에 뿌리를 둔 반자본주의 계급투쟁과는 분리된 것 혹은 그 부속물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여긴다. 설령 도시 사회운동을 고찰한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인 반자본주의 계급투쟁의 단순한 파생물이나 대체물로 해석했다. 마르크스주의 전통 안에서 도시 투쟁은 혁명적 잠재력과 혁명적 의의가 없는 것으로 무시되고 묵살되는 경향이 있다. 도시 투쟁을 생산 문제보다는 재생산 문제, 또는 권리와 주장, 주권, 시민권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할 뿐 계급과 관련 있는 것을 해석하지 않는 것이다."(208-9)


"지금까지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이론적 결론은 분명하다. 생산에서 계급관계를 철폐하려면 자유무역과 세계시장을 통해 생산 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자본주의적 가치법칙의 힘부터 철폐해야 한다. 반자본주의 투쟁은 기본적으로 노동과정 내부의 조직화 및 재조직화와 관련이 있어야 한다. 또 세계시장 전반에 작용하는 자본주의적 가치법칙을 대신하는 정치적·사회적 대안을 찾아내야 한다." "이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통적 좌파는 국가권력의 획득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국가권력을 이용해 자본과 화폐의 흐름을 규제 및 통제하고, 합리적 계획화로 비시장적(그리고 비상품화된) 교환 시스템을 구축하며, 국제적 노동 분업을 조직적, 의식적으로 계획하고 재구축하면 자본주의적 가치법칙의 대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이 전 세계적으로 먹히지 않자, 공산주의 국가들은 러시아 혁명 이후 자본주의 세계시장에서 최대한 고립되는 쪽을 선택했다."(213-4)


"역사상 현시점에서 볼 때 저항과 대중운동이 주기적으로 터져나오고 (다양한 갈래의 대안운동을 포함한) '흰개미 정치'가 자본의 물질적, 제도적 기둥을 갉아먹으려고 위협한다. 이것은 자본주의적 가치법칙과 근본적으로 단절하는 데 필요한 객관적 조건이 어느 정도 성숙해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적인 창조적 파괴라는 혼란스러운 과정은 좌파집단을 활기찬 상태에서 응집성이 없고 파편화된 상태로 만들고 말았다. 이 모든 것들 한가운데에는 구조적 딜레마가 놓여 있다. 말하자면 좌파는 세계시장에서 자본주의적 가치법칙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면서 그 대안도 만들어내야 한다. 또 협동적 노동자가 무엇을 어떻게 생산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놓고 민주적이고 집단적으로 결정하고 운영하는 능력도 길러야 한다. 이때 좌파에게 이 두 가지 과제를 융합할 능력이 있는가가 딜레마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반자본주의 대안운동을 더 큰 틀에서 이해하지 못하게 방해한 핵심적인 변증법적 긴장관계다."(217-8)


"지금까지 대안적 좌파의 정치적 사고를 지배한 노동자관리 개념에는 문제가 있다. 여기서 투쟁의 초점은 잉여가치 생산의 장인 직장과 공장에 맞춰져 있었다. 산업노동자계급은 전통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 혁명의 주체로서 우대받았다. 하지만 파리 코뮌을 주도한 것은 공장노동자가 아니었다." "계급적 착취의 역학은 일터에만 한정해서 일어나지 않는다. 그 영향은 공장뿐만 아니라 생활공간에서 주로 감지된다. 착취의 이차적 형태는 자본축적의 역동성을 유지하고 계급권력을 영속화하기 위해 언제나 필요한 것이었다." "'약탈에 의한 축적', 지대와 임대료 갈취, 화폐와 이익의 부당한 착취 등은 일상생활의 질을 둘러싸고 대다수 주민들이 느끼는 수많은 불만의 핵심을 이룬다. 도시의 사회운동은 보통 이런 문제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또한 노동은 물론 생활을 둘러싸고 계급권력의 영속화가 조직되는 데서 도시 사회 운동이 발생한다. 따라서 도시 사회운동에는 항상 계급적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220-2)


"도시 공간은 그 자체가 생산물이다. 도시에는 수많은 노동자가 생산에 종사한다. 노동자의 노동은 가치와 잉여가치를 새산하는 생산적 노동이다. 따라서 잉여가치가 생산되는 주된 장소는 공장이 아니라 도시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파리 코뮌은 도시를 생산한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들이 생산한 것을 소유하고 관리할 권리를 되찾기 위한 투쟁으로 개념이 재정립될 수 있다. 이런 프롤레타리아트는 전통적 좌파 대다수가 전위적 역할을 부여한 (공장) 프롤레타리아트와는 분명히 다른 프롤레타리아트이다(파리 코뮌의 경우 실제로 그랬다). 이들 프롤레타리아트는 불안정한 처지에 있다는 것, 임시적이고, 일시적이며, 공간적으로 흩어져 고용된다는 것, 공장을 기반으로 조직하기가 극히 어렵다는 것 등을 특징으로 한다." "이제는 수많은 미조직 도시생산자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프롤레타리아트 개념을 바꿔 그들 고유의 혁명 능력과 역량을 탐구해야 한다."(222-3)


제6장 2011년 런던, 야만적 자본주의가 도시를 강타하다


제7장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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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을 읽다 - 마르크스와 자본을 공부하는 이유 유유 고전강의 2
양자오 지음, 김태성 옮김 / 유유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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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장 형식과 내용이 완전하게 일치하는 '진실'을 추구하다


"자본, 특히 19세기 유럽에서 마르크스가 본 발달된 산업 자본주의는 일단 형성된 다음에는 너무나 쉽게 국경을 넘어 국가와 정부 권력이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 되었다. 진정으로 근본적인 현상은 '자본에는 조국이 없다’라는 것이다." "이 말은 '자본가에게는 조국이 없다' 혹은 나중에 좀 더 통속적인 화법으로 나온 '상인에게는 조국이 없다'라는 말과도 다르다." "마르크스가 말하고자 한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은 자체적인 작동 논리를 갖추고 있으며, 그 움직임은 자본을 쥐고 있는 자본가마저도 주관적인 의지로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자본가가 자본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자본가를 통제한다. 자본은 인위적인 것이고 자본가가 투자를 통해 창출한 것이지만 일정한 정도에 이르면 오히려 자본가의 행위를 결정하고 자본가를 조종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헤겔로부터 물려받아 더욱 확장하고 변화시킨 '소외'의 개념이다."(40-1)


"100여 년 전, 마르크스는 관찰과 사유를 통해 이런 현상을 예견했다. 이 때문에 그는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라는 운동 구호를 '졸렌' 차원의 해결책 혹은 대항 방법으로 삼았다. 노동자가 자주성을 확보하려면 자본가에게 '잉여 가치'를 창출해 주는 도구로 전락하지 말고 '자본에는 조국이 없다'라는 본질에 맞서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라는 국경을 초월해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국경 개념에 입각한 시각으로 자본을 대하면 하나의 국가에 있는 자본과 자본가만을 볼 수 있을 뿐이며, 이러한 노동 운동은 영원히 성공할 수 없다고 보았다. 자본은 국경을 초월하고 자본가는 자본의 본질에 기초한 연맹을 형성할 수 있다. 따라서 자본가에게 대항하려면 노동자와 노동 운동도 반드시 국경을 초월하는 연합 전선을 형성해야 하는 것이다. 즉,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라는 말은 현실 묘사가 아니라 당위 명제이다."(44-5)


# 자인(Sein)은 사실을 대표하고 졸렌(Sollen)은 당위성을 나타낸다. 자인은 실재의 상황이 어떤지를 나타내고 졸렌은 상황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나타낸다.


"헤겔 철학의 시작점은 '초월적 정신'이다. 먼저 '초월적 정신'이 있어야 타락이 있고 현실 세계가 있을 수 있다. 세계는 '초월적 정신'의 물화, 객관화이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기원 관계를 전도시켜 '초월적 정신'과 '신'이 인간 이상理想의 투영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헤겔은 세계가 '정신'의 물화라고 말하는 반면 마르크스는 '정신' 혹은 '신'이 인간의 이상화라고 말하는 셈이다. 마르크스는 헤겔 이론의 시작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먼저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정신'이 있다고 할 때, 이 '정신'은 자기를 실현하기 위해 현실로 전개되며 이로 인해 모든 변화가 시작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것이 신화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마르크스는 순수한 인간의 시각에서 역사의 변화란 추상적이고 논리로만 가정할 수 있을 뿐 손으로 잡을 수 없는 '정신'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얻은 진실성의 충동이 전개된 시험이자 투쟁이라고 간주했다."(67-8)


"'신'과 '정신'은 모두 인간의 창조물이다. 이것이 헤겔 철학에 대한 마르크스의 극적인 전도다. 인간은 자신이 마땅히 갖고 있어야 하는데도 현실에서는 갖지 못한 가장 아름다운 성질을 '신'에게 투영했다. 이 때문에 '신'의 진정한 모습은 '가장 진실한 인간'이 된다. '신'은 인간 삶의 가장 순수하고 이상적이며 진실한 상태를 체현한다. '신'은 원래 인간과 인간의 이상과 인간의 추구를 대표한다. 다시 말해 '신'이 존재하는 목적은 인간을 '신'으로 만드는 것, 인간을 '신'처럼 순수하고 진실하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인류의 경험 속에서 '신'은 '소외'되고 말았다. 인간은 진실한 인간을 나타내는 '신'을 창조하여 이를 숭배 대상으로 삼았을 뿐 아니라, 철저하고 절대적으로 인간과 분리시켰다." "'신'을 창조한 이상 본질적으로 인간이 '신'의 주인이 되어야 했지만, '소외'를 통해 위치가 완전히 뒤바뀌었고, 인간은 자발적으로 '신'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70-1)


"마르크스의 기본 신념이란 인간의 진실성에 대한 변함없는 관심이며, 이는 그의 사회 분석 및 역사 해석의 판단 기준이었다.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인가? 사람이 '소외'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어 '진실한' 삶을 추구하고 실천할 수 있게 해주는 사회일 것이다. 역사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각 역사 단계에서 인간이 얼마나 '진실'했는지, 얼마나 '소외'의 역량에 견제당했는지 유익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관찰하고 판단해야 한다." "마르크스가 관심을 갖는 것은 군중이 조직한 사회가 어떻게 사람들을 '진실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느냐 하는 문제다. 이 때문에 그는 어떤 사회 요소 혹은 힘이 사람의 '진실한' 삶을 저해하는지를 가장 열심히 분석했다. 그는 왜 자본주의를 죽도록 미워했던 것일까? 왜 그토록 비판적인 필치로 그 두꺼운 『자본론』을 썼던 것일까? 그의 철학적 시각에서는 자본과 자본주의가 인간과 '진실' 사이에 가로놓인 가장 커다란 장애였기 때문이다."(72-6)


2장 '실낙원'의 속죄의 길을 다시 걷다


"『자본론』 제1권은 대부분 '노동 가치'에 대한 탐색과 평론에 집중되어 있다. 우리가 흔히 듣는 마르크스의 경제학 이론에 대한 비판은 대부분 그의 '노동 가치설'을 겨냥한다. 비판자들은 상품의 가치가 완전히 '노동 가치'에서 오는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생산에는 노동 가치 외에도 다양한 요소가 섞여 있는데 마르크스는 이런 다양한 요소를 무시하고 원료 가치와 상품 가치의 차이가 전부 노동 가치에서 온다고 주장하는 탓에 그의 경제 분석은 정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핵심은 이처럼 집중 비판의 대상이 된 '노동 가치설'이 마르크스의 이론에서는 하나의 전략적 가설로서 상품의 성질을 설명하는 데 필요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제3권에 이르면 마르크스는 이 가설에서 벗어난 노동과 가치 관계에 대한 논의를 확대한다. 다만 애석하게도 당시에는 인내심을 갖고 『자본론』을 제3권까지 읽어 내는 사람은 무척이나 드물었다.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그랬다."(89-90)


"마르크스의 논리적 방법은 알튀세르의 표현으로 하자면 '중층 결정'이다. 〈휴대전화가 생활에서 맡은 역할을 사람들 사이의 정보 전달〉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우리가 휴대전화와 생활 사이에서 맺는 다른 형태의 관계를 모른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우리가 휴대전화와 생활 사이에 사람들 사이의 정보 전달 이외의 다른 기능과 관계가 있음을 부정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이러한 방식이 휴대전화의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고 그 기능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다시 말해서 휴대전화가 갖고 있는 모든 성질 가운데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다른 요소들과는 차원이 다른 결정적 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를 '중층 결정 요소'라고 부르는 것이다. 여기서는 설명과 평가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어 양자를 분리할 수가 없다. 한 가지 요소로 설명한다는 것은 우리가 비교적 높은 단계의 결정 요소를 찾아 이 일을 평가한다는 의미다."(91)


"『자본론』 같은 마르크스의 후기 저작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경제학과 경제사, 정치경제 이론을 얘기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러한 정치경제의 논술을 꿰뚫고 있는 것 그리고 마르크스로 하여금 이러한 방식으로 인류의 정치경제 활동을 귀납하게 한 것은 결국 '청년 마르크스' 시기의 철학 정신이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은 『자본론』이 경제학서이자 정치경제학서인 동시에 정치경제학 비판서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본론』이 현대 경제학자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이다. 현대 경제학자는 경제학에서 자랑스럽게 도덕과 윤리의 문제를 배제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정치경제를 분석하기 전부터 먼저 이상적이고 완벽하며 반드시 있어야 할 인간의 상태를 가정했다. 그리고 이를 모든 목표의 종점으로 설정하는 한편 분석과 토론의 기준으로 삼아 인류가 어떻게 이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일관성 있게 사유했다."(98-101)


"현대 서양 경제학은 수요 공급과 가격이 상호 작용한다는 개념 위에서 성립되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서 가격은 검증과 비판의 대상으로만 존재한다. 가격이 반영하는 것은 상품의 사회 관계이지 그 내재 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상품의 내재 가치인데 가격은 가치를 왜곡하는 부정적인 힘이다." "서양 경제학의 시작점은 가치를 방치하고 언급하지 않는 것이다. 가치는 주관적이고 유동적이다. 존재하지만 객관적인 측량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경제학 연구의 범주에 속하지 못한다. 오로지 가격만이 연구되고 논의되며 인류 행위의 변수로서 예측된다. 서양 경제학에서 가치는 칸트 철학에서 가정하는 '물자체'와 같아서 확실히 존재하긴 하지만 결코 직접적이고 실제적으로 만지거나 파악할 수 없다. 교환 관계에 끌어들여 계량이 가능한 가격으로바꿔야만 가치를 파악하고 연구할 수 있다."(105-6)


"가격은 교환으로부터 나오고 사물 사이의 교환 관계에서만 존재할 뿐, '사용 가치'와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물물 교환 관계에서 만들어진 가격은 필연적으로 이성적 강제성을 띠게 된다." "마르크스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일단 물건이 교환을 통해 '상품'으로 변하면 이 '상품'은 필연적으로 그 교환 네트워크를 끝없이 확장하여 방대한 체계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관점에서 '상품'을 말한다. 『자본론』의 출발점은 자본주의 경제학에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다름 아닌 사람과 물건 사이의 원시적이고 직접적인 관계인 '사용 가치'의 관계다. 우리에게 주전자 하나의 용도와 의의는 우리와 주전자 사이의 직접적인 관계다. 교환은 이런 관계를 파괴하고 변형시켜 원래의 계량화가 불가능한 가치를 억지로 가격 계량화 체계 안에 편입시키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물건의 교환 가치가 그 '사용 가치'와 같다고 착각하게 만든다."(114-6)


"『자본론』의 내용은 인간이 원초적 진실에서 점차 멀어지는 순서에 따라 배열되어 있다. '사용 가치'의 추락에서 '교환 가치'로 상품을 정의하고, 자신의 욕망을 '물신 숭배' 충동에 양도하며 돈으로 모든 가치를 포괄하는 추락을 거친 후 한 걸음 더 나아가 돈이 교환 계산의 도구에서 모든 사물의 주재자로 승화하는, 곧 '자본'의 등장으로 추락한다. 돈은 원래 사람들이 물품을 구매할 때 사용하는 도구였지만 '자본'이 된 뒤에는 거꾸로 돈이 사람을 사고 사람이 '자본'에 복무하는 노예가 된다. 이는 『실낙원』의 이야기와 궤를 같이 한다." "『실낙원』은 종교적인 이야기지만 마르크스는 이런 구도를 빌려 인간이 끊임없이 타락해 가는 과정을 밝힐 뿐 아니라 모두가 잃어버린 낙원을 되찾으라고 격려하면서 모두를 속죄의 길로 인도한다. 이것이 바로 세계를 변화시키고 세계를 '소외' 이전의 원초적 상태로 되돌리려는 마르크스의 위대한 계획이다."(123-4)


3장 왜곡과 소외를 지적한 '과학적 유물론'


"초기부터 후기까지 마르크스의 사상 전체를 살펴보면 특별히 토론의 대상으로 삼을 만한 중요한 관념이 한 가지 발견된다. 바로 프락시스Praxis다." "프락시스의 '실천'은 왕양명이 말한 〈지행합일〉知行合一, 즉 이론과 실천의 합일에 가깝다. 혹은 프락시스를 '지식의 실천'으로 보고, 세계를 해석하는 동시에 변화시킨다는 개념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옳고 좋은 지식은 단순히 객관적인 분석에 그치지 않고 변화의 힘을 갖춘 비판이 되어, 사람들이 변증적이고 전복적인 시각으로 세계를 인식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세계를 변화시키는 결심과 힘을 만들어 낸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경제학 분석은 단순한 경제학이 아니라 정치경제학이다. 경제 요소를 분석하는 동시에 필연적으로 어떤 정치적 조치로 기존 경제 구조를 바꿔야 할지 함께 탐색한다. 이는 마르크스 철학의 또 다른 특수한 관점이다."(138-41)


"마르크스는 경제 활동에서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이 정상적인 W-G-W(상품-화폐-상품)가 아니라 뒤집힌 G-W-G, 즉 화폐-상품-화폐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G-W-G가 가리키는 것은 돈으로 물건을 사서 이 물건을 다시 파는 것을 말한다. 즉 매매의 거래는 이 물건을 사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중간에 '사용 가치'가 개입하지 않는다. 가장 전형적인 G-W-G 활동의 예로 부동산 투자자를 들 수 있다. 그들은 거주를 위해 집을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산 집에 거주하는 일이 없다. 순전히 전매를 통해 돈을 벌려는 것이 그들이 집을 사는 목적이다. 그들은 그 집이 자신에게 '사용 가치'가 있는지의 여부는 따지지 않고 전매할 수 있는 '교환 가치'에만 주목한다. 절대 다수의 투자자가 투자로 사는 집은 자신들이 직접 거주하는 집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이들은 자신이 애당초 거주할 생각이 없는 집들을 투자 표적으로 삼아 구매한다."(160-1)


"G-W-G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마르크스가 발견한 것은 경제 활동이 애덤 스미스나 리카도의 생각처럼 그렇게 긍정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경제 활동으로 사회 전체의 사용 이익이 향상되는 것이 아니다. 일부분, 심지어 대부분의 경제 활동은 사실 본말이 전도되어 화폐 가치를 높이고자 이루어진다. G-W-G의 교환 과정에서 교환 성립을 위해 먼저 고려해야 할 사항은 사들인 가격보다 파는 가격이 높아야 한다는 것이고, 상품 자체의 '사용 가치'는 고려 대상 밖으로 완전히 버려진다." "G-W-G는 우리를 교환의 근본 이치에서 떨어져 나오게 하고 교환을 또 다른 일, 즉 화폐를 축적하기 위한 교환으로 변화시킨다. 이때부터 교환의 평가 기준은 더 이상 사람마다 서로 다른 '사용 가치'가 아니라 통일된 화폐의 수치다.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사람들은 추상적인 숫자를 위해 교환하게 되고 경제생활도 추상적인 숫자를 위한 활동이 된다."(161-3)


"화폐는 수천 년 동안 존재해 왔지만 '자본'은 새로운 사회 현상이다. 새로운 사회관계 속에서 전통적인 금전은 '자본'으로 변했다. G-W-G의 과정에서 자본가는 돈을 내고 노동력을 사고 다시 노동력의 성과를 팔아 그 속에 담긴 '잉여 가치'를 취한다. 그러나 노동력이 창출하는 상품 가치는 결국 노동력을 제공한 노동자에게 돌아가지 않고 돈을 낸 사람이 가져간다. 이리하여 이 돈은 '자본'이 된다. 이는 여전히 금전을 통한 매매 교환이다. 하지만 새로운 사회관계에서는 매매에 새로운 이익의 원천이 생겼다. 원료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임대한 토지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공장의 기계 설비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이익은 오로지 노동력의 가격 차이에서 온다. 노동력은 상품 가치를 창출하지만 노동자가 창출한 상품 가치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것은 노동자 자신이 아니라 돈을 낸 자본가다." "'자본'으로 명명된 이 시대는 사실 노동자와 노동력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174-5)


4장 계급 의식의 확립과 착취로부터의 탈피


"마르크스는 수많은 문제를 제기했지만 제때 완성된 해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그가 제기한 문제들이 전부 온전한 해답을 얻었다면 마르크스의 사상은 아마도 후세에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는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길을 따라 논의하고 논쟁하도록 자극했다. 또한 자기 생전에는 사상의 지도에 간단한 그림만 그리고 직접 탐색할 여유가 없었던 여러 영역을 후대 사람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이 때문에 마르크스와 그의 이론을 계승한 '마르크스주의자'를 구분하는 일은 극도로 어렵다. 마르크스 자신이 설계한 방대한 계획의 구체적인 내용에는 '마르크스주의자'의 보충이 필요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미 생전에 마르크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마르크스도 유감스럽다는 듯이 자조 섞인 어투로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던 것이다."(191)


"마르크스 저작의 핵심개념 중 첫 번째는 '착취'로서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물건을 점유하는 것을 말한다. 마르크스는 이런 개념을 사용하면서 더 깊은 함의를 부여했다. 피착취자의 각도에서 '착취'를 해석한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받아야 하는 것보다 더 적게 받았다면 여기에는 필시 '착취'가 존재할 것이며, 그에게 귀속되어야 할 것을 다른 사람이 부당하게 가져갔음을 의미한다. 마르크스가 가장 큰 관심을 가졌던 것은 노동의 결과다. 노동자가 생산한 노동의 결과 가운데 일부 또는 전부가 그에게 귀속되지 않는다면 이는 '착취'다. 마르크스 경제학에서는 '착취'를 고려 대상에 두고 노동의 결과로 얻을 수 있는 보수를 산출하여 이 응당한 보수와 실제 소득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따진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 경제학과 시장 경제학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다. 시장 경제학에서는 노동력을 시장에 두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 가격만 있지 '착취'는 있을 수 없다."(193)


또 한 가지 중요한 검증 개념은 '조작'이다. 마르크스는 애덤 스미스와 리카도가 말하는 시장은 일종의 신화라고 보았다. "마르크스는 애덤 스미스와 리카도가 제시한 경제 논리를 부정하거나 이에 도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 이들의 이론은 현실이 아니라 상상에 기초하여 세워진 경제 논리일 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현실에서는 이처럼 이상화된 시장이 존재하지 않고 항상 각양각색의 힘이 끼어들어 시장의 조작에 개입한다는 사실이다." "마르크스는 시장이 실제로는 이성적이지도 못하고 평등하지도 않다는 사실뿐 아니라, 실제로는 시장이 거짓된 가치 시스템일 뿐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시장에는 갖가지 유혹과 사기가 가득해 사람들이 모든 것의 진실한 모습을 볼 수 없다. 우리가 애덤 스미스의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시장이 항상 '보이지 않는 손'의 공평한 관리 아래 있다고 믿어야 한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쉽게 속임을 당할 것이다."(200-1)


"다음은 '노동이 모든 가치의 근원'이라는 기본 원리다. 노동하는 인간, 생산하는 인간이 없다면 어떤 영역에서든 가치 있는 성과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이는 깨뜨릴 수 없는 진리이고, 이 진리는 온갖 귀신의 유혹으로 가득한 어두운 밤중에 마음 놓고 길을 걸을 수 있게 해주는 횃불이다.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이처럼 간단한 원리로 가치를 평가하고, 이에 의지하여 시장 가격 및 '교환 가치'가 조성하는 혼란으로부터 벗어나는 동시에 타인의 조작을 피할 수 있도록 교육하려 했다. '노동이 모든 가치의 근원'이라는 원칙은 순진할 정도로 간단하다. 마르크스도 이처럼 간단한 원리로는 모든 것을 해석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그의 목적은 복잡한 조작 아래서 자신의 노동 가치를 낮게 평가하고, 심지어 자신에게 노동력의 가치를 이해하고 주장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노동자에게 자기 평가의 기회를 주는 데 있었다."(203)


"시장 경제학은 스스로 자연과학을 모범으로 하는 과학 체계를 구축하여 자연과학에서 자연 현상을 기록하고 분석하고 예측하는 방법을 인간 행위에 그대로 적용한다." "반면 마르크스는 생산이라는 경제 활동을 사회 활동이자 인간관계 행위로 간주한다. 모든 사회관계와 마찬가지로 생산관계에서의 역할과 입장은 상대적이다. 사람마다 서로 다른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러한 관계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견해를 갖게 된다. 시장 경제학에서는 자신들이 신분과 개인적 차이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경제 원칙이라고 말하지만, 마르크스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누구의 입장에 서서 그런 분석을 한 것이냐고 집요하게 따져 묻는다. 이런 문제에서만 출발해도 시장 경제학이 더 이상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경제 법칙이 아니라 자산 계급의 이익을 보호하는 입장에 서서 자산 계급의 '조작'과 '착취'를 합리화하는 이론임을 알 수 있다."(210-1)


5장 '상부 구조'의 구속을 부수다


"『자본론』에서 마르크스가 '임금 노동'과 '노동 일수', '노동 시간' 등에 대해 논한 것을 읽으면서 우리는 그의 참담과 우울, 심지어 비분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일은 사람과 생활에서 분리되었지만 사람과 일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리하여 실제로 사람은 왜소해질 수밖에 없다. '임금 노동자'로서의 부분이 커질수록 자유롭고 진실한 생활의 부분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게다가 '임금 노동'의 부분이 어느 정도까지 확대되면 우리는 '임금 노동' 후의 자유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우리 자신은 존재하지만 생활이 없어지고 그저 '임금 노동자'로서의 존재만 남는다. 이런 상태는 공장과 자본가에게 가장 유리하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 역시 우리 자신이 내일 아침까지 살아 있도록 하기만 하면 되는 정도로 낮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노동 재생산 원가'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수없이 많은 곳에서 이런 인생이 마땅하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된다."(229-30)


"마르크스가 제시한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은 '상대적 잉여가치'다." "가령 노동자가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2,000원의 비용이 들었고 그가 하루 열 시간 일해서 창출할 수 있는 가치 총액이 1만 원이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는 노동자가 착취당할 수 있는 '잉여 가치'가 8,000원이라는 의미다. 그는 자신을 위해 매일 두 시간만 일하면 되므로 나머지 여덟 시간의 노동은 자본가가 임금 형식을 통해 착취할 수 있는 범위가 된다. (그런데 산업화로 인해) 생활에 필요한 비용이 더 줄어들어 이 노동자의 생활에 필요한 비용은 1,000원으로 떨어졌지만 그는 여전히 하루에 10시간씩 일해서 1만 원의 가치 총액을 창출한다. 이리하여 착취당하는 '잉여 가치'는 반대로 더 늘어난다. 새로운 상황 아래서 그는 하루에 한 시간만 일해도 '노동 재생산'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을 얻을 수 있다. 나머지 아홉 시간의 노동은 전부 자본가에게 착취당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산업화로 인한 물가 하락은 자본가에게 여전히 유리하다."(230-1)


"마르크스는 인류 활동에 대한 전면적인 해석을 수립하고자 했다. 이 부분에서 그의 야심은 헤겔과 일치했다. 마르크스가 경제 분야를 논의의 중심으로 선택한 것은 경제 영역에 익숙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그 전면적인 이론에서 경제 활동과 경제 행위가 가장 근본적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어떤 경제 생산 방식이 있으면 그에 따라 어떤 예의와 습관, 풍속, 제도, 사회 조직 내지 문학, 철학, 예술이 출현한다. 이로써 '하부 구조'가 '상부 구조'를 결정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부 구조'에서는 특히 생산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생산관계에서 이익을 얻는 쪽의 가치관으로 물든 ‘상부구조’인 예의와 습관, 풍속, 제도, 사회 조직 그리고 문학, 철학, 예술은 모든 사회 성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갖는다. 이리하여 '상부 구조'는 '하부 구조'를 위해 복무하는 기능을 발휘하고 기존의 생산관계를 보호하고 강화하게 된다."(259-60)


"마르크스는 '상부 구조'의 독립성과 객관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에게 극도로 불평등한 생산관계에서 자본가가 노동자와는 전혀 대칭되지 않는 이익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일깨워 준다. 그 권력이 경제 영역에 한정되어 다른 영역으로는 번져 갈 리 없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자본가는 생산 수단을 통제함으로써 신속하게 노동자의 '잉여 가치'를 빨아들여 자신의 부를 축적하고, 생산관계에서 점한 우세를 이용하여 '상부 구조'의 다른 비非경제 영역에도 자신의 이익을 반영시킨다. 그리하여 전체 사회는 자본가가 노동자를 '조작'하기 위한 시스템으로 개조된다. '노동력 가치'의 판매자로 전락한 노동자는 지불하는 노동력에 상응하지 않는 빈약한 임금을 받을 뿐 아니라 자본 가치가 조성하는 사회 환경에서 살면서 이런 생활이 합리적이라고, 적어도 필연적이어서 이것 말고는 다른 선택이 없다고 착각하게 된다."(260-1)


"마르크스 같은 철학자나 지식인의 임무는 허위를 비판하고 진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들의 방식은 세계의 변화라는 사명을 실천하는 것이지, 비판 이외에 다른 실천적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철학자나 지식인은 조사와 사유로 진상을 찾아냄으로써 착취당하고 상처받는 사람들이 '조작'된 공범 시스템에서 깨어나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는 신분을 회복하고 적극적으로 '정확한' 사회를 창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의 노선이었다. 그러나 시대의 현실이 마르크스를 이러한 노선에서 이탈시켜 버렸다. 나중에 그는 노동자 혁명을 이끄는 자리를 맡게 되어 더 이상 마음껏 사유에 전념할 수 없었다. 이 노선은 레닌에게 전달된 뒤로 '볼셰비키'의 개념이 더해지면서 '당'이 노동자 혁명의 대리자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원래 마르스크의 사유 방향에서 빗나간 논리가 반대로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노선으로 자리 잡았다."(284-5)


"철학자 마르크스와 혁명가 마르크스는 완전히 별개의 인물이지만 불행하게도 너무나 빨리 혁명가 마르크스가 철학자 마르크스를 덮어 버리고 수많은 사람의 머릿속에서 유일한 마르크스가 되고 말았다. 마르크스가 노동자에게 부여한 역사적 사명은 엉뚱하게 '당'으로 옮겨 가 훗날 무수한 논쟁과 비극을 불렀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철학자 신분을 회복시켜야만 그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전면적일 수 있고, 보다 깊어질 수 있다." "마르크스가 묘사한 '소외' 이전의 인류 상태는 역사의 환상이 아니라 철학적 전제였다. 그것은 현실을 재료로 하여 거슬러 올라간 철학적 사유로서, 연역해 낸 논리 명제가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나오는 이상적이고 전면적인 '이데아'에 근접해 있다. 이 이상적인 상태에 대한 추론은 중요한 좌표축이자 우리에게 현실을 검증할 수 있는 기준점으로서 우리가 이를 근거로 현실을 비판할 수 있게 해 주고, 노동자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법을 변화시킨다."(2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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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이후 사이언스 클래식 14
스티븐 J. 굴드 지음, 홍욱희.홍동선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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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 자연 선택 이론

1. 생물들은 서로 다르고(vary), 이러한 변이(variation)는(적어도 그 일부는) 자손들에게로 유전된다.

2. 생물들은 살아남을 수 있는 수보다 더 많은 자손을 낳는다.

3. 평균적으로 환경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가장 강하게 변화한 자손이 살아남아 자손을 퍼뜨린다. 따라서 자연선택은 환경이 선호하는 변이를 각 개체군(population)에 축적한다.

4. 변이는 임의적이며, 적어도 적응에 대한 지향성이 없다. 즉, 사전에 어느 한 방향으로 설정된 목표란 없다.

5. 변이는 새로운 종(種)의 기초를 세우는 데 필요한 진화적 변화보다 규모가 작아야 한다. 변이를 겪은 새로운 종이 일시에 출현하지는 않는다.


1부 다윈주의


"진화론은 이미 19세기 전반에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이단이었다. 다윈은 자신의 이론과 다른 일체의 진화론에 관한 주장들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 바로 타협을 모르는 철학적 유물론에 있음을 알고 있었다. 다른 진화론자들은 생명력, 진화의 방향성, 유기체의 노력, 그리고 정신의 본질적인 불가분성 등을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이 창조가 아닌 진화를 통해서 역사하셨다고 주장하면서 전통적인 기독교와 타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다윈은 오로지 돌연변이와 자연 선택만을 거론했다. 다윈은 자신의 노트에서, 그가 명명했던 이른바 '요새 그 자체(the citadel itself)'─인간 정신─을 비롯한 모든 생명 현상에 자신의 유물론적 진화론을 엄격하게 적용했다. 만약 정신이 인간 두뇌의 산물 그 이상이 아니라면, 하느님이란 두뇌의 환상이 빚어 낸 또 하나의 환상 이외에 도대체 무엇일 수 있겠는가?"(27)


"다윈이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면서 진화라는 용어를 피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먼저, 그 시기에는 진화라는 용어가 생물학에서 이미 발생학적으로 전문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1744년 스위스의 생물학자 알브레히트 폰 할러는, 난자 또는 정자 안에 담긴 채로 미리 형태를 갖추고 있는 이른바 전성(前成)의 축소형 개체로부터 배(embryo)가 자라난다는 이론을 설명하는 데 진화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만들어 사용했다." "둘째, 당시 일상어로서의 진화는 진보 개념과 확고하게 묶여 있었다." "다윈은 중력과 같은 물리 법칙의 불변성과─〈이 지구는 불변의 중력 법칙에 따라 회전을 계속하는 동안 지극히 단순한 출발점에서 시작하여 가장 아름답고 가장 경이로운 형태로 끝없이 진화해 왔으며,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생물 발달의 변이성을 대비시켰다. 여기서 다윈은 우리가 지금 진화라고 부르는 것과 진보의 관념을 등식화하려는 일반적인 견해를 단호하게 거부했다."(42-4)


"나는 다윈이 자연 선택과 동물 육종을 비유한 것이 정당했다고 주장한다. 인위 선택에서는 한 육종가의 바람이 어느 생물 집단의 '환경 변화'를 의미한다. 이 새로운 환경에서는 일정한 형질들이 선천적으로 우월하다. 자연에서의 다윈적 진화도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생물의 반응을 뜻한다." "내가 알고 있는 비다윈적 이론들에는 예외 없이 자연 선택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자연 선택은 그 이론들 속에서 부적자들에 대한 사형 집행인 또는 망나니로서의 부정적인 배역을 맡고 있다(반면에 그들은 획득 형질의 유전이나 환경에 의한 유리한 변이의 직접적 유도 등 비다윈적인 메커니즘에 의해서 적자가 출현한다고 주장한다). 다윈주의의 본질은 자연 선택이 적자를 창조한다는 주장에 담겨 있다. 변이는 어디에서나 일어나고 그 방향은 임의적이다. 그것은 소재를 공급해 줄 뿐이다. 자연 선택은 진화라는 변화의 방향을 지시한다. 그것은 선호되는 변이 종들을 보전하고 점진적으로 적응도를 쌓아 올린다."(54-7)


"다윈은 서로 다른 두 가지 업적을 남겼다. 그는 진화가 실제로 일어났음을 과학계에 확신시켰고, 그 메커니즘으로 자연 선택 이론을 제시했다.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진화를 진보와 동일시했으므로 다윈의 첫 번째 주장이 동시대인들이 구미에 훨씬 잘 맞았다는 사실을 나는 기꺼이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다윈은 자신의 생전에 두 번째 주장을 인정받는 데에는 실패했다. 자연 선택 이론은 1940년대에 와서야 승리를 거뒀다. 내가 보기에 그 이론이 빅토리아 시대에 인기를 얻지 못했던 이유는 진화가 진행되는 과정 속에 전반적인 진보가 내재되어 있다는 관점을 부정했던 데에 있다. 자연 선택은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국지적 적응(local adaptation) 이론이다. 거기에는 완성의 원리가 없으며, 전반적인 개선의 보장도 없다. 요컨대 자연에 내재하는 진보에 호감을 가지고 있던 당시의 정치 풍토에서 그의 이론은 전반적인 찬성을 얻을 만한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58)


2부 인류의 진화


"어떤 두 동물 종이 형태학적으로는 거의 차이가 없지만 자연 상태에서 각기 독립적으로 생활하며 그들 사이에 교배의 가능성이 없을 때 진화 생물학자들은 그들을 '자매 종(sibling species)'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자매 종들은, 분명한 형태학적 차이가 있지만 동일한 속(屬)에 속하는 두 종, 즉 동속 종(congeneric species)들보다는 유전적인 차이가 훨씬 적다. 그런데 침팬지와 인간은 자매 종이 아닌 것이 명백하다. 또 종래의 분류학적인 관행을 따르자면 인간과 침팬지는 동속 종도 아니다. 하지만 킹과 윌슨은 인간과 침팬지 사이에서 나타나는 전반적인 유전적 차이가 자매 종들 간의 평균적인 차이보다 작고 또 지금까지 연구된 어떤 동속 종들 간의 차이보다도 훨씬 더 작다는 것을 입증해 보였다." "인간과 침팬지 사이의 전반적인 유전자 차이가 그렇게도 작다면 형태와 행동에 있어서 그처럼 큰 차이가 나는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69-70)


"여기서 우리는 어떤 종류의 유전자들은 다른 유전자들보다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단 하나의 형질이 아니라 생물 전체에 두루 영향을 준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간 세포와 뇌 세포는 모두 동일한 염색체와 동일한 유전자를 지닌다. 그것들 사이의 현격한 구조적 기능적 차이는 유전자 구성의 차이가 아닌 발생 과정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동일한 유전자를 가지면서도 각각의 세포가 서로 다른 형질을 나타낼 수 있으려면 세포 분화 과정에서 여러 다른 유전자들이 제각기 다른 시간에 발현되고 또 정지되어야 한다." "유전 시스템의 상당 부분은, 어떤 특정한 형질을 결정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형질이 제때에 발현되도록 하는 프로그램의 조정과 통제를 담당하고 있다. 지금 여기서는 발생 과정에서의 시간 조절을 담당하는 유전자들을 조절 시스템이라 부르고 있다. 조절 유전자 단 하나의 변화라도 생물체 전반에 걸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은 분명하다."(70-1)


"종 분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것은 진화론에서 끊임없이 다루어지는 뜨거운 논쟁거리로, 대다수 생물학자들은 '이소성 이론(allopatric theory)'에 기우는 경향이 있다. '이소(異所)'는 '다른 장소'라는 뜻이다. 에른스트 마이어가 대중화한 이소성 이론에 따르면, 새로운 종은 그들의 모집단으로부터 격리되어 조상 영역의 주변에 위치하는 지극히 작은 개체군에서 나타난다. 그처럼 소규모 고립 개체군에서의 종 분화는 진화의 기준에 따르면 아주 빨리 진행된다. 지질학적으로 100만분의 1초라고 할 수 있을 몇백 년 또는 몇천 년의 기간이 소요될 뿐이다. 중대한 진화는 그처럼 작고 고립된 개체군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유리한 유전적 변이는 재빨리 그들 속으로 퍼져 들어갈 수 있다." "그와는 반대로 중앙에 자리잡은 대규모 개체군에서는 유리한 변이가 아주 느리게 퍼져 나가고 대부분의 변화는 잘 적응하고 있는 개체군으로부터 집요한 저항을 받는다."(83)


"진화가 거의 매번, 중앙에 있는 대규모 개체군에서 일어나는 느린 변화보다 오히려 주변부의 고립된 작은 개체군에서 일어나는 급속한 종 분화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면, 화석 기록은 어떤 형태를 보여 주어야 할까? 화석 기록에서 종 분화 현상 그 자체를 탐지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것은 주류 조상들의 영역에서 멀리 떨어진 지극히 작고 고립된 집단에서 나타나며 그것도 순간적으로 진행된다. 그렇게 탄생한 새로운 생물 종은 기존 조상들의 영역을 다시 침범해서 독자적으로 중앙의 대규모 개체군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와 만나게 된다. 그것들이 화석 기록으로 남겨지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에는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것을 기대할 수 없다. 화석 기록으로는 단지 새로운 종으로서 성공을 거둔 중앙 집단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종 자체는 화석 기록에서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하고 거의 아무런 특별한 변화가 없는 상태를 유지하다가 이후 똑같이 빠른 속도로 멸종된다."(84)


3부 생명의 진화


"다윈의 자연 선택은, 진화적인 변화는 적응적이라는 데에 전제를 두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런 변화는 생물에게 쓸모가 있다는 것이다. 반다윈주의자들이 동물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못하는 진화 사례에 해당하는 화석 기록을 찾아 나선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정향 진화론은 즉각 반다윈주의 고생물학자들을 위한 시금석이 되었다. 그 이론에 따르면 진화는 자연 선택이 규제하지 못하는 어느 한 방향으로만 진행된다. 어떤 경향이든 일단 시작되면 설사 멸종에 이른다 할지라도 멈출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정향 진화론의 유명한 사례로 단연 독보적인 경우가 바로 아일랜드엘크였다. 아일랜드엘크는 몸집이 그보다 작고 뿔도 훨씬 더 작은 동물로부터 진화했다." "그들은 두개골에서 자라나는 외부 돌출물의 무게에 눌려 고개도 들지 못하고 마침내 나무에 걸리거나 웅덩이에 빠져서 목숨을 잃었다."(114-5)


"19세기의 다윈주의자들은 자연계를 무자비한 곳으로 간주했다. 진화적 성공은 전장에서의 승리와 그로써 멸망시킨 적군의 숫자로 가늠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들은 뿔이 포식자들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고 다른 수컷과 경쟁하는 데에 쓰이는 강력한 무기라고 생각했다." "뿔이 무기라면 정향 진화의 논리가 호소력을 갖게 된다. 그러나 만일 뿔의 일차적인 기능이 무기가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 현대에 들어서 학자들은 동물의 행동을 연구하여 진화 생물학에 대단히 중요하고 흥미로운 개념들을 등장시키고 있는데, 이전에는 실질적인 무기라든가 암컷에 대한 과시 장치로 판단되었던 많은 구조물들이 수컷끼리의 의식적인 싸움(ritualized combat)에 사용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한 구조물들은 수컷들이 쉽게 알아차리고 복종하도록 만드는 지배의 위계질서를 확립해서 실제적인 싸움(그에 따르는 부상과 생명의 손실)을 예방하는 기능을 한다."(119-20)


"그 뿔이 적응에 유리했다고 한다면 아일랜드엘크가 (적어도 아일랜드에서는) 멸종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아일랜드 엘크는 약 1,000년간 지속된 알레뢰드 아간빙기에 풀이 많고 나무가 적은 개활지에는 잘 적응했지만, 그 다음으로 찾아왔던 혹한기의 아북극성 툰드라(subarctic tundra)와 마지막 빙하가 물러간 이후 나타났던 울창한 삼림에는 제대로 적응할 수 없었다. 멸종이란 거의 모든 생물 종들이 맞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대체로 그 원인은 그들이 변화하는 기후 조건이나 경쟁의 조건에 재빨리 적응하지 못하는 데에 있다. 다윈의 진화론은, 그 어떤 동물도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불리한 구조를 발달시키지는 않지만, 어느 한 시점에는 유용했던 구조가 이후의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항상 유용할 것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고 선언한다. 아일랜드엘크 역시 앞서 이룩했던 성공의 희생자였을 것이다. 무릇 세상의 모든 영광이 그러하듯이(Sic transit gloria mundi)."(121-2)


"인간은 하느님을 자기 형상에 따라 창조했다. 이후로 특수 창조설(the doctrine of special creation)은 우리 인간이 직관적으로 이해한 그 어떤 적응이라도 그것을 설명해 내는 데 실패한 적이 없다." "만약 모든 생물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하도록 그렇게 명백하고도 탁월한 기법으로 설계되었다면 자연 선택론은 결코 특수 창조설을 대체하지 못했을 것이다. 찰스 다윈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던 까닭에 완벽한 지혜로 만들어진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는 형태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원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진리로 남아 있다. 진화에 의한 적응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예들은 인간의 직관으로는 특이하거나 기괴해 보인다. 과학은 '조직화된 상식(organized common sense)'이 아니다. 과학이 우리를 열광하게 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이 직관이라고 부르는 오랜 역사를 지닌 인간 중심적 편견에 대항하여 막강한 이론들을 적용함으로써 우리의 세계관을 재구성한다는 점이다."(123-4)


"예를 들어, 처녀 생식을 하는 애벌레형 혹파리는 전형적인 r환경에 살고 있다. 버섯은 수가 적고 제각기 멀리 떨어져 있지만 자그마한 파리로서는 일단 찾아내기만 하면 먹이는 넘치도록 풍부해진다. 그러므로 혹파리들이 새로 발견한 버섯을 이용해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개체군을 번식시킨다면 선택적인 이점을 갖게 된다. 번식 개시 연령을 10퍼센트 앞당기면 출산력은 100퍼센트 증가되는 경우가 많았다." "혹파리들은 조기 번식과 지극히 짧은 수명이라는 놀라운 적응성을 가지도록 진화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혹파리들은 먹이 자원이 일시적으로 과잉되는 전형적인 r환경 속에서 최고의 r전략가들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애벌레 상태에서 번식을 시작하고, 부화하자마자 그들의 몸 안에서 다음 세대를 키워 내기 시작한다. 그러한 예로 버섯혹파리의 처녀 생식형 r전략가들은 단 한번의 탈피로 완전한 애벌레가 되어 번식을 하며, 단 5일 동안에 많게는 38세대를 거친다."(128-9)


# 두 가지 생존 전략

1 r선택 : 식량 공급원이 불안정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생물 종이 모든 힘을 번식에 투입하도록 진화한 방식

2 K선택 : 비교적 안정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생물 종이 정밀하게 조율된 소수의 자손을 낳아서 기르는 방식


"대체로 자연의 역사는 생물들이 다른 생물들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 각기 다르게 적응해 가는 이야기가 큰 줄거리를 이룬다. 어떤 개체들은 숨기를 잘하게, 어떤 종들은 맛이 없게, 또 어떤 종들은 바늘이 있거나 두꺼운 껍질을 둘러쓰고 있도록, 심지어 어떤 종은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근친 종과 눈에 띄게 비슷한 모양이 되도록 진화하기도 한다. 그 목록을 만들자면 끝이 없으므로 우리는 자연의 다양성에 놀라워하며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15년 또는 20년 주기로 집단 개화하는) 대나무 씨앗과 (땅속에서 애벌레로 지내다 13년 혹은 17년을 주기로 동시에 출현하는) 매미들 역시 그런 비상한 전략을 구사한다. 그들은 두드러지게 드러나서 쉽게 잡아먹힐 수 있지만, 너무 띄엄띄엄, 또 일시에 엄청난 수가 나타나기 때문에 포식자는 그들을 한꺼번에 먹어 치울 수가 없다. 진화 생물학자들은 이런 방어 수법을 가리켜 '포식자 포만(predator satiation)'이라고 이름 붙였다."(138-9)


"우리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구조와 행동을 진화의 관점에서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 혹파리를 인용했다. 그렇지만 그런 예와는 전혀 궤를 달리 해서 '지극히 완전한 기관들'은 그 고유한 가치를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그런 것들은 오히려 어떻게 해서 그것이 발달되었는가를 설명하는 것이 더 어려울 지경이다. 다윈의 이론에 의하면 복잡한 적응은 단번에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된다면 자연 선택은, 보다 적응력이 뛰어난 생물이 갑자기 나타날 때마다 부적자를 제거하는 순전히 파괴적인 작업만을 수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자연 선택은 다윈의 이론 체계 안에서 건설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자연 선택은 최종 산물의 한 부분으로서만 의미를 지니는 요소들을 연속적으로 결집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 중간 단계들이 점진적으로 축적됨으로써 적응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련의 합리적인 중간 형태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는 것일까?"(144-5)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 현대 진화학자들은 '전(前)적응(preadaptation)'이라는 개념을 내놓았다." "가령 물고기의 지느러미는 어떻게 해서 땅 위를 걷는 사지로 진화할 수 있었을까? 대부분의 물고기들이 가지고 있던 지느러미는 가느다란 가시들이 나란히 배열해 있는 구조여서 땅 위에서는 동물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강바닥에 살았던 민물고기의 특별한 한 무리─인간의 먼 조상들─가 강력한 중심축에 방사상 돌기 몇 개가 부착된 지느러미를 진화시켰다. 놀랍게도 그것은 땅 위의 발이 될 수 있도록 전적응되어 있었지만 당시에는 오로지 물속의 목적에 적합하도록 진화된 기관에 불과했다. 아마 그것은 지느러미의 중심축을 민첩하게 회전시켜 물밑을 기어다니는 데 그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간단히 다시 정리하자면 전적응의 원리는 어떤 구조물이 형태를 크게 바꾸지 않으면서 그 기능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150-1)


4부 생명의 역사


"식물 아니면 동물. 생물의 다양성을 바라보는 인간의 기본적인 시각은 이 이분법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은 땅 위에 사는 큰 동물로서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지위가 낳은 편견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이제 생물의 가장 근본적인 구분은 '고등' 식물과 '고등' 동물 사이에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구분의 커다란 획은 단세포 생물들 사이에 그어진다는 것이다." "박테리아와 남조류(blue-green algae)에는 고등 세포의 내부 구조물, 즉 '세포 기관(organelle)'이 없다. 그들은 세포핵, 염색체, 엽록체, 미토콘드리아(고등 세포의 '에너지 공장') 등을 갖지 않는다. 그러한 단순한 세포들을 원핵생물(prokaryotes, '알맹이' 또는 '중핵'이라는 뜻의 그리스 어 'karyon'에서 비롯된 단어로 대략 '핵 이전before nuclei'이라는 의미를 갖는다)이라 부른다. 세포 기관들이 있는 세포는 '진핵생물(eukaryotes, 진실로 핵이 있는)'이라고 한다."(158-60)


"본질적으로 단세포 생물인 원핵 세포와 단세포 생물이지만 핵을 갖는 진핵 세포를 갈라놓기 위해서는 가장 윗단계의 분류학적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단세포 생물들 사이에 2개의 생물계가 확립되었다. 우리는 이제 원핵생물(박테리아와 남조류)을 모네라(Monera)라고 하고, 진핵생물들을 원생생물(Protista)이라고 해서 두 생물군을 구분한다." "휘태커가 주장하는 바와 마찬가지로 다세포 생물을 구성하는 3개 생물계는 형태학적인 분류로서뿐만 아니라 생태학적 분류로서도 합당하다. 이러한 분류는 지구상에서 행해지는 생존의 세 가지 주요한 방식을 식물(생산), 균류(환원), 동물(소비)로써 잘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서 나는 우리 인간의 약점인 자만심의 관(棺)에 또 하나의 못을 박아 두고자 하는데, 주요한 생명 순환은 생산과 환원으로 충분히 운영될 수 있다는 점을 서둘러 밝히는 바이다. 이 세상은 소비자들 없이도 얼마든지 잘 유지될 수있다."(162-3)


# 5개의 생물계

1 단세포 생물 : 원핵생물 - 진핵생물

2 다세포 생물 : 식물 - 균류 - 동물


5부 지구의 역사


"18세기 초의 지질학은 격변론자들(catastrophists)─지질학적 기록을 성서 연대기의 엄격한 틀 속에 압축해 놓으려 했던 신학적 변증론자들─의 독점적 무대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과거와 현재의 변화 양식 사이에는 심각한 불일치가 있다고 상상했다. 그들은 현대의 역사는 마치 물결이나 강물의 작용과 마찬가지로 느리고도 점진적으로 진행된다고 보았다. 그와는 달리 과거의 사건들은 돌발적이고 대규모적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고서야 어떻게 그 수많은 사건들이 불과 몇 천 년 속에 포함될 수 있겠는가? 하룻밤 사이에 산맥이 솟아올랐고 일시에 깊은 계곡들이 입을 벌렸다." "1830년 자신의 혁명적인 저서 『지질학 원론』을 출간한 라이엘은, 시간에는 경계가 없다고 대담하게 선언했다. 이 근본적인 제약을 내버림으로써 그는 (자연법칙은 변하지 않는다는) '균일론(uniformitarianism)'─지질학을 과학으로 가다듬은 학설─의 철학을 옹호했다."(210-1)


"라이엘은 자신이 타도해야 하는 대상으로 가공의 허수아비를 내세웠다. 1830년에 이르자 과학계의 진지한 격변론자들 중 어느 누구도 지구의 대격변이 초자연적인 원인에 의한 것이라거나 지구의 나이가 6,000년이라는 주장을 믿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러한 관념을 옹호하는 비전문인들은 많았고 과학을 흉내 내던 일부 신학자들 역시 변호하고 나섰다. 과학으로서의 지질학이 그들을 물리쳐야만 하는 상황에서 라이엘의 허수아비는 누가 타도의 대상인지를 분명히 해주었다." "지구의 나이가 6,000년에 불과하다면 지질학적인 기록을 그처럼 짧은 기간에 압축해 넣기 위해서 격변을 믿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그 반대가 반드시 진실인 것도 아니다. 격변설에 대한 믿음이 반드시 지구의 나이를 6,000년으로 지정하는 것은 아니다. 지구는 나이가 45억 년 또는 1,000억 년이라 해도 여전히 급격한 속도로 산맥을 형성하고 평야를 만들 수 있다."(212-3)


"사실 격변론자들은 경험주의적 사고에 있어서는 라이엘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지질학적 기록들은 대격변의 흔적을 담고 있는 듯이 보인다. 암석들은 일순간에 파열되고 일그러졌으며 모든 동물상이 일시에 멸종되기도 했다. 이처럼 뚜렷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라이엘은 상상력을 동원했다. 그는 지질학적 기록들은 지극히 불완전하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는 잇으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논리를 삽입하여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격변론자들은 맹목적인 신학적 변증론자들이 아니라 그 시대의 콧대 센 경험주의자들이었다." "대다수의 지질학자들은 자신들이 전공하는 과학에서 라이엘의 균일론이 비과학적인 격변론을 꺾고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노라고 말하고 싶어 할지 모른다. 그러나 현대 지질학은 사실상 2개 학파─라이엘의 독창적이고 엄격한 균일론과 퀴비에 및 아가시의 과학적 대격변론─의 균등한 혼합체라고 할 수 있다."(213-6)


6부 자연에 대한 오만과 편견


"모양은 그대로인 채로 단순히 커지기만 한다면 어떤 물체든 상대적으로 표면적이 계속 줄어들게 된다. 부피는 길이의 세제곱(길이X길이X길이)으로 늘어나는 반면에 표면적은 제곱(길이X길이)으로만 증가하기 때문에 이런 감소 현상이 일어난다. 바꿔 말하면 부피는 면적보다 더 빨리 늘어난다. 이런 점이 동물들에게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에 따라 결정되는 많은 기능들이 몸 전체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줄어드는 표면적을 해결하는 한 가지 방안이 크고 복잡한 생물의 점진적인 진화에 특별히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바로 내부 기관의 발달이다. 근본적으로 허파는 기체 교환을 위하여 표면적이 무척 복잡하게 만들어진 주머니이며, 순환계는 대형 동물의 경우 체표면에서의 직접적인 확산으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내부 공간에 물질을 전달하기 위한 기관이다. 인간의 소장에 있는 융모(villus)는 음식물을 흡수하는 표면적을 넓히기 위한 것이다(작은 포유류는 융모가 없고 또 필요하지도 않다)."(244-5)


"작은 동물들은 그들의 작은 몸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제약을 받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크기 감각에 사로잡혀 있어서 작은 동물들에게는 세상이 얼마나 달라 보이는지 인식하기 어렵다. 몸체 크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표면적이 아주 작기 때문에 우리는 몸무게에 작용하는 중력의 지배를 받고 있다. 그러나 부피에 대한 표면적의 비율이 아주 높은 소형 동물들은 중력의 영향을 사실상 무시한다. 그들은 표면력(surface force)이 지배하는 세계에 살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의 경험과는 전혀 무관한 방식으로 그들의 환경이 주는 쾌감과 위험을 판단한다. 곤충이 자유자재로 벽을 기어오르거나 연못 위를 걸어다니는 것은 기적이 아니다. 그들을 아래로 끌어당기는 미약한 중력의 힘은 표면 접착력에 의해 쉽사리 상쇄된다. 벌레 한 마리를 지붕에서 내던지면 표면에 작용하는 마찰력이 중력을 충분히 능가하기 때문에 두둥실 떠서 사뿐히 내려앉는다."(246)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큰 극소수의 동물에게만 관심을 집중해 왔기 때문에 인간의 크기에 대해 왜곡된 관념을 갖고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호모 사피엔스는 그다지 크지 않은 동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동물들 중 하나이며 지상에 사는 99퍼센트 이상의 동물 종이 인간보다 작다. 인간이 소속되어 있는 영장목에는 190종의 동물이 있는데 인간보다 몸집이 큰 종은 고릴라밖에 없다. 지구의 지배자로 자처하면서 인간은, 스스로를 고귀한 지위에 도달할 수 있게 한 특징들을 목록으로 작성하는 일에 커다란 관심을 보여 왔다. 나는 사람들이 인간의 두뇌, 직립 자세, 언어 발달과 집단 수렵을 곧잘 그 예로 들면서도 진화의 지배 요인으로 인간의 큰 몸집을 거론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사실에 늘 충격을 받아 왔다." "그러나 인간의 큰 몸집은 (수십억 개의 뉴런이 들어있는 두뇌에서) 자기의식이 가능한 지능을 발달시킬 수 있는 전제 조건이다."(253-5)


"인간의 기술과 행동은 자신의 크기에 꼭 맞게 조율되어 있다. 인간의 키가 지금의 2배로 커진다면 공중에서 떨어질 때의 운동 에너지는 16배 내지 32배로 증가하고 원래의 다리로는 늘어난 몸무게(8배나 된다)를 도저히 지탱할 수 없게 된다. 2미터를 훨씬 넘는 키였던 거인들은 대부분 젊은 시절에 죽거나 관절과 골격 이상으로 일찍 불구가 되었다. 인간의 키가 지금의 절반으로 줄어든다면 몽둥이를 휘둘러 큰 짐승을 잡을 만한 힘을 낼 수가 없다(운동 에너지는 16배 내지 32배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창과 화살에 그것을 움직일 만큼의 운동량을 가할 수 없고 원시적인 도구로 나무를 베거나 쪼갤 수도 없으며 곡괭이와 끌을 사용해서 광물을 캐낼 수도 없다." "여기에서 나는 우리가 그 모든 일을 행할 수 있는 그런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나는 인간의 크기가 인간의 활동을 제한했고 크게 보아서 인간의 진화를 규정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을 따름이다."(256)


7부 사회 속의 과학


"우리는 과학의 진보가 미신과 편견을 몰아낸다고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1890년에 브린튼은 흑인들이 유아기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열등하다고 말했다. 브린튼은 자신의 인종 차별주의를 반복설과 관련지었다. 반복설이란 개체가 태아기와 유아기의 성장 과정에서 조상들의 성인 단계를 되풀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각 개체는 발달 과정에서 그 계통수(family tree)를 소급해 올라간다는 신념을 가리킨다(반복설의 지지자들은 인간 태아에게서 나타나는 새열(gill slit, 한 줄로 배열된 작은 구멍들로 아가미가 형성되기 전(前) 단계의 구조물)이 인류의 먼 조상이 되는 물고기의 성체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종 차별주의적인 해석에 의하면 백인 어린이들은 '하등' 인종들의 성인에 해당하는 지적 단계를 통과해서 그 이상의 단계로 나아간다). 반복설은 19세기 말엽 인종 차별주의의 무기고 속에 자리잡은 대표적인 두세 가지 '과학적' 논리들 중 하나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302)


"다윈의 이론을 대중화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헤켈은 진화론이 사회적인 무기로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진화(evolution)와 진보(progress)는 같은 편에 속하며 그것들은 과학의 찬란한 깃발 아래 도열해 있다. 그와는 달리 계급 제도의 검은 깃발 아래에는 영적인 예속과 허위, 이성의 결핍과 야만성, 미신과 퇴화가 모여 있다······. 진화론은 진리를 위한 투쟁에서 중요한 포병의 역할을 하고 있다. 마치 대포의 연속 사격 앞에서 그러하듯이, 모든 등급의 이원론적인 궤변은 모조리 다······ 그 앞에서 쓰러지고 만다.〉 반복설은 헤켈이 크게 애용한 논리였다(그는 이 논리에 '생물 발생 법칙(biogenetic law)'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한다〉라는 명제를 새로이 만들어 냈다). 그는 이 명제로 특별한 신분을 주장하는 귀족을 공격하고 영혼 불멸을 비웃곤 했다. 그러나 헤켈과 동료들은 북유럽 백인들의 인종적 우월성을 강조하는 데에도 역시 반복설을 끌어들였다."(305-6)


"반세기 동안 반복설 주장자들은 인종 차별의 '증거들'을 꾸준히 수집했다. 그 모든 증거들이 '하등(lower)' 인종의 성인은 백인의 어린아이와 같다고 하는 논리를 지지했다. 그런데 반복설이 일거에 무너지자 인간 유형 성숙설 지지자들이 똑같은 자료를 들고 나왔다. 그들이 객관적으로 자료를 재해석했다면 '하등' 인종들이 우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것이다. 유형 성숙설의 초창기 지지자였던 해블록 엘리스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인류의 진보는 청춘의 진보였다.〉 이 새로운 기준은 실제로 받아들여졌고, 이후 어린아이에 보다 가까운 민족이 우월성의 휘장을 달게 되었다. 그때까지 쓰였던 오래된 증거들은 완전히 폐기되었으며 볼크는 백인 어른이 흑인의 어린아이와 유사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반대 증거들을 찾아다녔다.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이 그는 그런 증거들을 발견했다(무엇이든지 기를 쓰고 찾으면 나오게 마련이다)."(308-9)


# 유형 성숙(幼形成熟, neoteny) : 우리는 우리 조상들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진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이론


"생물학적 범죄 이론은 별로 새롭다고 할 것이 없지만 이탈리아 법의학자 체사레 롬브로소(1835~1909)는 그 논리에 허구의 진화론적 조작을 추가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선천성 범죄자들은 단순히 미쳤거나 질병에 걸린 사람들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이전의 진화 단계로 퇴보한 존재이다. 우리의 조상인 원시 유인원들의 유전적 형질들은 오늘날 우리의 유전자 목록에 그대로 남아 있다. 불운한 사람들은 이러한 조상의 형질들을 이례적으로 많이 지니고 태어난다. 그들의 행동은 과거의 미개 사회에서라면 적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범죄라고 낙인찍는다. 범죄자 자신들도 때로는 어쩔 수 없이 그런 일을 저지르는 까닭에 우리는 선천성 범죄자들을 동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을 용인할 수는 없다(롬브로소는 범죄자의 약 40퍼센트가 이 선천성 생물학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믿었다. 다른 사람들은 탐욕, 시기, 극단적인 분노 등으로 비행을 저질렀으므로 우발적인 범죄자들이다)."(315)


"롬브로소 학파가 사회에 던진 또 다른 충격 하나를 소개해야겠다. 선천성 범죄자들과 같이 야만인들이 유인원의 형질을 보유하고 있다면, 원시 부족들─'무법적인 하등 종족들'─은 본질적으로 범죄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범죄 인류학은 유럽의 식민지 확장 절정기에 인종 차별주의와 제국주의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논리를 제공했다." "롬브로소와 그의 동료들이 열성 나치의 원형(原形)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의도적인 책략이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넘길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과학을 악용하는 이데올로기의 광신자들을 경계하자는 호소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범죄 인류학의 대표들은 '계몽적' 사회주의자이자 사회 민주주의자들로서, 그들은 자신들의 이론을 인간 본성에 바탕을 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회를 향한 선봉이라고 생각했다." "되돌아보면 이들의 시도는 범죄자의 유전성에 모든 책임을 돌림으로써 사회 개혁을 가로막는 역할을 했을 뿐이었다."(319-21)


8부 인간 본성의 과학


"분류학(taxonomy)은 종의 분류(classification)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우리는 다른 생물들을 나눌 때에는 분류학의 규칙을 제대로 적용하지만, 우리가 제일 잘 알고 있어야 할 종에 이르면 특별한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인종(race)으로 구분한다. 분류학의 규칙에 따라 종을 정식으로 다시 구분하면 이것은 예외 없이 아종(subspecies)으로 불러야 한다. 즉 인종은 호모 사피엔스의 아종들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극히 분화된 종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피부색의 차이가 이 변이성의 가장 두드러진 외적 징표라는 관찰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드물다. 그러나 변이가 사실이라고 해서 반드시 인종을 명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계통 분류학과 종의 기원』에서 에른스트 마이어는 아종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아종 또는 지리적 품종은 종을 지리적으로 나누어서 분류한 것이며 그렇게 분류된 아종들은 저마다 유전자에 있어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327-9)


"간단히 요약하자면 통속적 행태학(pop ethology)의 주류파들은 플라이스토세에 사람과(科)의 두 계통이 아프리카에서 생존했다고 주장한다. 그중 하나는 몸집이 작고 텃세를 부리는 육식 동물들로서 나중에 인간으로 진화했다. 다른 하나는 그보다 몸집이 크고 유순한 초식 동물들로 추정되며 후에 멸종되고 말았다. 어떤 사람들은 카인과 아벨의 관계를 극단적으로 빗대서 우리 조상들에게 동족 살해(fratricide)의 죄명을 씌우기도 한다. 사냥을 선호하게 된 포식적 성향(predatory transition)이 선천적 폭력성의 틀을 확립하고 인간의 텃세 성향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생물학적 결정론이 다시 유행하면서 전쟁과 폭력의 책임을 이른바 우리의 육식성 조상들에게 떠넘길 수 있다면 얼마나 속 편한 일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 사회가 모든 인간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데에 철저하게 실패한 책임을 우리 사회의 경제 체제나 정부에 물어야 할 필요가 없게 된다."(339)


"일반인들에게 '유전적'이란 '고정된 것', '어찌할 수 없는 것' 또는 '불변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유전학자에게 '유전적'이란 공통적인 유전자를 바탕으로 친족 관계에 있는 개체들 사이에 나타나는 유사성을 의미한다. 거기에는 환경의 영향이 해결할 수 없는 필연성이나 불변성을 가리키는 의미는 포함되지 않는다. 안경은 시력상의 다양한 유전적 문제를 개선한다. 인슐린은 당뇨병을 억제할 수 있다." "어떤 형질이 나타나는 것은 유전과 환경 사이의 복잡한 상호 작용의 결과이다." "생물학적 결정론은 중요한 철학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며, 중대한 정치적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 보편적인 개념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다음과 같이 반대파의 표어가 됨 직한 글을 남겼다. 〈인간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런 사회적 도덕적 효과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행해지는 몇 가지 천박한 방법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천박한 짓은 개개인의 행위와 성격의 다양성을 선천적이고 자연적인 차이에 돌려 버리고자 하는 일이다.〉"(348-51)


"칼 폰 린네는 크기와 형태, 손가락과 발가락의 숫자 등 실제 특징들에 따라 인간의 근친 동물들을 정의했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에 대해서만은 소크라테스의 경구 〈너 자신을 알라(nosce to ipsum)〉 한마디로 서술을 끝마쳤다." "불행히도 그가 그처럼 고도의 분별력을 발휘하여 제시했던 해결 방안은 심각한 파벌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훗날 대다수 해설자들에 의해서 극도로 왜곡되어 버렸다. 특별한 존재인지 특별한 존재가 아닌지에 관한 논의는 결국 생물적인지 비생물적인지, 또는 양육(nurture)인지 천성(nature)인지에 관한 논쟁으로 변질되었다." "인간은 결국 동물이며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은 인간의 생물학적 잠재력의 범위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인간이 동물이라고 해서 우리의 특수한 행동 패턴과 사회 구성 양식이 전적으로 우리 유전자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잠재성(potentiality)과 결정론(determination)은 서로 다른 개념이다."(355-6)


"나는 생물학적 결정론이 계속해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은, 현상 유지로 인해 가장 커다란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회적 편견을 호도할 목적으로 그것을 이용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되풀이해서 강조하고자 한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비슷한 동시에 다른 점이 있다. 서로 다른 문화적 맥락에서 보면 이런 기본적인 진실의 어느 한쪽 편 또는 그 반대쪽 편을 번갈아 가면서 강조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유용하다. 다윈의 시대에는 동물과의 유사성을 강조하는 주장이 나타나 수세기에 걸쳐 해독을 끼쳤던 미신을 타파했다. 이제는, 방대한 잠재적 행동 가능 영역을 보유하는 유일한 동물로서 우리는 다른 동물들과 구분된다는 사실을 강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이 사회 개혁을 가로막는 것은 아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본질이 없음을 본질로 하는 존재〉인 것이다."(366-8)


맺음말


"사회 생물학자들은 보편적인 적응성에 대해서 더할 수 없이 확신을 가지고 궁극적으로는 원자론(atomism)을 지지하고 있다. 다윈의 이론에서 본다면 외형상 분할이 불가능한 개체 수준 이하로 환원시키고자 한다는 뜻이다." "어떤 사회 생물학자들은 개체란 유전자들이 그들과 똑같은 유전자들을 더 많이 만들어내기 위해서 이용하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나는 유전자들이 서로 독립되어 있고 분할 가능한 입자들이며 자신들의 개별적인 유전을 목적으로 생물체를 이루고 있는 형질들을 이용한다는, 그런 그릇된 생각에 곤란을 겪었다. 생물 개체는 유전 암호의 독립된 조각으로 분해될 수 없다. 이 조각들은 개체라는 환경 밖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몸체의 어느 한 부분을 구획 짓거나 어느 구체적인 행동 하나하나를 직접 암호화하지는 않는다. 외형과 행동은 서로 투쟁하는 유전자들에 의해 엄격하게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또 그것들은 모든 경우에 적응력을 지니고 있어야 할 필요도 없다."(382-3)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는 가장 중대한 논쟁은 황금률(aurea mediocritas), 다시 말하면 중용의 원칙에 따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연은 경이롭도록 복잡하고 다양하여 가능한 거의 모든 것이 그 안에서 일어난다." "생물의 문제에 대해 깔끔하고 결정적이며 보편적인 해답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연이 아닌 다른 곳을 찾아야 한다. 사실 나는, 정직한 연구라면 어느 곳에서나 그러한 해답을 찾아낼 것이라는 말이 오히려 더 의심스럽다. 우리는 작은 문제에 한해서라면 명확한 답을 내놓을 수 있다(나는 이 세상에는 왜 길이 25피트(약 7.62미터)의 개미가 존재할 수 없는지를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중간 정도의 문제라면 웬만큼은 다룰 수 있다(나는 라마르크설이 설득력 있는 진화 이론으로 되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참으로 큰 문제들은 풍요로운 자연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변화는 일방향적이거나 무방향적이며 점진적인가 하면 돌발적이고 선택적인가 하면 중립적인 것이다."(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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